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폭스바겐이 도요타를 누르고 세계 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한 자동차 메이커가 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에 많이 놀랐다.
디젤게이트(Diselgate)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적이 얼마전 같은데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직도 판매 중지가 풀리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을 벗어나 움직이나 보다.
혼란스러웠다.
조금 조사를 해보니 다른 곳의 풍경은 내가 아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양상이 다른 것 같다. 도덕이 비지니스를 담보해줄까?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로 살펴보는 전략의 중요성
라는 고민을 했고 도덕적인 면에서 용서가 안되지만 중국 비니스의 성공이 폭스바겐을 살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전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얼핏 보기에는 도저히 재기 불가능할 것 같은데 바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호기심에 이 폭스바겐의 중국 진출 사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1. Executive summary – 폭스바겐 중국 진출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
폭스바겐은 수요가 정체된 구주와 미국에서 느리게 성장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어떻게해서 폭스바겐은 그 어렵다는 중국 시장 더우기 중국 자동차사장에서 이런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끌 낼 수 있었을까?
이러한 고민하에 검토해본 폭스바겐의 중국 진출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아래처럼 크게 세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다들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미래를 확신하고 과감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결단
둘째, 기술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기술 이전으로 뛰어난 부품업체를 육성하고 중국 내수 중심으로 고품질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 이는 후발로 들어온 GM이 인력과 업체를 가로채면서 빛을 바래긴했지만 폭스바겐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셋째, 독일 자동차 브랜드라는 평판을 적극 활용하면서도(믿을 수 있는 브랜드) 큰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국민차로 포지셔닝하고 이를 가능토록 공급망과 Cost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점
이중에서 세번째 요인이 폭스바겐이 중국에서 단기간에 반짝하지않고 오랬동안 중국시장을 리드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프리미엄 중심 전략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수요가 급증하고 경쟁자 참입이 급증하면 어느정도 가격 경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지금 중국 비지니스를 축소하고 있거나 중단하는 많은 글로벌 기업들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폭스바겐의 케이스는 '마켓 리더의 조건'에서 주창하는 대량 소비시장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으로 대량 소비시장의 욕구를 충족할 혁신을 이루어냄으로써 시장을 지배하고 마켓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한다.
2. 중국 자동차 시장 규모 추이 (판매량 기준, 백만대)
▽ 한국 중국 일본 자동차 시장 규모 추이(단위 : 백만대, Carsalesbase.com, 1990년~2016년),
중국 자동차 시장 규모를 보면 2016년에 2천 7백만대 수준으로 성장해 전셰계 수요 7천 7백만대의 35%에 달하는 수치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장세가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자동차 수요는 30년전만해도 별 볼일없는 수준이었다. 1990년 중국 자동차 판매는 백만대가 채 안되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2009년이후엔 가파르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9.5퍼센트 성장)
아시아권에서 일본과 한극을 비교해 보자.
일본은 오히려 판매대수가 정체되고 있다고 봐야하며(지난 6년간 연평균성장율 -0.2%),
한국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지난 5년간 연평균성장율은 3.2%),
그러나 한국, 일본 모두 중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3. 폭스바겐 중국 진출 계기
중국 정부의개방을 통한 산업화 의지와 기술 이전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자하는 폭스바겐의 이해가 맞아들면서 폭스바겐의 중국 진출이 성사 된다.
3.1. 중국 정부의 개방을 통해 산업 발전 추구
널리 알려졌다시피 1978년 등소평(邓小平,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을 시작했다. 이는 대내적으로는 중국내의 개혁을, 대외적으로는 외국 자본 및 기술에 대한 개방을 추구했다.
이 개방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타 산업과 연관효과가 높은 자동차산업을 중추산업으로 정하고 낙후 된 중국의 자동차생산기술과 설비 투자를 위한 자금과 기술을 도입하고자 외국기업의 직접투자 장려하였다. 단 외국의 직접투자는 100% 지분을 가진 투자는 금지하고 중국 기업과의 합작투자만 허용하는 정책을 세웠다.
또한 외국 직접투자자를 선정하면서 중국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술 이전과 부품의 현지 조달’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3.2. 폭스바겐, 핵심기술을 이전을 감수하고 중국 시장을 선점하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조건에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는 중국 소득 수준이 너무 낮아 수요가 없으며 더우기 기술 이전을 해가며 투자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그동안 판매의 발판으로 삼았던 미국과 구주등의 선진국 시장 수요가 정체되어 새로운 수요 발굴이 절실한 시점이었으며, 이미 GM이나 토요타는 아시아 시장에 진출해 입지를 다지고 있는 상태라서 다소 불리하드라도 중국 진출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당시 폭스바겐이 판단컨데 중국 국민 소득이 아직 낮지만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자동차 소유가 적었던 포르투갈 정도만 성장해도 자동차 수요가 1억 3천만대라는 어마어마한 시장이 생길것으로 전망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즉 기술 이전에 따른 Risk보다 시장을 선점하는 이득을 더 크게 보았고 세가지 요구조건을 걸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다.
