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 컨투어병 탄생의 10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광고와 주제가를 만들고, 앤디 워홀(Andy Warhol),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등 세계적인 현대 아티스트의 작품 전시회를 포함한 캠페인을 벌입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멏가지 마케팅 이벤트 중의 하나는 과거 헐리우드 스타나 유명 인사들이 과거에 콜라를 마시는 사진을 현재에 복원해 “I’VE KISSED ~ ((나는 ~ 와 키스했다)”광고를 옥외 광고 및 인쇄 광고 중심ㄴ으로 집행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 코카콜라 팬으로 유명했던(Marilyn Monroe),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레이 찰스(Ray Charles)등이 콜라를 마신 것을 “키스”로 표현, 누구나 이 상징적인 병 콜라를 마시면 “행복과 키스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위 광고사진은 1953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라는 영화 촬영의 휴식시간에 마릴린 먼로는 콜라를 마시고 있고 제인 러셀은 화장을 고치고 있는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는 사진가 Edward Clark가 찍었습니다.
2 엘비스 프레슬리 I’VE KISSED ELVIS
위 광고는 1956년 7월2일 미국의 뮤지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뉴욕시 이스트 24번가에 자리한 RCA빅터(RCA Victor) 스튜디오원(Studio 1)에서 막간에 콜라를 마시면 웃고 있는 사진에서 영감을 얻을 것입니다. 그 당시 프레슬리와 그 밴드는 녹음 세션에서 ‘하운드독’(Hound Dog)과 ‘돈 비 크루얼’(Don’t Be Cruel)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While taking a break during his second and last recording session in NYC, Elvis enjoys his Coca Cola, before singing “Don’t Be Cruel.” Photo by Alfred Wertheimer.
3 레이 찰스 I’VE KISSED RAY CHARLES
위 광고는 1969년 코카콜라의 “Things Go Better with Coke” campaign의 일환으로 집행된 TV광고에서 캡춰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모스키노(Moschino) 이탈리아 디자이너 모스키노(Moschino) 코카콜라 병을 사용해 다양한 시도를 한 디자인
모스키토가 디자인한 콜라백, 셔츠 등등
2013 조이리치와 코카콜라
2013년, 2014년, 2015년 계속해서 조이리치와 코카콜라는 콜라보를 지속합니다. 조이리치에서 코카콜라 로고 등을 이용한 의상 디자인을 선 보였습니다.
아래는 2014년도 디자인 이미지
아래는 2015년 조이리치-코카콜라 콜라보 광고 이미지중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2013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2013년 다이어트 코크(Diet Coke) 30주년을 맞아 ‘Sparkling together with Marc Jacobs’ 라는 주제로 ‘whimsical, feminine’ concept을 가지고 3가지 캔을 디자인했습니다.
이 3가지캔 디자인은 ‘whimsical, feminine’ concept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를 상징 이미지를 재현하였습니다.
1980년대는 브로드웨이의 대명사이자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 있는 세계 최대의 극장인 라디오 시티 뮤지홀과 여성 해방 운동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는 정장용 모자, 하이힐, 뷔스티에를 입은 여자를 모델로 한 디자인입니다.
2000년대는 스포티한 룩 여성을 형상화, 스트라이프 무늬의 상 하의, 하이힐을 착용한 여성 주위로 레드 폴카 도트가 흩어져 있습니다
2012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2012년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코카콜라의 콜라보의 대표적 사례로 많이 이야기되는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나이트(Night)’, ‘데이(Day)’, ‘타투(Tatoo)’ 3종으로 출시된 코카콜라 라이트 리미티드 에디션은 ‘나이트 앤 데이(Night&Day)’ 콘셉트로 장 폴 고티에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코르셋과 스트라이프 패턴을 패키지에 접목시켰다.
2012 007 스카이폴 에디션(007 SKYFALL)
007 스카이폴 에디션(007 SKYFALL) 2012년 개봉한 07 스카이폴과 영화 콜라보레이션을 위한 디자인 007 제임스 본드의 블랙 슈트와 코카콜라 제로의 블랙 패키지가 잘 어울리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와 음료수간의 다소 독특한 콜라보로인해 관심을 받았고 주어진 시간내에 미션을 수행하는 007 스카이폴 캠페인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2012 2012년 런던올림픽 기념 Bottle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출시한 코카콜라 기념 보틀
2010 코코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Karl Lagerfeld & Coca-cola : 칼 라거펠트 라이트 보틀
코코 샤넬 (chanel)의 수석디자이너 Karl Lagerfeld는 특유의 세련된 우아함을 콜라병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느 2010년과 2011년 두차례에 걸처 콜라보 작업을 하였습니다. 디자인 시 그 자신으 실루엤을 디자인을 꼭 포함시킨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핑크 뚜겅 디자인은 여성을 위한 라이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나탈리 리키엘(Nathalie Rykiel)
2009 프랑스 나탈리 리키엘(Nathalie Rykiel, 소니아 리키엘의 딸)
2009년 1월 프랑스에서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의 디자이너 나탈리 리키엘(Nathalie Rykiel, 소니아 리키엘의 딸)과 컬래보레이션을 진행하였다.
위 콜라병은 한정적으로 2009년 1월부터 프랑스 Monoprix(슈퍼마켓 체인)와 Bon March(백화점)에서만 1.25유로에 판매되었다.
2009 꼼데가르송 에디션(COMME des GARCONS)
꼼데가르송 에디션(COMME des GARCONS)
의류 브랜드인 꼼데가르송과 음료 코카콜라의 콜라보레이션 꼼가드데송의 레드와 블랙을 사용해 색다르고 세련된 디자인을 제안하였다는 평
2008 SEX AND THE CITY의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
2008년 SEX AND THE CITY의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와 협업해 현대 여성이 갖추어야할 4가지 덕목 사랑, 커리어, 패션, 열정이라는 컨셉으로 출시했다.
