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C
New York
수요일, 12월 17, 2025

Buy now

[광고] 쿠팡 추천 링크

안녕하세요? 올해까지 삼성전자 25년 직장 생황릃 마치고 퇴직하려 합니다. 퇴직 후 아르바이트로 쿠팡 파트너스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쿠팡 파트너스는 쿠팡 추천 링크를...

카누 캡슐 커피머신 솔직 리뷰: ‘네스프레소 호환’ 가성비 끝판왕 (ft. 쿠팡 최저가 할인)

'공유 커피' 카누가 만든 카누 캡슐 커피머신 : 캡슐 커피머신 바리스타 브리즈/어반! 네스프레소 오리지널 캡슐 호환으로 활용도는 높이고, 카누만의 황금 레시피로 커피 맛은 깊어졌습니다....
Home Blog Page 284

기발하면서도 식상했던 강남역 포장마차 광고 문구

0

오늘 회식이 있었다. 회사 높은 분들이 참석하는 자리라 분위기는 상당히 근업했다. 다행히 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포장마차를 만났는데 광고 문구가 독특해서 지나는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그리고 기록용으로 여기에 남겨 본다.

나중에 다른 포장마차 사진을 담으면 여기에 추가로 콘텐츠를 보완하기로 하자..

처음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배달의 민족’ 광고를 그대로 베낀 광고 문구이다.

영미야! 넌

먹을때가
제일 예뻐

강남역 포장마차, 영미야 넌 먹을때가 제일 예뻐, Image - Choi dongsoon
강남역 포장마차, 영미야 넌 먹을때가 제일 예뻐, Image – Choi dongsoon

다음 광고 문구도 ‘베달의 민족’ 광고를 그대로 베끼긴 했다. 뭐 포장마차에서 광고 문구를 그대로 베꼈다고 배달의 민족에서 항의하지는 않겠지.. 오히려 더 좋아할 듯

강남역 포장마차, 괜찮아 오뎅은 살안쩌, Image - Choi dongsoon
강남역 포장마차, 괜찮아 오뎅은 살안쩌, Image – Choi dongsoon

아래는 ‘배달의 민족’에서 집행했던 버스광고이다.

배달의민족 버스 광고 치킨은 살 안쪄요 - 살은 내가 쩌요-2



교보문고 현판 시귀에서 보며, 아날로그 경험에 대해서 고민해 보다.

0

점심 시간에 잠깐 강남역 주변을 배회하다가 오늘은 몇번 다니던 길을 피해 건너편을 택해 걸었다.

공사하는 구간이 많아서 상쾌한 산책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길이라 여러가지로 흥미로웠다, 뭐 사실은 같은 길인데 길 건너로 다녔을 뿐이다.

교보문고 아이덴티티(Identity)

신논연역을 나와서 건너편을 보니 교보문고가 보인다.

어라 그 동안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만 보았던 교보문고 현판이 여기에도 있는 것 아닌가?

교보문고 강남점 현판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네, Image - Choi dongsoon
교보문고 강남점 현판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네, Image – Choi dongsoon

광화문 교보문고의 현판 문구가 좋은 반응을 얻다보니 이를 전국에 있는 교보문고에 전부 적용했나 보다. 아마 다 아는 이야기인데 나만 모르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기억하기로 교보문고는 각 지역에 교보빌딩을 새우면서 광화문 교보문고와 디자인을 맞춘 것으로 알고 있다.

건물 디자인을 같이 쓰면서 교보문고라는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교보문고 현판과 같은 좋은 반을 얻는 서비스(?)도 같이 확산하면서 긍정적인 교보문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것으로 보여 긍정적으로 보였다.

한번 더 생각케하는 좋은 글귀

교보문고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의 적절하고 가슴을 울리는 시귀를 선정해 게시해 왔다.

아마 지금 걸려있는 글귀는 이번 겨울을 맞아 올렸으니 12월정도에 게시 되엇을 것 같다. 시류와 정보에 늦은 나는 이제야 봤을 뿐이고.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네” 이 얼마나 멋진 글인가?

새해를 맞아, 아니 새해가 한참 지났지만(그냥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아직 이라고 해야하나) 다시 마음을 다 잡으라는 그런 메세지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네

아닐로그 경험이 때론 더 강렬하다.

디지탈 시대다.

이젠 디지탈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고 더 이상 세상을 리딩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이 교보문고 현판 문구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생활하는 삶의 대부분이 아닐로그 세상인데.. 이 아날로그 세상에서 아날로그만큼 더 강렬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디지탈이 편하고 쉽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경험을 만들기위해서는 아직도 아날로그만큼 따라오려면 멀었다. 여전히 아날로그는 강력하게 건재했다.

교보문고가 있는 신논현역에서 강남역까지 걸어 오면서 만난 수많은 매장들을 바라보면서 아날로그 경험의 강력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다 알고 있듯이 Yes24라는 인터넷 서점이 있다. 이 서점도 강남역 근방에 Yes24 중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의 태두인 아마존도 오프라인 서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스24 중고서점, Image - Choi dongsoon
예스24 중고서점, Image – Choi dongsoon

그래서 요즘 트렌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제대로 연결하는 옴니채널로 구현하는 복합적인 경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다.

점심시간의 산책에서 느낀 바를 다소 장황하게 풀어 보았다. 이런 생각도 있다는 것이다.

[피렌체의 사랑] 우피치 대표 화가 보티첼리가 짝사랑한 피렌체 최고 美人 시모네타(Simonetta)

우피치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 보티첼리(Botticelli)

메디치 가문의 작품 소장고에서 출발한 우피치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바로 보티첼리이다.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던 보티첼리(Botticelli)는 그 예술 활동의 전반부를 메디치가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으며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성도 매우 뛰어나기에 우피치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내세우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는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소개하는 우피치 미술관 도록이나 우피치 미술관 공식 가이드의 표지가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으로 채워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피치 미술관 도록 표지에 나오는 보티첼리(Botticelli), Uffizi Gallery Catalog
우피치 미술관 도록 표지에 나오는 보티첼리(Botticelli), Uffizi Gallery Catalog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표지에 나오는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 Uffizi Gallery Guide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표지에 나오는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 Uffizi Gallery Guide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두각을 나타낸 보티첼리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1445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근처에서 염색공이엇던 마라아노 필리페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외 탄생과 성장과정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이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을 가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게 다 이름인줄 안다.

1464년 마사초의 제자였던 프라 필리포 리피의 제자가 되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470년 독립해 자신만의 공방을 세웠다고 한다.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오니산티 성당을 위해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리면서부터라고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가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오니산티 성당에 그린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가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오니산티 성당에 그린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여기서 성공을 거둔 후 그는 메디치 가문에 발탁을 받았고 이후 메디치가문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모네타(Simonetta)와의 만남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보티첼리는 결혼하기 위해 피렌체를 방문한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를 만나게 된다.

시모네타(Simonetta)는 제노바 명문가 출시으로 15세가 되자 피렌체 유력 가문인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하기위해 피렌체로 왔다.

그녀는 빼어난 미인으로 1475년 마상시합 축제에서 미의 여왕으로 뽑히는 등 피렌체 최고 미인으로 인정받았고, 피렌체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녀의 미모를 칭송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뽑내는 피렌체의 한 떨기 꽃이었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시모네타 초상, Sandro Botticelli, Idealized Portrait of a Lady (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as Nymph), 1480, Städel Museum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시모네타 초상, Sandro Botticelli, Idealized Portrait of a Lady (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as Nymph), 1480, Städel Museum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시모네타(Simonetta)는 예술과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피렌체 최고의 미인의 존중과 관심은 많은 예술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그러한 예술가중엔 보티첼리도 있엇다.

시모네타(Simonetta)는 당시 피렌체 예술가중의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보티첼리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녀는 보티첼리에게 ‘나는 당신의 비너스가 될 것이다.’라며 보티첼리의 재능과 작품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관심이 아마도 보티첼리가 시모네타(Simonetta)를 사모하는 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미인단명이라고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페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의 죽음은 피렌체 예술가 및 일반들의 슬픔을 자아 냈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천명의 피렌체 시민들이 참여해 장지까지 따라갔다고 한다. 한편 당시 일반적인 장례식 관습과 달리 그녀의 얼굴을 별도로 가리지 않았는데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티첼리 작품속에 되살아 난 시네모타

시네모타가 세상을 떠난 후 보티첼리는 그의 작품속에서 그녀를 애도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의 상당 수는 그녀를 애도하면서 그녀를 모델로 그린 헌정화라고 할 수 있다.

‘봄’에서 봄의 여신 플로라로 나타나다.

