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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극장 – 명함관리앱 리멤버의 시리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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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는 아시아의 링크드인을 표방하고 출범한 명함관리앱인데요. 링크드인이 왜 아시아권에서는 맥을 못맞추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링크드인이 동양권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 받아드리고 동양겆으로 풀어낼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첫째, 링크드인처럼 오픈형 서비스가 아닌 부분 폐쇄적인 서비스를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링크드인은 다른 사람이 내 프로필을 볼 수 있도록 올려놓은 사이트이므로 프로필을 보는 것을 장려합니다만 동양에서는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를 다른 사람이 아는것을 꺼리고(만남 자체가 개인적인 자산이므로),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보는 것도 뒷조사하는 것처럼 느끼므로 부분적 패쇄적 서비스를 지향하고자 하였습니다.

둘째, 매개체를 이력서가 아닌 명함으로 선택했습니다. 동양에서 이력서는 구직 준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러모로 조심스러운게 사실입니다.

기존 명함관리 앱과 차별화를 위해서 쉽게 사용할 수 있고, 계속 명함이 업데이트되어 살아있는 명함관리를 지향하고 하였습니다.
즉 사진만 찍어 올리면 더 이상 신경스지 않토록 정확도를 극한으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찍어올린 사진을 보고 수기로 입력해서 정확도를100%가까이 올리는 어찌보면 아날로그적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정확도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정확도를 98%~99%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명함과비교해 같은 사람인데 다른쪽에서 명함이 업이트되면 그 사람의 명함을 가진 사람은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도록해서 언제나 살아있는 명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리멤버.jpg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뚜렸한 비지니스 모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링크드인이 하는 두가지 비지니스모델을 지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는 ‘채용 솔루션’으로 리쿠르터들이 채용공고를 올릴 수 있게 해주고 돈을 받는 것
두번째는 ‘탤런트 솔루션(talent solution)’으로 사용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비즈니스 프로필이 있으니까 매칭까지 해주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돈을 받는 것이 링크드인의 큰 두가지 비지니스 모델이라고 합니다.

리멤버극장 1 그대의 비지니스가 위험에 빠지지 않토록 – 전사 출동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받았더니 다짜고짜 “잘 지내지?”라고 묻는다.
누구냐고 묻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 능숙하게 “늘 그렇지 뭐, 넌 어때?”라고 응대한다.
알고 보니 통화 상대는 거래처 대표.

정장 입은 직장인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래처 대표에게 전사 직원들이 사과하러가고 있다는 내용
명함 관리를 못해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광고로 60만회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리멤버극장 2 그대의 비지니스가 위험에 빠지지 않토록 – 엄마와 통화편

팀장이 직원에게 “거래처에 자료 보냈다고 전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 직원은 거래처 연락처가 없다.
그래서 일단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거래처와 통화하는 척을 하는데 닥온 팀장이 “끊기 전에 나 좀 바꿔줘.”

전화를 넘겨 받으려는 팀장과 전화기를 줄 수 없는 부하직원이 몸싸움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그대의 비즈니스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리멤버극장 3 미모의 여비성게 무슨일이?

“허니버터칩의 비밀”에서 발견하는 상품기획의 정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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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사다놓은 ‘허니버터칩의 비밀’을 어찌하다보니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쌓아놓았습니다. 더 이상 미루기에는 너무 미안해서 짬을 내서 읽어보고 간략히 정리해 봅니다.

허니버터칩은 2014년 8월 해태제과에서 출시한 새로운 타입의 스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허니버터칩은 출시한 이래 2014년 후반기부터 2015년 초사이 SNS를 중심의 입소문을 등에 업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습니다. 이로써 스낵과자 붑ㄴ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했던 해태제과는 관련 업계에서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장 성공을 개발 과정에서 판매까지의 전과정으로 정리한게 이 허니버터칩의 비밀이란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허니버터칩의 상품기획이란 관점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허니버터칩의 성공요인에 대해서 많은 분석들이 있으므로 그런 상투적인 분석보다는 상품기획장가 도움이 될만한 독특한 시각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성공요인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상품기획자관점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허니버터칩의 비밀 표지 직찍-9382 resize.jpg
1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 – 맛 지도를 그리다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보고 이책도 시중의 그저그런 사레집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스쳐지나려고했는데 초반에 나오는 맛지도라른ㄴ 것을 보면서 아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장과 브랜드를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이 이 제품을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러한 생각은 많은 서평에서 일관되게 지적하는 부분이니 맞는 이야기 일것입니다.

스낵의 맛을 색깔별로 분류해 놓고 쳐다봄으로써 새로운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새우깡은 10%, 포카칩은 5% 식으로 브랜드별 조사 경과를 가지고 시장을 분석했는데 이번에는 짠맛, 단맛, 고소한 맛 등으로 제품군을 분류해 맛지도를 만들어 살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맛지도롤 살펴본 결과 소맥스낵, 옥수수스낵, 쌀스낵군에서는 짠맛, 고소한 맛, 해물맛, 옥수수맛 등과 함께 단맛 제품이 꼭 있는데 감자칩에는 단맛 제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있었습니다.
“감자칩은 왜 짠맛만 있는 거지?”라는 질문에서 기존 고정관념 즉 감차칩은 짜야한다는 관념을 깰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단맛이 나는 스낵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스낵의 맛 지도-9383 resize.jpg

2 정확한 시장조사를 위한 첫걸음 – 맛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점심시간 후 시식 평가

이 책에서 또 눈길이 가는 부분은 배가 부른 오후 시간에 하는 시식회였습니다. 해태제과에서 이 원칙을 지켰는지는 모르지만 책에서 항상 그 시간에 시식회를 했다고하니…

사실 조사를하다보면 가장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타이밍을 맞추어 조사하는 게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사내에서하는 테스트라면 그러한 원칙을 쉽게 잊을법합니다.
그런데 허니버터칩을 개발하면서는 가장 배가 부르므로 배고파서 맛있다고 느껴지는 바이오스를 제거할 수 있고 맛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점심 식사후에만 시식회를 했다고하니 그 원칙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합니다.

책에 나오는 글을 인용해 봅니다.

“배가 고픈 시간에는 모든 과자가 맛있지만 점심식사 시간 직후에는 정말 맛있는 과자만 약간 맛있고, 약간 맛있는 과자는 맛이 없게 느껴진다”며 “점심시간 직후 100종의 감자칩을 일일이 맛보는 시식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 스낵 시식하는 사진을 찾으려했는데 마땅한게 없어서 인터넷에서 허니버터칩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허니버터칩 이미지.jpg

3 Value proposition에 대한 고민 – 와인에서 답을 찾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자칩

Value proposition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의 내용을 구체적으 로 명시화 하는 것으로 브랜드,가격,상품과 서비스의 편익등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글로 가치제안으로 불리우는데 이는 소비자에게 “우리 제품을 왜 당신이 이 값을 주고 사야 하는가”를 설득할 수 있는 기본이 되는 statement로 상품기획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중의 하나입디다.

Value proposition이나 컨셉을 정리하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쉽게 나오지않을뿐더러 오랜 고민을 한다고해도 정답이 없는 것이므로..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이 Value proposition을 찾기위해 무지 고민하는 그 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은 허니버터칩의 가치제안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신믜 물방울에서 와인의 맛을 정의한 방식에 착안해 와인처럼 허니버터칩도 과자를 먹는 단계 단계마다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즉 봉지를 열어 향을 맡고, 손가락으로 집어 노릇 노릇한 색갈 을 보고, 베어물면서 바삭바삭한 식감을 느끼고, 씹으몀서 칩이 부서지는 청량한 소리를 듣고,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끝맛가지 음미할 수 있느 과자. 이렇게 후각, 시각,촉각,청각,미각을 차레로 자극하는 감자칩

그리하여 Value proposition을 ‘단계별로 맛을 느끼는 감자칩’,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자칩’이란 컨셉을 도출하게 됩니다.

