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돈을 버는 족족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흔히들하는 것처럼 주주에게 배당도 않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은 미래 성장을 보고 이러한 정책을 지지합니다.
2020년 아마존 영업이익은 229억 달러로 영업이익율 5.9%를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과 영업이익율 모두 사상 최고치입니다. 아마존 영업이익은 2017년 41억 달러 -> 2018년 124억 달러 -> 2019년 145억 달러 -> 2020년 229억 달러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영업 이익과 관련해서는 전년비 증감율보다는 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인 영업이익율(Operation Margin)을 더 중요한 측정 지표로 사용합니다.
아마존의 영업이익율은 2017년 2.3%에서 2018년에는 5.3%로 껑충 뛰어올랐고 2019년 5.2% 그리고 2020년 5.9%로 한단계 높아진 수준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아마존 영엉이익율은 페이스북과 같은 다른 IT의 영업이익율과는 천양지차입니다. 2018년 페이스북 영업이익율은 45%에 달했으니 도저히 비교할만한 수준이 못됩니다.
그러나 아마존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 투자에 집중해 미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중요시하므로 주주와 시장은 아마존의 아마존의 미래 가치에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도별 아마존 영업이익 추이( ~ 2020년), , Yearly Amazon Operating Income & Operating margin(%), Graph by Happist
아마존 순이익 추이
영업이익율이 낮으면 특별한 이자 수입 등등이 없다면 순이익도 낮기 마련이죠.
아마존 순이익은 영업이익과 마찬가지로 매우 낮은 수준을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순이익과 순이익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보입니다.
아마존 순이익은 2017년의 30억 달러 –> 2018년 101억 달러 –> 2019년 116억 달러 –> 2020년 213억 달러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순이익율도 2018년 4.35로 처음으로 45를 넘었고 2020년에는 5.55로 처음으로 5%를 넘었습니다. 기업 순이익율이 5%를 넘은 것은 그 회사가 어느정도 수익성이 좋은 회사라는 반증이 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 이익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도별 아마존 순이익 추이( ~ 2020년), , Yearly Amazon Net Income & Net margin(%), Graph by Happist
4. 연도별 아마존 정직원 수 추이
아마존이 유통 기업이다보니 매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을 고용합니다.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 시밝힌 아마존 직원수는 129만 8천명에 이릅니다.
이는 2019년 23.2% 증가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라인쇼핑 수요가 급증하면서 임직원수가 63% 늘었습니다.
연도별 아마존 직원수 증가 추이( ~ 2020년), Graph by Happist
2019년 매출 증가율이 21%인데 임직원 증가율은 23.2%이니 단순 수치로만 판단 시 효율적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2020년 매출 증가율 38%에 비해서 직원 증가율이 63%에 달하니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효율이 나타나는 것은 최근 몇년동안 오프라인 매장 확장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쇼핑 수요 증가 등이 겹친 결과로 보여지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점차 최적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물류센터의 필요 인력을 로봇을 통해서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18년 4분기 페이스북 관련 서비스를 이용한 사용자들은 무려 23.2억명이 이르러 전년 동기 비 9% 증가했습니다.
비록 전년 比 증가율이 둔화되고는 있지만 거의 10%가까운 사용자 수 증가를 기록한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페이스북 사용자의 이탈 조짐에 대한 무수한 경고가 지속되었다는 저믈 고려하면 말이죠. 그동안 무수한 페이스북 이용자 이탈에 대한 보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를 비웃듯이 여전히 10%가까운 성장을 보엿습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월간 사용자수(Facebook MAU) 증가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더우기 페이스북 사용자가 감소할 것으로 보였던 북미 지역에서도 근소하지만 성장세를 유지하고는 있습니다.
페이스북 매출을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는 북미지역이기에 이 지역에서의 실적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에 우려한대로 북미지역에서 페이스북 사용자는 2017년 2분기부터 전년 동기 비 성장율이 눈에듸게 하락하기 시작해 2018년 3분기엔 1%까지 떨어졌으며, 2018년 4분기에도 1% 성장에 그쳤습니다.
다만 eMarketer는 2019년에 북미 지역에서의 페이스북 이용자는 여전히 1%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일각의 무려만큼 급속히 사용자가 감소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네요.
