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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 시대 컨텐츠마케팅의 전형을 만들고 있는 레드불의 컨텐츠 마케팅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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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 관련 컨텐츠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아무래도 겹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컨텐츠 전략 및 이 전략에 따라 운영되는 매체들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전에 레드불의 스포츠 마케팅에 대해서 포스팅했던 에너지드링크 창조자 레드불의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강화 사례 라는 글에서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었다.

1. 레드불 마케팅 전략 요약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을 positioning, Targeting 그리고 Brand marketing으로 나누어 정리한 내용을 이전 포스팅 내용을 인용해 본다.

1.1. Positioning – 에너지드링크를 개척한 파이어니어

레드불은 음료시장에서 기존의 잠을 쫒아주거나 피로를 회복해주는 기능성음료에서 벗어나 에너지드링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어 블루오션을 개척한 파이어니어로 소구하면서 기존 음료 브랜드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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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argeting – 젊고 도시적인 젊은층

기존의 피로회복제의 주 고객인 중장년층에서 벗어나 에너지드링크라는 새로운 접근을 하면서 젊고 도시적인 젊은층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 16세~36세의 남자
  • (화이트컬러보다는) 블루컬러
  • 도시 라이프스타일

밀레니얼 세대 이미지.jpg[이미지 출처 – 구글자료를 기반으로 편집]

1.4. Brand Marketing – 익스트림 스포츠마케팅 그리고 바이럴마케팅

레브불의 브랜드 퍼스낼리티(Brand Personality)는 아래와 같이 규정할 수 있겠다.

  • Teens
  • Extreme
  • Aggressive
  • Adventure
  • Active lifestyle

따라 레드불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는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정신에 맞추어져 있고 이는 제품 포지셔닝인 에너지 음료에 잘 맞는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은 한계를 극복하는 역동적인 스포츠 후원하는 적극적인 스포츠마케팅을 강화하고, 타겟 고객인 젊은층에 어필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바이럴 마케팅을 토대로 SNS 등에서 소통하는 쇼셜 마케팅을 강화해 왔다.

2. 컨텐츠 마케팅이란

그러면 컨텐츠마케팅이란 또는 컨텐츠란 무엇일까? 컨텐츠마케팅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레드불이 이야기하는 컨텐츠 마케팅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독자, 청취자, 관람자 등등에게 끌리는 매력을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컨텐츠 마케팅은 빌보드 광고도 아니며 한 페이지짜리 잡지 광고도 아니다. 또한 케이블 TV의 커머셜 광고도 아니고 유튜브가 실행되기전에 잠간 나와 짜증나게하는 광고도 아니다.

컨텐츠 마케팅의 핵심은 브랜드가 소비자로부터 원하는 가치있는 반응, 예를 들어 브랜드 로열티 또는 열렬한 호응 등등을 얻으려면 소비자들에게 진짜 가치있는 그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광고 방송이 아닌 소비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쇼가되어야하며 배너광고가 대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특집 기사를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면 소비자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소비자는 브랜드에 적극 참여하는 브랜드 옹호자로 돌아올 것이다.

2. 레드불의 컨텐츠 전략

레드불의 홈페이지를 보자.

레드불의 홈페이지 RedBull.com 로 들어가면 메인 메뉴는 REDBULL.COM, RED BULL TV, REDBULLETIN.COM , ATHLETES , EVENTS로 구성되어 있다.

이 메인 메뉴가 레드불 컨텐츠 전략에 대한 큰 그림을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레드불이라는 에너지드링크를 판매하는 회사에 TV channel이 있고 잡지 발행 부서가 있고 운동선수들을 조명하는 코너가 있고 각종 행사를 조망해볼 수 있고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 코너가 있는 곳이 바로 레드불 홈페이지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레드불 창업자인 Dietrich Mateschitz가 이야기한대로 에어지드링크를 파는 미디오회사라고 정의 그 자체이다.

레드불은 에너지 드링크를 판매하는 미디어회사이다. “Red Bull is a media company that happens to sell energy drinks

▽ 레드불 영문 홈페이지,
익스트림 관련 각종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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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레드불 마케팅 컨텐츠가 가지는 4가지 요소

레드불의 모든 마케팅 활동 및 공유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소비자의) 관심을 끌수 있도록 세밀히 계산된 브랜드 노출 Subtle branding that grabs attention
  • 모든 소비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주제 An everyman theme
  • 소비자의 참여하고 즐거워야 Audience engagement and entertainment at its core
  • 과장없는 촤상의 퀄리티 High production quality without an overproduced look

2.2. 레드불의 미디어를 총괄하고 있는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Red Bull Media House)

레드불은 이러한 컨텐츠 미디어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를 전담할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를 세운다.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Red Bull Media House)는 회사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를 통합, 관리하며 영상, 잡지, 국제 행사 중계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컨트롤 타워 역활을 하고 있다.

레드불의 콘텐츠는 레드불이 지향하는 브랜드 가치 핵심을 공유하는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레드불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광고가 아닌 콘텐츠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전달함으로써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레드불 브랜드 이미지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2007년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 출범
  • 온라인 및 인쇄잡지로 발행되는 The Red Bulletin을 매년 5백만부이상 발행 하고 있다.
  • 2백만불이상 투입한 The Art of Flight이라는 홍보 영화(?)를 만들었다.
  • 이전 포스팅에서도 소개된 레드불 스트라토스(Redbull Stratos) – 38km 상공에서의 자유낙하 프로젝트를 추진해 큰 성공을 거둔다.

레드불은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가 직접적인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시행한 활동으로 인한 인지도의 상승 및 다른 미디어 지출의 절감으로 이미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 메인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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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은 레드불 미디어하우스 주도로 500여개 이상의 비디오와 50,000대이상의 포토를 무료로 소비자 및 MSNBC, ESPN을 비롯한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컨텐츠는 프로페셔널한 작업이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질을 갖춘 컨텐츠로서 관련 언론에 접촉하기에 아주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일례로 레드불은 Halogen과 매주 목요일 야간 프로그램을 위한 다년간 계약을 체걀해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변화의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액션스포츠를 정리해주는 'Ultimate Rush'에서 브레이크댄스와 같은 거리 스포츠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드불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벤트를 전달할 창구가 된 것이다.

2.3. 프린트 매거진 The Red Bulletin

레드불은 ‘Red Bulletin’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있으며 'The Red Bulletin' 이름의 인쇄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인쇄 잡지 'The Red Bulletin'은 2005년부터 발행되어왔고, 2011년부터는 미국에서도 발행되기 시작했다.
현재 발행 부수만 5백 만 부가 넘는 이 잡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 매거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드불은 세련되면서도 젊은 세대 성향으로 멋진 사진과 익스트림 스포츠 이야기를 통해서 레드불 브랜드에 고급스럽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추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무 등반가 크리스 샤르마의 사진과 같은 멋진 고화질 사진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밤 문화, 음악 등 젊은이로서 주위에서 멋지다고 이야기할만한 모든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레드불의 매거진은 브랜드 스토리텔링(Brand Storytelling)과 매거진의 형태를 띈다는 점에서 요즘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부각되고 있는 브랜드 저널리즘(Brand Journalism)의 가장 적합한 예로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 다양한 디바이스 및 쇼셜 채널에서 보여지는 레드불의 Red Bulletin이란 웹사이트와
The Red Bulletin 인쇄 잡지의 2016년 12월호(중앙)

레드불의 The Red Bulletin이란 웹사이트와 인쇄 잡지


The Red Bulletin 인쇄 잡지 컨텐츠의 예,
어찌보면 일반 매거진들과 큰 차별화는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일개 음료수 회사인데도 기존 매거진에 뒤지지 않는 컨텐츠 제공이라는 점에 준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용은 2013년 10월호 The Red Bulle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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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Red Bull TV

바야흐로 동영상의 시대이므로 레드불이 양산하는 막대한 컨텐츠를 소비자에게 용이하게 보여줄 채널이 필요하게 된다.
즉 컨텐츠 마케팅의 핵심에는 비디오 동영상이 가장 중요하기에 소비자의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벤트의 비디오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어 소비자들이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하는 명확한 전략의 일환으로 Red Bull TV를 포지셔닝 하고 있다.

레드불은 자체로 방송국을 운영할 수는 없지만 웹사이트에 Red Bull TV라는 코너를 만들고 여기에서 극한의 스포츠 비디오,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관련 컨텐츠, 라이브 뮤직 프로그래밍 및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 레드불 TV 메인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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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Bull TV는 "Who is JOB" , "The Atherton Project"와 같은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 시리즈를 운영하고 있으먀 이는 모두 온라인으로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있다,
이 Red Bull TV는 Chromecast 또는 Apple TV와 같은 플러그인을 통해 노트북, 태블릿 및 기타 휴대 기기 또는 TV 세트의 모든 사용자가 자유롭게 접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레드불 스트라토스(Redbull Stratos) – 38km 상공에서의 자유낙하와 같이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Red Bull Media House)가 주관하는 이벤트의 중계를 통해서 레드블 컨텐츠를 전셰계 소비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역활을 함으로서 레드불이 에너지 드링크를 판매하는 미디어회사라는 미션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 레드불 TV_레드불 스트라토스(Redbull Stratos 당시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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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불 TV에서 레드불 스트라토스(Redbull Stratos) 중계하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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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가장 뛰어난 영상을 자랑하는 Movie Trailer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Red Bull Media House)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 광고를 제작하는 애드버타이징 에이전시(Advertising Agency)가 아닌 스튜디오 모델(Studio Model)이다.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Red Bull Media House)는 지금까지 레브불 브랜드를 후원하는 비디오 영상을 만들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상보다 뛰어난 비디오 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Art of Flight라 명명된 Movie Trailer는 지금까지나온 어떤 스노우보딩 비디오보다 훌륭하다. 이 훌륭한 비디오가 레드불 브랜드를 견인해 주고 있다.
이 Movie Trailer는 download 당 10$에 애플 TV 등을 통해서 공급됨으로써 컨테트의 가치와 수익성을 확보한 사례가 되었다.