당시 폭스바겐이 내건 세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다.
첫째, 중국 정부와 국영기업에서 사용하는 관용차로 폭스바겐으로 선정해 줄 것 왜냐하면 이 당시 중국 자동차 수요는 개인구매보다는 관용차 등의 수요가 더 많았기에 확실한 수요를 확보하고 했다.
둘째, 다른 외국 자동차 업체의 중국 내 투자를 제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중국 투자의 진입 장벽을 어느정도 강화해 안정적인 비지니스를 위한 포석이었다.
셋째, 자동차 부품에 붙이는 관세를 낮추고 완성차를 수입할 때는 관세를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폭스바겐이 중국 생산에 필요한 부품 공급을 원활히 하고 원가 경쟁력을 높힐 수 있는 방안을 확보한 것이고 완성차 관세를 높이는 것은 타 자동차 업체가 수입차로 시장 공략을 최대한 막겠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3.3. 상하이자동차와 합작으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을 설립, 본격 진출하다.
1984년 폭스바겐은 상하이자동차와 합작으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1991년에는 중국의 제일기차(一汽·이치)와 폴크스바겐의 합자회사인 이치 따중(一汽大衆)을 설립했고 아울러 제일 기차(一汽, 이치)와 아우디(奥迪, 아오디)의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합작회사로 진출한 것은 위해서 설명한대로 중국정부는 주요산업의 경우 100% 지분의 직접 투자는 허용하지 않았기때문에 상하이자동차, 제일기차(一汽·이치)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 폭스바겐 합자회사들의 지분 현황,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은 폭스바겐 그룹 40%, 폭스바겐 투자주식회사(VCIC) 10%, 50%는 상해자동차나 중국은행등이 투자했다.
이치 따중(一汽大衆)은 폭스바겐 그룹 20%, 폭스바겐 투자주식회사(VCIC) 10%, Audi 10% 그리고 제일자동차가 60%를 투자했다.
이렇게 중국 개방 초기에 중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폭스바겐은 상당 기간동안 선점 효과를 누렸고 한동안 자동차 부분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4. 폭스바겐 중국 운영 전략
여기서부터는 폭스바겐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4.1. 중국 남부와 북부로 나눈 2개 합자회사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1984년 상하이에 본거지를 둔 상하이 자동차와 합작으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1984년 설립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남부 지방을 집중 공략하는 역활을 맡았다.
또한 1991년에 중국 제일기차(一汽·이치)와 합자회사인 이치 따중(一汽大衆)을 설립해 중국 북부에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베이스 기지 삼아 중국 북부 지역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
이러한 이원화 전략은 어느 정도 지역 기반을 갖는 업체와 협업을 통해서 넓은 중국 지역 공략을 원활히 하고 더 나아가 2개 회사를 별도로 운용함으로써 중국측 파트너의 경쟁을 통해 컨트롤하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
▽ 중국 폭스바겐 딜러쉽 현황
그러나 이러한 이원화 운영 전략은 점차 문제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기 관용차 생산 중심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비지니스가 가능해 별 문제가 없었으나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우선 자동차 수요가 점차 관에서 민간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동안 중국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관용차 공급등으로 손쉽게 비지니스를 영위해온 폭스바겐 현지 합자회사들은 이런한 변화 대응 에 둔감했다.
또한 중국 자동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경쟁자들이 계속 시장 진입하고 있었다. 특히 GM과 도요타가 중국 시장에 진입하면서 시장 경쟁을 한층 격화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품 라인업이나 마케팅에서 보다 빠르고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기존 합자회사들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드리지 않고 또한 경쟁에 대응해 서로 협력하는 것조차 거부해 왔다. 상하이 따쭝(上海大衆)과 이치 따중(一汽大衆)은 각각 독자적인 마케팅, 세일즈, 유통 채널을 갖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어 경쟁에 대응해 효과적인 마케팅 정책 수립에 어려움을 격었고 이는 시장에서 판매 경쟁력의 저하로 나타났다.
