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시기 : 2015년 8월 ~ 9월초 조사 지역 : 미국 조사 대상 및 Sample : 16세이상 11000명 주요 조사 항목 : 스마트워치/배드 소유현황 / 소유한다면 어떻게 사용하는지/구매 계획이 있는지 / 왜 구매하지 않은지 등등 조사방법 : on line survey
이 보고서는 전체 data의 단순 통계치에 불과하며 얼리아답터의 프로파일과 일반인들의구매 허들을 정확이 정의하는 것은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별도 연락하면 비용을 받고 제공하겠다는 것 같습니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고 insight를 살펴보자
아래 간략히 조사 결과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누가 언제 스마트워치나 스마트밴드를 구매했을까?
스마트워치와 스마트밴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스마트워치는 남자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남자 67% vs 여자 33% 그리고 14년부터터 구매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해서 15년 하반기 구매비율이 높습니다. 이에 반해 스마트밴드는 오히려 여성 비율이 더 높습니다. 여자 58% vs 남자 43% 그리고 구매 시기도 2014년도부 증가해서 15년 상반기가 높습니다. 아쉽게도 15년 하반기 구매비율이 확 줄었습니다.
선호하는 제품이 스마트밴드에서 스마트워치로 이동한 것일까요?
연령뱔로 보았을 시 두 제품 공통으로 25세에서 34세구간이 높으며 이는 얼리어댑터와 유사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제품군은 여전히 얼리아답터의 제한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스마트워치나 스마트밴드를 구매했을까?
스마트워치를 어디에서 구매하는가에 대한 조사 결과는 쥬어리 제품보다는 일반 전자제품 구매와 비슷했습니다.
온라인에서 구매 33% 전제품 판매망에서 구매 17% 선물로 받았다는 비율이 7%나 되었습니다.
선호하는 Brand는 Apple > Fibit > Google > Samsung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Apple을 선호하는 브랜드로 92%가 지목했으며 Fitbit은 47%가 선호했고 Google은 34% Samsung은 33%로 지목되어 Google과 Samsung은 비슷한 선호를 보였습니다.
스마트워치에서 무슨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가?
스마트워치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알람과 건강 정보였습니다. 이 두기능은 남녀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몇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알람기능은 65%의 남자는 알람기능을 매일 사용합니다만 여자는 48%만 사용합니다. 건강기능은 여자의 46%가 health tracking을 사용하지만 남자는 34%만 사용합니다. Futness tracking은 40%의 남자와 37%이 여자가 매일 사용합니다.
슬립기능에 대해서는 30%의 남자가 사용하며 19%의 여자만이 사용합니다.
전반적으로 남자 스마트워치 사용자 스마트워치 기능을 매일 더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 사용자와 구매예정자의 스마트워치 사용기능 차이
현 사용자와 구매예정자의 스마트워치 사용기능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현 스마트워치 사용자들은 알람기능(59%)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이어서 Fitness tracking 기능(39%)을 주오 사용합니다. 이에 반해서 스마트워치 구매예정자들은 Fitness Tracking 기능(58%)를 사용하고 싶어하며 그다음으로 알람 기능(41%)를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알람과 건강 정보였습니다. 이 두기능은 남녀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몇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구매 예정자는 누구인가?
향후 스마트워치 구입 의햐잉 매우 낮습니다. 현재 스마트워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소비자 중
Among U.S. consumers on the panel who do not currently have a smartwatch, only 4% said they intend to buy in the next 12 months, while 20% said they were not sure, and 76% said they did not intend to buy in the next 12 months.
4%의 구매의향자중 55%가 남성이며 45%가 여성입니다. 남자 구매 의향자 55%에서 26%가 25세~34세로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4%의 구매의향자 중 스마트폰은 (구매의향자의 26%는 피처폰을 가지고 있다고 조사되었습니다) 555가 안드로이폰이며 39%가 아이폰이었습니다. 이중 19%는 제대로된 스마트워치를 사기위해 휴대폰 운영체제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60%는 스마트워치를 위해서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스마트워치의 구매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위에서 오직 4%만이 구매 의향이 있다고 했는데요. 그러면 왜 스마트워치를 사지않느냐는 질문에
가격이 비싸서가 41%로 가장 높았고 현재 핸드폰이 다해주기에 필하지 않다는 응답이 33% 시계를 손목에 차고싶지 않다는 응답도 32%에 달했네요 스마트워치 기능이 유용하지 않다는 응답이 29% 스마트워치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27%를 차지했습니다.
The rejecters are equally split between men and women, but tend to be older, with 29% between the ages of 50 and 64. The cost of the devices is the biggest reason given by non- intenders (41%), and the second reason is that their phone already does everything they need (33%).
Thirty-two percent of consumers who do not intend to buy a smartwatch simply do not want to wear a watch. Considering that, within the overall panel, 47% own and wear a watch. The number of rejecters who do not want to wear a watch is proportionally quite high, especially given that we are looking at the demographic where traditional watch wear is the highest.
Lack of knowledge does not appear to play a big role in rejecting these gadgets, as only
8% cite not understanding the technology as a reason. When digging a little deeper, most consumers in the group do not actually understand the advantage of having a smartwatch (52%) versus not understanding what they do or how they operate. As previously mentioned, this is a clear sign of a value proposition message that has thus far been confusing, because some vendors have been trying to position smartwatches as capable of doing everything a smartphone does. Their position contradicts the underlying benefit: a smartwatch provides the wearer with a more personal experience than a phone, and the advantage of having a device always with you, continuously measuring and collecting data.
톰 포드(Tom Ford)의 광고를 살펴보면서 톰 포드(Tom Ford)가 처음 명성을 날리게된 GUCCI 부활스토리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명품브랜드에는 많은 브랜드 스토리가 있어서 (우리와는 거리가 멀지만)살펴보는 재미가 많은 것 같습니다.
톰 포드(Tom Ford)가 GUCCI 입성할 당시 그는 경력이 매우 일천했습니다.
경영난에이 시달리던 GUCCI는 많은 직원을 해고해야하는 상황에서의 디자이너 영입이므로 스타디자이너를 영입할 형편이 못되었을 수 있죠. 그러다보니 신예중에서 가능성이 높은 디자이너를 고르다보니 톰 포드(Tom Ford)가 낙점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톰 포드(Tom Ford)가 구찌에 와서 과거의 영광에서 조금도 더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클래식한 명품에 지나지 않았던 GUCCI를 GUCCI 본연의 가치에 도발적인 관능미를 부여해 GUCCI를 가장 섹시하고 트렌디한 명품의 대명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GUCCI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톰 포드(Tom Ford)가 어떻게 GUCCI를 새롭게 변신시켰는지 보시지요
GUCCI의 간략한 역사
GUCCI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GUCCI는 명품 브랜드가 많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도 3대 명품으로 뽑히는 브랜드이고 전통과 현대 트렌드를 잘 조화시킨 브랜드로 명망이 높습니다.
이러한 GUCCI도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것은 아닙니다. 창업자 사후 후손들의 격렬한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러한 쇠락을 전문 경영인 영입을 통해 새롭게 웅비할 수 있었습니다.