보티체리가 세상을 떠난 시모네타를 애도하며 그린 첫번째 작품이 바로 ‘Primavera(봄)’이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프리마베라, Sandro Botticelli, Primavera, c. 1482, Uffizi Gallery, Florence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프리마베라, Sandro Botticelli, Primavera, c. 1482, Uffizi Gallery, Florence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봄의 정경을 그린 것으로 여기 나오는 클로리스와 플로라는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보티첼리는 여기서 봄의 여신 플로라를 그가 사모하는 시네모타를 모델로 그렸는데 여위고 홍조 띤 얼굴로 추정컨데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시모네타의 마지막 모습으로 보인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중에서 시모네타로 추정되는 플로라, Sandro Botticelli, Primavera, c. 1482, Uffizi Gallery, Florence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중에서 시모네타로 추정되는 플로라, Sandro Botticelli, Primavera, c. 1482, Uffizi Gallery, Florenc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고대 로마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했닥 한다. 이를 모티브로 그림 중안의 거대한 조개 가운데 부문에 비너스가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서풍 제피로스는 바람을 불어 꽃이 춤을 추고 비너스가 타고 있는 조개는 해변가로 밀려간다.

오른쪽에선 시간의 여신 호라(Hora)가 비너스를 맞으며 풍부한 장식의 가운을 입혀주려고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1484-86년경,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1484-86년경,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앞서 ‘Primavera(봄)’에선 봄의 여신 ‘플로라’를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렸는데, 이 비너스의 탄생에선 시간의 여신 호라(Hora)의 모델이 시모네타로 보인다.

또한 여기의 비너스도 시모네타가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피렌체 최고 미인이었던 시모네타는 보티첼리 그림 곳곳에서 헌정되고 있나 보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1484-86년경,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1484-86년경,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이 그림은 시네모타가 사망한지 8년 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비너스를 시네모타를 모델로 그렸다면 8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그녀를 애도하고 그리워했다는 이야기이다.

비너스와 마르스(Venus and Mars)

전쟁의 신 마르스(Mars)가 비너스와 사랑에 빠졌다. 비너스의 부드러운 미소앞에서는 전쟁의 신도 무장해제당하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스 산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사티로스들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무기를 가지고 주변에서 놀고 있고, 마르스 귀에 고동을 불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이처럼 사랑에 빠진 비너스와 마르스를 그린 것은 이 작품이 결혼하는 메디치가의 신부를 위해서라고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 Sandro Botticelli, Venus and Mars c. 1485  Tempera and oil on poplar panel, 69 x 173cm National Gallery, London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 Sandro Botticelli, Venus and Mars c. 1485 Tempera and oil on poplar panel, 69 x 173cm National Gallery, London

여기에서 비너스는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렸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단 시모네타가 사망한지 7~8년이 흐린 시점이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의 부분, Sandro Botticelli, Venus and Mars c. 1485  Tempera and oil on poplar panel, 69 x 173cm National Gallery, London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의 부분, Sandro Botticelli, Venus and Mars c. 1485 Tempera and oil on poplar panel, 69 x 173cm National Gallery, London

팔라스와 켄타우로스(Pallas and the Centaur)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the Centaur)앞에 서있는 아데나의 미네르바 여신 팔라스(Pallas)

여기에서 표현되는 팔라스는 아테나 여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별칭이다. 팔라스 아테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전에 소개한 ‘봄(Primavera)’의 의상이 유사하다.
여기에 나오는 미네르바 여신 팔라스(Pallas)는 물론 보티첼리가 사모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를 모델로 했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Sandro Botticelli, Pallas and the Centaur, c. 1482,  empera and oil on poplar panel, 207 x 148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Sandro Botticelli, Pallas and the Centaur, c. 1482, empera and oil on poplar panel, 207 x 148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시모네타 가까이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다.

보티첼리는 한 때 피렌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가였지만 말년에는 거의 잊혀진 존재로 전락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동안 벌어 놓았던 많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말년은 상당히 곤궁하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하고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듣고 이에 감명을 받아 그의 전 재산을 성당과 수도원에 기증하고 스스로 궁핍하게 생활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말년에 어렵게 살았으며 보티첼리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주었던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생활비를 지원하지않았다면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것”이라고 바사리는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1510년, 65세의 나이로 죽어가던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의 발끝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끝까지 시모네티를 사모했다.

결국 보티첼리는 그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곳이자 그가 사모하던 시모네타가 묻혀있는 아르노강가의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에 묻혔다.

결국 보티첼리는 죽어서야 그가 사모하던 시모네티 근방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작품과 더불어 그의 시모네티를 향한 사랑이야기 끊임없이 전해지고 회자되면서 그의 사랑은 영원함을 얻었다!!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이 어디인지 구글 지도에서 찾아 보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아르노강변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

아래는 아르노강에서 바라 본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 픙경이다. 아르노강이 굽어보이는 성당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보티첼리는 천국에서 시모네티와 행복할까?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아르노강에서 바라 본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아르노강에서 바라 본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 Image – Choi dongsoon
Booking.com

[피렌체의 사랑]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사랑을 따라가 보는 피렌체 명소들

피렌체하면 떠올리는 영화 또는 사랑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냉정과 열정사이’를 첫번째로 떠올리는 것 같다.

이번 피렌테 여행 시 두오모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한 친구가 바로 ‘냉정과 열정사이’를 언급해 놀랐다.

언제적 작품인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담? 어쩌면 피렌체에 대한 소개에서 ‘냉정과 열정사이’소개가 빠지니 않아서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는 것일까?

피렌체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조금은 진부하지만 피렌체와 관련된 사랑이야기를 풀어보고 있는데 오늘은 ‘냉정과 열정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 Calmi Cuori Appassionati, Between Calm And Passion)’로 읽어보는 피렌체라는 내용으로 정리해 보련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

냉정과 열정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는 1999년 소설로 출간되어 젊은층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2001년 영화화 되었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쫒는 남자 주인공 준세와 냉정하게 사랑에 거리를 두려는 여자 주인공 아오이가 피렌체와 일본을 오가며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저작권 문제가 어찌되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 전편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2시간 4분이 넘는 긴 런닝시간이지만 짬을 내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 화질은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다.

영화 장면을 찾아가보자.

영화 곳곳에서 사랑을 찾는 준세와 아오이가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전체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인상적인 피렌체의 풍광을 보여주는 몇군데를 소개해 본다.

피렌체 두우모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가 시작되면 대표적인 OST인 ‘The whole nine yards’가 흐른다.

그러면서 아오이와 준세이의 대화가 흐른다.

준세, 그거 알아? 이런 말..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제쯤 같이 올라가 줄래?
피렌체 두오모에?

언제?
음 먼 훗날
먼 훗날 언제?
글쎄… 한 10년 뒤쯤?
10년 뒤라…
그럼 우린 30살이잖아
준세 약속해 줄거지?
내 서른 살 생일은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그래, 약속해

아오이와 준세는 서른살이 되던해 피렌체 두우모에서 만나기로 한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두오모 The Santa Maria Del Fiore Cathedral dome, Image - ilya-orehov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두오모 The Santa Maria Del Fiore Cathedral dome, Image – ilya-orehov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

아오이와 준세의 대화가 끝나면 피렌체 풍광을 푸르른 외곽 풍경에서 시작해 시내까지 천천히 보여준다.

이 때 보여주는 피렌체 전경을 담은 장소가 바로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이다. 여기가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피렌체를 조망하는 전망대로서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홍보하는 홍보 이미지도 이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담았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홍보 이미지,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준세와와 아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홍보 이미지,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준세와와 아오니

이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은 피렌체 전망을 보는 최적의 장소로서 또는 피렌체의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장소로서 아주 유명하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 본 피렌체 시내,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 본 피렌체 시내, Image – Choi dongsoon

우피치미술관(Uffizi Gallery)

미술 복원 전문가로 나오는 준세

그렇기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는 수많은 미술작품과 함께 우피치미술관(Uffizi Gallery)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공방은 Stefano scarpelli 라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미술품 복구 전문가가 운영하고 있는 실제 공방이라고 한다.