▽ 어떤 스노우보딩 영상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레드불의 스노우보딩 Movie Trailer
– Art of Flight

마치며

레드불의 컨텐츠 전략은 "레드불은 에너지 드링크를 판매하는 미디어회사이다. “Red Bull is a media company that happens to sell energy drinks라는 정의가 성실히 수행 될 수 있도록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Red Bull Media House)가 종합 컨트롤 타워가 되어레드불이 지향하는 브랜드 가치 핵심을 공유하는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중점으로 동영상, 포토 그리고 이를 토대로 특집 기사 등의 컨테츠 형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컨텐츠를 소비자들에게 레드불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광고가 아닌 콘텐츠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전달함으로써 레드불 브랜드 이미지 형성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 접근을 하고 있다.

레드불의 전체 예산 중 마케팅관련 예산이 30%를 넘는다고 한다. 이중 많은 부분이 컨텐츠 부분에 투입되고 있는데 이러한 과감한 투자가 레드불의 브랜드 가치를 계속 키울 수 있고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아래 다시 한번 레드불 캔 판매량 추이를 인용하면서 이글을 마친다.

▽ 1987년 시장 출시 후 2015년까지 레드불 캔 판매량 추이,
2015년 반올림해서 약 6B개의 캔을 판매해
매년 10~20%씩 성장하고 있다.
일부 수치는 불정확해 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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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드링크 창조자, 레드불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강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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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드링크를 처음으로 시장에 도입한 에너지 드링크 창조자로 널리 알려진 레드불은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강화 사례로 유명하다.

레드불은 기존 시장에 에너지 드링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도전정신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익스트림 스포츠 후원 등을 통해 실현하고, 타겟 고객인 젊은층에 도전적인 브랜드 인식을 강화해 성공한 브랜드이다..

여기에서는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이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육성했는지 그들의 브랜딩 전략을 비롯한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1. 레드불에 대해서

레드불은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를 판매하는 회사이다.

원래 태국 TC제약회사가 개발 판매하고 있던 음료인 클라팅 다엥(Krating Daeng, 영어로 레드불과 같은 뜻)이 그 원조라고 한다.

태국에 비즈니스 때문에 왔던 치약회사 블렌닥스의 아시아 지역 마케팅 부장 디트리히 마테쉬츠가 우연히 이걸 맛보고 돈 되겠다고 감을 잡았고 태국 레드불 제조사와 손잡고 유럽인들에게 맞게 탄산가스도 넣고 하는 개조를 거쳐서 1987년 유럽에서 처음 출시해 엄청난 대박을 쳤다. – 이 내용은 내위키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함

1987년 출시해 급속하게 성장한 레드불은 2015년 기준 169개국에 진출했으며 약 11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약 59억개의 레드불 캔을 판매해 6.6B$ 매출을 올렸다.

마케팅 슬로건으로 ‘Gives You Wings'(당신에게 날개를 달아드려요)를 내세우며 전체 예산의 30%를 마케팅 비용에 사용할 정도로 마케팅을 중요시하고 강화하는 회사이다.

레드불은 유수의 쟁쟁한 브랜드와 경쟁해 2015년 포브스紙가 선정한 가장 가치있는 브랜드에서 74위에 랭크되었다.

2. 레드불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기존 자료를 토대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Positioning – 에너지드링크를 개척한 파이어니어

레드불은 음료시장에서 기존의 잠을 쫒아주거나 피로를 회복해주는 기능성음료에서 벗어나 에너지드링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어 블루오션을 개척한 파이어니어로 소구하면서 기존 음료 브랜드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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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geting – 젊고 도시적인 젊은층

기존의 피로회복제의 주 고객인 중장년층에서 벗어나 에너지드링크라는 새로운 접근을 하면서 젊고 도시적인 젊은층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 16세~36세의 남자
  • (화이트컬러보다는) 블루컬러
  • 도시 라이프스타일

밀레니얼 세대 이미지.jpg[이미지 출처 – 구글 자료를 기반으로 편집]

Marketing – 익스트림 스포츠마케팅 그리고 바이럴마케팅

레브불의 브랜드 퍼스낼리티(Brand Personality)는 아래와 같이 규정할 수 있겠다.

  1. Teens
  2. Extreme
  3. Aggressive
  4. Adventure
  5. Active lifestyle

따라 레드불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는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정신에 맞추어져 있고 이를 제품 포지셔닝인 에너지 음료에 잘 맞는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은 한계를 극복하는 역동적인 스포츠 후원하는 적극적인 스포츠마케팅을 강화하고, 타겟 고객인 젊은층에 어필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바이럴 마케팅을 토대로 SNS 등에서 소통하는 쇼셜 마케팅을 강화해 왔다.

레드불의 모든 마케팅 활동 및 공유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소비자의) 관심을 끌수 있도록 세밀히 계산된 브랜드 노출 Subtle branding that grabs attention
  2. 모든 소비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주제 An everyman theme
  3. 소비자의 참여하고 즐거워야 Audience engagement and entertainment at its core
  4. 과장없는 촤상의 퀄리티 High production quality without an overproduced look

3. 레드불 스포츠 마케팅

레드불은 도전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스포츠 마케팅를 통해서 전달하고 키워가고 있다.

여기서는 레드불 스포츠 마케팅의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스포츠 마케팅이란

그런데 도대체 스포츠 마케팅이란 무엇일까? 스포츠 마케팅은 많이 회자되는데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몇가지 정의를 인용해 본다.

교환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스포츠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획된 모든 활동 – Mullin, Hardy와 Sutton(1993, 2000)

스포츠 조직의 스포츠 제품 생산, 가격 결정, 장소/유통 그리고 촉진계획 수립 활동과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목표 달성을 위한 가치 창조와 창조적 교환 활동을 통해서 스포츠 조직의 목표 달성, 스포츠 소비자의 만족 그리고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 – 김용만(2002)

마케팅의 원리의 과정을 스포츠 제품에 연계하여 해당 기업의 일반 상품에 이르기까지 마케팅에 적용 하는 것 – Shank(1999)

정의가 참 어렵다. 일반적으로 주로 이야기하는 스포츠 마케팅은 기업이 영리를 목적으로 스포츠 행사를 지원하는 스폰서쉽을 이야기한다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레드불은 다양한 스포츠의 스폰서십으로 큰 성과를 내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F1과 같은 메이저스포츠도 스폰서하지만 길거리 농구,미니 드롬 등 다른 기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다양하고 획기적인 마이너 스포츠 스포서쉽을 기획해 내었고 이를 실행해 왔다.

실제로 이런 마이너 스포츠는 독특하고 특색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이를 브랜드 이미지화 하기가 어려운데 레드불은 이런 마이너 스포츠 이벤트를 잘 포장하고 지원 활성화함으로써 오늘의 레드불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3.1. 레드불 F1 레이싱팀

음료회사와 F1 레이싱, 뭔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극한 도전을 추구하는 레드불로서는 극한의 기술력과 드라이빙 감각을 갖춰야 하는 F1과 코드가 제대로 맞는 조합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레드불은 2005년 기존 재규어 F1팀을 인수해 레드불F1팀으로 재창단했으며 팀웍이 살아나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신흥강호로 급부상한 팀이 되었다. 2009년 시즌 2위에 오르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2010년부터는 본격적인 최강팀 면모를 과시해 10~11 시즌 더블 챔프에 오르는 등 최정상의 팀으로 군림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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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이 F1 레이싱팀에 투자한 가장 큰 이유는 F1을 통해서 레드불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판매를 촉진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F1 레이싱팀을 통해서 레드불의 브랜드 이미지를 high energy, Fun, hard-partying and ‘rebellious’ 이미지를 심고자 하였다.

F1의 마케팅 효과는 특히 F1의 인기가 높은 유럽에서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2012년 인피니트는 레드불 F1팀에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유럽에 거의 인지도가 없었던 인피니트 브랜드를 F1경기를 통해 인피니트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또 레드불 F1팀과 상관없지만 1997년부터 F1에 타이어부분을 후원해온 브리지스톤은 처음 당시 인지도가 5%에 불과했지만 10년후에는 25%가지 크게 올랐다고 한다.

▽ Transforming Formula One: 2014 Rules Explained (Full Version)

3.2. 레드불 스트라토스(Redbull Stratos) – 38km 상공에서 자유낙하

Red Bull Stratos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120,000ft, 즉 36km 상공까지 기구를 이용해 올라간 다음, 자유낙하하여 인간의 몸으로 음속을 돌파하는 프로젝트이다.

여러번 실패한 끝에 2012년 10월 15일 새벽(한국 시각)에 기구를 띄웠다. 다이버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유낙하 세계 1인자 펠릭스 바움가르트너.
바움가르트너를 태운 캡슐은 55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헬륨 풍선에 매달려 예정 고도보다 약 8천 피트 정도 더 올라갔고 바움가르트너는 대략 39km 상공에서 점프, 4분 19초의 자유낙하 후에 낙하산을 펼쳤다.

낙하 후 49초 무렵 최고 속도 1,342km/h를 기록하여 1,224km/h인 음속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맨몸으로 즉, 항공기를 타지 않은 상태에서 음속 돌파라는 기록이 세워졌고 기존의 최고 고도 낙하 기록이 경신되었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떨어진 탓에 현 최장 자유낙하 기록인 4분 36초는 깨지 못했다고 한다. – 나무위키 인용

마케팅 측면에서 레드불은 이 38㎞ 상공에서 초음속 자유낙하 실험을 생중계했다.