허니버터칩 제품 이미지.jpg
허니버터칩의 성과 혹은 한계

아래 그래프는 그간의 정보를 종합해서 그려본 한국 스낵시장 규모 추이입니다.
정확한 시장 규모 자료가 없어서 2012년까지는 출하액을 기준으로, 2013년부터는 POS data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기준이 조금 상이하긴 하지만 트렌드를 보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8월 허니버터칩이 런칭되고나서, 그 아류 제품들의 출시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등등에 힘입어 비약저긍로 시장이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허니버터칩이야말로 스낵시장으로 엄청나게 성장시킨 일등 공신이라 할수 있습니다.

한국 스낵 시장규모 추이.jpg

그러면 이 허니버터칩으로 시장점유율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점유율 추이를 그려보았습니다.

첫째, 해태의 점유율이 2013년 10.2%, 2014년 10.8% 에서 2015년 1분기 14.1%로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유승호를 동원해 수미칩으로강력한 마케팅을 전개한 농심은 상대적으로 점유률 하락이 미비하지만 오리온은 상당한 점유율하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4년, 2015년을 떠들석하게했던 허니버터칩에 비하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해태의 생산 capa로 충분한 공급을 할 수 없었다는 점과 점유율을 집계하는 A.C Nielsen의 특성상 점유율 반영이 보다 보수적으로 천천히 되지 않았을까하는 추정을 해봅니다. A.C Nielsen측이야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POS data를 토대로 전수 집계하는 것이 아닌 sampling을 통한 통계처리를 하는 조사업체 특성상 급격한 data 변동을 조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철저히 개인적인 추정일 뿐입니다.)

한국 스낵시장점유율.jpg

아래는 허니버터칩을 상품기획하는 프로세스를 교모문고 캠페인 시 정리한 내용인데 한눈에 알 수 있게 잘 정리한 것 같아 공유해봅니다. 그러고보니 위애서 정리한 2가지 포인트가 포함되어 있네요.

허니버터칩의 상품기획 프로세스.jpg

마돈나 35년 롱런의 비결 세가지 – 끊임없는 변신, 논란,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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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연한 브랜딩(flexible branding) 전략’(DBR 196호, 2016년 3월 발행)란 글을 읽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서 유연한 브랜딩(flexible branding) 전략으로 아래 세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브랜드 확장으로 통한 브랜드 의미의 외연 확대로 이애 대한 사례로 캐논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즉 캐논 브랜드의 의미를 단순한 ‘카메라 기술(Camera technology)’에 국한하지 않고 ‘이미징 테크날러지(Imaging Technology)’로 확대함으로써 프린터, 팩스 등 다른 카테고리로 효과적으로 다각화해갔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브랜드 핵심가치와 유연한 요소의 균형으로 BMW 사례를 들고 잇습니다. BMW는 시장 상황에 맞추어 SUV 시장에도 진출하지만 ‘ultimate driving machine’이라는 핵심 가치와 키드니 그릴(kidney grille)은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브랜드의 일관성과 유연성 간 균형 유지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외부 수혈을 통한 변신으로 팝가수 마돈나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마돈나는 적절한 시기마다 새로운 음악 파트너와 협업을 통해 변신을 거듭함으로써 지속적인 인기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세번째 언급되어진 마돈나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돈나가 어떻게 변신을 통해서 부침이 심한 그 세계에서 35년동안이나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마돈나 Madonna 04 resize.jpg

아래는 위키디피아의 내용을 보면 마돈나 자체의 역량을 그렇게 엄청나지는 않지만 수많은 변신과 다른 사람의 재능에의 의존을 통해서 성장해 왔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엠 그랜트가 2005년 쓴 Contemporary Strategy Analysis에서 마돈나는 확실히 타고난 뛰어난 재능은 없다며 “뛰어난 보컬리스트, 음악가, 댄서, 싱어송라이터, 배우로서 마돈나의 재능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논평했다.
로머트 엠은 마돈나의 성공은 경력동안 수 많은 다양한 변신과 다른 사람들의 재능에 의존했기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돈나의 접근 방식은 지금까지의 음악 산업의 성공 방식과는 달랐는데, 마돈나는 경력동안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이미지, 더 높은 명성과 주목을 받기위해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적인 음악을 해왔다.
그랜트는 “마돈나는 자신을 대중 음악의 여왕으로 확립시키기위해 멈춰있지 않고, 계속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냈다”고 결론을 내렸다.

들어가며 마돈나(Madona)에 대해서

마돈나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해 봅니다. 이는 위키디피아 및 나무 위키를 참조했습니다.

1958년 8월 미시간주 베이시티에서 태어남
1977년 가수가 되고자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향함(이때 단돈 35$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1982년 데뷰 싱글인 “Everybody” 발매하고 노래 및 안무가 히트하게 됨
1983년 데뷰 앨벌 “Madonna” 발매, ‘Holiday’와 ‘Borderline’을 빌보드 핫 100 10위권에 진입시킴
1984년 2집 앨범 “Like a Virgin” 발매,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고 2,000만장이상 판매 됨
1984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수상, 여기서 한 Like a Virgin 공연은 Boy Toy라고 새겨진 벨트와 웨딩 드레스, 그리고 머리를 헝클며 바닥에 몸을 문대는 엄청난 파격을 선보여 마돈나의 베스트 퍼포먼스 중 하나가 되었음

마돈나 true blue 1986

1986년 3집 “True Blue”를 발매, ‘Live to Tell’, ‘Papa Don’t Preach’, ‘Open Your Heart’는 빌보드 1위, ‘True Blue’, ‘La Isla Bonita’는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하면서 앨범의 모든 싱글을 5위권에 진입하며 2100만장의 앨범을 판매 함

외쪽 사진은 전설적인 사진가 허브 리츠가 작업한 마돈나의 앨범 ‘트루 블루’(True Blue)의 표지

1989년 4집 “Like a Prayer” 발매, 신성 모독등 다양한 논란이 일었고 1300만장의 저조한 앨범 판매고를 올림

1990년 베스트 앨범 The Immaculate Collection을 발매, 3,000만 장의 판매량 기록해 마돈나 커리어 최다 판매량이며 역대 솔로 아티스트 베스트 앨범 판매량 최다를 기록 함

1990년 5집 “Erotica” 발매, 빌보드 3위에 그침

1994년 6집 “Bedtime Stories” 발매, 마돈나의 음반중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가장 부드러운 음반으로 빌보드 200 3위에 오름

1996년 뮤지컬영화 《에비타》에서 열연해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함

1998년 7집 “Ray of Light” 발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수용해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고 그래미상을 수상 함, 2000만장이상 판매됨

2000년 8집 “Music” 발매, Music은 Ray of Light 시절의 일렉트로니카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동성애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음 1500만장이 팔림

2003년 9집 “American Life” 발매, 뮤직비디오에서 대통령 부시를 묘사한 사람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등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미국인들을 비판 함으로써 라디오 에어플레이에서 보이코트 당하고 400백장이 팔리는 저조한 성과를 거둠

2005년 10집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발매, Hung Up은 가장 많은 국가에서 1위를 한 싱글로 기네스북에 기재 됨

2008년 11집 “Hard Candy” 발매, R&B와 어반 팝에서 영감을 얻었고 저스틴 팀버레이크, 팀발랜드, 퍼렐 윌리엄스 그리고 다니아와 함께 작업을 함

2012년 12집 “MDNA” 발매,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해 마돈나의 여덟 번째 빌보드 200 1위 앨범이 됨

2015년 13집 “Rebel Heart” 발매

마돈나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갖춘 최고의 가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자 가수로써 각종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웠으며
  2. 2008년 Billbiard Magazine은 마돈나를 100인의 Top Artists중 2위에 올림
  3. 2003년 VH1과 《피플》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 아이콘 200”에서 7위를 차지했고
  4. 2008년 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등재 되고
  5. 2010년 타임은 “지난 수 세기동안 가장 강력한 여성 25”에서 현대 음악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상위권에 선정했고
  6. 2012년 VH1는 마돈나를 “비디오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여성 50명” 음악에서 가장 위대한 여인으로 칭송했음

1981년 데뷰 시 평범한 댄스 가수로 시작한 마돈나가 35년에 걸쳐서 사라지지않고 지금까지 정상의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마돈나 그녀 자신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Reinvention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누가 비판하듯 다른 사람이 재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두번째는 끊임없는 논란의 양산을 통해서 뉴스의 중심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라고 보여집니다.

