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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바나나맛우유의 성공적인 중국 진출과 위기 극복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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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온 기사를 보니 빙그레에서 운영하는 엘로우 카페의 반응이 좋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이를 계기로 매우 보수적인 빙그레게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하지 않을까하는 예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사에에서 바나나맛 우유의 중국 진출이 성공적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대체 어느정도인가 알고 싶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스터디해 보았습니다.

빙그레가 포화상태인 한국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2007년부터로 당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품목은 메로나, 비비빅, 곷게랑등이 그 후보군에 올랐었고 바나나맛우유는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시험삼아 시도해보는 제품이었습니다.

바나나맛우유의 중국 진출은 2008년부터 시도되었습니다. 통관 및 이에 따르는 유통기한의 문제 그리고 빙그레만의 독창성 등을 고려해 단지 타입의 바나나맛우유를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생각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아 비록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 가공유시장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지만 난립하는 미투제품 등으로 성장세가 꺽이고 맙니다. 이 난관을 새로운 마케팅 활동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하는 게 현재 상황입니다. 아래 2009년부터 매출액 트렌드를 살펴보면 극명히 알 수 잇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나나맛우유의 1) 성공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요인 2) 성장세 둔화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나나맛우유 중국 매출 추이 내용 보강.jpg

1 중국 가공유 시장 현황

중국에서 우유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된 제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우유의 영양이 풍부한 식품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식품이므로 중국도 학교에서부터 우유 소비를 촉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일본의 예를 보면 중국의 우유 시장은 1인당 우유소비량으로 판단 시 3배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0년 기준 중국 1인당 우유소비량은 9.6kg으로 한국 30.3kg, 일본 32.5kg의 1/3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97.1kg, 캐나다 94.3kg, 호주 109.2kg에 비해서 턱없이 낮은 수치이긴하나 식생활 패턴을 고려하면 한국이나 일본 수준까지는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우유 시장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흰 우유 중심이고 가공유 시장은 미비했습니다. 중국 전체 우유 시장 가운데 가공유 제품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우유는 ‘맛업는 음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안전하게 유통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에 중국의 유제품은 환원유를 기본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환원유란 원유에서 수분을 날리고 가루로 만들었다가 이후 물을 섞어 만든 우유를 말합니다. 이는 원유를 직접 사용해 만드는 제품 대비 신선도나 식감이 떨어지므로 우유가 맛없게 느껴지고 우유를 ‘맛없는 식품’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우유 인식이 나쁘고 가굥유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서 바나나맛우유가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많았던 게 초기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반대로 맛없는 우유라는 생각은 바나나우유처럼 맛있는 우유라면 승산이 있을 수 있다는 역설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바나나맛우유 중국 진입 전략

바나나맛우유 중국 진입 전략에서 눈여겨봐아야 할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맛을 최대한 높여 제품 매력도를 높이고 ‘브랜드’가 갖는 Originality를 고수
  2. 본격적인 공략을 위한 유통으로 편의점을 이용한 점
  3. 철저한 소비자 조사를 통해 타겟을 설정하고 이 타겟에 집중하는 마케팅 프로모션 진행
  4. 한류를 철저하게 활용한 마케팅
1. 맛을 최대한 높여 제품 매력도를 높이고 ‘브랜드’가 갖는 Originality를 고수

무릇 성공 사례에 제품의 이야기가 빠지고서는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제품이기 때문이지요. 평범한 제품이 멋진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으로 성공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바나나맛우유는 1974년 탄생되어 참으로 오랬동안 스터디셀러자리를 차지했던 제품으로 오랬동안 그 제품력이 검증된 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 수출하면서 바나나맛우유가 가지고 있던 핵심적인 경쟁요소를 맛과 브랜드의 identtity로 보고 이를 유지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바나나맛우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원유의 함량과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에 들어가는 원유는 85% 이상으로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긴하지만 높은 원유의 함량이 고유의 맛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를 계속 유지했으며, 중국 정부의 규제로 테트라팩만 수출이 가능한 시잠에서도 테트라팩에 들어가는 원유 비중을 최대한 높게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비중이 높을수록 우유 고유의 진한 맛을 이끌어낼 수 있기에 무수한 시행착오끝에 테트라팩에는 원유 비중을 60%이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 맛없는 환원유에 익숙하던 중국 소비자들은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맛” “달고 맛있으면서 진한 진짜 우유”라며 바나나맛 우유에 열광한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바나나맛우유가 가진 디자인적인 유산인 단지형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중국 진출 초기에는 냉장유통 및 유통기한 관리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단지형을 주력으로 삼아 유통도 백화점으로 선택하는 등 단지형으로 차별화를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2011년 구제역으로 살균제품인 단지형의 수출이 중단되자 테트라팩의 디자인에 단지형 이미지를 넣어 Originality를 살리고자 하였으며 상황이 호전더ㅣㄴ 2014년에는 단지형 수출을 재개함으로써 그 Originality를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나나맛우유 단지타입과 팩타입2 resize.jpg

2. 본격적인 중국 공략을 위한 유통으로 편의점을 활용

처음 바나나맛우유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백화점에 입점했습니다. 그것은

  1. 바나나맛우유는 냉장 제품으로 신선 유지를 위해 온도 유지가 어느정도 가능한 백화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으며
  2. 초기 단계에는 (특히 재고)관리의 용이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거래처로 한정해 거래할 필요가 있었으며
  3. 바나나맛우유는 어느정도 가격 프리미엄이 있으므로 구매력 있는 소비자층에 접근하는것이 필요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층이라면 어느 정도 소득이 있다는 반증이므로)

중국 상하이 백화점에 첫건을 보인 바나나맛우유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유를 맛없는 음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진하고 달콤하고 향이나는 바나나맛우유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으로 주었고 어느 정도 판매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난 2010년 초 발생한 구제역사태는 1년내내 이어지면서 급기야 한국산 유제품의 중국 수출이 금지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빙그레가 그동안 쌓았던 중국 진출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2011년 구제역이 잠잠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유제품 수출이 재개되었습니다. 수출을 재개하면서 기존에 접근했던 백화점외 편의점을 중점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외 편의점을 공략하는 이유는

  1. 중국 수출이 재개되었지만 단지형과 같은 샬균 우유는 여전히 금지되었고 온전히 멸균된 제품만 수출이 가능했습니다. 빙그레로서는 멸균된 우유 제품인 테트라팩만 수출할 수 있었기에 온도 관리가 철저한 백화점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유통기간이 길고 상온 보관이 가능한 테트라팩만 수출한다면 소비자가 제한적인 백화점이 아니어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2. 앞서 바나나맛우유가 중국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고, 소비자들이 새로운 맛으로 느낀다는 것을 학인했으므로 빠르게 중국 소비자에게 다가갈 유통이 필요했습니다.

편의점은 소득이나 소비 성향이 편향되지않고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드는 유통이므로 단기간내에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는 유통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중국 유통 형태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업테중하나입니다. 아래 그래프로 보면 편의점수는 CAGR 20%, 매출액 증가는 CAGR 24%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편의점의 최대의 단점은 복잡한 유통 구조로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중국 현지에서 만든 유제품은 4위안(하화 약 700원)인데 반해 바나나맛우유는 8.5위안(한화 약 1400원)으로 배이상 비싸게 책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 무비싸서 소비자의 시돚차 않할 염려가 있어 맛에서 철저한 차별화가 될 수 있도록 했었습니다.

중국 편의점(CVS) 증가추이.jpg

이러한 편의중 중심 전략은 일반적으로 고급 제품은 백화점, 저가 제품이면 할인점등에 먼저 진입해 인지도가 높아지고 쉽게 구매로 이어진다면 편의점으로 진입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품을 노출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편의점부터 진입한 전략은 기존 생각을 흔드는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철저한 소비자 조사를 통해 타겟을 설정하고 이 타겟에 집중하는 마케팅 프로모션 진행

초기 편의점을 메인 유통으로 진입하면서는 정확한 타겠을 설정하지는 않았으나 판매가 진행되면서 보다 집중된 마케팅을 해야한다는 필요에 따라 소비자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는 소비자를 대상으로한 갱 서베이(Gang survey), FGI(Focus Group Interview)가 진행되었고 매장 바이어나 편의점주를 대상으로하는 유통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하이 시내에서 무작위로 행인을 잡아 질문 하는 약 500~600명의 갱 서베이(Gang survey)로 진행했고 이후 구매자와 비구매자로 나누어 심층면접조사 즉 FGI(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해 바나나맛우유에 대한 이미지와 음료 후 맛과 향에 대한 집중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 바나나맛우유를 주 구매자는 20∼30대 여성 직장인들로, 이들은 보통 오후 3∼4시쯤 또는 퇴근시간대 한 번에 10개 이상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근무하다가 출출해지는 오후 시간대에 동료들과 함께 바나나맛 우유를 구입해 나눠먹거나 퇴근하면서 사들고 들어가 한 번에 몇 개씩 마시는 직장 여성들의 특징이 파악된 것입니다.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짭니다.

  1. 이들은 인터넷이 익숙한 젊은 세대이므로 중국말로 된 빙그레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으며
  2. 인터넷 사이트 가입자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선정된 사람의 사무실을 깜짝 방문해 제품을 대량으로 배달해주는 오피스 어택(office attack)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이들을 SNS상에서 자동적으로 입소문이 퍼졌고, 당첨된 소비자들의 후기가 SNS를 통해 속속 올라오고 공유되면서 오피스 어택을 바나나맛 우유 마니아라면 당연히 신청해야하는 그들만의 문화로 인식된것입니다.
  3.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바나나맛우유 계정을 만들어 이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이런 현상으로 더욱 확산 할 수 있었습니다.
  4. 또한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주요 매장에서 시식행사를 지속해 중국 소비자들에게 바나나맛우유를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제품에의 자신으로 한번 맛본 소비자는 만드시 바나나맛우유를 찾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오피스 어택(office attack) 이벤트는 2013년 4월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빙그레 페이지에서 신청을 받아 대상자 100명을 선발해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도록 1명당 100개의 ‘바나나맛우유’를 빙그레가 선발한 잘생긴 남성들이 젊은 여성 직장인들에게 배달해주어 인지도를 높이고 주변에 입소문을 내는 효과까지 노린 이벤트였습니다. 이벤트에 당첨된 여성들에게 우유를 전달하면서 다트 게임, 마술 등의 이벤트도 벌여 자연스럽게 행사가 온라인에 노출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중국의 바나나맛 우유의 웨이보 기업 페이지는 9개월 만에 팔로어(follower)를 53만명으로 급증했으며 덩달아 매출도 급상승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오피스 어택(office attack) 인증 샷,
빙그레는 한때 초기 수출 물량의 10%를 이 샘플링 물량으로 활용할만큼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오피스어택 이벤트 인터넷에서 퍼옴.jpg

4. 한류를 철저하게 활용한 마케팅

이 제품의 홍보에는 한류라는 긍정적인 문화현상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우선은 소녀시대나 이민호와 같은 중국에 널리 알려진 한류 연예인을 활용해 시너지를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소녀시대가 소개하는 바나나맛우유,
소녀시대는 2009년 바나나맛우유의 광고 모델이었음
바나나맛우유 소개.jpg

이민호가 소개하는 바나나맛우유,
이민호는 2010년 바나나맛우유의 광고 모델이었음

바나나맛우유 이민호.jpg

또한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 수가 빠르게 증가하자 중국인들의 관광 동선에 있는 마트와 편의점에서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를 적극 홍보하는 전략을 폅습니다. 즉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형마트(서울역 롯데마트,용산역 이마트 등)나 명동 주변의 편의점 등에 중국어로 표기된 가격표와 네임택(name tag)을 붙이고 해당 매장에 홍보물을 설치하거나 매장 안에서 판촉행사를 주기적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또한 중국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에도 주요 관광명소를 따라 바나나맛 우유 홍보를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인들은 해당 장소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며 ‘인증샷’을 찍었고 이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며 입소문을 퍼트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해외관광객 대상 바나나맛우유 홍보02.jpg
위 사진은 www.interohrigin.com/ 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3 미투제품의 범람으로 성장이 꺽이다 –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서

바나나맛우유의 성공적인 중국 시장 진입 후 빙그레는 승승 장구합니다. 2009년 5억 매출이 2013년에는 155억으로 급증한 것입니다. 물론 중국시장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본다면 이 수치도 높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매출액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경쟁사들의 미투제품이 범람하면서 빙그레 바나나맛우유의 매출은 꺽이기 시작합니다. 바나나맛우유만의 차별성이 퇴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래는 이건영 빙그레대표의 인터뷰내용입니다. 여기를 보면 중국 현지 짝퉁 제품이 100여개가 넘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나나맛우유 가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중국 현지 유가공업체들이 앞다투어 짝퉁 제 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빙그레가 자체 파악 한 짝퉁 바나나맛우유가 100여종을 웃돌 정도도 짝퉁 천지였다. 이건영 대표는 “주문이 늘었지만 현지 생산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나나맛우유는 믿을 수 있는 한국산 식품이란 점을 마케팅에 활용할 것입니다” 라고강조했다.

바나나맛우유 중국 진출 인터뷰 기사-헤럴드지.jpg

2014년 100억으로 30%이상 감소했으며 2015년도 88억으로 지속 매출 감소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역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빙그레는 마케팅력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바나나맛우유의 중국매출 추이 그래를 다시 보면서 이 상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바나나맛우유 중국 매출 추이 내용 보강.jpg

1. Originality를 강조하기 위한 단지 타입 바나나맛우유 공급 재개

중국 매출이 감소함에 따라 바나나맛의 원조를 강조하고보다 풍부한 맛의 제공을 통한 브래드력을 강화하고자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우유 수출을 재개합니다. 이 제품은 중국 진입 초기에 백화점에 입점했었으나 2010년 구제역 사태이후 수출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9자의든 타의든)

바나나맛우유 단지타입.jpg
2. 한류스타 이광수를 모델로 발탁, 반전을 노리다

중국에서 한류의 인기가 높고 중국 내 글로벌, 로컬 브랜드들이 한류 스타를 모델로 활용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도 이런 흐름을 고려해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욱 영향력이 큰 이광수를 모델로 활용코자 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빠 어디가>, <나는 가수다>, <런닝맨> 등 다수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특히 <런닝맨>은 예능프로그램중에서도 수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출연한 이광수는 ‘아시아의 프린스’라고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중국 바나나맛 우유 광고모델 이광수- 합치기.jpg

3. 온라인을 중심 마케팅 강화

중국에서 온라인 사용자의 방문 빈도를 보면 검색 포털 > 쇼핑 사이트 > 영상미디어 순으로 사용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영상 미디어 플랫폼에 소비자 1인의 한달간 평균 체류 시간은 5시간 30분일정도로 중요한 플랫폼입니다. 그것은 공중파가정부의 규제로 다양한 컨텐츠를 소개하지 못하자 이를 대신하는 미디어 플랫품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히트한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이 등장하므로 공중파에서 방영할 수 없습니다. 흑세무민한다는 중국 정부의 규제로.. 공중파를 대신해서 아이치이(iQiyi), 요쿠(Youku) 같은 미디어들이 이를 방영하고 있고 엄청 대박을 치고 그러면서 그 영향력이 갈수록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미어어 플랫품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을 활발하게 전개해 인지도를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라인 전용 동영상을 제작해 최대 영상 미디어인 아이치이(iQiyi)와 긴밀히 협력해 미디어 내 소개 페이지를 제작, 홍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표적인게 이광서를 모델로 만든 이광수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Duang 뮤직비디오 영상입니다

빙그레는이광수를 활용한 온라인 영상 콘텐츠 2편을 제작해 공개했는데 두 달이 안되어 40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광수빙그레를만나다#라는 해시태그는 중국 SNS 웨이보(Weibo)에서 조회수 2000만 회를 초과하며 웨이보 플랫폼 내에서 화제의 주제로 선정되기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 콘텐츠 영상은 2015 CIAF(China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서 수상할 정도로 대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는 떠오르는 이광수라는 모델 선정, ‘Duang’이라는 중국 유행어를 담아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를 이끌어낸 점, 아이치이와의 긴밀한 협력과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 위챗(Wechat) 등 중국 내 주요 온라인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 등이 어울린 좋은 결과로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바나나맛우유의 멋진 반전을 기대하며

2014년부터 꺽이기 시작한 중국에서 바나나맛우유의 매출은 아직 반등한 기미가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언론 플레이인지는 모르나 2016년 1분기 현재 실적은 양호하므로 반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시장이 한국 기업이 공략해 어느정도 오랬동안 마켓 리더가 되는 사례가 없을 정도로 힘든 시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삼성 현대 등 내노라하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맥을 목추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빙그레가 바나나맛우유로 중국 시장에 진입해 가공유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혁혁한 전과가 계속해서 새로운 혁신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서 중국 가공유 시장을 지배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다시 부활하는 신화를 쓰길 기원해 봅니다.