페이스북 북미지역 분기별 월간 사용자수(Facebook MAU) 증가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지역별로 살펴보면 그동안 사용자 증가를 이끌었던 아시와 기타 지역의 성장율 역시 확연히 꺽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지역별 월간 사용자수(Facebook MAU) 증가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2. 사용자당 효율은 좋아지고 있다, 이익 모멘템이 강화되다.
페이스북 월간 사용자가 23억명에 달했다는 것은 전 세계 목표층 상당수가 이미 페이스북 사용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추산한대로 세계 인구를 79억명으로 본다면 타켓 고객이 더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중 15세 이하 27%와 65세 이상 8.2%를 제외한다면 페이스북의 타켓 고객은 52억명정도로 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세계 타겟 인구를 전부 고려해도 페이스북의 서비스 침투율을 거의 50%에 육박합니다. 일개 기업의 서비스로 전 세계 타겠층의 50%를 공략했다면 어마어마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페이스북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당면하고 있는 중복 가입자를 고려하면 이보다는 낮겠지만 말입니다.
그럼레도 불구하고 페이스북 상요자는 상당 정도의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최근 페이스북 사용자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것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제는 사용자 자체의 증가보다는 사용자 한명, 한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매출 또는 수익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가 페이스북이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페이스북의 사용자 1인당 매출을 보여주는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증가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페이스북 ARPU(Average Revenue per User)는 2018년 4분기에 7.4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전년 동기 비 19.3% 증가한 것이고, 전 분기 6.1달러에 비해서도 20% 증가한 것입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사용자 1인당 매출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Facebook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trend,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여전히 높은 매출 증가율을 보이다.
이렇게 사용자 1인당 효율이 좋아졌기 때문에 페이스북 매출 증가율은 비록 둔화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전년 동기 비 30%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분기별 매출 추이(2012년 1분기 ~ 2018년 4분기), Facebook quartly Revenue trend, Data – invest.fb.com, Graph by Happist
순이익 69억 달러, 순이익율 40.7%
이러한 현상은 페이스북의 순이익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2018년 4분기 페이스북의 순이익은 69억 달러로 순이익율은 무려 40.7%에 달합니다.
분기별 페이스북 순이익율 추이를 살펴보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5년 초에는 10% 중반에 그쳤지만 점점 높아져 이제는 40%대까지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케아는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해 아래와 같은 세가지 전략 모향을 모색합니다.
2017년 11월 인터뷰에서 이케아의 새로운 CEO가 된 Jesper Brodin은 이케아의 향후 전략 방향에 대해서 온라인 스토어와 서비스 그리고 시티 센터의 강화를 들었습니다.
세가지 전략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분석해보면 이 세가지 전략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IKEA, which is seeing the surge in e-commerce and home delivery dim the appeal of its classic out-of-town warehouse stores, flagged last year it might add full-range city-centre showrooms to its channels. Jesper Brodin, CEO since September of IKEA Group, which owns the bulk of IKEA stores, confirmed in November he would focus on developing such formats alongside online store and services, and new CFO Juvencio Maeztu said last month investment levels would stay high in coming years.
리치몬드라는 조그마한 지방 고등학교 농구 코치가 어떻게 고등학교 농구선수들을 원칙있는 제대로 된 삶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일종의 성장 영화이다.
코치 카터(Coach Carter) 영어 포스터
2000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2005년에 개봉된 영화인데 아주 움림이 컸다. 뭐 영화 내용을 이야기하기는 그렇고 영화에서 정말 괜찮은 대사라고 생각되는 두개를 정리해 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룰을 지킬 필요에 대해서
제대로 원칙을 지키는 또는 기본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고 있다.
농구 연습을 하는 체육관 폐쇄조치에 반발하는 학교,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반발로 위원회가 열려 강제로 농구장 폐쇄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로 토론을 벌인다.
여기서 카터코치는 최후 변론격으로 길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다. 뭐 그렇다고 투표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이 때 카터 코치의 이야기이다. 왜 체육관을 을 폐쇄했는지, 그리고 지금 폐쇄를 해제하면 안되는지에 대해서…
이 선수들에게 여러분이 보내는 메세지를 고려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가 프로선수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와 같은데 그건 그들이 법 위에 있다는 겁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자기들의 인생을 알리고 선택권을 주는 훈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15, 16, 17살 소년들에게 농구 계약서의 간단한 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다면 선수들이 사회에 나가서 법을 어기는데 얼마나 걸리 거라 생각하십니까? 전 30년 전에 리치먼드에서 농구를 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팀 동료 중 일부는 감옥에 갔습니다. 그 중 일부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특별한 그룹의 점은이들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맡은 것이었고 이것이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폐쇄 조치를 끝내기로 가결하신다면 저를 해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사퇴하겠습니다.
