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가 스타트업으로 떠나기 전 이스라엘 스타트업 협업으로 신규 사업 추진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 몇가지를 정리했기에 여기에 공유해 봅니다.
한때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식의 종류를 노나카교수는 암묵지(Tacit Knowledge)와 형식지(Explict Knowledge)로 나누어 설명했고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널리 알려지도 했죠.
조금 어렵고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잠시 설명이 이 글을 설명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간단히 설명해 봅니다.
암묵지(Tacit knowledge)는 경험으로 직접 체득된 지식으로 보다 실질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고, 반면 형식지(Explict Knowledge)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론 지식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중 형식지(Explict Knowledge)는 쉽게 정리할 수 있어서 후배들에게 전달될 수 있지만 암묵지는 쉽게 디지탈화 할 수 없고 조직 내에서 공유되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거나, 아니 가지고 있다고 생각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암묵지를 가지고 있는 직원이 떠나면 바로 없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식이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꿈꾸는 조직이라면 이라면 이런 이러한 암묵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죠.
갑자기 낡아 빠진 암묵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업무를 하면서 쌓았던 경험이 조직 내에 잘 축적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이렇게 사라지는 지식들은 조금은 정리된 형태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공유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1. 대기업 출신 스타트업 경영인 이야기
여기 대기업에서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하다 이제는 스타트업 기업을 이끌고 있는 후배가 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 재직중에 뛰어난 능력으로 신사업을 이끌었지만 대부분의 대기업이 추진했던 신규 사업처럼 결국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접게 되었죠.
분석과 전략 그리고 정리에 능했던 그 친구는 근 3년이상 추진했던 신규 사업을 개인적으로 리뷰해 보고 그 소회를 남겼습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깝고 업무에서 얻어진 암묵지는 후배들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에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오픈할 수 없고, 아니 오픈한다고 더 도움된다고 할 수도 없기에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히 신사업의 배경과 내용을 먼저 소개해 봅니다.
대개 많은 대기업이 그러하듯이 신규 사업을 통해서 새로운 돌파를 찾아야겠다는 경영진의 의지에 따라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기술 공급 계약을 맺고, 양사가 협업해 신규 디바이스를 개발, 판매하는 과제를 추진하게 됩니다.
이를 위한 TF(Task Force Team)가 꾸려지고 3년에 걸쳐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결국 출시를 포기하고 과제를 중단했고, 담당자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이제 과거의 일로 사내에서 누구나 그냥 잊고 싶은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2. 지피지기가 부족했던 신규 사업 추진
왜 이 과제는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요?
흔히 하듯 외국 기업의 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경우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 전략과 역량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제의 경우는 (경영진의 지시로 급히 추진되었다고 하드라도) 상대방을 제대로 몰랐고, 우리 회사도 낭만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지피지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 비지니스 파트너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다.
새롭게 떠오르는 비지니스 영역에 대해 그 동안 연구 개발해 놓은 것이 없다면 이러한 역량을가진 외국 업체와 협업을 하거나 인수 합병을 하게 되죠.
요즘 경영에서 스스로 역량을 축적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시장과 경쟁자를 따라가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M&A를 활용합니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경영전략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애플이나 아마존을 비록한 요즘 잘나가는 테크 기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이번 과제의 경우도 우리가 가진 기술 자산이 없었기 대문에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일정 지분 투자를 하고 그 기술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비지니스 파트너의 능력과 그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채 협업이 진행되었고, 대부분 그러하듯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양사가 이 기술을 가지고 추진하려는 사업의 비전이 달랐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될 정도를 상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채 진행되었다.
비니니스 협력, Image – rawpixel Featuredcrop
파트너에게 과도한 기대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트너가 가진 역량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았고, 평소 대기업 관점에서 협력업체와 과제를 진행하듯이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과제를 진행한 측면이 강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상호 갭 발생이 점차 많아졌고 갈등도 커졌습니다.
파트너의 개발 능력이나 양산 능력에 대한 객관적 파악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시제품을 믿고 계약을 진행하고 과제를 진행했지만 결국 양산 단계에서는 제대로 진척되지 못해서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부족함을 절감했지만 우리가 가이드하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습니다. 대기업이 쌓아온 생산 능력, 품질 제어 능력이 단기간내에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협력업체를 지원해 능력을 일정정도 끌어올려 성과를 내는 그러한 문화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스타트업도 우리의 요구와 가이드를 수용하고 배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계약서를 검토하는 남자와 여자, Image – rawpixel Featured
파트너의 비지니스 모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
다음으로 파트너가 궁극적으로 가려는 비지니스 모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기존 하드웨어 중심 사고에 집착했습니다.
