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일화 ‘저주받을 바보’라는 욕을 듣고도 잘못을 바로잡기를 주저하지않다..

Updated on 2020-03-23 by

구글리더로 블러그의 글들을 읽다 인상적인 글이 있어서 남겨봅니다. ‘저주받을 바보’라는 욕을 듣고도 상대를 찾아가 설명을 듣고 잘못을 바로잡은 링컨 일화에 대한 글입니다.

세상을 향한 오피니언 펀치라는 블러그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 블러그에 글을 올리는 분들이 여러명이더군요… 그중에 홍세화씨도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국방장관의 욕설을 수용한 링컨 일화

링컨 일화에 나오는 에드워드 M. 스탠튼(Edwin M.Stanton(1814-1869)
링컨 일화에 나오는 에드워드 M. 스탠튼(Edwin M.Stanton(1814-1869)

거기서 소개한 링컨 일화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링컨과 국방장관이었던 에드워드 M. 스탠튼(Edwin M.Stanton(1814-1869)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링컨이 재위시절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에드워드 M. 스탠튼은 대통령 링컨을 ‘저주받을 바보’라고 비난했다.

스탠튼은 링컨이 자신의 업무에 간섭하는 것에 분개한 것이다. 링컨은 어느 이기적인 정치인의 꼬임에 빠져 몇개 연대의 이동명령에 서명을 했다. 그런데 스탠튼은 링컨의 명령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명령에 서명한 링컨을 ‘바보 멍청이’라고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스탠튼의 말이 링컨의 귀에 들어갔을 때, 링컨은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스탠튼이 나를 멍청이라고 말했다면 나는 멍청이겠지. 그 친구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 틀림이 없으니까. 어디 내가 직접 가서 확인 좀 해볼까?”

링컨은 스탠튼을 찾아갔다. 스탠튼은 링컨에게 명령이 잘못되었음을 설득했고, 링컨은 그 명령을 취소했다. 링컨은 호의적인 동기와 지식이 밑받침된 비평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적대관계의 스탠튼을 국방장관으로 추대하다

링컨대통령은 다 아시다시피 젊은 시절 일리노이즈주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당시 일리노이즈주에서는 스탠튼이라는 유명한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어 링컨은 그에게 배우면서 협력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 스탠튼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변호사로 똑똑하면서도 유능해서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는 상태였다. 더우기 부리부리한 눈매에 잘생긴 외모로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 링컨은 켄터키주 농촌에서 태어나 학교라고는 6개월밖에 다니지 않은 신참 변호사인데다 야윈 얼굴에 주름이 많고, 눈은 움푹 파였으며 어깨는 구부정해서 한마디로 볼품이 없었다.

그렇기에 스탠튼은 초짜 변호사 링컨을 촌뜨기이자 애숭이라고 무시하였다. 일리노이즈주에서 링컨이 성장하면서 링컨과 스탠튼은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 되었고 적대관계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방장관 인선을 고심하다 적대관계에 있는 스탠튼을 물망에 올렸다고 한다.

당연히 링컨 주변의 참모들은 반대했다고…. 그럼에도 링컨은 당시의 남북전쟁을 해결하고 미국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록 적대관계에 있지만 스탠튼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링컨은 스탠튼이 비록 비사교적이지만 애국심이 강하고 정직하고 엄격하며 원칙대로 밀고 나간다는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격함이 요구되는 전시를 이끌 적임자로 보았다.

당시 스탠튼은 링컨의 공화당에 반대하는 야당인 민주당 소속이었다. 더우기 링컨의 공화당 내부에서도 스탠튼에 대한 반대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링컨의 제안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스탠튼은 애국자였기 때문에 정적인 링컨이 제안했다고 하드라고 나라가 위태한 상황에서 “오직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감정을 접고 국방장관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링컨의 안목대로 스탠튼은 애국심이 강하고 고지식할만큼 정직했기 때문에 군대를 엄격히 관리했고, 청탁인들을 냉정히 다루었으며 좀 더 공격적인 작전으로 계속 요구했다.

이러한 스탠튼의 활약으로 미국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을 안정시키는데 일등공신이 된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방장관중의 한사람으로 꼽히게 되었다.

진심으로 감복한 스탠튼

오랬동안 링컨의 정적이었지만 정적마저 수용하는 링컨 리더쉽에 스탠튼은 깊은 감동을 받아 나중에 링컨 곁에서 그를 지키는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고 한다.

1865년 4월 15일, 링컨은 존 부스로부터 저격당한 포드극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싸구려 하숙집의 한 침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링컨의 기다란 몸은 침대가 짧아서 대각선으로 뉘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탠튼 국방장관은 길이남을 유명한말을 남겼다.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완전하게 세상을 다스렸던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사람과 나무는 누워있을 때만 진정한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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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었던 스탠튼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남북전쟁 위기를 넘기 링컨 일화가 전해지는 링컨대통령 초상

참고로 스탠튼은 링컨 암살이후 대통령이 앤드루 존슨 아래에서도 수년동안 국방장관직을 유지했다.

강직하고 원칙주의자인 그는 남북전쟁 후 전 아메리카 남부 연합에 대한 존슨대통령의 관대한 정책에 반대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 스탠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존슨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하원에 의해 탄핵되기에 이른다.

완벽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반문해야

인간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테디(Teddy)라는 애칭으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4번 가운데 1번 이상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도 쉽사리 되지 않는다.

나는 재임시 나의 생각들 가운데 75%만 옳은 생각이라면 내가 바라는 최고의 기대치이다.”

그리고 그는 재임중 난관에 부딪히면 거실벽에 걸려있는 링컨의 커다란 초상화를 쳐다보며 “링컨 같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했을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라며 자문하곤 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인간을 통찰했고 오만과 아집이 없는 겸허한 리더였음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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