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C
New York
일요일, 12월 21, 2025

Buy now

[광고] 쿠팡 추천 링크

안녕하세요? 올해까지 삼성전자 25년 직장 생황릃 마치고 퇴직하려 합니다. 퇴직 후 아르바이트로 쿠팡 파트너스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쿠팡 파트너스는 쿠팡 추천 링크를...

카누 캡슐 커피머신 솔직 리뷰: ‘네스프레소 호환’ 가성비 끝판왕 (ft. 쿠팡 최저가 할인)

'공유 커피' 카누가 만든 카누 캡슐 커피머신 : 캡슐 커피머신 바리스타 브리즈/어반! 네스프레소 오리지널 캡슐 호환으로 활용도는 높이고, 카누만의 황금 레시피로 커피 맛은 깊어졌습니다....
Home Blog Page 388

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시장을 따라 잡았을까? 삼성의 성과와 한계를 생각해 본다

1

아래 간단히 삼성 스마트폰 역사를 살펴보겟습니다. 삼성에 대해서 살펴보는 이유는 여러가지 혹평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 회사이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기술과 노하우를 배워서 경쟁사를 따라잡고 업계 1위에 오른 어쩌면 교과서적인 사레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삼성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흘러 나오고 있고,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을 버려야 한다는 과격하기도 하고 또는 비아냥거리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기에 살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보여집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 주자였던 삼성이 택한 전략은 흔히 이야기하는 앞서가는 경쟁사보다 더 빨리 혁신을 수용하고 시장표준을 신속하게 장악하는 ‘신속한 2등(Fast Second)’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은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폴 게로스키(Paul Geroski)와 콘스탄티노스 마키데스(Constan tinos Markides) 교수가 2004년 출판한 ‘Fast Second’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기술력이 뛰어난 신생 기업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지배적인 제품을 내놓을 때 기존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상을 갖고 있던 후발주자가 시장에 참여해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아래는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그려본 것입니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을 출시한 이래 15%에서 20%사이에서 머물과 있는 반면 삼성은 2011년 3분기에 애플에 앞서기 시작했으면 2012년부터 2014년사이에 시장점유율을 30%가까이 끌어 올리면서 확고 부동한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릅니다. 물론 2014년부터 그 압도적인 지위에서 조금씩 하락해 왔고 2015년부터는 엎치락 뒤치락하는 혼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성 스마트폰 역사.jpg

1 간단히 살펴보는 삼성 스마트폰 역사

아래에서 삼성 스마트폰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 옴니아라는 삼성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썼던 삼성은 갤럭시S라는 회심의 한방으로 아이폰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 대표주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옴니아라는 흑역사

미국에서는 애플 아이폰이 출시되어 휴대폰 시장을 강타할 즈음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위피 등 여러 규격으로 쳐놓은 진입 장벽에 취해 혁신을 게을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플 아이폰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았고 외국의 유수 휴대폰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흐름에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로 하면서 첫 번째 스마트폰이 ‘옴니아(SCH-i900)’입니다. 200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처음 공개한 후 이후 11월부터 한국에서 판매를 했습니다.

초기라서 판매량을 높지 않았고 약 13만대 정도 팔렸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옴니아 홍보 이미지-horz.jpg

2009년, 국내에 드디어 아이폰3GS가 판매를 시작했고 이는 한국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스마트폰이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려준 제품이었고 국내 휴대폰 제조사에겐 넘사벽의 아이폰에 맞설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삼성은 이런 아이폰을 막기위해 옴니아의 후속작 옴니아2를 출시했습니다.
옴니아2 홍보 이미지-horz.jpg

옴니아2는 800 x 480 해상도의 3.7인치 아몰레드 윈도 모바일 6.1, 삼성에서 개발한 자체 CPU, 256MB 램과 저장 공간은 2/8/16GB, DMB와 500만 화소 카메라,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등 스펙만 놓고 보면 당시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피겨여왕 김연아를 광고에 투입해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옴니아2 광고 김연아출연3-horz.jpg

그러나 이 옴니아2는 하드웨어만보면 엄청난 진보였지만 급조해 출시하다보니 소프트웨어 최적화 문제가 발생해 최악의 스마트폰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곧 이어나온 갤럭시S와 대비되면서 집단 반발을 불러온 비운의 모델입니다.

삼성 옴니아 집단 배상 카페 resize.png
▲ 네이버에 개설된 삼성 옴니아 집단 배상 카페, 위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빌려왔습니다.

삼성으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과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내외의 엄청난 반발이 삼성을 더욱 분발해서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이후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었고 멋지게 성공했으므로.
(여기서 옴니아 사용자들에 대한 처우는 여기 주제를 벗어나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해 매끄러눈 사용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이 다시 대두됩니다. 예전에 적었던 노키아도 하드웨어의 실력을 발군이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이 하드웨어와 소프웨어와의 결합에 실패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노키아는 자체 운영체제인 심비안에 집착하면서도 그 자체에서 충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해서 실팼다면 삼성은 조금은 늦었지만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그 숙제를 용이하게 풀 수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를 채택하고 갤럭시S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다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스마트폰 시장을 지격 변동을 격게 됩니다. 애플에 대항해서 각 휴대폰 메이커들은 마침 등장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합류합니다. 2009년 모토롤라와 HTC가 가장 먼저 그 흐름을 파악하고 안드로이드를 적용한 스마트폰을 출시합니다.

삼성은 안드로이드와 윈도우즈 모바일사이에서 주저하고 있어 윈도우즈 모바일 계열의 옴니아을 출시했고 동시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9년 4월 삼성에서 처음으로 만든 안드로이드 폰 갤럭시(GT-I7500)이 출시되어 해외 중심으로 테스트용으로 판매를 했습니다.

2010년 4월 갤럭시 A가 최초 안드로이드폰으로 한국에 출시합니다. 이 스마트폰은 비로 2달 후 갤럭시S가 출시되어 사라진 비운의 제품이기도 합니다. 당시 먼저 갤럭시 A를 산 사람들의 탄식이 있었고 이 사람들의 혹 갤럭시S와 교환이 안되는지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급했기 때문에 전략이 아닌 동시적으로 여러가지 스마트폰을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하고 출시하는 혼돈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갤럭시 A 사태는 큰 논란과 노이즈없이 갤럭시S 체계로 이행했습니다.

2010년 6월 삼성 핸드폰 역사의 갈림길을 된 갤럭시S가 출시됩니다.
갤럭시S 언팩 행사중 resize.jpg
▲ 갤럭시S 언팩 행사 중…

이 갤럭시S를 비롯한 갤럭시 시리즈는 마케팅 관점에서 몇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존 삼성이 가지고 있었던 애니콜이라는 휴대폰 브랜드를 버리고 갤럭시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채택한 것입니다.
비록 애니콜이 국내에 중심으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드라도 당시 환산 5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가치를 갖는 브랜드였는데 과감하게 이를 버리고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와 글로벌을 겨냥한 브랜드로 갤럭시를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갤럭시S는 그 때까지 삼성이 애플에 뒤진다고 평가받았던 디자인, 사용성, 어플 확장성을 일거에 만회한다는 목표하에 삼성의 기술력을 최고로 결합시킨 제품으로 이 장점을 ‘Super Smart’ 슬로건으로 표현하하였습니다. 삼성만의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슈퍼 아몰래드로 표현했고, 갤럭시S만의 디자인을 슈퍼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애플에 대해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어플에 대해서는 삼성 자체 개발 어플리케이션과 구글 플레이의 어플 시스템을 결합해 슈퍼 어플리케이션으로 소구하였습니다.
이 갤럭시S라는 제품을 통해서 삼성은 그동안 뒤진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약점을 일거에 해소했다는점을 크게 부각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 갤럭시S는 출시 7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해 삼성 스마트폰의 가능성으 세계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성적은 피처폰을 비롯한 삼성 휴대폰 역사상 2번째로 7개월내 1000만대 판매 기록을 수립한 것으로 갤럭시 S의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갤럭시S 01-horz.jpg

갤럭시S2, 정상을 바라보다

갤럭시S 후속으로 갤럭시 S2가 2011년 2월 MWC에 공개되고 2011년 4월 29일 출시하였습니다.

갤럭시 S2는 갤럭시S을 성공을 바탕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편리한 삶을 스마트폰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모두’를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갤럭시 S2는 삼성의 하드웨어 역량을 총동원해서 세계에서 가장 슬림한 두께 8.49mm를 구현하고, 전작 갤럭시 S를 훨신 뛰어넘는 최고의 성능을 갖추고 속도와 터치감, 화질을 한층 업그레이드했고 더 커진 디스플레이로 갤럭시가 최고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제품이었습니다.
이 갤럭시S2는 5개월 만에 1,000만 대를 판매를 돌파해 아이폰의 독주를 막고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주도자로써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갤럭시S2로 삼성은 2011년 3분기에 애플을 따돌리고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 22.7%, 애플 아이폰 13.8%, IDC)

갤럭시S2 01.jpg
갤럭시노트로 카피켓을 벗고 혁신 이미지를 입히다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리고 삼성만의 하드웨어 기술을 총동원해 갤럭시S 및 갤럭시S2로 양적인 측면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카피켓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삼성 자체로 혁신한 것은 많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느정도 벗게 해준 것이 바로 갤럭시 노트 시리즈입니다.

당시 스마트폰 크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4.5인치를 넘지 않았습니다. 특히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3.5인치 스마트폰을 고수했고 도 커진 스마트폰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이게 아이폰이 오랬동안 3.5인치만을 고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갤럭시 노트는 디스플레이는 5.29인치, 갤럭시 노트2는 5.55인치의 대화면으로 기존 통념을 완전히 깨뜨리면서 스마트폰보다 더 나은 엔터테인먼트적 활용성, 태블릿보다 더 나은 휴대성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패블릿’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더우기 갤럭시 노트에 포함된 스타일러스펜은 손을 이용한 터치보다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게 해주어 갤럭시 노트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갤럭시노트 광고 resize.jpg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하바시(Balazs Havasi)가 갤럭시 노트를 악보로 사용해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는데 이를 홍보하는 갤럭시노트 광고

갤럭시S3 이후 – 한방의 혁신이 아쉬운 후속작들

갤럭시S2이후 세계 정상에 오르고 이어서 갤럭시S3,4,5,6,7이 매해 1분기 ~ 2분기 사이에 출시되었습니다.

갤럭시S3는 좀더 사용성을 강화하는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사람의 눈동자를 인식해 사람의 시선이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면 화면이 꺼지지 않는 '스마트 스테이', 동영상 감상 도중 작은 창을 띄워 동시에 두 가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팝업 플레이',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이에 반응하는 'S보이스' 등등..