세번째는 그녀 자신의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 덕붑니 아닐까 합니다. 물론 마돈나 자체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혹평은 있습니다만 35년을 걸쳐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그녀만의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법입니다.

아래는 3가지 성공요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돈나의 성공요인 1 Reinvention 끊임없이 자신의 재창조를 통한 이미지 변신

마돈나의 이미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지속적인 변화를 계속합니다. 시대에 맞추어 끊임없는 이밎의 변신을 통한 재창조야말로 마돈나가 35년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정ㅅ강의 자릴르 지킬 수 있는 비결중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것입니다.

1980년대 색조 화장을 한 팜프파탈같은 이미지, naughty girl next door

마돈나(Madonna)는 1981년대 댄스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그녀의 데뷰 앨벌 “Madonna(1983)”와 두 번째 앨범인 ‘Like a Virgin(1984)’은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 사운드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댄스음악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이미지는 짙은 색조 화장을 한 팜프파탈같은 이미지였습니다. 적극적인 노출과 과격한 율동으로 성을 제대로 상품화했다고 평가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글을 보니 1980년 마돈나의 이미지를 naughty girl next door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이 당시는 음악이 라디오와 같은 듣는 시대에서 MTV와 같은 보는 시대로 전환되면서 마돈나의 이런 이미지 전략은 제대로 시장에 먹히게 됩니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표현된것이 1984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수상식 공연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Like a Virgin 공연은 Boy Toy라고 새겨진 벨트와 웨딩 드레스, 그리고 머리를 헝클며 바닥에 몸을 문대는 엄청난 파격을 선보여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지금가지도 마돈나의 베스트 퍼포먼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한 마돈나의 인기는 수십 개의 고무 팔찌와 머리띠, 짧은 치마와 레깅스를 겹쳐 입은 마돈나의 패션의 인기 연결되어 1980년대 젊은 여성의 패션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 1984년 MTV 시상식 공연 모습 – 결혼식용 대형 케이크에서 나타나 웨딩드레스와 “Boy Toy”라는 문구가 적힌 벨트를 착용하고 머리를 헝클며 바닥에 몸을 문대는 공연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이는 마돈나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일컬어지게 됩니다.
마돈나 MTV 시상식(1984) 공연 모습 Madonna Like a Virgin02.jpg

1990년대 성적 판타지(erotic fantasy) 이미지의 강화

1990년대 마돈나는 성적 판타지 이미지를 더 강화 유지합니다.

1990년 4월부터 Blond Ambition World Tour를 시작했는데 이 공연에서 ‘정교하고, 성적인 자극적인 안무들’들로 마돈나 성적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고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Like a Virgin” 공연 중 두 남자 댄서와 함께하는 자위와 애무를 연상케하는 퍼포먼스때로 종교 단체들로부터 극심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2년 타임워너와 공동으로 레코드 회사(매버릭 레코드), 영화 제작 회사(매버릭 필름) 및 음악, 텔레비전 방송, 도서 출판 및 상품화 등의 부문으로 구성된 자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매버릭)을 설립합니다. 이 회사에서 최초로 발간한 도서는 sex였습니다. 여기에는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마돈나의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성적 세미 누드집으로 대중과 언론에게서 비판을 받았지만 많은 판매고를 올립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성을 원초적으로 다른 5집 “Erotica”를 발매합니다. 이 애럼은 빌보드 200 2위에 그치고 상당히 저조한 실적으루 거두게 됩니다.

▽ 1990년 마돈나의 Blond Ambition World Tour 이미지 그리 아래 왼쪽은 세마누드집 SEX의 이미중 하나 오른쪽은 5집 Erotica 표지 이미지
마돈나 Madonna Blond Ambition World Tour, book sex, Erotoca.jpg

1990년대 후반 보다 조신하게 , 보다 대중적 이미지의 강화

1990년대 중 후반기 마돈나는 그동안 성적 판타지 추구에서 벗어나 좀 더 진지한 방향으로 변신을 시도합니다.

1994년 6집 “Bedtime Stories” 발매하면서 그 동안의 격렬하고 강렬한 성적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가장 부드러운 음악을 선택합니다.

1996년 영화 《에비타》의 에바 페론 역할로 출연하며서 마돈나의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뒤로하고 에바 페론역을 소화한 마돈나는 54회 골든 글로브상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에비타 룩이라는 새로운 유행을 주도하게 됩니다.

마돈나 영화 에비타 Madonna in Evita 01.jpg

또한 딸 출산이후 신비주의 카발라에 심취하면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합니다.
1998년 7집 “Ray of Light”는 유명도는 떨어지지만 음악의 톤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 장르의 작곡가인 윌리엄 오빗(William Orbit)과 손을 잡고 만든 앨범으로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습니다. 이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앨범은 2000만장이상 판매됩니다.
이 7집 앨범은 마돈나의 음악중 가장 큰 변화를 한 앨범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마돈나 7집 Lay of Light 표지 resize.jpg

위와 같이 마돈나는 시대에 따라 끈임없이 새로운 시도를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왔습니다.
그러한 지속적인 변신은 그 자신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듀서와의 작업을 통해서 또는 다른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마돈나는 데뷰 초기에 가져가난 조발적인 성적 소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끊임없는 외부 수혈을 통해서 그녀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변화시켜왔고 그 전략이 아주 잘 맞아 떨어진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마돈나의 성공요인 2 Controversy 끊임없는 논란속에 뉴스의 중심에 서다

마돈나만큼 많은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람도 드물것입니다. 의도적인 논란이든 의도하지 않던 많은 논란을 불려 일으켰는데 그것은 마돈나가 세상에 대화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돈나는 기존의 룰과 생각을 깨뜨리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기존의 질서와 부딕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논란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격렬한 논쟁은 마돈나를 항상 뉴스의 중심에 있게 했고 그 이미지가 긍정정이든 부정적이든 ..
오히려 마돈나 자체는 일부러 그러한 논쟁들을 교묘히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마돈나 논란’이란 키워드를 치면 최근 마돈나가 감행한 엄청난 논란들이 쉴사리없이 나옵니다. 일반인엡 ㅗ기에는 정말 마음에 안드는 것들인데도 그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을 보면 놀랄 지경입니다.

아래 마돈나가 한 몇가지 이야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말만으로 모든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마 대단한 여장부임에는 틀임이 없어 보이네요

(착한)양으로 백년을 사는 것보다는 (제대로 으르렁거리며) 호랑이로 1년을 사는게 낫다
Better to live one year as a tiger than a hundred as a sheep. – Madonna

이 모든 낡은 가치를 전복시키지 않는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I wouldn’t have turned out the way I was if I didn’t have all those old-fashioned values to rebel against. – Madonna

인터넷을 보면

“Top Ten Controversies of Madonna”라는 포스팅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논란들이 있습니다. 그 것을 아래에 잠깐 공유해 보겠습니다.

  1. The ‘Like A Prayer’ Music Video
  2. The ‘Sex’ Book
  3. The ‘Justify My Love’ Music Video
  4. The Performance Of ‘Live To Tell’ On The Confessions Tour
  5. The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 March 31, 1994
  6. The ‘Erotica’ Album And Music Video
  7. The Blond Ambition Tour
  8. The ‘American Life’ Music Video
  9. Truth or Dare
  10. The Performance of ‘Like a Virgin’ On MTV

위에서 1위를 차지한 The ‘Like A Prayer’ Music Video는 원래 펩시 광고의 일환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에서 십자가를 불태우고 성직자들을 성적 매력으로 유혹하는 등 내용을 담아 매우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일부 종교단체들이 펩시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렸고 펩시는 마돈나와 광고 계약을 해지합니다.