구찌의 역사는 1921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승마관련 가죽 제품을 파는 매장을 오픈하면서 시작됩니다.
구찌 창업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1881년 이탈리아 중부 플로렌스에서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은 부유했지만 형제들과 불화가 생기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영국 런던으로 향합니다.
런던 호텔 벨보이로 귀족 감성을 배우다
1897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말단 벨보이로 시작해 지배인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영국 귀족의 미적 감각을 배우고, 상류층 고객들의 가방과 트렁크들을 보면서 가죽 제품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고 합니다.
1902년 고향 피렌체로 돌아와 런던에서 익힌 미적 감각과 안목을 이탈리아 고유의 가죽 기술과 결합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합니다.
1913년 이런 노력의 결실로 승마 가죽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승마가 대중화 되면서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의 가죽 제품들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 구찌 창업자 Guccio Gucci [Source – GOOGLE Image]
자전거가 유행을 하자 핸드백과 같은 일반 가죽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핸드백과 같은 일반 가죽 제품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됩니다.
1921년 첫 구찌 매장을 열다
이리하여 1921년 피렌체에 있는 비냐 누오바 거리(Via Vigna Nuova)에 ‘GUCCI’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열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빠리오네 거리(Via Del Parione)에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이탈리아 피렌체에 오픈한 구찌 공식매장앞에서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와 셋째아들인 로돌프 구찌 [Source – GOOGLE Image]
GUCCI에서 만든 핸드백, 벨트, 구두등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주 고객층인 상류층의 안목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제품이었기에 전세계의 세련된 단골 고객들의 인기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차대전으로 부족해진 가죽대신 다양한 소재를 실험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재는 모든 물자를 전쟁에 동원해 제품을 만들 금속과 가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됩니다.
이런 소재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대마, 삼마, 항마, 대나무등을 활용한 제품을 기획하게 됩니다.
특이 그 당시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이용했느데 이것이 그 유명한 “뱀부 백”입니다.
1947년 처음 선 보인 이 “뱀부 백”은 향후 Gucci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스의 페데리카 왕비,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영화배우 엘리바베스 테일러등 왕실과 유명인사들이 즐겨 사용했으며 지금도 이 테마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 1960년 공개된 뱀부백 광고 [Source – GOOGLE Image]
가죽대신 캠퍼스 천을 사용하다
또한 부족한 가죽 대신 캔버스 천을 소재로 채용했습니다.
고유의 더블 G 로고가 프린트된 캔버스 천 가방이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평가 받게 됩니다. 이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가 애용해서 그녀의 이름을 딴 ‘재키 백’은 그 시대 뭇 여성들이 선망하는 백을 뜻하는 ‘잇 백’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 구찌백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재클린 케네디가 ‘재키 백’을 맨 모습 [Source – GOOGLE Image]
그린-레드-그린 조화의 The WEB라인 발표
1950년대, 안장끈에서 영감을 얻은 상표 그린-레드-그린 조화의 The WEB라인을 발표하면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마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집요한 장인 정신, 일상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크리에이티브, 뛰어난 품질 이 세 가지는 명품이 지녀야할 필수요소인 동시에 구찌의 신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Guccio Gucci가 사후 아들들이 기업을 인수하다
1953년 Guccio Gucci가 사망하고 아들인 Aldo,Vasco,Ugo 및 Rodolfo가 기업을 인수하게 됩니다.
60년대 중반, 마침내 Gucci의 신화적인 더블’G’로고가 채택되어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Gucci의 로고가 탄생되었습니다.
GUCCI의 위기 – 가족간의 경영권 다툼과 전문 경영인 체계로 이행
앞에서 잠깐 나왔지만 1980년대 GUCCI에게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1953년 Guccio Gucci가 사망하고 첫째 아들인 Aldo와 셋째인 Rodolfo가 각기 지분을 50%씩 나눠가지며 분격적인 2세대 가족 경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제품 브랜딩 부분을 첫째인 Aldo가 맡고 해외 진출을 셋째인 Rodolfo가 맡으면서 ‘글로벌 명품브랜드’구축을 시도하게 됩니다.
▲ 첫째인 Aldo Gucci(좌측사진의 오른쪽 인물)와 셋째인 Rodolfo Gucci(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인물)
점차 가족 경영 체계가 구축되면서 해외 시장 개척에 두각을 나타낸 Rodolfo가 최종 경영권자로 선임됩니다.
아쉽게도 Rodolfo는 최종 경영권자로 선임된 후 1년만에 사망하면서 가족간에 불화가 시작됩니다. Rodolfo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Maurizio Gucci)가 경영권을 승계받았지만 Aldo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Paolo Gucci)가 반발한 것이지요.
파올로 구찌(Paolo Gucci)는 자신의 이름 딴 ‘파올로 구찌’라는 저가 브랜드를 런칭했고 또한 회사를 확대하겠다는 욕심으로 직접 제품을 만들지 않고 로고만 빌려주는 라이센스 제품을 남발했스빕니다.
이러한 파올로 구찌(Paolo Gucci)의 행보는 GUCCI 경영에 커다란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구찌 이미지가 악화되고 및 판매 감소되면서 재정의 악화등이 초래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92년에는 구찌 브랜드의 도산 위기에 빠졌고 이는 가족간의 싸움과 파올로 구찌 브랜드의 런칭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위기 타개를 위해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갖추다
이런 경영 상황을 타개하고 GUCCI 영광을 재현하기위해 마우리치오 구찌(Maurizio Gucc)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가족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 당시 파올로 구찌(Paolo Gucci)가 보유하던 지분 전체를 인수한 바레인계 투자회사인 인베스트코프(Investcorp)에게 자신이 보유한 전체 지분을 매각하고, CEO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투자회사인 인베스트코프(Investcorp)는 1989년, 마우리치오 구찌를 대신해 워싱턴 법률회사에서 근무하던 도미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를 구찌의 CEO로,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Bergdorf Goodman)의 뉴욕 지사장이었던 돈 멜로(Dawn Mello)를 구찌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하며 전문경영인을 통한 기업 운영을 시작해 패션전문기업 ‘구찌 그룹(Gucci Group)’으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CEO인 도미니코 데 솔레는 구찌 브랜드가 내놓는 제품들의 유통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와 10만여 종에 달하는 구찌 브랜드의 라이선스 사업의 대폭 축소와 구찌 고유 디자인을 재해석한 제품으로 구찌 브랜드를 새롭게 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Tom Ford)를 영입, 구찌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톰 포드(Tom Ford), VOGUE지 2005년 4월호에 게재된 톰 포드 사진 Mr. SEX라고 칭하고 있다
GUCCI를 트렌디한 명품브랜드로 성장시킨 톰 포드(Tom Ford)
1990년, 29세의 톰 포드는 GUCCI에 영입되어 여성 레디-투-웨어의 디자인을 맡은 후 199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에 올르게 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Design, Concept, 구찌의 생산라인(의류,향수 등 모든 아이템)의 총괄하고 구찌의 이미지,광고,스토어 디자인까지 모든 영역에 권한을 행사하며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GUCCI에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톰 포드가 GUCCI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한 무기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전 직장 즉 나이트클럽에서 학습한 ‘섹스는 팔린다. 그리고 많은 소비자들은 그것을 가장 원하고 있다’는 에로티시즘이었습니다.