갤럭시S3 광고.jpg

갤럭시S4는 시선, 음성, 동작인식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했죠. 사용자의 시선을 인식해 인터넷, 이메일, 전자책 등을 볼 때 제품을 기울이면 다음 페이지로 넘겨주는 '스마트 스크롤', 동영상 감상 도중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자동으로 동영상을 정지해주고 다시 화면을 쳐다보면 재생해주는 '스마트 포즈', 손가락을 화면 위로 올리면 이메일, 사진 폴더, 동영상 등의 내용을 작은 창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에어 뷰', 손의 움직임을 인식해 화면을 터치하지 않아도 전화를 받고 음악을 재생하거나 웹 페이지를 스크롤할 수 있는 '에어 제스처' 등등

그러나 잔잔한 새로운 기술들은 있었지만 소비자를 현혹하고 매장으로 달려가게할 한방은 부족했습니다.
갤럭시S3,4는 기존 삼성 스마트폰이 쌓아온 성과를 기반으로 어느정도 시장 점유율을 지켜냈지만 갤럭시S5부터는 시장에서 지위가 긊히 약화됩니다. 본격적으로 삼성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갤럭시S4 광고화면 resize.jpg

2 삼성 스마트폰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2010년 갤럭시S를 필두로 2013년까지 스마트폰 시장에서 듣보잡이었던 삼성을 정상으로까지 이끈 요인들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안드로이드를 통해 빠른 약점 보완으로 추격의 기반을 마련
두번째, 삼성의 강점을 극대화를 통한 시장 공략
세번째,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존 성공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브랜딩 전략 집중
네번째, 혁신 제안으로 안드로이드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

첫번째, 안드로이드를 통해 빠른 약점 보완으로 추격의 기반을 마련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삼성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빠른 추격자 전략(Fast Follow)이 주효했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택한 전략을 좀더 정교하게 표현해보자면 앞서가는 경쟁사보다 더 빨리 혁신을 수용하고 시장 표준을 신속하게 장악하는 ‘신속한 2등(Fast Second)’ 전략입니다. 이 전략은 기술력이 뛰어난 신생 기업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지배적인 제품을 내놓을 때 기존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상을 갖고 있던 후발주자가 시장에 참여해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삼성은 피처폰 시장에서는 글로벌 2위를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회사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휴대폰 하드웨어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으로 이행 시 스마트폰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삼성으로써는 가장 약점인 스마트폰관련 기술과 경험을 빠른 속도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스마트폰의 기본이 되는 경쟁력있는 운영체제를 찾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 운영체계를 토대로 쉽게 사용하고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의 제공이었습니다.

첫번째 과제인 운영 체제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모바일로 보완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이의 결과가 앞에서 지적한 옴니아 및 옴니아2입니다. 윈도우 모바일이 비록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대기업에 의한 주도되었고 어느 정도 역사도 있었지만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위도우 모바일을 적용하고 얼마 있지않아 위도우 모바일에 대한 지원을 중지한다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선언했습니다. 추후에 다시 집중하는 갈팡 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집중하지 않아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없는 미래가 없는 운영 체계였습니다.
또한 윈도우 모바일이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애플 iOS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UX 등 사용성도 떨어졌고, 앱의 수도 적었고 특히나 이미 많은 개발자들이 애플로 전환해 버려 새롭고 경쟁력있는 앱들이 없었습니다. 이 또한 몇년 사이에 갑작스레 변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저주저하는 사이에 시장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낙오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삼성은 모토롤라나 HTC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합니다. 당시 안드로이드는 애플 iOS에 비해서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구글은 계속된 업그레이드를 통해 사용성을 개선했고, 안드로이드의 개방 정책은 운영체제에 갈증을 느끼는 많은 스마트폰업체들이 합류함으로써 판매량 증가로 시장 잠재력이 커지면서 점차 많은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몰려들어 생태계가 점차 풍부해지는 등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는 아래 그림처럼 매년 2번 정도의 업데이트를 진행해 빠른 속도로 성능을 업그레이해 스마트폰의 주류 운영체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빠른 속도의 업그레이는 또 한편으로 안드로이드의 파편화라고하는 문제도 야기시켰습니다.

안드로이드 역사 연도 추가.jpg

이러한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모델을 준비했고 2010년 갤럭시S가 시장에서 크게 성공(출시 7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함으로써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주자로 삼성 갤럭시의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두번째 과제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토대로 사용자 경험(UX)을 강화하는 숙제는 구글 안드로이드 UX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사삼성만의 사용편의성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것은 사용성 최적화나 쉬운 사용성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안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에 서 이를 구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글 안드로이드도 아이폰만큼의 사용경험을 제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2년 7월 발표된 안드로이드 4.1인 젤리빈은 아이폰만큼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올 정도로 시간 gap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만의 사용편의성 기능을 꾸준히 발굴하고 적용하면서 gap을 극복하려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갤럭시3부터 더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갤럭시S2에서부터 ‘하우 투 스마트(How to live smart)'라는 모토로 전화가 와서 벨소리가 울릴 때 본체를 엎으면 무음으로 바뀌는 기능등 소소한 사용성을 개선했다면 갤럭시S3부터는 본격적인 UX에 집중을 합니다.
갤럭시S3는 '인간을 위해 디자인되다(Designed for human)'를 모토로 화면을 보고 있을 때는 화면이 꺼지지 않는 ‘스마트 스테이(Smart Stay)’, 사용자의 말을 인식하여 명령을 수행하는 ‘S 보이스(Voice)’, 와이파이와 NFC를 이용해 갤럭시 S III 사이에 파일을 빠르게 주고받는 ‘S 빔(Beam)’ 등등이 그것이다.
또 갤럭시S4는 '삶의 동반자(Life Companion)'를 모토로 ‘스마트 포즈(Smart Pause)’, ‘스마트 스크롤(Smart Scroll)’, 여러 사람이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그룹 플레이(Group Play)’, 화면에 손대지 않고 화면 위에서 손을 움직여 기기를 조작하는 ‘에어 제스쳐(Air Gesture)’와 ‘에어 뷰(Air View)’, 사진에 소리까지 담을 수 있다는 ‘사운드 앤 샷(Sound & Shot)’ 등등 새로운 사용 경험을 제안하려고 했습니다.

갤럭시S4 스마트포즈 Galaxy S4 Smart pause &Scroll.jpg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아이폰을 뛰어넘을 정도의 혁신을 이루어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삼성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고 앞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삼성의 강점을 극대화로 시장 공략

그러면 삼성은 강점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그것은 피처폰에서 이미 글로벌 2위까지 올랐던 강력한 하드웨어 제조능력과 그 운영 능력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Display, 프로세서를 포함한 일련의 개발 과정을 삼성 계열사를 통한 수직 계열화를 통해서 강장 경쟁력있는 하드웨어를 가장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몰레드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세계 1위인 삼성디스플레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부문의 독보적인 세계 1위인 삼성 시스템반도체사업부와의 협업을 통해 가장 경쟁력있는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스를 가장 빠른 시일내에 적용할 수 있음으로 인해 마케팅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팅의 기본이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 노출을 최소화한다는 관점에서 초기 삼성 스마트폰 마케팅이 세계 최고의하드웨어 성능에 집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성의 반도체기술을 동원한 가장 빠른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가장 얇은 두께를 구현하는 등등..하드웨어의 혁신을 제1의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고 스마트폰 성장 시기에는 이 전략이 잘 먹혀들었습니다.

아래 갤럭시S2의 광고를 보면 삼성의 접근을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월한 하드웨어 경쟁력에 기반한 USP 설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갤럭시 S2 USP.jpg

갤럭시S2 01.jpg

두번재로 삼성이 오래 전부터 경쟁력을 강화해왔던 생산관리와 공급망관리는 스마트폰시장에서 공급 규모를 단기간에 늘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아이폰이 일시적으로 몰리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항상 도입 시장을 순차적으로 정하고 공급 부족 상황을 맞이하는 것에 비해 삼성은 다양한 segment의 시장을 공략하기위해 다양한 모델과 더 많은 국가에 판매를 추진하면서 이를 원활이 지ㅇ원할 수 있는 뛰어난 판매 및 공급망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어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의 공급망관리, SCM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세번째,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존 성공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브랜딩 전략 집중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삼성은 피처폰 시장에서 2위에까지 올랐던 강자였습니다.
이 피처폰 시장의 강자중에서 현재 유일한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은 곳은 삼성밖에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키아는 말할것도없고 모토롤라, 소니, LG 등 기존의 쟁쟁한 업체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별볼일없는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처폰에 이어서 스마트폰에서도 강력함을 유지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기존 시장에서 배웠던 성공방식을 철저하게 버렸고 새로운 시장에,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노키아가 피처폰에 집중하고 중가폰에 집중하면서 몰락한것은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입니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 맞추어 기존 피처폰에서 사용했던 애니콜이라는 브랜드를 과감히 버렸습니다. 애니콜은 당시 브랜드가치가 5조원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브랜드였습니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기존 피처폰에는 애니콜을 그대로 사용하고 스마트폰에는 새로운 브랜드인 갤럭시를 사용하는 새로운 브랜딩 정책을 도입합니다. 사실 애니콜의 브랜드가치가 높았지만 애니콜은 한국과 중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있지 마머지 지역에서는 삼성의 이름으로 사업을 영위하고있어서 글로벌 브랜드로서 애니콜은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갤럭시(Galaxy)라는 브랜드는 이런 애니콜을 대신해 스마트폰의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되어 스마트폰이 빠르고 보급되고 있는 미국, 유럽등의 선진 시장으로 공략하는 첨병이 됩니다.

이후 삼성의 스마트폰 전략은 프리미엄부터 매스까지 대부분의 영역에서 비지니스를 강화하는 전략이므로 이를 서포트할 수 있는 스마트폰 브랜드 전략을 수립합니다.
사실 초기 애플처럼 한 가지 모델만으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삼성은 애플이 아니므로 마케팅 교범대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에 맞추어 제품을 제공할 필요는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인 특징이 있을 수 있고 가격과 나이 등등으로 특징이 달라질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반영해 Galzxy SRWMY라는 브랜드 하이라키 전략을 추진합니다.
총 5개의 브랜드로 나뉘게 되는데

갤럭시 'S(Super Smart)' 는 갤럭시 스마트폰 중에서도 최상위의 플래그십 모델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며 2010년 출시된 텐밀리언셀러폰 갤럭시S, 2011년 플래그십 모델 갤럭시S2 등이 해당됩니다.

'R(Royal)' 은 'S'보다는 낮지만 고사양의 첨단 기능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리미엄 모델인데요. 4.2인치 슈퍼클리어 LCD, 1GHz 듀얼코어, 131g무게, 500만 화소 카메라 등 갤럭시S2 대비 조금 낮은 사양으로 유럽에 출시된 '갤럭시R'이 대표 제품입니다.

이외에도 보급형 하이엔드 모델에는 'W(Wonder)', 매스 시장을 타깃으로 한 보급형 모델은 'M(Magical)', 신흥 시장 공략을 위한 엔트리 모델에는 'Y(Young-minded)' 를 부여할 계획입니다." – 삼성블로그 참조

이처럼 비지니스 전개에 브랜드를 쳬계적으로 관리하고 집중한것이 삼성이 스마트폰에서 큰 성과를 내는데 나름 기여를 했다고 보여집니다.

갤럭시 브랜드 체계 SRWMY.jpg
네번째, 혁신 제안으로 안드로이드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

삼성 스마트폰이 유수의 안드로이폰을 물리치고 안드로이드폰의 대표주자가 된 것은 하드웨어 혁신을 비롯한 다양한 혁신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은 초기에는 자신들이 강점이 있는 하드웨어적인 혁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갤럭시S에서는 지상파 DMB와 멀티터치·멀티태스킹·영상통화 기능으로 차별화를 시도했고, S2는 높은 800만 화소 카메라를 장착하고 당시로서는 희귀한 1.2GHz 듀얼코어 CPU로 혁신성을 강조했고, S3는 영상통화와 카메라 기능에서의 혁신과 1.4GHz 쿼드코어로 가장 빠른 스마트폰을 소구했으며, S4 LTE-A는 풀 HD 수퍼 아몰레드로 화면의 혁신, 1300만 화소로 카메라의 혁신, 2.3 GHz 쿼드코어와 LTE-A로 정보처리 속도의 혁신 강조했습니다.