폭스바겐은 1998년 59%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고 2003년에도 37%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경쟁이 치열해진 2004년에는 30%이하로 하락하고 있었다. (J.D.파워사는 2004년 1월에서 4월까지 폭스바겐의 중국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26%라고 밝혔다.) 결국 2004년 폭스바겐은 GM에 중국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
이에 2004년 5월 폭스바겐 그룹 차이나를 설립해 중국 사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그룹 차이나는 민간 소비 증가에 대응해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10여종의 새로운 일반 소비자용 모델을 선보였고, 그동안 상하이 따쭝(上海大衆)과 이치 따중(一汽大衆)로 나누어 따로놀던 마케팅을 통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을 중국 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폭스바겐의 경쟁력을 점차 회복하게 된다.
그렇지만 폭스바겐이 GM을 따라잡고 중국 시장점유율 1위로 복귀한 것은 2013년으로 거이 9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4.2. 철저한 현지화
폭스바겐이 중국 진출하면서 중점을 둔 전략중의 하나가 철저한 현지화이다.
그것은 중국 정부가 초기에 요구했던 사항이었고 폭스바겐으로서도 국민차로 포지셔닝한 상태에서 자동차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서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해야하므로 현지화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또한 투자가 이루어진 후 이후에도 중국정부는 끊임없이 현지화율을 높이라는 압력을 가했다. 예를 들어 1986년 베이징지프사건이후 중국 정부는 강력한 자동차 부품 국산화 정책을 시행하던 당시 국가경제위원회 주임이던 주릉지는 1987년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을 방문해 '부품 수입을 통한 승용차 생산은 중국의 발전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 3년안에 부품 국산화이 40%에 미치지 못하면 공장을 폐쇄시키겠다'는 경고를 할 정도였다.
중국정부는 주요 부품 등에 대해서 첨단 기술을 이전해주는 조건으로 2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었으며, 또한 약한 기술 이전이 이루어진다는 조건하에 추가 6년간 세금을 감면한다는 조건을 제시해 강력한 유인 정책과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경우와 같이 공장 폐쇄와 같은 극단적 정책으로 기업을 압박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자 했다.
상하이 따쭝(上海大衆)과 이치 따중(一汽大衆) 모두 협수백개의 부품 생산업체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초기 중국에 안정적이고 경쟁력에 도움이 될 쓸 만한 부품 업체가 거의 없었기에 폭스바겐은 부품업체에 기술을 전수해 부품업체를 육성하거나 유럽의 부품업체와 동반 진출하는 방법으로 부품업체들을 육성했다. 그결과 부품 업체 20%이상은 유럽 자동차 부품업체와 합작으로 설립되어 유럽의 선진 부품 기술을 토대로 우수한 품질의 부품을 제공할 정도로 증가했고 이를 토대로 완성차의 품질을 높일 수 있었다.
폭스바겐의 전체적인 현지화율은 1985년 26%에 불과했지만 1995년에 이르러서는 95%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현지화가 진행되었다.
아러한 노력으로 중국 현지에서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함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고 폭스바겐이 오랬동안 중국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4.3. 현지화 브랜딩 그리고 국민차로서 이미지 포지셔닝
당시 중국에서는 상표로서 영어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중국 당국은 영어 문자를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해 영어 이름을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 현지에 맞는 네이밍을 새로 했다.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 의미를 중국어로 변환해 네이밍을 했는데 폭스바겐도 이렇게 폭스바겐의 의미를 중국어로 변환해 네이밍을 했다.
4.3.1. 현지화 브랜딩
폭스바겐(Volkswagen)은 독일어로 ‘국민’인 Volk를 중국어인 따중(大众)으로 바꾼 것이고, ‘수레, 자동차’를 의미하는 Wagen 은 기차(汽车)로 네이밍했다.
따중(大众)에서 중은 원래 중국어 번체자로는 ‘무리 중(衆)’이고 간체자로는 ‘중(众)’이라서 폭스바겐의 심볼마크(V와W)를 뒤집어 놓은 듯한 공통점이 있어서 간체자인 ‘중(众)’을 사용했고 이는 심볼마크(V와W)를 연상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한다.
이러한 브랜딩에 따라 상하이 따쭝(上海大衆)과 이치 따중(一汽大衆)이라는 합작회사명이 정해졌다.
▽ 1984년 런칭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 로고
중국 폭스바겐의 서브 브랜드들의 네이밍도 이러한 방식에 다라 지어졌다.
