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Tom Ford)의 광고를 살펴보면서 톰 포드(Tom Ford)가 처음 명성을 날리게된 GUCCI 부활스토리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명품브랜드에는 많은 브랜드 스토리가 있어서 (우리와는 거리가 멀지만)살펴보는 재미가 많은 것 같습니다.
톰 포드(Tom Ford)가 GUCCI 입성할 당시 그는 경력이 매우 일천했습니다.
경영난에이 시달리던 GUCCI는 많은 직원을 해고해야하는 상황에서의 디자이너 영입이므로 스타디자이너를 영입할 형편이 못되었을 수 있죠. 그러다보니 신예중에서 가능성이 높은 디자이너를 고르다보니 톰 포드(Tom Ford)가 낙점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톰 포드(Tom Ford)가 구찌에 와서 과거의 영광에서 조금도 더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클래식한 명품에 지나지 않았던 GUCCI를 GUCCI 본연의 가치에 도발적인 관능미를 부여해 GUCCI를 가장 섹시하고 트렌디한 명품의 대명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GUCCI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톰 포드(Tom Ford)가 어떻게 GUCCI를 새롭게 변신시켰는지 보시지요
GUCCI의 간략한 역사
GUCCI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GUCCI는 명품 브랜드가 많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도 3대 명품으로 뽑히는 브랜드이고 전통과 현대 트렌드를 잘 조화시킨 브랜드로 명망이 높습니다.
이러한 GUCCI도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것은 아닙니다. 창업자 사후 후손들의 격렬한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러한 쇠락을 전문 경영인 영입을 통해 새롭게 웅비할 수 있었습니다.
구찌의 역사는 1921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승마관련 가죽 제품을 파는 매장을 오픈하면서 시작됩니다.
구찌 창업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1881년 이탈리아 중부 플로렌스에서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은 부유했지만 형제들과 불화가 생기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영국 런던으로 향합니다.
런던 호텔 벨보이로 귀족 감성을 배우다
1897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말단 벨보이로 시작해 지배인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영국 귀족의 미적 감각을 배우고, 상류층 고객들의 가방과 트렁크들을 보면서 가죽 제품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고 합니다.
1902년 고향 피렌체로 돌아와 런던에서 익힌 미적 감각과 안목을 이탈리아 고유의 가죽 기술과 결합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합니다.
1913년 이런 노력의 결실로 승마 가죽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승마가 대중화 되면서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의 가죽 제품들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자전거가 유행을 하자 핸드백과 같은 일반 가죽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핸드백과 같은 일반 가죽 제품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됩니다.
1921년 첫 구찌 매장을 열다
이리하여 1921년 피렌체에 있는 비냐 누오바 거리(Via Vigna Nuova)에 ‘GUCCI’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열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빠리오네 거리(Via Del Parione)에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GUCCI에서 만든 핸드백, 벨트, 구두등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주 고객층인 상류층의 안목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제품이었기에 전세계의 세련된 단골 고객들의 인기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차대전으로 부족해진 가죽대신 다양한 소재를 실험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재는 모든 물자를 전쟁에 동원해 제품을 만들 금속과 가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됩니다.
이런 소재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대마, 삼마, 항마, 대나무등을 활용한 제품을 기획하게 됩니다.
특이 그 당시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이용했느데 이것이 그 유명한 “뱀부 백”입니다.
1947년 처음 선 보인 이 “뱀부 백”은 향후 Gucci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스의 페데리카 왕비,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영화배우 엘리바베스 테일러등 왕실과 유명인사들이 즐겨 사용했으며 지금도 이 테마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 1960년 공개된 뱀부백 광고 [Source – GOOGLE Image]
가죽대신 캠퍼스 천을 사용하다
또한 부족한 가죽 대신 캔버스 천을 소재로 채용했습니다.