톰 포드는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클럽 “스튜디오 54″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요.
이 클럽은 당대 전설로 불리 울 만큼 최고의 유명 인사들 사교장이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클럽에서 익힌 디스코 문화는 톰 포드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층 타겟의 Glamour concept을 디자인을 도입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첫해 스튜디오 54 라는 디스코 나이트클럽에서 영감을 얻었던 ‘글래머(Glamour)’라는 요소를 디자인 컨셉에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이는 에로티시즘적 요소를 부각시켜 젊은층을 타겟으로하는 할스튼 스타일 벨벳 힙스터(Belvet hipster), 스키니 사틴 셔츠 등을 선보임니다
(He was credited as bringing GLAMOUR back to the world of Fashion – with velvet hip grazing trousers, skinny satin shirts and car-finish metallic patent boots)
톰 포드가 지향한 금속성의 가늘고 높은 힐, 벨벳 힙스터 바지는 1990년대의 이중적인 성의 윤리를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디스코 나이트 클럽의 싸이키 조명아래 빛을 발하는 화려하고 글래머러스 의상들과 이러한 패션 코드는 순식간에 퍼져나가뮤지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를 1995 MTV Video Music Awards에 마돈나(Madonna)가 입고 나오면서 GUCCI의 부활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돈나(Madonna)는 어워드에 구찌 의상을 입고 나와 “구찌” “구찌” “구찌”를 외쳐 구찌의 부활을 세상에 알렸다고 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샤넬 No.5가 널리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마릴린 몬로가 샤넬 No.5를 입고 잔다고 이야기하면서부터이듯 유명 브랜들은 유명 스타와 연관된 브랜드 스토리를 많이 가지고 있고 이게 브랜드가 커가는 비결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 1995 MTV Video Music Awards에 출연한 마돈나(Madonna)
또한 1996년 MTV Video Music Awards(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 기네스 팰트로는 GUCCI의 레드 벨벳 수트를 입고 참석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녀의 선택은 두 가지 면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하나는 GUCCI를 디자인하는 Tom Ford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둘째로 매니시 룩이 대세로 떠오른 것 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디.
▲ 1996 MTV Video Music Awards에 출연한 기네스 페트로(GWYNETH PALTROW)
이들과 함게 톰 포드가 원하는 컨셉요소인 글래머,쾌락,섹시,모던함을 추구하는 광고 Campaign을 시작합니다.
톰 포드는 여성과 남성이 지닌 라인의 아름다움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면서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디자인과 이를 반영한 광고 캠페인을 강화하면서 GUCCI의 매출을 폭발적으로 신장시켰습니다.
미디어들은 겉으로는 이런 글래머, 섹시 이미지를 비판했지만 이러한 논쟁을 적극적으로 매체에 활용하였습니다. 이는 톰 포드의 GUCCI가 WOM의 중심에 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이 당시 톰 포드의 광고 캠페인은 패션 역사상 쇼킹하고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Ford’s ad campaigns are some of the most iconic (and shocking) in fashion history.)
그는 광고 캠페인과 디자인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에로티시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시기의 광고는 섹스 활용을 넘어 새로운 에로티시즘 작품으로 여겨질 만큼 파격적이고 도발적입니다.
아래 광고 campaign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킨 광고입니다.
무릎을 끊은 남자 앞에 벽을 기대선 여인이 GUCCI 로고인 G마크를 선명하게 깍인 자신의 음모를 노출하고 있는 광고로 톰 포드의 광고 전형으로 많은 사레에서 언급된 광고입니다.
그렇지만 이 광고는 이후 톰 포드의 진한 광고에 비하면 아주 얌전한 광고에 속합니다. 이후 입생롤랑의 광고들을 참조하시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 Carmen Kass(비록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의 GUCCI 광고
1996년 봄/여름 Collection에서 GUCCI가 선보인 의상
1996년 봄/여름 Collection에서 GUCCI가 선보인 의상을 모델은 Kate Moss입니다
▲ 1996년 GUCCI ADs Gucci ads Kate Moss, Gucci Show SS 1996 Kate Gucci Tom Ford.
1996년 가을/겨울 Collection을 소개한 GUCCI 광고
여기에서도 농익은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패션계에서는 이런 표현이 점차 당연시 되고 누가 더 자극적으로 ㅍ현할 수 있느냐 경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 1996 Gucci 광고 캠페인- 사진 Mario Testino – 모델 Georgina Grenville,Ludovico Benazzo – 1996FW
▲ 1996 Gucci 광고 캠페인- 사진 Mario Testino – 모델 Georgina Grenville
1998년 봄/여른 Collection을 소개한 GUCCI 광고
아주 농익은 에로티시즘 광고라 할 수 있습니다.
1998년 봄/여른 Collection을 소개한 GUCCI 광고
모델은 Amber Valetta, Georgina Grenville and Kate Moss
▲ Sophia Hesketh by Mario Testino by Mario Testino, Gucci S/S 1998
톰 포드(Tom Ford)의 성과를 간략히 살펴보면…
톰 포드(Tom Ford)의 성과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매출과 기업 가치 측면에서 살펴보면 아래처럼 엄청한 성장을 일구어냅니다. 물론 그 혼자 한일은 아니지만 쓰러져가는 GUCCI를 세우고 가장 엎서가는 명품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994년 GUCI는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나 >톰 포드(Tom Ford)가 본격적으로 GUCCI를 지휘(?)하기 시작한 1995년에서 1996사이 GUCCI의 매출은 90% 증가합니다.
1997년에는 1994년비 매출이 3배증가했습니다.
1999년에는 GUCCI 가치를 $4.3Billion dollars로 상승시킵니다.
그리고 톰 포드가 GUCCI를 떠나는 2004년 GUCCI Group은 $10B의 가치를 평가받는 회사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GUCCI는 1998년에는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었습니다.
톰 포드(Tom Ford)는 과거의 영광(예를들어 1960년대 ‘재키백’ 등등)에서 조금도 더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클래식한 명품에 지나지 않았던 GUCCI를 GUCCI 본연의 가치에 도발적인 관능미를 부여해 GUCCI를 가장 섹시하고 트렌디한 명품의 대명사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2004년 3월, 톰포드는 구찌와 입생로랑의 밀라노 컬렉션을 끝으로 GUCCI와의 인연을 정리합니다. 이어 2005년 4월, 그는 도미니코 드 솔레와 조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해 화장품과 향수 라인을 전개합니다.
톰 포드(Tom Ford)이후 GUCCI의 디자인은 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프리다 지아니니가 이끌었습니다.(다만 그녀도 최근 GUCCI를 떠났습니다. ) 섹시함을 자제하고 보다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샤넬 No. 자료를 찾다 이런 저런 고아고를 찾게되는데요. 그 중에서도 많은 향수들이 에로티시즘이나 성적 코드를 사용한 광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광고중에서 입생로랑 향수 광고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입생로랑은 생각외로 많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구요. 향수도 OPIUM과 M7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화장품은 성별, 나이등으로 사용패턴이 분명히 다르고 다른 Segmet별로 각 목표 타겟을 공략하는 세분화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그 Seggment별 크긱가 충분하다면 다양한 소비자군을 유인하기 위해 여러개의 브랜드 운영이 충분히 설명의 가치가 있습니다.