마치 나사(NASA)에서 우주선 발사 시 관제센터에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점검하듯이 레드불도 관제센터에서 스카이다이버 상태를 모니터링해서 실시간으로 공유해주었다.

스카이다이버 몸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서 현재 높이, 낙하속도, 어느정도 바람이 부는지 그리고 심박 수를 포함한 일체의 정보를 포함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해 TV로 생중계했다.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는 이 프로젝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몰려 이 영상은 60개국에서 8000회 이상 방영됐으며 1783억 원 가치의 광고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특히 뛰어내리기 직전에는 초당 2000회의 트윗 멘션이 오고 갔으며 그 트윗의 51%는 레드불이라는 브랜드가 거론되었다고하니 브랜드 홍보 효과는 과히 짐작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3.3. 익스트림스포츠 후원

앞에서 언급했지만 레드불은 F1과같은 메이저 스포츠도 후원하지만(F1은 후원이라기보다는 팀을 마들어 직접 참여한다고 해야겠지) 길거리 농구,미니 드롬, 모터바이크, 서핑, 산악바이크, 스카이다이빙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의 스포츠를 주로 후원하고 있다.

주로 익스트림 스포츠분야가 많은데 이러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후원함으로써 기존 음료시장에서 벗어나 에너지 드링크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든 ‘도전정신’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잘 일치시키고 알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레드불은 Redbull Rampage, MTB, 레드불 에어포스, 레드불 스트리트 스타일 등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를 주최해 이런 익스트림 스포츠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그 익스트림 스포츠가 가진 역동적인 도전정신으로 레드불의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 레드불 한국 홈페이지,
익스트림 관련 각종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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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불 영문 홈페이지,
익스트림 관련 각종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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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 미니드롬 (Red Bull Mini Drome)

미니드롬은 기존 사이클 경기장인 벨로드롬을 10분의 1로 축소시키는 곳에서 벌이는 초미니 사이클 경기이다. 즉 사이클 전용 경기장의 평균 일주 길이인 250m인데 미니 드롬은 길이 14m, 너비 7m로 매우 작아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레드볼이 활성화시켜 레드불 미니드롬 (Red Bull Mini Drome)이라는 경기가 매년 런던, 토론토, 도쿄,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 도시에서 성황리에 개최 된다.

▽ 레드불 미니드롬 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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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스, 레드불 에어 레이스

레드불 에어 레이스는 말 그대로 공중 비행을 하면서 각종 장애물을 통과해 결승에 도달하는 속도 경기라 할 수 있다.

경기에 참여하는 파일럿은 정해진 순서와 비행 자세에 따라 약 20m 높이의 설치된 풍선 장애물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이때 수평, 수직, 지그재그 등의 필수 미션을 달성해야 한다. 만약 풍성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정확한 비행 자세를 잡지 못할 경우 시간 페널티가 주어져 추후 합산 처리되어 최종 점수를 낸다고 한다.

비행 속도 경기이다 보니 최대 400km/h의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고예비행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인기가 높으며 이 경기는 한해 동안 전세계 유명 도시를 투어하면서 경기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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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과 그리고 과제

확실히 레드불은 레드불이라는 에너지드링크를 파는게 아니라 레드불의 도전 정신을 이야기하는 브랜드를 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에 따라 레드불의 판매도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일부 판매감소의 위기도 있었지만 훌륭하게 잘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1987년 시장 출시 후 2015년까지 레드불 캔 판매량 추이,
2015년 반올림해서 약 6B개의 캔을 판매해
매년 10~20%씩 성장하고 있다.
일부 수치는 불정확해 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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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의 성공은 기존 일반 상품들이 좋은 기능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들과는 전혀 다른 길 즉 레드불만의 ‘도전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극한에 도전하는 젊은층이 즐겨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후원 또는 익스트림 스포츠대회의 직접 개최를 통해서 그들의 타겟 고객인 젊은층에 인상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드링크도 시장에 출시한지 많은 시간이 흘러서 예전처럼 새로운 카테고리나 보다 프리미엄 세그로는 인식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레드불이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소비자들이 받아주지는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 예로 몇년전 한국에서 에너지드링크에 가격 전쟁이 일었을 시 가격 정책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레드불이 30%까지 가격을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들이 더 가격을 낮추니 판매를 늘릴 수 없었던 사례도 고민해야할 것이다.

즉 레드불로서는 제품 카테고리의 진부화에 맞서 이를 극복하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정교하게 수행되어야 하는 숙제가 있는 것 같다.

1억뷰를 넘긴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 사례 – WREN의 First Kiss – 낮선 상대방과 첫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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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마케팅에 대한 글에서 소개된 First Kiss라는 사례가 있어서 정리 소개해 본다. 이 바이럴 영상 사례는 Wren이라는 SPA 의류브랜드가 2014년 가을 컬렉션을 홍보하기위해 제작된 영상으로 오픈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 1억 5천만뷰 이상을 기록하였다.

1. First Kiss 바이럴 영상

먼저 First Kiss 바이럴 영상을 보자.

영상은 20명을 초대해 낯선 상대방과 키스를 하는 일종의 실험영상으로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Wren의 의류를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교하게 짜여진 각본에 따라 노골적인 브랜드 홍보는 거의 없었다. 다만 영상 초기에 WREN present라는 문구만 나올 뿐이다.

이 바이럴 영상을 보고나서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뭐가 특출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도대체 어떤 점때문에 1억 오천만뷰 이상 나오는 초특급 영상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낮선 사람이 만나서 격정적으로 키스하게되는 그 과정 때문에 그런지??

결국 난 이 동네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 격하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 바이럴 사례에 대해서 분석해놓은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아래 2개의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Business Insider의 How We Made A Viral Video Of Strangers Kissing And Increased Sales By Nearly 14,000% 라는 글과 , SocialTimes의 What Brands Can Learn From Wren’s ‘First Kiss’ 라는 글을 참조했다.

그리고 전반적인 흐름 및 반응들을 보려면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는게 좋겠다. A Kiss Is Just a Kiss, Unless It’s an Ad for a Clothing Company 뉴욕탐임즈는 이 바이럴 영상이 고아고임이 밝혀진 후 인터뷰를 통해서 제작과장, 확산 과정 그리고 효과와 업계의 반응을 기사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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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First Kiss 바이럴 마케팅의 기획 및 확산 플랜

WREN에서는 몇년 동안 신제품 런칭 시즌에 재미있고 섹시하고 쿨해서 짧은 홍보 영상들을 만들어 활용했고 효과를 보았는데 2014년 가을 신제품 출시 시 순전히 Word of mouth를 겨냥한 바이럴 영샹을 만들기로 한다.

이렇게 완성된 영상이 First Kiss이다. 이 First Kiss는 처음에는 조용히 Style.com에 올렸다.
그리고나서 동일 버젼을 유튜브에 올리고 홍보를 시작했다. 지나친홍보라는 인상을 줄이고자 WREN 계정이 아닌 제작자인 타티아 필리에바(Tatia Pilieva) 유튜브 계정에 올렸다.

타티아 필리에바(Tatia Pilieva)는 홍보를 위해 21명의 친구들에게 도영상을 공유합니다. 마음이 내키면 공유해 달라고

“Hey my dears. I wanted to share our little film with you.
Here are the links, Feel free to share as you wish."

또 이 동영상을 확산하기 위해서 조력자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고커(Gawker)이다. 고커(Gawker)는 Gawker.com에 First Kiss 라는 바이럴 영상을 포스팅하면서 그의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와 더불어 고커 블로거들의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First kiss는 매우 조직적으로 전파된다.

이후는 다 아는것처럼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바이럴 동영상 자체의 매력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동영상을 조회하고 회자되면서 원래 의도했도 마케팅 목표를 달성한다.

이후 고커(Gawker)는 글을 업데이트 하면서 이는 바이럴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고백한다.

3. 이 바이럴 영상의 성과

일반적으로 내용을 살펴보고 그 성과를 살펴보는게 일반적인데 여기에서는 바이럴 영상의 성과를 먼저 살펴보고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 유튜브 조회수 1억 1천 7백만회 그리고 좋아요 526,961회 기록, vimeo 조회수 2.3백만회 기록((2016년 11월 18일 현재))

  • 2014년 가장 많이 조회된 비디오 광고 캠페인

  • 2014년 Wren의 온라인 판매는 2013년 동기에 비해서 14,00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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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러한 호응을 얻은 이유 또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이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비지니스 인사이더에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4.1. 사람들은 이모션한 컨텐츠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강렬하고 긍정적이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공유하길 좋아 한다. 콘텐츠가 울컥하게 하거나 영감을 주거나 행복하게 만들때 사람들은 그 컨텐츠를 공유하곤 한다.

이 바이럴 비디오와 관련해 사람들은 이 비디오를 공유하면서 그 자신들이 굉장히 뿌뜻함을 느끼며, 이 비디오를 공유 받은 사람들은 그 비디오를 공유해준 사람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러한 상승 작용이 이비디오가 빠르게 공유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4.2. 업무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람 사이의 접속을 갈구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지루한 컴퓨터화면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는 키스와는 완전 정반대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 삭막한 공간에서 감정과 인간 관계를 촉발시키는 First kiss와 같은 바이럴 비디오가 지루한 사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믄 점에서 호응을 얻는 것 같다.

4.3. 직접 접속하는 트래픽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 바이럴 비디오로 wren 사이트 트래픽은 14,000% 증가했고, 방문자의 96%는 신규 유입자였다. 온라인 판매도 14,000% 증가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처음부터 판매를 염두에 두고 Buy Now를 외쳤다면 이런 폭발적인 호응과 트래픽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브랜드 노출이나 비지니스 구호를 최소한으로 자제한 덕분으로 지속되는 트래픽을 유지하고 브랜드 인지와 사랑을 계속 강화할 수 있었다.