고유의 더블 G 로고가 프린트된 캔버스 천 가방이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평가 받게 됩니다. 이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가 애용해서 그녀의 이름을 딴 ‘재키 백’은 그 시대 뭇 여성들이 선망하는 백을 뜻하는 ‘잇 백’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 구찌백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재클린 케네디가 ‘재키 백’을 맨 모습 [Source – GOOGLE Image]
그린-레드-그린 조화의 The WEB라인 발표
1950년대, 안장끈에서 영감을 얻은 상표 그린-레드-그린 조화의 The WEB라인을 발표하면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마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집요한 장인 정신, 일상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크리에이티브, 뛰어난 품질 이 세 가지는 명품이 지녀야할 필수요소인 동시에 구찌의 신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Guccio Gucci가 사후 아들들이 기업을 인수하다
1953년 Guccio Gucci가 사망하고 아들인 Aldo,Vasco,Ugo 및 Rodolfo가 기업을 인수하게 됩니다.
60년대 중반, 마침내 Gucci의 신화적인 더블’G’로고가 채택되어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Gucci의 로고가 탄생되었습니다.
GUCCI의 위기 – 가족간의 경영권 다툼과 전문 경영인 체계로 이행
앞에서 잠깐 나왔지만 1980년대 GUCCI에게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1953년 Guccio Gucci가 사망하고 첫째 아들인 Aldo와 셋째인 Rodolfo가 각기 지분을 50%씩 나눠가지며 분격적인 2세대 가족 경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제품 브랜딩 부분을 첫째인 Aldo가 맡고 해외 진출을 셋째인 Rodolfo가 맡으면서 ‘글로벌 명품브랜드’구축을 시도하게 됩니다.
▲ 첫째인 Aldo Gucci(좌측사진의 오른쪽 인물)와 셋째인 Rodolfo Gucci(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인물)
점차 가족 경영 체계가 구축되면서 해외 시장 개척에 두각을 나타낸 Rodolfo가 최종 경영권자로 선임됩니다.
아쉽게도 Rodolfo는 최종 경영권자로 선임된 후 1년만에 사망하면서 가족간에 불화가 시작됩니다. Rodolfo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Maurizio Gucci)가 경영권을 승계받았지만 Aldo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Paolo Gucci)가 반발한 것이지요.
파올로 구찌(Paolo Gucci)는 자신의 이름 딴 ‘파올로 구찌’라는 저가 브랜드를 런칭했고 또한 회사를 확대하겠다는 욕심으로 직접 제품을 만들지 않고 로고만 빌려주는 라이센스 제품을 남발했스빕니다.
이러한 파올로 구찌(Paolo Gucci)의 행보는 GUCCI 경영에 커다란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구찌 이미지가 악화되고 및 판매 감소되면서 재정의 악화등이 초래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92년에는 구찌 브랜드의 도산 위기에 빠졌고 이는 가족간의 싸움과 파올로 구찌 브랜드의 런칭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위기 타개를 위해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갖추다
이런 경영 상황을 타개하고 GUCCI 영광을 재현하기위해 마우리치오 구찌(Maurizio Gucc)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가족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 당시 파올로 구찌(Paolo Gucci)가 보유하던 지분 전체를 인수한 바레인계 투자회사인 인베스트코프(Investcorp)에게 자신이 보유한 전체 지분을 매각하고, CEO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투자회사인 인베스트코프(Investcorp)는 1989년, 마우리치오 구찌를 대신해 워싱턴 법률회사에서 근무하던 도미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를 구찌의 CEO로,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Bergdorf Goodman)의 뉴욕 지사장이었던 돈 멜로(Dawn Mello)를 구찌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하며 전문경영인을 통한 기업 운영을 시작해 패션전문기업 ‘구찌 그룹(Gucci Group)’으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CEO인 도미니코 데 솔레는 구찌 브랜드가 내놓는 제품들의 유통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와 10만여 종에 달하는 구찌 브랜드의 라이선스 사업의 대폭 축소와 구찌 고유 디자인을 재해석한 제품으로 구찌 브랜드를 새롭게 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Tom Ford)를 영입, 구찌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 톰 포드(Tom Ford), VOGUE지 2005년 4월호에 게재된 톰 포드 사진 Mr. SEX라고 칭하고 있다
GUCCI를 트렌디한 명품브랜드로 성장시킨 톰 포드(Tom Ford)
1990년, 29세의 톰 포드는 GUCCI에 영입되어 여성 레디-투-웨어의 디자인을 맡은 후 199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에 올르게 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Design, Concept, 구찌의 생산라인(의류,향수 등 모든 아이템)의 총괄하고 구찌의 이미지,광고,스토어 디자인까지 모든 영역에 권한을 행사하며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GUCCI에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톰 포드가 GUCCI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한 무기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전 직장 즉 나이트클럽에서 학습한 ‘섹스는 팔린다. 그리고 많은 소비자들은 그것을 가장 원하고 있다’는 에로티시즘이었습니다.