OPIUM이란 브랜드 자체가 아편에서 유래한 것으로 처음부터 많은 논란을 가진 브랜드라고 합니다. 그 특색을 살리고자 함인지 또는 브랜드 컨셉이 그런것인지 이후의 광고도 이런 분위기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들의 커뮤니케이션 컨셉도 이와 비슷합니니다.
2000년 소피 달(Sophie Dahl)이 누드로 담은 오피움광고
향수 광고중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다는 2000년 오피움 광고. 이런류의 광고로 명성(?)을 날린 톰 포드가 톰 포드가 입생로랑으로 옮긴 후 발표한 광고로 섹슈얼리즘을 절묘한 구도와 색감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선정성이 심하다는 반응에 따라 영국 광고심의기구(ASA)는 소피 달(Sophie Dahl)이 누드로 드러누운 포즈를 취한 광고가 "성적인 암시를 담고 있다"며 유포금지 결정을 내렸고 영국 및 미국의 학부모 단체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던 광고이기도 합니다.
>Sophie dahl for Yves Saint-Laurent's Opium. The ad, art directed by Tom
>The 2000 Campaign featured Sophie Dahl and was shot by Steven Meisel. Dahl had her hair dyed to represent the red theme of Opium but to the back drop of the navy blue. She appears naked to represent the sexuality of the original campaign. Meisel said of chosing Dahl, " I want someone who looks like she's hadd too much of everything: too much food, too much sex, too much love. I mean this is a woman who doesn't deny herself anything"
이 광고에 대한 해설…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으로 설명이 그럴싸합니다.
이 광고도 누드를 기반으로 표현되었습니다.
2002년 남성 누드로 담은 오피움광고
2002년에는 신제품 남성 향수 M7을 출시하면서 남선 누드를 광고로 사용하면서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광고의 디렉터를 맡은 미국계 디자이너 톰 포드는 누드사진을 사용한 것은 "향수는 몸에 뿌리는 것이므로 구태여 몸을 가려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M7' 향수 광고는 순수함을 표현하고 사진 자체도 예술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고자(academic) 누드를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YSL이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점에 관한 한, 늘 선도주자였다는 사실을 일반대중들에게 다시금 인식시키고자 했으며 M7 향수의 내추럴하고 편안한 남성적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전하고자 했다합니다.
남성 성기까지 등장하니 조금 당혹스럽기는 한데 요즘에는 이런 고아고도 덤덤하게 받아지나 봅니다. 아무리해도 씁쓸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데…
위 광고를 만들었던 감독이 연출한 다른 광고.. 이 광고도 성적 코드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편에 이어 후편에서는 샤넬 No.5를 기반으로 샤넬 브랜드 빌딩 역사를 1980년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샤넬 No.5의 브랜드 빌딩 역사 시리즈를 정리하는 이유
아래는 전편에서도 이야기한 왜 2편으로 나누는가에 대한 소명입니다. 아무래도 광고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양이 너무 많아져서 부득이 2편으로 나누어서 포스팅 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올려보니 양이 너무 많고 특히 동영상을 받아오는데(유튜브를 읽어오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인터넷 환경이 아주 좋지 않으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인터넷 환경이 잘 갖추어진 저희집에서도 7~8초이상 걸리더군요. 아무런 주치를 취하지 않으면 수많은 유튜브 동영상을 읽어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수 많은 이미지와 동영상도 Lazy loading 기능을 추가하면 많은 양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한편의 글에 많은 동영상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1990년대이후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커진 영향으로 샤넬의 광고도 스토리텔링으로 접근,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광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9년이후 광고는 그런 경향이 아주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Follow the romantic paths of Audrey Tautou on a night train to Istanbul. With Audrey Tautou and Travis Davenport, directed by Jean-Pierre Jeunet. Music : “I’m a fool to want you” (Frank Sinatra, Jack Wolf, Joel Herron) performed by Billie Holiday.
남여가 열차에서 처음보고 남자는 여인의 향수에 끌리고 서로 마음을 품었으나 서로 조금씩 어긋나면서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열차에 내려 서로 다른길을 가다 유람선을 탔는데 카메라에 담긴 상대편 유람선을 타고 있는 남자를 보고 어떤 운명을 느낍니다.
(왜 그 장소로 왔는지는 모르지만)어느 교회에 여자가 들어오고 이어 남자도 들어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이 광고 중간 중간에 샤넬 no.5가 2번 등장하는 것 빼고는 제품과의 연계는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녀의 만남의 매개가 향수이고(이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추정이 될 뿐이죠) 이 여자는 샤넬 no.5를 씁니다,
이런 스토리를 통해서 광고에 자연스레 샤넬 no.5의 이미지를 심으려했던 것 같습니다.
샤넬이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거의 첫번째 광고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평은 그리 우호적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가 명확하지는 않다는 평입니다.
2009년 샤넬 No5 광고_오드리 토투(Audrey Tautou)를 모델로 도미니크 이세르만(Domonique Issermann)이 쵤영
2009년 샤넬 No5 광고_오드리 토투(Audrey Tautou)를 모델로 도미니크 이세르만(Domonique Issermann)이 쵤영
2009년 샤넬 No5 광고_오드리 토투(Audrey Tautou)를 모델로 도미니크 이세르만(Domonique Issermann)이 쵤영
2009년 샤넬 No5 광고_오드리 토투(Audrey Tautou)를 모델로 도미니크 이세르만(Domonique Issermann)이 쵤영
2012년 브래드 피트가 전하는 샤넬이야기.
샤넬에서 첫번째로 출시된 향수로써 가장 여성스러운 향수를 표방하는 샤넬 No.5는 92년 역사상 그들의 모델로 여배우와 여성인사들만을 출연시켜왔습니다.
그런데 2012년 그 관행을 깨고 남성 모델인 브래드 피트를 기용합니다.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혔던 브래드피트였으므로 샤넬 광고 모델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브래드피트 광고가 방형된 이후 무수히 많은 광고 패러디가 생성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브래드 피트의 광고는
첫째, 브랜드 피트만 나옵니다. 어찌보면 매우 단조로울 수 있는데 과감한 시도를 했습니다.
둘째, 기존의 스토리텔링식이 아닌 브랜드 피트의 고백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It’s not a journey. Every journey ends but we go on. The world turns and we turn with it. Plans disappear. Dreams take over. But wherever I go, there you are. My luck. My fate. My fortune. Chanel No. 5. Inevitable.”