빙그레 중국 사이트의 바나나맛우유.jpg
바나나맛우유 중국 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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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광고 베스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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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사례를 살펴보면서 여러가지 광고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인상 깊은 광고 15개를 뽑아 공유해 봅니다.

스타벅스는 일반 회사들과달리 Mass marketing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코카콜라 등이 하는 것처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규모의 마케팅 캠페인을 보기 힘듭니다.

보다 디테일한 타겟에 맞춘 PPL이든 SNS든 타겟용 잡지광고등에 집중하고 잇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스타벅스도 글로화되었고 스타벅스 브랜드가 점차 진부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브랜드에 신선함을 불어넣을 수 있는 광고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에 소개된 광고는 주로 인쇄광고들로서 조금 오랜된 광고가 주를 이루고 있네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 나온 스타벅스 PPL

▼ 스타벅스 광고는 아니지만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니다의 전반부를 비롯한 곳곳에서 스타벅스 커피가 등장합니다.
브랜드 이미지와 영화에서 전달하려는 메세지 내용이 잘 어울러져 스타벅스 이미지를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를 PPL로 본다면 이 영화에의 PPL로 정말 성공적이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니다주에서 스타벅스 PPL_The.Devil.Wears.Prada.2006 포스팅용.jpg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니다주에서 스타벅스 PPL02_The.Devil.Wears.Prada.2006 포스팅용.jpg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니다주에서 스타벅스 PPL03_The.Devil.Wears.Prada.2006 포스팅용.jpg

너의 이름을 불러주마!!

▼ 스타벅스의 마케팅 활동 중 많은 긍적적 반응을 받았던 커피잔에 이름을 적고 이름을 불러주는 캠페인

스타벅스 광고 Catch up with a friend on us.png



최고의 커피는 저절로 만들어 지지않아!!

▼ 최고의 커피는 저절로 만들어지 않는다는 스타벅스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광고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great Coffee.jpg



▼ 같은 내용이지만 한국에서 2011년 집행되었습니다.

스타벅스 광고 한글 Great coffee doesn't make itself.jpg



당신이 마시는 커피가 완벽하지 않다면..

▼ 스타벅스에서 완벽한 커피를 마실 수있다는 오만에 가까은 광고 문구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if your coffee isn't perfect.jpg

 

▼ 위와 비슷한 메세지이지만 보다 세련되고 스타벅스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해 표현되었다.
광고 집행 시기 : 2013

스타벅스 인쇄광고 starbucks print ads 03 If your coffee isn't perfect resize.jpg

 

커피에 미쳐있는 사람들!!

▼ 스타벅스 사람들은 항상 커피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We are always been crazy about coffee.jpg



냅킨에 남겨진 커피잔의 흔적으로 멋진 광고가 탄생하다!!

 

▼ 2007년 4월 15일 10시부터 정오에 다시 만나요.
2007년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스타벅스 광고

 

스타벅스 신문광고 reconnect 20050512 뉴뇩타임즈 resize.jpg



▼ 스타벅스 쿠반커피를 소개합니다.

스타벅스 인쇄광고 starbucks print ads 10 coffee with a new rhythm.jpg



커피를 주문하면 주는 한 장의 넵킨에 여러 사람이 컵을 놓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커피 자국이 나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socialize’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구가 보이네요. 한 장의 휴지를 여러명이 사용했다는 것에서..
환경보존의 메시지와 스타벅스 매장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스타벅스의 가치를 함께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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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의 추억을 남겨주세요!!

 

▼ 스타벅스에서의 추억을 남겨주세여
광고 집행 시기 : 2013인가??

스타벅스 인쇄광고 starbucks print ads 06 2013 Message2 resize.jpg



스타벅스 인쇄광고 starbucks print ads 02.jpg



2013년 할러데이 캠페인 – 즐거움을 나눠요!!

 

▼ Share Joy
2013년 할러데이 캠페인, 할러데이 음료수를 사면 같이 먹을 수 있게 하나를 더 드립니다.

스타벅스 인쇄광고 starbucks print ads 22 share joy campaign resize.jpg



스타벅스 인쇄광고 starbucks print ads resize.jpg



스타벅스로 망중한을 즐겨보아요 – 거리에서, 놀이터에서, 사무실에서!!

 

▼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로 즐기는 망중한
2003년 영국에서 집행된 스타벅스 광고, .

스타벅스 영국 광고 2003 Puddle.jpg

스타벅스 영국 광고 2003 Desk.jpg

스타벅스 영국 광고 2003 Sandpit.jpg

분열, 공포, 냉소, 제한, 고립은 안되요!!

▼ 하워드 슐츠는 과감하게 정치적 발언을 자주하는데요.
이번 2016년 대선을 겨냥해 분열과 냉소와 두려움을 조장에 대해 반대하면서
이를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후보(트럼프로 추정)에 대한 반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016년 4월 24일 뉴뇩타임즈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렸다.

Annual_Meeting_2016_-_NYT_Every_Day_Choices_Ad resize.jpg
대선에 투표하면 커피를 드려요!!

▼ 2008년 대선에서 투표를 독려하기위해 스타벅스는 투표한 증거를 가져오면 커피를 주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당시 오바바에 유리한 캠페인이라는 지적에 결국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커피를 제공합니다.
2016년 10월 즈음 광고입니다.

스타벅스 광고 Vote.Give.Grow_Coaster resize.JPG
바틀 프라프치노를 소개합니다!!

▼ 여름이 다가오면 가장 인기있는 메뉴중 하나인 프라푸치노!!
이제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프라프치노를 즐길 수 있어요!
바틀 프라프치노의 특지을 잘 설명하고 있어서 공유해 봅니다.

스타벅스 광고 Vero 2010 Frappuccino.jpg
감성이 넘치는 파트너 구인 광고!!

▼ We are hiring coffee lovers,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파트너 구인 광고인데 감성적으로 끌려서 공유해봅니다.

스타벅스 구인광고 Newry.jpg

고전적인 스타벅스 인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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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인쇄 광고

2009년부터 집행된 광고들인데
커피에 대한 스타벅스의 철학을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타이틀, 그리고 스토리를 담은 설명으로 스타벅스의 이미지를 잘 전달하고 있는 스타벅스의 인쇄광고들입니다.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커피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갈색의 원두를 담는 마대 이미지를 살려서 광고를 만들었다고 합니다.한다. 갈색의 의미는 스타벅스커피의 거픔을 표현한다는 설명도 있더군요.

커피빈 coffee-beans-on-wood-texture.jpg

아래는 하워드 슐츠가 파트너(스타벅스 임직원)에게 새로운 광고를 소개하는 동영상입니다. 파트너라고 불러주는 첫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인터넷에서 광고 게재 연도등을 알수 있는 광고는 간략히 아래에 표기를 하였고 간략히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스타벅스 광고 great Coffee.jpg

최고의 커피는 저절로 만들어지 않는다는 스타벅스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광고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한글 Great coffee doesn't make itself.jpg

한국에서 집행된 광고, 이리저리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2011년에도 집행도힌 것으로 나오네요
한글이 들어있는 광고라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어로 된 스타벅스 광고 자료를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료를 보관하고 공유하는 마인드가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일까?

스타벅스 광고 Compromise leaves a really bad.jpg

최고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스타벅스 광고 if your coffee isn't perfect.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Only 3%.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Marlin
Creative Director: Matt Rose
Art Director: Brian Collins
Designer: Jared Tomlinson
Writer: Chris Rock

스타벅스 광고 There are few things.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2009년 스타벅스가 메뉴를 개편하면서 기존 커피 중심에서 보다 다양한 식품을 취급하기로 하면서 집행 한 광고로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USA 투데이등에 게재되었음
커피와 함께할만한 식품이 많이 않은데 스타벅스는 운좋게 커피와 궁합이 잘맞는 식품을 찾았다는 의미

스타벅스 광고 We are always been crazy about coffee.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는 2008년 스타벅스 셰어드 플래닛(Starbucks Shared Planet)을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윤리구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2015년까지 커피 원두 100%를 친환경 기법으로 재배하고 윤리적 거래를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광고는 100% 에스프레소 커피는 공정무역으로 구입했다는 것을 소구하는 광고입니다.

이 광고는 1998년 영국에 첫 매장을 오픈한 이래 가장 큰 광고 캠페인의 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이 광고에서 사용된 컬러는 스타벅스 브랜드가 주장하는 바, 분위기 그리고 갈색 거품 그리고 환경을 반영하는 그린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스타벅스 광고 We are the largest purchase of Fair Trade Certified.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Marlin
Creative Director: Matt Rose
Art Director: Brian Collins
Designer: Jared Tomlinson
Writer: Chris Rock

스타벅스 광고 Stop Pretending.jpg

이 광고는 위에서 소개한 광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윤리 경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데
닥치고 스타벅스 커피나 드셔!!!

스타벅스 광고 Beware of a cheaper cup of coffee.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소비가 급속히 얼어붙은 상태에서 스타벅스는 던킨 도너츠 커피나 맥도날드 커피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스타벅스 커피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광고입니다.
첫째, 스타벅스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만큼 비싸지 않다
둘째, 스타벅스는 비싼 값어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소구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광고 They think.jpg

위 광고도 경쟁사의 커피와 차원이 다른다는 것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은 단지 커피는 커피일 뿐이라고 생각하길 원하겠지만 물론 우리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야!!
우리는 스타벅스야.. 너희같은 싸구려 커피완 달라!!

스타벅스 광고 You'll always get a great cup of coffee.pn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Vero we craft.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Vero we scour the globe To pick from the top 5%.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09

스타벅스 광고 Vero Pike Place Roast.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10

스타벅스 광고 Vero So Smooth before you know it.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11

스타벅스 광고 Only one of these coffee is Handcrafted all the way from the Farm to You.jpg

스타벅스의 차별화를 이야기하는 광고

스타벅스 광고 Thank you fir voting us #1 best coffee again this year.jpg

광고 대행사 (Advertising Agency) : AMV BBDO
광고 집행 시기 : 2014
커피 경쟁이 격렬해지고 소비자들이 소비즈를 줄이자 스타벅스는 ZAGAT의 조사 결과를 응용한 새로운 광고를 선보였다.
ZAGAT는 2009년 패스트푸드 부분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로 스타벅스를 뽑았다.
이에 스타벅스는 BBDO와 함께 이를 홍보하는 광고를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USA Today에 게재하였다.

스타벅스 광고 Starbucks oe Nothing.jpg

스타벅스 광고 coffee 4.jpg

스타벅스 광고 coffee 3.jpg

▽ 프리미엄 인스탄트커피인 VIA를 출시하면사 낸 광고들,
이 광고들도 여전히 앞선 광고 법칙을 다르고 있다!!

프리미엄 인스탄트 커피 비아(VIA) 광고5.jpg

스타벅스 광고 Escape anywhere VIA resize.jpg

▽ 2013년 조금 최근에 집행된 광고들은 톤앤매너가 많이 달라졌다,
보다 모던한 이미지를 두려고 했을까? 폰트와 컬러, 배경등에서 변화를 주었다!!

스타벅스 광고 2013 Beware of our cup of coffee resize.jpg


스타벅스 광고 2013 This is what coffee tastes like when you pour yur ego intoit resize.jpg

광고 집행 시기 : 2013
이 시기의 광고는 기존 광고에 비해서 폰트가 많이 날카로워졌다고나 해야하나 명민해보이기는하나 정은 덜가는 폰트로 보인다

왜 스타벅스는 여전히 잘나가고 있을까? – 근본에 충실한 혁신의 달콤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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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관련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찾아본 스타벅스관련 자료들..

한국에서든 글로벌에서든 스타벅스는 왜 여전히 잘 나갈까?

근래에 들어선 스타벅스의 지속된 성장에 대해 논할 때, 2007년 스타벅스의 위기와 2008년 하워드 슐츠 회장의 CEO 복귀 그리고 그 혁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 스타벅스의 영속적 성장을 기치로 스타벅스가 다시 제대로 성장 할 수 있도록 혁신을 통해 재성장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그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2008년 스타벅스 위기 시 CEO로 복귀해 스타벅스를 혁신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2007년부터 본격화된 스타벅스의 위기

주가가 모든것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만큼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평가하는 곳이 주식 시장이므로 시장의 변화에 다라 회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살펴보기에는 또하나의 적절한 지표가 될 수 도 있겠습니다.

아래는 스타벅스의 상장시부터 현재(2016년 5월 17일)까지 주가 차트입니다.
이 차트를 보면 2006년 10월을 전고점 18.88$을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이렇게 하락한 주가는 2008년 말까지 지속 하락하다 2009년 1월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스타벅스 주가추이 resize2.jpg

이런 주식의 급락의 경제적인 배경은 2006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 의한 경제 침체가 있습니다만(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시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시기와 얼추 맞아 떨어지긴 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소비 침체를 견디어 낼 수 없는 허약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점입니다. 제품 경쟁력이나 브랜드의 건강함이나 경영 전략의 효율성이나..

아래는 연도별로 스타벅스 매장수 추이를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분기별로 자료가 있는데 매년 4분기를 기준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스타벅스는 2000년대에 들어와 폭발적으로 매장수를 증가시켰습니다. 너무나 많은 매장 수는 사람들의 우려를 살 정도였고 <가디언>지의 표현에 의하면 뉴욕 중심가에는 100m마다 하나씩 스타벅스가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각 스타벅스 점포는 같은 고객을 놓고 경쟁할 지경에 빠졌고 스타벅스 고객수 증가는 최상 최악으로 낮아져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졌습니다.

그 당시 매출(revenue)은 빠른 매포수 확장에 따라 전년비 21%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포당 소비자는 1% 증가에 그치고 있었으며(전년은 5%) 동일 점포의 매출은 5% 성장에 그쳐 근 5년이래 최악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스타벅스 글로벌 매장수 ( Starbucks Store count) 설명 추가.jpg

또한 스타벅스의 경쟁력 측면에서 살펴보면 세계 각지에서 스타벅스의 지위는 계속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스타벅스는 코스타(Costa)에 밀렸고, 캐나다에서는 시장점유율 60%로 압도적 강자인 팀호튼(Tim Hortons)에게 크게 밀렸고 한국에서도 엔젤리너스, 카페베네, 탐앤탐스 등의 거센 두전을 받고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리더쉽을 잃고 있었습니다.

