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채워진다…건축가 승효상

Updated on 2019-03-16 by

삼성에서 새로운 간행물로 ‘samsung & u’를 출간했더군요..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배달되어 있어서 시간이 난 김에 읽어보았습니다.  사보 비슷한 성격이라 내부 이야기도 있지만 간간히 좋은 내용도 있습니다.

그 중 건축가 승효상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솔직히 이런 건축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남이 보기에는 아주 쉽게 쉽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달성한 사람이라서

본인으로서는 별로 좋아하고 싶지 않는 류의 사람이긴한데 어떤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은 대부분 이런 류인걸 어떻하겠습니까? 좋아지지 않더라도 받아드려야지요.. ㅎㅎㅎ

비우면 채워진다 : 건축가 승효상

승효상.jpg

승효상은 건축가입니다. 그는 시를 짓듯 집을 짓고, 밥을 짓듯 삶을 짓습니다.

그가 짓는 것은 단순한 집이 아닙니다. 사람을, 행복을 담는 큰 그릇입니다.

승효상이 지은 집에는 항상 빈 공간이 열려
있습니다. 빈 공간은 사유하고 궁리하게 하는, 그래서 사람이사람답게 되는 생명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이를 ‘비움의 미학’이라 부릅니다.


어느 건축가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건축가에게 물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우리나라 건축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무엇이냐고. 잠시 생각하던 그가 말했습니다.

“외국의 건축가들이 한국에도 건축 문화가 있느냐고 물을 때,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승효상입니다. 그는 우리의 자부심입니다.”

자신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수졸당, 수백당, 웰콤시티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지은 사람, 숱한 건축상을 수상하며 2002년미국건축가협회의 명예회원이 된 사람.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사람, 승효상.

그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승효상의 건축도 건축이거니와 그의 삶도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술・담배를 한 자칭 문제 학생이었습니다. 대학도 포기했다가 단 3개월의 준비 끝에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처음 들은 건축 강의에 실망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간 후 강의실과는 담을 쌓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나는 시험 운이 대단히 좋은 사람입니다. 건축사 시험을 볼 때도 그랬어요.
시험지를 받아보니 아는 문제가 반이고 나머지는 모르는 문제더군요. 시험 준비를 제대로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죠. A, B, C, D의 보기 중에서 모르는 문제는 무조건 C를 찍었어요. 그래도 붙는 걸 어떻게 해요.”

운이라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정말 얄밉습니다. 남들은 죽어라 공부해도 될까 말까 한데 시험만 보면 턱 하니 붙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입니까. 어쩌면 그것은 운이라기보다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너는 죽도록 건축만 하라’는 운명의 계시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실제로 그는 건축을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대학 시절, 이유도 모른 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선배가 “너는 건축을 하라”고 당부한 뒤부터, 그는 오직 건축만 파고들었습니다. 건축은 그에게 유신 체제의 모진 세월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이자 삶의 마지막 빛이었습니다.

김수근 선생의 문하생으로 일할 때도 그는 오직 건축에만 매달렸습니다.
스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가득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건축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신념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나는 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믿는 자이다.
부부가 같이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는 것도 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까닭에 그들의 삶이 그 공간의 지배를 받아 같이 바뀐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도하는 이가 작고 검박한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것도 그 공간으로부터 지배를 받기 원함이라고 여긴다.
윈스턴 처칠 경도 1960년 <타임>지와 회견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건축, 사유의 기호> 저자 서문 중에서

승효상_수졸당_사진_무라이오사무.jpg

수졸당(守拙堂)은
20세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승효상은 수졸당에 사유의 기능을
확연히 부활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도시 주거공간에 우리의
전통을 끌어들여 마당과 돌담, 대청마루를 지었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가 그려내는 풍경은 쟈코메티가 디자인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집이 사람을 만들기에 건축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진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나쁜 집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는 승효상은 나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건축가는 소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도면에 선을 하나 긋는 것은 그렇게 지으라는 명령이자 (훗날 그 집에서 살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는 명령입니다. 때문에 선 하나를 긋더라도 고민을 하고 그어야 합니다. 건축가가 소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절대로 대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성격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도 소심한 사람일까요. 그 대답은 호쾌하면서도 조금은 허허로운 웃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사실은 소심한데 대범한 척할 뿐이죠. 지기 싫어서. 도처에 적이 많아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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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눌당(守訥堂).