마돈나 Madonna The 'Like A Prayer' Music Video 02-horz.jpg

위에서 7위를 차지한 논란은 1990년 4월부터는 시작한 Blond Ambition World Tour에서 일어납니다. 마돈나는 “나는 내가 최고의 댄서, 가수가 아니란걸 알아요. 하지만, 내가 최고가 아니여야만 원하는대로 도발할 수 있죠. 이번 투어의 목표는 쓸떼없는 금기를 깨는것이에요”라고 말하며 과감한 퍼포먼스를 감행해 많은 논란을 만들었습니다. “Like a Virgin” 공연 중 두 남자 댄서와 함께하는 자위와 애무를 연상케하는 퍼포먼스때문에 종교 단체들로부터 극심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위키디피아 마돈나편 인용]

또 마돈나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Like a Virgin”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곡이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성관계가 묘사되는 내용과 선정적인 가사 또한 가족관의 파괴등등으로 인해 당시 큰 논란을 야기햇습니다. 따라서 이 노래를 금지시켜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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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의 성공요인 3 Talent & Hard working 다양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

앞에서 로버트 엠 그랜트는 마돈나가 확실히 타고난 뛰어난 재능은 없다며 “뛰어난 보컬리스트, 음악가, 댄서, 싱어송라이터, 배우로서 마돈나의 재능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논평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돈나의 다재다능함을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가 자체의 재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능을 끌어와 성공했다고 인정하드리도…

그녀는 그녀의 재능은 매우 다양한 범위에서 발휘함으로써 그 재능을 증명해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모든 면에서 가장 최고는 아니었을지라도 아트를 하는 사람으로 마돈나를 자리매김하게 했으니까.

마돈나는 가수로서뿐만이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적지 않은 자취를 남겼습니다. 영화 Evita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재능은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마돈나는 동화책 작가로도 성공적인 데뷰를 합니다. 2003년 9월 칼라웨이 아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출판한 “The English Roses” 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목록 중 1위로 데뷔했고,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팔린 동화책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동화책의 내용은 네 명의 여학생들이 서로를 질투한다는 내용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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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는 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의 길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말라위 사람들이 직면하고있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 《I’m becase we are 아임 비코즈 위 아》가 그것입니다.
이 다큐 영화의 감독은 나단 리스만이 맡았고, 마돈나는 각본을 맡았습니다. 아쉽게도 이 다큐 영화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마돈나는 《타락과 지혜》라는 또다른 영화에서 처음으로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평은 긍정과 혹평이 공존했습니다. 《타임스》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만큼 했다”고 말했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영화에 대해 “마돈나는 전혀 가망없지 않은 첫 노력을 했지만, 그냥 보관해 놓는게 좋을 것이다”며 혹평을 했다고 합니다. [위키디피아 마돈나편 인용]

마돈나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사업가의 길을 가기도 합니다.
마돈나 자신의 딸 루데스와 함께 의류 브랜드 마테리얼 걸을 런칭했는데, 이 마테리얼 걸은 1980년대 마돈나가 한창 전성기였을 시절 펑키걸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고, 메이시스 산하로 런칭되었습니다. 2011년 11월 마돈나와 MG 아이콘은 Truth or Dare by Madonna라는 명으로 신발, 속옷류, 악세사리를 생산하는 두 번째 의류 브랜드를 런칭했습니다.

마돈나 마테니얼 걸 Material Girl-horz.jpg

또한 하드캔디 피트니스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규모의 피트니스 센터 사업을 시작해, 2010년 11월 멕시코시티에서 첫 센터를 개장햇습니다.

마돈나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야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필요시마다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녀늬 커리어를 변화시켜왔고 그것이 그녀를 “Queen of POP”으로 군림하게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우디 A8 스포츠카 광고 – The Ey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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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말 영국에서 온 에어된 아우디 R8 광고입니다.

The Eye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는데 말 그대로 눈 안구를 통해서 질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속에 따라 눈 안구가 커지고 작아지는것을 보여줌으로써 실제 드라이빙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도 더 속도감을 느끼고, 더 조용하게 질주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 자동차 광고와 달리 눈 안구를 통해서 보여지는 불빛과 눈 안구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을 모티브로 잡았다는 저에소 독팀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래 1분짜리 풀 광고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인쇄광고도 눈 안구를 형상화한 광고입니다. 눈 안구의 형상과 흐릿한 반영을 토대로 광고 이미지는 묘한 신비감을 줍니다.
차는 멋있는다는 생가만 들뿐…

아우디 A8 스포츠카 Eye Poster_audi-r8-eye-poster.jpg

More Focus, more drive라는 주제로 인쇄광고
아우디 스포츠카와 함께라면 (더 짜릿해서) 심장박동이 46% 더 늘어난다!!

커틴을 심장박동 증가 그래프로 표현했네요

아우디 R8 herart Rate audi-r8-heart-rate.jpg

2016년 시작한 코카콜라 새로운 이 맛, 이 느낌(Taste the feeling)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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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2009년부터 2015년가지 진행한 Oen Happiness Campaign을 뒤로하고 2016년 새롭게 "이 맛, 이 느낌(Taste the feeling)"이란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코카콜라 5가지 제품을 코카콜라 브랜드로 통합, 일상의 작은 장면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꿀것을 'Taste the feeling"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016년 1월 19일부터 글로벌 전체로 함께 시작한 이 캠페인은 한꺼번에 6개의 광고를 공개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Global 마케팅 회사답게 시작하는 규모도 남다릅니다.

이 캠페인 광고 영상 6개와 광고 이미지 18개를 차레로 공유해봅니다..

1 "Anthem"편

친구와 보내는 시간, 연인과의 데이트, 학교 생활. 청춘을 장식하는 장면은 언제나 코카콜라가 곁에 있습니다.

The campaign’s lead spot, “Anthem” features a series of vignettes that capture life’s everyday moments – such as ice-skating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a first date, a first kiss, and a first love – all linked by Coca-Cola with the new tagline, “Taste the Feeling.” The spot introduces an original song, “Taste the Feeling” featuring Conrad Sewell that celebrates the experience of drinking a Coca-Cola, any Coca-Cola.

2 'Under Pressure'편

공부,스포츠, 사랑 등 무슨 일에도 전력 투구하는 10대지만, 젊음이기 때문에 실패 할 수도. 그럴 때 차가운 코카콜라를 마시고 숨을 고른 미소를 되 찾겠다는 내용입니다.

“Under Pressure” was created to reflect the “24/7” nature of life for a teenager. Throughout the spot, Coca-Cola provides a moment to pause and release everyday tensions, reflecting on the notion that drinking an ice-cold Coca-Cola makes any moment more special. The spot is set to a cover version of Queen & David Bowie’s song, “Under Pressure.”

3 "Break Up '편

사랑하는 젊은 부부. 만남에서 사랑의 시작, 그리고 방문한 이별의 위기와 화해의 장면까지, 두 사람의 관계를 콜라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Break Up” follows the journey of a young couple who romance each other, experience a break up and ultimately reconcile with Coca-Cola playing an intimate role at each stage of the relationship. The spot features the song “Made for You” with vocals by emerging artist Alexander Cardinale.

Listen to Alexander Cardinale’s “Made For You” at: http://CokeURL.com/madeforyou

4 "Brotherly Love '편

항상 동생을 괴롭 히고는 참견을내는 형. 심술부리는게 다반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동급생에 왕따 뻔하는 모습을 목격 한 형은..

“Brotherly Love” captures the unique relationship between brothers, a universal story of love and conflict. Ultimately the younger brother finds himself without his Coca-Cola. The older brother comes to his rescue and they enjoy a special moment together. The spot features a new version of the hit song “Hey Brother” by Avicii.