2008년 맥도날드의 커피전문점 사업 진입

설상가상으로 레스토랑 체인의 최강자인 맥도날드도 커피전문점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는 모기지 프라임 사태 이전에 커피 사업은 수직에 가까운 성장을 거듭하는 매력적인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맥도날드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맥도날드는 자체 조사를 통해 커피 사업에 진출 시 10억달러 이상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 미국인의 5명 중 한명은 프리미엄 커피를 마시며, 연 4%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 맥도날드가 그간 쌓아온 신속성과 편의성이 커피 사업에서도 통할 것이다.
  • 커피 사업 진출시 매장당 12만 5천달러의 추가 매출이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2008년 가을부터 미국 1만4천여 맥도날드 옆에 맥카페(McCafe)라 불리는 커피 전문점을 열고 커피 전문가해 배치하고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four bucks is dumb – McDonalds 광고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구매력이 덜어진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던킨도너츠나 맥더널드의 커피는 좋은 대안이 되었습니다.

맥도날드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스타벅스를 공격했습니다.

아래는 당시 4$이상이었던 스타벅스를 비판하면 four bucks(4$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바보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집행했습니다.

▽ '4달러짜리 스타벅스를 마시는 것은 바보다'라는 맥도날드 광고,
이 광고는 http://scottstripling.com/mcdonalds에서 인용했다.

맥도날드 광고 - 4달러짜리 스타벅스를 마시는 것은 바보다

맥도날드 광고_4달러짜리 스타벅스를 마시는 것은 바보다 버스 광고

미 컨슈머리포트지는 맥카페의 커피가 더 낫다고 평가하다.

더욱 더 충격적인 사실은 2007년에 컨슈머 리포트의 시음 테스트에서 맥도날드 커피가 스타벅스 커피보다 낫다는 평가였습니다.

소비자로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맥도날드는 컨슈머리포지의 권위를 토대로 대대적인 PR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회자되었습니다.

▽ 미 컨슈머리포트지의 커피맛 평가 결과에 따라 커피맛 평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시작 되다.
단연히 스타벅스는 컨슈머리포트지의 평가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평가로 몰아부쳤다.

2007년 컨슈머리포트지 평가 보도 - 맥도널드 커피가 스타벅스를 이기다.jpg

그러다보니 스타벅스의 주가는 끝없이 하락하게 되어 2007년동안 42%나 하락하였습니다.

스타벅스에게는 비젼이 없다는 인식이 퍼진 것입니다.

2 200년, 하워드 슐츠 회장의 CE 복귀 그리고 혁신

이렇게 위기가 증폭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2000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회장직만 맡고있던 하워드 슐츠는 CEO로 복귀하여 위기에 처한 스타벅스를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아래는 2008년 1월 복귀 후 첫 연설 내용 중 일부.

"저는 그 동안 회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들의 스타벅스에 대한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실망을 알고 있고 또한 공감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지금처럼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 드립니다.
여기 청중 중에는 우리가 처음으로 전국적인 커피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그리고 우리가 역시 처음으로 한 명 한 명의 직원에게 스톡옵션과 건강보험의 형태로 평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양심을 가진 회사도 만들 수 있다는 젊은 기업가의 꿈을 믿었던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여러분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분들께 스타벅스를 다시믿어보라고 확신시켜드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우리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회사와 직원들, 그리고 우리가 거의 30 년 동안 해왔던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의 대부분은 성공이나 돈, 그외 성공할 때 일어나는 일 등으로 정의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번도 돈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강하게 믿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차이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우리의 부모 세대가 아마 한 번도 일 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그런 종류의 회사, 다시 말해 양심을 가진 회사를 만드는 것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정말 처음으로 시험대에 올라있습니다. 경제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핑계를 대고 싶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큰 역풍일지라도 말입니다. 경쟁 때문도 아닙니다. 대중매체의 과대선전을 믿지 마세요. 커피 전쟁은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스타벅스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워드 슐츠02 resize.jpg

하워드 슐츠는 2008년 1월 복귀하면서 스타벅스 개혁의 세 가지 전략을 발표합니다.

  1. 미국 내 스타벅스 사업 운영 상태 개선
  2. 고객과의 정서적 유대감 강화
  3. 경영의 기초의 장기적 변화

위 3가지 전략은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고 고객에게 영혼을 고취하는 영속적이고 위대한 기업이 되겠다는 스타벅스의 비젼을 달성하기 위한 7대 혁신을 주창합니다.

  1. Be the undisputed coffee authority(논의의 여지가 없는 커피 권위자 되기)
  2. Engage and inspire our partners(파트너들(스타벅스 직원들)을 고무시키고 참여시키기)
  3. Ignite the emotional attachment with our customers(고객과 정서적 교감에 불을 지피기)
  4. Expand our global presence—while making each store the heart of a local neighborhood(글로벌 기업으로서 각 매장을 해당 지역의 중심으로 만들기)
  5. Be a leader in ethical sourcing and environmental impact(윤리적 방식의 원두 구매를 지속하는 환경친화적 리더 되기)
  6. Creative innovation growth platforms worthy of our coffee(커피에 기반한 혁신적인 성장 기반 구축하기)
  7. Deliver a sustainable economic model(지속가능한 경제 모델 제시하기)
1. Be the undisputed coffee authority(논의의 여지가 없는 커피 권위자 되기)

하워드 슐츠는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커피를 제공해야한다는 철학에 따라 그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바리스타교육을 위해서
2008년 2월 26일 오후 5시 30분부터 9시까지 3시간 30분동안 미국 전연의 7100개의 스타벅스 매장 문을 모두 닫고 13만 5천 명의 바리스타에게 에스프레소 엑셀런스 트레이닝을 시킵니다.
이는 맥더널드 커피에게조차 우롱당했던 스타벅스의 커피맛을 바리스타 교육을 통해서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한것입니다. 영상물 및 인쇄물을 통해서 바리스타들에게 에스프레소를 완벽하게 뽑는 법과 우유를 올바르게 데우는 법등을 교육시켰습니다.

이 교육은 주주난 다른 경영진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습니다. 이 시간동안 영업을 하지 않음으로써 스타벅스는 6백만불의 소실을 봐야했으나 제대로 된 커피를 제공하기위해 문을 닫은 점은 고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이후 스타벅스 커피맛에 대한 고객의 평가는 굉장히 좋아지게 됩니다.

▽ 에스프레소 교육을 위해 묻을 닫는다는 스타벅스 매장 안내문,
그 아래는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즈 기사

스타벅스 3시간 문닫기03.jpg
스타벅스의 3시간동안 묻닫고 교육하기에 대한 뉴옥타임즈 기사 ㄱㄷ냨ㄷ.jpg
2. Engage and inspire our partners(파트너들(스타벅스 직원들)을 고무시키고 참여시키기)

스타벅스는 종업원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업원들은 직원이라 부르지 않고 파트너(partner)라고 부릅니다. 영미권에서 파트너는 동업자, 동반자 등을 칭하며 로펌이나 회계법인등에서는 파트너라고 하면 간부급을 의미하는 등 상당한 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타벅스는 기본적으로 종업원들을 존중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워드 슐츠가 복귀한 후 몇년간 개최하지 못했던 파트너들이 참여하는 리더쉽 컨퍼런스를 부활, 개최합니다.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홍수 피해를 겪고 있던 뉴올리언스를 행사 개최지로 선택했고, 스타벅스 파트너들은 뉴올리언스 복구 자원봉사를 함께 하고, 슐츠를 비롯한 여러 리더들의 연설을 들으면서 스타벅스의 가치와 실질적 정보를 공유합니다.
이때 스타벅스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젝 휘청이는 상태라 손익이 전년비 97% 급락하는 상황속에서도 혁신을 위해 비용 3000만달러를 들여 직원 1만명을 뉴올리언스로 집결시켜 컨퍼런스를 강행한 것 입니다.
이를 통해서 스타벅스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서 공유하게되고 침체에 빠진 스타벅스에 활력이 돌기 시작합니다.

▽ 2008년 뉴올리언스 리더쉽 컨퍼런스 모습,
많은 전문가들은 이 대회를 스타벅스의 턴어라운드의 계기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스타벅스 2008 글로벌 컨퍼런스 벽 낙서 Wall.jpg
스타벅스 2008 글로벌 컨퍼런스 대회장.jpg

2009년 스타벅스는 직원들에게 의료보장을 지속해서 제공키로 결정합니다. 이는 거의 2.5억불에 달하는 비용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이로써 스타벅스는 시간제 직원들에게 의료보험과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첫번째 미국 기업이 되었습니다.
2015년까지 시간제 직원들이 행사한 스톡옵션 가치는 무려 10억달러 이상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스타벅스는 시간제 직원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미국 내 직원 중 70%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으며, 스타벅스는 대학 진학이 ‘파트너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경쟁업체의 이직률이 연간 평균 150~400%에 달하지만, 스타벅스는 60~70% 내외 수준이라고 합니다. 경쟁사 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는것은 여러가지면에서 경쟁력 포이트가 됩니다. 이를두고 종업원을 동료로 대하는 스타벅스의 기업 문화가 만든 직원들의 강력한 충성도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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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벅스는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만 구성한다고 한다고 합니다. 예전 오뚜기가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화제가 되고 오뚜기란 회사를 다시한번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한국 스타벅스도 그러합니다.

3. Ignite the emotional attachment with our customers(고객과 정서적 교감에 불을 지피기)

스타벅스에게는 그동안 특별한 보상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리워드 카드 프로그램을 시작해 2009년말부터는 '마이스타벅스리워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킵니다.
마이스타벅스리워드에 가입한 고객들은 스타벅스 이용 시 ‘별’을 모아 등급을 올릴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커피를 한 번 주문하면 별이 한 개 쌓인고 이 별을 5개 모으면, ‘그린레벨’이 됩니다. 그린 레벨 회원은 커피 ‘샷’을 무료로 추가하거나 특정 음료를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별을 30개 모으면, ‘골드레벨’로 올라가며 골드라벨이 되면 그린레벨의 혜택에 각종 쿠폰을 더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고 황금색으로 디자인된 전용 스타벅스 카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게임하듯한 스타벅스를 이용할수록 많은 혜택을 주는 보상 프로그램으로 재미있게 스타벅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스타벅스 마이스타벅스리워드 CardRewards.JPG
4. Expand our global presence—while making each store the heart of a local neighborhood(글로벌 기업으로서 각 매장을 해당 지역의 중심으로 만들기)

스타벅스는 2009년부터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자 합니다.
미국 매출이 4분의 3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해외 적극 공략을 통해서 반이상의 매출을 해외에서 일으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조직을 정비합니다. 즉 미국 국내 사업과 해외 사업을 각기 관장하는 두 개 사업부 체제에서 아시아, 아메리카, 기타 지역(유럽, 중동, 아프리카 포함)을 각각 총괄하는 세 개의 사업부 체제로 세분화했습니다.

이어 중국을 미국에 이어 제2의 주력 시장으로 정하고, 중국 매장을 1000개 이상으로 확대하고 중국 현지화를 위해서 2010년에는 중국 정부와 대학과 협력하여 윈난성에 커피 농장을 설립하는 등 중국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합니다.
사실 스타벅스는 1999년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하지만 중국의 차문화등등의 이유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난 적극적인 현지화를 통해서 점차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6뇬 1분기 현재 중국에는 2064개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으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스타벅스 중국 매장 수 추이입니다. 스타벅스의 중국 성광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내 스타벅스 매장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중국 매장수 추이.jpg

스타벅스 중국 매장2.jpg

5. Be a leader in ethical sourcing and environmental impact(윤리적 방식의 원두 구매를 지속하는 환경친화적 리더 되기)

스타벅스는 회사의 수익과 회사의 사회, 환경에 대한 책임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1998 년 이래로 스타벅스는, 여러 생물과 그 서식지를 보호를 통해 세계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존시키고자 하는 Conservation International 이라는 비영리 단체와 제휴해왔습니다, 먼저 그들은 농가에서 커피나무와 그늘이 되어줄 나무를 번갈아 심게 했고, 그것은 커피 재배에 적당한 환경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동물들, 새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또한 그들은 농부들에게 충분한 임금과 좋은 작업 환경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스타벅스는 2008년 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스타벅스 셰어드 플래닛(Starbucks Shared Planet)을 발표합니다. 여기에서 윤리구매, 환경보호, 지역사회 참여의 3대 핵심 분야를 기반으로 2015년까지 달성해야 할 실행 목표를 설정합니다. 커피 원두를 100% 친환경 기법으로 재배하고 윤리적 거래를 하는 것, 커피농가 지원금을 연간 2천 만 달러 증액하는 것, 음료 컵을 100% 재사용 및 재활용 하는 것 그리고 물 절약 및 재생 가능 에너지원 사용, 친환경 매장 인증인 LEED 획득, 지역사회 봉사 연간 100만 시간 달성이 있습니다.

실제 스타벅스는 2009년에 1만 8144톤에 달하는 공정무역 커피를 구매함으로써 세계 최대 공정무역 커피 구매자가 되었고 2015년에는 100%를 공정무역을 통해서 구매하기에 이릅니다.

▽ 스타벅스가 공정무역을 통해서 구입하는 커피의 비중 추이,
회계년도 2015년 기준으로 100% 달성!!

스타벅스 공정무역으로 커피 구매 비중.jpg

커피 원두이미지02 스타벅스에서 가져옴.png

6. Creative innovation growth platforms worthy of our coffee(커피에 기반한 혁신적인 성장 기반 구축하기)

하워드 슐츠는 성장을 위하여 기존의 히트상품이던 프라푸치노같은 혁신적 신제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비아(VIA)라는 브랜드로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를 전격 출시하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
VIA는2010년 5월 프리미엄 인스탄트 커피로 출시되어 인스탄트 커피 시자에서 5번째로 잘 팔리는 커피 브랜드가 되었고 18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10.4%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유로모니터 인터네셔널 조사 결과)

프리미엄 인스탄트 커피 비아(VIA) 광고5.jpg

7. Deliver a sustainable economic model(지속가능한 경제 모델 제시하기)

2006년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당시 미국 4위 은행인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절정에 달했고 미국 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깁니다. 당시 미국 상장사의 70% 이상이 정리해고, 구조조정, 실적악화, 순익 악화 등을 겪게 되면서 엄청난 소비 침체에 빠집니다.
이는 스타벅스에게도 직격탄을 날렸고 슐츠는 회사 운영 효율성을 점검하고 여러가지 비효율성을 제거합니다.

그중 하나가 스타벅스 매장 선정 원칙인 철저한 입지 조사 없이 선정되어 경쟁력이 없는 미국내 매장 600여개를 폐쇠하고, 550명을 정리 해고 하기로 결정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해 7월 29일 시에틀 본사의 9층 지원센터에는 권고사직, 해고통지를 상급자로부터 1:1 면담으로 통지 받는 사람들로 매워졌다고 합니다. 이 결정으로 스타벅스는 약 2억3천만 달러의 손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폐쇄조치는 하워드 슐츠와 스타벅스에 ‘자신의 지역의 스타벅스를 폐쇠하지 말아달라, 재 평가해달라’ 라는 많은 고객들의 이메일과 선신 요청을 받았고 스타벅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하워드 슐츠는 그의 저서 <온원드>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구매와 물류 시스템의 개혁입니다.

