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원화성중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를 걸어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회사에서 택시를 타고 화서문으로가는데 기사분께서는 남문으로 가는길이 덜막힐거라하셔 남문길을 택했는데 남문 근처가 넘 막히더군요. 그러고보면 이길을 지날때면 막힌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생각외로 늦은 시간에 도착해 그 시간은 거의 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뛰어다니디시피 사진을 담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살펴보는게 아니라 마치 사진을 담기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인데 하고싶은 목표가 있으니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창룡문 및 화흥문의 산책길에 비하면 산책길은 다소 단조롭습니다. 거의 일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깐요. 화서문에서 서장대로 올라가는 코스가 다채로운 산책로가 있어서 산책하는 재미가 훨씬 있을 듯 합니다.
▲ 지난 글에도 인용했던 수원화성지도입니다. 수원화성 전체를 이해하기위해서는 필요하기에 여기에도 올렸습니다.
오늘 둘러볼 화서문에 대해서..
오늘 살펴볼 화서문에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원 화서문(水原 華西門)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1964년 9월 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돌로 된 기부에 홍예문(虹霓門)을 두어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다. 문의 앞부분에는 반달형으로 된 전축(塼築) 옹성(甕城)이 있는데 높이는 안쪽이 2.62m, 바깥쪽이 3.65m, 두께는 3.25m이다. 이 옹성은 한 평이 트여 있어 문을 출입할 때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1975년 수원 화성을 중수 공사할 때 보수되었다.
화서문은 수원성의 서쪽문으로 문의 모든 시설과 크기는 동쪽의 창룡문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네모 반듯한 큰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건물이고, 축대의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문의 앞쪽에 벽돌로 쌓은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구실을 하며 2중의 방어 효과를 갖는다.
또한 주위를 돌아가며 총이나 활을 쏘는 구멍이 뚫린 낮은 담을 쌓아 보호되도록 하였다. 옹성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공심돈이 성벽을 따라서 연결되어 있다. 공심돈은 속이 텅 비었다는 뜻으로 지금의 초소 구실을 하던 곳이다. 안에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릴 수 있고 층마다 바깥을 향해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이 있어 철저한 방어가 되도록 하였다.
한국의 다른 성곽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설로서, 구조도 특이하며 화서문을 중심으로 일대의 경치에 한층 더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 수원화성지도 중에서 장안문과 화서문근처만 확대한 지도
화성의 서문, 화서문 |
▲ 화서문 옆에서 바라본 모습
▲ 화서문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성문 바깥쪽에 둥그런 성곽은 옹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웅성은 성 앞에서 적을 막는 방어 기능을 위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성문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았고, 옹성은 구운 벽돌로 쌓았습니다. 이런 방식을 중국풍의 전성(塼城)이라고 합니다.
▲ 화서문 웅성 – 위에서 본 모습
▲ 화서문 웅성 – 아래에서 본 모습
▲ 화서문 웅성 아래에서 화서문을 바라본 모습
화서문 현판. 초대 수원유수를 지낸 채제공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 화서문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서 입구를 바라보니 석양의 햇살이 눈부십니다.
이렇게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것을 홍예문이라고 부르네요.
▲ 화서문의 문양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담아봅니다.
화서문을 엄호하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화서문 왼쪽에는 성문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시설로 서북공심돈을 두고 있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 돈대이다. 수원화성에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여러 시설물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심돈이다. 구운 벽돌을 쌓어서 만든 시설로 당시 정조대왕이 크게 자랑스러워했다는 시설이다. 아마도 중국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천하제일관의 문루와 돈대, 성벽 등의 시설을 보고 수원 화성 축성시 많이 참조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수원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1710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동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20) 3월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수원시청>
5대 포루중 하나, 북포루 |
서북공심돈을 지나 계속 걷다보면 조그마한 포루가 나옵니다. 이곳이 북포루입니다.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위에 지은 건물로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라하네요. 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하나로 1795년(정조 19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 서북공심돈을 지나 북동쪽을 바라보면 거의 일직선의 성곽길 산책로가 나옵니다. 성을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교길의 학생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출퇴근길이 이런 산책기로 이루어져있다면 하루가 상당히 즐거울것 같습니다.
저 멀리 북포루가 보입니다.
▲ 이곳이 북포루입니다.
▲ 북포루에서 담아본 처마입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국 고유의 단청문양이 아름답습니다. 원과 곡선이 잘 조화되어 아름다웠습니다.
느티나무와 잘 어울렸던 북서루 |
북포루를 지나 조금 걷다보면 멀리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나게됩니다. 느티나무의 위용에 취하고 풍광을 즐기며 걷다보면 상당히 커다란 포루가 나옵니다. 앞서 보았던 북포루와는 비교되지않을 정도로 규모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위에 지은 건물로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라하네요.
이 북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하나로 1794년(정조 18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 북서포루로 가는길, 멀리 웅장한 느티나무와 북서포루가 보이네요
▲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북서포루
상당히 풍광이 아름답습니다..제대로 담지못해 이 정도입니다.
▲ 북서포루 입구 오늘은 문이 닫혀 있습니다.
석양의 화성에서 담아 본 스냅들 |
석양 무렵 화성의 모습을 몇개 담아보았습니다.
▲ 석양의 성곽길을 산책하는 부부..
▲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
▲ 성곽아래 풍경들
▲ 총포구멍
▲ 성곽과 총포구멍.
아름다운 화성중 화서문과 장안문에 이르는 성곽길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편에서는 장안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