이러다보니 가장 빠른, 가장 얇은, 가장 선명한 등등은 삼성이 단골로 사용하던 마케팅 소구 포인트였습니다. 물론 이런 하드웨어적인 혁신을 폄하하는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드웨어에서의 혁신도 중요합니다. 다만 이런 하드웨어 혁신은 경쟁사가 금방 따라오는 요인이므로 생명력이 짧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보다 근원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보다 근원적인 혁신에 까운 것을 제시한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갤럭시노트는 일반적인 4.5인치의 스마트폰과 7인치이상의 태블릿 사이 애매한 영역은 없다는 업계의 불문률을 깨뜨리고 스마트폰보다 더 나은 엔터테인먼트적 활용성, 태블릿보다 더 나은 휴대성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패블릿’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더우기 갤럭시 노트에 포함된 스타일러스펜은 손을 이용한 터치보다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게 해
주어 갤럭시 노트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갤럭시노트 광고2 resize.jpg

삼성은 갤럭시S5이후 하드웨어적인 혁신에서 벗어나 사용자 경험 등 보다 감성적인 영역에서의 혁신을 도모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삼성의 도전은 생각처럼 시장에 인상을 주지못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삼성이 풀어가야 할 영역이 아니가 싶습니다.

[참고]삼성스마트폰의 크기 변화

갤럭시S로부터 갤럭시S7까지 갤럭시 시리즈들의 크기 변화를 인터넷의 자료를 토대로 업데이트해봤습니다..
갤럭시노트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스마트폰의 크기는 멀티미디어 활용의 증가와 더불어 큰 화면을 선호하는 소비트렌드에 따라 점차 화면 크기는 커져 왔습니다.

삼성 핸드폰 크기 변화 업데이트.png

스마트폰 관련 다른 이야기들

모바일폰(피처폰+스마트폰) 시장규모 추이와 브랜드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추이

다시 복기해 보는 노키아 몰락의 이유, 시장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혹독한 댓가

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시장을 따라 잡았을까? 삼성의 성과와 한계를 생각해 본다

갤럭시 노트7 발화사건 그리고 삼성 스마트폰 점유율

[2016년 4분기]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애플의 왕좌 등극, 삼성 몰락의 가시화 그리고 화훼이 점유율 10% 돌파

[2016년 3분기 업데이트]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삼성 몰락의 전조(?) 그리고 여전한 중국 업체의 추격

[2016년 2분기 업데이트]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삼성이 선두지만 화웨이의 추격이 거세다

어도비와 애플간 플래시를 둘러싼 광고 전쟁

0

2010년 애플의 플래시 사용 거부로 촉발된 어도비와 애플간의 전쟁..

잡스의 자료를 찾다가 어도비의 광고를 보고 깜놀했다. 얼마전 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에 플래시를 지원해야하느냐로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 고민 및 전쟁을 6년전에 했다는것을 보고 놀라웠고 그 이면을 파볼수록 비지니스계의 이해득실에 따른 편가르기에 놀라울 뿐이다.

아무튼 2010년에 이미 플래시 무용론을 주장하고 과감히 아이폰과 파이패드에서 뺐던 그 무모함에 경의를 표하고참으로 오랬동안 그 고집을 지켜온 점에 대해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그 전쟁의 편린을 보자. 광고부터 보고 그 배경 설명은 나중에

어도비의 공격 – 애플을 사랑해, 근데 선택할 수 있는 자를 빼어가는 것은 사랑하자 않아….

 

어도비에서 집행한 We love Apple광고, adobe apple ad resize.jpg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사랑해….

어도비 광고 adobe-freedom-of-choice-660x344.png



애플의 반격 – 애플을 사랑해, 근데 선택할 수 있는 자를 빼어가는 것은 사랑하자 않아….

어도비의 반 애플 광고가 집행된 후 애플은 즉각 어도비 최신 제품인 Adobe Creative Suite 5를 사라고 이메일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애플은 진정 어도비를 사랑하는 것 처럼 보이나요?
이도 비비꼰 것 일까요?

Adobe CS5가 여기 있다,
애플 스토어에서 (Adobe CS5를) 가지거나 온라인에서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어도비 광고에 대한 애플 반응_이메일 프로모션 adobe-email.jpg

어도비의 We Love Apple에 대항한 애플의 광고
플래시 동영상을 만나면 나타나는 로고를 사용해서 애플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애플이 어도비에 대항해 집행한 광고 apple adobe.png

어도비 플래시에 대해서….

1990년대 초, 플래시는 움직이는 이미지 GIF를 더욱 발전시켜 사용하기 쉬운 디지털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지금 들어도 기억이 생생한 (물론 이시대에 젊게 살았다면) 졸라맨, 마시마로, 달묘전설, 우비소년 같은 익숙한 애니메이션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플래시는 매크로미디어라는 회사에서 꽃을 피웠는데 2005년 어도비가 34억 달러에 인수해 어도비 식구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는 플래시를 기본 플러그인으로 사용했고 광고회사들도 플래시를 활용해 눈길을 사로잡는 온라인 광고를 제작해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2007년 아이폰이 시장에 나왔고 이와함게 어도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개발에 개발을 거듭한 플래시는 비대해져 플래시를 구동하려면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소요되어 모바일의 배터리 수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등등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애플은 플래시 기술을 탑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0년 4월 아이패드 출시 시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 플래시 문제점을 지적하며(“배터리 이용시간을 단축시키고 보안에도 문제가 있어”) 애플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점차 많은 운영체제에서 플래시 지원을 중단했다.

안드로이드도 4.1(코드명 젤리빈)부터는 플래시 지원하지 않고
리눅스용 플래시 런타임도 2012년, 11.2.X버전을 마지막으로 지원하지 않으며
윈도우즈도 8.0부터는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르며
모질라 파이어폭스와 구글 크롬 등 브라우저들이 보안 이유로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 플러그인 작동을 차단하고 있다.

참고로 통계를 찾아보니 2016년 5월 현재 플래시가 적용된 사이트의 비중이 8.6%라고 한다.

[요약 소개]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리더쉽이 주는 교훈,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 – Harvard Business

0

애플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하바드 비니지스 리뷰(HBR)에 게재된 글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 작성된 글이지만 읽어볼만해서 여기에 요약을 공유해봅니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났으니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이 글은 아스펜 연구소 CEO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가 작성한 것입니다.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1952년생 미국의 작가로 키신저 전기 등 많은 유명인의 전기를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집필한 분이죠.. 스티브 잡스 생전에 그의 전기를 쓰기위해 많은 인터뷰를 했고 그런 인터뷰 결과를 정리한 정수가 이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은 워낙 유명한 글인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많이 나오긴 합니다. 글쓴이가 원문을 자신이 운영하는 아스펜연소th 사이트에 올려놓아 누구나 다운받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소속해 있는 아스펜연구소 사이트입니다. https://www.aspeninstitute.org/sites/default/files/content/docs/about/HBR-Isaacson.pdf

또한 이에 대한 요약본은 아래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bullseyeresources.com/wp-content/uploads/2012/05/HBR-Webinar-Summary-Isaacson-Jobs-51012.pdf

또한 이 글은 유료로 제공하는 동아비지니스리뷰(DBR)에서 '스티브 잡스, 창조 신화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한글 번역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DBR 2012년 12월호에 번역 게재되어 있습니다. 구글링하면 주소가 그냥 나오므로 여기서 그 주소를 남깁니다.
http://www.dongabiz.com/GlobalReport/HBR/article_content.php?atno=1501012501&chap_no=1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 논문 표지.jpg

아래 (내 마음대로의) 요약은 DBR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필요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1 집중하라, Focus

잡스가 복귀한 1997년 당시 애플은 십여 종의 매킨토시 제품을 비롯해 수많은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닥치는 대로 생산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제품 검토 과정을 거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잡스가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해! 이건 미친 짓이야.”
잡스는 마커펜을 집어 들고서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화이트보드를 향해 걸어간 다음 2×2 매트릭스를 그렸다. 잡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것”이라고 선언했다. 잡스는 2개의 행 위에 ‘일반인용(consumer)’이라는 단어와 ‘전문가용(pro)’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2개의 열 앞에 ‘데스크톱(desktop)’이라는 단어와 ‘휴대용(portable)’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잡스는 팀원들에게 각 사분면에 해당되는 제품을 하나씩 결정해 총 4개의 위대한 제품에 주력해야 하며 나머지 제품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듯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이 단 4개의 컴퓨터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애플을 구원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고, 제품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업무나 일상 생활에서도 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하는 태도를 견지했고, 인종 무렵 찾아온 구글의 래리 페이지(Larry Page)에게도 다음과 같이 집중할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집중이다. 구글이 어떤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보라" “지금은 모든 곳에서 구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주력하고자 하는 5개 제품을 꼽으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나머지는 제거해야 한다. 주력해야 할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대로 일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들 때문에 구글이 위대한 제품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을 내놓게 된다.”

스티브 잡스 화이트보드를 쓰는 resize.png
▲ 스티브 잡스는 집중을 위해서 화이트보드를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2 단순화하라, Simplify

잡스는 본질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불필요한 요인을 제거해 단순화시키고자 하였다.

잡스와 아이브는 단순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미니멀리즘적인 양식을 추구하거나 어수선한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사와 버튼, 지나치게 많은 것이 들어 있는 화면을 없애려면 먼저 각 요소가 담당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아이브는 “진정한 단순함을 추구하려면 정말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그 제품이 매우 난해하고 복잡해진다. 좀 더 심층적으로 단순함을 추구하고 그 제품에 관한 모든 것과 그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3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라, Take Responsibility End to End

잡스는 사용자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애플의 소프웨어와 하드웨어를 빈틈없이 통합시켜서 온전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고자 하였으며, 프로세서와 같은 하드웨어를 선택한 과정에서도 애플이 지향하는 경험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지를 살폈고, 애플 매장에서 아이폰을 구매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고객 경험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직접 컨트롤해 최상의 경험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애플만의 폐쇄형 생태계를 만들었고 어느 정도 온전한 기기(Whole widget)를 만들 수 있어 즐거운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 반면 개방 방식을 택하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방식은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스티브 잡스 어록 Customer experience.jpg
4 뒤처졌을 땐 뛰어넘어라, When Behind, Leapfrog

경쟁자에게 뒤쳐질 때 통상적으로 하는 경쟁사보다 더 나은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를 내놓아 시장을 바꾼다는 것이다.

에를 들어 아이맥을 선보인 후 음악 부분에서 경쟁사보다 뒤지자 (경쟁사 제품으로 소비자들은 음악을 다운받고 교환했으며 CD로 구워 보관을 했다) CD writing기능을 넣는 대신 음악 산업을 뒤집어놓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다. 그 결과 나온것이 아이툰즈와 아이튠즈 스토어 그리고 아이팟을 통합시킨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 훨씬 간편하게 음악을 구입하고, 공유하고, 관리하고,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 아이팟 광고 이미지 Apple iPod AD02.JPG

▲ 애플 아이팟 광고 이미지, 만곡이상을 담아다니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5 이윤보다 제품을 중시하라, Put Products Before Profits

1980년대 초 최초의 맥킨토시를 디자인 시 가격에 걱정하지말고 성능에만 집중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리고 ‘타협하지 말라(Don’t compromise)’라고 주문합니다. 이 매킨토시는 너무 비싸서 잡스가 쫓겨나는 이유가 되긴하지만 후일 가정용 컴퓨터 혁명을 가속화하는 족적을 남겼다.

잡스는 “기업이 쇠퇴하는 원인에 관한 나만의 이론이 있다”. “판매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회사 경영을 맡게 되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중 상당수는 아예 흥미를 잃는다. 스컬리가 애플에 들어오자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물론 스컬리를 영입한 건 내 잘못이었다. 발머(Ballmer)를 CEO로 영입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아야기하며 애플로 복귀한 후 애플이 다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할 수 있도록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고, 아이맥, 파워북(PowerBook),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등 뛰어난 제품을 차례로 출시했다.