- 더비틀(The Beetle) : 갑각충(甲壳虫)
- 파사트 : 帕萨特(파사터
- 티구안 : 途观(투꽌
- 골프 : 高尔夫(까오얼푸)
4.3.2. 중국 국민차로서 포지셔닝
폭스바겐의 이름처럼 중국에서 폭스바겐은 중국 국민차로 포지셔닝했다. 따중기차(大众汽车)
따중기차(大众汽车)는 중국 현지 메이커 수준의 저렴한 가격에다 독일 브랜드라는 프라이드를 주면서도 서민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브랜드로 이미지 포지셔닝을 했다.
이를 위해서 폭스바겐의 자동차 라인업도 실용적인 준준형 및 중형 차량에 집중 배치되어 있다. 파사트, 제타, 보라, 사기타, 라비다 등등 실용성을 극도로 강조한 실용성 위주의 중소형 세단이 중점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의 판매 비중이 40%이상을 상회하고 있다.
▽ 2008년 Auto china에서 발표한 폭스바겐 자동차 Lavida,
사진은 The Auto Channel에서 인용
4.3.3. 멀티모델전략
앞에서 한번 언급했지만 중국 경제 성장에 힘입어 중국 자동차 수요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9.5% 성장)
새로운 소비자가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상당히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지역과 다양한 성향의 소비자로 인해 자동차에 대한 니즈가 상당히 다양하고 특정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폭스바겐 중국 사장이었던 하이즈만은 '중국 소비자들은 로열티 면에서 보면 변화를 선호하며 역동성이 강해 소비자 75% 정도가 다음 차를 선택할 때 다른 브랜드를 선택하길 원한다. 그만큼 중국은 까다롭고 감성적인 시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를 위해서 폭스바겐은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 멀티모델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초기 중국 자동차 수요가 관용차 등 관 중심으로 형성되어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겠다는 관념이 없었으나 점차 민간 소비중심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다양한 모델을 확대하느 멀티 모델 전략으로 선회했다.
폭스바겐이 중국에서 생산, 판매하는 브랜드들
중국에서 폭스바겐은 크게 3가지 게열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첫째, 폭스바겐(Volkswagen) 계열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에서 Tiguan LWB, Touran, Passat New Lingyu, New Passat, Lavida (Sedan, Gran Lavida, Cross Lavida), Polo (Hatchback, Cross Polo, Polo GTI), New Santana, Santana Vista를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이치 따중(一汽大衆)에서는 New Jetta(Based on Polo Saloon), New Bora, Golf, Sagitar(Jetta A6), Magotan(Passat B7 EU Spec with Long-wheel-base), Volkswagen CC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둘째, 아우디(Audi)계열로 A6L, A4L, Q5, Q3 등을 이치 따중(一汽大衆)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
셋째, 2007년 합작생산에 합의한 스코다(Skoda)로 상하이 따쭝(上海大衆)에서 Octavia, Fabia, Superb, Yeti, Rapid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 폭스바겐 차이나 합작회사별 운영 브랜드,
폭스바겐 차이나 발표자료 인용
폭스바겐이 중국에 수입, 판매하는 브랜드들
아래는 폭스바겐 차이가 수입해서 판매하는 브랜드들이다.
폭스바겐 자체가 글로벌로 멀티모델 전략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브랜드외에도 많은 브랜드들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 폭스바겐 차이나의 수입 브랜드 리스트,
폭스바겐 차이나 발표자료 인용
5. 폭스바겐 중국 진출 성과
중국 자동차산업 초기 전략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입한 폭스바겐은 선점에 따른 혜택을 충분히 누리면서 혁혁한 성과를 내었다.
5.1. 시장점유율 추이
폭스바겐은 1998년 승합차시장에서 59%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정도로 막강한 시장 성과를 이루었다. 이후 중국 자동차시장이 급팽창하고 경쟁자들의 지속적인 진입에 따라 시장 점유율은 하락했지만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1998년 59%로 피크에 달했으며 2003년에도 37%의 점유율로 다소 하락했으며 경쟁이 치열해진 2004년에는 30%이하로 하락했다. (J.D.파워사는 2004년 1월에서 4월까지 폭스바겐의 중국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26%라고 밝혔다.)
폭스바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승합차시장에서 점유율 18%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면 2위는 11.2%로 밝히고 있다.
5.2. 연도별 판매량 추이
아래는 폭스바겐에서 밝힌 자료 및 관영 CCTV 보도를 토대로 정리한 폭스바겐의 연도별 판매추이를 정리해본 차트이다.