이건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끝나지만 우리는 계속 간다. 세상은 변화하고 우리도 변화한다. 계획은 사라지고 꿈이 채워진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그곳에는 네가 있지 나의 행운 나의 숙명 샤넬 NO.5 나의 운명
셋째, 그러다 보니 브랜드 피트의 고백으로 별다른 영상없이도 샤넬에 대해서 무게감있게 설득력있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모든 사물이 변하는 와중에도 항상 존재하는 그것, 변치 않는 가치로 남아있는 그것, 샤넬 넘버5는 항상 새롭지만 변하지 않는다
2012년 샤넬 No5 광고 브랜드 피트(Brad Pitt)
2012년 샤넬 No5 광고 브랜드 피트(Brad Pitt)
2012년 샤넬 No5 광고 브랜드 피트(Brad Pitt) – 옥외광고
2012년 샤넬 No5 광고 브랜드 피트(Brad Pitt)
2013년 다시 등장한 마릴린 몬로.
1950년대 당대 최고의 섹시 심볼이었던 마릴린 먼로에게 한 기자가 ‘당신은 잠자리에서 어떤 종류의 파자마를 입느냐’는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마릴린 먼로는 의외로 간단한 대답을 합니다.
Just a few drops of No.5 …
시간이 흘러 샤넬에서는 과거의 인터뷰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마릴린 먼로가 언급하는 샤넬 No.5 장면을 찾아내 이를 광고화 합니다.
이 광고가 뛰어난 광고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보여져셔 아래처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인터뷰에서 자연스레 자기가 광고모델을 하고있는 제품을 언급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삶에 대한 인터뷰 질문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대답은 삶속에서 체화된 이야기가 나올것입니디. 일상 생활속의 이야기에 광고하는 제품이 자연스럽게 언급되었다는점은 그 제품이 일상 삶속으로 녹아 있었다는 반증으로 보여졌습니다. 제품 관점에서 당대 탑스타가 자연스레 사용할정도로 매력적인 제품이었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둘째, 거의 50년전의 일이지만 이를 찾아내서 광고화하고, 이를 브랜드스토리로 딴딴하게 만드는 샤넬의 브랜드 관리가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괜찮은게 아니라 멋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도 첫째에서 이야기한 제품이 뛰어나 탑스타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이 작업은 샤넬(Chanel)이 2012년 10월 5일 브랜드의 140년 역사를 타임라인 형식으로 소개하는 웹 사이트를 만들면서 샤넬 관련 다양한 이야기를 많은 영상과 사진을 활용하며 재조명 하는 ’Inside CHANEL’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2번째 주제로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로 정하고 1960년의 인터뷰에 인용된 샤넬 넘버5 와의 인연을 그녀의 미공개 사진과 미공개 인터뷰 녹취 내용을 보여 주었습니다. 샤넬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2번째에 할애할 정도로 샤넬과 마릴린 몬로는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셋째, 아시다시피 2012년 샤넬은 과거 인터뷰 기록을 검증해 다시 마를린 몬로를 현재에 등장시켰습니다. 거의 50년전의 사람이지만 마를린 몬로는 여전히 이 시점에서도 상품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다시한번 일깨워 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https://happist.com/533214 인용]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시사회 전에 샤넬 No.5를 뿌리고 있는 마릴린 몬로,1955년
이는 광고는 아니지만 샤넬 No.5를 이야기할 시 많이 거론되는 사진이라서 같이 올렸습니다.
2013년 마릴린 몬로를 주제로 한 광고에서도 이 사진을 주요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샤넬 No.5 광고의 마지막 부분..
2014년 지젤 번천의 샤넬 광고…
이 광고에 대한 해석으로 설득력있는 것은 아래처럼 거칠데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샤넬 향수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으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시기가 왔다.
오래된 브랜드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낡은 이미지가 샤넬에게도 찾아왔고 이를 어찌 돌파할 것인가? 이에 대한 샤넬의 답은 젊은 층이 쓰는 것 이라고 웅변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돈 있는 아이가 있고 일과 사랑을 모두 지키고 싶어하는 이 땅의 슈퍼우먼이 타겟 임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이 부분에서 확실한 이미지 포지셔닝을 하자
광고 곳곳에서 럭셔리임을 보여주는 장치를 통해서 확실한 럭셔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라고 해석하고 싶다.
샤넬 No. 5’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한 전설의 섹시 여배우, 마릴린 먼로다.
“잠잘 때 뭘 입고 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담하게도 “샤넬 No. 5만 입고 잔다”고 한 그의 대답은 5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회자되는 전설적인 코멘트이자, 광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슬로건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그렇게 샤넬 No. 5는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처럼 섹시하고 도발적이며 관능적인 향수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롱 셀러로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향수의 종류도 엄청 많아지고, 향의 트렌드 역시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장점으로 여겨졌던 샤넬 No. 5의 역사와 전통은, 클래식이라는 이면에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결국 샤넬 No. 5는 새로이 향수를 구매하기 시작하는 젊은 층이 아닌, 클래식한 것이 얼마나 멋스러운지를 아는 경제적 여유와 연륜을 갖춘 사람들을 공략하는 영민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2012년 광고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 모델인 배우 브래드 피트를 기용해서 큰 효과를 본 샤넬 No. 5는 이번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광고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아이를 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초강수를 두었다.
남자 모델도 기용했는데 유부녀를 모델로 내세운 것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모델이 유부녀라는 점보다 광고에 아이가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 쇼킹한 포인트다.
모델로 발탁된 지젤 번천 역시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광고 영상 속에 나오는 딸의 이미지, 그것도 아기(baby)가 아닌 적어도 유치원 이상은 다닐 것 같은 어린이(kid)를 둔 엄마가 샤넬 No. 5의 주 소비자층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과 사랑, 섹시함과 지적인 요소 그리고 독립적이며 건강함까지 갖춘 여성이야말로 샤넬 No. 5가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성공한 여성상이 아닐까 싶다 [여성동아 15년 3월 “샤넬과 티파니의 변심이 말해주는 것]” 인용]
이 샤넬 광고를 연출한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이 광고가 “샤넬 여성은 해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거나, 야심차고 만족스러운 커리어를 가짐과 동시에 진실 된 관계와 로맨스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샤넬 여성은 사랑을 택하게 된다”고 이 광고에서 표현한 여성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유투브에 공개된 광고 영상입니다. 음악은 ‘the one that I want’ 라는 곡으로 lo-fang이 불렀다고 합니다.
music – ‘the one that I want’ by lo-fang
2014년 샤넬광고 _ CHANEL N°5 -지첼이 연열한 ‘The One That I Want ‘
2014년 샤넬광고 _ CHANEL N°5 -지첼이 연열한 ‘The One That I Want ‘
시대 아이콘이 되었던 샤넬 No.5 브랜드 빌딩을 위한 광고 역사를 살펴보고 샤넬 브랜드 전략에 대해서 살펴 봅니다.
샤넬은 흔한 향수가 아닌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롭고 그녀만의 철학이 깃든 그녀만의 향을 원했기에 화학자 에르네스트 보에게 고급 향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에르네스트 보는 심혈을 기울여 5가지 향수를 만들었고, 샤넬은 하나하나 향을 맡아본 후 숫자 5라고 적힌 라벨이 붙어있는 병을 선택했지요.