아래는 2009년 출시한 “Betty Bottle”
2008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i)
2008년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i)가 디자인한 Coke 병 와일드하고 섹시함을 모티브로 작업했다고. 와일드한 이미지는 정글을 연상시키는 야생의 동물을 기반으로 디자인 하었다.
Coca-Cola Light by Roberto Cavalli
2005 영국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British designer Matthew Williamson)
2005년 출시된 선샤인 컬렉션
In 2005, we launched the Sunshine Collection, where celebrities and designers showed us what brings them sunshine. We gave £1,000 for every submitted design to the Terrence Higgins Trust, the UK’s leading HIV charity and chose four designs to form the official Sunshine Collection, sold at Harvey Nichols. They belonged to Manolo Blahnik, Trevor Nelson, Jonathan Saunders and Scissor Sisters. [coca-cola UK 인용]
2003 영국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British designer Matthew Williamson)
2003년 영국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British designer Matthew Williamson)이 강력한 핫핑크와 노란색을 사용한 보틀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팝 아트는 코카콜라 같은 것이다! 돈을 더 낸다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내면 수가 많아지지 내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신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나 길거리의 건달이 마시는 콜라나 모두 같은 것이다!!! 근엄하지 않고 평등하고 쉽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아래는 앤디워홀의 “3개의 콜라병”(Three Coke Bottles)이라는 작품입니다. 2010년 11월 9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536만 달러에 판매되어 유명해졌지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콜라병이라 할만합니다.
몽클레르(Moncler) 사례를 정리하면서 그들의 브랜드 전략중의 하나가 몽클레르(Moncler) 제품을 Art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많은 패션브랜드들이 궁극적으로 표방하고 싶어하는게 ART가 아닐까 싶습니다. ART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이 그리고 그것을 브랜드 이미지에 담을 수 있다면 정말 상상하기 힘들정도의 브랜드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몽클레르(Moncler)는 그러한 시도를 몽클레르(Moncler) 제품과 사진을 연관시켜 그 효과를 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2015년 10월 열린 Moncler Art for Love와 같은 사진전이 그런 것이죠..
David Bailey, Patrick Demarchelier, Arthur Elgort, Annie Leibovitz, Bruce Weber과 같은 32명의 유수의 사진가들이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을 배경으로 작업한 사진으로 Art for Love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전시회에 출품된 사진중의 일부를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흑백, 컬러등을 나누려다 자연스레 모은 순서대로 보는게 좋겠다 싶어 섞여진 그 상태로 두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근래 등골브레이커로 유명한 몽클레르(Moncler)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겟습니다.
몇년전부터 한국에 불어온 아웃도어 바람이 이제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명품이라 알려진 몽클레르(Moncler) 등등은 아직도 퇴색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몽클레르(Moncler)은 세계 최초로 패딩 재킷을 만들었고 등산 산악용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1990년이후 몰락을 거듭하다 2003년이후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통해 되살아난 사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아래는 “사업 발견의 비밀”중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세계 최초로 다운재킷을 만든 몽클레르 그러나 2000년대 초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몽클레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레모 루피니회장은 끝났다고 생각한 몽클레르를 2003년 전격적으로 인수한다. 기술력은 있지만, 당시 별 볼 일 없는 회사였던 몽믈레르의 숨은 잠재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 다운재킷은 산악전문가나 스키선수가 입는 옷으로 인식되었다. 즉 추울 때 입는 전문가들을 위한 기능성 의류였다. 반면 일반인들은 추울 때 당영히 두꺼운 털옷이나 모피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모 루피니 회장은 몽클레르의 다운재킷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못, 털옷이나 모피대신 추울 때 입을 수 있는 명품의류로 만들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한 생각은 즉시 실행으로 옮겨졌고 그 결과 몽클레르는 극적으로 회생하게 되었다.
몽클레르의 변신을 통해 알수 있듯이 전문가용을 일반인용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사업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전환은 전문가용의 품질과 가격을 낮추어 일반인용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품질을 최대한 살리면서 ㅅ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사용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업 발견의 비밀중에서 인용]
몽클레르(Moncler) 역사
아래 간략히 정리한 몽클레르(Moncler) 역사는 2015년 7월 게재된 FASHION WEEKLY에 소개한 ‘패딩 재킷에 스타일을 입히다. 몽클레르 Moncler’라는 글을 토대로 정리 보완하였습니다. 1952년 사업가이자 산악가였던 르네라미용(René Ramillon)과가 그의 친구인 앙드레뱅상(Andrè Vincent)과 함께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브랜드이름은 처음 회사를 시작한 프랑스 모나스티에 드 클레르몽(Monastier de Clermont)지역 이름의 첫 세글자 Mon과 마지막 네글자 Cler를 따서 몽클레르(Moncler)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여가와 아웃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감지하고 산업용 텐트나 침낭 등 주로 캠핑 용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954년, 세계최초 퀼팅 패딩 재킷 출시
1954년 몽클레르(Moncler)는 세계 최초로 퀼팅 패딩 재킷을 출시합니다. 원래 이 퀼팅 패딩 재킷은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 일하는 몽클레르(Moncler) 공장 노동자를 위해서 만든것인데 프랑스의 유명 산악인인 리오넬테라이(Lionel Terray)이 이 재킷을 보고 산악인들이 극한의 기후속에도 견딜수 있는 제품 개발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산악전문가를 위한 ‘리오넬테라이를 위한 몽클레르 (Moncler pour Lionel Terray)’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이후 몽클레르(Moncler)는 산악전문가들을 위한 제품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1954년 이탈리아 탐험가 아낄레꼼파뇨니(Achille Compagnoni), 리노라치델리(Lino Lacedelli)가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Karakorum) 원정 시 몽클레르(Moncler) 재킷을 입었고,
1964년에는 몽클레르 가리오넬 테라이가 주도하는 알래스카원정대의 공식후원사로 선정되었고, 1968년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서프랑스 스키국가대표팀의 공식후원사로선정되어 몽클레르(Moncler)의 브랜드 위상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Elle지의 소개를 통해 패션 브랜드로 진화
몽클레르(Moncler)의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이 브랜드는 스포츠브랜드, 방한 기능성 브랜드로의 이미지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엘르(Elle)지가 컬러풀한 몽클레르 재킷을 패셔너블한옷으로 지면에 소개하면서, ‘몽클레르재킷=스타일’의 공식이 등장하게됩니다.