You really need to consider the message you’re sending this boys by ending the lockout. It’s the same message that we as a culture send to our professional athletes; and that is that they are above the law. If these boys cannot honor the simple rules of a basketball contract, how long do you think it will be before they’re out there breaking the law? I played ball here at Richmond High 30 years ago. It was the same thing then; some of my teammates went to prison, some of them even ended up dead. If you vote to end the lockout, you won’t have to terminate me; I’ll quit.
영화 코치 카터의 한장면, Image – Netflix
What’s your deepest fear? 무엇이 가장 두렵지?
결국 4:2로 체육관 폐쇄는 강제 해제하기로 위원회 결론이 났다.
공언한대로 코치 카터는 코치 직을 그만드기로하고 짐을 챙기러 체육관으로 향하는데… 체육관에는 농구선수들이 전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영화 코치 카터의 한장면, Image – YouTube
그 중 한 학생이 카터 코치가 계속 질문했던 “What’s your deepest fear? 무엇이 가장 두렵지?”에 대한 답을 이야기한다. 아마 어는 유명한 글인 것 같은데 그 출처는 찾지는 못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공포는 무력함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공포는 측정할 수 없는 우리의 강함이다. 우리의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이다. 그게 우리를 두렵게 한다. 소심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네 주위에서 불안하지 않토록 움츠리는 것은 전혀 현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빛을 발하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가 그렇듯이 우리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이가 그렇다. 우리 자신의 빛을 발하게 할 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공포로부터 해발될 때 우리의 존재는 저절로 다른 사람을 해방시킨다.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ness, that most frightens us.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w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a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 i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s shine, we unconsciously give other people permission to do the same.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장면만을 편집해 올려놓은 유투브 영상이 있다. 여기에다 임베딩해본다.
단테의 예술혼은 전적으로 그가 9살때 만난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깨 최고의 러브 스토리로 알려지는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대한 사랑과 예술로 승화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3.1. 아홉살, 운영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1274년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했다. 그는 거기서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26~1290)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운영처럼 단테의 영혼을 송두리채 빼았아 가고 말았다.
단테는 그의 시집 ‘신생(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 1293)’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 숙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던 기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순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신은 너무도 격렬하게 요동쳤으며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라, 신이 오시어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도했도다……”
단체의 영혼을 빼앗아 간 베아트리체(Beatrice)였지만 그녀의 이름도 모른체 헤어지고 만다.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3.2.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두번째 조우
세월은 무심히 흘러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단테와 베아트레체는 다시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어느 날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난간에 기대고 있었는데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방향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꿈에도 그리던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단테의 짝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테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테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이 만남이 전부였다.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가 당시 피렌체 최고의 가문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과 인연을 맺기는 불가능했던 게 당시 냉혹한 상황이었다.
아래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바친 시 ‘사랑의 노래’의 귀절이다.
“나의 아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도 싫도록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긋이 바라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복이 있도록 드높은 곳 환한 밝음 속에서 오직 신을 우러러 축복 받는 천사와도 같이 내 비록 한낱 인간이건만 내 마음의 주님을 우러러 보면 천사에 못지않게 축복을 받고 솟아오르는 넋을 퍼덕이리라. 이런 힘이 그에게 있거니 남은 모를지라도 그를 바라 그리운 나는 아노라.” –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리라 –
3.3. 정략결혼과 베아트리체의 죽음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마음에 품은 채 당시 사회 관례대로 1285년 어린 나이에 약혼했던 젬마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지 2년만이었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 피렌체의 부자 가문이자 은행가였던 시모네 디 바르디와 결혼을 한다. 그렇지만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문학 수업에 열중하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와의 첫사랑,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랑은 단테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잃은 상실감을 ‘신곡’에서 아래와 같이 회상한다.
그녀가 말햇다. “무슨 사슬이 당신의 길을 막았기에 계속 나아갈 희망을 버려야 했나요?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건들였나요?” 서러운 함숨을 몰아쉬며 나는 대답할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내 입술은 가까스로 몇마디를 만들었다. 울먹이며 나는 말했다. “당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때 세상이 내민 헛된 즐거움이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4. 전사로서 단테
앞서 지적한대로 피렌체에서 세력을 강화한 겔프당 내에서 적극적인 교황지지파인 켈프 흑당과 소극적인 교황 지지파인 겔프 백당으로 크게 갈리게 되었다.