6 포커스 그룹의 노예가 되지 말라, Don’t Be a Slave To Focus Groups

잡스는 소비자 조사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고객은 우리가 무언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종이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잡스는 시장조사에 의존하기보다 특유의 공감능력(고객이 갖고 있는 욕구를 꿰뚫어보는 직관)을 키우고자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다. 특히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하고 대중의 지혜보다는 통찰력이 필요한 IT나 디자인 부분에서 더욱 그러할 것 같다.(개인 생각)

스티브 잡스 어록 Focus groups.jpg
7 현실을 왜곡하라, Bend Reality

이 주제는 불가능해보이는 목표지만 상대방을 설득해서 목표 달성 방안을 찾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타리 시절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에게 몇달이 걸릴지 모르는 브레이크아웃(Breakout)이라는 게임을 단기간내에 만들어내라고 요구했고 결국 워즈니악은 잡스가 이야기한대로 나흘만에 게임을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폰 디자인을 하던 중 아이폰 전면을 플라스틱이 아닌 끍히지 않는 강화 유리를 부착하기로 합니다. 잡스는 코닝(Corning)의 CEO 웬델 윅스(Wendell Weeks)에게 6개월안에 이 고릴라글라스를 공급받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때가 2007년 2월.
코닝(Corning)의 CEO 웬델 윅스(Wendell Weeks)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잡스의 설득에 코닝(Corning)은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6개월이 되지 않아 고릴라글라스를 양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은 이 고릴라글라스를 적용해 2007년 6월 아이폰을 출시 한다.

코닝의 고릴라글라스와 아이폰의 만남 Gorila Glass & iPhone.PNG
8 강인한 인상을 남겨라, Impute

잡스는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브랜드가 보여지고 포장되는 것에 의해서 그 회사나 브랜드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팟이나 아이폰의 패키지를 보석상자처럼 직접 디자인하고 수정하는 등 온 신경을 쏟았다.
그는 포장 패키지 상자를 열때 상자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촉각이 (어느 정도) 그 제품에 대한 고객의 인식이 결정되기를 바랬기에 소비자가 강렬한 느김을 받을 수 있도록 패키지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또한 그는 디자인을 단순한 기능적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게 아니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요소로도 활용하는 등 제품과 브랜드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아이폰5 패키지 iphone-5-pack-horz.jpg

9 완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 Push of perfection

잡스는 개발 중간이라도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면 언제든 중지하고 다시 시작하곤 했다.

아이폰을 개발 시 알루미늄 케이스에 유리스크린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는데 어느 날 잡스는 이 디자인은 디스플레이를 죽이고 오히려 케이스를 돋보이는 디자인이니 다시 하자고 제안한다. 9개월동안 작업한 디자인이지만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디자인 수장인 아이브도 동의하고 디자인팀도 동의해 결국 다시 디자인을 하게 된다.

아이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디스플레이인데 당시의 디자인에서는 케이스가 디스플레이를 돋보이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디스플레이와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기 전체가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과업 중심적이며 효율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잡스는 아이브가 지휘하는 디자인팀에게 선포했다. “지난 9달 동안 이 디자인을 만들어내느라 죽을 만큼 노력한 걸 잘 알고 있지만 디자인을 바꿔야 해. 밤이건 주말이건 가릴 것 없이 다시 일을 해야 할 거야. 원한다면 총을 나눠줄 수도 있어. 그 총으로 우릴 쏴 죽이게.” 하지만 디자인팀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잡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잡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애플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한다.

10 오직 최고의 인재만 용인하라, Tolerate only “A” Players

보통 사람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잡스는 사람을 대할 때 온화한 신사처럼 대하지 않았다. 거칠고 직설적이고 소리를 지르고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어쩌면 최악의 상사일지도 모르지만) 명확한 직관과 가이드를 줄 수 있으므로 똘돌한 애플 직원들은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 남았다.
(아무라 욕을 먹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도)잡스와 같은 천재와 일을 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고려해 봐야할 것이다.

아마 잡스의 전기를 쓴 사람이라서 잡스에 대해 어두운 단면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 생각)

11 직접 대면하라, Engage Face-to-Face

디지탈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생각과 문제 해결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픽사 사옥을 지을 대도 예기치 못한 만남과 협력이 가능하도록 사옥을 설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무실 밖으로나와 중아의 아트리움에서 많ㅇ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마치 담배를 피우러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요즘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는 e메일과 아이챗(iChat)을 통해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창의성은 즉흥적인 회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무작위로 대화를 나눌 때 창의성이 발현된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가 상대의 답변에 자극을 받아 온갖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 회의 도중2 resize.jpg

▲ 제품 디자인팀과 미팅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디자탈 시대에 어울리지않게 아날로그적 미팅을 중시하였다.

12 큰 그림과 세부 사항을 두루 섭렵하라, Know Both the Big Picture and The Details

당연한 이야기인데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잡스는 큰 문제와 사소한 문제, 양쪽 모두에 열정을 보였다.

타임 워너(Time Warner) CEO 제프 뷰크스(Jeff Bewkes)는 잡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잡스는 디자인의 가장 세밀한 부분에도 빠짐없이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포괄적이고 중요한 전략을 구상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었으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2000년에는 개인용 컴퓨터는 사용자의 동영상, 음악, 사진, 콘텐츠를 모두 관리하는 '디자탈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비젼을 제시했고 이를 근거로 아이팟, 아이패드와 같은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디자탈 허브를 뒤이을 클라우드 허브 전략을 내놓고 이를 위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컨텐츠를 업로드한 다음 다른 디바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거대한 서버 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사의 모양과 색깔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것이다.

13 과학에 인문학을 더하라 , Combine the Humanities with The Sciences

잡스는 과학에 인문학을, 기술에 창의성을, 엔지니어링에 예술을 접목했다. 워즈니악, 빌 게이츠(Bill Gates) 등 기술적으로 잡스보다 뛰어난 인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나 예술의 측면에서 잡스보다 뛰어난 사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 프로세서에 우아함을 더해 혁신을 이뤄내는 역량의 측면에서 잡스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다.
뿐만 아니라 잡스는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직관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잡스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교차점에 서있는 표지판이 그려진 슬라이드를 세상을 향해 내밀었다.

이 주제는 참으로 어렵다. 잡스가 대단하다는 것을 여기서 느낀다.

스티브 잡스 어록 artistry.jpg
14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아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잡스는 .환각제, 록 음악, 반독재주의 등으로 상징되는 히피와 반전 활동가들의 반체제 운동과 엔지니어, 괴짜, 컴퓨터광, 통신 시스템 해커, 사이버펑크족, 취미광, 차고에서 회사를 시작한 기업가 등으로 가득한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문화 및 해커 문화의 영향을 동시 받았다.

‘지구백과(Whole Earth Catalog)’와 같은 출판물은 위의 두가지 무화의 결합을 살펴볼 수 있는데 잡스는 고등하교 시절 이 잡의 애독자였다. 잡스는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1971년 발매된 ‘지구백과(Whole Earth Catalog)’의 마지막호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책의 맨뒤에는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잡스는 오랬동안 이 출판물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은 애플이 법인이 된 후에도 잡스에게 해커와 히피가 살아 숨쉰다고 여겨지듯이 현 질서에 저항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향을 애플 광고에 반영했다고 평가된다. 애플의 유명한 ‘1984년’ 광고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다시 복기해 보는 노키아 몰락의 이유, 시장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혹독한 댓가

0

아이폰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점유율 그래프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끝을 모르고 자료를 찾게 됩니다. 아이폰의 점유율에서 시작해서 어느덧 노키아의 점유율 자료까지 정리하게 되었습니디. 그냥 참고로만 보려다가 노키아에 대해서 참깐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노키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엄청난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몰락해서 그 몰락의 교훈에 대해 언론을 통해 접해본 정도.. 특히 한국에서는 노키아가 영업을 하지않았던것으로 기억되므로(노키아폰이 한국에서 팔린다는 이야기를 못들어봤습니다) 그 기억의 정도가 더 희미하겠지요.

노키아의 성공 신화로 한때는 많은 경영학교과서에서 케이스스터디로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기업 흥망의 사례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 허망하긴 합니다. 2013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로 인수된다고 선언되고 2014년 3월 최종 인수되면서 사라진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에 대해서 기존의 자료를 토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노키아 휴대폰 사업에 대한 간략한 정리

노키아(Nokia)는 1865년에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작은 도시에서 제재소로 출발한 기업입니다.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케이블, 타이어, 전자, 통신제조업 등 폭넓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핀란드 최초로 GSM 방식의 휴대전화 산업에 진입합니다.
1992년에는 시티뱅크 출신의 요르마 욜릴라(Jorma Ollila)가 CEO로 취임하며 휴대전화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기존 제지, 고무, 케이블 등의 사업을 정리하고 휴대전화 사업에만 집중합니다.

당시 유럽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대륙이었고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존재는 일찍부터 표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마다 독자적인 휴대전화 규격을 개발하면 타국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유럽 우편전기통신회의(CEPT)는 1982년부터 디지털통신 공통규격 마련을 담당할 실무그룹 GSM(Group Special Mobile)을 발족했고 그 결실로 1991년 4월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규격이 도입됐습니다. 이후 GSM은 유럽, 미국등으로 퍼져나갔고 세계적 규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참고로 한국 등 몇몇 나라는 CDMA라는 별도의 규격을 채택합니다.

주요 휴대전화 생산지인 유럽주도로 GSM이라는 규격이 정해지자 노키아는 GSM 규격 덕분에 유럽 이외의 제조업체에 대해 경쟁 우위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잇점을 노키아의 기술적 우위를 토대하에 극대화하면서 1998년 노키아는 미국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제1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등극합니다.

이후 노키아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합니다. 2007년 말에는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매출은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에 해당할 정도로 커졌고 그러다보니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핀란드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60%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2007년은 노키아에게 최고 영광의 순간이자 몰락이 시작되는 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노키아(Nokia) 본사 resize.jpg
▲ 노키아가 1997년부터 사용하던 노키아 본사 건물, 호수옆에 3동을 나란히 지은 건물로 야경이 아름답다. 2012년 대지와 건물을 2.2억불에 매각하고 다시 여기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로 사용중이다.

2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경시했을까요? No!!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2011년까지 14년간 세계 정상을 지킵니다.
현재 2016년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노카아는 그 존재를 알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코닥의 사례처럼 노키아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넘어가는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일까요?