몽클레르(Moncler)의 선명한 컬러와 특유의 퀼팅 디자인의 재킷은 설원이 아닌 도심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80년대에 이르러 프랑스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몽클레르(Moncler)의 패딩 재킷은 ‘고급리조트를 드나드는 젊은 상류층’ 이미지의 상징이었고,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민감한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심지어 1988년 마담 피가로(Madame Figaro)지는 편집부 전직원들이 몽클레르 재킷을 입고 촬영한 사진을 크리스마스카드로 사용했다고 하니, 당시 몽클레르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 할리우드 유명 연예인들이 몽클레르의 재킷을 입은 모습이 대중에 노출되며 몽클레르는 전 세계적인 ‘패션아이템’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2003년 루피니에 인수된 후 Brand epositioning을 하다
1980년대 인기를 누리던 몽클레르(Moncler)는 1990년대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됩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새로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몽클레르(Moncler)의 이미지는 점차 올드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이나 입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깊어지먄서 인기를 잃고 판매도 감소하게 되지요.
위기가 깊어지면서 1999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레모 루피니(Remo Ruffini)를 영입하게 됩니다. 이후 2003년 레모 루피니(Remo Ruffini)는 이 쓰러져가는 몽클레르(Moncler)를 아예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레모 루피니(Remo Ruffini)회장은 어렸을 적 당시 시대를 상징하는 3대 아이템중이 하나였던 몽클레르의 기억을 믿고 과감히 인수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레모 루피니(Remo Ruffini)는 몽클레르의 브랜드 Repositioning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기능에만 치중하는 대신, 디자인과 소재에 중점을 두고 일반인도 쉽게 입을 수 있는 패셔너블한 재킷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몽클레르(Moncler) 제품을 모피코트 대신에 입을 수 있는 고급 재킷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1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에 집중하다 – 세계 최고의 거위털 재킷을 만들자
루피니회장과의 인터뷰를 보면 몽클레르(Moncler) 부활의 핵심 키워드중의 하나는 집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 잘 할 수 있는 패딩 재킷에 집중하고 이 패딩 재킷이 일반인도 쉽게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패딩 재킷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자본을 집중해 효율적으로 연구 개발을 할 수 있고 판매도 단순화 할 수 있으며 더우기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도입이 됩니다. 세계 최고의 패딩 재킷!!!
이런한 집중성있는 연구를 통해 당시 1kg에 달해 등산시에나 입을 수 있었던 패딩 재킷을 경량화해서 일반인도 쉽게 입을 수 있게 혁신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혁신은 패딩 재킷의 사용철르 점차 넓혀갈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또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 브리타니 남쪽 지방과 페리고르에 서식하는 수컷 조류 중에서 혈통이 좋은 새의 깃털과 솜털만을 사용해 유럽에서만 생산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2 아름다운 패딩 재킷을 만들자 – 명품이 된 몽클레르(Moncler)
처음 패딩 재킷이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는 등산용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따뜻하나 무겁고 둔해보여서 일상 생활에서 입기에는 난관이 많았습니다. 당시 패딩 재킷의 무게는 1kg이 넘어갔다고 하네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혁신을 통해 패딩 재킷의 무게를 줄여서 경량화했습니다. 또한 디자인 차별화에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차별화는 2003년부터 시작한 몽클레르의 콜라보레이션에서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됩니다. 발렌시아가를 이끌던 천재 디자이너 니콜라 게스키에르, 일본 콤 데 갸르송의 준야 와타나베 수석디자이너를 비롯해 펜디, 지암바티스타 발리, 톰 브라운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영입했습니다.
이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패딩 디자인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패딩에 지퍼대신 단추를 달아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려고 했고, 최고급 모피로 모자와 앞섬을 장식하는 새로운 시도 그리고 뒤집어 입을 수 있는 패딩 등의 혁신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몽클레르(Moncler)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몽클레르(Moncler) 패딩 재킷은 한벌에 백만원 내외에서 수백만원을 홋가하지만 재고가 없어서 못팔만큼 잘 팔립니다. 이 몽클레르(Moncler) 패딩 재킷을 본받아 많은 명품을 표방하는 패딩 브랜드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 패딩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철저한 브랜드 관리 – 일관된 브랜드 경험 제공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뿐 아니라 매장, 스타일, 쇼핑 경험, 캠페인, 광고 등 제품 이외의 분야에서도 ‘차별화’를 추구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도 주목해야할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절성이 뚜렸해 판매 불균형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2분기에는 연간 매출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판매가 적습니다.) 여름에도 팔 수 있는 제품을 도입하지 않고 패딩 재킷 중심으로 운영해 그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전 세게 매장으로 모두 직영으로만 운영합니다. 이는 애플과도 같은 정책으로 보입니다. 매장에서 일어나는 브랜드 경험을 철저히 관리하고 원하는 최고의 브랜드 경험을 주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리고 몽클레르(Moncler) 제품 전시는 절대로 접어서 전시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옷걸이에 걸어서 전시하고 마네킹에 입혀서 전시합니다. 제품을 특성을 가장 잘 타나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광고 화보등에서도 차별화를 추구합니다. 패딩 재킷이 아니라 ‘몽클레르’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화보와 광고를 지향합니다. 아래 2012년에 집행한 Polar Bear를 주제로 한 광고를 공유해 봅니다.