이렇게 개발된 향수는 1921년 샤넬 N˚5(No. 5)’라는 이름으로 발표됩니다. 이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 최초의 향수인 동시에 최초로 자연성분과 합성성분을 조합해 탄생한 최초의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샤넬 넘버 5가 등장하기 이전의 향수는 꽃향기를 재현하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 그리고 ‘무슨 무슨 눈물’이나 ‘무슨 무슨 바람’처럼 향수에 로맨틱한 네이밍을 하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추세였습니다. ‘봄의 욕망’, ‘저녁의 도취’와 같은 시적인 이름
이에 반해서 샤넬은 자연성분과 합성성분을 조합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No.5라는 단순한 숫자를 향수의 이름으로 선택하는 파격을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샤넬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생각보다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샤넬에게 성공의 서광이 비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제가 침대에서 입는 유일한 옷은 바로 샤넬 넘버 5예요.”라고 말하던 세기의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가 샤넬의 성공에 일조했습니다.
Top ten most iconic perfumes of all time
어느 조사에서 인가 샤넬 No.5가 가장 아이콘한 향수로 선정되었더군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독보적 지위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Chanel No 5
Calvin Klein – One
Calvin Klein – Eternity
Chanel – Coco
Dior – Poison
Ghost
Cacharel – Anais Anais
Lacoste – Pink
Yves Saint Lauren – Opium
Beckham – Intimately Her
잠깐 생각해보는 샤넬 No5의 성공요인
샤넬 No.5가 1921년에 출시되었으니 94년의 세월이 흐른셈입니다. 백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독보적 지위를 유지해온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째, 샤넬 No.5의 패키지 디자인에서 엿보이듯이 100여년동안 브랜드 정체성의 Core를 잘 유지해온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패션은 죽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샤넬의 신념처럼 샤넬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아래 시대별 패키지 디자인을 보면 초기의 심플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조금씩 그 identity를 변화시켜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초기 패키지 디자인은 미국 근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둘째, 당대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탑스타들을 광고 모델로 프래그쉽이미지를 극대화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니라 삶속에서 샤넬 제픔을 사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브랜드 홍보대사이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릴린 몬로이지요
세째,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 탑 연예인들과의 교류에서 그들과의 문화나 트렌드를 체화해 온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샤넬 No.5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술가들이 헌정(?)한 샤넬 no.5의 예들을 쉽게 발결할 수 있는데요.
이런 것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향수로써 샤넬 No.5의 이미지를 형성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왼쪽은 1921년 프랑스 삽화가인 Sem이 헌정한 샤넬 No.5 광고이고 오른쪽은 앤디워홀이 그린 샤넬 No.5입니다.
그러면 샤넬 No.5가 어떤식으로 No.5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는지 샤넬 광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샤넬 No.5의 브랜드 빌딩 역사 시리즈를 정리하는 이유
아무래도 광고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양이 너무 많아져서 부득이 2편으로 나누어서 포스팅 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올려보니 양이 너무 많고 특히 동영상을 받아오는데(유튜브를 읽어오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인터넷 환경이 아주 좋지 않으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인터넷 환경이 잘 갖추어진 저희집에서도 7~8초이상 걸리더군요. 아무런 주치를 취하지 않으면 수많은 유튜브 동영상을 읽어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수 많은 이미지와 동영상도 Lazy loading 기능을 추가하면 많은 양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한편의 글에 많은 동영상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올려보니 양이 많고 특히 동영상을 받아오는데(유투브를 읽어오는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인터넷 환경이 아주 좋지 않으면 오래기다려야 합니다. 인터넷 환경이 잘 갖춰진 저희집에서도 7~8초이상 걸리더군요
도입부 및 1970년대까지를 전편에서 다루고 1980년이후는 후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초창기의 샤넬 No5 광고
▲ 샤넬 No.5 초기 단계의 광고
▲ 1921년 샤넬 No5 광고_삽화가 샘(Sem)이 그려 헌정한 삽화(tribute to CHANNEL No5 by the cartoonist Sem
▲ 1937년 – 미국 패션잡지인 ‘하퍼스 바자’에 실린 샤넬 No.5광고.
가브리엘 샤넬이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향수를 직접 홍보하기 위해 모델로 나섰는데요 그녀가 살던 파리의 리츠호텔 벽난로에서 편안하면서도 우아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54세였습니다. 50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네요
1950년대 샤넬 No.5 광고
1950년대 샤넬 No.5는 미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제가 침대에서 입는 유일한 옷은 바로 샤넬 넘버 5예요.”라고 말하던 세기의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가 샤넬의 성공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 1957년 샤넬 No5 광고_수지 파커를 모델로 리치든 어베든이 활영한 광고
▲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시사회 전에 샤넬 No.5를 뿌리고 있는 마릴린 몬로,1955년
이는 광고는 아니지만 샤넬 No.5를 이야기할 시 많이 거론되는 사진이라서 같이 올렸습니다. 2013년 마릴린 몬로를 주제로 한 광고에서도 이사진을 주요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샤넬 No.5 광고
▲ 1966년 샤넬 No5 광고_맥그로우(mcgraw)를 모델로 제롬 두크로(Jerome Ducrot)가 촬영.
1970년대 샤넬 No.5 광고
1970년대는 상대적으로 광고에 많은 투자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1970년에 샤넬 No.5의 명성은 예전처럼 못하다는 평판이 있었고, 1950년대, 1960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경주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971년 샤넬 No5 광고_슈림튼(Jean Shrimpton)을 모델로 핼무트 뉴튼(Helmut Newton)이 촬영
▲ 1972년 샤넬 No5 광고_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를 모델로 리차드 아벤든(Richard Avedon)이 촬영
▲ 1972년 샤넬 No5 광고_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를 모델로 리차드 아벤든(Richard Avedon)이 촬영
▲ 1972년 샤넬 No5 광고_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를 모델로 리차드 아벤든(Richard Avedon)이 촬영
1973년 헬무트 뉴튼이 연출하고 까드린느 드뇌브가 출연한 광고 영상 “WHISPERED”
헬무트 뉴튼이 연출하고 까드린느 드뇌브가 출연한 광고 영상 “WHISPERED”.
CHANEL N°5 advertising film from 1973 “Whispered,” by Helmut Newton, with Catherine Deneuve
1975년 샤넬 No5 광고
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를 모델로 등장한다.
1975년 공개된 이 샤넬 No5 광고_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를 모델로 리차드 아벤든(Richard Avedon)이 촬영한 것
1977년 샤넬 광고 “Mystery”
헬무트 뉴튼이 연출하고 까드린느 드뇌브가 출연한 광고 영상 “Mystery”
CHANEL N°5 advertising film from 1977 “Mystery,” by Helmut Newton, with Catherine Deneuve
1979년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La piscine,”
CHANEL N°5 advertising film from 1979 “La piscine,” by Ridley Scott
샤넬 광고에 대해서 쳐다보다 보니 자연스렌 연관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를린 몬로는 샤넬의 광고 모델로 활약했는데 마를린 몬로는 샤넬의 향수를 참으로 좋아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고 오늘 이야기하는 광고는 그 에피소드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샤넬 광고입니다… 마를린몬로가 1960년에 한 발언을 모티브로 제작한 광고..
