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캠핑 후 짬을 내서 다녀왔던 강원 평창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문학관 탐방기입니다.
이효석하면 생각나는 ‘메밀꽃 필 무렵’이 대표적인 근대 작가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이 소설이 우리 가족에게는 논란이 되었습니다.
1. 이효석문학관 가는 길 – 은우와 문제 제기
캠핑장을 떠나 다들 내켜하지 않았지만(은우는 빨리 집에 가서 하고픈게 있었고, 은결이는 도대체 자기 마음에 드는 주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가는 차안에서 메밀곷 필 무렵 내용이 뭘까? 질문이 나왔는데 정말 제목만 생각이나고 줄거리는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세상에 이렇게 새까맞게 잊을 수가 있는지? 허생원이야기가 나오니 아 그런 내용이었지 새록 새록 생각이 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읽어 보고 던져 버린지 언제인데.. 기억이 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1.1. 페미니즘 관점에서 ‘메밀꽃 필 무렵’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인터넷으로 메밀꽃 필무렵을 검색을 해본 은우는 이 소설운 문제가 많은 소설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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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소설은 암시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성을 묘사하는 야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 소설인데.. 중학교에서 소개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어 강제로 읽게 할 정도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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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하룻밤 만남 후 그냥 떠나버린 무책임한 남자와 그리고 남은 여자가 온갖 고통을 다해 사생아를 키우는 내용이 배경인데, 허생원은 애듯함만 가득하지 여자의 고통에는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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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소설은 철저하게 남자 중심인 소설이다.
최근 여자들에 대한 편파 수사등으로 촉발된 여성들의 시위가 큰 이슈가 되고 있죠.
이런 분위기속에서 은우도 여자들의 권리 그리고 여자들의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으므로 이런 소설도 그냥 수용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 최근 열린 여성 편파 수사 중단 시위 이미지- 한겨레신문
1.2. 보는 관점에 따라 이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듯
사실 은우 주장에 대해서 이효석이 살았던 그 시대적 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너무 세상 모든 일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서 칼로 무우 자르듯 바라보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겠다는 다소 궁색한 이야기로 얼버무리기는 했습니다.
하기만 두고 두고 고민할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허생원은 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사랑을 나누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고 마을을 떠나 버리죠.
남겨진 그 처녀는 졸지에 아이를 갖고 아비없이 아이를 기르게 되죠. (그 소설속에선 동이가 바로 그 아이라고 강력하가게 암시를 하죠,)
성서방네 처녀 입장에서 허생원은 엄청난 인생을 짐을 지워주고 떠나버린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나쁜(?) 놈이죠.
그런데 허생원은 그런 죄의식은 찾을 수는 없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그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내지만, 결혼도 하지않은 처녀가 아이를 가져서 겪어야 할 고생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죠.
오히혀 오히려 동이 이야기를 듣고는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하며 동이를 설득해 (동이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제천으로 가자고 하죠. 잿밥에 관심이 있는…
이러한 해석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을 것입니다. 문학에 왜 이런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고 이러는 가운데 해석은 더욱 풍부화되지 않을까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죠.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시당하다 제대로 평가를 받기도하고, 과하게 평가받다가 다시 제자리르 받기도 합니다.
어느 시대든 시대 정신이 존재하고, 이 시대 정신에 따라 조금씩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질 것 입니다.
이효석 문학이 가지고 있던 시대적 한계가 분면히 있겠지만 삶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과 당시 품광과 정취와 심리를 묘사하는 탁월한 업적은 변치는 않을 것입니다.
아래는 메밀꽃 필 무렵 마지막 부분인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중의 하나로 널리 이야기되죠.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2. 이효석문학관 방문기
이효석문화관 가는 길, 메밀곷 필 무렵에 대한 여성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는데요.
막상 문학관에 도착해서는 별 일반 관광지를 둘러보듯 살펴보고 나오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문학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조예가 없는 상태에서 아 이런게 있구나 하는 이상의 느낌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아래는 짧은 와중에 느낌정을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2.1. 사료 부족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잡다하게 전시된 느낌.
먼저 들었던 생각은 부족한 사료를 토대로 이효석문학과을 문학관을 꾸미느라 애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효석은 생각외로 일찍 요절했죠. 1907년 태어나 36세가 되던 해 뇌막염으로 요절했습니다.
상당히 짧은 생애를 보냈기 때문에 남겨진 게 많지는 않아 보입니다.
▽ 이효석문학관 안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이효석 사진
이효석문학관 안 풍경, 이효석 사진[/caption]
▽ 이효석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는 메밀꽃 필무렵 육필 원고 사진
▽ 이효석문학관 밖에 각인되어 있는 메밀꽃 필 무렵
그렇기에 넓은 문학관을 꾸리기엔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뭐 메밀꽃 필 무렵 영화 대본같은 것은 같은 주제이니 봐 줄만 합니다.