파트너는 데이타에 기반해 미래에는 핼스케어까지 갈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비지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지니스 모델보다는 디바이스 판매 중심의 비지니스 모델에 집중했습나다. 이는 우리가 여태껏 해봤던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파트너가 생각하는 비지니스 모델과 그들의 장기 로드뱁을 이해하고, 그 로드맵 하에서 우리 비지니스 모델을 녹여낼 수 있었어야 하는데, 이를 설득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생각이 전부 달랐기 때문에 이를 업체에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파트너의 비지니스모델과 우리의 비지니스 모델에 대한 접근이 달랐기 때문에 협업의 시너지를 낼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업체들의 특성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업체들이 비지니스에 대하는 자세와 우리의 일반적인 비지니스 접근 방식이 조금 달랐고 여기서 오해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업체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대 포장을 많이 합니다. 시제품과 양산제품을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업체의 주장을 너무 쉽게 믿었고, 양산 경험이 없는 회사의 양산 계획을 믿었기 때문에 그 수준을 달성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품질에 대한 기준이나 납기에 대한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양산 기준을 우리의 눈 높이에서 생각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양산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때로 잊고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생각하는 품질과 스타트업의 그것은 생각보다 간격이 컸습니다.
2.2. 우리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파트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다가 우리 자신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사업에 대한 명확한 비젼 설정이 필요
이 과제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이 사업에 대한 명확한 비젼과 전략을 가지고 시작했을까 반문해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제의 시작은 최고경영진의 지시에 따라 시작되었고 사업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명확한 비젼이니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서둘렀죠.
신산업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의지는 전부가 아니라, 제대로 검토하고 치밀한 전략 수립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과제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왜 이 과제를 해야한다는 최고경영진에서부터 실무담당자까지 비젼이 공유되고 추진되어야 제대로 성과가 날 수 있지만 끊임없이 왜 이걸하지?라는 관련부서와 관련자들의 도전을 암암리에 받았습니다.
과제나 회사의 비전은 최고 경영진부터 가장 아래 사원까지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각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서너지를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신사업의 특성을 살릴 수 없는 대기업 프로세스
대기업은 그간 축적된 엄청난 경험과 실험을 통해서 상당히 견고한 통과 기준을 세워놓습니다. 가능하면 완전무결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어야 하다는 강박관념이 강합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기본이 되었다면 출시하고 시장의 피드백을 받아서 개선에 개선을 거듭합니다. 대표적인 이론이 린스타트업이죠.
대기업에서 그런 스트트업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 프로세스 적용을 강요했기 때문에 대부분 적절한 출시 타이밍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이번 과제도 검증에 검증을 거듭하면서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이미 경쟁사는 다른 세대의 제품으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당연히 점점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 때 출시하지 못하면서 시간은 자꾸 흘렀고, 타사와의 차별성을 위한 추가 요구 사항을 업체에 전달하고, 또 그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스타트업에 실망하고 시간은 흐르는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경쟁사들은 출시 후, 오류제거/업그레이드를 하며 제품과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갔습니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커녕 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한 상태로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의 한계를 절감하다.
아무리 이스라엘 업체와 협업을 통해서 과제를 진행했지만 단기간내에 우리가 관련 기술이나 노하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개발 주체로 나설 수 없었습니다.
제품 개발 전 부문에서 파트너에게 의존하다보니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우리 의견을 반영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제품은 만들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의 신기술을 도입하려면, 내부에서 그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의 역량 확보 노력도 필요합니다.
기술 확보에 소극적이었다.
뒤늦게 기술 확득등을 위해 노력했지만 과감하지는 못했습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면 관련 기술에 과감한 투자와 인력 확보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접근보다는 단기적인 디바이스 개발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물론 현재 사업부는 메인 비지니스에 주력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인 투자가 아쉬웠습니다.