5 "Supermarket '편

꽃미남 남성 손님이 코카콜라를 시원하게 마시는 모습을 여성 점원이 감탄하면서 바라 보는 코믹한 영상

6 "What is a Coca Cola for?"편

바에서 젊은 남성이 코카콜라를 주문. 그러자 점원은 "왜 콜라를 마시는?"라고 질문합니다. "깨끗이하고 싶으니까?"아니면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그러자 남자는 한마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거야."

The spot begins in a restaurant on a hot day, with a young man ordering a Coca-Cola at the bar. While the bartender hands the Coke to him, we see a series of vignettes that represent why would he have a Coca-Cola. This is brought to life in a montage of “Taste the Feeling” moments spanning activities and emotions. The spot concludes with a simple comment by the young man, “I just love it.”

Photos Taste The Feeling Photography

이번 광고 캠페인에 올라온 사진들을 모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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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 TV의 원조, 샤프 몰락 원인 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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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대 전자기업으로 불리었던 샤프가 대만 홍하이그룹에 인수된다고 합니다

2016년 2월 중순 홍하이그룹에 인수된다는 뉴스 보도가 터져나왔고 몇가지 문제가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3월 6일자 니혼게이자 신문은 오는 3월 9일 샤프 인수 계약을 마무리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소니, 파나소닉과 함께 일본 3대 전자업체로 거론되었던 샤프의 몰락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샤프 몰락에 대한 언급은 몇년전부터 꾸준히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2012년엔가에도 중국업체에 인수된다는 설이 있긴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기존 자료를 토대로 샤프 몰락의 원인을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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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www.japantimes.co.jp에서 빌려왔습니다]

샤프 몰락에 대해서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아래처럼 몇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트렌드 변화(trend shift)를 따라잡는데 실패
둘째, 기술을 믿고 안일하게 대처, 시장을 리드하는 투자에 실패
==셋째, 가격 경쟁력 상실

1912 출범, 샤프펜슬로 일본의 자존심이 되다

샤프(당시 하야카와전기)는 1912년 출범하였습니다. 당시 하야카와 도쿠지는 구멍 없는 톱니식 혁대 버클을 개발해 크게 성공을 하지요.
이후 1915년 샤프의 이름이되고 샤프를 각인시킨 샤프 펜슬 제품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됩니다. 당시 출시한 기계식 연필인 ‘에브리 레디 샤프 펜슬(Every Ready Sharp Pencil)’은 기계식 연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샤프 펜슬이 1893년 미국인이 발명했고 독일에서 대량 생산되었으며 일본에서 규격화되고 널리 보급되게된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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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당시 하야카와전기)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동경의 샤프 공장이 전소된 후 1924년 하야카와금속연구소를 설립해 새로운 사업을 모색합니다. 이후 독자적 기술을 가지고 전자 산업을 리드해 왔습니다.

1924년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일본에서 첫 광석라디오 세트(샤프 다인) 개발,
1951년 일본 최초로 흑백 텔레비젼을 개발했으며,
1964년 6월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로 만든 세계 최초 전자계산기, 집적회로를 이용한 세계 최초 계산기,
1988년 세계 최초 14인치 LCD TV를 개발

그러나 TV 산업이 LCD 주도로 바뀌고 핸드폰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는 동안 이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해 점차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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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 오사카 본사 전경,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빌려왔습니다]

원인 1 트렌드 변화(trend shift)를 따라잡는데 실패

샤프를 비롯한 일본가전업계가 이렇게 몰락하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은 트렌드 변화(trend shift)를 따라잡는데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시장 트렌드가 디지털미디어와 게임, 모바일단말기, SW, 인터넷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는 과정에서 이를 선도하지 못하고 제대로 따라잡지도 못한 것이지요.

샤프로서는 TV 산업 트렌드를 리드하지못하고 더우기 모바일 트렌드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큰 이유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TV 트렌드를 리드하지 못하다.

샤프는 1988년 세계 최초 14인치 LCD TV를 개발합니다. 또한 전기를 빛으로 만드는 TFT(Thin Film Transistor) LCD 원천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나고 기술을 선점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삼성전자나 LG도 LCD 사업을 하면서 샤프의 특허와 기술을 사용했으며 샤프와 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 상호 특허 사용)를 맺고 샤프의 원천기술을 이용해 LCD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압도적인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샤프가 왜 삼성과 LG에 밀리는 것일까요?

당시 브라운관 TV를 장악한 것은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업체였고 샤프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샤프는 세계 최초 14인치 LCD TV를 개발하는 등 기존 브라운관 TV에서 벗어나 LCD라는 새로운 트렌드하에서 시장을 장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기존 시장을 혁파하는 접근에는 실패하면서 LCD TV를 afforable한 가격에 제공하고, LCD에서 LED로의 전환 등 끊임없이 트렌드를 변화시키려는 삼성등에 밀려 주도권을 잃었습니디.

모바일 사업에서 기회를 놓쳤다.

이미 하향세를 그리고 있지만 모바일 분야는 최근 10여년을 강타한 가증 중요한 전자 IT부분의 트렌드였습니다.
이런 모바일 트렌드에 샤프를 비롯한 일본 전자업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소니는 에릭슨과 합작해 대응했지만 제대로 시장 안착을 하지 못했으며 샤프도 핸드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거의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아래는 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에서 2013년에 발표한 모바일 폰 시장 예측입니다. 여전히 급속하게 성장은 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시장 예측 ITU 2013.png
원인 2 기술을 믿고 안일하게 대처, 시장을 리드하는 투자에 실패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샤프는 세계 최초 14인치 LCD TV를 개발했고 TFT(Thin Film Transistor) LCD 원천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샤프는 LCD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LCD 원조라는 자만은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투자를 통해 시장을 견인하고 리드해야하는데 자만에 도취되 투자를 게을리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lCD 등의 장치산업은 수조원이 투자되는 생산라인 완성 후 감가상각이 빠진후에는 차세대 라인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 수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래야 제대로된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샤프는 신규 생산라인 투자를 주저했습니다.

샤프가 주저주저하는 동안 후발주자였던 삼성과 LG는 과감한 투자로 경쟁에 나섰습니다. 결국 샤프는 2001년에 삼성과 LG에 선두자리르 내주고 말았습니다. 더우기 중국업체들도 시장에 뛰어들면서 저가 LCD를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LCD의 시장가격은 급속히 하락하면서 샤프를 괴롭히게 됩니다.

아래는 샤프 액정 부분 실적 추이를 한겨레신문에서 보도한 그래프를 수정한 것입니다.
매출액은 2007년 피크를 친 이후 분명한 하향세에 돌입하였고 영업이익도 2007년이후는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3년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했지만 2015년 다시 댁모 적자를 냈습니다.

샤프 액정 부분 실적 추이 한겨레신문  그래프를 수정 인용.JPG
[단위 ; 억엔, 한겨레신문에서 요미우리신문 기사을 인용 정리]

원인 3 가격 경쟁력의 상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보다는 비중이 덜어질 수 있으나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가격 경쟁력 상실 또한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 상실은 회사 운영 측면, 시장 경쟁 측면 그리고 경제 환경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회사 운영 측면의 분석은 앞의 투자와 연관됩니다. LCD에서 가격을 낮추는 것은 새로운 혁신 기술을 적용해 집적화를 높여 단위당 생산 코스트를 낮추는 것인데 앞서 지적한봐와 같이 샤프는 과감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못해 이런한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장 경쟁 측면에서 살펴보면 저가 중국 업체의 LCD 산업 진출과 일본 도시바, 히타치, 소니가 주도해 만든 저팬 디스플레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BOE가 2011년 처음으로 TV용 LCD 패널 시장에 진입했고 2012년부터 물량을 대거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LCD 패널에서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으며, 일본내의 저팬 디스플레이와의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지못하고 있습니다.[중앙일보기가, “샤프 LCD 사업 저조, 저팬 디스플레이와 소모전 전개” 참조]

경제 환경 측면에서 보자면 엔화 가치상승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엔화 가치 상승은 샤프 제품의 수출가격을 더 비싸게 만들었고 일본내 판매 마진을 줄어들게 해서 영업이익의 감소를 초래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투자 경정 등 경영 판단 미스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기사는 경영 판단 착오가 샤프 몰락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가메야마 2ㅔ2공장 투자, 10세대 라인투자등등이 그것인데요 이러한 부분은 위의 3가지 요인에 어느정도 포함된다고 별도로 정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이 기술 그릭 최최의 기술을 가지고도 부단한 혁신 및 시장 선도를 게을리한 것을 샤프 몰락의 핵심 키워드로 정리해봅니다.