우피치미술관(Uffizi Gallery)이 야 워낙 유명하니 굳이 위치나 소개가 불필요할 듯..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Piazzale degli Uffizi, Firenze, Italy, Image - Mariamichelle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Piazzale degli Uffizi, Firenze, Italy, Image – Mariamichelle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내부, Galleria degli Uffizi, Piazzale degli Uffizi, Firenze, Italy, Image - Uffizi Gallery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내부, Galleria degli Uffizi, Piazzale degli Uffizi, Firenze, Italy, Image – Uffizi Gallery

준세가 첫 복원 작업을 맡았으나 (영화에서는) 누군가에게 찢겨져버린 루도비코 카르디 일 치골리(Ludovico Cardi Il Cigoli, 1559~1613)의 작품 ‘회개하는 막달레나(1610년 작)’

아래는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에서

루도비코 치골리(Ludovico da Cigoli)의 1610년 작  '회개하는 막달레나(Maddalena in penitenza)'를 복원하는 준세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에서 루도비코 치골리(Ludovico da Cigoli)의 1610년 작 ‘회개하는 막달레나(Maddalena in penitenza)’를 복원하는 준세
루도비코 치골리(Ludovico da Cigoli)의 1610년 작  '회개하는 막달레나(Maddalena in penitenza)'
루도비코 치골리(Ludovico da Cigoli)의 1610년 작 ‘회개하는 막달레나(Maddalena in penitenza)’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자신의 재생을 테스트했던 루도비코 카르디 일 치골리(Ludovico Cardi Il Cigoli, 1559~1613) 의 무염시태(The Immaculate Conception(원죄없는 잉태) 1589년 작)

루도비코 카르디 일 치골리(Ludovico Cardi Il Cigoli, 1559~1613) 의 무염시태(The Immaculate Conception(원죄없는 잉태) 1589년 작)
루도비코 카르디 일 치골리(Ludovico Cardi Il Cigoli, 1559~1613) 의 무염시태(The Immaculate Conception(원죄없는 잉태) 1589년 작)

아르노 강변도로

준세가 자전거를 타고 아르노 강변도로를 달린다.

‘냉정과 열정사이’ OST가 들려주는 아른다운 선율과 함께 시원하게 달리는 준세를 보노라면 당장 피렌체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아르노강(Arno)의 피렌체 풍경2,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아르노강(Arno)의 피렌체 풍경2,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아르노강(Arno)의 피렌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아르노강(Arno)의 피렌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준세이가 자전거를 타고 건너던 다리.

영화에서는 원경으로 베키오다리와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위를 달리는 준세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흐르는 흥겨운 OST가 압권이다.

또한 이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는 준세가 아오이를 생각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바라본 베키오다리(베키오다리(Ponte Vecchio)와 에서 담아 본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와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바라본 베키오다리(베키오다리(Ponte Vecchio)와 에서 담아 본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와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 풍경, Image – Choi dongsoon

그리고 단테의 사랑이야기에서 단테가 베키오다리쪽에서 올라오던 베아트리체를 만난 장소가 바로 이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이다.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결혼식이 열리던 곳, Piazza del Limbo

아오이 지인의 결혼식이 열리던 성당이다. 어디인지 몰라서 구글지도를 찾아 보았는데 위에서 소개한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근방이다.

이 결혼식이 끝날 무렵 자전거를 고치고 있는 준세를 보고 아오이는 깜짝 놀란다.

그러나 스치듯 지나치고 마는 두 사람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우연히 자전거를 고치는 준세이를 발견한 아오이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우연히 자전거를 고치는 준세이를 발견한 아오이

리퍼블리카광장(Piazza della Repubblica)

어느 날, 준세이가 복원하던 그림이 갈갈이 찢겨진 채 발견된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준세이

경찰조사를 받고 나온 준세는 리퍼블리카광장 벤치에 앉아 상심에 빠진다. 여기에 여자친구(?) 매미가 찾아와 위로하고…

구글에서 찾아 본 리퍼블리카광장(Piazza della Repubblica) 위치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리퍼블리카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 florence, Image -  kirkandmimi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리퍼블리카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 florence, Image – kirkandmimi

산타 안눈치아타광장(Piazza della Santissima Annunziata)

아오이의 서른살 생일이 된던 날, 준세와 아오이는 피렌체 두오모에서 만난다

두오모에서 만나 두 사람은 두우모가 보이는 산타 안눈치아타광장(Piazza della Santissima Annunziata)에서 그동안 마저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멀리 떨어진 두사람, 마치 그동안 두 사람이 덜어져 있던 시간의 간격만큼이나 서먹서먹하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포스터, 두오모가 보이는 산타 안눈치아타광장(Piazza della Santissima Annunziata)에서 만난 두사람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포스터, 두오모가 보이는 산타 안눈치아타광장(Piazza della Santissima Annunziata)에서 만난 두사람

여기는 상당히 생소한 장소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구글 지도의 힘을 빌렸다.

PIAZZA DEL POGGI

오랜만에 만나서 서먹서먹한 가운데 아오이가 자기가 알고 있는 음악회를 알고 있다며 준세이를 이끌고 간 곳에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첫 키스를 나눈 장소에서 들었던 곡(이 영화의 OST인 Between Calm and Passion)을 첼로 연주자의 합주로 듣으며 예전 (사랑의)감정을 되살리며 키스를 나눈다.

난 그 순간 생각했다.
이건 기적이라고
신이 우리에세 내려준..
마치 환상같은 시간의 장난

영화 냉장과 열정사이, 아르노강변의 음악회가 열린 PIAZZA DEL POGGI
영화 냉장과 열정사이, 아르노강변의 음악회가 열린 PIAZZA DEL POGGI

여기는 미켈란첼로 언덕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에서 상류쪽 방향에있다.

실제로 여기 공연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영화는 영화일뿐?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자응로가던 길에 베키오다리 건너편 다리인 알레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에서 담아본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자응로가던 길에 베키오다리 건너편 다리인 알레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에서 담아본 풍경, Image – Choi dongsoon

구글 지도에 따르면 아래 사진의 석양빛을 받고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 있는 곳이 PIAZZA DEL POGGI라고 한다. 영화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은 여기 길 건너 공원부분..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강과 피렌체 시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강과 피렌체 시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Booking.com

[피렌체의 사랑] 신곡의 원천이 되었던 단테의 아가페적 베아트리체 사랑

피렌체는 르네상스 예술이 태동하고 성장한 예술의 도시요, 수 많은 예술가들의 가슴앓이가 뛰어난 걸작으로 승화되어온 사랑의 도시기이도 하다.

피렌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기로 한 김에 몇 차례에 나누어 피렌체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먼저 이탈리아의 독자적인 문학의 시초가 된 단테의 이야기이자, 유럽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1. 아홉살, 운영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1274년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했다. 그는 거기서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26~1290)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운영처럼 단테의 영혼을 송두리채 빼았아 가고 말았다.

단테는 그의 시집 ‘신생(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 1293)’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 숙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던 기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순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신은 너무도 격렬하게 요동쳤으며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라, 신이 오시어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도했도다……”

단체의 영혼을 빼앗아 간 베아트리체(Beatrice)였지만 그녀의 이름도 모른체 헤어지고 만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2.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두번째 조우

세월은 무심히 흘러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단테와 베아트레체는 다시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어느 날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난간에 기대고 있었는데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방향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꿈에도 그리던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단테의 짝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테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테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이 만남이 전부였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가 당시 피렌체 최고의 가문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과 인연을 맺기는 불가능했던 게 당시 냉혹한 상황이었다.

3. 정략결혼과 베아트리체의 죽음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마음에 품은 채 당시 사회 관례대로 1285년 어린 나이에 약혼했던 젬마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지 2년만이었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 피렌체의 부자 가문이자 은행가였던 시모네 디 바르디와 결혼을 한다. 그렇지만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4. 베아트리체가 준 강렬한 예술적 영감

문학 수업에 열중하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와의 첫사랑,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랑은 단테에게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단테가 온갖 열정을 다해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숭고한 사랑, 신에 버금가는 고귀한 존재 , 구원자로 재창조해 그의 사랑을 예술속에서 영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베아트리체. 그대가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곳에서 왔어요. 사랑이 날 이곳까지 이끌었지요. 내가 주 앞에 설 때 당신을 칭찬해 드리겠나이다.”

아래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바친 시 ‘사랑의 노래’의 귀절이다.

“나의 아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도 싫도록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긋이 바라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복이 있도록 드높은 곳 환한 밝음 속에서 오직 신을 우러러 축복 받는 천사와도 같이
내 비록 한낱 인간이건만 내 마음의 주님을 우러러 보면 천사에 못지않게 축복을 받고 솟아오르는 넋을 퍼덕이리라.
이런 힘이 그에게 있거니 남은 모를지라도 그를 바라 그리운 나는 아노라.” –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리라 –

이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 ‘피렌체 폰테 베키오 – 단테, 그리고 사랑’, ‘베아트리체와 단테 이야기 – 스물 다섯’ 등을 참조하여 재구성하였다.

Booking.com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에서 단테 문학의 향기를맡다, 단테박물관(MUSEO CASA DI DANTE)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를 정리하면서 단테(Dante Alighieri)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을 소개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단테의 고향이 피렌체이다보니 피렌체 여행에서 단테를 빼놓고 간다면 서운할 일이므로 단테와 관련된 유적지(?)를 소개해 보도록 하자.

뭐 문학에 관심이 없고 특히나 고전에 관심이 없다면 넘어가도 별 상관은 없겠다. 여행은 즐거워야하는데 단테를 떠올리면 골치아픈 작품들만 기억난다면 이또한 고문이 아닐까?