많은 돈을 투입해 과제를 진행했지만 우리 성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전문적인 커뮤니케이션 부족
신규 사업 특성상 기술적인 배경없이는 제대로 커뮤니케이션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신규 사업은 파트너와 기술 협업을 통해서 프로세스 진전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비지니스 계약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개발 배경을 가진 전문가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지적하다시피 아주 디테일하고 정교한 계약(구체적인 양사간의 R&R과 권리)이 부족했기 때문에 엔지니어의 커뮤니케이션은 돌고 돌아 비니니스 계약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비지니스 미팅 회의 workplace_Featured
일례로, 개발자간의 소통에서 서로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이는 계약에 없는 내용이야. 비즈니스 계약을 수정해야 해.” 같은 문제로 진정 필요한 개발적인 커뮤니케이션 보다는 비지니스 컨디션에 조율이 선결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개발 기간은 비즈니스 계약 수정 기간만큼 길어지고, 서로의 감정 싸움까지 확대되곤 했습니다.
3. 마치며
우리 내부의 명확한 비젼과 전략이 부족한 상태에서 파트너에 대한 지분 투자라는 불완전한 조건과 우리가 업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갖지 못하면서 이 과제는 힘있게, 효과적으로 추진되지는 못했고 결국 시장 출시도 못하고 접고 말았습니다.
이 과제를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엄청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점은 항상 부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후배들이나 새롭게 신사업 또는 스타트업을 추진하면서 파트너쉽을 검토하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빌어봅니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돈을 버는 족족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흔히들하는 것처럼 주주에게 배당도 않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은 미래 성장을 보고 이러한 정책을 지지합니다.
2020년 아마존 영업이익은 229억 달러로 영업이익율 5.9%를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과 영업이익율 모두 사상 최고치입니다. 아마존 영업이익은 2017년 41억 달러 -> 2018년 124억 달러 -> 2019년 145억 달러 -> 2020년 229억 달러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영업 이익과 관련해서는 전년비 증감율보다는 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인 영업이익율(Operation Margin)을 더 중요한 측정 지표로 사용합니다.
아마존의 영업이익율은 2017년 2.3%에서 2018년에는 5.3%로 껑충 뛰어올랐고 2019년 5.2% 그리고 2020년 5.9%로 한단계 높아진 수준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아마존 영엉이익율은 페이스북과 같은 다른 IT의 영업이익율과는 천양지차입니다. 2018년 페이스북 영업이익율은 45%에 달했으니 도저히 비교할만한 수준이 못됩니다.
그러나 아마존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 투자에 집중해 미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중요시하므로 주주와 시장은 아마존의 아마존의 미래 가치에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도별 아마존 영업이익 추이( ~ 2020년), , Yearly Amazon Operating Income & Operating margin(%), Graph by Happist
아마존 순이익 추이
영업이익율이 낮으면 특별한 이자 수입 등등이 없다면 순이익도 낮기 마련이죠.
아마존 순이익은 영업이익과 마찬가지로 매우 낮은 수준을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순이익과 순이익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보입니다.
아마존 순이익은 2017년의 30억 달러 –> 2018년 101억 달러 –> 2019년 116억 달러 –> 2020년 213억 달러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순이익율도 2018년 4.35로 처음으로 45를 넘었고 2020년에는 5.55로 처음으로 5%를 넘었습니다. 기업 순이익율이 5%를 넘은 것은 그 회사가 어느정도 수익성이 좋은 회사라는 반증이 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 이익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도별 아마존 순이익 추이( ~ 2020년), , Yearly Amazon Net Income & Net margin(%), Graph by Happist
4. 연도별 아마존 정직원 수 추이
아마존이 유통 기업이다보니 매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을 고용합니다.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 시밝힌 아마존 직원수는 129만 8천명에 이릅니다.
이는 2019년 23.2% 증가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라인쇼핑 수요가 급증하면서 임직원수가 63% 늘었습니다.
연도별 아마존 직원수 증가 추이( ~ 2020년), Graph by Happist
2019년 매출 증가율이 21%인데 임직원 증가율은 23.2%이니 단순 수치로만 판단 시 효율적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2020년 매출 증가율 38%에 비해서 직원 증가율이 63%에 달하니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효율이 나타나는 것은 최근 몇년동안 오프라인 매장 확장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쇼핑 수요 증가 등이 겹친 결과로 보여지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점차 최적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물류센터의 필요 인력을 로봇을 통해서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18년 4분기 페이스북 관련 서비스를 이용한 사용자들은 무려 23.2억명이 이르러 전년 동기 비 9% 증가했습니다.