사실 노키아는 누구보다 먼저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많이 오해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사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한 회사입니다.
노카아는 1996년 노키아 최초의 스마트폰인 ‘Nokia 9000’을 출시했고 이어서 지속적으로 스마트폰 라인업을 눌려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무선 인터넷과 터치 스크린이 탑재된 태블릿을 개발합니다. 애플이 아이패드가 2010년 처음 출시되었으니 애플보다도 10년이상 빠른셈입니다.
스마트폰 측면애서 경쟁사들보다 훨씬 빨리 시장에 진입해서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와 이에 수반하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획들 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엔 노키아의 판매대수가 2900만대에 달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정의하는 시장조사회사마다 조금식 다르겠지만 노키아는 당시 5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었고 2010년이되어서야 연간 아이폰 판매대수가 3900만대를 넘어섰으므로 노키아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키아 9000 (Nokia9000) 광고.jpeg

▲ 노키아가 1996년 출시한 Nokia 9000 communicator, 지도 기능등등으로 여행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선도했지만 시장을 리딩하지는 못했습니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랜된 시기부터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2005년 4분기부터 스마트폰(피처폰을 제외한 자료로 일반적으로 피처폰+스마트폰을 mobile phone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점유율 그래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프에서 보여주는 것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장 장악이 아이폰이 나오고 다른 경쟁사들의 거친 도전에 따라 점차 힘을 잃고 점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같이 보아야할 회사가 RIM 이란 회사 입니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이 회사는 이메일 보안으로 유명해 한때 오바마폰으로 불렸고 북미에서 높은 점유율을 구사한 브랜드인데 마찬가지로 2010년을 기해 점유율이 하락하고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를 보면 자연스레 왜? 왜?라는 질문이 강렬하게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스마트폰 점유율 추이(2006~2016) 추가.jpg

3 노키아 몰락의 이유를 찾아보자

그러면 노키아 몰락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래처럼 4가지의 전략적 실수가 노키아를 몰락으로 이끈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첫째,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었던 피처폰 시장에서도 트렌드를 경시했습니다.
둘째, 뜸금없는 저가 전략은 수익성에 치명타를 주었습니다.
셋째, 아이폰의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넷째, 경쟁력있는 운영체제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첫째, 피처폰 시장에서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아 낙오되었습니다.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는 있었지만 워낙 거대한 시장이기에 피쳐폰 시장은 상당히 오랬동안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실질적으로 피처폰을 앞선 것은 2013년 2분기이니 오랬동안 피쳐폰은 중요한 시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 피처폰에서도 스마트폰에서도 시장을 리딩하지 못했습니다. 피쳐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토롤라나 삼성등이 새로론 디자인과 타입을 혁신하는 동안 노키아는 전통적인 디자인, 즉 캔디바라 불리는 피쳐폰에 집중합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타입에 열광하고 구매하는데 노키아는 이를 경시한 것입니다.

2000년대 휴대폰시장은 플립폰(Flip phone)이 대세가 됩니다. 플립폰(Flip phone)은 지금도 우리에게 친숙한 뚜껑 여닫이식 휴대폰으로 폴더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플립폰(Flip phone)은 모토로라가 레이저를 출시하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2004년 ‘레이저’로 알려진 모토로라 폴더폰 V3는 출시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얇은 두께에 알루미늄과 니켈 키패드를 쓴 세련된 디자인으로 모토로라 레이져를 패션 아이콘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4년동안 2억가 팔리는 대히트를 치게됩니다.

이에 대응하는 노키아의 전략은 플립폰(Flip phone)이전에 성공을 거두었던 캔디바라 불리는 피쳐폰 라인업을 더욱 늘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 결과 시장을 리딩하지못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더욱 어려운 길로 가게된 것입니다.

모토로라 V3 레이저와 노키아 캔디바폰.jpg

둘째, 프리미엄시장에서 낙오하자 저가 시장과 피처폰을 더 강화합니다.

휴태폰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 노키아는 뜨악하는 결정을 연속으로 내립니다.

그것중 하나는 2004년부터 시작한 저가 전략입니다. 노키아는 아마도 자기들이 가진 강점을 충분히 살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노키아의 전매 특허같아던 플랫폼 전략을 활용해 극한의 cost 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플랫폼 전략이란 휴대전화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일부 부품과 디자인만 달리해서 다양한 모델을 내놓는 방식을 말하는데 노키아의 이러한 플랫폼 전략의 산업적 탁월함을 바탕으로 신흥국 시장을 겨냥한 저가 단말기의 제조를 위해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라인업으로 신흥 소비자를 공략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가 휴대폰 집중 전략은 노키아에게 엄청난 적자를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나름 강점이 있다고 진입한 저가 신흥 시장이지만 이 시장에는 향후 화웨이나 ZTE와 같은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 중국 제조업체와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신흥국에서 핸드폰 사용하기 resize.jpg
▲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노키아가 주력하려고 했던 신흥국에서 휴대폰 사용 사진을 찾다가 너무 보기다 좋아서 구글에서 가져와 봤습니다.

또 하나는 2006년 CFO였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Pekka Kallasvuo)가 CEO로 취임하면서 당시 수익이 더 좋았던 피처폰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고 스마트폰 사업부를 피처폰 사업 부문으로 통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결과로 매출 등 재무성과가 훨씬 더 좋았던 피처폰 사업부의 목소리에 스마트폰 사업부가 눌려 스마트폰 사업이 발전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뒤에서 이야기하는 심비안(Symbian)을 근본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던 이유가 이러한 조직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모든 경영의 제1원칙으로 '비용관리'를 내세워 노키아에서 관료주의가 득세하고 혁신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혁신이 사라지자 재미가 없어진 직원들의 이탈이 속출했고, 비용절감으로 서비스등 품질이 나빠져 소비자들도 노키아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서 혁신을 통한 정면 승부를 하지않고 회피하려는 전략은 근본적으로 노키아를 병들게하고 경쟁력의 싹을 근본부터 잘라버린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아이폰의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피처폰 시장에서 트렌드를 경시해 기회를 놓쳤다면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서도 새로운 혁신 트렌드를 경시하였습니다.

2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아이폰이 가져온 여러가지 혁신은 휴대폰 시장을 강타했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소비자 기대를 대대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수마트폰을 소비자들이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그 어는 휴대폰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화면속에 아이콘을 넣고 터치 스크린을 채용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고 쉽게 작동할 수 있어서 어린 아이라할지라도 금방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쉽고 직관적인 UI를 가졌습니다.

아이폰 최초 구입자_20070615_Apple_iPhone_2007_Reuters.jpg

▲ 아이폰 최초 구입자중의 한명이 환호를 지르며 뉴욕 5번가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떠나고 있다. 이들과 같은 애플에 대한 절대적 로열티를 가진 소비자가 있는 애플을 공략하려면 더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One of the first iPhone buyers leaves the Apple store on 5th Ave. in New York on June 29, 2007. (Reuters)

또한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은 소비자들을 iOS 세계에서 계속 머물게 만드는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전 윈도우즈 운영체계와 달리 애플 앱스토에서는 어느정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앱스토어 아이폰을 위한 앱개발에 열을 올렷습니다. 그 결과 아이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많은 앱들이 나타났고 이는 아이폰 생태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우기 위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애플은 기존 맥킨토시 및 아이포드를 통해서 수많은 애플 매니아를 만들어왔고 이들은 애플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들이었습니다. 브랜드 로열티 측면에서 노키아와 견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노키아는 이러한 위협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이폰의 출시를 보고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아이폰 생산 원가가 너무 높아 각겨이 비쌀 수밖에 없으며, 2G 네트워크를 기반이라 속도가 느리며 터치스크린이 충격에 약해 튼튼함을 요구하는 휴대폰과는 맞지않는다는 단점 중심의 보고서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보고서의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아이폰이 출시 후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는 “조크(joke) 같은 제품이다.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한 것이 표준이다”라고 호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말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앞서 노키아 엔지니어가 보고한대로 처음 아이폰이 공개되었을 시 아이폰의 가격은 매우 비쌌습니다. 2년 약정으로 500$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도 너무 비싸다고 비웃었습니다.

"$500 full-subsidized with a plan!"
"I said that is the most expensive phone in the world and it doesn't appeal to business customers because it doesn't have a keyboard which makes it not a very good email machine."

그러나 애플은 미국 2위의 이통사 AT&T에게만 제공한다는 협상을 통해서 가격을 2년 약정기준 500달러에서 200달러로 낮추면서 아이폰은 시장의 주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가는 비쌌지만 핸드폰 약정 및 통신사와 제휴라는 비지니스모델을 통해 유일한 약점이었던 가격을 상쇄버렸고 이 때부터 아이폰은 모든 휴대폰업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iOS나 안드로이드와 경쟁할 운영체제를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습니다.

애플 아이폰의 강력한 공습이 있자마자 구글의 안드로이드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다고 하는 것처럼..애플 iOS는 애플만 사용하는 폐쇄적인 운영체제였는데 이 시점에 구글은 정반대의 컨셉을 들고 시장에 나온 것입니다. 아이폰에 대항할 만한 앞선 기술의 OS로 모든 업체에 공개했고 메이커에게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징해서 차별화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모토로라나 HTC나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려 즉각 애플에 반격에 나섰습니다. 삼성은 다소 늦었지만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려 빠르게 경쟁사를 따라잡으로 스마트폰 1위에 오릅니다.

당시 노키아에게는 여러가지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모토로라처럼 안드로이드를 도입하는 방안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자체 가지고 있던 심비안(Symbian)을 발전시키는 것 이었습니다.
노키아는 이 심비안(Symbian)을 발전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는데 이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노키아 내부에 고유 운영체제인 심비안 (Symbian) 자체를 개선하고 활용하려는 팀과 미고 (MeeGo)라는 심비안 (Symbian) 에서 발전시킨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는 팀으로 나뉘면서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당시 돈을 벌고 있던 피처폰사업부의 압력등으로 피처폰과 스마트폰 부분을 통합하게 되고 스마트 개발 부분은 힘을 잃어 원하는 개발을 제때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이해 노키아가 절실하게 필요한 OS로서 심비안(Symbian)을 혁신할 수가 없었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2011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CEO 엘롭은 운영체제 심비안 (Symbian)을 ‘시련의 플랫폼’으로 규정해 포기하고 MS의 윈도폰을 채택합니다. 아마 경쟁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발표시기가 너무 좋지않아 노키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전술적인 실수가 됩니다. 즉 윈도폰을 선택했어도 실질적인 윈도폰이 나오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고 그 동안은 소비자는 사라질 운영체계를 가진 노키아폰을 철저히 외면해버려 노키아 판매는 급락하게 됩니다. 일종의 '오스본 효과(Osborne effect)'라 할수 있습니다..(※ 1983년 오스본 컴퓨터 회사의 창업주인 아담 오스본은 계획 중인 차세대 휴대용 컴퓨터를 시장에 발표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앞으로 나올 신형 모델을 구입하려고 구형 모델의 구매를 미뤘다. 그러자 회사에 현금이 돌지 못해 부도가 났고 이를 '오스본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MS의 윈도폰이 경쟁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감히 yes라고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후 출시된 MS의 윈도폰 중에서 성공한 폰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노키아가 심비안(Symbian) 운영체제를 제대로 개선했거나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했다면 지금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심비안(Symbian) anna.jpg

마침글 모든걸을 다 버린 노키아, No.1 통신장비 업체로 돌아오다

노키아 휴대폰사업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전략적 실수를 연속으로 합니다.

지금에야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많은 전문가등의 분석이 있었으니 그 당시 노키아 경영진의 전략적, 전술적 실수가 빤히 보이겠지만 제한적 정보하에서 경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트렌드를 알았고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승부를 피하고 주저주저하면서 혁신을 회피한 댓가는 혹독한 것 같습니다.

결국 노키아는 핵심사업부인 휴대전화 사업을 과감하게 버리고 강력한 구조조정과 내부혁신을 하는 내부와의 정면 승부를 하면서 비지니스를 통신장비 부분으로 전환하고 유통도 B2C에서 B2B로 바꾸면서 부활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프랑스 통신 장비업체인 알키텔-루슨트를 인수하면서 세계 1위의 통신장비업체로 부상하였고 노키아의 순이익도 급급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노키아가 휴대폰 시절 전사의 운명을 건 과감한 정면승부를 했으면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정면승부를 내부와 겨루면서 부활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Nokia site image  resize.jpg
▲ 노키아 홈페이지의 이미지 중 하나, 노키아 관련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하나 담을려고 찾았는데 마땅한게 없어서 이 이미지를 선택 함. 분위기가 있고 왠지 노키아와 맞을 듯 싶어서

스마트폰 관련 다른 이야기들

모바일폰(피처폰+스마트폰) 시장규모 추이와 브랜드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추이

다시 복기해 보는 노키아 몰락의 이유, 시장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혹독한 댓가

삼성은 어떻게 스마트폰 시장을 따라 잡았을까? 삼성의 성과와 한계를 생각해 본다

갤럭시 노트7 발화사건 그리고 삼성 스마트폰 점유율

[2016년 4분기]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애플의 왕좌 등극, 삼성 몰락의 가시화 그리고 화훼이 점유율 10% 돌파

[2016년 3분기 업데이트]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삼성 몰락의 전조(?) 그리고 여전한 중국 업체의 추격

[2016년 2분기 업데이트]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추이 – 삼성이 선두지만 화웨이의 추격이 거세다

아이폰 판매가 감소하는 이유 – 혁신의 부재인가? 아니면 시장의 한계인가?