단테의 집안은 피렌체에 대한 교황의 개입이나 외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겔프 백당에 속해 있었다.
단테는 피렌쳉 파견나온 교황청과 프랑스 대사를 홀대함으로 발생한 교황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겔프 백당의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로마를 방문했다.
이러는 와중에 프랑스 국왕의 동생이 교황의 사주를 받고 피렌체에 전격적으로 진격해 피렌체의 겔프 백당을 모두 축출하고 단테 가문을 비롯한 겔프 백당에 속한 가문들의 재산을 전부 압수해 버렸다.
그리고 단테등을 반역 혐의로 기소했고, 단테가 재판을 인정하지 않자 궐석 재판으로 2년 유배형과 막대한 벌금형을 내렸다.
당연히 단테는 이러한 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이미 법금 납부없이 피렌체로 돌아올 시 화형에 처한다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단테는 피렌체 땅을 밟지 못하고 21년간에 걸친 유랑을 시작했다.
단테는 라벤나에서 귀도 노벨로(Guido Novello)의 비호를 받으며 그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321년 말라리아로 생애를 마감했다.
5. 베아트리체가 준 강렬한 예술적 영감
단테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단테에게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단테가 온갖 열정을 다해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숭고한 사랑, 신에 버금가는 고귀한 존재 , 구원자로 재창조해 그의 사랑을 예술속에서 영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베아트리체. 그대가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곳에서 왔어요. 사랑이 날 이곳까지 이끌었지요. 내가 주 앞에 설 때 당신을 칭찬해 드리겠나이다.”
그는 피렌체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이탈리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단테는 여러 편의 시나 논문을 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 알고 있듯이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이라는 장엄한 서사시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 단테 ‘신곡(The Divine Comedy) 오리지널 에디션 , Image – MUSEO CASA DI DANTE
‘신곡’의 내용은 단테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베아트리체(Beatrice),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안내를 따라 지옥-연옥-천국으로 여행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로마 국가 서사시인 ‘아이네이스’를 지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가 단테에게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보여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그와 같이 같이 지옥과 연옥 여행을 시작한다.
이어 천국에서 베아트리체(Beatrice)를 만나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10녀개의 천국 하늘을 둘러본다. 이어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안내로 신의 성스러운 얼굴을 뵙게 되고, 삼위 일체의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은 분명 시대적 한계가 있지만 당시 일반적이었던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토속어로 ‘신곡’ 을 지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있도록 만들어 향후 이탈리아 문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또한 철저히 신을 찬양하는 것만이 지고의 선이었던 시절에 신이 아닌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감정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신에 매몰된 중세에서 빠져나와 상큼한 개인의 감정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르네상스 문학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아니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당시의 카톨릭 사상을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 받는다.
5. 피렌체에서 단테의 흔적을 찾아보다
피렌체는 단테를 추방하고 그가 외지에서 쓸쓸히 사망하도록 만들었지만 추후에 피렌체는 위대한 시인의 흔적을 피렌체 곳곳에 만들었다.
5.1. 단테를 위한 빈 무덤을 산타 크로체 성당에 만들다.
1321년 단테는 말라리아에 걸려 라벤나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라벤나의 산 피레르 마조레성당에 묻혔다.
단테의 위대함을 알게된 피렌체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그를 피렌체에 모시고 싶어했다. 그러나 라벤나의 산 피레르 마조레성당은 이를 거부했고, 혹시나 있을 피렌체 사람들이 단테의 무덤을 도굴할까봐 가짜 무덤까지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아무튼 단테를 피렌체로 모시는 것이 무산 된 후 1829년 피렌체는 르네상스 천재들이 모셔져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에 단테를 위한 ‘빈 무덤’을 만들고 그를 기리기 시작했다.
산타 크로체 성당의 단테 비문은 ‘신곡’ 지옥편에서 빌려온 아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을 찬양하라. 우리를 떠났던 그의 정신이 귀환하시도다.”