비록 전년 比 증가율이 둔화되고는 있지만 거의 10%가까운 사용자 수 증가를 기록한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페이스북 사용자의 이탈 조짐에 대한 무수한 경고가 지속되었다는 저믈 고려하면 말이죠. 그동안 무수한 페이스북 이용자 이탈에 대한 보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를 비웃듯이 여전히 10%가까운 성장을 보엿습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월간 사용자수(Facebook MAU) 증가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더우기 페이스북 사용자가 감소할 것으로 보였던 북미 지역에서도 근소하지만 성장세를 유지하고는 있습니다.
페이스북 매출을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는 북미지역이기에 이 지역에서의 실적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에 우려한대로 북미지역에서 페이스북 사용자는 2017년 2분기부터 전년 동기 비 성장율이 눈에듸게 하락하기 시작해 2018년 3분기엔 1%까지 떨어졌으며, 2018년 4분기에도 1% 성장에 그쳤습니다.
다만 eMarketer는 2019년에 북미 지역에서의 페이스북 이용자는 여전히 1%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일각의 무려만큼 급속히 사용자가 감소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네요.
페이스북 북미지역 분기별 월간 사용자수(Facebook MAU) 증가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지역별로 살펴보면 그동안 사용자 증가를 이끌었던 아시와 기타 지역의 성장율 역시 확연히 꺽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지역별 월간 사용자수(Facebook MAU) 증가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2. 사용자당 효율은 좋아지고 있다, 이익 모멘템이 강화되다.
페이스북 월간 사용자가 23억명에 달했다는 것은 전 세계 목표층 상당수가 이미 페이스북 사용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추산한대로 세계 인구를 79억명으로 본다면 타켓 고객이 더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중 15세 이하 27%와 65세 이상 8.2%를 제외한다면 페이스북의 타켓 고객은 52억명정도로 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세계 타겟 인구를 전부 고려해도 페이스북의 서비스 침투율을 거의 50%에 육박합니다. 일개 기업의 서비스로 전 세계 타겠층의 50%를 공략했다면 어마어마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페이스북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당면하고 있는 중복 가입자를 고려하면 이보다는 낮겠지만 말입니다.
그럼레도 불구하고 페이스북 상요자는 상당 정도의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최근 페이스북 사용자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것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제는 사용자 자체의 증가보다는 사용자 한명, 한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매출 또는 수익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가 페이스북이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페이스북의 사용자 1인당 매출을 보여주는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증가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페이스북 ARPU(Average Revenue per User)는 2018년 4분기에 7.4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전년 동기 비 19.3% 증가한 것이고, 전 분기 6.1달러에 비해서도 20% 증가한 것입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사용자 1인당 매출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Facebook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trend,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여전히 높은 매출 증가율을 보이다.
이렇게 사용자 1인당 효율이 좋아졌기 때문에 페이스북 매출 증가율은 비록 둔화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전년 동기 비 30%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매출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Facebook quartly Revenue trend,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순이익 69억 달러, 순이익율 40.7%
이러한 현상은 페이스북의 순이익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2018년 4분기 페이스북의 순이익은 69억 달러로 순이익율은 무려 40.7%에 달합니다.
분기별 페이스북 순이익율 추이를 살펴보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5년 초에는 10% 중반에 그쳤지만 점점 높아져 이제는 40%대까지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케아는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해 아래와 같은 세가지 전략 모향을 모색합니다.
2017년 11월 인터뷰에서 이케아의 새로운 CEO가 된 Jesper Brodin은 이케아의 향후 전략 방향에 대해서 온라인 스토어와 서비스 그리고 시티 센터의 강화를 들었습니다.
세가지 전략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분석해보면 이 세가지 전략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IKEA, which is seeing the surge in e-commerce and home delivery dim the appeal of its classic out-of-town warehouse stores, flagged last year it might add full-range city-centre showrooms to its channels. Jesper Brodin, CEO since September of IKEA Group, which owns the bulk of IKEA stores, confirmed in November he would focus on developing such formats alongside online store and services, and new CFO Juvencio Maeztu said last month investment levels would stay high in coming years.
리치몬드라는 조그마한 지방 고등학교 농구 코치가 어떻게 고등학교 농구선수들을 원칙있는 제대로 된 삶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일종의 성장 영화이다.
코치 카터(Coach Carter) 영어 포스터
2000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2005년에 개봉된 영화인데 아주 움림이 컸다. 뭐 영화 내용을 이야기하기는 그렇고 영화에서 정말 괜찮은 대사라고 생각되는 두개를 정리해 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룰을 지킬 필요에 대해서
제대로 원칙을 지키는 또는 기본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고 있다.