1. 단테의 집, 현재는 단테박물관으로 활용

솔직히 이곳은 피렌체 여행 중 정말 우연히 만난 곳이다. 피렌체 여행 마지막 날 여인네들은 쇼핑을 해야한다고 해서 쇼핑에 그리 관심이 없는 난 홀로 카메라를 들고 피렌체 시내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이날 난 피렌체의 골목을 두루두루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가 시간이 되면 피렌체의 골목이라는 포스팅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던 콘텐츠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피렌테 대선당 두우모가 보이는 골목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피렌테 대선당 두우모가 보이는 골목 풍경, Image – Choi dongsoon

1.1. 피렌체 골목 탐방 도중에 우연히 만난 단테의 생가

피렌테 두우모 옆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정처없이 걷다보니 조그마한 광장(?)이 있는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순간 여기 유명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휘장을 읽어보니 MUSEO CASA DI DANTE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다른 말은 잘 모르겠고 DANTE라는 것은 혹시 내가 아는 그 단테인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 생가, 단테 박물관벽의 휘장과 단테 흉상,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 생가, 단테 박물관벽의 휘장과 단테 흉상, Image – Choi dongsoon

뭐 우선 사진을 찍어 놓고 나중에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중에 이런 사진들을 일일히 찾아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손해볼 것은 없으니깐..

ㅎㅎ 조금 후에 등장하는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을 몰고 온 가이드 분께서 여기가 단테 생가이자 단테박물관이라고 알려주셨다.

아래는 단테박물관 벽에 걸려있는 단테의 흉상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 생가, 단테 박물관벽의 단테 흉상, Image - Choi dongsoon

1.2.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패키지 여행자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일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동양인들인데 아무래도 패키지 여행자들 같다.

그래서 자리를 비켜서 멀리서서 살펴보고 있는데 가이드가 하는 이야기가 귀에 쏙속 들어온다.

아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었구나!! 가이드 분께서 이곳이 단테의 생가이고 지금은 단테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단테의 사랑 등등 대해 열심히 설명 한다.

솔직히 더 듣고 싶었지만 더 들으면 무단으로 그 가이드분의 서비스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되므로 더 멀리 떨어져 단테의 생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 생가, 단테 박물관,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 생가, 단테 박물관, Image – Choi dongsoon

그러면서 패키지 여행자 그룹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 설명을 열심히 듣는 여행자분은 주로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들이 많았다. 남성분들은 조금 떨어져서 듣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사진을 찍는 등 개별 행동을 한다.

제일 가관인 것은 젊은 친구들인데(아마도 부모님을 따라 여행 온 듯) 이들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고 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이드 설명과 이들의 스마트폰 집중은 묘하게 예전에 알던 교실 풍경을 연상케 했다.

젊은 친구들이 여행지에서 스마트폰을 열중하는 현상은 이곳 피렌체 뿐만이 아니라 베네치아 등 대부분의 박물과이나 미술관 투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잇었다.

부모님을 따라 억지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왔지만 그들이 흥미를 갖기에는 스마트폰속에는 너무도 강렬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오호 통재라…

그들을 끌고 다니는 부모님도 이해가 되고, 억지로 끌려와서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어린 친구들도 이해가 된다.

1.3. 단테박물관은 단체 생가를 복원한 집

원래 단테가 살던 집은 없어졌다고 한다. 하긴 단테가 태어난 해가 126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700여년이 지난 옛날이 아닌가?

피렌체시가 단테가 살았던 위치의 건물을 사들여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11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7개 방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단테의 행적으로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정리해 놓았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  단테의 침실(Bedroom), Image - MUSEO CASA DI DANTE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 단테의 침실(Bedroom), Image – MUSEO CASA DI DANTE

여기에서는 단테의 명곡이라고할 수 있는 ‘신곡(The Divine Comedy)’ 전편을 인쇄해 계단에 걸어 두었다.

또한 ‘신곡(The Divine Comedy)’의 오리지널 에디션을 전시하고 있으며, 전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을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 단테 '신곡(The Divine Comedy) 오리지널 에디션 , Image - MUSEO CASA DI DANTE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단테기념관(MUSEO CASA DI DANTE), 단테 ‘신곡(The Divine Comedy) 오리지널 에디션 , Image – MUSEO CASA DI DANTE

1.4. 단테박물관 관련 정보

내가 우연히 단테박물관을 발견한 시간은 거의 5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문을 닫을 시간이라 박물관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었다.

솔직히 머리가 아플수도 있으므로 차라리 잘되었다는 안도감도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겠다.

그러나 이 단테 생각 도는 단테박물관은 피렌체대성당 즉 두오모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골목으로 3분정도만 걸으면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 단테박물관 위치 : Via Santa Margherita, 1, 50122 Firenze FI, Italy
  • 단테박물관 연락처
    홈페이지 : museocasadidante.it
    전화번호 : +39 055 219416
  • 단테박물관 운영 시간
    겨울 시즌(11월 ~ 3월) : (화~금)오전 10시 ~ 오후 5시, (토~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월요일은 휴관
    여름 시즌(4월 ~ 10월) : 매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 입장료
    일반인 : 4유로(예전에는 무료였으나 지금은 입장료를 받음)
    학생 및 여행자 그룹 등 : 2유로
    6세 이하 : 무료

아래 유튜브 동영상은 과거에서 온 두 여인의 눈을 빌려 현재의 피렌체와 단테박물관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피렌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작은 도움이 된다. 아쉽게도 이탈리어로 진행되기 대문에 감안하고 봐야 한다.

2.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이전 포스팅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아르노강 석양이 아름다웠던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풍경에서 소개했던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이야기를 여기서 다시 소개해 본다,

1274년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했다. 그는 거기서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26~1290)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운영처럼 단테의 영혼을 송두리채 빼았아 가고 말았다.

단테는 그의 시집 ‘신생(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 1293)’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 숙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던 기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 순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신은 너무도 격렬하게 요동쳤으며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라, 신이 오시어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도했도다……”

단체의 영혼을 빼앗아 간 베아트리체(Beatrice)였지만 그녀의 이름도 모른체 헤어지고 만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세월은 무심히 흘러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단테와 베아트레체는 다시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어느 날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난간에 기대고 있었는데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방향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꿈에도 그리던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단테의 짝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테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테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이 만남이 전부였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가 당시 피렌체 최고의 가문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과 인연을 맺기는 불가능했던 게 당시 냉혹한 상황이었다.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마음에 품은 채 당시 사회 관례대로 1285년 어린 나이에 약혼했던 젬마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지 2년만이었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 피렌체의 부자 가문이자 은행가였던 시모네 디 바르디와 결혼을 한다. 그렇지만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문학 수업에 열중하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와의 첫사랑,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랑은 단테에게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단테가 온갖 열정을 다해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숭고한 사랑, 신에 버금가는 고귀한 존재 , 구원자로 재창조해 그의 사랑을 예술속에서 영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베아트리체. 그대가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곳에서 왔어요. 사랑이 날 이곳까지 이끌었지요. 내가 주 앞에 설 때 당신을 칭찬해 드리겠나이다.”

아래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바친 시 ‘사랑의 노래’의 귀절이다.

“나의 아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도 싫도록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긋이 바라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복이 있도록 드높은 곳 환한 밝음 속에서 오직 신을 우러러 축복 받는 천사와도 같이
내 비록 한낱 인간이건만 내 마음의 주님을 우러러 보면 천사에 못지않게 축복을 받고 솟아오르는 넋을 퍼덕이리라.
이런 힘이 그에게 있거니 남은 모를지라도 그를 바라 그리운 나는 아노라.” –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리라 –

이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 ‘피렌체 폰테 베키오 – 단테, 그리고 사랑’, ‘베아트리체와 단테 이야기 – 스물 다섯’ 등을 참조하여 재구성하였다.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아르노강 석양이 아름다웠던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풍경

피티궁전(Pitti Palace)에서 그림자가 너무 길어짐을 깨닫고 길을 재촉했다.

오늘 최종 목적지는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피렌체의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것이므로 시간에 맞추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를 감상하고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으로 오르기로 했다.

여기서는 피렌체에서는 꼭 봐야 한다는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를소개해 본다.

솔직히 피렌체 관광지는 생각보다 작은 범위내에 있기 때문에 여러 관광지를 방문하기위해서라도 이 베키오 다리를 여러번 지나게 된다. 이번 피렌체 여행 중 이 베키오다리는 4번정도 지나친 것 같다.

피티궁전을 떠나 만난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피티궁전(Pitti Palace)을 떠나 다시 좁은 골목을 조금만 걸으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를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피티궁전(Pitti Palace)에서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에 이르는  골목 길,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피티궁전(Pitti Palace)에서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에 이르는 골목 길, Image – Choi dongsoon

골목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짐을 느꼈는데 베키오다리에 도착해서는 여기가 피렌체를 대표하는 정말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강남이나 명동거리 인파를 베키오다리에서 만나고 말았다. 그 기분을 알것이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정취는 간데없고 오직 밀려드는 관광객만을 보는 기분을 ..그리거 떠밀리듯 그곳을 벗어나야 했던 아픈 기억을 …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입구,  피티궁전(Pitti Palace) 방향에서 바라본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입구, 피티궁전(Pitti Palace) 방향에서 바라본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런 엄청난 관광객 인파를 보는 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고 아무도 없어서 썰렁한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인간적으로 너무 많다며 투덜거리면서 다리를 건넜다.