콜라병 100주년 기념 코카콜라 광고 캠페인 I’VE KISSE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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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코카콜라의 컨투어병이 나온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마케팅에 귀신같은 코카콜라가 이를 그냥 지나칠리 없었죠.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 컨투어병 탄생의 10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광고와 주제가를 만들고, 앤디 워홀(Andy Warhol),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등 세계적인 현대 아티스트의 작품 전시회를 포함한 캠페인을 벌입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멏가지 마케팅 이벤트 중의 하나는 과거 헐리우드 스타나 유명 인사들이 과거에 콜라를 마시는 사진을 현재에 복원해 “I’VE KISSED ~ ((나는 ~ 와 키스했다)”광고를 옥외 광고 및 인쇄 광고 중심ㄴ으로 집행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 코카콜라 팬으로 유명했던(Marilyn Monroe),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레이 찰스(Ray Charles)등이 콜라를 마신 것을 “키스”로 표현, 누구나 이 상징적인 병 콜라를 마시면 “행복과 키스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에 그 광고 사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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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ke-Bottle-100-Anniv-Kissed-By-Marilyn.jpg
[위 이미지는 kineticww.com//과 iheartbillboards.com//에서 빌려왔습니다 ]

100 Years of the CocaCola Contour Bottle

코카콜라 병 모양은 1915년 다른 콜라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병 디자인은 “매우 독특하고, 오직 촉감만으로도 알 수 있고 어둠 속에서나 깨진 상태에서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카콜라 병 디자인은 코코아열매가 콜라 재료 중 하나로 착각한 디자인너가 코코아 열매의 곡선과 굴곡을 병 디자인에 표현함으로써 등장했습니다.

1915년 11월16일 미국 인디애나주 테레 호트의 루트글래스컴퍼니(Root Glass Company)에서 컨투어 형태의 코카콜라 병이 제작된 이래 두드러진 곡선과 독특한 형상등으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많은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아래 100년간의 간략한 변천사를 보듯이 그 디자인은 미세하게 조금씩 바뀌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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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릴린 먼로 I’VE KISSED Marilyn Mon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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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시는 http://theinspirationroom.com/에서 빌려왔습니다, 사진이 찍힌 장소는 토론토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 건너편에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위 광고사진은 1953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라는 영화 촬영의 휴식시간에 마릴린 먼로는 콜라를 마시고 있고 제인 러셀은 화장을 고치고 있는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는 사진가 Edward Clark가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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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비스 프레슬리 I’VE KISSED EL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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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광고는 1956년 7월2일 미국의 뮤지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뉴욕시 이스트 24번가에 자리한 RCA빅터(RCA Victor) 스튜디오원(Studio 1)에서 막간에 콜라를 마시면 웃고 있는 사진에서 영감을 얻을 것입니다.
그 당시 프레슬리와 그 밴드는 녹음 세션에서 ‘하운드독’(Hound Dog)과 ‘돈 비 크루얼’(Don’t Be Cruel)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While taking a break during his second and last recording session in NYC, Elvis enjoys his Coca Cola, before singing “Don’t Be Cruel.” Photo by Alfred Werthe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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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이 찰스 I’VE KISSED RAY CHA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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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광고는 1969년 코카콜라의 “Things Go Better with Coke” campaign의 일환으로 집행된 TV광고에서 캡춰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코카콜라 bottle 100주년 광고_RAY-drinks-coca-cola Taken from 1969 'Things Go Better with Coke' TV ad..jpg

4 리타 I’VE KISSED RITA 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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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소스 – http://www.nwradu.ro/에서 빌려왔습니다 ]

위 광고는 LA에서 David LaChapelle가 담은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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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라나 I’VE KISSED L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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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렌티나 I’VE KISSED Val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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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팔코 I’VE KISSED FA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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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델리아 I’VE KISSED D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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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bottle 100주년 광고_Kissed DELIA 옥외광고.jpg
[이미지는 http://dragomirs.ro/에서 빌려왔습니다]

9 제단 I’VE KISSED XHE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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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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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콜라보레이션 역사

너무 너무 유명한 코카코라 콜라보레이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코카콜라는 브랜드의 젊음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브랜드 equity를 확장하기 위해 예술가등과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왔습니다.

처음에 몇개만 정리하면 될것 같았는데 셀수없을 정도로 많은 콜라보가 있었네요.

코카콜라가 콜라보레이션을 보격적으로 시작한게 2003년이라고 합니다. 참 오래되었는데 모든 콜라보레이션 사례를 다 공유할 수 없고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례중심으로 혀재에서 과거순으로 역으로 내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6 디즈니와 코카콜라의 콜라보

이 자료는 진짜 코카콜라와 디지니의 콜라보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
맥시코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Nacim Sehin이 디즈니와 콜카콜라가 콜라보를 한다면 이런 이미지가 나올것이라고 예상한 본 것입니다.

시작을 좀 부드럽게 해보기 위해 소개해 봅니다.

올해는 어떤 코카콜라사의 콜라보가 나올까요?

디지니 코카콜라 콜라보 예상_disney-coca-cola-cans-01.jpg

2015 핫한 디자이너로 떠오른 JW 앤더슨

2015년 핫한 디자인너로 떠오르는 JW 앤더슨이 디자인한 코크병
노트와 티셔트도 출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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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앤더슨 jw Anderson X coca-cola-COURTESY.jpg

2014 이탈리아 디자이너 모스키노(Moschino)

모스키노(Moschino)
이탈리아 디자이너 모스키노(Moschino)
코카콜라 병을 사용해 다양한 시도를 한 디자인

모스키노(Moschino) collection.jpg

모스키노(Moschino) 코카콜라 라이트 캔 02.jpg

모스키토가 디자인한 콜라백, 셔츠 등등

이탈리아 디자이너 모스키노(Moschino) 13.jpg
2013 조이리치와 코카콜라

2013년, 2014년, 2015년 계속해서 조이리치와 코카콜라는 콜라보를 지속합니다.
조이리치에서 코카콜라 로고 등을 이용한 의상 디자인을 선 보였습니다.

아래는 2014년도 디자인 이미지

조이리치와 코카콜라 JOYRICH X Coca-Cola 04.jpg

아래는 2015년 조이리치-코카콜라 콜라보 광고 이미지중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조이리치와 코카콜라 JOYRICH X Coca-Cola 2015 FW 03.jpg

2013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2013년 다이어트 코크(Diet Coke) 30주년을 맞아 ‘Sparkling together with Marc Jacobs’ 라는 주제로 ‘whimsical, feminine’ concept을 가지고 3가지 캔을 디자인했습니다.

이 3가지캔 디자인은 ‘whimsical, feminine’ concept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를 상징 이미지를 재현하였습니다.

1980년대는 브로드웨이의 대명사이자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 있는 세계 최대의 극장인 라디오 시티 뮤지홀과 여성 해방 운동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는 정장용 모자, 하이힐, 뷔스티에를 입은 여자를 모델로 한 디자인입니다.