  1. 2008년 당시에 스타벅스 물류시스템은 아직도 90년대 초반에 쓰이던 DOS 기반의 모뎀으로 전송하고 있었고,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비롯한 전반적인 물류의 비효율성으로 연간 2억달러의 손실을 보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또 판매는 감소하는데 관련된 물류비용은 더욱 늘어나는 역설에 처하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7년 10월과 2008년 10월을 비교해보면 미국에서의 커피 공급 비용은 750M$에서 825M$로 10% 증가했음에도 미국에서의 판매는 똑같은 기간 동안 10%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스타벅스의 물류 공급 시스템이 확장에 맞추어서 설계되다보니 비효율이 점점 커진 것입니다.
  3. 커피 공급 관련 저품질 커피 공급의 과잉은 커피 재배 농가를 파산으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스타벅스는 안정적으로 고품질의 커피를 공급받는게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공급의 불안정성을 개선하기 앞서 5번 항 Be a leader in ethical sourcing and environmental impact(윤리적 방식의 원두 구매를 지속하는 환경친화적 리더 되기)에 이야기한것과 같이

  1. 스타벅스 셰어드 플래닛(Starbucks Shared Planet)을 통해 커피를 보다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2. 구매 및 물류에서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물류 체계를 단순화하고 단 하나의 글로벌을 포괄하는 물류시스템을 포괄하는 SCM 체계를 구축합니다.

이는 커피회사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선한 원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충족시키고, (커피 공정무역을 거래하는) 커피 제배 농가와의 제휴를 통한 상생을 실현 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 원두이미지 스타벅스에서 가져옴.png

3 스타벅스의 성과를 간략 살펴 보기

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스타벅스 성과 지표를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살펴볼게 스타벅스의 연도별 매출 추이를 그래프로 그려본 것 입니다. 스타벅스는 아주 친절하게 실적이나 매장 수 등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를 엑셀로 잘 정리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접해왔던 기업중 가장 친절한 것 같습니다.

2008년 하워드 슐츠가 CEO로 복귀한 후 2스타벅신에 대한 개혁을 단행 한 후 2009년부터는 바닥을 기었던 주가도 반등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는 연간 매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계연도 2015년 기준으로 스타벅스는 19.2B$ 우리돈의 20조 매출을 돌파해 그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연도별 매출액 추이.jpg

다음으로 스타벅스코리아의 매출 추이도 그려보았습니다.
커피전문점 경쟁이 치열한데 스타벅스의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성장율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스타벅스 한국 매출액 추이.jpg

▽ 스타벅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kaiwebzine.com에서 이미지를 가져왔음

스타벅스 일러스트 kaiwebzine.com에서 가져 옴.jpg

▽ 스타벅스 매장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진,
이미지는 http://www.europark.at에서 가져 옴

스타벅스 매장 Starbucks  europark.a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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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시장을 따라 잡았을까? 삼성의 성과와 한계를 생각해 본다

1

아래 간단히 삼성 스마트폰 역사를 살펴보겟습니다. 삼성에 대해서 살펴보는 이유는 여러가지 혹평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 회사이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기술과 노하우를 배워서 경쟁사를 따라잡고 업계 1위에 오른 어쩌면 교과서적인 사레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삼성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흘러 나오고 있고,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을 버려야 한다는 과격하기도 하고 또는 비아냥거리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기에 살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보여집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 주자였던 삼성이 택한 전략은 흔히 이야기하는 앞서가는 경쟁사보다 더 빨리 혁신을 수용하고 시장표준을 신속하게 장악하는 ‘신속한 2등(Fast Second)’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은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폴 게로스키(Paul Geroski)와 콘스탄티노스 마키데스(Constan tinos Markides) 교수가 2004년 출판한 ‘Fast Second’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기술력이 뛰어난 신생 기업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지배적인 제품을 내놓을 때 기존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상을 갖고 있던 후발주자가 시장에 참여해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아래는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그려본 것입니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을 출시한 이래 15%에서 20%사이에서 머물과 있는 반면 삼성은 2011년 3분기에 애플에 앞서기 시작했으면 2012년부터 2014년사이에 시장점유율을 30%가까이 끌어 올리면서 확고 부동한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릅니다. 물론 2014년부터 그 압도적인 지위에서 조금씩 하락해 왔고 2015년부터는 엎치락 뒤치락하는 혼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성 스마트폰 역사.jpg

1 간단히 살펴보는 삼성 스마트폰 역사

아래에서 삼성 스마트폰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 옴니아라는 삼성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썼던 삼성은 갤럭시S라는 회심의 한방으로 아이폰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 대표주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옴니아라는 흑역사

미국에서는 애플 아이폰이 출시되어 휴대폰 시장을 강타할 즈음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위피 등 여러 규격으로 쳐놓은 진입 장벽에 취해 혁신을 게을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플 아이폰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았고 외국의 유수 휴대폰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흐름에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로 하면서 첫 번째 스마트폰이 ‘옴니아(SCH-i900)’입니다. 200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처음 공개한 후 이후 11월부터 한국에서 판매를 했습니다.

초기라서 판매량을 높지 않았고 약 13만대 정도 팔렸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옴니아 홍보 이미지-horz.jpg

2009년, 국내에 드디어 아이폰3GS가 판매를 시작했고 이는 한국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스마트폰이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려준 제품이었고 국내 휴대폰 제조사에겐 넘사벽의 아이폰에 맞설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삼성은 이런 아이폰을 막기위해 옴니아의 후속작 옴니아2를 출시했습니다.
옴니아2 홍보 이미지-horz.jpg

옴니아2는 800 x 480 해상도의 3.7인치 아몰레드 윈도 모바일 6.1, 삼성에서 개발한 자체 CPU, 256MB 램과 저장 공간은 2/8/16GB, DMB와 500만 화소 카메라,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등 스펙만 놓고 보면 당시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피겨여왕 김연아를 광고에 투입해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옴니아2 광고 김연아출연3-horz.jpg

그러나 이 옴니아2는 하드웨어만보면 엄청난 진보였지만 급조해 출시하다보니 소프트웨어 최적화 문제가 발생해 최악의 스마트폰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곧 이어나온 갤럭시S와 대비되면서 집단 반발을 불러온 비운의 모델입니다.

삼성 옴니아 집단 배상 카페 resize.png
▲ 네이버에 개설된 삼성 옴니아 집단 배상 카페, 위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빌려왔습니다.

삼성으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과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내외의 엄청난 반발이 삼성을 더욱 분발해서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이후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었고 멋지게 성공했으므로.
(여기서 옴니아 사용자들에 대한 처우는 여기 주제를 벗어나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해 매끄러눈 사용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이 다시 대두됩니다. 예전에 적었던 노키아도 하드웨어의 실력을 발군이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이 하드웨어와 소프웨어와의 결합에 실패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노키아는 자체 운영체제인 심비안에 집착하면서도 그 자체에서 충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해서 실팼다면 삼성은 조금은 늦었지만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그 숙제를 용이하게 풀 수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를 채택하고 갤럭시S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다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스마트폰 시장을 지격 변동을 격게 됩니다. 애플에 대항해서 각 휴대폰 메이커들은 마침 등장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합류합니다. 2009년 모토롤라와 HTC가 가장 먼저 그 흐름을 파악하고 안드로이드를 적용한 스마트폰을 출시합니다.

삼성은 안드로이드와 윈도우즈 모바일사이에서 주저하고 있어 윈도우즈 모바일 계열의 옴니아을 출시했고 동시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9년 4월 삼성에서 처음으로 만든 안드로이드 폰 갤럭시(GT-I7500)이 출시되어 해외 중심으로 테스트용으로 판매를 했습니다.

2010년 4월 갤럭시 A가 최초 안드로이드폰으로 한국에 출시합니다. 이 스마트폰은 비로 2달 후 갤럭시S가 출시되어 사라진 비운의 제품이기도 합니다. 당시 먼저 갤럭시 A를 산 사람들의 탄식이 있었고 이 사람들의 혹 갤럭시S와 교환이 안되는지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급했기 때문에 전략이 아닌 동시적으로 여러가지 스마트폰을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하고 출시하는 혼돈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갤럭시 A 사태는 큰 논란과 노이즈없이 갤럭시S 체계로 이행했습니다.

2010년 6월 삼성 핸드폰 역사의 갈림길을 된 갤럭시S가 출시됩니다.
갤럭시S 언팩 행사중 resize.jpg
▲ 갤럭시S 언팩 행사 중…

이 갤럭시S를 비롯한 갤럭시 시리즈는 마케팅 관점에서 몇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존 삼성이 가지고 있었던 애니콜이라는 휴대폰 브랜드를 버리고 갤럭시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채택한 것입니다.
비록 애니콜이 국내에 중심으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드라도 당시 환산 5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가치를 갖는 브랜드였는데 과감하게 이를 버리고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와 글로벌을 겨냥한 브랜드로 갤럭시를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갤럭시S는 그 때까지 삼성이 애플에 뒤진다고 평가받았던 디자인, 사용성, 어플 확장성을 일거에 만회한다는 목표하에 삼성의 기술력을 최고로 결합시킨 제품으로 이 장점을 ‘Super Smart’ 슬로건으로 표현하하였습니다. 삼성만의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슈퍼 아몰래드로 표현했고, 갤럭시S만의 디자인을 슈퍼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애플에 대해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어플에 대해서는 삼성 자체 개발 어플리케이션과 구글 플레이의 어플 시스템을 결합해 슈퍼 어플리케이션으로 소구하였습니다.
이 갤럭시S라는 제품을 통해서 삼성은 그동안 뒤진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약점을 일거에 해소했다는점을 크게 부각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 갤럭시S는 출시 7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해 삼성 스마트폰의 가능성으 세계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성적은 피처폰을 비롯한 삼성 휴대폰 역사상 2번째로 7개월내 1000만대 판매 기록을 수립한 것으로 갤럭시 S의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갤럭시S 01-horz.jpg

갤럭시S2, 정상을 바라보다

갤럭시S 후속으로 갤럭시 S2가 2011년 2월 MWC에 공개되고 2011년 4월 29일 출시하였습니다.

갤럭시 S2는 갤럭시S을 성공을 바탕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편리한 삶을 스마트폰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모두’를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갤럭시 S2는 삼성의 하드웨어 역량을 총동원해서 세계에서 가장 슬림한 두께 8.49mm를 구현하고, 전작 갤럭시 S를 훨신 뛰어넘는 최고의 성능을 갖추고 속도와 터치감, 화질을 한층 업그레이드했고 더 커진 디스플레이로 갤럭시가 최고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제품이었습니다.
이 갤럭시S2는 5개월 만에 1,000만 대를 판매를 돌파해 아이폰의 독주를 막고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주도자로써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갤럭시S2로 삼성은 2011년 3분기에 애플을 따돌리고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 22.7%, 애플 아이폰 13.8%, IDC)

갤럭시S2 01.jpg
갤럭시노트로 카피켓을 벗고 혁신 이미지를 입히다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리고 삼성만의 하드웨어 기술을 총동원해 갤럭시S 및 갤럭시S2로 양적인 측면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카피켓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삼성 자체로 혁신한 것은 많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느정도 벗게 해준 것이 바로 갤럭시 노트 시리즈입니다.

당시 스마트폰 크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4.5인치를 넘지 않았습니다. 특히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3.5인치 스마트폰을 고수했고 도 커진 스마트폰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이게 아이폰이 오랬동안 3.5인치만을 고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갤럭시 노트는 디스플레이는 5.29인치, 갤럭시 노트2는 5.55인치의 대화면으로 기존 통념을 완전히 깨뜨리면서 스마트폰보다 더 나은 엔터테인먼트적 활용성, 태블릿보다 더 나은 휴대성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패블릿’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더우기 갤럭시 노트에 포함된 스타일러스펜은 손을 이용한 터치보다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게 해주어 갤럭시 노트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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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하바시(Balazs Havasi)가 갤럭시 노트를 악보로 사용해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는데 이를 홍보하는 갤럭시노트 광고

갤럭시S3 이후 – 한방의 혁신이 아쉬운 후속작들

갤럭시S2이후 세계 정상에 오르고 이어서 갤럭시S3,4,5,6,7이 매해 1분기 ~ 2분기 사이에 출시되었습니다.

갤럭시S3는 좀더 사용성을 강화하는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사람의 눈동자를 인식해 사람의 시선이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면 화면이 꺼지지 않는 '스마트 스테이', 동영상 감상 도중 작은 창을 띄워 동시에 두 가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팝업 플레이',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이에 반응하는 'S보이스' 등등..

갤럭시S3 광고.jpg

갤럭시S4는 시선, 음성, 동작인식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했죠. 사용자의 시선을 인식해 인터넷, 이메일, 전자책 등을 볼 때 제품을 기울이면 다음 페이지로 넘겨주는 '스마트 스크롤', 동영상 감상 도중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자동으로 동영상을 정지해주고 다시 화면을 쳐다보면 재생해주는 '스마트 포즈', 손가락을 화면 위로 올리면 이메일, 사진 폴더, 동영상 등의 내용을 작은 창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에어 뷰', 손의 움직임을 인식해 화면을 터치하지 않아도 전화를 받고 음악을 재생하거나 웹 페이지를 스크롤할 수 있는 '에어 제스처' 등등

그러나 잔잔한 새로운 기술들은 있었지만 소비자를 현혹하고 매장으로 달려가게할 한방은 부족했습니다.
갤럭시S3,4는 기존 삼성 스마트폰이 쌓아온 성과를 기반으로 어느정도 시장 점유율을 지켜냈지만 갤럭시S5부터는 시장에서 지위가 긊히 약화됩니다. 본격적으로 삼성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갤럭시S4 광고화면 resize.jpg

2 삼성 스마트폰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2010년 갤럭시S를 필두로 2013년까지 스마트폰 시장에서 듣보잡이었던 삼성을 정상으로까지 이끈 요인들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안드로이드를 통해 빠른 약점 보완으로 추격의 기반을 마련
두번째, 삼성의 강점을 극대화를 통한 시장 공략
세번째,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존 성공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브랜딩 전략 집중
네번째, 혁신 제안으로 안드로이드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

첫번째, 안드로이드를 통해 빠른 약점 보완으로 추격의 기반을 마련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삼성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빠른 추격자 전략(Fast Follow)이 주효했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택한 전략을 좀더 정교하게 표현해보자면 앞서가는 경쟁사보다 더 빨리 혁신을 수용하고 시장 표준을 신속하게 장악하는 ‘신속한 2등(Fast Second)’ 전략입니다. 이 전략은 기술력이 뛰어난 신생 기업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지배적인 제품을 내놓을 때 기존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상을 갖고 있던 후발주자가 시장에 참여해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삼성은 피처폰 시장에서는 글로벌 2위를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회사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휴대폰 하드웨어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으로 이행 시 스마트폰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삼성으로써는 가장 약점인 스마트폰관련 기술과 경험을 빠른 속도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스마트폰의 기본이 되는 경쟁력있는 운영체제를 찾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 운영체계를 토대로 쉽게 사용하고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의 제공이었습니다.