원래는 베키오다리 좌우에 있는 보석상점들 사진을 담고, 여행오기전부터 기대했던 베키오다리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는데..

우선 연말이라서인지 문을 연 상점이 몇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로 도대체 사진을 담을 공간과 장면을 포착하기 어려웠다. 사람들 뿐인데 뭐..

2차대전 당시 폭파를 면했던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역사

우선 피렌체 관광의 필수 코스라해도 과장이 아닌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는 피렌체 남쪽으로 흐르는 아르노강(Arno)를 가로지르는 12개의 다리(아르노강 상하류를 잇는 고속도로 다리까지 포함) 중에서 가장 오랜된 다리이다.

아르노강(Arno)에서 가장 강폭이 작은 곳에 위치해 아마 가장 먼저 다리로 연결되어, 아주 오래전 로마시대부터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는 처음에는 목조건물로 지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목조다리는 생명을 다해 무너지자 1117년에 석조다리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이 석조다리도 붕괴가 계속되자 1345년 Teddeo Gaddi의 설계로 다시 건설되었고, 이 다리가 현재까지 기본 형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암살을 막기위한 비밀통로, 바사리의 회랑(Vasari Corridor)

한편 이 베키오다리는 피렌체 공화국 청사인 피티궁전(Pitti Palace)과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을 연결하고 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지만 피렌체도 권력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에 항상 정적에 대한 암살의 위험은 상존하고 있었다.

정적에 대한 암살의 위협이 높아지자 공화국 청사인 피티궁전(Pitti Palace)과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을 연결하는 베키오다리에 관련자들만 드나들 수 있는 비밀(?) 통로를 만들기로 한다.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코시모 1세는 우피치궁전(지금은 우피치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을 설계한 Giorgio Vasari에게 명령해 베키오다리 2층에 관련자들만 드나들 수 있는 회랑을 1565년 건설한다. 따라 이 회랑은 설계자의 이름을 따서 바사리의 회랑(Vasari Corridor)이라고 불린다.

푸줏간을 내몰고 금세공업자로 채우다.

원래 이 베키오다리에는 고기를 파는 푸줏간, 대장간 그리고 토스카니 지방을 대표하는 가죽 공장들이 입주해 있었다. 그러나 피티궁전(Pitti Palace)과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을 오고 가는 위정자들에게 이러한 천한(?) 상점들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1593년 이런한 상점과 공장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이러한 가게들을 전부 추방하고 당시 떠오르고 있었던 금세공업자들로 채웠다. 그 이후부터는 이 베키오다리에는 보석가게와 예술품 딜러들이 다리 양쪽을 채우고 있다.

2차대전당시 유일하게 파괴를 면한 베키오다리

세계2차대전은 이탈리아 각 유적지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첬는데 피렌체도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동안 독일은 1943년부터 1944년까지 피렌체를 점령해ㅗ였다. 1944년 독일군은 연합군 공격에 밀려 도주하면서 추격하던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아르노강의 모든 다리들을 폭파시켰다.

하지만 하를레 슈타인하우슬린(Charle Steinhauslin)이라는 독일군 장군은 베키오 다리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폭파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무사히 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베키오 다리를 폭파하지 않는 대신 베키오다리 남쪽에 있었던 바사리 코리도르 같은 역사 지구의 거리들은 지뢰밭으로 만들어 진격을 늦추었다. 이러한 연유로 베키오다리 주변 건물들은 현대와 고전적인 옛 스타일을 혼합한 형태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1274년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했다. 그는 거기서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26~1290)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운영처럼 단테의 영혼을 송두리채 빼았아 가고 말았다.

단테는 그의 시집 ‘신생(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 1293)’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 숙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던 기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 순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신은 너무도 격렬하게 요동쳤으며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라, 신이 오시어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도했도다……”

단체의 영혼을 빼앗아 간 베아트리체(Beatrice)였지만 그녀의 이름도 모른체 헤어지고 만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베아트리체 초상, Beatrice Portinari,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세월은 무심히 흘러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단테와 베아트레체는 다시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어느 날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 난간에 기대고 있었는데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방향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꿈에도 그리던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단테의 짝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테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테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이 만남이 전부였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사랑,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가 당시 피렌체 최고의 가문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과 인연을 맺기는 불가능했던 게 당시 냉혹한 상황이었다.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마음에 품은 채 당시 사회 관례대로 1285년 어린 나이에 약혼했던 젬마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지 2년만이었다.

베아트리체 역시 1287년 피렌체의 부자 가문이자 은행가였던 시모네 디 바르디와 결혼을 한다. 그렇지만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베아트리체 죽음 당시 단테의 꿈,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Walker Art Gallery, Image – Dante Gabriel Rossetti

문학 수업에 열중하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와의 첫사랑,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랑은 단테에게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단테가 온갖 열정을 다해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숭고한 사랑, 신에 버금가는 고귀한 존재 , 구원자로 재창조해 그의 사랑을 예술속에서 영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베아트리체. 그대가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곳에서 왔어요. 사랑이 날 이곳까지 이끌었지요. 내가 주 앞에 설 때 당신을 칭찬해 드리겠나이다.”

아래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바친 시 ‘사랑의 노래’의 귀절이다.

“나의 아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도 싫도록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긋이 바라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복이 있도록 드높은 곳 환한 밝음 속에서 오직 신을 우러러 축복 받는 천사와도 같이
내 비록 한낱 인간이건만 내 마음의 주님을 우러러 보면 천사에 못지않게 축복을 받고 솟아오르는 넋을 퍼덕이리라.
이런 힘이 그에게 있거니 남은 모를지라도 그를 바라 그리운 나는 아노라.” –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리라 –

이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 ‘피렌체 폰테 베키오 – 단테, 그리고 사랑’, ‘베아트리체와 단테 이야기 – 스물 다섯’ 등을 참조하여 재구성하였다.

베키오 다리에서 작은 낭만을 느껴보다.

피렌체에서 어디에 있든 잘만 방향을 잡으면 피렌체 두오모 즉 피렌체 대성당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피렌체 두오모가 보이는 풍경은 나름 인정을 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두오모가 높고, 피렌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절대덕이기 때문이리라.

피티궁전(Pitti Palace) 방향에서 여행객으로 미어터지는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를 건너 두중에 문득 위를 쳐다보니 멀리 두오모가 보인다. 그래 이거야 재빨리 카메라에 담아 본다.

베키오다리에서 바라보는 두오모라 왜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에서 보이는 피렌체 두오모(Cathedral of Santa Maria del Fiore),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에서 보이는 피렌체 두오모(Cathedral of Santa Maria del Fiore), Image – Choi dongsoon

몇번 베키오다리를 건넜지만 긴다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잠깐 걷다보면 끝났다는 느낌이 들고 인파에 치여 별 생각없이 건다보니 더 짧게 느껴졌나 보다.

문득 베키오다리 길이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베키오다리 길이는 95m라고 구글이 알려준다.

우리나라 한강 다리 중 가장 긴 마곡대교가 2,930m이고 가장 짧은 잠수교도 795m인점을 고려하면 베키어다리 길이 95m는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다.

뭐 규모보다는 베키오다리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볼거리가 더 중요하겠지.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석양 풍경, Sunset of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27707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석양 풍경, Sunset of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27707

다리위의 상점들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폭은 32m로 좌우 양쪽에 보석판매점 등의 상점이 있고, 길은 마차 2대가 지날갈 정도로 넓다. 1345년에 건설된 다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넓다고 해야할 것이다.

다리 양쪽으로는 보석상점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12월 말은 휴가 시즌이라서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극히 일부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리위는 관광객으로 넘쳤지만 양쪽 상점부분은 조금 썰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다리위의 풍경뿐만이 아니라 아르노강의 야경에도 영향을 미쳐서 조금 실망스러운 풍광 보여 주었다.

피렌체의 금속세공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서 이 베키오다리에서 판매되는 보석 등 귀금속 가격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남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문너머 귀금속을 바라보며 갈등하는 수많은 여행객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처럼 가난한 여행객 뿐만이 아니라 여유있는 여행객도 많이 오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이곳 보상상들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보석상점,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보석상점,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앞,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앞, Image – Choi dongsoon

다리 입구 주변에는 가죽 가방등을 파는 노점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기에도 많은 여행객들이 가죽 제품을 살펴보고 흥정을 하고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쇼핑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곳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도 그런면에서 흥미로운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가죽 가방 판매 노점,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가죽 가방 판매 노점, Image – Choi dongsoon

요즘 어느 관광지를 가도 여행객을 그려주는 화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베키오다리도 마찬가인데 우피치미술관에서 베키오 다리로 내려오는 길목에서는 일련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아르노강변에서 베키오다리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며 인생작을 하나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여기 화가들 사이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어디서나 인기있는 화공은 있는데 그들을 잘 살펴보면 여행객을 상당히 익살스럽게 그려주는 화공들인 듯하다.