2000년대는 스포티한 룩 여성을 형상화, 스트라이프 무늬의 상 하의, 하이힐을 착용한 여성 주위로 레드 폴카 도트가 흩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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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2012년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코카콜라의 콜라보의 대표적 사례로 많이 이야기되는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나이트(Night)’, ‘데이(Day)’, ‘타투(Tatoo)’ 3종으로 출시된 코카콜라 라이트 리미티드 에디션은 ‘나이트 앤 데이(Night&Day)’ 콘셉트로 장 폴 고티에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코르셋과 스트라이프 패턴을 패키지에 접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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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07 스카이폴 에디션(007 SKYFALL)

007 스카이폴 에디션(007 SKYFALL)
2012년 개봉한 07 스카이폴과 영화 콜라보레이션을 위한 디자인
007 제임스 본드의 블랙 슈트와 코카콜라 제로의 블랙 패키지가 잘 어울리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와 음료수간의 다소 독특한 콜라보로인해 관심을 받았고 주어진 시간내에 미션을 수행하는 007 스카이폴 캠페인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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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2년 런던올림픽 기념 Bottle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출시한 코카콜라 기념 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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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 OFFICIAL COCA-COLA BOTTLE DESIGN FOR LONDON 2012 OLYMPICS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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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코코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Karl Lagerfeld & Coca-cola : 칼 라거펠트 라이트 보틀

코코 샤넬 (chanel)의 수석디자이너 Karl Lagerfeld는 특유의 세련된 우아함을 콜라병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느 2010년과 2011년 두차례에 걸처 콜라보 작업을 하였습니다.
디자인 시 그 자신으 실루엤을 디자인을 꼭 포함시킨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핑크 뚜겅 디자인은 여성을 위한 라이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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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리키엘(Nathalie Rykiel)

2009 프랑스 나탈리 리키엘(Nathalie Rykiel, 소니아 리키엘의 딸)

2009년 1월 프랑스에서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의 디자이너 나탈리 리키엘(Nathalie Rykiel, 소니아 리키엘의 딸)과 컬래보레이션을 진행하였다.

위 콜라병은 한정적으로 2009년 1월부터 프랑스 Monoprix(슈퍼마켓 체인)와 Bon March(백화점)에서만 1.25유로에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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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꼼데가르송 에디션(COMME des GARCONS)

꼼데가르송 에디션(COMME des GARCONS)

의류 브랜드인 꼼데가르송과 음료 코카콜라의 콜라보레이션
꼼가드데송의 레드와 블랙을 사용해 색다르고 세련된 디자인을 제안하였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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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SEX AND THE CITY의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

2008년 SEX AND THE CITY의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와 협업해 현대 여성이 갖추어야할 4가지 덕목 사랑, 커리어, 패션, 열정이라는 컨셉으로 출시했다.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 코카콜라 콜라보 01.jpg

아래는 2009년 출시한 “Betty Bottle”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 코카콜라 콜라보 02.jpg
2008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i)

2008년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i)가 디자인한 Coke 병
와일드하고 섹시함을 모티브로 작업했다고.
와일드한 이미지는 정글을 연상시키는 야생의 동물을 기반으로 디자인 하었다.

Coca-Cola Light by Roberto Cava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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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영국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British designer Matthew Williamson)

2005년 출시된 선샤인 컬렉션

In 2005, we launched the Sunshine Collection, where celebrities and designers showed us what brings them sunshine. We gave £1,000 for every submitted design to the Terrence Higgins Trust, the UK’s leading HIV charity and chose four designs to form the official Sunshine Collection, sold at Harvey Nichols. They belonged to Manolo Blahnik, Trevor Nelson, Jonathan Saunders and Scissor Sisters. [coca-cola UK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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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영국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British designer Matthew Williamson)

2003년 영국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슨(British designer Matthew Williamson)이 강력한 핫핑크와 노란색을 사용한 보틀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이게 최초의 코카콜라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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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4년에 추가로 3개의 디자인을 더 선보였다고 합니다.

1962 앤디워홀과 코카콜라

앤디워홀의 코카콜라 이미지는 콜라보의 결과는 아닙니다.
앤디워홀의 예술철학이 코카콜라병을 그리게 한것이지요

“팝 아트는 코카콜라 같은 것이다!
돈을 더 낸다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내면 수가 많아지지 내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신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나
길거리의 건달이 마시는 콜라나
모두 같은 것이다!!!
근엄하지 않고 평등하고 쉽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아래는 앤디워홀의 “3개의 콜라병”(Three Coke Bottles)이라는 작품입니다.
2010년 11월 9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536만 달러에 판매되어 유명해졌지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콜라병이라 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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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Moncler) 패션북 Art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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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Moncler) 사례를 정리하면서 그들의 브랜드 전략중의 하나가 몽클레르(Moncler) 제품을 Art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많은 패션브랜드들이 궁극적으로 표방하고 싶어하는게 ART가 아닐까 싶습니다. ART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이 그리고 그것을 브랜드 이미지에 담을 수 있다면 정말 상상하기 힘들정도의 브랜드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몽클레르(Moncler)는 그러한 시도를 몽클레르(Moncler) 제품과 사진을 연관시켜 그 효과를 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2015년 10월 열린 Moncler Art for Love와 같은 사진전이 그런 것이죠..

David Bailey, Patrick Demarchelier, Arthur Elgort, Annie Leibovitz, Bruce Weber과 같은 32명의 유수의 사진가들이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을 배경으로 작업한 사진으로 Art for Love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전시회에 출품된 사진중의 일부를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흑백, 컬러등을 나누려다 자연스레 모은 순서대로 보는게 좋겠다 싶어 섞여진 그 상태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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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Moncler) 패딩 재킷, 스타일을 입고 명품이 되다

드류 베리모어의 GUESS 청바지 광고

애나 니콜 스미스의 GUESS 청바지 광고 20

GUESS 청바지 광고 – GUESS FALL 2011 Campaign

탑모델 클라우디 쉬퍼(Claudia Schiffer)의 GUESS 청바지 광고

지지 하디드(Gigi Hadid)의 2015년 GUESS 청바지 광고

몽클레르(Moncler) 패딩 재킷, 스타일을 입고 명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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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근래 등골브레이커로 유명한 몽클레르(Moncler)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겟습니다.

몇년전부터 한국에 불어온 아웃도어 바람이 이제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명품이라 알려진 몽클레르(Moncler) 등등은 아직도 퇴색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몽클레르(Moncler)은 세계 최초로 패딩 재킷을 만들었고 등산 산악용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1990년이후 몰락을 거듭하다 2003년이후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통해 되살아난 사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아래는 “사업 발견의 비밀”중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세계 최초로 다운재킷을 만든 몽클레르 그러나 2000년대 초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몽클레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레모 루피니회장은 끝났다고 생각한 몽클레르를 2003년 전격적으로 인수한다. 기술력은 있지만, 당시 별 볼 일 없는 회사였던 몽믈레르의 숨은 잠재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 다운재킷은 산악전문가나 스키선수가 입는 옷으로 인식되었다. 즉 추울 때 입는 전문가들을 위한 기능성 의류였다. 반면 일반인들은 추울 때 당영히 두꺼운 털옷이나 모피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모 루피니 회장은 몽클레르의 다운재킷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못, 털옷이나 모피대신 추울 때 입을 수 있는 명품의류로 만들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한 생각은 즉시 실행으로 옮겨졌고 그 결과 몽클레르는 극적으로 회생하게 되었다.