4.4. 썸을 타는 것

이 바이럴 비디오는 진정성 있는 감성과 썸을 타는 듯한 미묘 감정선이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비디오가 엄청나게 공유되었는데 이는 감성과 썸에 대한 것인지 옷에 대한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4.5. 파워 쉬프트가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20억이상의 사람들이 이제는 옷이 팔리는 방식 뿐만이 아니라 마케팅 방식도 바꾸고 있다.

엄청난 마케팅 에산을 투입할 수는 있지만 컨텐츠와 아이디를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이 마케팅은 무의미해진다.

쇼셜은 광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광고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헤드라인을 클릭하도록 속이기보다는 컨텐츠를 훌륭하게 만들어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컨텐츠를 진정으로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5. 바이럴영상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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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의 영리한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 사례 – The Greatest Int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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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을 읽다가 접한 볼보의 The Greatest Interception by VOLVO라는 캠페인에 대해서 잠깐 살펴 보도록 하자. 이 캠페인은 다른 자자동차 메이커들이 슈퍼볼광고로 몰려갈 때 과감히 슈퍼볼 광고 시간에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을 시도해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일으킨 사례이다.

1. 볼보 매복 마케팅의 배경 – 제한된 에산내에서 전략모델에 대한 버즈 형성과 인지도향상 그리고 판매 확대 도모 필요

2015년 볼보는 커뮤니케이션 정책을 ‘TV 우선(TV first)’에서 ‘모바일 우선(mobile first)’으로 변경하고 기존과 다른 마케팅 캠페인을 준비한다.

즉 볼보는 미국에 볼보 브랜드를 재도입하면서 마케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 시 기존과 다른 비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였다.
이 당시 볼보는 매우 제한된 마케팅 에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슈퍼볼과 같은 매우 경쟁이 치열한 상태에서도 볼보 브랜드에 대한 버즈와 인지도 상승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러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서 볼보의 전략 모델인 XC60 Crossover의 판매를 상승 시키고자 하였다.


볼보의 전략 모델인 XC60 Crossover,
사진 출처 – http://www.ashleighdmello.com/blog/mymonthwithvolvo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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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볼보의 인터셉션(Interception) 캠페인

볼보의 목표 고객은 직접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퍼볼처럼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집행하기보다는 마케팅 예산 또는 자동차를 자동차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인터셉션(Interception) 캠페인으로 명명된 이 캠페인에서 볼보는 트위터를 활용해 #Volvocontest를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 주변에 자동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지명하고 그 이유를 간단히 적어 보내면 추첨해 볼보의 전략 모델인 XC60 Crossover를 증정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물론 이 트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수퍼볼에 자동차 광고가 나올 때로 제한했다.

▽ 켐페인 사이트인 volvointerception.com에 게제된 이벤트 참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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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캠페인을 위해서 런칭 비디오가 슈퍼볼이 시작되기 1주일 전부터 온라인 비디오 채널 및 소셜 채널을 통해서 배포되었다.

  • CRM 채널을 통해서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고객에게 프로그램 참여 및 공유를 요청하는 메세지를 보냄

  • Jimmy Kimmel Live 쇼중에 전략 모델인 XC60 Crossover를 증정하는 행사등 통합 PR을 전개해 버즈를 형성 함

  • mobile first를 지향했기 대문에 모바일에 최적화된 캠페인 사이트를 만들고 이를 통해서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유도.

이를 통해서 슈퍼볼 광고가 나올때마다 볼보 자동차가 언급되고 트위터를 통해서 이벤트에 참여하도록 유도

▽ 이벤트 당첨자 5명중 2명,
사진 출처 – www.media.volvoca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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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캠페인 결과

이 캠페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아래 간략히 요약해 본다.

  • 80개 이상의 매체에서 이 놀랄만한 캠페인에 대해서 보도를 해주었다.

  • 230백만 미디오 노출이되었고 그 효과는 44백만불에 달했다.

  • 슈퍼볼 광고가 집행되는 단 3시간 동안 #VolvoContest는 약 56,000번의 트윗이 일어났다. 이는 슈퍼볼기간 동안 가장 많이 발행한 해쉬태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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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보(Volvo)는 슈퍼볼 광고가 없는 브랜드중 3번째로 많은 트위터에서 114,000번 언급되었다.

  • 온라인비디오는 일주일만에 340만회 조회를 돌파했다.

  • 웹사이트는 2주내에 116,000명이 방문하였다.

  • 최종 목표였던 볼보 전략 모델인 XC60 Crossover 판매는 70.7% 증가했다.

4. 마치며

단기간에 큰 비용없이 아주 효과적인 홍보를 통해 판매를 증진시킨 사례로 모바일이 (슈퍼볼광고로 대변되는) TV를 무력화 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2015년 칸느광고제에서 Direct부분에고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역시 돈도 중요하지만 (아무리해도 규모를 능가하는 어렵기는 하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라면 적은 돈을 사용해도 몇십배의 돈을 쓰는 것보다더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의 미국 대선 분석 – 리처드 아델만(Rechard Edelman)의 미국을 설명한다(Explaining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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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선이 끝나고 세계 1위의 PR회사인 Edelman의 RICHARD EDELMAN이 미국을 설명한다(Explaining America)라는 포스팅을 통해서 이번 미국 대선이 주는 시사점을 포스팅했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이번 대선을 분석하면서 '기존 주류 미디어 영향력의 축소' 'SNS 등 쇼셜미디어를 통한 직접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기업 자체 미디어 보유 필요성'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RICHARD EDELMAN의 포스팅 글을 아래와 같이 번역해서 공유해본다.

Explaining America의 원글은 Explaining America 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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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전문가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전세계적인 포풀리즘 추세에 확신을 갖게 했다. 그것은 외교 정책과 이민자 정책 그리고 건강보호정책 관련 이슈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극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국가 내부 지향적으로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삶의 질 하락과 영국 브렉시트 선거로 표출된 것 같은 글로벌 시대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노동 백인 계층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기득권( the establishment) 특히 한 목소리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주류 미디어에 대한 격렬한 거부였다.

여기에 이 선거에서 주는 몇가지 시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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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Why this happened)

1. 신뢰와 소득의 불평등의 결과(Inequality of Trust and Income Has Consequences)

2016년 에델만 신뢰 지표는 학식이 있는 대중이나 엘리트(대학이상의 학력, 상위 25%이상의 소득층, 중요 미디어에서 보도를 소비하는 사람들)는 특히 미국과 영국의 일반 대중에 비해서 제도에 대한 신뢰지수가 높았다. 저소득 응답자들과 고소득 응답자간 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31포인트나 갭이 있을 정도로 소득 불평등은 신뢰 불평등과 상관 관계가 있다. 트럼프의 승리는 제도(institutions)와 기득권( the establishment)에 대한 불신임이다.

2. 뉴욕타임즈를 압도한 트위터의 트럼프 (Twitter Triumphs over The New York Times)

트럼프는 거의 천4백만에 달하는 그의 트위터 팔로워 커뮤니티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주류 미디어들은, 특히 뉴욕타임즈는 트럼프의 탈세, 실패한 트럼프 대학 및 여성과 의심스러운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실패했다. 궁극적으로 어느 이야기도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주류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사설을 통해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이런 (주류 미디어의) 불공정을 미디어의 (힐러리 클린턴)으로의 치우침을 항의하고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데 활용했다.

쇼셜미디어는 주류 언론보다 잘 국적인 분노의 목소리를 포착해 유통시킨다. 왜냐하면 쇼셜미디어는 개인들의 좋아요에 의존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여러 경로로 전파시키기 때문이다.

▽ 뉴욕타임즈의 트럼프 비판,
이미지 출처는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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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지금 팔로워는 15백만에 달한다.
트럼프 계정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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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정성과 진실은 지성이고 타산을 이긴다. (Genuine and Authentic Beats Intellectual and Measured)

트럼프의 짧고 빠른 속도 그리고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은 힐러리 클린턴의 함의를 띤고 섬세하고 장문의 커뮤니케이션을 능가했다. 트럼프는 보다 진정성있게 보여졌고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뭔가를 은폐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트럼프는 그의 커뮤니티에 직접적으로 다가갔고 클린턴은 조심스럽게 가끔씩만 언론을 통해서만 이야기했다.

4. 광고와 유명 연예인이 패배 원인이 되다. (Advertising and Celebrities Hurt the Cause)

트럼프 광고의 10배에 달하는 힐러리 클린턴의 압도적인 광고의 잇점은 힐러리 클린턴이 표심을 얻기보다는 표를 사고있다는 느낌을 더울 강화시켰다. 힐러리 클린턴의 트럼프 개인에 집중된 부정적인 광고 캠페인에서의 강조는 효과가 없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은 그녀의 기본 전략이었지만 부동층에게는 그녀의 기득권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을 뿐이다.

다음에는 무엇일 일어날까? (What must happen next)

1. 방관자가 아닌 적극 참여하는 비지니스를 하라 (Business in the Dialogue, Not Bystander)

공화당이 상원 하원 그리고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 금융 서비스 및 의료 서비스에서 규제를 완화해 비지니에 활용하는 유혹적인 시도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기심의 정치로 간주되어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아주 비지니스에 적대적이 될 수 있다. (His Republican party can be deeply hostile to business) 비지니스를 이끌어야할 필요성은 공급망이든 자유무역이든 이민이간에 어디에도 확실한 것은 없다. CEO는 스타 벅스의 100,000 잡 기회 창출 프로그램과 같은 캠페인을 만들동안 무역과 같은 문제에 대해 직원과 그 지역 사회를 교육하여 리더십 공백을 채워야 한다.