첫번째 과제인 운영 체제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모바일로 보완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이의 결과가 앞에서 지적한 옴니아 및 옴니아2입니다. 윈도우 모바일이 비록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대기업에 의한 주도되었고 어느 정도 역사도 있었지만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위도우 모바일을 적용하고 얼마 있지않아 위도우 모바일에 대한 지원을 중지한다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선언했습니다. 추후에 다시 집중하는 갈팡 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집중하지 않아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없는 미래가 없는 운영 체계였습니다.
또한 윈도우 모바일이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애플 iOS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UX 등 사용성도 떨어졌고, 앱의 수도 적었고 특히나 이미 많은 개발자들이 애플로 전환해 버려 새롭고 경쟁력있는 앱들이 없었습니다. 이 또한 몇년 사이에 갑작스레 변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저주저하는 사이에 시장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낙오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삼성은 모토롤라나 HTC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합니다. 당시 안드로이드는 애플 iOS에 비해서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구글은 계속된 업그레이드를 통해 사용성을 개선했고, 안드로이드의 개방 정책은 운영체제에 갈증을 느끼는 많은 스마트폰업체들이 합류함으로써 판매량 증가로 시장 잠재력이 커지면서 점차 많은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몰려들어 생태계가 점차 풍부해지는 등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는 아래 그림처럼 매년 2번 정도의 업데이트를 진행해 빠른 속도로 성능을 업그레이해 스마트폰의 주류 운영체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빠른 속도의 업그레이는 또 한편으로 안드로이드의 파편화라고하는 문제도 야기시켰습니다.

안드로이드 역사 연도 추가.jpg

이러한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모델을 준비했고 2010년 갤럭시S가 시장에서 크게 성공(출시 7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함으로써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주자로 삼성 갤럭시의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두번째 과제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토대로 사용자 경험(UX)을 강화하는 숙제는 구글 안드로이드 UX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사삼성만의 사용편의성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것은 사용성 최적화나 쉬운 사용성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안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에 서 이를 구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글 안드로이드도 아이폰만큼의 사용경험을 제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2년 7월 발표된 안드로이드 4.1인 젤리빈은 아이폰만큼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올 정도로 시간 gap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만의 사용편의성 기능을 꾸준히 발굴하고 적용하면서 gap을 극복하려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갤럭시3부터 더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갤럭시S2에서부터 ‘하우 투 스마트(How to live smart)'라는 모토로 전화가 와서 벨소리가 울릴 때 본체를 엎으면 무음으로 바뀌는 기능등 소소한 사용성을 개선했다면 갤럭시S3부터는 본격적인 UX에 집중을 합니다.
갤럭시S3는 '인간을 위해 디자인되다(Designed for human)'를 모토로 화면을 보고 있을 때는 화면이 꺼지지 않는 ‘스마트 스테이(Smart Stay)’, 사용자의 말을 인식하여 명령을 수행하는 ‘S 보이스(Voice)’, 와이파이와 NFC를 이용해 갤럭시 S III 사이에 파일을 빠르게 주고받는 ‘S 빔(Beam)’ 등등이 그것이다.
또 갤럭시S4는 '삶의 동반자(Life Companion)'를 모토로 ‘스마트 포즈(Smart Pause)’, ‘스마트 스크롤(Smart Scroll)’, 여러 사람이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그룹 플레이(Group Play)’, 화면에 손대지 않고 화면 위에서 손을 움직여 기기를 조작하는 ‘에어 제스쳐(Air Gesture)’와 ‘에어 뷰(Air View)’, 사진에 소리까지 담을 수 있다는 ‘사운드 앤 샷(Sound & Shot)’ 등등 새로운 사용 경험을 제안하려고 했습니다.

갤럭시S4 스마트포즈 Galaxy S4 Smart pause &amp;Scroll.jpg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아이폰을 뛰어넘을 정도의 혁신을 이루어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삼성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고 앞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삼성의 강점을 극대화로 시장 공략

그러면 삼성은 강점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그것은 피처폰에서 이미 글로벌 2위까지 올랐던 강력한 하드웨어 제조능력과 그 운영 능력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Display, 프로세서를 포함한 일련의 개발 과정을 삼성 계열사를 통한 수직 계열화를 통해서 강장 경쟁력있는 하드웨어를 가장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몰레드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세계 1위인 삼성디스플레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부문의 독보적인 세계 1위인 삼성 시스템반도체사업부와의 협업을 통해 가장 경쟁력있는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스를 가장 빠른 시일내에 적용할 수 있음으로 인해 마케팅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팅의 기본이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 노출을 최소화한다는 관점에서 초기 삼성 스마트폰 마케팅이 세계 최고의하드웨어 성능에 집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성의 반도체기술을 동원한 가장 빠른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가장 얇은 두께를 구현하는 등등..하드웨어의 혁신을 제1의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고 스마트폰 성장 시기에는 이 전략이 잘 먹혀들었습니다.

아래 갤럭시S2의 광고를 보면 삼성의 접근을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월한 하드웨어 경쟁력에 기반한 USP 설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갤럭시 S2 USP.jpg

갤럭시S2 01.jpg

두번재로 삼성이 오래 전부터 경쟁력을 강화해왔던 생산관리와 공급망관리는 스마트폰시장에서 공급 규모를 단기간에 늘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아이폰이 일시적으로 몰리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항상 도입 시장을 순차적으로 정하고 공급 부족 상황을 맞이하는 것에 비해 삼성은 다양한 segment의 시장을 공략하기위해 다양한 모델과 더 많은 국가에 판매를 추진하면서 이를 원활이 지ㅇ원할 수 있는 뛰어난 판매 및 공급망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어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의 공급망관리, SCM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세번째,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존 성공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브랜딩 전략 집중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삼성은 피처폰 시장에서 2위에까지 올랐던 강자였습니다.
이 피처폰 시장의 강자중에서 현재 유일한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은 곳은 삼성밖에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키아는 말할것도없고 모토롤라, 소니, LG 등 기존의 쟁쟁한 업체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별볼일없는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처폰에 이어서 스마트폰에서도 강력함을 유지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기존 시장에서 배웠던 성공방식을 철저하게 버렸고 새로운 시장에,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노키아가 피처폰에 집중하고 중가폰에 집중하면서 몰락한것은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입니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 맞추어 기존 피처폰에서 사용했던 애니콜이라는 브랜드를 과감히 버렸습니다. 애니콜은 당시 브랜드가치가 5조원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브랜드였습니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기존 피처폰에는 애니콜을 그대로 사용하고 스마트폰에는 새로운 브랜드인 갤럭시를 사용하는 새로운 브랜딩 정책을 도입합니다. 사실 애니콜의 브랜드가치가 높았지만 애니콜은 한국과 중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있지 마머지 지역에서는 삼성의 이름으로 사업을 영위하고있어서 글로벌 브랜드로서 애니콜은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갤럭시(Galaxy)라는 브랜드는 이런 애니콜을 대신해 스마트폰의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되어 스마트폰이 빠르고 보급되고 있는 미국, 유럽등의 선진 시장으로 공략하는 첨병이 됩니다.

이후 삼성의 스마트폰 전략은 프리미엄부터 매스까지 대부분의 영역에서 비지니스를 강화하는 전략이므로 이를 서포트할 수 있는 스마트폰 브랜드 전략을 수립합니다.
사실 초기 애플처럼 한 가지 모델만으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삼성은 애플이 아니므로 마케팅 교범대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에 맞추어 제품을 제공할 필요는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인 특징이 있을 수 있고 가격과 나이 등등으로 특징이 달라질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반영해 Galzxy SRWMY라는 브랜드 하이라키 전략을 추진합니다.
총 5개의 브랜드로 나뉘게 되는데

갤럭시 'S(Super Smart)' 는 갤럭시 스마트폰 중에서도 최상위의 플래그십 모델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며 2010년 출시된 텐밀리언셀러폰 갤럭시S, 2011년 플래그십 모델 갤럭시S2 등이 해당됩니다.

'R(Royal)' 은 'S'보다는 낮지만 고사양의 첨단 기능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리미엄 모델인데요. 4.2인치 슈퍼클리어 LCD, 1GHz 듀얼코어, 131g무게, 500만 화소 카메라 등 갤럭시S2 대비 조금 낮은 사양으로 유럽에 출시된 '갤럭시R'이 대표 제품입니다.

이외에도 보급형 하이엔드 모델에는 'W(Wonder)', 매스 시장을 타깃으로 한 보급형 모델은 'M(Magical)', 신흥 시장 공략을 위한 엔트리 모델에는 'Y(Young-minded)' 를 부여할 계획입니다." – 삼성블로그 참조

이처럼 비지니스 전개에 브랜드를 쳬계적으로 관리하고 집중한것이 삼성이 스마트폰에서 큰 성과를 내는데 나름 기여를 했다고 보여집니다.

갤럭시 브랜드 체계 SRWMY.jpg
네번째, 혁신 제안으로 안드로이드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

삼성 스마트폰이 유수의 안드로이폰을 물리치고 안드로이드폰의 대표주자가 된 것은 하드웨어 혁신을 비롯한 다양한 혁신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은 초기에는 자신들이 강점이 있는 하드웨어적인 혁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갤럭시S에서는 지상파 DMB와 멀티터치·멀티태스킹·영상통화 기능으로 차별화를 시도했고, S2는 높은 800만 화소 카메라를 장착하고 당시로서는 희귀한 1.2GHz 듀얼코어 CPU로 혁신성을 강조했고, S3는 영상통화와 카메라 기능에서의 혁신과 1.4GHz 쿼드코어로 가장 빠른 스마트폰을 소구했으며, S4 LTE-A는 풀 HD 수퍼 아몰레드로 화면의 혁신, 1300만 화소로 카메라의 혁신, 2.3 GHz 쿼드코어와 LTE-A로 정보처리 속도의 혁신 강조했습니다.

이러다보니 가장 빠른, 가장 얇은, 가장 선명한 등등은 삼성이 단골로 사용하던 마케팅 소구 포인트였습니다. 물론 이런 하드웨어적인 혁신을 폄하하는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드웨어에서의 혁신도 중요합니다. 다만 이런 하드웨어 혁신은 경쟁사가 금방 따라오는 요인이므로 생명력이 짧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보다 근원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보다 근원적인 혁신에 까운 것을 제시한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갤럭시노트는 일반적인 4.5인치의 스마트폰과 7인치이상의 태블릿 사이 애매한 영역은 없다는 업계의 불문률을 깨뜨리고 스마트폰보다 더 나은 엔터테인먼트적 활용성, 태블릿보다 더 나은 휴대성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패블릿’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더우기 갤럭시 노트에 포함된 스타일러스펜은 손을 이용한 터치보다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게 해
주어 갤럭시 노트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갤럭시노트 광고2 resize.jpg

삼성은 갤럭시S5이후 하드웨어적인 혁신에서 벗어나 사용자 경험 등 보다 감성적인 영역에서의 혁신을 도모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삼성의 도전은 생각처럼 시장에 인상을 주지못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삼성이 풀어가야 할 영역이 아니가 싶습니다.

[참고]삼성스마트폰의 크기 변화

갤럭시S로부터 갤럭시S7까지 갤럭시 시리즈들의 크기 변화를 인터넷의 자료를 토대로 업데이트해봤습니다..
갤럭시노트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스마트폰의 크기는 멀티미디어 활용의 증가와 더불어 큰 화면을 선호하는 소비트렌드에 따라 점차 화면 크기는 커져 왔습니다.

삼성 핸드폰 크기 변화 업데이트.png

스마트폰 관련 다른 이야기들

모바일폰(피처폰+스마트폰) 시장규모 추이와 브랜드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추이

다시 복기해 보는 노키아 몰락의 이유, 시장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혹독한 댓가

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시장을 따라 잡았을까? 삼성의 성과와 한계를 생각해 본다

갤럭시 노트7 발화사건 그리고 삼성 스마트폰 점유율

[2016년 4분기]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애플의 왕좌 등극, 삼성 몰락의 가시화 그리고 화훼이 점유율 10% 돌파

[2016년 3분기 업데이트]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삼성 몰락의 전조(?) 그리고 여전한 중국 업체의 추격

[2016년 2분기 업데이트]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삼성이 선두지만 화웨이의 추격이 거세다

어도비와 애플간 플래시를 둘러싼 광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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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애플의 플래시 사용 거부로 촉발된 어도비와 애플간의 전쟁..

잡스의 자료를 찾다가 어도비의 광고를 보고 깜놀했다. 얼마전 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에 플래시를 지원해야하느냐로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 고민 및 전쟁을 6년전에 했다는것을 보고 놀라웠고 그 이면을 파볼수록 비지니스계의 이해득실에 따른 편가르기에 놀라울 뿐이다.

아무튼 2010년에 이미 플래시 무용론을 주장하고 과감히 아이폰과 파이패드에서 뺐던 그 무모함에 경의를 표하고참으로 오랬동안 그 고집을 지켜온 점에 대해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그 전쟁의 편린을 보자. 광고부터 보고 그 배경 설명은 나중에

어도비의 공격 – 애플을 사랑해, 근데 선택할 수 있는 자를 빼어가는 것은 사랑하자 않아….

 

어도비에서 집행한 We love Apple광고, adobe apple ad resize.jpg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사랑해….

어도비 광고 adobe-freedom-of-choice-660x344.png



애플의 반격 – 애플을 사랑해, 근데 선택할 수 있는 자를 빼어가는 것은 사랑하자 않아….

어도비의 반 애플 광고가 집행된 후 애플은 즉각 어도비 최신 제품인 Adobe Creative Suite 5를 사라고 이메일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애플은 진정 어도비를 사랑하는 것 처럼 보이나요?
이도 비비꼰 것 일까요?

Adobe CS5가 여기 있다,
애플 스토어에서 (Adobe CS5를) 가지거나 온라인에서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어도비 광고에 대한 애플 반응_이메일 프로모션 adobe-email.jpg

어도비의 We Love Apple에 대항한 애플의 광고
플래시 동영상을 만나면 나타나는 로고를 사용해서 애플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애플이 어도비에 대항해 집행한 광고 apple adobe.png

어도비 플래시에 대해서….

1990년대 초, 플래시는 움직이는 이미지 GIF를 더욱 발전시켜 사용하기 쉬운 디지털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지금 들어도 기억이 생생한 (물론 이시대에 젊게 살았다면) 졸라맨, 마시마로, 달묘전설, 우비소년 같은 익숙한 애니메이션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플래시는 매크로미디어라는 회사에서 꽃을 피웠는데 2005년 어도비가 34억 달러에 인수해 어도비 식구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는 플래시를 기본 플러그인으로 사용했고 광고회사들도 플래시를 활용해 눈길을 사로잡는 온라인 광고를 제작해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2007년 아이폰이 시장에 나왔고 이와함게 어도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개발에 개발을 거듭한 플래시는 비대해져 플래시를 구동하려면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소요되어 모바일의 배터리 수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등등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애플은 플래시 기술을 탑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0년 4월 아이패드 출시 시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 플래시 문제점을 지적하며(“배터리 이용시간을 단축시키고 보안에도 문제가 있어”) 애플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점차 많은 운영체제에서 플래시 지원을 중단했다.

안드로이드도 4.1(코드명 젤리빈)부터는 플래시 지원하지 않고
리눅스용 플래시 런타임도 2012년, 11.2.X버전을 마지막으로 지원하지 않으며
윈도우즈도 8.0부터는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르며
모질라 파이어폭스와 구글 크롬 등 브라우저들이 보안 이유로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 플러그인 작동을 차단하고 있다.

참고로 통계를 찾아보니 2016년 5월 현재 플래시가 적용된 사이트의 비중이 8.6%라고 한다.