농구 연습을 하는 체육관 폐쇄조치에 반발하는 학교,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반발로 위원회가 열려 강제로 농구장 폐쇄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로 토론을 벌인다.
여기서 카터코치는 최후 변론격으로 길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다. 뭐 그렇다고 투표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이 때 카터 코치의 이야기이다. 왜 체육관을 을 폐쇄했는지, 그리고 지금 폐쇄를 해제하면 안되는지에 대해서…
이 선수들에게 여러분이 보내는 메세지를 고려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가 프로선수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와 같은데 그건 그들이 법 위에 있다는 겁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자기들의 인생을 알리고 선택권을 주는 훈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15, 16, 17살 소년들에게 농구 계약서의 간단한 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다면 선수들이 사회에 나가서 법을 어기는데 얼마나 걸리 거라 생각하십니까? 전 30년 전에 리치먼드에서 농구를 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팀 동료 중 일부는 감옥에 갔습니다. 그 중 일부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특별한 그룹의 점은이들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맡은 것이었고 이것이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폐쇄 조치를 끝내기로 가결하신다면 저를 해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사퇴하겠습니다.
You really need to consider the message you’re sending this boys by ending the lockout. It’s the same message that we as a culture send to our professional athletes; and that is that they are above the law. If these boys cannot honor the simple rules of a basketball contract, how long do you think it will be before they’re out there breaking the law? I played ball here at Richmond High 30 years ago. It was the same thing then; some of my teammates went to prison, some of them even ended up dead. If you vote to end the lockout, you won’t have to terminate me; I’ll quit.
영화 코치 카터의 한장면, Image – Netflix
What’s your deepest fear? 무엇이 가장 두렵지?
결국 4:2로 체육관 폐쇄는 강제 해제하기로 위원회 결론이 났다.
공언한대로 코치 카터는 코치 직을 그만드기로하고 짐을 챙기러 체육관으로 향하는데… 체육관에는 농구선수들이 전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영화 코치 카터의 한장면, Image – YouTube
그 중 한 학생이 카터 코치가 계속 질문했던 “What’s your deepest fear? 무엇이 가장 두렵지?”에 대한 답을 이야기한다. 아마 어는 유명한 글인 것 같은데 그 출처는 찾지는 못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공포는 무력함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공포는 측정할 수 없는 우리의 강함이다. 우리의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이다. 그게 우리를 두렵게 한다. 소심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네 주위에서 불안하지 않토록 움츠리는 것은 전혀 현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빛을 발하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가 그렇듯이 우리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이가 그렇다. 우리 자신의 빛을 발하게 할 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공포로부터 해발될 때 우리의 존재는 저절로 다른 사람을 해방시킨다.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ness, that most frightens us.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w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a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 i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s shine, we unconsciously give other people permission to do the same.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장면만을 편집해 올려놓은 유투브 영상이 있다. 여기에다 임베딩해본다.
단테의 예술혼은 전적으로 그가 9살때 만난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깨 최고의 러브 스토리로 알려지는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대한 사랑과 예술로 승화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3.1. 아홉살, 운영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1274년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했다. 그는 거기서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26~1290)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운영처럼 단테의 영혼을 송두리채 빼았아 가고 말았다.
단테는 그의 시집 ‘신생(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 1293)’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 숙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던 기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순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신은 너무도 격렬하게 요동쳤으며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라, 신이 오시어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도했도다……”
단체의 영혼을 빼앗아 간 베아트리체(Beatrice)였지만 그녀의 이름도 모른체 헤어지고 만다.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3.2.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두번째 조우
세월은 무심히 흘러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단테와 베아트레체는 다시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어느 날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난간에 기대고 있었는데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방향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꿈에도 그리던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단테의 짝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테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테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이 만남이 전부였다.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가 당시 피렌체 최고의 가문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과 인연을 맺기는 불가능했던 게 당시 냉혹한 상황이었다.
아래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바친 시 ‘사랑의 노래’의 귀절이다.