그렇지만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전시물도 종종 눈에 띄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메밀꽃 필 무렴의 장을 표현해 놓은 것인데요.
놀랍게도 이효석문학관 내부에서 상당한 규모로 당시 사회상을 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박물관에 왔낳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효석 문확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에서 애쓴다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2.2. 당시 많은 문인들처럼 상당한 유한 계층이으로 보이더라.
그리고 이효석도 널리 알려진 당시의 많은 문학가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유한 계층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문학관 앞 잔디광장 한켠에는 이효석좌상이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 펜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효석의 모습인데요. 책상에는 커피잔이 놓여 있고, 뒷편에는 턴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효석은 빵, 버터 그리고 커피와 같은 서양 음식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효석문학관 안을 둘러보다면 정말 쌩뚱맞게 메리 크리스마스(Merry X-MAS)라는 표어가 있는 전시룸이 있습니다.
모두 호기심에 동해서 사진을 한장식 담게 되는데요. 저도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는데, ISO를 100으로 고정해 놓았더니 어두운 실내에서 너무 흔들렀더군요.
그래서 구글링으로 이미지를 가져왓습니다.
이 방은 이효석이 평양살 때 찍은 아효석 작업실 사진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상은 말할 것도 없고 피아노와 턴테이블 그리고 책과 음반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우리가 일제시대라고 알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보면 정말 잘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2.3. 러시아를 동경했던 이효석
그리고 이효석이 다른 많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상당히 동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에게 당시 전해진 러시아 문학과 사회주의 영향은 일제 압박하의 조선의 폐색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로 향하기 위해 중간지인 만주 하얼삔이 부각되었고, 이효석도 만주 하얼삔에서 거주하면서 그의 문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런 이효석 문학 여정에 만주 하얼삔이 중요하게 등장하므로 문학관 많은 부분에 하얼빈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이 이효석과 관계가 있는지 유심히 봤는데 그것은 아니고 당시 이효석이 머물었던 당시를 담은 사진이란 이유로 그 많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효석은 1939년과 1940년 두차례 만주를 여행하고 장편 ‘벽공무한’, ‘가을’ 일본어로 기록한 ‘대륙의 껍질’, ‘낡은 것과 새로운 것’’북만주 소식’, ‘야과찬’과 같은 많은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자 하얼빈에 대한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효석과 북만주 하얼빈”전(2011년 이효석 문학관 기획전시회)
하얼삔에 대한 전시 사진을 담을 수 없어서, 당시 문학관 직원이 근엄하게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해서 처음 몇장 찍고 찍지 않았거든요.
아래 하얼빈 사진 위 링크에서 가져왔습니다.
▽ 이효석문학관에 전시중잍 하얼빈 중앙대가 1920년대 풍경 사진
▽ 이효석문학관에 전시중잍 하얼빈 중앙대가 1920년대 풍경 사진
▽ 이효석문학관에 전시중잍 하얼빈 중앙대가 1920년대 풍경 사진
▽ 이효석문학관에 전시중잍 하얼빈 중앙대가 1920년대 풍경
– 당시 하얼빈 거리를 거니는 외국 여성들,
– 당시 하얼빈은 상당한 국제 도시였다고 한다.
3. 이효석문학관 풍경
이번 이효석문학관을 방문하면서 담았던 문학관 주변 풍광을 담아 보았습니다.
▽ 이효석문학관 매표소 앞 물래방아,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와의 인연의 배경이 되는 장치
그런지 모르지만 이후 물레방아는 성인소설이나 영화의 만남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는 듯
▽ 이효석문학관 입구 메밀꽃 필 무렵 표지석과 문학관 스탬프
▽ 문학관 매표소에서 문학관으로 올라가는 길,
이날 하늘은 무지 말고 좋았다. 다만 날이 넘 더워서 애들이 짜증을 냈을 뿐..
▽ 이효석문학관 입구 풍경,
세계적 문호와 어깨를 나란히 이효석을 놓아서 격을 노피고자 하는 듯
▽ 이효석문학관 입구의 이효석 문학 흔적을 설명하는 안내판
▽ 이효석문학관 잔디광장 풍경,
이효석좌상과소나무 그리고 벤치
▽ 이효석문학관 전면 풍경
▽ 이효석문학관 전면 앞 부속건물
▽ 이효석문학관에서 볼 수 있는 6개월 후 도착한다는 느린우체통
▽ 이효석문학관 앞 잔디광장에 있는 이효석좌상,
텐테이블 그리고 커피를 통해 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 이효석문학관 전망대
▽ 이효석문학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아래는 관고아용 메밀밭이 조성되어 시즌이 되면 관광객으로 넘치는 곳이다.
▽ 네이버지도로 찾아본 이효석문학관과 이효석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