톰 포드는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클럽 “스튜디오 54″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요.
이 클럽은 당대 전설로 불리 울 만큼 최고의 유명 인사들 사교장이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클럽에서 익힌 디스코 문화는 톰 포드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층 타겟의 Glamour concept을 디자인을 도입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첫해 스튜디오 54 라는 디스코 나이트클럽에서 영감을 얻었던 ‘글래머(Glamour)’라는 요소를 디자인 컨셉에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이는 에로티시즘적 요소를 부각시켜 젊은층을 타겟으로하는 할스튼 스타일 벨벳 힙스터(Belvet hipster), 스키니 사틴 셔츠 등을 선보임니다
(He was credited as bringing GLAMOUR back to the world of Fashion – with velvet hip grazing trousers, skinny satin shirts and car-finish metallic patent boots)
톰 포드가 지향한 금속성의 가늘고 높은 힐, 벨벳 힙스터 바지는 1990년대의 이중적인 성의 윤리를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디스코 나이트 클럽의 싸이키 조명아래 빛을 발하는 화려하고 글래머러스 의상들과 이러한 패션 코드는 순식간에 퍼져나가뮤지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를 1995 MTV Video Music Awards에 마돈나(Madonna)가 입고 나오면서 GUCCI의 부활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돈나(Madonna)는 어워드에 구찌 의상을 입고 나와 “구찌” “구찌” “구찌”를 외쳐 구찌의 부활을 세상에 알렸다고 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샤넬 No.5가 널리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마릴린 몬로가 샤넬 No.5를 입고 잔다고 이야기하면서부터이듯 유명 브랜들은 유명 스타와 연관된 브랜드 스토리를 많이 가지고 있고 이게 브랜드가 커가는 비결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 1995 MTV Video Music Awards에 출연한 마돈나(Madonna)
또한 1996년 MTV Video Music Awards(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 기네스 팰트로는 GUCCI의 레드 벨벳 수트를 입고 참석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녀의 선택은 두 가지 면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하나는 GUCCI를 디자인하는 Tom Ford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둘째로 매니시 룩이 대세로 떠오른 것 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디.
GUCCI에 섹스 코드를 적극 도입하며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강화하다
1995년, 톰 포드는 프렌치 스타일리스트인 ‘카린 로이펠드'(Carine Roitfeld)와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를 영입합니다.
이들과 함게 톰 포드가 원하는 컨셉요소인 글래머,쾌락,섹시,모던함을 추구하는 광고 Campaign을 시작합니다.
톰 포드는 여성과 남성이 지닌 라인의 아름다움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면서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디자인과 이를 반영한 광고 캠페인을 강화하면서 GUCCI의 매출을 폭발적으로 신장시켰습니다.
미디어들은 겉으로는 이런 글래머, 섹시 이미지를 비판했지만 이러한 논쟁을 적극적으로 매체에 활용하였습니다. 이는 톰 포드의 GUCCI가 WOM의 중심에 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이 당시 톰 포드의 광고 캠페인은 패션 역사상 쇼킹하고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Ford’s ad campaigns are some of the most iconic (and shocking) in fashion history.)