또한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을 Art와 연결해 Brand equity를 높이고자 합니다. 이번에 발매된 몽클레르(Moncler)는 Art for Love와 같은 사진전이 그런 것이죠.. David Bailey, Patrick Demarchelier, Arthur Elgort, Annie Leibovitz, Bruce Weber과 같은 32명의 유수의 사진가들이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을 배경으로 작업한 사진으로 Art for Love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아래는 1969년부터 2015년까지 농심, 삼양,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을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삼양라면의 드라마틱한 몰락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고 그 반대로 농심의 역전과 군림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87년 시장에 진입한 오뚜기가 최근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해가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압도적 1위인 농심이 점차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고 반면 오랜 바닥을 다지고(?) 치고 올라가는 오뚜기가 만나서 새로운 반전의 역사를 쓰게될지 햔후 전개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PB상품을 포함한 시장점유율, AC nielsen data+업계 추정치등을 종합]
연도별 히트상품 추이 – 꾸준한 순위 상승한 오뚜기 진라면, 참깨라면
아래는 연도별 히트라면을 연도별로 정리해본 것입니다. 아래 조견표에도 나오지만 노란색이 오뚜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오뚜기에는 12년이래 특별한 신제품은 없습니다. 단 2015년 하반기에 출시한 진짬뽕은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대신에 오뚜기의 라면들은 계속해 순위가 상승합니다. 진라면 매우맛, 진라면 순한맛 그리고 참깨라면까지 화살표가 보주듯이 해를 거듭할수록 순위가 상슬하고 있습니다 . 2013년 16위였던 참깨라면은 15년에는 13위로 성과를 내었습니다.
오뚜기라면의 성공 요인 세가지
그러면 오뚜기라면이 이렇게 상승세를 타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일관성있는 브랜드력의 강화 둘째는 소비자가 좋아하는 맛있는 라면 만들기 그리고 차별화 셋째는 공격적인 마케팅 투자
1 일관성 있는 브랜딩 전략 수행
오뚜기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일관성있게 대표 브랜드를 키우려고 했던 정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보를 인수한 오뚜기는 패키지디자인등 제품 전체에 오뚜기의 정체성을 입혀 1988년 3월에 오뚜기 진라면을 출시합니다. 오뚜기 진라면은 출시 이래 커다란 변동없이 30년가까이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신 끊임없이 시대에 맞추어, 소비자의 변화에 맞추어 맛과 디자인을 리뉴얼해왔습니다.
출시 당시 오뚜기 컬러였던 노란색을 바탕으로으로 포장디자인은 그 디자인 원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식 변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2011년 리뉴얼을 통해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었고 2014년 류현진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이를 반영한 정도입니다.
△ 오뚜기 진라면 패키지 디자인_초기와 2011년 리뉴얼
맛도 소비자의 변화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리뉴얼을 진행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경쟁사보다 맛이 덜어진다는 소비자 VOC를 반영하고자하는 것도 포함되었지만 지속적인 리뉴얼을 통해서 시대 및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해 경쟁력을 강화해 왓습니다.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라면을 먹은 주요한 소비자층중에 젊은층이 상당하기에 이들에게 젊은 브랜드이미지를 주는 것은 꼭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오뚜기는 진라면 대학생 서포터즈 JIN & JINY라는 그룹을 만드어 젊은층과의 교감을 강화해오고 있습니다. 2012년 제1기 진라면 대학생 서포터즈 JIN & JINY가 발대식을 올리고 활동한 시작이래 해마다 기수를 업그레이드하면서 SNS 등의 홛옹을 통해서 젊은 오뚜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도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류현진등을 통한 광고를 통해서 젊고 액티브한 이미지를 심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이 쌓여서 오뚜기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면서 확실한 2위의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진라면 대학생 서포터즈 JIN & JINY 모집공고와 발대식 모습입니다.
△ 오뚜기 진라면 대학생 서포터즈 JIN & JINY 모집 광고
△ 오뚜기 진라면 대학생 서포터즈 JIN & JINY 발대식
2 맛있는 오뚜기라면 만들기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것을 제품력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진리입니다. 라면에서 제일중요한것은 맛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오뚜기라면은 소비자들사이에서 맛있다는 평가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맛을 개선하는게 지상과제였고 이는 회장이하 전사가 달려들어 개선을 추진하였습니다.
진라면 출시시 신라면, 안성탕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맛으로 평가받아 주막받지 못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맛이 맹맹하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마디도 가격도 싸고 맛도 없는 라면으로 인식됐다.
함 회장은 진라면을 바꿔내는 데 주력했다. 경영진들을 모아놓고 시식을 한 뒤 맛을 개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라면은 지난 3년 동안 세 차례나 맛을 리뉴얼을 했다. 부족한 매운맛을 강화하기 위해 ‘하늘초 고추’를 사용하고, 스프에 쇠고기 플레이크, 당근, 버섯, 청경채, 대파 등을 첨가해 맛을 보강했다.
매주 경영진을 모아놓고 시식을 하는 등 맛으로 승부를 보자는 함 회장의 전략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초 세 번째 리뉴얼을 한 뒤 신라면보다 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냈다. [지니스리포트 인용]
또한 매운맛 일색인 라면 시장에서 순한맛을 출시해 순한맛 매운맛 두가지를 홍보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해왔습니다.