0

애플 아이폰 판매가 감소하는 이유?

타임에서 발표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컷던 It제품에 첫번째로 아이폰을 올렸길레 아이폰에 대해서 잠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가지 아무도 하지못했던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최근 변화하는 경영 환경하에서 천하의 아이폰도 판매 감소를 격고 있다는 소식이네요.

아이폰 전체 케이스를 살펴보는 것은 큰 작업이 될것이므로 여기서는 아이폰 판매가 하락이는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폰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제대로 살펴봐야 겠습니다.

Morgan Stanley가 2015년 12월 FY2006에 아이폰의 판매는 218백만대를 판매해 -5.7%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발표를 한 후 이런 저런 분석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2016년 판매도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아이폰의 2015년까지 판매 트렌드에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2016년 전망을 더해 전체 트렌드를 살펴보고 실제 2016년 초기의 판매를 살펴보겠습니다.

1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연도별 아이폰 판매 트렌드를 살펴보자

아래 그래는 애플의 회계년도를 기준으로 아이폰이 런칭한 2007년부터 2015년까지의 실적 그리고 2016년 예측치를 토대로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이 그래에 따르면 2007년 런칭 후 한번도 예외없이 성장으로 거듭해 왔습니다. 판매 성장율도 2013년, 2014년 다소 낮아졌으나 2015년 37% 성장하는 등 양호한 모습을 그려왔습니다만 2016년엔 -5.7%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2016년 판매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는 혁신의 부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모바일폰 판매가 위기를 격으면서 나온 분석이 일제히 혁신의 부족을 들었는데 이번 애플의 판매 감소도 같은 혁신의 부족을 드는것이 흥미롭고 의미 심장합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시장분석가 Huberty는 국제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가의 가격과 개발도상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되면서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사용자가 줄어들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Huberty points to “higher prices in international markets (ex-China) and maturing smartphone penetration in developed markets weighs on upgrades and new user growth.”, Business Inside 인용)

아이폰 판매량 추이.jpg

2 분기별 판매량 성장율을 살펴보자 – 회계년도 ‘16년 2Q에서 -16% 역성장하다

지난 4월 26일(미국시간) 애플은 ‘16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합니다. 애플 매출은 505억달러로 전년 동기비 15역 성장했으며 직전 분기대비 335하락한 수치로 시장에게는 어닝 쇼크로 받아드려졌습니다. 또한 3분기 매출도 410~430억달러로 전년 동기 496억달러에 비해서 크게 하회하는 예상치를 내놓았습니다.

아이폰 판매량도 5120만대로 전년 동기대비 -16% 역성장했다고 발표하면서 그동안 실적 하락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햇습니다. 그나마 -20%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을 뒤엎고 -16%로 선방햇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이폰뿐만이 아니라 아이패드, 맥등도 일제히 하락을 면지못했으나 스마트워치 등 기타 제품만 전년 동기 비 30% 성장함으로서 그나마 위안을 삼았습니다.

참고로 한국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 시작해서 12월 31일에 끝나지만 미국의 회계연도는 매년 10월 1일 시작해서 다음해 9월 30일에 끝납니다. 그러다보니 혼란이 조금 있긴 합니다. 미국 회계연도 2분기는 우리나라 회계년도의 1분기에 해당합니다.

아래 회계년도 기준으로 아이폰의 분기별 성장율을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여이 그래프에 의하면 15년 1분기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해서 ‘15년 1분기(캘린더 이어로 따지면 ‘14년 4분기)에 46%에 달하는 엄청난 성장을 합니다. 거의 배가 더 팔린것인데요. 이러한 성장세는 점차 누그러지고 ‘16년 1분기는 정체 상태에 돌입하고 2분기에는 -16%로 역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가 예측한 FY2016에 -5.7% 하락이 아니라 그보다더 훨씬 깊은 하락이 2016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폰 분기별 판매성장율.jpg

3 애플 아이폰의 하락을 어떻게 볼것인가?

애플 아이폰의 하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애플 아이폰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는데서 출발해야 할것 입니다.
아이폰으 2007년 출시하면서 아이폰을 사야 할 분명한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이폰만의 디자인 또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UX, 애플 스토어를 활성화 시키면서 매력적인 어플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다양하게 사용하게 해주는 생태계의 구성, 오랜된 아이폰이라 할지라도 최신 iOs를 설치하면 최신 기기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업그레이드 체계 등등이 아이폰을 사야하고 다른 스마트폰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을 주고 사야할 이유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폰을 사야하는 이러한 분명한 이유가 분명한지를 짚어보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폰을 판매할 시장에 대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애플 아이폰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스티브잡스를 이어서 팀쿡의 시대가 되면서 애플에게서 혁신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를 더 떠올리게 됩니다. 과거의 유산이 있어서인지 2015년까지 애플은 최고의 성적을 거둡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하는 애플 아이폰 신제품에서 혁신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는다는 평가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이는 애플에게는 뼈아픈 점이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폰6에서 혁신적이라고 할만한 것은 3D터치 외는 없는데 이 또한 화웨이에서 이미 적용한 기술이고 새로운 수요를 촉발할 정도의 기술은 아니라는 평가입니다.

새로운 아이폰 제품이 나올때마다 세상을 떠들섞하게하는 무엇인가 있었는데 그 기술 이면에는 더 사용하기 편했졌고 더 아름다워졌고 새로운 아이폰으로 갈아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했지만… 아이폰6는 조금 더 나았지만 이번에 나온 아이폰6se는 완전히 가격 중심으로 포지셔닝을 달리한 제품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장 수요가 프리미엄에서 mass로 넘어간다는 것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폰이 가지고왔더 혁신의 모습을 다른것을 통해서라고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래는 최근 폰아레나라는 IT전문 사이트에서 네트즌을 대상으로 올 기대되는 스마트폰을 조사했는데 예년과 달리 아이폰은 큰 기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삼성 갤럭시노트6는 현재 출시된 갤러시7의 호평에 기대가 높아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예상외로 NEXUS가 2위에 올랐고 아이폰7은 3위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아이폰에 거는 기대가 사라졌다는 의미지요.

폰아레나 설문조사 결과-2016년 가장 기대되는 스마트폰는2.jpg
이젠 애플 아닌 다른 제품도 쓸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이폰만이 답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분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 분들이 애플의 성장을 견인한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이나 LG나 제품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삼성도 아이폰만큼 쓸만해라고 느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플 아이폰의 강점이었던 뛰어난 사용성과 애플스토어에서 제안하는 한발 앞선 어플 등등은 이제 안드로이폰에서도 어느정도 충족할 수 있으며 하드웨어만 좋았던 삼성에서 이제는 사용성도 업그레이드되고 삼성만의 장점을 가진 요소들이 늘어나면서 애플 진영에서 탈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애플의 전략이 아이폰, 애플스토어 등등의 사용성을 연계해 편리한 사용성을 주면서 애플내에서 계속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도록하는 가두리전략을 펴왔는데 그 전략이 잘 작동하는 시점에 온것입니다.
그것이 위에서 소개한 폰아레나의 설문조사에서 갤러시노트 6가 기대 제품 1위로 뽑힌 요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이는 안드로이드의 프리미엄 사용자를 애플 아이폰을 구매하ㄷ록 유도해야하는데 쉽지는 않아보인다는 시사점으로 읽힙니다.

갤럭시노트 6 루머이미지.jpg
http://wimages.vr-zone.net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참조했습니다.

애플 아이폰의 성장을 견인할 새로운 시장이 있을까요?

애릎 아이폰은 그 브랜드 자산을 토대로 타 브랜드대비 고가의 가격 정책을 고수해 오고 있습니다. 이게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 수익의 90%이상으로 차자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되면서 점차 가격전의 양상을 띠게되고 이에 비례해서 프리미엄 시장은 작아지고 있습니다.
2014년 애플은 처음으로 중국에서 아이폰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아이폰 열풍을 일으키며 2014뇬, 2015년 아이폰 판매 성장을 중국 시장이 견인해왔습니다. 즉 최근 애플의 호성적은 성장했던 중국 프리미엄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중국 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축소되고 있고 삼성은 물론이고 화웨이나 샤오미등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제품 라인을울 강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 애플 아이폰의 판매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애플의 지역별 매출 추이를 표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2016년 2붖기를 기준으로 북미를 비롯 유럽 중국 등등 대부분 지역에서 실적이 역성장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일본에서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네요.

아이폰 지역별 판매 트렌드.jpg

중국만을 별로도 떼어놓고 보겟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분기별로 중국에서 애플의 매출 성장율을 그려본 것 입니다. 기회의 땅답게 2015년에는 전 분기대비 성장율이 70~112%까지 엄청난 성장을 했네요.
이러한 성장세를 구가하던 중국에서도 캘린더 이어 2016년부터는 판매 감소로 돌아섰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미국, 구주 등 전통적 시장은 이미 스마트폰이 포화된 시장이라 여기에서 추가 확대를 노린다는 것은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중국이 기대를 걸고 있던 시장인데 감소로의 전환은 애플로 하여금 다른 시장을 탐색케 하고 있습니다만 뚜렸한 대안은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인도가 중국을 대신할 시장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최근 팀쿡은 인도를 7~10년전의 중국이라고 폄하하고 있습니다. 애플에게 인도는 그리 매력적인 시장으로 고려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애플 중국 성장율.jpg

제목으로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애플 아이폰의 판매 감소는 혁신의 부재와 시장의 정체 두가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다만 애플 아이폰이 성장한 근원은 시장 성장보다는 혁신을 통한 수요의 견인에 있었다고 본다면 최근 애플 아이폰의 부진은 혁신의부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여집니다.
애플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혁신을 들고 나올 때 아이폰은 다시 성장할 수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타임 선정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IT 제품 50, The 50 Most Influential Gadgets of All Time

0

미국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타임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었던 기기 50선(The 50 Most Influential Gadgets of All Time)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http://time.com/4309573/most-influential-gadgets/?utm_content=bufferced8b&utm_medium=social&utm_source=twitter.com&utm_campaign=buffer 기사를 참조해 여기에서는 Top 20를 소개해 봅니다.

타임(Time)은 역사상 우리가 사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 그리고 즐기는 방식을 바꾸어온 기술 또는 기기에 대해 고찰하면서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 카메라가 없는 세상, TV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며 이러한 제품들 사이에서 한 브랜드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가장 영향력이 큰 기기중의 첫번째로 아이폰을 뽑았습니다. 이어서 소니의 컬러텔레비젼 Sony Trinitron을 선정했고 세번째로 Apple Macintosh를 뽑았고 네번째로 Sony Walkman을 선정햇습니다. 다섯번째로는 IBM Model 5150을 지목했네요.

1 애플 아이폰, Apple iPhone

2007년 처음으로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손에 진짜 강력한 컴퓨터를 쥐어준 최초의 회사입니다. 스마트폰이 기술적으로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아무도 아이폰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아름답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애플의 디바이스(아이폰)은 우리가 필요했던대로 화면에 버튼을 넣은 플랫하고 터치스크린을 가지는 폰의 시대를 열면서 당기는 키보드와 하드 버튼을 가진 땅딸막한 폰(쿼티폰을 지칭하는 듯)을 대체했습니다.