[요약 소개]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리더쉽이 주는 교훈,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 – Harvard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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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하바드 비니지스 리뷰(HBR)에 게재된 글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 작성된 글이지만 읽어볼만해서 여기에 요약을 공유해봅니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났으니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이 글은 아스펜 연구소 CEO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가 작성한 것입니다.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1952년생 미국의 작가로 키신저 전기 등 많은 유명인의 전기를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집필한 분이죠.. 스티브 잡스 생전에 그의 전기를 쓰기위해 많은 인터뷰를 했고 그런 인터뷰 결과를 정리한 정수가 이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은 워낙 유명한 글인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많이 나오긴 합니다. 글쓴이가 원문을 자신이 운영하는 아스펜연소th 사이트에 올려놓아 누구나 다운받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소속해 있는 아스펜연구소 사이트입니다. https://www.aspeninstitute.org/sites/default/files/content/docs/about/HBR-Isaacson.pdf

또한 이에 대한 요약본은 아래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bullseyeresources.com/wp-content/uploads/2012/05/HBR-Webinar-Summary-Isaacson-Jobs-51012.pdf

또한 이 글은 유료로 제공하는 동아비지니스리뷰(DBR)에서 '스티브 잡스, 창조 신화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한글 번역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DBR 2012년 12월호에 번역 게재되어 있습니다. 구글링하면 주소가 그냥 나오므로 여기서 그 주소를 남깁니다.
http://www.dongabiz.com/GlobalReport/HBR/article_content.php?atno=1501012501&chap_no=1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 논문 표지.jpg

아래 (내 마음대로의) 요약은 DBR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필요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1 집중하라, Focus

잡스가 복귀한 1997년 당시 애플은 십여 종의 매킨토시 제품을 비롯해 수많은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닥치는 대로 생산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제품 검토 과정을 거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잡스가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해! 이건 미친 짓이야.”
잡스는 마커펜을 집어 들고서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화이트보드를 향해 걸어간 다음 2×2 매트릭스를 그렸다. 잡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것”이라고 선언했다. 잡스는 2개의 행 위에 ‘일반인용(consumer)’이라는 단어와 ‘전문가용(pro)’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2개의 열 앞에 ‘데스크톱(desktop)’이라는 단어와 ‘휴대용(portable)’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잡스는 팀원들에게 각 사분면에 해당되는 제품을 하나씩 결정해 총 4개의 위대한 제품에 주력해야 하며 나머지 제품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듯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이 단 4개의 컴퓨터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애플을 구원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고, 제품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업무나 일상 생활에서도 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하는 태도를 견지했고, 인종 무렵 찾아온 구글의 래리 페이지(Larry Page)에게도 다음과 같이 집중할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집중이다. 구글이 어떤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보라" “지금은 모든 곳에서 구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주력하고자 하는 5개 제품을 꼽으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나머지는 제거해야 한다. 주력해야 할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대로 일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들 때문에 구글이 위대한 제품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을 내놓게 된다.”

스티브 잡스 화이트보드를 쓰는 resize.png
▲ 스티브 잡스는 집중을 위해서 화이트보드를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2 단순화하라, Simplify

잡스는 본질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불필요한 요인을 제거해 단순화시키고자 하였다.

잡스와 아이브는 단순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미니멀리즘적인 양식을 추구하거나 어수선한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사와 버튼, 지나치게 많은 것이 들어 있는 화면을 없애려면 먼저 각 요소가 담당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아이브는 “진정한 단순함을 추구하려면 정말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그 제품이 매우 난해하고 복잡해진다. 좀 더 심층적으로 단순함을 추구하고 그 제품에 관한 모든 것과 그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3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라, Take Responsibility End to End

잡스는 사용자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애플의 소프웨어와 하드웨어를 빈틈없이 통합시켜서 온전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고자 하였으며, 프로세서와 같은 하드웨어를 선택한 과정에서도 애플이 지향하는 경험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지를 살폈고, 애플 매장에서 아이폰을 구매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고객 경험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직접 컨트롤해 최상의 경험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애플만의 폐쇄형 생태계를 만들었고 어느 정도 온전한 기기(Whole widget)를 만들 수 있어 즐거운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 반면 개방 방식을 택하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방식은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스티브 잡스 어록 Customer experience.jpg
4 뒤처졌을 땐 뛰어넘어라, When Behind, Leapfrog

경쟁자에게 뒤쳐질 때 통상적으로 하는 경쟁사보다 더 나은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를 내놓아 시장을 바꾼다는 것이다.

에를 들어 아이맥을 선보인 후 음악 부분에서 경쟁사보다 뒤지자 (경쟁사 제품으로 소비자들은 음악을 다운받고 교환했으며 CD로 구워 보관을 했다) CD writing기능을 넣는 대신 음악 산업을 뒤집어놓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다. 그 결과 나온것이 아이툰즈와 아이튠즈 스토어 그리고 아이팟을 통합시킨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 훨씬 간편하게 음악을 구입하고, 공유하고, 관리하고,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 아이팟 광고 이미지 Apple iPod AD02.JPG

▲ 애플 아이팟 광고 이미지, 만곡이상을 담아다니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5 이윤보다 제품을 중시하라, Put Products Before Profits

1980년대 초 최초의 맥킨토시를 디자인 시 가격에 걱정하지말고 성능에만 집중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리고 ‘타협하지 말라(Don’t compromise)’라고 주문합니다. 이 매킨토시는 너무 비싸서 잡스가 쫓겨나는 이유가 되긴하지만 후일 가정용 컴퓨터 혁명을 가속화하는 족적을 남겼다.

잡스는 “기업이 쇠퇴하는 원인에 관한 나만의 이론이 있다”. “판매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회사 경영을 맡게 되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중 상당수는 아예 흥미를 잃는다. 스컬리가 애플에 들어오자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물론 스컬리를 영입한 건 내 잘못이었다. 발머(Ballmer)를 CEO로 영입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아야기하며 애플로 복귀한 후 애플이 다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할 수 있도록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고, 아이맥, 파워북(PowerBook),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등 뛰어난 제품을 차례로 출시했다.

6 포커스 그룹의 노예가 되지 말라, Don’t Be a Slave To Focus Groups

잡스는 소비자 조사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고객은 우리가 무언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종이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잡스는 시장조사에 의존하기보다 특유의 공감능력(고객이 갖고 있는 욕구를 꿰뚫어보는 직관)을 키우고자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다. 특히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하고 대중의 지혜보다는 통찰력이 필요한 IT나 디자인 부분에서 더욱 그러할 것 같다.(개인 생각)

스티브 잡스 어록 Focus groups.jpg
7 현실을 왜곡하라, Bend Reality

이 주제는 불가능해보이는 목표지만 상대방을 설득해서 목표 달성 방안을 찾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타리 시절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에게 몇달이 걸릴지 모르는 브레이크아웃(Breakout)이라는 게임을 단기간내에 만들어내라고 요구했고 결국 워즈니악은 잡스가 이야기한대로 나흘만에 게임을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폰 디자인을 하던 중 아이폰 전면을 플라스틱이 아닌 끍히지 않는 강화 유리를 부착하기로 합니다. 잡스는 코닝(Corning)의 CEO 웬델 윅스(Wendell Weeks)에게 6개월안에 이 고릴라글라스를 공급받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때가 2007년 2월.
코닝(Corning)의 CEO 웬델 윅스(Wendell Weeks)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잡스의 설득에 코닝(Corning)은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6개월이 되지 않아 고릴라글라스를 양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은 이 고릴라글라스를 적용해 2007년 6월 아이폰을 출시 한다.

코닝의 고릴라글라스와 아이폰의 만남 Gorila Glass &amp; iPhone.PNG
8 강인한 인상을 남겨라, Impute

잡스는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브랜드가 보여지고 포장되는 것에 의해서 그 회사나 브랜드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팟이나 아이폰의 패키지를 보석상자처럼 직접 디자인하고 수정하는 등 온 신경을 쏟았다.
그는 포장 패키지 상자를 열때 상자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촉각이 (어느 정도) 그 제품에 대한 고객의 인식이 결정되기를 바랬기에 소비자가 강렬한 느김을 받을 수 있도록 패키지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또한 그는 디자인을 단순한 기능적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게 아니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요소로도 활용하는 등 제품과 브랜드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아이폰5 패키지 iphone-5-pack-horz.jpg

9 완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 Push of perfection

잡스는 개발 중간이라도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면 언제든 중지하고 다시 시작하곤 했다.

아이폰을 개발 시 알루미늄 케이스에 유리스크린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는데 어느 날 잡스는 이 디자인은 디스플레이를 죽이고 오히려 케이스를 돋보이는 디자인이니 다시 하자고 제안한다. 9개월동안 작업한 디자인이지만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디자인 수장인 아이브도 동의하고 디자인팀도 동의해 결국 다시 디자인을 하게 된다.

아이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디스플레이인데 당시의 디자인에서는 케이스가 디스플레이를 돋보이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디스플레이와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기 전체가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과업 중심적이며 효율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잡스는 아이브가 지휘하는 디자인팀에게 선포했다. “지난 9달 동안 이 디자인을 만들어내느라 죽을 만큼 노력한 걸 잘 알고 있지만 디자인을 바꿔야 해. 밤이건 주말이건 가릴 것 없이 다시 일을 해야 할 거야. 원한다면 총을 나눠줄 수도 있어. 그 총으로 우릴 쏴 죽이게.” 하지만 디자인팀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잡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잡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애플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한다.

10 오직 최고의 인재만 용인하라, Tolerate only “A” Players

보통 사람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잡스는 사람을 대할 때 온화한 신사처럼 대하지 않았다. 거칠고 직설적이고 소리를 지르고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어쩌면 최악의 상사일지도 모르지만) 명확한 직관과 가이드를 줄 수 있으므로 똘돌한 애플 직원들은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 남았다.
(아무라 욕을 먹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도)잡스와 같은 천재와 일을 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고려해 봐야할 것이다.

아마 잡스의 전기를 쓴 사람이라서 잡스에 대해 어두운 단면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 생각)

11 직접 대면하라, Engage Face-to-Face

디지탈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생각과 문제 해결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픽사 사옥을 지을 대도 예기치 못한 만남과 협력이 가능하도록 사옥을 설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무실 밖으로나와 중아의 아트리움에서 많ㅇ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마치 담배를 피우러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요즘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는 e메일과 아이챗(iChat)을 통해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창의성은 즉흥적인 회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무작위로 대화를 나눌 때 창의성이 발현된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가 상대의 답변에 자극을 받아 온갖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 회의 도중2 resize.jpg

▲ 제품 디자인팀과 미팅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디자탈 시대에 어울리지않게 아날로그적 미팅을 중시하였다.

12 큰 그림과 세부 사항을 두루 섭렵하라, Know Both the Big Picture and The Details

당연한 이야기인데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잡스는 큰 문제와 사소한 문제, 양쪽 모두에 열정을 보였다.

타임 워너(Time Warner) CEO 제프 뷰크스(Jeff Bewkes)는 잡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잡스는 디자인의 가장 세밀한 부분에도 빠짐없이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포괄적이고 중요한 전략을 구상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었으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2000년에는 개인용 컴퓨터는 사용자의 동영상, 음악, 사진, 콘텐츠를 모두 관리하는 '디자탈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비젼을 제시했고 이를 근거로 아이팟, 아이패드와 같은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디자탈 허브를 뒤이을 클라우드 허브 전략을 내놓고 이를 위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컨텐츠를 업로드한 다음 다른 디바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거대한 서버 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사의 모양과 색깔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것이다.

13 과학에 인문학을 더하라 , Combine the Humanities with The Sciences

잡스는 과학에 인문학을, 기술에 창의성을, 엔지니어링에 예술을 접목했다. 워즈니악, 빌 게이츠(Bill Gates) 등 기술적으로 잡스보다 뛰어난 인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나 예술의 측면에서 잡스보다 뛰어난 사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 프로세서에 우아함을 더해 혁신을 이뤄내는 역량의 측면에서 잡스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다.
뿐만 아니라 잡스는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직관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잡스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교차점에 서있는 표지판이 그려진 슬라이드를 세상을 향해 내밀었다.

이 주제는 참으로 어렵다. 잡스가 대단하다는 것을 여기서 느낀다.

스티브 잡스 어록 artistry.jpg
14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아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잡스는 .환각제, 록 음악, 반독재주의 등으로 상징되는 히피와 반전 활동가들의 반체제 운동과 엔지니어, 괴짜, 컴퓨터광, 통신 시스템 해커, 사이버펑크족, 취미광, 차고에서 회사를 시작한 기업가 등으로 가득한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문화 및 해커 문화의 영향을 동시 받았다.

‘지구백과(Whole Earth Catalog)’와 같은 출판물은 위의 두가지 무화의 결합을 살펴볼 수 있는데 잡스는 고등하교 시절 이 잡의 애독자였다. 잡스는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1971년 발매된 ‘지구백과(Whole Earth Catalog)’의 마지막호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책의 맨뒤에는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잡스는 오랬동안 이 출판물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은 애플이 법인이 된 후에도 잡스에게 해커와 히피가 살아 숨쉰다고 여겨지듯이 현 질서에 저항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향을 애플 광고에 반영했다고 평가된다. 애플의 유명한 ‘1984년’ 광고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다시 복기해 보는 노키아 몰락의 이유, 시장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혹독한 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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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점유율 그래프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끝을 모르고 자료를 찾게 됩니다. 아이폰의 점유율에서 시작해서 어느덧 노키아의 점유율 자료까지 정리하게 되었습니디. 그냥 참고로만 보려다가 노키아에 대해서 참깐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노키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엄청난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몰락해서 그 몰락의 교훈에 대해 언론을 통해 접해본 정도.. 특히 한국에서는 노키아가 영업을 하지않았던것으로 기억되므로(노키아폰이 한국에서 팔린다는 이야기를 못들어봤습니다) 그 기억의 정도가 더 희미하겠지요.

노키아의 성공 신화로 한때는 많은 경영학교과서에서 케이스스터디로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기업 흥망의 사례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 허망하긴 합니다. 2013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로 인수된다고 선언되고 2014년 3월 최종 인수되면서 사라진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에 대해서 기존의 자료를 토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노키아 휴대폰 사업에 대한 간략한 정리

노키아(Nokia)는 1865년에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작은 도시에서 제재소로 출발한 기업입니다.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케이블, 타이어, 전자, 통신제조업 등 폭넓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핀란드 최초로 GSM 방식의 휴대전화 산업에 진입합니다.
1992년에는 시티뱅크 출신의 요르마 욜릴라(Jorma Ollila)가 CEO로 취임하며 휴대전화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기존 제지, 고무, 케이블 등의 사업을 정리하고 휴대전화 사업에만 집중합니다.

당시 유럽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대륙이었고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존재는 일찍부터 표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마다 독자적인 휴대전화 규격을 개발하면 타국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유럽 우편전기통신회의(CEPT)는 1982년부터 디지털통신 공통규격 마련을 담당할 실무그룹 GSM(Group Special Mobile)을 발족했고 그 결실로 1991년 4월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규격이 도입됐습니다. 이후 GSM은 유럽, 미국등으로 퍼져나갔고 세계적 규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참고로 한국 등 몇몇 나라는 CDMA라는 별도의 규격을 채택합니다.

주요 휴대전화 생산지인 유럽주도로 GSM이라는 규격이 정해지자 노키아는 GSM 규격 덕분에 유럽 이외의 제조업체에 대해 경쟁 우위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잇점을 노키아의 기술적 우위를 토대하에 극대화하면서 1998년 노키아는 미국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제1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등극합니다.

이후 노키아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합니다. 2007년 말에는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매출은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에 해당할 정도로 커졌고 그러다보니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핀란드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60%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2007년은 노키아에게 최고 영광의 순간이자 몰락이 시작되는 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노키아(Nokia) 본사 resize.jpg
▲ 노키아가 1997년부터 사용하던 노키아 본사 건물, 호수옆에 3동을 나란히 지은 건물로 야경이 아름답다. 2012년 대지와 건물을 2.2억불에 매각하고 다시 여기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로 사용중이다.