2. 비지니스는 분노을 진정시켜야 한다.(Business Must Calm the Resentments)

이번 선거는 변화의 속도, 세계화로 인한 위협, 그리고 공유 경제의 부상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반영한다. 트럼프 캠페인 슬로건 인 "America Again Again"은 향수에 의존하는 단순한 슬로건이다.
거기에는 방법과 이유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문화적 무시도 직원과 그 가족들이 공유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맞추어 사라져야 한다.

3. 소비자의 상당수가 기존 권위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Recognize that Much of Your Audience Rejects Established Authority)

일반적인 이슈에 대한 학계 전문가 및 오피니언 리더의 일반적인 평가는 비생산적이지는 않지만 이제는 불충분하다. 장기간 근무한 종업원부터 열렬한 브랜드 애호가까지 일반인이 믿는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4. 민족주의의 영향과 지역의 힘 고려 ( Consider the Impact of Nationalism and the Power of Local)

우리는 오랬동안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브랜드를 거부하고 로컬에서 출발한 신생 브랜드들을 선호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가 이미지는 중요한다. 미국에서 성공하기를 희망하는 외국 기업은 지역 사회 참여, 교육 프로그램 및 지역 임원의 활동을 강조해야 한다. 중국과 같은 개발 도상국의 브랜드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장애가 생길 것이다.

5. 모든 기업은 미디어 기업이 되어야 한다. (Every Company Needs to Be a Media Company)

회사등은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전달하고 직접 대화 및 피드백 채널을 구축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서비스 할 수 있다.

그것은 (회사라는) 하나가 다수의 소비자에게 전하는 세계가 아니라 다수의 소비자가 하나(회사?)에게 전달하는 세계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축은 수평적이며 대중들은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검색과 쇼셜 미디어에 의존한다. 우리의 컨텐츠는 짧고, 공유 가능 해야하며 소비자의 직접 반응과 참여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6. 진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Truth Matters More Than Ever)

광고 캠페인에서 과장이나 부분적인 거짓말로 인한 여러개의 예를 찾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동안) #NeverHillary(힐러리는 안되!) 해시태그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선거의 교훈이란 측면에서 이러한 비슷한 압력에 열렬한 소비자와 잘 훈련된 임직원이 작성한 베스트 답변을 준비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

변치않는 팬심과 돈보다 의리를 택한 야구 영웅들이 만든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의 감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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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본 야구선수 구로다 히로키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했는데요, 오늘은 구로다 히로키가 속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관련 히로시마 시민들의 열렬한 팬심과 돈보다 의리를 택한 의리의 야구 영웅들이 쓴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의 감동스토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이전에 포스팅한 일본 야구선수 구로다 히로키(黒田 博樹 hiroki kuroda)가 이야기하는 프로 정신이란 이런 것 에서 구로다 히로키의 프로정신에 대해서 살펴봤으면 좋겠구요. 히루시마 도요 카프팀에 대해서는 동아 비지니스 리뷰에서 다루고 있는데 유료 잡지라서 따로 link를 걸수가 없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구로다 히로키에 대한 글 그리고 동아 비지니스 리뷰 글 그리고 인터넷 자료등을 토대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팀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1.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개

히로시마 도요 카프 (広島東洋カープ, Hiroshima Toyo Carp)는 1949년 설립된 센트럴리그소속의 야구단으로 일본 프로야구단중 유일하게 시민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시민구단입니다.

물론 프로야구단이므로 주식회사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마쓰다자동차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나 구단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철저히 시민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 원폭의 폐허를 딛고 설립된 히로시마 카프(広島カープ, Hiroshima Carp)

히로시마는 역사적으로 비운의 도시이죠..
1945년 세계2차대전의 말미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해 도시는 폐허로 변했으며 시의 상징이었던 히로시마성도 파괴되었습니다.

▽ 원폭으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히로시마성(왼쪽).
원폭 투하로 골격만 남은 돔(오른쪽),
히로시마 관광 안내 사이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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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폐허속에서 히로시마시는 희망을 만들어야 했고 그 희망을 야구단에서 찾았습니다.
1949년 히로시마가 폐허로 변한지 4년, 히로시만 시민의 희망을 담아 야구단이 출범합니다.

야구단의 이름은 히로시마 카프 (広島カープ, Hiroshima Carp), 히로시마 시를 따라 흐르는 오타 강이 잉어의 산지이고, 원폭 투하로 인해 무너져내린 히로시마 성의 별명도 ‘잉어 성’(鯉城)이었기 때문에 구단 이름을 히로시마 카프(広島カープ)로 지었다고 합니다.

재정난으로 야구단의 해체 그리고 시민구단으로 전환

처음에는 시의 주도로 야구단이 창설되었지만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창단 3년차이자 리그 참여 2년차인 1951년 재정난으로 선수 월급 및 원정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야구단의 해체가 결정되었습니다.

▽ 초창기 히로시마 카프 선수단,
초창기라는 기록은 있는데 몇년도인지는 기록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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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수단은 떠나지 말아달라는 시민들의 바램을 버릴 수 없어 초대 감독이었던 이시모토 슈이치감독은 선수들을 설득해 남게 했고, 시민들은 야구단을 살리기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 결과 440만엔이 모였고 이를기반으로 야구단을 시민구단으로 전환했습니다.

넉넉치 못한 살림때문에 성적은 언제나 하위권을 맴돌았고(70년대 중반가지 히로시마 카프의 성적은 하위권인 4위~6위를 맴돌았습니다.) 재정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1967년 재정난에 허덕이는 시민구단에 대기업인 동양공업(현 마쓰다자동차)가 대표 주주주로 참여하면서 어느정도 재정난에서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팀의 이름이 히로시마 도요 카프(広島東洋カープ, Hiroshima Toyo Carp)라 부르는데 이는 동양공업(현 마쓰다자동차)이 대표 주주로 참여하면서 東洋을 추가해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되었습니다.

1.2. 히로시마 카프(広島カープ, Hiroshima Carp)의 성적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위에서 지적하듯이 재정난의 압박속에서 제대로된 선수를 구할 수 없어서 70년대 중반까지는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 처음 리그에 참여한 1950년부터 2016년까지 성적표,
1950년 ~ 1974년까지 4~6위를 오가는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1975년 처음 리그 우승이후 1991년까지 카프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1992년부터 2015년까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위키디피아 그래프를 토대로일부 문구를 추가 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성적 자료는 위키디피아 인용

위의 표에서서 보듯 히로시마 카프는 리그 우승을 7회 거머쥐었고
(1975년, 1979년, 1980년, 1984년, 1986년, 1991년, 2016년), 3회(1979년, 1980년, 1984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했습니다.

위 표에서 보이는 것처럼 최근 15년동안 리그 우승이 없었고 이는 일본 야구 역사상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최근 FA제도와 신인 드래프트 역지명 제도로 우수한 신입 확보에 실패해 쇠락을 거듭하다.

이러한 히로시마 카프이 쇠락은 제도의 변화로 자본이 충분하지않은 시민구단으로서는 훌륭한 선수를 제대로 수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1993년 FA(프리 에이전트 Free Agent)와 신인 드래프트 역지명 제도가 도입됩니다.

FA(프리 에이전트 Free Agent)는 한팀에서 8시즌을 뛰면 자유롭게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계약(Free Agent, FA) 자격을 얻어 팀을 옮기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신인 드래프트 역지명 제도는 이전까지 신인 선수 선발 시 하위팀부터 지명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인기없고 재정이 약한팀으로 갈 확율이 높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으로 바로 진출하려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야구단등에서 일정기간 활동하면 FA 자격을 주는 제도가 바로 신인 드래프트 역지명제도입니다.

이러한 제도로 인해 히로시마 카프의 뛰어난 선수들은 FA가 되어 팀을 떠났고 (8명의 FA가 나왔는데 모두 다른 팀으로 이적 했다고 하네요.) 유망한 신인들은 모두 신인 드래프트 역지명 제도를 악용해 히로시마 카프처럼 재정이 빈약한 구단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인 확보가 어렵자 팀의 성적은 곧두박질쳐서 1998년부터 15년동안 리그 6팀 중 4위를 넘지못하는 이류팀이 되었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2. 히로시마 카프의 부활

이렇게 쇠락의 길을 걷던 히로시마 카프는 2016년 센트럴리그 우승을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비록 일본 시리즈에서는 분패해 우승을 놓쳤지만 쇠락해가던 팀으로서는 예상외의 이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부활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을 자기 분신처럼 여기는 히로시마 시민 팬들의 열정 그리고 이를 추동시키는 히로시마 카프 구단을 제 1의 요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두번째로는 이런 팬들의 사랑에 프로 세계에서 주어지는 막대한 돈의 유혹을 뿌려치고 히로시마 카프에 합류한 의리있는 영웅들의 활약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세번째로는 열악한 팀 전력을 극대화한 코칭스탭의 팀워크 중심의 훈련 및 전력 보강이 아닐까 합니다.

2.1. 히로시마 시민들의 히로시마 카프 사랑

히로시마 카프는 시민들의 힘으로 움직여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야구단과 시민간의 유대는 뜨겁습니다.

시민들은 야구단이 해체될 위기에서 모금을 통해서 야구단을 살려내었고 야구단이 꼭 필요한 스타디움을 건립할 때에도 모금을 통해서 정람 좋은 스타디움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이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참여도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2016년 일본 시리즈에서 아쉽게 우승하지 못했지만 리그 우승을 겸해 히로시마시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이날 퍼레이드에는 약 31만명의 히로시마시민들이 몰려나와 양쪽 길가를 빨갖게 물들였는데요.
일본 히로시마시 인구가 약 117만(2010년 기준)일고 하니 거의 시민의 1/3이 이 퍼레이드에 참여했다고 하니 그 열기 및 참여도가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처럼 개인주의적 움직임이 강한 곳에서 이 정도는 엄청난 수치라고 합니다.