“나의 아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도 싫도록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긋이 바라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복이 있도록 드높은 곳 환한 밝음 속에서 오직 신을 우러러 축복 받는 천사와도 같이 내 비록 한낱 인간이건만 내 마음의 주님을 우러러 보면 천사에 못지않게 축복을 받고 솟아오르는 넋을 퍼덕이리라. 이런 힘이 그에게 있거니 남은 모를지라도 그를 바라 그리운 나는 아노라.” –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리라 –
3.3. 정략결혼과 베아트리체의 죽음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마음에 품은 채 당시 사회 관례대로 1285년 어린 나이에 약혼했던 젬마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지 2년만이었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 피렌체의 부자 가문이자 은행가였던 시모네 디 바르디와 결혼을 한다. 그렇지만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문학 수업에 열중하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와의 첫사랑,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랑은 단테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잃은 상실감을 ‘신곡’에서 아래와 같이 회상한다.
그녀가 말햇다. “무슨 사슬이 당신의 길을 막았기에 계속 나아갈 희망을 버려야 했나요?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건들였나요?” 서러운 함숨을 몰아쉬며 나는 대답할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내 입술은 가까스로 몇마디를 만들었다. 울먹이며 나는 말했다. “당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때 세상이 내민 헛된 즐거움이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4. 전사로서 단테
앞서 지적한대로 피렌체에서 세력을 강화한 겔프당 내에서 적극적인 교황지지파인 켈프 흑당과 소극적인 교황 지지파인 겔프 백당으로 크게 갈리게 되었다.
단테의 집안은 피렌체에 대한 교황의 개입이나 외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겔프 백당에 속해 있었다.
단테는 피렌쳉 파견나온 교황청과 프랑스 대사를 홀대함으로 발생한 교황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겔프 백당의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로마를 방문했다.
이러는 와중에 프랑스 국왕의 동생이 교황의 사주를 받고 피렌체에 전격적으로 진격해 피렌체의 겔프 백당을 모두 축출하고 단테 가문을 비롯한 겔프 백당에 속한 가문들의 재산을 전부 압수해 버렸다.
그리고 단테등을 반역 혐의로 기소했고, 단테가 재판을 인정하지 않자 궐석 재판으로 2년 유배형과 막대한 벌금형을 내렸다.
당연히 단테는 이러한 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이미 법금 납부없이 피렌체로 돌아올 시 화형에 처한다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단테는 피렌체 땅을 밟지 못하고 21년간에 걸친 유랑을 시작했다.
단테는 라벤나에서 귀도 노벨로(Guido Novello)의 비호를 받으며 그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321년 말라리아로 생애를 마감했다.
5. 베아트리체가 준 강렬한 예술적 영감
단테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단테에게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단테가 온갖 열정을 다해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숭고한 사랑, 신에 버금가는 고귀한 존재 , 구원자로 재창조해 그의 사랑을 예술속에서 영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베아트리체. 그대가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곳에서 왔어요. 사랑이 날 이곳까지 이끌었지요. 내가 주 앞에 설 때 당신을 칭찬해 드리겠나이다.”
그는 피렌체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이탈리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단테는 여러 편의 시나 논문을 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 알고 있듯이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이라는 장엄한 서사시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 단테 ‘신곡(The Divine Comedy) 오리지널 에디션 , Image – MUSEO CASA DI DANTE
‘신곡’의 내용은 단테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베아트리체(Beatrice),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안내를 따라 지옥-연옥-천국으로 여행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로마 국가 서사시인 ‘아이네이스’를 지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가 단테에게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보여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그와 같이 같이 지옥과 연옥 여행을 시작한다.
이어 천국에서 베아트리체(Beatrice)를 만나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10녀개의 천국 하늘을 둘러본다. 이어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안내로 신의 성스러운 얼굴을 뵙게 되고, 삼위 일체의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은 분명 시대적 한계가 있지만 당시 일반적이었던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토속어로 ‘신곡’ 을 지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있도록 만들어 향후 이탈리아 문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또한 철저히 신을 찬양하는 것만이 지고의 선이었던 시절에 신이 아닌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감정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신에 매몰된 중세에서 빠져나와 상큼한 개인의 감정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르네상스 문학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아니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당시의 카톨릭 사상을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 받는다.
5. 피렌체에서 단테의 흔적을 찾아보다
피렌체는 단테를 추방하고 그가 외지에서 쓸쓸히 사망하도록 만들었지만 추후에 피렌체는 위대한 시인의 흔적을 피렌체 곳곳에 만들었다.
5.1. 단테를 위한 빈 무덤을 산타 크로체 성당에 만들다.