피렌체 두오모 옆에도 이런 화공들이 널려있는데 익살스러운 캐리캐춰를 그려주는 화공들이 인기가 있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화가,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y-heng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화가,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y-heng

그러나 항상 그런 여유를 가질 정도로 여행의 공력이 쌓여야 할 것 같다. 당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새로운 곳을 하나라도 더 보고픈 마음에 자리를 뜨고 만다.

베키오다리 중앙의 전망대

베키오다리 중앙부 1층은 양쪽의 상가 건물을 세우지 않고 아치형 공간을 만들어 아르노강과 피렌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경치를 감상하고, 세피를 찍과 가족, 여인과 기념 촬영을 한다. 그 풍경을 단아 보았다.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순간을 택했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린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여행객들,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의 여행객들, Image – Choi dongsoon

하류 방향으로는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동상이 서있다. 사람들은 그 동상을 주변으로 이곳에 왔노라는 증표를 나기느라 정신이 없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피티궁전(Pitti Palace)에서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가운데에 있는 벤베누토 첼리니 동상(Statue of Benvenuto Cellini),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피티궁전(Pitti Palace)에서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가운데에 있는 벤베누토 첼리니 동상(Statue of Benvenuto Cellini), Image – Choi dongsoon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는 누구일가? 왜 여기에 그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일까?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는 피렌체 출생의 금속공예가요 조각가였으며 화가이고 음악가 그리고 군인이었으며 모험가였고 무뢰한이었으며 호색가였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코시모 1세》(바르젤로미술관) 《빈도 알토비티:Bindo Altoviti》(루브르미술관) 《퐁텐블로의 님프》(루브르미술관)《황금의 소금 상자》(빈미술사미술관) 《나르시스》 《페르세우스상(像)》등이 있다.

그는 고전주의적이고 능숙한 장식성이 보이는 금세공품을 제작했고 후에 모뉴멘탈한 조각을 제작했다. 그는 미켈란첼로의 애제자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under Loggia dei Lanzi, Florence, Image - Paolo Villa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under Loggia dei Lanzi, Florence, Image – Paolo Villa

그의 작품에서 라파엘로의 우아함과 미켈란젤로의 웅대함 같은 16세기의 이탈리아 최성기 르네상스 고전예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마니에리스모의 주관주의로 옮겨가며, 세부 표현에 기술자적인 기교를 보인 점에서, 후기 르네상스적 성격을 가진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기존 도덕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행동과 성격의 소유자로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의 예술성있는 작품들이 단점을 커버하는 것 같다.

베키오다리는 금세공업자들의 공간으로 피렌체 출생의 대표적인 금속공예가라 할수있는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동상이 설립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석양의 베키오다리

베키오다리는 피렌체 중심을 가르고 흐르는 아르노강(Arno)의 한 폭판에 자리하고 있고 주변으로 유명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덩달아 화려한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 석양을 보고 내려오면서 담아보았던 석양 무렵의 베키오다리 풍경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연말의 베키오다리 삼점들은 대부분 휴가를 떠난 상태라서 조금 아쉬운 느김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전부 영업을 하고 있어 불이 전부 다 들어왔다고해서 엄청난 명작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지만 조금은 더 풍성한 석양 무렵의 풍경을 담지 않았을까?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황혼 무렵의 베키오다리 세로사진,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황혼 무렵의 베키오다리 세로사진,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황혼 무렵의 베키오다리,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황혼 무렵의 베키오다리, Image – Choi dongsoon

아래는 이번 여행에서 담은 사진은 아니지만 베키오다리의 진한 석양 풍경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 여기 소개해 본다.

이미 앞에서 소개한 이미지도 있고 새롭게 소개하는 이미지도 있다. 역시 사진을 잘 담는 사람들이 참으로 먾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는 순간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석양 풍경, Sunset of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27707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석양 풍경, Sunset of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27707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가 보이는 풍경,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mark-boss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가 보이는 풍경, Ponte Vecchio, Firenze, Italy, Image – mark-boss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바라본 베키오다리를 비롯한 아르노강이 보이는 피렌체 풍경이다. 지금 보니 뭐가 풍성함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아르노강과 베키오다리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아르노강과 베키오다리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손각대로 담아본 베키오다리 야경

저녁 무렵 피렌체를 가족들과 돌아다니며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를 건너게 되었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베키오다리는 생각보다는 운치가 있어서 손각대로 베키오다리 야경을 담아 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무리해서 삼각대를 가지고 떠났지만 항상 들고 다닐 수 없어서 호텔에 두고 나왔는데 삼각대를 아쉬워하면서 담아 보았던 베키오다리 야경 풍경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야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야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야경을 광각으로 담아본다,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야경을 광각으로 담아본다, Image – Choi dongsoon

야경은 아니지만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바라 본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와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 풍경

파란 하늘과 반영이 잘 어우어져 피렌체의 매력을 배가 시키는 듯한 한 낮의 멋진 풍경이었다. 사진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절반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탈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바라본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와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탈리아 여행,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바라본 베키오다리(Ponte Vecchio)와 베키오궁전(Palazzo Vecchio) 풍경, Image – Choi dongsoon
Booking.com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아름다운 석양의 피렌체를 보다, 미켈란첼로광장

이탈리아 여행지마다 필수 코스로 추천되는 곳이 있다.

르네상스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이 곳 피렌체에서는 석양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보는 석양 또는 야경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겨울 피렌체의 낮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피티궁전에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무렵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오늘같이 날이 좋은날에는 피렌체의 석양 풍광을 보는거야.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보는 야경이 그렇게 황홀하다고 다들 그렇게 칭찬하던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솔직히 피렌체는 상당히 작은 도시이고, 더욱이 주요 관광지는 내가 살고 있었던 용인 동백보다는 조금 더 큰 동네정도로 무시하고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구글맵에서 피티궁전(Pitti Palace)에서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을 찍어보고는 기겁을 했다.

원하는대로 베키오다리(Ponte Vecchio)를 지나는 코스로 걷으면 무려 30분 가까이나 걸린다는 것. 정확히는 27분 걸린다고 나왔다.

미켈란첼로광장(Piazzale Michelangelo)으로 걸어가는 길

다행히 해지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30분이란 시간은 충분한 듯 싶어 걸어가기로 했다. 사실 걷는 것외는 방안이 없었다. 수중에 현금이 한푼도 없었던 것..

피렌체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지 곳곳에서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이탈리아란 나라에 대해서 실망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도 관관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한 사례라는 생각을 했다.

피티궁전에서 베키오다리를 걷너는 동안 피렌체가 정말 유명한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강남이나 명동거리 인파를 베키오다리에서 보고 말았다. 그 기분을 알것이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정취는 간데없고 오직 밀려드는 관광객만을 보는 기분을 ..

이런 엄청난 관광객 인파를 보는 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고 아무도 없어서 썰렁한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인간적으로 너무 많다며 투덜거리면서 다리를 건넜다.

원래는 베키오다리 좌우에 있는 보석상점들 사진을 담고, 여행오기전부터 기대했던 베키오다리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는데.. 우선 연말이라서인지 문을 연 상점이 몇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로 도대체 사진을 담을 공간과 장면을 포착하기 어려웠다. 사람들 뿐인데 뭐..

본격적인 미케란첼로광장으로 가는 길은 베키오다리 다음에 있는 알레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으로 가는 길, 베키오다리 건너편 다리인 알레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에서 담아본 미켈란첼로광장 방향 풍경, Image - Choi dongsoon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으로 가는 길, 베키오다리 건너편 다리인 알레 그라지에다리(Ponte alle Grazie)에서 담아본 미켈란첼로광장 방향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일방통행으로 자동차가 씽씽 지나는 골목을 한참가야 한다. 오늘 하도 이런 저런 피렌체 골목을 많이 보다보니 이 길은 그리 감흥이 오지 않았다. 그냥 너무 좁고 거기다 차도 지나가야 한다니 그냥 빨리 지나고 싶다는 생각뿐으로 그냥 뛰다시피 골목을 지났다.

골목이 끝나면 산 미니아토 피아제타(Piazzetta di San Miniato)가 나온다. 여기서 피아제타(Piazzetta)는 작은 광장을 뜻한다. 산 미니아토 소광장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 싶다.