이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브랜드뿐만이 아니라 수입해 판매하는 모든 브랜드를 포함한 데이타로 이전에 공유한 자료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
▽ 폭스바겐 차이나 연도별 판매 추이(1987년~2016년),
'87년에서 '15년은 폭스바겐 발표 자료, 2016년은 CCTV 보도자료를 인용했다.
5.3. 폭스바겐 내 지역별 비교
지역별로 폭스바겐의 판매를 비교해 보면 중국에서 성과를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3개 주요 진역에서 폭스바겐은 미구에서만 유일하게 판매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주는 어느정도 박스권을 형성하다 2015년과 2016년에 박스권을 뚫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지역은 앞에서 계속 설명했듯 2009년이래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2013년부터는 폭스바겐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구주 판매를 능가해 버리고 최대 판매국가가 되었다.
▽ 폭스바겐그룹 구주 미국 중국 판매량 추이(1987년~2016년),
단위 : 천대, 자료원은 폭스바겐 발표자료, CCTV 보도내용 그리고 Carsalesbase.com의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5.4. 2016년, 폭스바겐이 글로벌 1위로 등극하다.
아래는 1997년부터 폭스바겐, 도요타, GM의 연도별 판매 추이를 그래프로 그려본 것이다.
도요타의 2000년대 중반의 급속한 판매 시장을 통해 2008년 첫 글로벌 1위를 달성한 후 바로 그 유명한 도요타 가속기 리콜로 2~3년을 헤맨 후 다시 정상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폭스바겐의 2010년대 중반의 가파른 성장의 모습 그리고 2015년 디젤게이트를 격으면서 잠시 주춤하다 바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디젤게이트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중국이라는 지역 전략을 제대로 성공시킴으로서 글로벌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 폭스바겐 도요타 GM의 연도별 판매 추이(1997년 ~ 2016년),
단위 : 백만대, 자료원은 Statistis 토대로 재구성
6. 마치며 몇가지 감상을 덧 붙이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폭스바겐의 중국 진출 사례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다들 가능성이 없다고할 때 과감히 뛰어들어 선점했던 당시 경영진의 혜안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으며, 국민차로 포지셔닝하고 이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고, 브랜드, 가격 등의 일관된 마케팅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봐야할 지점이다.
중국 시장에 보란듯이 진출했다 철수하거나 위축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현상황이고 보면 Mass 시장까지 확실히 경쟁우위를 갖도록 만든 폭스바겐이야말로 제러드 J.와 피터 N 골드가 주창했던 '마켓 리더의 조건'에 딱 막는 케이스가 아닐까 문득 생각해 보았다.
대량 소비시장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으로 대량소비시장의 욕구를 충족할 혁신을 이루어냄으로써 시장을 지배하는 마켓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조금은 오랜된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생각나는 것은 우연일까?
그런데 도덕적 경영리는 윤리의 문제가 자꾸 떠오른다. 폭스바겐 사례를 쳐다보는게 맞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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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비지니스를 담보해줄까?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로 살펴보는 전략의 중요성
폭스바겐의 세계 최고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은 디젤게이트에 대한 PR의 승리이다
폭스바겐 뉴비틀(New Beetle) 성공요인 3가지 – Performance, Heritege, Design
실패한 뉴럭리 브랜드에의 도전, 제네시스 프라다
뉴럭셔리를 표방한 제네시스, 현대차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브랜딩관점에서 바라본 제네시스 페이스북 마케팅 실패 이유
제네시스가 그린 우주로 보내는 사랑의 메세지(Message to space by GENESIS)
에쿠스를 잇는 제네시스 최상위라인업 EQ900 광고를 보며
공유경제의 전형으로서 우버 사례(Uber Case study)
파괴적 혁신으로서 카카오택시 티맵택시 사례 – 택시앱 '박힌돌' 콜택시를 걷어차다
엔야의 음악과 장끌로드 반담의 연기가 빛난 볼보 트럭광고(Volvo Trucks – The Epic Split feat. Van Damme)
자유에의 갈구,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할리데이비슨, 할리오너스그룹(Harely Owner’s Group: HOG)로 브랜드 빌딩 사례
자유에의 로망을 담운 할리데이비슨 광고들(All about Harley Davidson print AD)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광고 collection – 2000년 이전
Audi 광고_스키점프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아우디 A6 콰트로
콜라보사례 – 아우디 R8(Audi R8)와 에어비앤비(Airbnb) 에미상(Emmy Awards) 시즌 콜라보 광고 – “Desolation”
아우디 광고 베스트 7 – 스키 점프대에서 좀비까지
[감동광고] 아빠와 딸의 시선으로 가족을 돌아보는 도요타 Loving Eyes – Toyota Safety 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