아래는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 정면 모습과 왼쪽 출입구에 서 있는 단테 조각상 모습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 정면 이미지, CC BY-ND Violator1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 in Florence) 왼쪽 출입구에 서 있는 단테 조각상
5.2. 피렌체 두오모에서 단테
피렌체 두오모 내부 북쪽 벽면에는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가 1465년에 그린 ‘단테의 신곡’이 전시되어 있다.’이 그림은 단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피렌체 시민들이 미켈리노에게 주문해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단테는 그가 지은 ‘신곡’을 들고서 책에서 발광하는 빛으로 피렌체를 비추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지옥을 가리키며 경계하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함을 아쉬워하듯 피렌체 성밖에 서서 피렌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소장된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가 1465년에 그린 ‘단테의 신곡(La commedia illumina Firenze)’
5.3. 단테 생가 & 단테 박물관
피렌체 두오모 골목길을 조금 걷다보면 단테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단테의 생가이면서도 단테 박물관(MUSEO CASA DI DANTE)인 곳이다.
피렌체시는 단테 생가라고 추정되는 곳의 건물을 사들여 이를 단테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7개 방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단테의 행적으로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정리해 놓았다.
그래서 그릐 작품에는 시모네타(Simonetta)를 모델로 한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Primavera(봄)’ 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에서 이를 잘 살펴 볼 수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프리마베라, Sandro Botticelli, Primavera, c. 1482, Uffizi Gallery, Florence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1484-86년경,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Room 15: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s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동 작업 1470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72(Annunciation, Leonardo da Vinci,1472)
동방박사의 경배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81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와 -막달레나 루카 시뇨렐리, 1500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Annunciation, Leonardo da Vinci,1472)이다. 천사에게서 임신 사실을 전달받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
이 주제의 그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그림은 전부 실내를 배경으로 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실외를 배경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든지 어느 분야에서든 차별화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주 간단하지만 강력한 원칙, 차별화의 위력을 여기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사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Annunciation, Leonardo da Vinci,1472)
아래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베로키오가 공동으로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가 대부분을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수와 아기 천사 그리고 뒷부분 배경 부분을 그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르네상스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기 천사의 지루해하는 표정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과거 중세시대라면 감히 이런 불경스러운 표현이 가당키나 했을까? 르네상스에서야 비로소 신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 그대로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베로키오가 공동으로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
Room 16: 지도, Maps
페르디난트 1세가 과학 장비를 수집하기 위해 만든 방으로 피렌체, 시에나, 엘바 섬의 지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Room 17: Small room of mathematics
Room 18: 트리뷰나, Tribune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전시실에 다양한 회화와 조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 전경, Image by Uffizi Gallery
이 트리뷰나는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가 피렌체의 두번째 대공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를 위해 설계했다. 1581년 공사를 시작해 1586년에 완성했다.
이 팔각형 트리뷰나는 천장도 팔각형이고 밖의 지붕도 팔각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은 메디치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작품 중 걸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이 전시실은 영국 화가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가 그린 ‘우피치미술관의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라는 작품으로 인해 크게 유명해졌다.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가 그린 우피치의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 1772~1777, Google Art Project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는 1772년 영국 왕족들이 우피치 트리뷰나의 소장품들을 너무나도 보고 싶어해 여기 소장품들을 그림으로 베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영국 샬로테 여왕의 청원서를 들고 피렌체로 왔다.
메디치가에서 이를 허락하자 1772년부터 1777년까지 장장 6년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다. 이에 따르면 우피치가 소유한 걸작들의 상당수가 이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나 조파니(Johan Zoffany)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이 트리뷰나에 전시되고 있었던 작품 리스트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영어 Church of Santa Maria Novella)와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에 집중적으로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 성당은 어떻게든 방문해 보고 싶었다.
그랬기에 상당히 기대를 안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을 둘러보았다.
1.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은 흔히 피렌체역이라고 부르는 산타 마리에 노벨라역에서 1~2분 내에 자리하고 있다.
만약 열차를 타고서 피렌체에 도착한다면 첫번째 방문지로 이 산타마리아 노벨라성당을 선택하는 것도 효율적인 피렌체 여행의 한 방편이 되 수 있다.
이 주변의 여행지 이름은 모두 산타 마리아 노벨라로 통일 되어 있는데,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 산타마리아 노벨라성당, 산타 마리아 노벨라약국 등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이름은 9세기경 이 성당터에 도미니코수도회가 새롭게 성당을 재건하면서 ‘성모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의미로 노벨라(New)를 붙여서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2. 르네상스 건축가 알베르티의 건축 이상이 담기다.