여기엔 조그마한 주차장이 있어 차를 가지고 왔다면 여기서 주차를 할 수 있을 듯한데, 솔직히 미켈란첼로광장에도 주차장이 있기때문에 여기 주차장은 여행객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산 미니아토 피아제타(Piazzetta di San Miniato) 끝에는 성문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문을 통해서 미켈란첼로광장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아마 언덕을 주변으로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성곽을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광장으로 가능 길의 산 미니아토 피아제타(Piazzetta di San Miniato),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광장으로 가능 길의 산 미니아토 피아제타(Piazzetta di San Miniato), Image – Choi dongsoon

지금까지는 힘들줄 모르고 왔는데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경사진 골목길을 지나 가파른 계단길이 기다리고 있다.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광장으로 가능 골목 길,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광장으로 가능 골목 길,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풍경, Image – Choi dongsoon

구글맵에 따르면 미켈란첼로광장의 높이는 102m로 평지에서 겨우 60m정도 오르는 것으로 나온다. 솔직히 60m 오르는 것쯤이야 얼마나 힘들겠냐만은 오늘 종일 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 힘들 떼도 되었다 싶다.

드디어 도착한 미켈란첼로광장

헉헉 거리며 드디어 미켈란첼로광장에 도착했다. 처음 반겨준 것은 씽씽 달리는 차들과 석양 빛을 받아 빛나는 소나무가 눈을 사로 잡는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만나는 소나무,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만나는 소나무, Image – Choi dongsoon

광장 곳곳에는 가죽 가방과 피렌체 풍광이 담긴 그림 그리고 옷들을 파는 잡화상들로 어수선했다. 피렌체하면서 기대했던 깔끔한 그런 풍경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역시 사람사는 동네는 어디든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석양 빛을 받아 빛나는 다비드상이 보인다. 다비드상 주변으로는 옷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하다.

노점과 다비드상이라 묘하게 어울리지않는 조합을 바라보다 노점이 나오지않는 각도를 찾아 다비드상을 담아본다. 왜냐고 이 곳을 미켈란첼로광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려주는 상징과도 같으니까..

석양 빛은 묘하게 비치고 있었다. 다비드상에 석양빛이 비추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그 순간엔 아랬부분만을 비추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릴까 고민하다 여기에 온 피렌체 풍광을 보러 이동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다비드상,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다비드상, Image – Choi dongsoon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

석양무렵이라서인지 사람들은 광장 난간근처에 모여 피렌체 시내 풍경을 보며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광장의 사람들 그리고 피렌체 시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광장의 사람들 그리고 피렌체 시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셀피를 찍는 사람, 가족 사진을 찍는 사람, 키스하면서 이 순간을 음미하는 연인, 천천히 물들어가는 석양 풍경을 넋놓고 감상하는 사람등 각자 자신들만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기고 이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야경을 보는 사람들,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야경을 보는 사람들, Image – Choi dongsoon

석양의 피렌체를 담아보다

내가 여 순간을 즐기는 것은 이 순간을 잘 카메라에 담아보는 것이리라. 풍광을 즐기기위해 광장 난간에는 사람들로 빡빡히 모여있어 자리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석양의 피렌체는 아름다웠다.

아르노강, 베키오궁전, 피렌체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피렌체의 스카이라인이 과하지않으면서도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석양빛을 반다 더욱 붉게 빛나는 붉은 색 지붕들로 가득찬 피렌체 시내는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두오모, Image - Choi dongsoon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두오모,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 본 베키오궁정과 두오모,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 본 베키오궁정과 두오모,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아르노강과 베키오다리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아르노강과 베키오다리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강과 피렌체 시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본 강과 피렌체 시내 풍경,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 본 피렌체 시내,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바라 본 피렌체 시내, Image – Choi dongsoon

낭만의 미켈란첼로광장

미켈란첼로광장 계단에서는 석양 무렵에는 음악회가 열린다. 막 해가지고 있던 순간에도 사람들은 광장 계단에 앉아 석양의 피렌체를 감상하면서 음악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부지런히 공연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낭만과 여유가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생각같아서는 나도 계단에 자리를 잡고 음악에 심취해보고 싶었지만 가족들과 만나기로한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서둘러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Image – Choi dongsoon

또 다른 한켠에서는 기타를 치면 노래하는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픙광과 여유로운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 미켈란첼로광장은 과히 낭만으로 가득찬 멋진 곳이라고 할만했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거리 공연자,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거리 공연자, Image – Choi dongsoon

요즘 관광지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자물쇠.. 미켈란첼로광장에서도 곳곳에서 이런 자물쇠를 달아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오기전에 사랑을 맹세하는 자물쇠를 사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자물쇠 파는 곳이 없는데 말이다..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자물쇠, Image - Choi dongsoon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 야경이 아름다운 미켈란첼로 광장, 자물쇠, Image – Choi dongsoon

이 미켈랑첼로광장은 피렌체 시민들이 모이는 많은 행사들이 열려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이기도 한다.

  • 여름에는 불꽃놀이가 개최되는데 마찬가지로 이 미켈란첼로광장에서 보는 경치가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불꽃놀이가 열리면 피렌체 시민들은 멋진 광경을 보기위해 이 광장을 찾는다.
  • 12월 31일의 새해 카운트다운 시 이 광장에는 수많은 피렌체 시민들이 모여 술을 한 손에 들고 신년을 축하한다.
  • 월드컵 축구가 열릴때면 이 광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피렌체 시민들이 모여 응원하는 장소로 변한다.
  • 그리고 MTV의 음악 프로그램도 이 미켈란첼로광장에 열린다.

[여행팁] 미켈란첼로광장으로 가는 방법

미켈란첼로광장으로 가는 방법을 살펴보자.

버스를 이용하기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미켈란첼로광장으로 가는 버스는 역에서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쪽으로 나오자마자 만날 수 있는 광장 버스정류장에서 12번 버스나 13번 버스를 타면 된다.

자동차 이용하기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미켈랑첼로광장에는 상당히 넓은 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렌트카가 있다면 자동차로 미켈란첼로광장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다만 피렌체가 자동차 운전에는 좋은 동네가 아니기 때문에 숙소가 어디냐에 따라 자동차 활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우리도 두오모 근처에 숙소를 잡고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넣는게 귀찮아서 사용하지는 않고 그냥 걸어 다녔다. 피렌체가 그러 넓지않은 곳이라서 다행이었다.

Booking.com

세상은 그래도 살맛나는 곳이야, 성심당 미담과 분노의 포도의 1센트 캔디 이야기

1

오늘 페북을 보다보니 성심당 이야기 소개되었길래 여기에 공유해 본다. 힘든 세상이지만 온정과 따뜻한 마을을 가진 사람이 생각외로 많고 그 분들로 인해서 세상은 좀 더 살맛나는 것 같다.

성심당 직원이 고객을 배려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400원이 없어서 단팥빵을 살수없었던 어느 아주머니에게 직원이 자기돈으로 모자란 돈을 채워 단팥빵을 드렸다는 이야기

페친은 아니지만 정은영님의 페북에 있는 글을 옮겨왔다.

“제가 계산대에서 근무하는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단팥빵 하나를 고르고 800원을 내셨다. 1200원이니 4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옆 동료가 얘기하자 그 분은 머뭇거리다 빵을 놓고 말없이 돌아섰다. 그 분의 굳은 살 박힌 손과 돌아서 나가는 모습을 본 순간 이 자리에 우리 사장님이 계셨다면 어땠을까, 분명 그냥 보내지 않으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호주머니를 뒤져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대신 돈을 내고 달려가서 그 분에게 단팥빵 한 개를 쥐어드렸다. 우리 사장님이라면 분명 그렇게 하셨을 테니까 나도 그 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1센트 캔디 이야기

이 미담에 대해서 비슷하게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도 인정은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1센트짜리 캔디 이야기가 소개되었길래 그 이야기도 소개해 본다.

존 스타인 벡 '분노의 포도' 표지

배경을 살펴 보자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는 아마도 학창시절에 한번 정도 읽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 아니면 혈기 왕성한 대학시절에 읽었을 수도 있겠다. 사회 문제 의식에 눈을 떴다면 이런 소설쯤은 읽는 게 수순이 아닐까? 아님 말고

서실 이 책은 지주, 은행, 경찰의 노동자 탄압을 고발하는 내용이 많아 발표된 1939년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많이 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 위키백과 인용

필자도 언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다 잊혀져서 희미한 줄거리만 남았다.

당시의 배경에 대해서 “분노의 포도, 그리고 1센트짜리 캔디”의 내용을 조금 수정해 재정리 해보았다.

미국 중부 오클라마주의 수만명의 소작농들은 은행에 땅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들은 고민끝에 포도와 오렌지가 가득하다는 캘리포니아로 무작정 떠나기로 한다.