2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경시했을까요? No!!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2011년까지 14년간 세계 정상을 지킵니다.
현재 2016년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노카아는 그 존재를 알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코닥의 사례처럼 노키아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넘어가는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일까요?

사실 노키아는 누구보다 먼저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많이 오해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사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한 회사입니다.
노카아는 1996년 노키아 최초의 스마트폰인 ‘Nokia 9000’을 출시했고 이어서 지속적으로 스마트폰 라인업을 눌려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무선 인터넷과 터치 스크린이 탑재된 태블릿을 개발합니다. 애플이 아이패드가 2010년 처음 출시되었으니 애플보다도 10년이상 빠른셈입니다.
스마트폰 측면애서 경쟁사들보다 훨씬 빨리 시장에 진입해서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와 이에 수반하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획들 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엔 노키아의 판매대수가 2900만대에 달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정의하는 시장조사회사마다 조금식 다르겠지만 노키아는 당시 5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었고 2010년이되어서야 연간 아이폰 판매대수가 3900만대를 넘어섰으므로 노키아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키아 9000 (Nokia9000) 광고.jpeg

▲ 노키아가 1996년 출시한 Nokia 9000 communicator, 지도 기능등등으로 여행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선도했지만 시장을 리딩하지는 못했습니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랜된 시기부터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2005년 4분기부터 스마트폰(피처폰을 제외한 자료로 일반적으로 피처폰+스마트폰을 mobile phone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점유율 그래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프에서 보여주는 것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장 장악이 아이폰이 나오고 다른 경쟁사들의 거친 도전에 따라 점차 힘을 잃고 점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같이 보아야할 회사가 RIM 이란 회사 입니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이 회사는 이메일 보안으로 유명해 한때 오바마폰으로 불렸고 북미에서 높은 점유율을 구사한 브랜드인데 마찬가지로 2010년을 기해 점유율이 하락하고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를 보면 자연스레 왜? 왜?라는 질문이 강렬하게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스마트폰 점유율 추이(2006~2016) 추가.jpg

3 노키아 몰락의 이유를 찾아보자

그러면 노키아 몰락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래처럼 4가지의 전략적 실수가 노키아를 몰락으로 이끈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첫째,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었던 피처폰 시장에서도 트렌드를 경시했습니다.
둘째, 뜸금없는 저가 전략은 수익성에 치명타를 주었습니다.
셋째, 아이폰의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넷째, 경쟁력있는 운영체제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첫째, 피처폰 시장에서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아 낙오되었습니다.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는 있었지만 워낙 거대한 시장이기에 피쳐폰 시장은 상당히 오랬동안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실질적으로 피처폰을 앞선 것은 2013년 2분기이니 오랬동안 피쳐폰은 중요한 시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 피처폰에서도 스마트폰에서도 시장을 리딩하지 못했습니다. 피쳐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토롤라나 삼성등이 새로론 디자인과 타입을 혁신하는 동안 노키아는 전통적인 디자인, 즉 캔디바라 불리는 피쳐폰에 집중합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타입에 열광하고 구매하는데 노키아는 이를 경시한 것입니다.

2000년대 휴대폰시장은 플립폰(Flip phone)이 대세가 됩니다. 플립폰(Flip phone)은 지금도 우리에게 친숙한 뚜껑 여닫이식 휴대폰으로 폴더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플립폰(Flip phone)은 모토로라가 레이저를 출시하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2004년 ‘레이저’로 알려진 모토로라 폴더폰 V3는 출시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얇은 두께에 알루미늄과 니켈 키패드를 쓴 세련된 디자인으로 모토로라 레이져를 패션 아이콘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4년동안 2억가 팔리는 대히트를 치게됩니다.

이에 대응하는 노키아의 전략은 플립폰(Flip phone)이전에 성공을 거두었던 캔디바라 불리는 피쳐폰 라인업을 더욱 늘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 결과 시장을 리딩하지못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더욱 어려운 길로 가게된 것입니다.

모토로라 V3 레이저와 노키아 캔디바폰.jpg

둘째, 프리미엄시장에서 낙오하자 저가 시장과 피처폰을 더 강화합니다.

휴태폰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 노키아는 뜨악하는 결정을 연속으로 내립니다.

그것중 하나는 2004년부터 시작한 저가 전략입니다. 노키아는 아마도 자기들이 가진 강점을 충분히 살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노키아의 전매 특허같아던 플랫폼 전략을 활용해 극한의 cost 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플랫폼 전략이란 휴대전화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일부 부품과 디자인만 달리해서 다양한 모델을 내놓는 방식을 말하는데 노키아의 이러한 플랫폼 전략의 산업적 탁월함을 바탕으로 신흥국 시장을 겨냥한 저가 단말기의 제조를 위해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라인업으로 신흥 소비자를 공략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가 휴대폰 집중 전략은 노키아에게 엄청난 적자를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나름 강점이 있다고 진입한 저가 신흥 시장이지만 이 시장에는 향후 화웨이나 ZTE와 같은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 중국 제조업체와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신흥국에서 핸드폰 사용하기 resize.jpg
▲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노키아가 주력하려고 했던 신흥국에서 휴대폰 사용 사진을 찾다가 너무 보기다 좋아서 구글에서 가져와 봤습니다.

또 하나는 2006년 CFO였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Pekka Kallasvuo)가 CEO로 취임하면서 당시 수익이 더 좋았던 피처폰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고 스마트폰 사업부를 피처폰 사업 부문으로 통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결과로 매출 등 재무성과가 훨씬 더 좋았던 피처폰 사업부의 목소리에 스마트폰 사업부가 눌려 스마트폰 사업이 발전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뒤에서 이야기하는 심비안(Symbian)을 근본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던 이유가 이러한 조직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모든 경영의 제1원칙으로 '비용관리'를 내세워 노키아에서 관료주의가 득세하고 혁신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혁신이 사라지자 재미가 없어진 직원들의 이탈이 속출했고, 비용절감으로 서비스등 품질이 나빠져 소비자들도 노키아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서 혁신을 통한 정면 승부를 하지않고 회피하려는 전략은 근본적으로 노키아를 병들게하고 경쟁력의 싹을 근본부터 잘라버린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아이폰의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피처폰 시장에서 트렌드를 경시해 기회를 놓쳤다면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서도 새로운 혁신 트렌드를 경시하였습니다.

2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아이폰이 가져온 여러가지 혁신은 휴대폰 시장을 강타했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소비자 기대를 대대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수마트폰을 소비자들이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그 어는 휴대폰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화면속에 아이콘을 넣고 터치 스크린을 채용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고 쉽게 작동할 수 있어서 어린 아이라할지라도 금방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쉽고 직관적인 UI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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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 최초 구입자중의 한명이 환호를 지르며 뉴욕 5번가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떠나고 있다. 이들과 같은 애플에 대한 절대적 로열티를 가진 소비자가 있는 애플을 공략하려면 더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One of the first iPhone buyers leaves the Apple store on 5th Ave. in New York on June 29, 2007. (Reuters)

또한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은 소비자들을 iOS 세계에서 계속 머물게 만드는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전 윈도우즈 운영체계와 달리 애플 앱스토에서는 어느정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앱스토어 아이폰을 위한 앱개발에 열을 올렷습니다. 그 결과 아이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많은 앱들이 나타났고 이는 아이폰 생태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우기 위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애플은 기존 맥킨토시 및 아이포드를 통해서 수많은 애플 매니아를 만들어왔고 이들은 애플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들이었습니다. 브랜드 로열티 측면에서 노키아와 견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노키아는 이러한 위협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이폰의 출시를 보고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아이폰 생산 원가가 너무 높아 각겨이 비쌀 수밖에 없으며, 2G 네트워크를 기반이라 속도가 느리며 터치스크린이 충격에 약해 튼튼함을 요구하는 휴대폰과는 맞지않는다는 단점 중심의 보고서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보고서의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아이폰이 출시 후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는 “조크(joke) 같은 제품이다.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한 것이 표준이다”라고 호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말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앞서 노키아 엔지니어가 보고한대로 처음 아이폰이 공개되었을 시 아이폰의 가격은 매우 비쌌습니다. 2년 약정으로 500$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도 너무 비싸다고 비웃었습니다.

"$500 full-subsidized with a plan!"
"I said that is the most expensive phone in the world and it doesn't appeal to business customers because it doesn't have a keyboard which makes it not a very good email machine."

그러나 애플은 미국 2위의 이통사 AT&T에게만 제공한다는 협상을 통해서 가격을 2년 약정기준 500달러에서 200달러로 낮추면서 아이폰은 시장의 주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가는 비쌌지만 핸드폰 약정 및 통신사와 제휴라는 비지니스모델을 통해 유일한 약점이었던 가격을 상쇄버렸고 이 때부터 아이폰은 모든 휴대폰업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iOS나 안드로이드와 경쟁할 운영체제를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습니다.

애플 아이폰의 강력한 공습이 있자마자 구글의 안드로이드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다고 하는 것처럼..애플 iOS는 애플만 사용하는 폐쇄적인 운영체제였는데 이 시점에 구글은 정반대의 컨셉을 들고 시장에 나온 것입니다. 아이폰에 대항할 만한 앞선 기술의 OS로 모든 업체에 공개했고 메이커에게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징해서 차별화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모토로라나 HTC나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려 즉각 애플에 반격에 나섰습니다. 삼성은 다소 늦었지만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려 빠르게 경쟁사를 따라잡으로 스마트폰 1위에 오릅니다.

당시 노키아에게는 여러가지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모토로라처럼 안드로이드를 도입하는 방안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자체 가지고 있던 심비안(Symbian)을 발전시키는 것 이었습니다.
노키아는 이 심비안(Symbian)을 발전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는데 이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노키아 내부에 고유 운영체제인 심비안 (Symbian) 자체를 개선하고 활용하려는 팀과 미고 (MeeGo)라는 심비안 (Symbian) 에서 발전시킨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는 팀으로 나뉘면서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당시 돈을 벌고 있던 피처폰사업부의 압력등으로 피처폰과 스마트폰 부분을 통합하게 되고 스마트 개발 부분은 힘을 잃어 원하는 개발을 제때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이해 노키아가 절실하게 필요한 OS로서 심비안(Symbian)을 혁신할 수가 없었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2011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CEO 엘롭은 운영체제 심비안 (Symbian)을 ‘시련의 플랫폼’으로 규정해 포기하고 MS의 윈도폰을 채택합니다. 아마 경쟁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발표시기가 너무 좋지않아 노키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전술적인 실수가 됩니다. 즉 윈도폰을 선택했어도 실질적인 윈도폰이 나오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고 그 동안은 소비자는 사라질 운영체계를 가진 노키아폰을 철저히 외면해버려 노키아 판매는 급락하게 됩니다. 일종의 '오스본 효과(Osborne effect)'라 할수 있습니다..(※ 1983년 오스본 컴퓨터 회사의 창업주인 아담 오스본은 계획 중인 차세대 휴대용 컴퓨터를 시장에 발표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앞으로 나올 신형 모델을 구입하려고 구형 모델의 구매를 미뤘다. 그러자 회사에 현금이 돌지 못해 부도가 났고 이를 '오스본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MS의 윈도폰이 경쟁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감히 yes라고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후 출시된 MS의 윈도폰 중에서 성공한 폰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노키아가 심비안(Symbian) 운영체제를 제대로 개선했거나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했다면 지금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심비안(Symbian) anna.jpg

마침글 모든걸을 다 버린 노키아, No.1 통신장비 업체로 돌아오다

노키아 휴대폰사업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전략적 실수를 연속으로 합니다.

지금에야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많은 전문가등의 분석이 있었으니 그 당시 노키아 경영진의 전략적, 전술적 실수가 빤히 보이겠지만 제한적 정보하에서 경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트렌드를 알았고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승부를 피하고 주저주저하면서 혁신을 회피한 댓가는 혹독한 것 같습니다.

결국 노키아는 핵심사업부인 휴대전화 사업을 과감하게 버리고 강력한 구조조정과 내부혁신을 하는 내부와의 정면 승부를 하면서 비지니스를 통신장비 부분으로 전환하고 유통도 B2C에서 B2B로 바꾸면서 부활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프랑스 통신 장비업체인 알키텔-루슨트를 인수하면서 세계 1위의 통신장비업체로 부상하였고 노키아의 순이익도 급급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노키아가 휴대폰 시절 전사의 운명을 건 과감한 정면승부를 했으면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정면승부를 내부와 겨루면서 부활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Nokia site image  resize.jpg
▲ 노키아 홈페이지의 이미지 중 하나, 노키아 관련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하나 담을려고 찾았는데 마땅한게 없어서 이 이미지를 선택 함. 분위기가 있고 왠지 노키아와 맞을 듯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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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판매가 감소하는 이유 – 혁신의 부재인가? 아니면 시장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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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폰 판매가 감소하는 이유?

타임에서 발표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컷던 It제품에 첫번째로 아이폰을 올렸길레 아이폰에 대해서 잠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가지 아무도 하지못했던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최근 변화하는 경영 환경하에서 천하의 아이폰도 판매 감소를 격고 있다는 소식이네요.

아이폰 전체 케이스를 살펴보는 것은 큰 작업이 될것이므로 여기서는 아이폰 판매가 하락이는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폰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제대로 살펴봐야 겠습니다.

Morgan Stanley가 2015년 12월 FY2006에 아이폰의 판매는 218백만대를 판매해 -5.7%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발표를 한 후 이런 저런 분석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2016년 판매도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아이폰의 2015년까지 판매 트렌드에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2016년 전망을 더해 전체 트렌드를 살펴보고 실제 2016년 초기의 판매를 살펴보겠습니다.

1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연도별 아이폰 판매 트렌드를 살펴보자

아래 그래는 애플의 회계년도를 기준으로 아이폰이 런칭한 2007년부터 2015년까지의 실적 그리고 2016년 예측치를 토대로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이 그래에 따르면 2007년 런칭 후 한번도 예외없이 성장으로 거듭해 왔습니다. 판매 성장율도 2013년, 2014년 다소 낮아졌으나 2015년 37% 성장하는 등 양호한 모습을 그려왔습니다만 2016년엔 -5.7%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2016년 판매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는 혁신의 부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모바일폰 판매가 위기를 격으면서 나온 분석이 일제히 혁신의 부족을 들었는데 이번 애플의 판매 감소도 같은 혁신의 부족을 드는것이 흥미롭고 의미 심장합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시장분석가 Huberty는 국제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가의 가격과 개발도상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되면서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사용자가 줄어들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Huberty points to “higher prices in international markets (ex-China) and maturing smartphone penetration in developed markets weighs on upgrades and new user growth.”, Business Inside 인용)

아이폰 판매량 추이.jpg

2 분기별 판매량 성장율을 살펴보자 – 회계년도 ‘16년 2Q에서 -16% 역성장하다

지난 4월 26일(미국시간) 애플은 ‘16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합니다. 애플 매출은 505억달러로 전년 동기비 15역 성장했으며 직전 분기대비 335하락한 수치로 시장에게는 어닝 쇼크로 받아드려졌습니다. 또한 3분기 매출도 410~430억달러로 전년 동기 496억달러에 비해서 크게 하회하는 예상치를 내놓았습니다.

아이폰 판매량도 5120만대로 전년 동기대비 -16% 역성장했다고 발표하면서 그동안 실적 하락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햇습니다. 그나마 -20%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을 뒤엎고 -16%로 선방햇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이폰뿐만이 아니라 아이패드, 맥등도 일제히 하락을 면지못했으나 스마트워치 등 기타 제품만 전년 동기 비 30% 성장함으로서 그나마 위안을 삼았습니다.