아이폰과 스티브잡스.jpg
2 소니 컬러텔레비젼 트리니트론, Sony Trinitron

1968년 출시한 소니 컬러텔리비젼 소니 트리니트론, 세개의 분리된 전자총을 가진 TV라서 이름을 트리니트론으로 지었다고.
소니 트리니트론은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한 TV이며 전 세계적으로 억대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Sony Trinitron TV. Ad from 1979.jpg
3 애플 맥킨토시, Apple Macintosh

1984년 조지 오웬의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광고와 함게 등장한 매킨토시..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 사용하기 쉬운 마우스 그리고 전체적으로 친근한 형상으로 매킨토시는 IBM을 대체하는 애플 제일의 희망이었다. 고가격 및 마이크로소프 윈도우즈의 성공은 맥킨토시가 도전자로 남아있게 했지만 컴퓨터와 소통하는 방식에서의 표준을 세웠다고 평가됩니다.

mac-ad.jpg
Apple Macintosh apple-gallery10_1470400b.jpg
4 소니 워크맨, Sony Walkman

이것도 두말하면 잔소리, 소니 워크맨은 이동성과 단순화과 가격 합리성을 갖춘 최초의 음악 재생기(Musib player)입니다.
당시 vinyl records(어찌 해석할 줄 몰라서 그냥 영어를 적었음)가 가장 일반적인 음악 형식이었지만 소니 워크맨은 보다 작은 카세트에서 음악을 들려주었고 주머니나 지갑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습니다. 소니 워크맨은 혼자만 들을 수 있는 헤드폰에 의해 야기된 대중속에서의 개인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소니 워크맨은 AA건전지에로 작동했으며 전기가 없는 먼곳으로의 여행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이 소니 워크맨은 2억대이상 판매되었으며 후에 CD플레이어와 아잎드의 시대를 열는 선구자 역활을 했습니다.

Sony walkman AD.jpg
Sony walkman AD 02.jpg
5 아이비엠 모델 5150, IBM Model 5150

만약 IBM이 없었다면 오늘날 컴퓨터 시장은 어떻할까요? 1981년 IBM이 모델 5150을 도입하기 이전에도 퍼스널 컴퓨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IBM의 판매 확대가 이 제품을 광범위한 성공적인 제품으로 만들엇습니다.
더우기 5150보다 더 영향력이 큰것은 PC의 OS, DOS를 다른 회사에 라이센스를 준 결정이었습니다. 그것이 IBM 호환 PC를 탄생시켰고 이게 비 애플 PC 세상이되는 선구자작 역활을 했습니다.

애플2의 성공이후 IBM은 더 이상이 늦으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여 IBM은 시장 진입을 결심하는데 IBM내부에서는 반대가 심해 신제품을 개발항 시간을 1년밖에 주지않았다.
그리하여 Apple처럼 폐쇄적 platform을 구성할 여유가 없었던 IBM은 호환성을 가진 표준 규격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들고 시장에 이미있는 부품과 S/W등으로 사용하는 컴푸터를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단가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빠른 속도로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 [https://happist.com/index.php?document_srl=8952 인용]

IBM Model 5150.jpg
6 빅토리아 레코드 플레이어, Victrola Record Player

비록 축음기는 1877년 발명되었지만(에디슨이 발명자인가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이를 대중화시킨 것은 Victor Talking Machine사의 빅토리아이다. 이 기기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뿔(horn)을 나무 상자속에 숨기고 최신 가구와 잘 어울리는 슬릭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가와 오페라 가수의 레코드는 이 기기 소유자들의 인기있는 구매품이었습니다.
Victor Talking Machine는 나중에 라디오와 TV 부분에서 거대 기업이 된 RCA에 인수됩니다.

RCA Victor Victoria Radio Record Player (1946).jpg
7 레전시 TR-1 트랜지스터 라디오, Regency TR-1 Transistor Radio

레전시사의 포켓 라디오는 첫번재 소비자용 트랜지스터 라디오이고 하이테크 소형화 시대를 열었던 제품입니다.

regency-transistor-radio.jpg
8 코닥 브라우니 카메라, Kodak Brownie Camera

아이들, 군인들이 들고 다니고 모든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작고, 브라운 색상의 가죽에 판지 형태의 카메라는 쉬운 사용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스냅샷이라는 단어를 낳게 했습니다.

단돈 1$에 1900년 2월에 출시된 브라우니는 트리포드를 없애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코닥에게 있어 저가격의 카메라는 필름 판매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해주었습니다.

Kodak Brownie Camera AD05.jpg
9 애플 아이포드, Apple iPod

Apple iPod이전에 MP3 player는 있었습니다. 음악팬들을 그들의 CD player로부터 업그레이드해서 묶어 놓은 것은 애플 디바이스 였습니다.
Apple iPod는 수천곡의 음악을 Apple iPod라는 포켓에 넣고 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음원 카피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고 동시에 애플 뮤직 스토어(나중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판매처가 되었다)를 만들어 불안해하는 음악 산업계에 구명줄을 제공하였습니다.
Apple iPod의 중요성은 음악계를 넘어섭니다. Apple iPod는 전 세대에게 애플이 쓰기기 쉬운 제품이라는 것과 멋진 마케팅을 소개는 제품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맥북을 사고 아이폰을 사고 아이패드를 사게 함으로서 애플이 가장 가치잇는 기술 기업이 되도록 합니다.

iPod first ad 2001 Screenshot.png
Apple iPod AD02.JPG
10 매직 완드, Magic Wand

처음 들어보는 제품이라 생소한데 내용을 보니 좀 거시기하네요

1968년 히다치에서 발매한 전기적으로 진동을 주는 마사지 제품으로 출시했습니다. 긴장을 완화하고 근육을 풀어주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섹스 교육자인 베티 도슨이 1960년 후반 sex-positive movement 동안 이 제품을 바이브레이터와 마스터베이션 보조 도구로 소개하면서 선품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타임지 소개에서도 이야기하길 2002년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이런 소개가 나온다고 하네요

hitachi-magic-wand.jpg

11위부터는 List만 나열해 보도록 하겟습니다.

  1. Apple iPhone
  2. Sony Trinitron
  3. Apple Macintosh
  4. Sony Walkman
  5. IBM Model 5150
  6. Victrola Record Player
  7. Regency TR-1 Transistor Radio
  8. Kodak Brownie Camera
  9. Apple iPod
  10. Magic Wand
  11. Canon Pocketronic Calculator
  12. Philips N1500 VCR
  13. Atari 2600
  14. US Robotics Sportster 56K Modem
  15.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16. Nintendo Game Boy
  17. IBM Selectric Typewriter
  18. Motorola Bravo Pager
  19. JVC VideoMovie Camcorder
  20. Motorola Droid
  21. IBM Thinkpad 700C
  22. TomTom GPS
  23. Phonemate 400 Answering Machine
  24. BlackBerry 6210
  25. Apple iPad
  26. Commodore 64
  27. Polaroid Camera
  28. Amazon Kindle
  29. TiVo
  30. Toshiba DVD Player
  31. Sony PlayStation
  32. Wii
  33. Jerrold Cable Box
  34. Nokia 3210
  35. HP DeskJet
  36. Palm Pilot
  37. Motorola Dynatac 8000x
  38. Apple iBook
  39. Oculus Rift
  40. Sony Discman D-50
  41. Roku Netflix Player
  42. Fitbit
  43. Osborne 1
  44. Nest Thermostat
  45. Raspberry Pi
  46. DJI Phantom
  47. Yamaha Clavinova Digital Piano
  48. Segway
  49. Makerbot Replicator
  50. Google Glass

아룸다워보여도 담기 어려운 하얀 철쭉꽃을 담다

0

이번주 일요일도 은결이와 동네 놀이터 순레에 나섰다. 출발 시간이 조금 늦어서 두군데만 들르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 우리 아파트 입구에 피어있는 하얀색의 철쭉을 보면서 이 철쭉을 잘 담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이 들었다. 이리 저리 담아보길를 2백여컷을 담았는데 집에와서 확인해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별로 없다…

사진을 담고나면 항상 느끼는 허전함과 아쉬움…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별로 마음에 안드는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보정해 보는것도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원판 불폅느이 법칙이라 암리 떡 보정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이번에 담아본 철쭉은 흰색 철쭉인데… 그 순백색의 하얀색이 마음에 든다.

1 철쭉꽃에 대해서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듯이.. 철쭉은

벗꽃이 질무렵, 온 세상을 뒤덮는 철쪽곷, 요즘 관상용으로 학교나 아파트에서 많이 심어 철쭉 천지를 이루곤 한다.

진달래와 비슷한 꽃나무인 철쭉은 모양과 피는 시기가 비슷해서 많이 혼동을 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진달래가 먼저 피고 그 이후 철쭉이 핀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잎이 없이 꽃만 핀 것은 진달래이고 꽃과 잎이 같이 핀 것은 철쭉으로 구분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진달래는 먹을 순 있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다는 점..
https://happist.com/index.php?document_srl=541937 인용

어릴적을 생각해보니 진달래는 먹을수 있어서인지 좋은 꽃이었고 이 철쭉은 먹을 수 없어서인지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듯 싶다. 자료를 찾아보니 철쭉에는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고, 마비 증세나 어지럼증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진달래를 그냥 따 먹기도하고 어떤 지방에서는 화전을 해 먹기도하고 이 꽃잎을 담아서 술을 담근다고 한다. 우리 공향에서는 진달래로 술을 많이 담구었던것 같다.
그리고 철쭉은 좋지않은 의미를 담아 개꽃이라고 불렀었다. 위키백과를 보니 그 단어가 나와서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쭉의 곷말은 사랑의 기쁨, 사라으이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 강렬함에 어울리는 꽃말이 아닐간 싶다.

2 하얀 철쭉꽃

집으로 오는 길에 담아본 하얀 철쭉…
이런 저런 각도와 빛 그리고 보정을 해보았는데 여전히 부족하다…부족해…

비율은 16:9로 size는 폭을 700PX로 수정해 공유해봅니다..

순백의 아름다운 철쭉-.jpg
순백의 아름다운 철쭉-1860.jpg
순백의 아름다운 철쭉-1880.jpg
순백의 아름다운 철쭉-1942.jpg
순백의 아름다운 철쭉-1944.jpg

순백의 아름다운 철쭉-1812.jpg

2 날 좋은 날 호수공원에서 담은 붉은 철쭉꽃

이전 포스팅에서도 공유했던 호수공원에서 담아본 철쭉..
이 붉은 철쭉은 피기전 봉우리 상태가 더 이쁘다.

날 좋은 날 호수공원에서-0262.jpg

날 좋은 날 호수공원에서-0293.jpg

날 좋은 날 호수공원에서-0295.jpg

3 놀이터에서 붉은 철쭉꽃을 담아보다

은결이와 놀이터 순레중에 담아본 철쭉..

아름다운 철쭉-1703.jpg

아름다운 철쭉-1704.jpg

아름다운 철쭉-1728.jpg

아름다운 철쭉-1760.jpg

브랜드 파이낸스 발표, 2016년 글로벌 브랜드 Top 10

0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발표한 2016년 글로벌 브랜드 500 자료를 공유해봅니다. 브랜드 파이낸스에서는 매년 초 글로벌 브랜드 순위를 발표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이를 발표했더군요.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표된 브랜드가치 Top 10에는 애플, 구글, 삼성,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즌, AT&T, 월마트, 차이나모바일, 웰스 파고가 선정되었습니다.

애플은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조사한 기준으로 2011년부터 수위를 차지했고 이번에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중 구글, 아마존, 웰스 파고가 급속히 성장해 순위가 올라갔으나 브랜드 가치가 하락한 월마트나 성장율이 정체된 삼성, 버라이즌, AT&T는 순위가 하락했습니다.