▽ 2016년 리그 우승 기념 시가 퍼레이드 모습,
히로시만 시민 31만명이 참여했다고 대서특필 되었다.
사진은 마쓰다 ZOOM-ZOOM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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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리그 우승 기념 시가 퍼레이드하고 있는
구로다 히로키와 아라이 다카히로의 모습,
사진은 마쓰다 ZOOM-ZOOM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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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리그 우승 기념 시가 퍼레이드 모습,
유튜브 캡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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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들과 카프 거리를 걸닐며 야구장으로 향하는 히로시마 카프 팬들,
진짜 가족 단위로 어디 놀러가는 듯하다. 그만큼 친밀하다는 빈반증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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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히로시마 카프 팬 클럽 사이트 모습인데요.
유년층에서 장년층까지 다양한 나이층의 회원을 모집하고 있고 어느 구단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야구 구단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팬들의 활동이 활발한 야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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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카프팬의 사랑에 감복, 영원한 히로시마 카프맨이 된 구로가 히로키

사실 이번 히로시마 카프의 우승과 함게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선수가 바로 구로다 히로키입니다.

구로다 히로키는 뛰어난 선수였지만 그가 영원한 히로시마 카프인이 된 것은 히로시마 팬들이 보여준 그 뜨거운 사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2006년 1점대의 방어율을 찍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앋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FA 도전을 선업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경기날 히로시마 카프팬들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플랭카드를 겁니다.

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Carp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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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플랭카드 편지가 구로다 히로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일본의 다른 구단으로부터 4년동안 10억엔 + 평생 지도자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지만 히로시마 카프 잔류를 선언합니다.

僕が他球団のユニフォームを着て、広島市民球場でカープのファン、カープの選手を相手にボールを投げるのが自分の中で想像がつかなかった。僕をここまでの投手に育ててくれたのはカープ。そのチームを相手に僕が目一杯ボールを投げる自信が正直なかった

"내가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히로시마 시민구장에서 카프 팬, 카프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것은 카프. 그 팀을 상대로 내가 힘껏 공을 던질 수 있을거란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2.2. 히로시마 카프를 시민들에게 돌려 준 히로시마시, 히로시마 카프 구단 그리고 후원 기업들

사실 약 110만의 도시에서 시민들의 모금 그리고 입장료 수입만으로 야구단을 운영하기는 벅찹니다.
그렇기에 시의 도움이나 재력있는 대기업의 지원이 불가피 합니다.

히로시마시는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2009년에는 낡은 히로시만 시민구장을 대신하는 마쓰다스타디움을 건설하고 (물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쓰다자동차의 큰 후원이 있었지만) 이 야구장의 경영과 운영을 전적으로 히로시마 카프 구단에 일임함으로써 구단이 자율성있게 팬 중심의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스타디움 운영에서 많은 이익을 늘릴 수 있었고 이는 계속 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팬 만족도를 극대화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쓰다자동차도 히로시마 카프 구단의 대표 주주로 충분히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메인 후원자 역활에 그침으로써 구단과 팬 중심으로 구단이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히로시마시와 마쓰다자동차와 같은 후원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 히로시마 카프가 부흥하는 원동력이 될 수있음은 당연한 이치라 할 것입니다.

▽ 히로시마시와 후원기업인 마쓰다자동차
그리고 구단 및 팬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마쓰다 줌 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시민들의 모금과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메이저 리그 스타디움을 철저히 BM을 통해
이제는 한국 등 타국에서 BM하러 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팬들을 잘 배려한 설계라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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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영웅들의 귀환

위와 같은 히로시마 카프 팬들의 사랑은 냉혹한 자본이 지배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이변을 낳았습니다.

돈을 넘어서 돈을 조금 덜 받드라도 의리를 택하는 영웅들이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의 사기를 올려준 것입니다.

1800만불 (약 200억)의 연봉을 마다하고 36억의 히로시마로 돌아온 구로다 히로키

2007년 초 LA 다저스로 이적한 구로다 히로키는 2014년 샌디에고의 1800만달러(약 200억원)의 연봉을 마다하고 약 36억원의 연봉을 제시한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옵니다.

그것은 2007년 시즌을 마치고 다저스로 이적하면서 아래와 같은 약속을 했다고 이를 지키고자 한다고.

"지금 내가 있는 것은 히로시마 카프 덕분이다. 언제가는 돌아가서 보답하고 싶다, 꼭 힘이 남아있을 때 다시 돌아가고 싶다. – 2007년 LA 다저스 진출 시 인터뷰.
今の僕があるのはカープのおかげ。いずれは帰り、恩返ししたい気持ちはある。日本に帰るならカープしかない。帰るなら、バリバリやっている時に帰りたい。"

“33살에 미국으로 왔다. 분신과도 같던 붉은 헬멧(히로시마 선수들을 부르는 별명이기도 하다)을 내려놓고 다저스의 푸른 모자를 썼다. 그 때 나는 스스로 굳게 약속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뒤 반드시 히로시마로 돌아가겠다.”

“히로시마와 계약한 연봉은 메이저리그에서 제시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돈이다. 그러나 시민구단의 예산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열망은 어떤 돈과도 바꿀 수 없었다.”

▽ 구로다 히로키 2015년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출처는 위키디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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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만엔 거부하고 2000만엔의 히로시마로 돌아온 아라이 다카히로

아라이 다카히로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카프팬이 되었고 야구선수로 히로시마 카프에 입단해 그의 야구 꿈을 이룬 케이스입니다.
그는 히로시마 카프에서 2007년까지 매년 홈런 20개 이상을 치면서 팀의 주포 역활을 하다 2007년 FA 선언을 하고 한신타이거즈로 이적합니다.

2014년 한신과 3년 계약이 끝나고 한신에거 제안한 연봉 7000만엔을 포기하고 2000만엔으로 추정되는 연봉에 히로시마로 복귀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히로시마 카프)구단에서 돌아와 달라고 말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마지막은 저를 키워준 곳에서 불태우고 싶다"며 친정으로 돌아와 명예회복을 추구합니다.
(사실 한신에서 그의 위치가 불투명해지면서 연봉 2억엔에서 7천만엔으로 대폭 삭감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에 돈보다는 명예획복을 할 수 있는 친정 히로시마 카프로 왔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 아라이 다카히로가 히로시마로 복귀 후
그 복귀과정 그리고 심정을 담은 책 '적심(붉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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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로서 구로다 히로키, 타자로서 아라이 다카히로가 돌아옴으로서 히로시마 카프는 투타에서 안정을 찾고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 줄 수 있어습니다.

이러한 영웅의 귀환이 히로시마 카프 야구단에 긍정적인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승의 초석이 됨은 물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4. 팀웍을 강화한 감독 오가타 고이치

이번 히로시마 카프팀을 이끈 오가타 고이치 감독도 1990년대 히로시마 카프의 황금시기를 이끌었고 히로시마 코치로 7년을 그리고 감독으로서 2년차를 맞은 의리의 영웅중의 헌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투수로서 구로다 히로키, 타자로서 아라이 다카히로과 같은 투타에서 걸출한 스타에 있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아직 어리고 충분히 경험을 쌓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대상으로 오가타 고이치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템은 철저한 팀워크를 주문합니다. (아래 내용은 동아 비지니스 리뷰 내용을 토대로 수정한 것입니다.)

팀워크를 위해서 선수들에게 ‘눈 야구’를 일관되게 주문했습니다. 이는 공을 오래 보고, 상대 투수를 지치게 하는 팀 배팅을 지향한 것입니다. 캠프 훈련때부터 탁구공 크기의 공을 치게 했고, 투수가 던지는 야구공에 숫자를 적어놓고 타자가 읽게 하는 훈련을 통해서 집중력있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팀워크를 중심한 훈련과 전략 결과, 홈런, 도루 등 화려한 개인기가 없더라도 팀 전체의 힘으로 점수를 낼 수 있는 팀 배팅이 이루어 졌고 이는 출루율의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눈야구'를 통해서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볼은 골라내서 진루를 높였기 대문에 팀의 진루율은 전년 대비 0.034포인트 증가했고 이러다보니 82승 중 무려 42승이 역전승을 거둘정도로 집중력이 살아났습니다.

타격을 살펴보아도 2016년 9월12일까지만 따져서도 2015년 전체에 비해 팀 득점은 134점이 증가하고 팀 홈런은 39개, 팀 볼넷은 23개가 늘었습니다.
홈런의 내용을 봐도 작년 131개에서 144개로 홈런이 늘었지만 30개 이상 홈런을 친 선수는 없지만 10개 이상 친 선수가 7명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그리고 팀 삼진은 전년 대비 96개가 줄었습니다. 이 모든 결과가 팀워크를 중시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템프를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따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임의 우승으로 이어졌습니다.

▽ 2016년 히로시마 카프가 리그 우승하던 날

▽ 2016년 히로시마 카프가 리그 우승하던 순간,
히로시마 카프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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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히로시마 카프가 리그 우승 후 ,
구로다 히로키를 헹가레치고 있다.
이 순간 구로다 히로키는 울고 있었다.
히로시마 카프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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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히로시마 카프가 리그 우승 후 ,
히로시마시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히로시마 카프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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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치며

히로시마 카프의 우승이 주는 감동은 야구팀의 성적이 바닥을 헤메드라도 끊임없이 지지해주고 성원해주는 시민 팬들의 열정 & 사랑과 이 열정&사랑을 받아 성장하고 그 사랑을 이 돈이 만능인 시대에 돈보다 의리로 되돌려줄주아는 영웅들에 있습니다.