참고로 한국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 시작해서 12월 31일에 끝나지만 미국의 회계연도는 매년 10월 1일 시작해서 다음해 9월 30일에 끝납니다. 그러다보니 혼란이 조금 있긴 합니다. 미국 회계연도 2분기는 우리나라 회계년도의 1분기에 해당합니다.

아래 회계년도 기준으로 아이폰의 분기별 성장율을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여이 그래프에 의하면 15년 1분기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해서 ‘15년 1분기(캘린더 이어로 따지면 ‘14년 4분기)에 46%에 달하는 엄청난 성장을 합니다. 거의 배가 더 팔린것인데요. 이러한 성장세는 점차 누그러지고 ‘16년 1분기는 정체 상태에 돌입하고 2분기에는 -16%로 역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가 예측한 FY2016에 -5.7% 하락이 아니라 그보다더 훨씬 깊은 하락이 2016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폰 분기별 판매성장율.jpg

3 애플 아이폰의 하락을 어떻게 볼것인가?

애플 아이폰의 하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애플 아이폰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는데서 출발해야 할것 입니다.
아이폰으 2007년 출시하면서 아이폰을 사야 할 분명한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이폰만의 디자인 또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UX, 애플 스토어를 활성화 시키면서 매력적인 어플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다양하게 사용하게 해주는 생태계의 구성, 오랜된 아이폰이라 할지라도 최신 iOs를 설치하면 최신 기기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업그레이드 체계 등등이 아이폰을 사야하고 다른 스마트폰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을 주고 사야할 이유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폰을 사야하는 이러한 분명한 이유가 분명한지를 짚어보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폰을 판매할 시장에 대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애플 아이폰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스티브잡스를 이어서 팀쿡의 시대가 되면서 애플에게서 혁신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를 더 떠올리게 됩니다. 과거의 유산이 있어서인지 2015년까지 애플은 최고의 성적을 거둡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하는 애플 아이폰 신제품에서 혁신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는다는 평가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이는 애플에게는 뼈아픈 점이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폰6에서 혁신적이라고 할만한 것은 3D터치 외는 없는데 이 또한 화웨이에서 이미 적용한 기술이고 새로운 수요를 촉발할 정도의 기술은 아니라는 평가입니다.

새로운 아이폰 제품이 나올때마다 세상을 떠들섞하게하는 무엇인가 있었는데 그 기술 이면에는 더 사용하기 편했졌고 더 아름다워졌고 새로운 아이폰으로 갈아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했지만… 아이폰6는 조금 더 나았지만 이번에 나온 아이폰6se는 완전히 가격 중심으로 포지셔닝을 달리한 제품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장 수요가 프리미엄에서 mass로 넘어간다는 것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폰이 가지고왔더 혁신의 모습을 다른것을 통해서라고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래는 최근 폰아레나라는 IT전문 사이트에서 네트즌을 대상으로 올 기대되는 스마트폰을 조사했는데 예년과 달리 아이폰은 큰 기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삼성 갤럭시노트6는 현재 출시된 갤러시7의 호평에 기대가 높아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예상외로 NEXUS가 2위에 올랐고 아이폰7은 3위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아이폰에 거는 기대가 사라졌다는 의미지요.

폰아레나 설문조사 결과-2016년 가장 기대되는 스마트폰는2.jpg
이젠 애플 아닌 다른 제품도 쓸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이폰만이 답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분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 분들이 애플의 성장을 견인한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이나 LG나 제품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삼성도 아이폰만큼 쓸만해라고 느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플 아이폰의 강점이었던 뛰어난 사용성과 애플스토어에서 제안하는 한발 앞선 어플 등등은 이제 안드로이폰에서도 어느정도 충족할 수 있으며 하드웨어만 좋았던 삼성에서 이제는 사용성도 업그레이드되고 삼성만의 장점을 가진 요소들이 늘어나면서 애플 진영에서 탈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애플의 전략이 아이폰, 애플스토어 등등의 사용성을 연계해 편리한 사용성을 주면서 애플내에서 계속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도록하는 가두리전략을 펴왔는데 그 전략이 잘 작동하는 시점에 온것입니다.
그것이 위에서 소개한 폰아레나의 설문조사에서 갤러시노트 6가 기대 제품 1위로 뽑힌 요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이는 안드로이드의 프리미엄 사용자를 애플 아이폰을 구매하ㄷ록 유도해야하는데 쉽지는 않아보인다는 시사점으로 읽힙니다.

갤럭시노트 6 루머이미지.jpg
http://wimages.vr-zone.net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참조했습니다.

애플 아이폰의 성장을 견인할 새로운 시장이 있을까요?

애릎 아이폰은 그 브랜드 자산을 토대로 타 브랜드대비 고가의 가격 정책을 고수해 오고 있습니다. 이게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 수익의 90%이상으로 차자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되면서 점차 가격전의 양상을 띠게되고 이에 비례해서 프리미엄 시장은 작아지고 있습니다.
2014년 애플은 처음으로 중국에서 아이폰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아이폰 열풍을 일으키며 2014뇬, 2015년 아이폰 판매 성장을 중국 시장이 견인해왔습니다. 즉 최근 애플의 호성적은 성장했던 중국 프리미엄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중국 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축소되고 있고 삼성은 물론이고 화웨이나 샤오미등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제품 라인을울 강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 애플 아이폰의 판매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애플의 지역별 매출 추이를 표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2016년 2붖기를 기준으로 북미를 비롯 유럽 중국 등등 대부분 지역에서 실적이 역성장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일본에서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네요.

아이폰 지역별 판매 트렌드.jpg

중국만을 별로도 떼어놓고 보겟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분기별로 중국에서 애플의 매출 성장율을 그려본 것 입니다. 기회의 땅답게 2015년에는 전 분기대비 성장율이 70~112%까지 엄청난 성장을 했네요.
이러한 성장세를 구가하던 중국에서도 캘린더 이어 2016년부터는 판매 감소로 돌아섰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미국, 구주 등 전통적 시장은 이미 스마트폰이 포화된 시장이라 여기에서 추가 확대를 노린다는 것은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중국이 기대를 걸고 있던 시장인데 감소로의 전환은 애플로 하여금 다른 시장을 탐색케 하고 있습니다만 뚜렸한 대안은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인도가 중국을 대신할 시장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최근 팀쿡은 인도를 7~10년전의 중국이라고 폄하하고 있습니다. 애플에게 인도는 그리 매력적인 시장으로 고려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애플 중국 성장율.jpg

제목으로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애플 아이폰의 판매 감소는 혁신의 부재와 시장의 정체 두가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다만 애플 아이폰이 성장한 근원은 시장 성장보다는 혁신을 통한 수요의 견인에 있었다고 본다면 최근 애플 아이폰의 부진은 혁신의부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여집니다.
애플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혁신을 들고 나올 때 아이폰은 다시 성장할 수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타임 선정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IT 제품 50, The 50 Most Influential Gadgets of Al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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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타임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었던 기기 50선(The 50 Most Influential Gadgets of All Time)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http://time.com/4309573/most-influential-gadgets/?utm_content=bufferced8b&utm_medium=social&utm_source=twitter.com&utm_campaign=buffer 기사를 참조해 여기에서는 Top 20를 소개해 봅니다.

타임(Time)은 역사상 우리가 사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 그리고 즐기는 방식을 바꾸어온 기술 또는 기기에 대해 고찰하면서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 카메라가 없는 세상, TV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며 이러한 제품들 사이에서 한 브랜드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가장 영향력이 큰 기기중의 첫번째로 아이폰을 뽑았습니다. 이어서 소니의 컬러텔레비젼 Sony Trinitron을 선정했고 세번째로 Apple Macintosh를 뽑았고 네번째로 Sony Walkman을 선정햇습니다. 다섯번째로는 IBM Model 5150을 지목했네요.

1 애플 아이폰, Apple iPhone

2007년 처음으로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손에 진짜 강력한 컴퓨터를 쥐어준 최초의 회사입니다. 스마트폰이 기술적으로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아무도 아이폰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아름답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애플의 디바이스(아이폰)은 우리가 필요했던대로 화면에 버튼을 넣은 플랫하고 터치스크린을 가지는 폰의 시대를 열면서 당기는 키보드와 하드 버튼을 가진 땅딸막한 폰(쿼티폰을 지칭하는 듯)을 대체했습니다.

아이폰과 스티브잡스.jpg
2 소니 컬러텔레비젼 트리니트론, Sony Trinitron

1968년 출시한 소니 컬러텔리비젼 소니 트리니트론, 세개의 분리된 전자총을 가진 TV라서 이름을 트리니트론으로 지었다고.
소니 트리니트론은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한 TV이며 전 세계적으로 억대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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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플 맥킨토시, Apple Macintosh

1984년 조지 오웬의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광고와 함게 등장한 매킨토시..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 사용하기 쉬운 마우스 그리고 전체적으로 친근한 형상으로 매킨토시는 IBM을 대체하는 애플 제일의 희망이었다. 고가격 및 마이크로소프 윈도우즈의 성공은 맥킨토시가 도전자로 남아있게 했지만 컴퓨터와 소통하는 방식에서의 표준을 세웠다고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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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Macintosh apple-gallery10_1470400b.jpg
4 소니 워크맨, Sony Walkman

이것도 두말하면 잔소리, 소니 워크맨은 이동성과 단순화과 가격 합리성을 갖춘 최초의 음악 재생기(Musib player)입니다.
당시 vinyl records(어찌 해석할 줄 몰라서 그냥 영어를 적었음)가 가장 일반적인 음악 형식이었지만 소니 워크맨은 보다 작은 카세트에서 음악을 들려주었고 주머니나 지갑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습니다. 소니 워크맨은 혼자만 들을 수 있는 헤드폰에 의해 야기된 대중속에서의 개인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소니 워크맨은 AA건전지에로 작동했으며 전기가 없는 먼곳으로의 여행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이 소니 워크맨은 2억대이상 판매되었으며 후에 CD플레이어와 아잎드의 시대를 열는 선구자 역활을 했습니다.

Sony walkman AD.jpg
Sony walkman AD 02.jpg
5 아이비엠 모델 5150, IBM Model 5150

만약 IBM이 없었다면 오늘날 컴퓨터 시장은 어떻할까요? 1981년 IBM이 모델 5150을 도입하기 이전에도 퍼스널 컴퓨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IBM의 판매 확대가 이 제품을 광범위한 성공적인 제품으로 만들엇습니다.
더우기 5150보다 더 영향력이 큰것은 PC의 OS, DOS를 다른 회사에 라이센스를 준 결정이었습니다. 그것이 IBM 호환 PC를 탄생시켰고 이게 비 애플 PC 세상이되는 선구자작 역활을 했습니다.

애플2의 성공이후 IBM은 더 이상이 늦으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여 IBM은 시장 진입을 결심하는데 IBM내부에서는 반대가 심해 신제품을 개발항 시간을 1년밖에 주지않았다.
그리하여 Apple처럼 폐쇄적 platform을 구성할 여유가 없었던 IBM은 호환성을 가진 표준 규격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들고 시장에 이미있는 부품과 S/W등으로 사용하는 컴푸터를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단가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빠른 속도로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 [https://happist.com/index.php?document_srl=8952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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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빅토리아 레코드 플레이어, Victrola Record Player

비록 축음기는 1877년 발명되었지만(에디슨이 발명자인가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이를 대중화시킨 것은 Victor Talking Machine사의 빅토리아이다. 이 기기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뿔(horn)을 나무 상자속에 숨기고 최신 가구와 잘 어울리는 슬릭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가와 오페라 가수의 레코드는 이 기기 소유자들의 인기있는 구매품이었습니다.
Victor Talking Machine는 나중에 라디오와 TV 부분에서 거대 기업이 된 RCA에 인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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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전시 TR-1 트랜지스터 라디오, Regency TR-1 Transistor Radio

레전시사의 포켓 라디오는 첫번재 소비자용 트랜지스터 라디오이고 하이테크 소형화 시대를 열었던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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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코닥 브라우니 카메라, Kodak Brownie Camera

아이들, 군인들이 들고 다니고 모든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작고, 브라운 색상의 가죽에 판지 형태의 카메라는 쉬운 사용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스냅샷이라는 단어를 낳게 했습니다.

단돈 1$에 1900년 2월에 출시된 브라우니는 트리포드를 없애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코닥에게 있어 저가격의 카메라는 필름 판매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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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애플 아이포드, Apple iPod

Apple iPod이전에 MP3 player는 있었습니다. 음악팬들을 그들의 CD player로부터 업그레이드해서 묶어 놓은 것은 애플 디바이스 였습니다.
Apple iPod는 수천곡의 음악을 Apple iPod라는 포켓에 넣고 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음원 카피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고 동시에 애플 뮤직 스토어(나중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판매처가 되었다)를 만들어 불안해하는 음악 산업계에 구명줄을 제공하였습니다.
Apple iPod의 중요성은 음악계를 넘어섭니다. Apple iPod는 전 세대에게 애플이 쓰기기 쉬운 제품이라는 것과 멋진 마케팅을 소개는 제품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맥북을 사고 아이폰을 사고 아이패드를 사게 함으로서 애플이 가장 가치잇는 기술 기업이 되도록 합니다.

iPod first ad 2001 Screenshot.png
Apple iPod AD02.JPG
10 매직 완드, Magic Wand

처음 들어보는 제품이라 생소한데 내용을 보니 좀 거시기하네요

1968년 히다치에서 발매한 전기적으로 진동을 주는 마사지 제품으로 출시했습니다. 긴장을 완화하고 근육을 풀어주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섹스 교육자인 베티 도슨이 1960년 후반 sex-positive movement 동안 이 제품을 바이브레이터와 마스터베이션 보조 도구로 소개하면서 선품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타임지 소개에서도 이야기하길 2002년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이런 소개가 나온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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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부터는 List만 나열해 보도록 하겟습니다.

  1. Apple iPhone
  2. Sony Trinitron
  3. Apple Macintosh
  4. Sony Walkman
  5. IBM Model 5150
  6. Victrola Record Player
  7. Regency TR-1 Transistor Radio
  8. Kodak Brownie Camera
  9. Apple iPod
  10. Magic Wand
  11. Canon Pocketronic Calculator
  12. Philips N1500 VCR
  13. Atari 2600
  14. US Robotics Sportster 56K Modem
  15.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16. Nintendo Game Boy
  17. IBM Selectric Typewriter
  18. Motorola Bravo Pager
  19. JVC VideoMovie Camcorder
  20. Motorola Droid
  21. IBM Thinkpad 700C
  22. TomTom GPS
  23. Phonemate 400 Answering Machine
  24. BlackBerry 6210
  25. Apple iPad
  26. Commodore 64
  27. Polaroid Camera
  28. Amazon Kindle
  29. TiVo
  30. Toshiba DVD Player
  31. Sony PlayStation
  32. Wii
  33. Jerrold Cable Box
  34. Nokia 3210
  35. HP DeskJet
  36. Palm Pilot
  37. Motorola Dynatac 8000x
  38. Apple iBook
  39. Oculus Rift
  40. Sony Discman D-50
  41. Roku Netflix Player
  42. Fitbit
  43. Osborne 1
  44. Nest Thermostat
  45. Raspberry Pi
  46. DJI Phantom
  47. Yamaha Clavinova Digital Piano
  48. Segway
  49. Makerbot Replicator
  50. Google G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