존 스타인 벡, 분노의 포도에서 소작농들의 이동 경로, Image - shmoop University
존 스타인 벡, 분노의 포도에서 소작농들의 이동 경로, Image – shmoop University

대개 중고차 상인에게 속아서 산 고물 트럭에 남루한 가재도구와 지친 식구들을 싣고, 몇푼 안되는 여비를 가지고 긴 여행을 떠나는 소작농들의 행렬이 긴 66번 국도를 메우다시피 했다.

영화 분노의 포도 포스터, 고물 트럭에 낡아빠지 가재도구를 싣고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영화 분노의 포도 포스터, 고물 트럭에 낡아빠지 가재도구를 싣고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이러한 행렬중에는 조드 일가도 포함되었었다. 조드 일가는 도로변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물과 빵을 구한다. 당연히 휴게소 주인 내외는 이들이 반갑지 않다.

분노의 포도 내용 인용 – 1센트 캔디

남자가 묻는다. “아주머니, 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짜증스러운 그림자가 메이의 얼굴에 살짝 스쳐 간다. “네, 어서 쓰세요.”

그녀가 어깨 너머로 가볍게 말한다. 어디, 저 호스를 잘 지켜보아야지. 그녀는 남자가 천천히 라디에이터 캡을 비틀고 호스를 그 안에 넣는 동안 그를 지켜보고 있다.

황갈색 머리 빛깔의 여자 하나가 차 안에서 소리친다.

“혹시 그걸 여기서 구할 수 없는지 알아보세요.”

남자가 물 호스를 빼내고 라디에이터 캡을 다시 막는다. 아이들이 그로부터 호스를 받아 위쪽으로 치켜들고 벌떡거리며 물을 들이킨다. 남자가 때 묻은 시커먼 모자를 벗어 들고 묘하게 굽실대는 태도를 문간에 다가선다.

“혹시 빵을 한 조각 잘라서 팔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주머니?”

메이가 말한다. “여기는 식료품점이 아닌데요, 우리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파는 빵밖에 없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그의 굽실대는 태도는 집요하다.

“우리는 빵을 사야겠는데 아무데를 가도 어디 살 수가 있어야지요.”

“빵을 팔면 우리는 장사를 못 하는데요.”

메이의 말투가 좀 더듬거리는 듯하다.

“너무 배가 고파 그럽니다, 아주머니.” 남자가 말한다.

“샌드위치를 사시면 되잖아요? 우리 집 샌드위치나 햄버거는 아주 훌륭한데요.”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10센트를 가지고 온 식구가 다 요기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좀 난처한 듯이 말한다. “돈이 없어서 그럽니다.”

메이가 말한다. “단돈 10센트 가지고는 빵을 사실 수 없어요. 우리 집에는 15센트짜리 빵밖에 없는데요.”

그녀 등 뒤에서 앨이 볼멘소리로 말한다.

“제기랄, 주어 버리지 무얼 그래.”

“그럼, 빵 배달차가 오기도 전에 빵이 다 떨어지라고?”

“떨어지면 떨어졌지 뭐.”

앨이 말한다. 그러더니 그는 시무룩하게 자기가 뒤섞고 있던 감자 샐러드를 내려다본다. 메이가 포동포동한 어깨를 으쓱 추켜 보이더니 앨의 말이 못마땅하다는 것에 동조라도 해달라는 듯이 트럭 운전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미닫이문을 열어 준다. 밖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땀 냄새를 독하게 풍긴다. 그 뒤에 아이들이 따라들어 와서는 곧장 과자상자 쪽으로 달려가서 안을 들여다본다.

먹고 싶다는 욕심이나 희망으로가 아니라 이런 물건도 있느냐는 듯 의아해 들여다보는 것이다. 두 아이가 서로 몸집이나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다. 한 아이가 한쪽 발톱으로 다른 한쪽의 발목을 긁는다.

또 한 아이가 무언가 가만가만 소곤거린다. 그러더니 그들은 팔뚝을 쭉 뻗는다. 작업복 속의 호주머니 안에 움켜 쥔 그들의 주먹이 얇은 청색 천에 비친다.

메이는 서랍을 열고 초 종이로 길게 말아 쌓아놓은 빵을 꺼낸다.

“이건 15센트짜리 빵이에요.”

남자는 모자를 머리에 다시 올려놓는다. 끈덕지게도 굽실대면서 그가 대답한다.

“혹시 거기에서 10센트 어치만큼만 잘라서 파실 수 없을까요?”

앨이 으르렁대며 말한다. “아이 참 무얼 그래, 메이. 그냥 주라니까.”

남자가 앨 쪽을 돌아본다. “아닙니다, 그저 10센트 어치만 샀으면 좋겠습니다요. 돈이 너무 빠듯해서 그럽니다. 캘리포니아까지 가려니까, 원.”

메이가 단념하듯 말한다. “10센트만 내고 가져가세요.”

“그럼 억지로 빼앗아 가는 셈이 되는데요, 아주머니.”

“가져가세요. 앨이 드리라고 하잖아요.”

그녀는 초 종이로 산 빵을 카운터로 민다. 남자는 뒤 포켓 깊은 곳에서 가죽지갑을 꺼낸다. 끈을 풀더니 지갑을 연다. 지갑은 은전과 때 묻은 지폐로 묵직하다.

“너무 떼를 써서 우습게 되었습니다. 그가 변명한다. 아직도 갈 길이 수천 마일이나 남았는데 이 노자가 안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지갑 안에 집어넣어 10센트짜리 동전을 찾아 꺼낸다. 카운터에 내놓자 1센트짜리가 하나 같이 붙어 나온다.

그는 그 1센트짜리를 지갑 안에 도로 집어넣으려다가 과자 상자 앞에 얼어붙듯 서있는 두 아이들에게 시선이 간다. 그는 천천히 아이들 쪽으로 다가간다. 그는 상자 안에 있는 기다란 줄무늬 박하 과자를 손가락을 가리킨다.

“아주머니, 저건 1센트짜리 과잡니까?”

메이가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어느 거요?”

“여기 저 줄친 것 말입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면서 숨을 죽인다. 그들의 입이 반쯤 벌어진다. 거의 벗다시피 하고 있는 그들 몸뚱어리는 뻣뻣해 있다.

“아, 그거요? 아녜요, 그건 1센트에 두 개씩이에요.”

“그럼 아주머니, 두 개만 주세요.”

그는 동전 한 닢을 조심스레 카운터에 내놓는다. 아이들은 참았던 숨을 가만히 몰아쉰다. 메이가 큰 과자를 꺼낸다. “가져가서 먹어라.” 남자가 말한다.

그들은 조마조마하게 손을 뻗어 과자를 하나씩 집더니, 과자를 옆구리 아래에 든 채 시선조차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쭈뼛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남자는 빵을 집어 들고 문밖으로 나간다. 아이들도 뻣뻣하게 그 뒤를 따라 나간다. 빨간 줄무늬가 있는 과자를 다리에 꼭 눌러 쥐고 있다. 그들은 다람쥐처럼 차의 앞좌석에 뛰어오르더니 다시 짐꾸러미 위로 올라가 보이지 않게 된다.

남자가 차에 오르더니 발동을 건다. 모터가 부르릉거리고 푸르스름한 연기가 기름 냄새를 풍기며 피어오르더니 그 고물 내쉬 차는 이내 국도 위에 올라서서 다시 서쪽으로 제 갈 길을 가버린다. 음식점 안에서는 트럭 운전사들과 메이와 앨이 그들 뒤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까 그 과자는 한 개에 5센트짜리였지?” 빌이 말한다.

“무슨 상관이세요.” 메이가 사납게 말했다.

“그건 하나에 5센트짜리였다고.” 빌이 또 빈정거린다.

“자, 이젠 그만 가야겠어.” 또 한 남자가 말한다. “시간이 늦겠어.”

그들은 호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는다. 빌이 카운터 위에 동전을 꺼내 놓는다. 다른 남자가 그걸 쳐다보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꺼낸다. 그들은 몸을 돌려 문간 쪽으로 향한다.

“잘 있어.” 빌이 말한다.

메이가 소리를 지른다. “잠깐 기다리세요. 잔돈 가져가셔야죠.”

“예끼, 뚱딴지같은 소리!” 빌이 소리를 지르고 문소리가 꽝 하고 들린다.

메이는 그들이 커다란 트럭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트럭이 낮은 기어로 털털거리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속력을 올리며 기어가 바퀴에 걸려 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녀가 가만히 부른다. “앨!”

그는 또닥거리고 있던 햄버거로부터 고개를 든다. “왜 그래?”

“저기 좀 보라고.” 그녀는 커피 잔 옆에 있는 동전을 가리킨다. 50센트짜리 두 개가 놓여 있다. 앨이 다가와서 쳐다본다. 그는 이내 돌아가서 일을 계속한다.

“트럭 운전사들은 역시 달라.” 메이가 대견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다녀간 다음에 ‘똥 묻은 발꿈치’들이 온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