몽클레르의 변신을 통해 알수 있듯이 전문가용을 일반인용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사업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전환은 전문가용의 품질과 가격을 낮추어 일반인용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품질을 최대한 살리면서 ㅅ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사용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업 발견의 비밀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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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Moncler) 역사

아래 간략히 정리한 몽클레르(Moncler) 역사는 2015년 7월 게재된 FASHION WEEKLY에 소개한 ‘패딩 재킷에 스타일을 입히다. 몽클레르 Moncler’라는 글을 토대로 정리 보완하였습니다.
1952년 사업가이자 산악가였던 르네라미용(René Ramillon)과가 그의 친구인 앙드레뱅상(Andrè Vincent)과 함께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브랜드이름은 처음 회사를 시작한 프랑스 모나스티에 드 클레르몽(Monastier de Clermont)지역 이름의 첫 세글자 Mon과 마지막 네글자 Cler를 따서 몽클레르(Moncler)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여가와 아웃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감지하고 산업용 텐트나 침낭 등 주로 캠핑 용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954년, 세계최초 퀼팅 패딩 재킷 출시

1954년 몽클레르(Moncler)는 세계 최초로 퀼팅 패딩 재킷을 출시합니다.
원래 이 퀼팅 패딩 재킷은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 일하는 몽클레르(Moncler) 공장 노동자를 위해서 만든것인데 프랑스의 유명 산악인인 리오넬테라이(Lionel Terray)이 이 재킷을 보고 산악인들이 극한의 기후속에도 견딜수 있는 제품 개발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산악전문가를 위한 ‘리오넬테라이를 위한 몽클레르 (Moncler pour Lionel Terray)’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이후 몽클레르(Moncler)는 산악전문가들을 위한 제품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1954년 이탈리아 탐험가 아낄레꼼파뇨니(Achille Compagnoni), 리노라치델리(Lino Lacedelli)가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Karakorum) 원정 시 몽클레르(Moncler) 재킷을 입었고,
몽클레르(Moncler) 역사_In 1954, Italians Lino Lacedelli and Achille Compagnoni climbed K2 with #moncler down jackets #K2 #2014 #expedition2.jpg

1964년에는 몽클레르 가리오넬 테라이가 주도하는 알래스카원정대의 공식후원사로 선정되었고,
몽클레르(Moncler) 역사_1964년 알라스카원정대 공식 후원.jpg
1968년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서프랑스 스키국가대표팀의 공식후원사로선정되어 몽클레르(Moncler)의 브랜드 위상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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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지의 소개를 통해 패션 브랜드로 진화

몽클레르(Moncler)의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이 브랜드는 스포츠브랜드, 방한 기능성 브랜드로의 이미지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엘르(Elle)지가 컬러풀한 몽클레르 재킷을 패셔너블한옷으로 지면에 소개하면서, ‘몽클레르재킷=스타일’의 공식이 등장하게됩니다.

몽클레르(Moncler)의 선명한 컬러와 특유의 퀼팅 디자인의 재킷은 설원이 아닌 도심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80년대에 이르러 프랑스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몽클레르(Moncler)의 패딩 재킷은 ‘고급리조트를 드나드는 젊은 상류층’ 이미지의 상징이었고,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민감한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심지어 1988년 마담 피가로(Madame Figaro)지는 편집부 전직원들이 몽클레르 재킷을 입고 촬영한 사진을 크리스마스카드로 사용했다고 하니, 당시 몽클레르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 할리우드 유명 연예인들이 몽클레르의 재킷을 입은 모습이 대중에 노출되며 몽클레르는 전 세계적인 ‘패션아이템’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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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루피니에 인수된 후 Brand epositioning을 하다

1980년대 인기를 누리던 몽클레르(Moncler)는 1990년대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됩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새로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몽클레르(Moncler)의 이미지는 점차 올드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이나 입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깊어지먄서 인기를 잃고 판매도 감소하게 되지요.

위기가 깊어지면서 1999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레모 루피니(Remo Ruffini)를 영입하게 됩니다.
이후 2003년 레모 루피니(Remo Ruffini)는 이 쓰러져가는 몽클레르(Moncler)를 아예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레모 루피니(Remo Ruffini)회장은 어렸을 적 당시 시대를 상징하는 3대 아이템중이 하나였던 몽클레르의 기억을 믿고 과감히 인수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레모 루피니(Remo Ruffini)는 몽클레르의 브랜드 Repositioning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기능에만 치중하는 대신, 디자인과 소재에 중점을 두고 일반인도 쉽게 입을 수 있는 패셔너블한 재킷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몽클레르(Moncler) 제품을 모피코트 대신에 입을 수 있는 고급 재킷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1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에 집중하다 – 세계 최고의 거위털 재킷을 만들자

루피니회장과의 인터뷰를 보면 몽클레르(Moncler) 부활의 핵심 키워드중의 하나는 집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 잘 할 수 있는 패딩 재킷에 집중하고 이 패딩 재킷이 일반인도 쉽게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패딩 재킷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자본을 집중해 효율적으로 연구 개발을 할 수 있고 판매도 단순화 할 수 있으며 더우기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도입이 됩니다. 세계 최고의 패딩 재킷!!!

이런한 집중성있는 연구를 통해 당시 1kg에 달해 등산시에나 입을 수 있었던 패딩 재킷을 경량화해서 일반인도 쉽게 입을 수 있게 혁신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혁신은 패딩 재킷의 사용철르 점차 넓혀갈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또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 브리타니 남쪽 지방과 페리고르에 서식하는 수컷 조류 중에서 혈통이 좋은 새의 깃털과 솜털만을 사용해 유럽에서만 생산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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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름다운 패딩 재킷을 만들자 – 명품이 된 몽클레르(Moncler)

처음 패딩 재킷이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는 등산용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따뜻하나 무겁고 둔해보여서 일상 생활에서 입기에는 난관이 많았습니다. 당시 패딩 재킷의 무게는 1kg이 넘어갔다고 하네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혁신을 통해 패딩 재킷의 무게를 줄여서 경량화했습니다. 또한 디자인 차별화에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차별화는 2003년부터 시작한 몽클레르의 콜라보레이션에서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됩니다.
발렌시아가를 이끌던 천재 디자이너 니콜라 게스키에르, 일본 콤 데 갸르송의 준야 와타나베 수석디자이너를 비롯해 펜디, 지암바티스타 발리, 톰 브라운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영입했습니다.

이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패딩 디자인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패딩에 지퍼대신 단추를 달아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려고 했고, 최고급 모피로 모자와 앞섬을 장식하는 새로운 시도 그리고 뒤집어 입을 수 있는 패딩 등의 혁신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몽클레르(Moncler)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몽클레르(Moncler) 패딩 재킷은 한벌에 백만원 내외에서 수백만원을 홋가하지만 재고가 없어서 못팔만큼 잘 팔립니다. 이 몽클레르(Moncler) 패딩 재킷을 본받아 많은 명품을 표방하는 패딩 브랜드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 패딩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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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저한 브랜드 관리 – 일관된 브랜드 경험 제공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뿐 아니라 매장, 스타일, 쇼핑 경험, 캠페인, 광고 등 제품 이외의 분야에서도 ‘차별화’를 추구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도 주목해야할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절성이 뚜렸해 판매 불균형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2분기에는 연간 매출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판매가 적습니다.) 여름에도 팔 수 있는 제품을 도입하지 않고 패딩 재킷 중심으로 운영해 그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전 세게 매장으로 모두 직영으로만 운영합니다. 이는 애플과도 같은 정책으로 보입니다.
매장에서 일어나는 브랜드 경험을 철저히 관리하고 원하는 최고의 브랜드 경험을 주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리고 몽클레르(Moncler) 제품 전시는 절대로 접어서 전시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옷걸이에 걸어서 전시하고 마네킹에 입혀서 전시합니다. 제품을 특성을 가장 잘 타나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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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화보등에서도 차별화를 추구합니다. 패딩 재킷이 아니라 ‘몽클레르’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화보와 광고를 지향합니다.
아래 2012년에 집행한 Polar Bear를 주제로 한 광고를 공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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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을 Art와 연결해 Brand equity를 높이고자 합니다.
이번에 발매된 몽클레르(Moncler)는 Art for Love와 같은 사진전이 그런 것이죠..
David Bailey, Patrick Demarchelier, Arthur Elgort, Annie Leibovitz, Bruce Weber과 같은 32명의 유수의 사진가들이 몽클레르(Moncler)는 제품을 배경으로 작업한 사진으로 Art for Love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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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한국경제, 레모 루피니 몽클레르 CEO, 파산위기 패딩점퍼 회사 인수…최고 디자이너·소재 ‘집중’

조선일보 Weekly BIZ 다 망한 브랜드를 명품으로 살리다

패딩 재킷에 스타일을 입히다. 몽클레르Monc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