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용할 뿐이라고 설파하는 승효상은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그가 짓는 집에는 항상 이런 공공성이 담겨 있다.

수눌당은 주인인 대학교수를 위해 지하에 회의실과 공동 작업실을 마련하고, 그 위에 주거 공간을 지었다.

지하 공간을 반(半) 공공적 성격으로 바꾼 것이다.
사진. 김종오

즐겁고 불편한 집이 아름다운 집이다

건축가 승효상에게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입니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며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축을 대하는 그의 철학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과 그들의 삶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집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그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집이란 과연 어떤 집일까. 우선 내 견해로는 다소 불편한 집이다. 소위 동선도 길어서 좀 걸어야 하고 대문도 나가서 열어줘야 하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를 훔치며 가족의 살내음을 맡을 수 있는 그런 집이 건강한 집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다소 불편한 집에서의 삶이 궁리를 만들고 생각하게 하고 사유케 한다.
다시 말하면 사유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을 다시 관조하게 하는 집, 이 집이 아름다운 집이며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집이다.”

승효상의 아름다운 집에 대한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즐겁고 불편한 집’입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인 즐겁고 불편한 집. 그는 그 원형을 우리네 옛집에서 찾고 있습니다.

기능적으로는 현대의 집이 더 편리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과연 예전보다 더 행복하냐고 되묻곤 합니다. 기능적인 집보다 반기능적인 집이 더 아름답다는 그의 생각은 ‘빈자의 미학’을 이루는 큰 뼈대입니다.

승효상은 일상의 행복을 알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건축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그가 찾아낸 방법은 공간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가 무용(無用)의 공간이라고도 부르는 사유의 공간입니다.

우리네 옛집에서 사랑방이나 정자, 마당이 사유케 하는 공간으로 작용했듯이 현대의 집에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도입한 것입니다. 마당이 돋보이는 수졸당이 그렇고, 천장이 없는 빈 방을 일곱 개 포함하고 있는 수백당이 그렇습니다.

때론 집 안에 3층 높이의 층고를 지닌 화장실을 짓기도 했습니다. 유리로 덮여 있어 별과 구름을 볼 수 있는 그 화장실을 그는 ‘경건한 화장실’이라고 부릅니다. 정말로 그런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변모할 것 같습니다.

빈 공간은 단지 사유의 공간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는 그릇입니다.

거실과 주방, 안방 등으로 고정화된 현대의 아파트는 본래의 용도로만 사용되지만, 빈 공간은 사는 사람들의 취향과 성격에 따라 다양한 목적의 공간으로 거듭납니다.
비우면 사유하게 되고, 비우면 자연히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승효상_웰콤시티와 수졸당 스케치.jpg
웰콤시티(위)와 수졸당(아래)의 스케치

큰 욕심을 부리면 작은 욕심은 사라진다

인간이 사유하는 동물이란 점을 생각하면, 사유하는 공간이야말로 사람의 집을 집답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설계를 하다가 남는 공간을 비우지 말고, 처음부터 비울 공간을 정해놓고 설계를 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우는 일, 버리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가요. 한 줌의 욕심도 놓지 못해 발버둥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 아니던가요.

욕심과 싸우는 것은 승효상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밤새 그린 도면을 다음날 보면 욕심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욕심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욕심을 버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고, 하나는 절제하는 것이죠. 저는 절제하는 방법을 택하는 편입니다.”

실내 인테리어도 최대한 단순하게 해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이 돋보인다는 그의 지론을 떠올리면 절제의 미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절제 자체도 어려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절제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라, 어떻게 절제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입니다. 좀 더 뾰족한 방법이 없느냐는 듯 빤히 쳐다보자 그는 마치 선문답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욕심을 부리면 됩니다. 큰 욕심을 부리면 작은 욕심은 저절로 사라지죠.
작은 욕심에 연연하지 말고 큰 욕심을 부리세요.”

승효상, Image - wikipedia
승효상, Image – wikipedia

승효상(承孝相) | 1952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빈(Wien)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974년 김수근 문하에 들어가 15년을 보낸 후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에 참여했으며, 20세기를 이끌어온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건축 철학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수졸당(1993), 수백당(1998),웰콤시티(2000),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2003) 등으로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로부터 명예 펠로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같은 해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글. 김길윤/자유기고가  사진. 김현필/사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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