또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자 회사 자체적으로 나트륨 저감화 운동에 적극 나서 진라면 110g 기준 나트륨 함량을 1,970mg에서 1,540mg로 낮추면서도 매운맛은 하늘초고추를 사용해 더욱 강화하면서도 전체적인 국물 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스프의 소재를 다양화하는 한편 밀단백을 추가해 식감을 더욱 좋게 하여 제품력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이러한 맛있는 라면 만들기가 오뚜기 상승의 요인이 됨은 물론입니다.
3 적극적인 마케팅 투자로 오뚜기라면 인지도 높이기
오뚜기라면을 이야기할 시 류현진을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선수를 광고 모델로 쓰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또 고아고를 통한 진라면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습니다. ‘류현진라면’이란 신조어도 만들어질 정도로 널리 알려지고 소비자들도 진라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확 개선된 이미지는 그 때까지 품질개선을 계속해 온 맛있는 오뚜기라면과 만나 소비자만족도를 높이고 지속된 재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또한 오뚜기라면은 다양한 가격 할인 행사를 통해 소비자가 싶게 오뚜기 라면을 구매할 수 있게 했습니다. ‘5+1’ 행사(5개 묶음을 사면 1개를 더 주는 방식) 등을 통해서 가성비가 높은 라면으로 오뚜기라면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은결이가 휴게소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조금만 지만면 강촌IC지만 휴게소를 지나칠 수 가 없었다. 일요일 가평휴게소는 한산하였다. 여기는 장사하시는분들은 수지타산이 맞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일요일인데 넘 사람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집사람이 바로옆의 엔제리너스에서 커피 한잔. 한잔을 주문해서 그터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거기서 담아본 엔제리넛 신민아 광고..
관심을 가진 이유는 마치 맥주광고처럼 보였기때문에 저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 신민아라는 광고 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흑매주처럼 느낀 이유는 이 커피가 거품이 아주 풍부한 커피이기에 매주처럼 표현이 되었고 더우기 아메리치노의 이름에 있는 치노는 이탈리어로 거품을 의미한다고 한다. 영어+이탈리어를 조합해 만든 네이밍이라는 것릉 알 수 있다..
그리고 끝에 붙는 4.9는 가격을 의미한다, 4900원 엔제리너스는 메뉴이름 + 가격으로 네이미을 한다. 아메리치노 4.9 오렌지 필 소 굿 5.3 아메리카노 4.11
그런데 이게 이렇게 네이밍을 해놓았는데 가격이 인상이되면? 실제로 아메리치노 4.9는 초기에는 4900원이었는데 가격이 조금 오른듯..
엔제리너스 커피전문점의 광고를 보면서 이런 커피전문점이 신민아같은 빅모델을 기용하면 수지타산이 맞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빛좋은 게살구가 아닐까? ‘14년 기준으로 엔제리너스 연간 매출은 1,555억으로 업계 2위로 생각보다 가맹점이 많고 규모가 있는 커피전문점이긴하는데 연각 영업이익이 76억으로 넉넉한 편은 아닌듯..
그런데 인터넷 기사들을 보니 카페베네도 그렇고 엔제리너스도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상대적으로 이디야커피 스타벅스 성장세가 눈에 띄이고 여기에 백다방의 성장세를 추가해야 할듯.. 이렇게 커피 시장은 성장하지만 매출이 정체 내비 감소하는 위기속에서 엔제리너스는 신미아라고하는 빅모델 전략을 추진한것으로 보입니다. 그 성과가 어찌되는지 추이를 보아야 할듯
거기서 담아온 사진과 인터넷에서 찾은 관련 광고 이미지를 같이 공유해본다,
아래는 아메리치노에 대한 보도 기사 내용이다. 생각외로 관련 내용이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커피는 에스프레소 크림 커피 ‘아메리치노’를 출시했다고 27일 밝혔다.
아메리치노는 부드러운 에스프레소 거품과 진한 커피 풍미가 조화를 이루는 아이스 전용제품으로, 에스프레소커피를 얼음과 섞어 마시는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아메리치노 전용잔에 제공되며 가격은 레귤러 사이즈 기준 4900원이다.
엔제리너스커피 관계자는 “새로운 형태의 커피를 찾는 고객을 위해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즐기는 독특한 형태의 아이스 커피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비틀(Beetle)이나 뉴비틀(New beetle) 광고에 대해서 포스팅 후 뉴비틀 성공요인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뉴비틀 성공요인을 정리하다보니 예전에 단편적으로 알았던, 어쩌면 기억의 한계로 부분적으로만 기억했던 것들을 조금은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비틀 자동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크게 3가지를 봐야 할것 같다. 첫째는 비틀(Beetle) 탄생 이야기 둘째는 비틀(Beetle)이 미국으로 수입되면서 성공의 발판이 된 Think small Campaign 그리고 세번째 비틀(Beetle)의 부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 뉴비틀(New Beetle) 사례가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첫째와 둘째는 간략히 언급하고(history를 알아야 전체 파악이 되므로) 세번째인 뉴비틀 (New Beetle)의 성공요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938년, 독일 국민차 폭스바겐(Volkswagen, Original Beetle)의 탄생
1933년 8월, 히틀러는 당시 유명한 스포츠 카 디자이너였던 포르셰(Ferdinand Porsche) 박사에게 아래 여섯가지 조건에 맞는 국민차를 개발할 것을 요구한다.
1) 어른 2명(부모)과 자녀 3명이 함께 탈 수 있고, 2) 아우토반에서 최고 시속 100km로 주행하며, 3) 연비는 14km/리터 이상이고, 4) 후반 엔진은 신뢰도 높은 모터를 채용한 공냉식이며, 5) 3명의 군인과 기관총을 실을 수 있고, 6) 차의 가격은 1천 마르크 이내여야 한다.