그는 광고 캠페인과 디자인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에로티시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시기의 광고는 섹스 활용을 넘어 새로운 에로티시즘 작품으로 여겨질 만큼 파격적이고 도발적입니다.
아래 광고 campaign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킨 광고입니다.
무릎을 끊은 남자 앞에 벽을 기대선 여인이 GUCCI 로고인 G마크를 선명하게 깍인 자신의 음모를 노출하고 있는 광고로 톰 포드의 광고 전형으로 많은 사레에서 언급된 광고입니다.
그렇지만 이 광고는 이후 톰 포드의 진한 광고에 비하면 아주 얌전한 광고에 속합니다. 이후 입생롤랑의 광고들을 참조하시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 Carmen Kass(비록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의 GUCCI 광고
1996년 봄/여름 Collection에서 GUCCI가 선보인 의상
1996년 봄/여름 Collection에서 GUCCI가 선보인 의상을 모델은 Kate Moss입니다
▲ 1996년 GUCCI ADs Gucci ads Kate Moss, Gucci Show SS 1996 Kate Gucci Tom Ford.
1996년 가을/겨울 Collection을 소개한 GUCCI 광고
여기에서도 농익은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패션계에서는 이런 표현이 점차 당연시 되고 누가 더 자극적으로 ㅍ현할 수 있느냐 경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 1996 Gucci 광고 캠페인- 사진 Mario Testino – 모델 Georgina Grenville,Ludovico Benazzo – 1996FW
▲ 1996 Gucci 광고 캠페인- 사진 Mario Testino – 모델 Georgina Grenville
1998년 봄/여른 Collection을 소개한 GUCCI 광고
아주 농익은 에로티시즘 광고라 할 수 있습니다.
1998년 봄/여른 Collection을 소개한 GUCCI 광고
모델은 Amber Valetta, Georgina Grenville and Kate Moss
▲ Sophia Hesketh by Mario Testino by Mario Testino, Gucci S/S 1998
톰 포드(Tom Ford)의 성과를 간략히 살펴보면…
톰 포드(Tom Ford)의 성과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매출과 기업 가치 측면에서 살펴보면 아래처럼 엄청한 성장을 일구어냅니다. 물론 그 혼자 한일은 아니지만 쓰러져가는 GUCCI를 세우고 가장 엎서가는 명품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1994년 GUCI는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나 >톰 포드(Tom Ford)가 본격적으로 GUCCI를 지휘(?)하기 시작한 1995년에서 1996사이 GUCCI의 매출은 90% 증가합니다.
- 1997년에는 1994년비 매출이 3배증가했습니다.
- 1999년에는 GUCCI 가치를 $4.3Billion dollars로 상승시킵니다.
- 그리고 톰 포드가 GUCCI를 떠나는 2004년 GUCCI Group은 $10B의 가치를 평가받는 회사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GUCCI는 1998년에는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었습니다.
톰 포드(Tom Ford)는 과거의 영광(예를들어 1960년대 ‘재키백’ 등등)에서 조금도 더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클래식한 명품에 지나지 않았던 GUCCI를 GUCCI 본연의 가치에 도발적인 관능미를 부여해 GUCCI를 가장 섹시하고 트렌디한 명품의 대명사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2004년 3월, 톰포드는 구찌와 입생로랑의 밀라노 컬렉션을 끝으로 GUCCI와의 인연을 정리합니다. 이어 2005년 4월, 그는 도미니코 드 솔레와 조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해 화장품과 향수 라인을 전개합니다.
톰 포드(Tom Ford)이후 GUCCI의 디자인은 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프리다 지아니니가 이끌었습니다.(다만 그녀도 최근 GUCCI를 떠났습니다. ) 섹시함을 자제하고 보다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아래 프리다 지아니니가 디자인한 플로라 컬렉션 참조[이미지 구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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