1321년 단테는 말라리아에 걸려 라벤나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라벤나의 산 피레르 마조레성당에 묻혔다.
단테의 위대함을 알게된 피렌체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그를 피렌체에 모시고 싶어했다. 그러나 라벤나의 산 피레르 마조레성당은 이를 거부했고, 혹시나 있을 피렌체 사람들이 단테의 무덤을 도굴할까봐 가짜 무덤까지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아무튼 단테를 피렌체로 모시는 것이 무산 된 후 1829년 피렌체는 르네상스 천재들이 모셔져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에 단테를 위한 ‘빈 무덤’을 만들고 그를 기리기 시작했다.
산타 크로체 성당의 단테 비문은 ‘신곡’ 지옥편에서 빌려온 아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을 찬양하라. 우리를 떠났던 그의 정신이 귀환하시도다.”
아래는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 정면 모습과 왼쪽 출입구에 서 있는 단테 조각상 모습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 정면 이미지, CC BY-ND Violator1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 왼쪽 출입구에 서 있는 단테 조각상
5.2. 피렌체 두오모에서 단테
피렌체 두오모 내부 북쪽 벽면에는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가 1465년에 그린 ‘단테의 신곡’이 전시되어 있다.’이 그림은 단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피렌체 시민들이 미켈리노에게 주문해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단테는 그가 지은 ‘신곡’을 들고서 책에서 발광하는 빛으로 피렌체를 비추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지옥을 가리키며 경계하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함을 아쉬워하듯 피렌체 성밖에 서서 피렌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소장된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가 1465년에 그린 ‘단테의 신곡(La commedia illumina Firenze)’
5.3. 단테 생가 & 단테 박물관
피렌체 두오모 골목길을 조금 걷다보면 단테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단테의 생가이면서도 단테 박물관(MUSEO CASA DI DANTE)인 곳이다.
피렌체시는 단테 생가라고 추정되는 곳의 건물을 사들여 이를 단테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7개 방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단테의 행적으로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정리해 놓았다.
그래서 그릐 작품에는 시모네타(Simonetta)를 모델로 한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Primavera(봄)’ 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에서 이를 잘 살펴 볼 수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프리마베라, Sandro Botticelli, Primavera, c. 1482, Uffizi Gallery, Florence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1484-86년경,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Room 15: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s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동 작업 1470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72(Annunciation, Leonardo da Vinci,1472)
동방박사의 경배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81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와 -막달레나 루카 시뇨렐리, 1500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Annunciation, Leonardo da Vinci,1472)이다. 천사에게서 임신 사실을 전달받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
이 주제의 그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그림은 전부 실내를 배경으로 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실외를 배경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든지 어느 분야에서든 차별화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주 간단하지만 강력한 원칙, 차별화의 위력을 여기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사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Annunciation, Leonardo da Vinci,1472)
아래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베로키오가 공동으로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가 대부분을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수와 아기 천사 그리고 뒷부분 배경 부분을 그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르네상스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기 천사의 지루해하는 표정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과거 중세시대라면 감히 이런 불경스러운 표현이 가당키나 했을까? 르네상스에서야 비로소 신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 그대로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베로키오가 공동으로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
Room 16: 지도, Maps
페르디난트 1세가 과학 장비를 수집하기 위해 만든 방으로 피렌체, 시에나, 엘바 섬의 지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Room 17: Small room of mathematics
Room 18: 트리뷰나, Tribune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전시실에 다양한 회화와 조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 전경, Image by Uffizi Gallery
이 트리뷰나는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가 피렌체의 두번째 대공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를 위해 설계했다. 1581년 공사를 시작해 1586년에 완성했다.
이 팔각형 트리뷰나는 천장도 팔각형이고 밖의 지붕도 팔각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은 메디치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작품 중 걸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이 전시실은 영국 화가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가 그린 ‘우피치미술관의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라는 작품으로 인해 크게 유명해졌다.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가 그린 우피치의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 1772~1777, Google Art Project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는 1772년 영국 왕족들이 우피치 트리뷰나의 소장품들을 너무나도 보고 싶어해 여기 소장품들을 그림으로 베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영국 샬로테 여왕의 청원서를 들고 피렌체로 왔다.
메디치가에서 이를 허락하자 1772년부터 1777년까지 장장 6년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다. 이에 따르면 우피치가 소유한 걸작들의 상당수가 이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이 트리뷰나에 전시되고 있었던 작품 리스트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