1950년대 당대 최고의 섹시 심볼이었던 마릴린 먼로에게 한 기자가 ‘당신은 잠자리에서 어떤 종류의 파자마를 입느냐’는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마릴린 먼로는 의외로 간단한 대답을 합니다.
Just a few drops of No.5 …
시간이 흘러 샤넬에서는 과거의 인터뷰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마릴린 먼로가 언급하는 샤넬 No.5 장면을 찾아내 이를 광고화 합니다.
이 광고가 뛰어난 광고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보여져셔 아래처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인터뷰에서 자연스레 자기가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제품을 언급한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고 보았습니다.
삶에 대한 인터뷰 질문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대답은 삶속에서 체화된 이야기가 나올것입니디. 일상 생활속의 이야기에 광고하는 제품이 자연스럽게 언급되었다는점은 그 제품이 일상 삶속으로 녹아 있었다는 반증으로 보여졌습니다.
제품 관점에서 당대 탑스타가 자연스레 사용할정도로 매력적인 제품이었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둘째, 거의 50년전의 일이지만 이를 찾아내서 광고화하고, 이를 브랜드스토리로 딴딴하게 만드는 샤넬의 브랜드 관리가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괜찮은 게 아니라 멋지다고 할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도 첫째에서 이야기한 제품이 뛰어나 탑스타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이 작업은 샤넬(Chanel)이 2012년 10월 5일 브랜드의 140년 역사를 타임라인 형식으로 소개하는 웹 사이트를 만들문서 샤넬 관련 다양한 이야기를 많은 영상과 사진을 활용하며 재조명하는’Inside CHANEL’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2번째 주제로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로 정하고 1960년의 인터뷰에 인용된 샤넬 넘버5 와의 인연을 그녀의 미공개 사진과 미공개 인터뷰 녹취 내용을 보여 주었습니다. 샤넬의 역사상 영향을 미친게 많았겠지만 2번째에 할애할 정도로 샤넬과 마릴린 몬로는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셋째, 아시다시피 2012년 샤넬은 과거 인터뷰 기록을 검증해 다시 마를린 몬로를 현재에 등장시켰습니다.
거의 50년전의 사람이지만 마를린 몬로는 여전히 이 시점에서도 상품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디. 죽은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다면 격인 듯 싶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한마디를 광고로….
MARILYN MONROE APRIL 1960
You know, they ask you questions… Just an example:
“What do you wear to bed?” “A pajama top?” “The bottoms of the pajama?” “A nightgown?”
So I said, “CHANEL N5!” Because it’s the truth! And yet, I don’t want to say “nude.” But… it’s the truth. N°5 CHANEL PARIS PARFUM
광고 영상 및 이미지들
To the question “What do you wear to bed?” Marilyn responded, “CHANEL N°5.” What inspired Marilyn’s world-famous reply? Discover the answer in Chapter 2 of Inside CHANEL, with the new film titled “Marilyn and N°5.”
‘I said No. 5 because it’s the truth!’ Marilyn Monroe reflects on her favorite bedtime ritual for new Chanel ad – using an unearthed audio recording from 1960
인터넷 서칭 중에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의 힘 샤넬 No.5”라는 샤넬 광고 소개 포스팅을 보았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감성적인 스토리텔링 광고라고 소개를 하고 있어서 도대체 뭘까? 고민하면서 찾아본 샤넬 스토리텔링 광고..아직 명확히 그 숙제를 풀지는 못했지만 나름 정리한 것을 공유해 봅니다.
먼저 잠깐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 +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이야기하다’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로 스토리텔링은 ‘무엇에’ 해당하는 이야기(story)를 ‘어떻게’에 해당하는 담화(discourse)로 나타내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크리스티앙 살몽의 스토리텔링 이야기
스토리텔링이란 책의 저자로 알려진 크리스티앙 살몽에 따르면 스토리텔링은 크게 4가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 상품의 생산 및 가공, 유통을 가능케 하는 생산기법(스토리텔링 경영)으로 또 판매기법(내러티브 마케팅)으로 사용된다. “CEO 켄지”에서 자이쓰 회장이 “비즈니스는 드라마다.”라고 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어떤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경영에서 사용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고 관할 경계망과 전자 감시, (파일의 합성으로 가능해진) 서사적 프로파일링을 통해 개인을 소정의 목적에 순응케하는 권력의 신기술(로 사용된다.)
셋째, 스토리텔링을 사회관행의 합법화 담론으로 사용한다.
넷째, 개인들이 자기실험 및 자기통제행위를 통해 권력의 규제작용을 지연시킬 수 있게 해주는 (블로그 등을 기반으로 하는) 글쓰기 및 게임(디지털 스토리텔링) 기법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주체 자신에 의한 존재의 서사화는 개체화의 새로운 양식, 즉 글쓰기이자 과시인 자아의 자기표현을 보편화 한다.
샤넬 광고에서의 스토리텔링 해석하기
앞에서 언급한 포스팅에서는 샤넬 광고에 대해서 다름과 같이 해석해 놓았습니다.
“상품 자체의 가치가 아닌 상품 사용자의 질 향상, 단순 메세지의 나열이 아닌 스토리텔링식 제시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샤넬 no.5 광고이다”
남여가 열차에서 처음보고 남자는 여인의 향수에 끌리고 서로 마음을 품었으나 서로 조금씩 어긋나면서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열차에 내려 서로 다른길을 가다 유람선을 탔는데 카메라에 담긴 상대편 유람선을 타고 있는 남자를 보고 어떤 운명을 느낍니다.
(왜 그 장소로 왔는지는 모르지만)어느 교회에 여자가 들어오고 이어 남자도 들어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이 광고 중간 중간에 샤넬 no.5가 2번 등장하는것 빼고는 제품과의 연계는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며의 만남의 매개가 향수이고(이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추정이될 뿐이죠) 이 여자는 샤넬 no.5를 씁니다,
이런 스토리를 통해서 광고에 자연스레 샤넬 no.5의 이미지를 심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왜일까요? 저의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제가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후 이 광고를 다시 봐야겠습니다.
광고 이미지
코코 샤넬의 멋진 언명
“I love luxury. And luxury lies not in richness and ornateness but in the absence of vulgarity. Vulgarity is the ugliest word in our language. I stay in the game to fight it.” ― Coco Chanel
요즘 뉴스에 교보문고에 책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독서 테이블을 새롭게 설치했다고 뉴스에 자주 등판하곤 합니다. 삐딱하게 쳐다보면 또 홍보를 하면 시니컬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이런분들은 무엇을 해도 마찬가지이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대학 시절 가끔 교보문고엘 가면 몇시간씩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의자나 테이블이없는 시기이므로 책을 들고서 거의 한권을 다 읽다시피하고 더 읽고싶은 책들은 사서 돌아오곤 하돈 기억이 새롭습니다. 뭐 저에게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그리 나쁘지 않은 추억으로 가득차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 옆의 핫트랙에서 음반을 사야하나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주머니가 넉넉치 않았으므로 항상 고민이었지요.. 그 앞에 서면 사고 싶어져 샀지만 실제 집에 오면 바쁘다는 핑게로 음악을 많이 듣지는 못하므로 대부분의 음반이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교보문고의 독서 테이블 설치했다는 뉴스는 예전 허리가 아픔을 참고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주 기분 좋은 소식으로 받아드려졌습니다.