유럽의 성당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성당을 완성시킨다. 당시 건축 기술의 한계도 있고 예산 문제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제대로 된 성당을 만들기 위해서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면 몇백년에 걸쳐 완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전에 방문했던 밀라노대성당은 무려 400여년에 걸쳐 건설되었고, 피렌체대성당도 공사가 중단되고 다시 시작되기를 되풀이하면서 무려 175년이 걸려 완성되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파사드란 단어를 많이 듣게 된다. 유럽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문화와 관련있는 성당등의 설명에서 파사드란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도대체 파사드가 무엇일까? 위키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건물의 ‘정면’을 의미한다고 한다.
파사드(프랑스어: Façade)는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글화하여 순화하려면 ‘정면'(正面)이 무난할 것으로 여겨진다. 건축에서 파사드의 궁극적 목적은 ‘소통’이다. 건물의 입면이 다양해지면서 파사드는 건물 외피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키백과 인용
3. 성당 내부로 가보자.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관람하기 위해서는 파사드가 아닌 오른쪽 회랑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성당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게 관람레 도움이 될것 같아서 이 성당의 조감도를 참고해보자. 다음에 나오는 지도와 매칭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영어 Church of Santa Maria Novella) 조감도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영어 Church of Santa Maria Novella) 안내도
아래 성당 내부 모습이다. 밖에서 볼 때 그렇게 큰 성당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입장해보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내부 사진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개의 독립적인 예배당이 있는데 여기를 관람하여면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Church of Santa Maria Novella) 내부 전경, BY-ND faungg’s photos
아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을 방문한다면 봐야될 포인트를 몇가지 정리해 보았다.
3.1. 토르나부오니 예배당(Tornabuoni Chapel)
아무래도 성당을 입장하게 되면 아무래도 가장 정면을 살펴보게 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정면에는 3개의 거대한 스텐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는 토르나부오니 예배당(영어 Tornabuoni Chapel, 이탈리아어 Cappella Maggiore)이 눈길을 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1491년 기를란디요가 만든 작품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좌측 스텐인드글라스는 성 베드로, 세례 요한, 성 도메니코
가운데 성모의 무덤에서 성모의 승천을 목격하고 거들을 받는 도마, 8일만에 할례를 받는 예수님, 눈의 성모님
우측 사도 바울, 성 라우렌시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여기에는 화려한 스텐인드글라스외에 볼만한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바로 ‘동정녀와 세례자 성 요한의 생애 Scenes from the Lives of the Virgin and St. John the Baptist’ 시리즈가 그것이다.
원래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의 메인 성당에는 안드레아 오르카냐 (Andrea Orcagna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악한 상태가 되면서 보완이 필요해 졌다.
그러나 당시 메인 성당에 대한 권리를 가졌던 리치(Ricci)가는 재정적으로 파산해 여유가 없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메디치가의 사돈가문이자 로마 메디치 은행의 은행장이었던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에게 권리가 넘어 간다.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는 1485년 기를란다요(Ghirlandaio)에게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예배당에 ‘동정녀 마리아와 세례자 성 요한의 생애 Scenes from the Lives of the Virgin and St. John the Baptist’ 시리즈를 그리도록 제안하고 1200두카트를 제시했다. 아울러 마음에 들게 그릴 경우 200두카트를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를란다요(Ghirlandaio)는 이를 무려 5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그렸다. 1490년 완성되어 토르나부오니 예배당(Tornabuoni Chapel)이 공개되자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토르나부오니도 이 예배당이 마음에 꼭 든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어 이전에 약속했던 200두카트를 더 주지는 못했기에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에 기를란다요(Ghirlandaio)는 후원자가 만족해 하는 것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흡족해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의 작품들 몇개를 보자.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그린 작품 등 중 일부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토르나부오니 예배당(Tornabuoni Chapel), 세례 요한의 출생(Birth of the Baptist)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토르나부오니 예배당(Tornabuoni Chapel), 즈가랴가 아들(요한)의 이름을 쓰다(Zechariah Writes John’s Name)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토르나부오니 예배당(Tornabuoni Chapel), 즈가랴에게 나타난 천사(Apparition of the Angel to St. Zechariah)
3.2. 곤디 예배당 (Gondi Chapel)
토르나부오니 예배당(Tornabuoni Chapel) 바로 왼쪽에 있는 것이 곤디 예배당 (Gondi Chapel) 이다.
여기에는 브루넬리스키가 조각한 십자가가 있다. 우리가 아는 피렌체 대상동 돔을 건축한 천재 건축가 말이다.