경제 침체와 산업화 도시화 디지탈화에 따라 각박해진 사회에 어쩌면 이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는 더욱 진한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카프여자(カープ女子)라 불리우는 히로시마와 상관이 없으면서도 히로시마 카프를 응원하고 히로시마 카프의 상품을 구매해주는 카프여자(カープ女子) 신드룸이 일어날 수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 인터넷이 가져온 카프여자(カープ女子)들 모습,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히로시마 카프 팬이 되어 응원가고 카프 상품 구입하는 것이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 가는 듯하다.

카프여자(カープ女子)02

카프여자(カープ女子)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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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들이 만든 육체의 아름다움, ESPN 바디이슈(Body Issue) 2016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1면 광고로 엿보는 신문 광고의 몰락 그리고 미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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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1면의 내용을 기존과 다른 아주 파격적인 편집 디자인을 선 보였다. 이를 통해서 신문의 미래를 보는것은 과하다는 생각이나 신문이 나아가야할 전략 방향의 편린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화제가 되었던 경향신문 1면 편집 디자인

먼저 화데를 불러 일으켰던 경향신문 1면을 보자.

아래 사진처럼 1면에 컵라면과 삼각 김밥이 있고 그 옆에는 ‘오늘 알바 일당은 4만9천원…김영란법은 딴 세상 얘기.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고달픈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공생을 못찾으면 공멸이라는 기사 타이틀이 의미 심장하다.

경향신문 70주년 1면 기사 광고

이 1면의 광고 디자인은 ‘광고 천재’로 불리우는 광고 디자이너 이제석씨가 제작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신문이 너무 고상하고 엄숙하고 진지한데 바깥에서는 엉덩이 밑에 깔거나 그 위에 밥을 올려놓고 먹는 등 다용도로 쓴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는 광고 컨셉을 수용했다고 한다.

신문이 가야할 길?

여기서 신문이 너무 고상하고 엄숙하고 진지하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쉽고 재미있고 가벼운 매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신문이 설자리는 점차 없어지고 있다,

아래는 신문의 구독율 및 열독율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이 엄청 변하면서 신문 구독율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신문구독율은 14.3%
이 14.3%마저도 과대 평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신문은 이미 고려 대상에서 버려진지 오래다,

이러다보니 열독율도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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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신문이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너무 무거운 주제이다.
단 경향신문 1면 광고에서 보듯이 신문이 가야할길은
문제에 대해 쉽고 정곡을 찌르는 컨텐츠를 지속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문의 기본 속성이 뉴스라고 한다면 이제는 어려운 뉴스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쉬운 미디어들이 널렸는데..

최근 한겨레신문에서 보도한 미국 스킴 사례가 또하나의 고려할만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 400만명이 받아보는 ‘스킴’의 뉴스레터 라는 글이 그것이다.

스킴은 뉴스레터를 통해 주목할 만한 뉴스를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있어서 매일 100만명이 데일리스킴을 열어본다고 한다.

즉 신문은 그 특유의 무거움과 엄숙주의를 내려놓고 보다 쉽고 재미있는 컨텐츠로 무장해야 실날같은 생존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미 대선 결과를 풍자했다고 오해(?)받는 존 루이스백화점 2016년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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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크리스마스시즌이면 심금을 울리는 광고로 호응을 얻어왔던 영국의 존 루이스백화점이 올해도 여전히 크리스머스 시즌 광고를 온 에어했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가 묘하게 미국 대통령선거와 연관되어 회자되고 있습니다.

11월 9일(영국 시간) 온에어해서 이제 2일이 지났는데 벌써 1000만이상 조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느 수준정도까지는 성과가 나올 듯합니다.

올핸 특이한 사실은 이 광고를 가지고 미국 대통령선거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대표적인 게 Is the John Lewis advert a metaphor for Donald Trump's US election win? 라는 글이 그것인데요. 이런류의 글이 종종 눈에 띄입니다,

이글에선 광고에 나오는 Buster the dog이 승자이 트럼ㅍ를 Briget이 당연히 자기것으로 생각하고 달려나갔는데 Buster the dog이 먼저 차지해 당황해하는 것처럼 승리를 빼았긴 힐러리를 의미하고 trampoline 자체를 미국으로 해석했습니다.

과한 주장이긴한데… 미 대선 결과에 충격이 크다보니 이런 저런 해석이 나오는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해석을 올린 포스팅은 영국인데 영국에서도 미 대선을 충격적으로 받아드린 한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1. 존 루이스백화점 2016년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 John Lewis Christmas Advert 2016 – #BusterTheBoxer

2016년 11월 9일 발표한 존 루이스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입니다.

올 광고도 상당히 재미있긴 하지만 예전 광고와 같은 울림은 적은것같아 조금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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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거 존 루이스(John Lewis)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아래는 과거 존 루이스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들입니다.

인터넷에서 2009년 광고까지 있지만 그 이 전부터 집행해 왔을 것 으로 판단합니다.

2.1. 2015년 존 루이스백화점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 #ManOnTheMoon

존 루이스백화점 소개 및 2015년 광고 소개는 해마다 감동스토리로 마음을 울리는 존 루이스백화점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라는 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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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2015년 11월 캡춰이미지입니다.
2016년 11월 12일 현재는 조회수는 25,550,753회를 기록 하고 있네요.

2.2. 2014년 존 루이스백화점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 #MontyThePeng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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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2014년 광고는 존 루이스백화점측에서 내려서 볼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예전에 다운받아놓은 광고를 다시 올려 공유합니다.


John Lewis Christmas Advert 2014 – #MontyThePenguin

2.3. 2013년 존 루이스백화점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 The Bear & The 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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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wis Christmas Advert 2013 – The Bear & The Hare

2.3. 2012년 존 루이스백화점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 The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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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wis Christmas Advert 2012 – The Journey

일본 야구선수 구로다 히로키(黒田 博樹 hiroki kuroda)가 이야기하는 프로 정신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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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읽어본 일본 야구선수 구로다 히로키에 대한 글이 인상 깊었기에 간략히 공유해 봅니다. 도대체 프로정신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다음스포츠의 백종인님이 쓴 [야구는 구라다] 혼돈의 계절에 구로다 히로키가 전하는 메시지 라는 글이 그것인데요.

그리고 브런치에서 한재우님이 쓴 구로다 히로키를 아십니까 라는 글도 구로다 히로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를 평가하면 자존이 강하고 이 자존을 지키기위해 자기가 원칙에 충실했으며 우직하게 신의를 지킨 사람이라는 평가를 해보면 이러한 구로다 히로키의 태도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세 아주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입니다.

구로다 히로키의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1. 프로정신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다!!

구로다 히로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명은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입니다.

물론 엄격한 프로세계에서 이런 프로정신이 출중한 선수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로다 히로키처럼 자기 자신에게조차 엄격한 기준으로 세우고 실천하는 프로정신의 소유자는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1.1. 철저한 경기 준비로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

구로다 히로키는 철저한 경기 준비는 유명하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경기장에 츨근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그날의 경기를 대비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LA 다저스 시절 10살이나 어리지만 같은 메이저리그 동기(?)인 커쇼는 그의 철저한 경기 준비에 감명받아 받아 이를 받았다고 합니다. 커쇼는 경기전에 상당히 복잡한 준비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구로다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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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현재에 최고로 충실하기 위해 단기 계약을 고집하다.

프로 셰계에서 연봉 대박은 다년계약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구로다 하로키는 단기 계약을 고집하고 전성기가 지난 30대 중반부터는 1년 계약을 고집합니다.

그것은 다년 계약으로 나태해지는 것을 막고 현 시즌에 최선을 다하자는 그의 철칙이자 고집인 것이다.

“더 이상 내년을 위해서 야구할 나이는 아니다. 내가 왜 지금 야구를 하는 지 생각하면서 늘 완벽하게 태우고 싶다. 다년 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를 지나친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지고 가야할 나의 몫이다.”

▽ 다저스 시절의 구로다 히로키(2010년),
출처는 위키디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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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최선을 다해도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없다고 느끼고 미련없이 떠나다.

2016년 그는 24번 등판해서 10승 8패로 나쁘지않은 성과를 올렸고 그의 팀의 우승에 3선발로 지대한 공헌을 했으므로 2017년 연봉은 따논 당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계약하면 40억의 연봉은 그냥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깨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항상 완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더 이상 9이닝을 던질 수 없는 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좌절감을 느꼈다. 이제는 떠날 때라는 결론이었다.”

▽ 구로다 히로키의 은퇴식

2. 영원한 히로시만 카프맨이라는 의리

구로다 히로키라는 브랜드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시 그는 진정으로 히로시마 카프팬들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브랜드 로열티를 확보한 아주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판단됩니다.

그것은 이기심을 버리고 진심으로히로시마 카프를 사랑했기 때문이며 이런 구로다 히로키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믿어준 히로시마 카프팬간의 진심어린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 까 싶습니다.

2.1. FA가 되었지만 히로시마에 잔류하면서 영원한 히로시마 카프맨이 되다.

히로시마 카프는 히로시마 시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으로 뉴욕 양키스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같이 자금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뛰어난 성적을 올려도 상대적으로 전국적인 스타가 되어 어려웠으며 많은 연봉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6년 1점대의 방어율을 찍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앋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FA 도전을 선업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경기날 히로시마 카프팬들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플랭카드를 겁니다.

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Carp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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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플랭카드 편지가 구로다 히로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일본의 다른 구단으로부터 4년동안 10억엔 + 평생 지도자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지만 히로시마 카프 잔류를 선언합니다.