아래는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발표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것입니다.

1 Brand Value Top 10 Brands

아래는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발표한 Brand Value Top 10 List 입니다.

2016s년 브랜드 가치 탑 10.jpg

아래는 브랜드 파이낸스 자료 중 필요 부분만 의역해 본것입니다.

2016년 발표에서 여전히 애플이 수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2016년 연간 전망은 과거의 정점에 비교해 정체되거나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예외없이 2016년에도 성공의 방식을 쓸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2016년 브래드가치는 아이폰6의 성공과 최근 런칭한 아이폰6s에 힘입어 14% 성장했습니다. 2015년 4분기의 매출은 51.5B$로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고 이익은 11.1B$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브랜드 가치 성장은 아이폰이 런칭된 2007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으로 실망을 안겨준에 일말의 책임감을로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난 분기에 이미 성숙된 시장에서 74.8백만대의 헤드셋이 판매함으로써 애플은 이미 익어버렸다는 주장(성숙한 시장이므로 판매 가능성이 낮다느 의미로 읽힘)은 설익은 주장이 되었습니다. 애플 페이는 오래전부터터 예견된 보다 광범위한 금융서비스 부문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선구자로 견인하는 역활을 시작하였습니다.

Apple slogan.jpg

Top 10 브랜드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를 이끄는 브랜드는 구글과 아마존입니다.. 구글은 2012년부터 삼성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지주회사인 알파벳이 2015년 매출이 모바일 검색 매출의 증가에 힘입어 13% 성장했다고 발표했는데 거기에 힘입어 브랜드 가치가 27% 상승한 94.2B$로 증가했고 brand strength에서 3포인트의 증가했습니다. 구글 조직의 새로은 브랜드 구조는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google-slogan.jpg

아마존은 브랜드 가치에서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2016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즌과 AT&T를 제치고 제4위에 올랐다.
지난 4개 분기중의 3개 분기동안 목표를 달성할것ㅇ인지 아니면 미달할 것인진에 대한 혼란스런 분석이 제기되었었다. 아마존 프라임의 그 다음날 배송 서비스에서 촉발되는 매출의 증가는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되었다. 프라임 회원제는 같은 브랜드(아마존이 직접 제작하는 컨텐츠를 의미)나 네플릭스가 공표한 방식을 따라 개발된 오리지널 컨텐츠를 프라임 회원에게 제공받음으로써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Amazon Logo & slogan resize.jpg

~ 중략 ~

중국 회사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는 그룹부터 어는 영역에서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성과가 좋은 브랜드 Top 10 중 4개가 중국 브랜드이다. Evergrande Real은 올해 가장 빨리 성장하는 브랜드로 2015년비 2016년은 112% 성장하였다. 지속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회사들은 환영받고 칭송되지만, 명단의 윗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브랜드의 존재는 중국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고 중국 경제에 충격이 가해진다는 주장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아래는 브랜드 가치 Top 100 list입니다.

2016s년 브랜드 가치 순위01.jpg

 

2016s년 브랜드 가치 순위02.jpg
2 브랜드별 트랜드 및 변화 추이

아래는 주요 브랜드등의 2007년부터 10년동안 브랜드 가치 트렌드를 그래프로 그려본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애플의 증가세가 확연히 보이고, 2012년부터는 구글의 폭발적 성장이 돋보입니다.
삼성은 애플과 같이 급속히 성장하가 2014년부터는 정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2007년부터 쉼어뵤이 지속적인 성장도 확실히 눈에 띄입니다.
반면 코카콜라는 지속적으로 정체가운데서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기업인 월마트도 정체하기하지만 조금씩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주요 브랜드 가치 트렌드.jpg

단기적으로 2015년 비 2016년의 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가치 금액의 증가는 애플, 구글, 아마존 순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반면 연비조작으로 곤혹을 치룬 폭스바겐, 성장 동력을 찾지못하고 있는 GE, 패스트푸드의 퇴조를 반영한 맥도날드, ING생명등이 크게 가치가 하락했습니다.

성장율로 따져보면 중국 부동산회사인 Evergrande Real, NetEase, CSCEC, WeChat등의 성장세가 돋보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중국계의 성장세가 놀랍습니다.

2016s년 브랜드 가치 변화.jpg
3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Brand Strength)

2015에는 레고가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로 선정되었는데 2016년엔 디즈니가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로 뽑혔습니다.
디즈니의 성과는 2015년 말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의 영향도 크것 같습니다. 브랜드 파이넨스에서 분석한것을 보니 디즈니의 브랜드에는 abc, ESPN, 월트 디즈니, 픽사, 루카스필름, 스타워즈, 디즈니 크루즈 라인, 터치스톤 픽쳐스,마벨 등등 엄청난 브랜들을 보유하고 있네요.

2015년 1위였던 레고는 2위로 밀렸고, 이어 로레알과 PWC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2016 Brand strength.jpg

가장 가치있는 국가브랜드 20,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2015년 발표 자료

0

레고 사례를 살펴보면서 Brand Finance라는 곳에서 레고를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로 선정했다고해서 Brand Finance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자료를 찾다보니 가장 가치있는 국가브랜드 자료도 있길래 그 자료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그냥 살짝 읽어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다 우리나가가 그 랭킹에 들어있길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뭐 어쩌면 다른 곳에서 소개했을 수도 있겠네요

이 조사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여전히 가장 가치있는 브랜드로 선전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을 가장 가치있는 국가로 만드는 것은 미국의 세계를 이끄는 교육 시스템과 음악과 엔터텐인먼트 부분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힘에서 비롯되는 소프트 파워가 미국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미국 성조기.png

중국의 주식시장에서 혼란과 저성장은 브랜드 관점에서 미국이 탑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계속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경제 성장의 주춤거림은 중국 브랜드의 가치를 2014년에 비해서 1% 정도 하락시켰습니다.

중국 경제의 하락에 따라 1차상품 가격의 하락은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가치를 중국보다 더 많이 하락시키고 있었습니다. 호주나 캐나다 등이 그 예인데요 호주는 10%의 가치가 하락했으며 캐나다는 8%의 가치가 하락했습니다. 브라잘도 마찬가지로 하락했습니다.

브라질은 2011년이래로 성장율이 2%미만이었습니다. 1차상품가락의 폭락은 브라질의 성장율을 더욱 떨어뜨렸습니다. GDP 성장율은 2015년 1분기에서 2분기로 오면서 1.9% 하락했고 일자리도 1분기 동안 50만개가 사라졌습니다. 브라질의 경쟁는 1차 상품가격 학 여파를 넘어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브라질 국가 브랜드 가치는 2014년에 비해서 -17% 역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 국가 브랜드에 대한 특별한 분석은 없습니다. 한국은 브랜드 가치가 12위를 차지했으며 2014년 15위에 비해서3단계 상승했고 브랜드 가치는 10% 증가했다고 분석했네요..

2015 국가브랜드순위 20.jpg

이외 가장 빠르게 국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나라로 이란을 지목했습니다. 전년 대비 +59% 상승. 아무래도 핵 협상이 마무리되고 이란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성장가능성이 커져서가 아닐까 싶네요.
이란 대통령 하산 로하니의 유연한 정책은 이란의 잠재력을 점차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됙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의 전환점에서의 갈등과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분열은 여전히 무역과 투자에 있어서 걸림돌로 남아 있지만 7천 7백만명 인구가 가진 시장 잠재력과 광범위한 탄화수소의 매장량과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를 가진 이란은 글로벌로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 풍경.jpg

그릭 러시아와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가장 국가 브랜드가치가 하락한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전년비 -45% 하락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분쟁 당사국인 러시아도 -31% 하락한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석유 가격의 하락을 받는 페루와 아르젠티나 국가 브랜드가치도 크게 하락해 5 worst performance Brands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페루는 -33%하락해 worst 2위에 이름을 올렸고 아ㅣ젠티나는 022% 하락해 worst 5위에 등재되었습니다.

2015 국가브랜드 성장국가 퇴보국가.jpg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brandfinance.com/knowledge-centre/reports/brand-finance-nation-brands-2015/ 에서 자료를 다운받아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태주의 풀꽃이 생각나게 하는 모과꽃을 담아 보다

2

일요일 은결이가 동네 놀이터 순례를 해야 한다고해서 동네 주변의 놀이터란 놀이터는 다 놀아 다녔다.

그 놀이터 순례 가운데 현진아파트 옆 감자탕부근의 놀이터(은결이는 이곳을 감자탕놀이터라고 부른다)에 있는 모과나무에서 핀 모과꽃을 담아 보았다. 벗꽃처럼 엄청 화사하진은 않지만 모과꽃도 자세히 보면 정말 이쁘다. 하긴 이쁘니 않은 곷이 어디 있으랴.. 다 자기맛의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이 있는 것인데…

평소 아무생각없이 지나쳤는데 이리보니 이쁜것은 관심의 차이가 아닐까도 싶고 벗꽃은 관심을 가지지않으려고해도 절로 눈이가고, (주변에서 하도 이야기를 해서 신경을 쓰지 않을래애 안쓸 수가 없다!!)관심이 가지만 이 모과꽃은 그렇게 당기는 매력은 부족했나 보다..

이태주의 풀꽃이란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이쁜 꽃인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문득 이태주의 풀곷이란 시를 여자에게 들려주면 좋아할가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

1 모과꽃을 담아보다

은결이가 감자탕놀이터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담아본 모과꽃
배경을 흐리게해서 조금이나마 꽃이 돋보이게 보정을 했다.
꽃도 이쁘지만 막 올라온 싱그러운 모과나무잎이 더 눈길을 끈다.

모과 꽃-1099.jpg

모과 꽃-1111.jpg

모과 꽃-1094.jpg

아래는 송도센트럴파크에서 담아본 모과꽃이다 (4/30 담다)
송도센트럴파크에서 담아본 모과꽃2-1561.jpg

2 모과나무에 대해서

모과나무(木瓜–)는 장미과에 속하며 겨울에 잎이 지는 큰키나무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한반도에 정착한것은 조선시대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무껍질이 조각으로 벗겨져서 운문상(雲紋狀)으로 된다. 높이 10m에 달하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상 난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잎 윗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고 밑부분에는 선(腺)이 있으며 턱잎은 일찍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지름 2.5-3㎝이며 1개씩 달린다. 꽃잎은 도란형이고 끝이 오목하다. 열매는 타원형 또는 도란형이고 길이 10-20㎝, 지름 8-15㎝이며 목질이 발달해 있다. 9월에 황색으로 익으며 향기가 좋으나 신맛이 강하다. 관상수나 과수분재용으로 심는다.

모과는 쓰임새가 많은 과일이다. 첫번째, 향이 매우 좋기 때문에 방향제로쓰인다. 두번째, 맛이 시고 떯기 떄문에 보통은 깎아먹지는 않고 꿀이나 설탕에 재어서 차로 마신다. 꿀에 졸여서 과자의 일종인 정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더불어, 모과는 술로 담가지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모과를 약으로 쓰기도 한다.

모과는 '세번 놀라는 과일'이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운데 비하여 열매는 못 생겨서 한번 놀라고, 못생긴 열매가 향기가 매우 좋아서 두번 놀라고, 향기가 그렇게 좋은데 비하여 맛은 없어 세번 놀란다. [나무위키, 위키백과 참조]

아래는 예전 살던 코아루 5003동 아래에 있는 놀이터에서 담아본 모과나무의 싱그러운 잎들이다.

파릇파릇 모과나무 잎 -1274.jpg

파릇파릇 모과나무 잎 -1279.jpg

파릇파릇 모과나무 잎 -128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