이 필리포 스트로치 예배당 (Filippo Strozzi Chapel)의 프레스코화는 필리피노 리피가 말년에 피렌체로 돌아와 그린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복음사가 요한을 다른 요한 행록에 나오는 내용 중 드루시아나라는 여인을 환생시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필리포 스트로치 예배당 (Filippo Strozzi Chapel) 프레스코, Filippino Lippi, St Philip Driving the Dragon from the Temple of Hieropolis (detail)
아래 그림은 성 필립보가 히에라폴리스에소 용을 무찌르는 장면을 표현한 것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 필리포 스트로치 예배당 (Filippo Strozzi Chapel) 프레스코 , Filippino Lippi, St Philip Driving the Dragon from the Temple of Hieropolis (detail)
3.4. 성 삼위일체(Holy Trinity)
마사초는 브루넬레스코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 덕분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성 삼위일체”를 제작하게 되었다.
마사초 사망 1년전에 그린 “성 삼위일체(Holy Trinity)”는 알베르타와 브루넬레스코가 고안한 선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회화 작품이다.
이전에는 개괄적으로 사용되던 원근법은 이 그림에서 매우 높은 수준으로 구현되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벽에 구멍이 뚫린 줄 알았다.”고 원근법의 효과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하단 해골위에 쓰여진 문구는 “지금 모습의 나는 원래 당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당신도 나의 모습처럼 될 것이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그려진 마사초(Masaccio)의 성 삼위일체(Holy Trinity)Booking.com
그의 작품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영어 Church of Santa Maria Novella)와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에 집중적으로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 성당은 어떻게든 방문해 보고 싶었다.
피렌체 여행을 시작한 첫날 아침 피렌체 대성당(두오모)를 방문 후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를 찾았다.
1. 피렌체 외곽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은 피렌체의 다른 유명한 관광지와 다르게 아르노강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르노강 아래 쪽에는 피터 궁전과 산토 스츠리토 성당이 있지만 아무래도 피렌체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다.
그제서야 아직 카드와 같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화된 인프라가 여기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너무 콧대가 높으니 여행객에 대한 배려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이 이탈리아라는 것을 진작 알고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창구 아가씨에게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으니 오직 현금만 가능하다고 한다. 더 있어 보아도 답이 없어서 알았다고 하고 입장을 포기했다. 바보같이.
성당 내부는 입장할 수 없지만 일부 접근이 가능한 성당 내부 사진을 담고 천천히 성당을 빠져 나왔다.
[에피소드] 카드를 되찾아 준 티켓 창구 아가씨
마음을 비우고 성당 광장을 지나 성당을 떠려나려는 순간 뒤에서 누가 부른다.
성당 티켓 창구의 아가씨이다. 내가 티켓 창구에 카드를 그냥 놓고 갔다는 것이다.
아! 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아마 현금만 된다는 소식에 너무 실망해 제출했던 카드를 되돌려 받지도 않고 그냥 티켓 창구를 나왔나보다.
뒤 늦게 이를 발견한 아가씨가 부랴부랴 나를 쫒아 나온 것이다. 성당이 나와 광장을 지나오려면 거의 100m는 와야 하는데 이 먼거리를 쫒아와 카드를 돌려 준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랬다. 이름이라도 확인했으면 나중에 어떻게든 사례를 할 방안을 찾아볼텐데 많이 아쉽다.
그러고보면 이번 이탈리아나 스위스 여행 시 현지인들이 굉장히 많이 도와 주었던 듯 싶다. 이탈리아 여행기를 보면 안좋른 일들도 많은 것 같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여행 시 일행의 오토바이와 접촉 사고외는 큰 문제는 없었다.
2. 르네상스 걸작을 만날 수 있는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을 방문했다면 브랑카치 채플(영어 Brancacci Chapel, 이탈리아아어 Cappella dei Brancacc)에서 르네상스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다.