이러한 매우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포르쉐 박사는 1936년 10월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는 ‘국민차(Volkswagen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의미 임)’를 개발하게 된다.
이 폭스바겐(Volkswagen)은 유럽의 좁은 땅, 좁은 도로 사정에 딱 맞는 국민차로, 나오자마자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60여 년 동안 3천만 대라는 경이적인 숫자의 생산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 생산에 최장수 차라는 점 등의 각종 기록을 갖게 된다.
1955년 미국으로 수출되면서 비틀(Beetle)이란 이름을 얻다 – 1959년 Think Small campaign
이 폭스바겐(Volkswagen)이 비틀(Beetle)이란 이름을 갖게 된것은 그 모양이 딱정벌레같다는 데에 착안한 미국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 미국으로 수출되는 폭스바겐(Volkswagen)은 비틀(Beetle)로 불리우게 되었다.
1950년 미국에서는 크고 럭셔리한 자동차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고 당연히 미국 사람들은 커다란 자동차를 사고 싶어했다.
이러한 심리적 저항을 해소하기 위해 폭스바겐은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광고 캠페인을 준비하게 된다.
1959년 미국의 유태계 광고회사인 DDB는 독일제 폭스바겐 광고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그런데 광고 대행사는 광고 제작을 위해 독일제 폭스바겐을 살펴보다가 실망하게 된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크고 힘세고 화려한 디자인의 차가 잘 팔리던 아이젠하워대통령 시절이었기 때문에 너무 작고 못생긴 데다가 값이 싼 폴크스바겐을 보고 광고 대행사 담당들은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어쨌든 들어온 일거리라서 DDB사는 독일에 있는 폴크스바 겐공장에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실무자를 파견했다.
여기서 그들은 이 딱정벌레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싸고 훌륭한 성능과 품질을 가진 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경제적인 차’ 라는 것을 광고의 주 테마로 삼아 폭스바겐을 정직하게 표시하기로 결정하고 ‘작은 것을 생각하세요(Think Small)라는 헤드라인의 명광고를 제1탄 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Beetle은 1965년에 미국의 수입차 시장에서 점유율 67%를 자치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고 실용주의자들이 모는 차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된다.
또한 이 멋진 광고는 광고 전문지 <애드에이지(Ad Age)>에서 선정한 ‘20세기 100대 광고 캠페인’에서 1위를 차지한다.
비틀(Beetle)의 몰락.
그런데 폭스바겐은 비틀(Beetle) 성공의 자만에 빠져 더 크고 비싼 고급차로 모델 확장을 시도하였는데 이것이 Beetle 몰락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소형차를 잘 만드는 회사가 내놓은 대형 자동차를 선뜻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급차시장 진입의 좌절, 경쟁사들의 수많은 경쟁 제풀 출시로 점차 판매는 감소하게 된다. 결국 판매가 계속 감소하여 1993년에는 수입차시장내의 비중이 3%이하로 급감하게 됩니다.
아래 Graph를 보면 Beetle의 판매는 1969년을 정점으로 지속하락하여 1977년 미국 생산중단, 1978년 유럽 생산 중단, 그리고 2003년 마지막 생산라인이던 멕시코 생산을 중단으로 비틀(Beetle)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뉴비틀(New Beetle)로 부활하다
1993년 포르쉐 박사의 손자이자 당시 폭스바겐의 자회사, 아우디(Audi)의 수뇌였던 페르디난드 피치(Perdinand Piech)가 폭스바겐의 경영을 맡게되면서 비틀 부활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1994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모터쇼(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에서 뉴비틀의 컨셉카였던 Concept1를 에서 선보였다.
모터쇼 전시 후 회사로 3만 5천여 통이 넘는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고 그 내용들은 컨셉카에 대한 찬사였다. 이러한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폭스바겐은 드디어 새로운 비틀의 탄생을 결정하게 된다.
모터쇼에 출품된 Concept1의 디자인은 오리지널 비틀의 많은 영향을 받아 디자인 되었다. 에전 비틀의 외형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고 내부를 현대화했다.
이는 모터쇼에서 발표한 컨셉카의 디자인과 컨셉카 소개 브로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 1994년 발표한 컨셉카 Concept1의 컨셉 스케치
▽ 1994년 발표한 컨셉카 Concept1 소개 브로셔(Concept1 Bbrochure)
▽ 1994년 발표한 컨셉카 Concept1 Cabriolet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폭발적 반응을 기반으로 1998년 뉴비틀(New Beetle)을 성공적으로 출시한다.
뉴비틀(New Beetle)은 미국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J Mays and Freeman Thomas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
이는 기존 비틀(Beetle)에 비해 월등하게 향상된 성능과 디자인, 그리고 편의기능을 바탕으로 그 자체가 독톡한 Purple Cow가 되어 판매가 덤차 증가한다. 그리하여 2007년 미국에서 50만대 판매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1. 뉴비틀(New Beetle)의 Targeting
뉴비틀(New Beetle)은 출시 시 어쩌면 상반된 2가지 중요한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 즉 과거 비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Play on the nostalgia)과 신세대에 어필해야 하는 것(Appeal to the new generation)이 그것이다.
하바드 비지니스 리뷰에서는 뉴비틀(New Beetle)의 타겟 고객을 young generation과 baby boomers의 두 가지 segment로 선정하는 메인 스트림 전략(Main Stream)을 취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Young Generation : 그동안 ‘Drivers Wanted Campaign’ 을 통해 확고하게 인식된 자기만의 개성 표출, young, look different, person’s car, unique, driving experience 등과 같은 이미지를 젊은 세대들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하며 이를 통해 entry car로서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Baby boomer : 과거 Beetle 에 대한 향수와 마음은 아직도 젊다는 생각을 New Beetle이라는 매개체(secondary car)를 통해서 실현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주말 이나 여가용 secondary car로 인기를 얻을 수 있다. [http://happist.com/index.php?document_srl=7320 인용]
Baby boomer 와 Yonng generation의 공통분모를 찾음
Baby boomer vs Young → refine target group
2. 뉴비틀(New Beetle)의 제품 전략
뉴비틀(New Beetle)의 제품 전략에 대해서는 아래 5가지로 크게 정리해 볼 수 있다.