대대적인 독서테이블을 만들어가는 것은 교보문고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한 사례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 case study 부분에 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현판도 교보가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되어 이 두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교보문고의 독서 테이블 설치로 마음놓고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다..
아래는 언론 보도기사입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대형 독서 테이블이 새롭게 설치됐다.”5만년 된 대형 카우리 소나무로 제작한 이 독서 테이블은 약 1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교보문고 광화문 점은 리모델링을 위해 광화문점 일부 공간을 막은 채 공사를 진행해 왔다.
제가보기엔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고 지식을 나누고 소통이 하는 공간으로 가려는 시도로 읽혀져서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거대한 원목 테이블이 중요한게아니고 서점에 대대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소통할 수 있는 고우간을 만들어서 서점의 트렌드를 앞서 이끈다는 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머라해도 교모문고이런 조치는 환영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만 이런 보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비싼 원목을 사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든지 등등의 혹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보는 관점이 참으로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민이 사랑하는 교보문고 광화문글판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계절별로 글판이 갈립니다. 이 광화문 글판에 대해서는 아래 교보문고의 글로 대신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체계적으로 이런 일을 해올 수 있는 교보문고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광화문 글판은 1년에 네 번,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시의성 있고 정감 어린 글귀로 시민들에게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사랑을, 또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1991년 광화문 네거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글판’은 25년째 한 자리를 지키며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가족 몰래 8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글판을 보고 저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제 말을 들어줄 이 하나 없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이 글귀는 너무도 큰 위안이었습니다. (나태주 ‘풀꽃’)
결혼준비로 한창 정신이 없었을 때 아내와 저는 참 많이도 다퉜어요. 작은 것 하나도 티격태격했고 파혼을 생각할 만큼 감정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이 글판을 보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됐습니다. 아내의 의견은 무시한 채 제 생각만 했던 걸 반성했습니다. 그 후 서로 배려하고 조금씩 양보해가며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정현종 ‘방문객’)
고난을 극복하면 찬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은 우리의 삶과도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저도 회사생활 20년 동안 그 안에 사표 몇 번, 좌절 몇 번, 칭찬 몇 번, 보람 몇 번을 거쳤는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었지만 잘 이겨냈다는 보람이 느껴질 때마다 이 문구가 생각납니다. (장석주 ‘대추 한 알’) [위의 글들은 교보생명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인터넷에서 받아온 멋진 글귀들입니다
시민들이 가장 좋았다는 글귀.. 나도 무지 좋아한다..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문득 어울리지 않게 교보문고의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Cae study로는 부족할지 몰라도 교보문고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멋진 이미지를 창출하는데는 아주 크게 일조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Case study란에 이글을 올려주는것에 대해 나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 온에어된 삼성페이 광고는 혹평을 면치못했는데요. 사용씬을 보여주긴하지만 과장된 설정과 불편한 상호관계가 보이는 설정에서 많은 점수를 잃고었고 특히 마지막 나오는 삼성페이 사운드가 깬다는반응이 대부분이더군요. 그러다보니 전반적으로 광고가 복구풍 또는 요즘 시세가 모두 과거로 회귀하듯이 이 광고도 과거로 돌아가 만든 광고가 아니냔ㄴ 비아냥 소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서 미국에서 온에어 된 삼성페이 광고는 사용씬을 보여주면서도 주위의 탄성을 자연스레 이끌어내고 절로 미소가 머금께끔하는 잔잔한 광고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It’s Not a Phone, It’s a Galaxy: Samsung Pay라는 타이틀은 단 광고는 삼성 광고답지않게 조회수가 460만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의 대부분 광고 조회수는 정말 형편이 없거든요.
그러면 미국에서 온에어 된 몇가지 광고를 살펴보겠습니다.
Introducing: Samsung Pay
Introducing: Samsung Pay라는 타이틀로 온에어된 광고입니다.
sing both NFC and MST technology, Samsung Pay is accepted almost anywhere you can already swipe or tap your card. To learn more, visit: http://smsng.us/Pay
앞에서 잠깐 업급했지만 삼성 광고답지않게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광고입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많은 카드들의 사용 scene을 보여주고 있고요 중간에 아이폰에 대한 디스도 잠깐 보는 즐거움도 선사하네요
Samsung Pay is accepted almost anywhere you swipe or tap your card. It’s not a phone, it’s a Galaxy. Learn more here: http://smsng.us/Pay 음악이 좋다는 평가네요
Samsung Pay: Be the Master of Payments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던 광고.. 썰렁하기는 하지만 무림에서는 제자에 불과하지만 페이의 세게에선 스승을 능가하는 페이고수가된 제자…..
그런데 이게 서구에서 통하는 광고 컨셉인가? 궁금하네… 댓글들을 보니 긍정적인 평가가 많네요.. 제대로된 광고??
Meet the new master of payments, Samsung Pay. It’s simple, safe and available virtually anywhere you can swipe or tap your card. Only compatible with select payment cards and Samsung devices.
Samsung Pay commercial
삼성페이에 대한 설명조의 광고
한국 삼성페이 광고
한국에서 혹평을 받고있는 삼성페이광고를 잠깐 보시지요
한국 삼성페이 광고 계산은 심플하게 삼성페이로 샥
삼성 페이 _ TV 광고(A 버전)
잠시만, 계산 좀 할게
이 광고도 그리 환영받지는 못하고 있군용 마지막부분의 삼성페이가 거슬린다는 반응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광고..
한국 삼성 페이 _ TV 광고(B 버전)
잠시만, 계산 좀 할게
마지막 삼성페이가 거슬린다는 지적이 많네요. 저도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삼성 페이 스낵 시트콤|식당 편
지금, 사장님을 깜놀하게 만든 건? 계산은 심플하게, 삼성 페이로 샥!
한국 삼성페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소개합니다.
페북에서 맹활약중인 최재홍교수께서 간단히 정리해준 삼성페이가 가야할 길 제안글…
< 삼성 페이 기사에 대한 이견 >
앞으로 2-3년 내에 NFC 단말이 주가 될 것이기에 삼성페이의 남은 시간은 길어야 3년 이라는 전문가의 예견에… 이견이 있다.
이 기사의 결론은 삼성페이가 암튼 열심히 해야한다에 대하여는 동의.
그러나, NFC 단말로 바뀌지 않아도, 삼성이 주도할 지는 의문이며, 바뀐다고 해도 적어도 5년 이상은 되어야 주류가 될 수 있다.
NFC 결제는 단말이 없어서 결제가 안 이뤄진 것이 아니다.
긁는 카드나 지불에 대한 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람들은 기술 우위와 편리함, 보안을 이야기 하지만..나는 기존 사용에 대한 관성과 습관이 더 우위에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페이가 시간이 많아 여유부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글로발이다.
수수료 제로, 기타 고객 및 가맹점에게 줄려면 확실하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줘라.
이제는 명운을 걸어야할 때이다.
MST 는 고객 모집용으로 쓰고, NFC로 전환할 때 승부를 걸면된다. 그게 싸다.<최재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