부랑카치 채플은 견직물과 비단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브랑카치(Felice Brancacci)가 피렌체 가르멜 수도회 재속회 회장(Compania di Disciplina)직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부를 기반으로 자신의 직위에 맞는 업적을 남기고자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성당에 기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이다.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Santa Maria del Carmine) 성당 조감도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예배당을 장식할 그림을 당시 유명한 프레스크 전문 화가인 마솔리노에게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솔리노는 한쪽 벽면을 마사초에게 그리게 했는데 마사초가 27의 젊은 나이에 요절함에 따라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가 60년 후 필라피노 리피가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에서는 마솔리노와 마사초 그리고 필리피노 리피라는 르네상스 당시의 거장 3인의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화재가 발생해 르네상스 당시의 그림들은 전부 타버렸지만 오직 이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만큼은 화재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걸작들이 낭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3.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의 마사초의 걸작들
여기에는 많는 작품들이 있지만 주된 관심은 마사초에게 있었으므로 마사초의 대표적인 작품 몇개를 소개해 본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 내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 내부 모습, CC BY-ND Simone Ramella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성당(The Church of Santa Maria del Carmine) 내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 내부 모습, CC BY Simone Ramella
3.1.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의 그림들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한다는 그림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이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아담과 이브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시학 체계에 따르면 예수는 ‘제2의 아담’이었고, 이브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원형적 모델이었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는 거룩한 존재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장엄하고 우아하게 그려야 한다.”는 것이 당시를 지배하던 사상이었다.
그러나 마사초가 그린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 이브”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는 이러한 기존 사상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거룩하게도 우아하게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는 브끄러운 나신을 가리며 절망의 장탄식은 내 뱉고 있으며 아담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을 가리고 있다.
마사초는 그동안 모든 것은 신을 제1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중세 헤브라이즘을 거부하고 아담과 이브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대로 표현했다. 인간을 제1의 기준으로 삼았던 헬리니즘의 부활인 것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이다.
마사초는 낙원에서 쫒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절망적임 심정과 수치심을 적나라라헥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의 초마사(Masaccio) 작품,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The Expulsion from the Garden of Eden)
3.2. 세례를 베프는 성 베드로(Baptism of the Neophytes)
마찬가지로 마사초가 그렸다고 추정되는 세례를 베프는 성 베드로(Baptism of the Neophytes)도 르네상스 정신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세례를 베프는 성 베드로는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있다. 세례를 받는 남자는 흐르는 물에 무릎을 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벗고 있는 그의 몸은 추위로 잔뜩 움츠려져있다. 세레 과정으로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면서 추위에 바들바들 더는 모습이 리얼하다.
그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추위로 바들바들 떨면서 애처럽게 성 베드로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는 아무리 성 베드로가 거룩한 세례를 주고 있지만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찬물을 뒤집어 쓰는 사람을 추위로 부들부들 덜기 마련이라는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감정과 반응을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감히 성 베드로가 세례를 주는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신성 모독으로 몰릴만한 일이지만 마사초는 아무리 성 베드로라고 하드라도 추위앞에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내었다.
부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의 초마사(Masaccio) 작품, 세례를 베프는 성 베드로(Baptism of the Neophytes)
3.3. 세금을 받침(Payment of the Tribute Money)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그림 옆에는 마사초의 걸작이라 불리우는 “세금을 받침”리라는 그림이 있다.
성서 마태복음 17장 24절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어느날 로마 관리가 지나가던 예수에게 세금을 요구하자, 제자들은 반발하지만 예수는 이를 말리며 베드로에게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그 물고기 입안에 동전이 있을 것이니 그 동전으로 세금을 지불하라고 이야기 한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아 물고기 입안을 보니 동전이 있어 그걸로 세금을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사초의 그림에서 이 이야기는 세가지 장면으로 나누어져 표현되고 있다.
가운데는 예수와 사도들이 모여있는 장면에서 유대인 관리가 예수에게 세금을 바치도록 요구하고 있고,
왼쪽에는 아마 예수의 지시를 받아 성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생선의 입에서 동전을 꺼내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성 베드로가 관리에게 세금을 건내고 있는 장면이다.
부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의 마사초(Masaccio) 작품, 세금을 받침(Payment of the Tribute Money, 1425년 경)
이 그림에서 마사초는 원근법을 적용해 가까이 있는 산은 짙게, 뒤로 갈수록 옅게 표현하고 있으며 나무도 앞은 크게 뒤로 갈수록 작게 그리고 있다.
또한 머리의 높이를 나란히 맞추고 거기에 맞추어 사람을 그리는 “Isokephalie 기법”을 사용했다. 이 기법은 기존 발의 위치를 맞추고 사람의 키를 다르게 표현하는 기법에 비해서 등장인물을 위대하고 보이는 효과를 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 표정, 머리 스타일, 눈빛 등등이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한면 한명 인물을 소중하게 표현하는 인본주의적인 성향을 들어냈다는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