크게는 엔지니어링관점과 디자인관점으로 나눌 수 있는데 German Engineering과 Spirited Design으로 크게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다.
German Engineering은 합리적 가격에 독일 기술을 적요했다는 점과 소형차이면서도 우수한 드라이빙 성능을 나타낸다는 점이고, Spirited Design은 Circular shapes의 아니코닉한 디자인과 Heritage & originality 그리고 다양한 Color로 정리할 수 있다.
1) 합리적인 가격에 독일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 (German Engineering at an Affordable Price)
뉴비틀(New Beetle)은 폭스바겐의 골프 플랫폼중에서 최상위 라인업에 기반을 두고 개발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폭스바겐의 첨단 기술을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첨단 기술을 소현차에 적용함으로써 German Engineering at an Affordable Price라는 제품 소구점을 만들 수 있었다.
기존비틀과 다른 전면에 위치한 엔진룸과 수냉식 냉각방식
포 휠 디스크 브레이크(Foue wheel disc breaks)
12큐빅 피트(약 338L)에 달하는 넓은 뒤 트렁크(Access to 12 cubit feet storage space in rear hatch)
전면 사이드 에어백 / 에어컨 / 6 스피커 사우드 시스템이 기본 장착
2) 우수한 드라이빌 성능( Superior Driving Performance)
뉴비틀(New Beetle)은 독일 폭스바겐의 첨단 기술을 적용한 소형차로서, 소형차답지않게 뛰어난 디라이빙 성능을 제공하고 있다.
최고 속도 Max speed: 177–210 km/h (110-131 mph)
빠른 제로백 Acceleration (0–96 km/h | 0-60 mph): 6.5-13.2 sec
3) 아니코닉한 디자인(Iconic Design)
뉴비틀(New Beetle) 디자인에서의 숙제는 과거 비틀 디자인 유산과 미의 기하학적 디자인 요소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뉴비틀(New Beetle) 디자인 시 4가지 원칙을 고수하였다.
Honest
Simple
Reliable
Original
뉴비틀(New Beetle)의 라운드 디자인은 Inviting, Friendly,Completeness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결과로 나온 뉴비틀(New Beetle)의 아이코닉 디자인은 첨단의 독일 엔지니어링을 만나 그 진가를 꽃피우게 된다.
4) Heritage & originality
뉴비틀(New Beetle)에서 유산과 오리지널리티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장 핵심적인 오리질리티(Originality)는 과거의 이름 비틀을 계승한 뉴비틀이라는 이름이다. 또한 폭스바겐 로고를 제외하고 어떠한 엠블렘도 없앰으로서 심플함을 극대화한 점도 그 중의 하나라로 볼 수 있다.
또한 디자인에서 라운드된 디자인 형태도 비틀에서 그 origin을 찰을 수 있다.
또한 과거 비틀의 광고 및 마케팅 활동을 통해서 형성된 브랜드 이미지도 중요한 heritage라 할 수 있다. 1994년 디트로이트 모토쇼에서 소개된 C1이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것도 이러한 과거의 heritage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뉴비틀(new beetle)이라는 네이밍
엠블렘없는 심플한 디자인
Circular shapes
Brand image
5) 젊은 세대를 유혹하는 다양한 컬러와 턱톡 튀는 컬러 네이밍(Vabrant Colors)
뉴비틀에 대해서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차의 색깔이다. 은색, 노란색, 연두색 등등,,,. 이전의 자동차에서는 생각해 볼 수도 없었던 다양한 색깔의 자동차를 선보였다.
카메오 블루
레몬 옐로우
사이버 그린 메탈릭
테크노 블루
실버 애로우
뉴비틀의 톡톡 튀는 색깔은 안드레아 힐러르트가 이끄는, 16명으로 구성된 폭스바겐의 디자인팀의 연구 결과이다.
이 디자인팀은 폭스바겐 자동차의 직물, 가죽, 표면, 그래픽 등 여러분야의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각 자동차 모델별로 팀을 이루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새로운 색체 컨셉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패션계나 인테리어 업계의 색채 경향을 조사하고, 박람회나 전문잡지를 통해 국제적인 색채를 경향을 조사하고, 박람회나 전문잡지를 통해 국제적인 색채 경향을 먼저 조사하게 된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하는 자동차 모델의 형태를 고려하여 차색깔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데, 이는 색깔이 자동차의 형태를 이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뉴비틀의 색은 그 다양성뿐아니라, 각각의 이름으로도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카메오 블루, 레몬 옐로우, 사이버 그린 메탈릭, 테크노 블루, 실버 애로우 등등,,,,. 뉴비틀의 색을 나타내는 이름은 정말로 기발하다.
이 이름들을 정할 때, 디자인팀은 여러 과정을 거쳐 색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그 색이 연상시키는 이름을 선택하였다.
그와 동시에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일반적인 색이름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것이 뉴비틀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김민주저 마케팅 어드벤처 인용)
▽ 2010년 뉴비틀 컬러 테이블
3. 뉴비틀(New Beetle)의 가격 포지셔닝(price positioning)
타겟에서 정의한대로 Young Generation에게는 Entry Car로, Baby boomer에게는 여가용 Secondary Car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Base Model Price는 15,200$에서 시작했으며 List Price(Including CD player, skylights,etc.)는 17,000$ ~ 18,000$로 포지셔닝 한다.
당시 소형차들은 11,000$에서 17,500$사이에 포지셔닝 되어 있었음으므로 뉴비틀(New Beetle)은 당시 소형차 가격대비 높은 premium price으로 포지셔닝 된것이다.
당시 뉴비틀(New Beetle)이 내세운 Performance, Heritege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3가지 프리미엄 요소를 부각해 Golf, Jetta 등의 기존 line-up을 고려한 가격대로 기존 소형차 시장의 cannibalization을 막고 New Beetle만의 시장 창출을 위함이다.
또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trading up trend(자신에게 고관여된 제품에 대해서는 가격보다는 높은 만족을 주는 최고의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성향)를 고려했을 때, 그들에게 자신만의 identity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New Beetle이 주는 가치와 benefit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면 premium charge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baby boomers에게는 secondary car로 New Beetle을 구입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Drivers Wanted Campaign’을 통한 이미지 변신으로 판매량이 늘고 있는 Jetta, Golf의 중간대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제품들간의 Cannibalization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http://happist.com/index.php?document_srl=7320 인용]
아래는 1998년 당시 소형차시장에서 시장 참여 브랜드간 브랜드 인식 및 가격 포지셔닝을 map으로 그려본 것이다.
뉴비틀(New Beetle)은 상당히 Unique하면서도 가격은 소형차 세그내에서는 상위에 포지셔닝된 것을 알수 있다.
4. Promotion 전략
그 당시 일반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경우 광고 프로모션비용으로 1M$정도를 책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신제품에 대한 충분한 재정지원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책정된 예산은 25만$에 불과했다.
이 적은 예산을 가지고 충분한 광고 communication 효과를 얻기위해 기존 집행하던 Communication을 적극 활용한다. 즉 기존에 진행하던 “Drivers Wanted Campaign”의 틀 아래에서 뉴비틀(New Beetle)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다.
1) TV광고 :
기존 “Drivers Wanted Campaign”을 활용하여 광고에 등장하는 자동차로 Nee Beetle을 사용한다.
뉴비틀(New Beetle) 런칭광고 “heart” ‘The Engine is in the Front, but it’s heart is still in the same place’
2) 잡지 광고 : 기능성보다는 이미지를 강조
이미지를 강조하는 자동차이므로 자동차 전문 잡지보다는 패션, 취미, 건강 등을 다루는 잡지(총4종 선정)에 광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 총비용: 3,690$(전체 예산의 1%)
젊은 세대 Target 잡지: Spin, Entertainment Weekly, Vogue
Baby Boomers Target 잡지: Glamour, Vogue
3) Display & 경품 행사
대학교 내 Nee Beetle 전시장 마련 및 시승 기회 제공
Ralph’s 등 대형 마켓에 전시 및 경품으로 제공
스포츠 경기 경기장 필드 안에 전시 및 우수 선수에게 경품으로 제공
운동 경기 경품으로 후원 è 경기중 자연스럽게 방송 매체에 노출됨
4) Co-marketing
젊은 세대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특정 카드회사와 제휴하여 자동차 할부 구매 시 할인 혜택을 준다.
AOL과 같은 온라인 사이트와 연계하여 배너 광고를 실시하고
AOL User에게 New Beetle 이미지의 Screensaver free download의 기회를 제공한다.
5) 퍼레이드 쇼 이벤트
New Beetle 차량 50대가 연이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이벤트를 실시하여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노출 효과를 높이고 New Beetle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얼마전 광고문 교보문고를 들렀습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교보문고 건물에 걸려있는 시귀를 핸드폰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너무 흐려서 아쉬워 인터넷을 찾아보니 교보문고에서 그 글귀를 올려놓았네요..
오늘은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중에서 마음에 드는것 몇개를 공유해봅니다.
광화문 글판은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1991년부터 광화문 네거리에 걸기 시작했습니다.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을 다시 찾자’로 초기에는 캠페인성 표어가 주로 내걸렸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후에는 고은 시인의 ‘낯선 곳’으로부터 시작해 감성적인 시귀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에 네번에 걸쳐 새롭게 시귀를 내걸음에 따라 어느덧 광화문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면서 한번쯤 쳐다보고 잠시라도 사색에 잠기기도하고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2015년 9월 교보문고는 지금까지 걸렸던 시귀들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귀를 뽑는 온라인투표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나태주시인의 ‘풀꽃’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고, 이어서 정현종시인의 ‘방문객, 세번째는 장석주시인의 ‘대추 한알’ 네번째는 도정환 시인의 ‘흔들리면서 피는 꽃’이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조사 결과와 제 나름대로 골라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 베스트 10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나태주, 풀꽃 – 2012년 봄
시민들이 가장 좋았다는 글귀.. 나도 무지 좋아한다..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2 정현종, 방문객 – 2011년 여름
의미를 꼽씹어 볼수록 의미 심장한 시귀…
3 장석주의 대추 한알 – 2009년 가을
한 알의 대추도 모진 시련을 거쳐 한알의 먹음직스런 대추가 되었듯이 멋진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련을 격어야 한다는 교훈적인 시.. 그러나 시련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닌 시련조차도 감미로울 지경이다.
4 정호승의 풍경달다 – 2014년 여름
마치 불현듯 옛친구가 찾아올 것만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시귀
5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 2004년 봄
이 시귀 또한 나도 무지 좋아하는 시귀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었던 시귀..
6 김규동의 해는 기울고 – 2005년 여름
지친 마음에 편한 위로를 주는 시귀.. 이 글귀를 보고 위안을 얻었다는 인터넷의 글들이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마음을 글어 당기는 무엇이 있는 글귀네요
7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번은 없다 – 2015년 겨울
찰라 순간마다도 의미가 있다.. 오늘 하루 하루가 매번 소중한 순간 순간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