僕が他球団のユニフォームを着て、広島市民球場でカープのファン、カープの選手を相手にボールを投げるのが自分の中で想像がつかなかった。僕をここまでの投手に育ててくれたのはカープ。そのチームを相手に僕が目一杯ボールを投げる自信が正直なかった

"내가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히로시마 시민구장에서 카프 팬, 카프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것은 카프. 그 팀을 상대로 내가 힘껏 공을 던질 수 있을거란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2.2. 힘이 남아 있을때, 충분한 가치를 지녔을 때 친정 히로시마 카프로 복귀하다.

2014년 샌디에고는 구로다 히로키에게 1800만달러(약 200억원)의 연봉을 제시했지만 그는 이를 마다하고 약 40억원의 연봉을 받고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옵니다.

그것은 2007년 시즌을 마치고 다저스로 이적하면서 아래와 같은 약속을 했다고, 이를 지키고자 한다고.

"지금 내가 있는 것은 히로시마 카프 덕분이다. 언제가는 돌아가서 보답하고 싶다, 꼭 힘이 남아있을 때 다시 돌아가고 싶다. – 2007년 LA 다저스 진출 시 인터뷰.
今の僕があるのはカープのおかげ。いずれは帰り、恩返ししたい気持ちはある。日本に帰るならカープしかない。帰るなら、バリバリやっている時に帰りたい。"

그는 아직 충분히 뛸 수 있고 가치가 중분한 (이미 샌디에고가 그를 1800만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공인해 주었다) 시기에 친정인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온 것입니다.

“33살에 미국으로 왔다. 분신과도 같던 붉은 헬멧(히로시마 선수들을 부르는 별명이기도 하다)을 내려놓고 다저스의 푸른 모자를 썼다. 그 때 나는 스스로 굳게 약속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뒤 반드시 히로시마로 돌아가겠다.”

“히로시마와 계약한 연봉은 메이저리그에서 제시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돈이다. 그러나 시민구단의 예산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열망은 어떤 돈과도 바꿀 수 없었다.”

이러한 구로다 히로키의 사랑에 대해서 히로시마 카프팬이나 구단은 그에 못지않은 사랑으로 그를 맞이합니다.

히로시마 카프 구단은 그가 돌아올 7년간 등번호 ‘15번’은 항상 비워놓았으며, 그의 히로시마 카프로 복귀하가겠다는 소식에 사상 처음으로 히로시마 카프의 연간회원권 8,300장이 매진시켜서 그의 복귀를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2016년 구단은 그의 은퇴이후 '15번'을 영구 결번 시켰습니다.

▽ 구로다 히로키의 백넘바 15 카드를 들고
구로다 히로키를 응원하는 팬들,
사진 출처는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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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구 그리고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꿈

왜 일본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답변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것이 꿈이 아니라 가족에게 부끄럽지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꿈이라고 답합니다.

私の娘たちは、野球が大好きです。私の試合が終わった後は、いつも「かっこいいパパ、がんばってください」と言ってくれます。ヤンキースの試合を娘たちはよく見ていました。平凡な私が娘たちに大きいい影響を与えていました。

このようにスポーツ選手は子供の精神や考え方に対して大きな影響を与えています。それは、正々堂々と戦う、努力を積み重ねる、正直に生きる等、人生の基本を伝える役割があると思います。

長嶋茂雄さんは、野球で子供たちに夢を与えようと、常に意識していたそうです。これがプロスポーツ選手の姿でしょう。スポーツ選手は、子供たちに「夢を与える存在なんだ」ということを自覚して、子供たちの模範になるような姿を示し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私がこんなに多い年俸を受け取るのも子供たちとファンのおかげだからです。

後で私の人生を振り返って見たとき家族に恥ずかしくない姿を見せたい、それが私の夢です。

제 딸들은 야구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멋진 아빠 힘내세요」라고 말하죠. 딸들은 양키스 경기를 즐겨 보곤 했습니다. 평범한 제가 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스포츠 선수는 아이의 정신과 사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꾸준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등 인생의 기본을 전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가시마 시게오 씨는 야구로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고 항상 의식하며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프로 체육인의 모습이지요. 스포츠 선수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어린이와 팬들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입니다.

위 번역은 나무위키의 번역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 구로다 히로키 2015년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출처는 위키디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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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선정, 미국 대통령선거 캠페인 광고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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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끝났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광고를 살펴보다 타임에서 선정한 10대 미국 대통령선거 캠페인 광고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타임 선정 Top 10 Campaign Ads

1. 1964 대통령 선거 광고 – Daisy Girl

정치 광고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광고

1964년 미 대통령선거에 민주당은 린든 B 존슨이, 공화당은 배리골드 워터가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는 쿠바 미사일 위기와 쿠바 봉쇄 사태로 인해 소련과의 핵전쟁 위기를 넘긴 직후였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소형 핵무기를 일반 폭격무기로 삼아야 한다”거나 “자유를 방어하는데 극단주의는 악덕이 아니다. 정의를 추구하는데 중용은 미덕이 아니다.”, “크렘린 궁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싶다.”등의 강경한 핵전쟁을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에 민주당측은 핵 사용을 긍정하는 배리 후보 측의 태도를 역이용하여 네거티브 광고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Daisy Girl’ 광고였다.

소녀가 숫자를 세면서 데이지 꽃잎을 따고 있다. 아홉을 세는 순간 10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소녀의 커다란 눈이 크로우즈업 되면서 핵폭탄이 폭발한다.

“These are the stakes! To make a world in which all of God’s children can live, or to go into the dark. We must either love each other, or we must die.”이것은 도박입니다! 세상을 신의 아이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어둠속으로 빠질 것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Vote for president Johnson on November 3. The stakes are too high for you to stay home.11월 3일, 존슨 대통령에게 투표하십시오. 집에 박혀있기에는 이 위험은 너무나 큽니다.

이 광고는 1964년 9월 7일 단 한번만 방영되었지만 너무 내용이 섬뜩해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사회에 회자되면서 CBS NBC ABC 등 공중파 방송 뉴스시간마다 언급하면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고 민주당 린든 B 존슨이 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린든 B 존슨은 61.1% 대 38.5%로 대승을 거두었다.

2. 2004년 Swift Boat Veterans ‘Any Questions’

2004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후보와 민주당은 매사추세츠 주의 상원의원인 존 케리가 후보로 지명되었다.

최종적으로는 28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부시가 당선되었다.

존 케리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여러 훈장을 받고 전쟁영웅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후 반전운동에 앞장섰다.

존 케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자 일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 일부가 모여 Swift Boat Veterans for Truth(‘진실을 위한 쾌속정 참전용사들’)이란 단체를 만들고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케리를 비판하는 동을 전개하였다.

존 케리는 이 단체에 대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Time은 이 광고가 존 케리의 패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The most influential ad of the 2004 campaign came not from the Republicans or Democrats but from a small political committee, the Swift Boat Veterans for Truth. The first Swift Boat ad aired in August 2004 and featured 13 people who claimed to have “served with John Kerry,” although only one of them actually did. The men questioned Kerry’s war record, honesty, and loyalty to his fellow servicemen. Subsequent ads and the political fallout pushed the Swift Boat campaign into mainstream news consciousness and now the term is used as slang when discussing smear campaigns. Although it’s hard to tell just how effective the ads were, one thing is for certain. Kerry lost.

이번에 소개하는 “Any Questions” 광고는 이 단체가 추진한 여러 광고 중 맨 처음 방영된 TV 광고이다.

2004년 8월 5일에 온에어된 이 광고는 13명의 참전용사들이 나와 존 케리와 함께 복무했다고 밝히며 그의 부정직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임을 주장한다.
(사실은 이 출연한 사람중에 한명만 존 케리의 부하였고 나머지는 ㄷ른 배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3. 1984년 It’s Morning in America

1984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인 레이건측의 광고로 역대 미 대선 광고 중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광고로 꼽힌다.

위에서 소개한 광고와 달리 상대를 공격하지않고 포지티브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이란 인질사건 등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고, 높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그리고 마이너스 경제성장으로 허덕이던 상황이었는데 레이건은 ‘강하고 부유한 미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는 당시 강한 미국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 기조하에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간섭을 최소화하여 시장과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생산을 촉진시켜 수요를 촉진하는 레이거노믹스를 시행해 경제를 안정시키고 미국의 국력을 크게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 시점에와서는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미국이 고통받고 있는 쌍둥이 적자의 원횽이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다.

아래는 Time의 설명이다.

The actual title of this 1984 Reagan commercial is “Prouder, Stronger, Better,” but the opening line — “It’s morning again in America” — inspired the ad’s better-known nickname. The message is simple, patriotic and inspirational. It’s hard to watch the video and not want to support its candidate; that’s probably why it’s been called one of the most effective campaign ads ever.

4. 1988년 공화당의 네가티브 광고 – Willie Horton

1988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조지 부시는 미주당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에 15%이상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반전하고자 적극적인 네가티그 커뮤니케이션을 실시한다.

당시 조지 부시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했기 대문에 이란 콘트라 사건 등 여러 가지 구설수와 실정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을 역전하고자 애트워터라는 공화당의 네거티브 선거전문가를 기용해 적극적인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이 유명한 Willie Horton이다.
Willie Horton는 마이클 듀카키스가 재임한 매사추세츠 주에서 수감중인 흑인 죄수가 주말 휴가 제도를 통해 사회에 나와서 ‘백인 여성’을 강간한 일화를 토대로 마이클 듀카키스가 시행한 주말 휴가 제도가 실패했다는 정치적 실패를 부각하고자한 광고였다.

이러한 일련의 네가티브 전략에 의해서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에의 열세를 극복하고 1988년 대선에서 승릴르 거둘 수 있었다.

Time의 설명을 보자

In 1986, a convicted felon named Willie Horton — who was serving a life sentence for murder — was released from a Massachusetts prison on a weekend furlough program, during which time he escaped and raped a woman. Then-governor Michael Dukakis had supported the prison furlough program, and when he ran for President in 1988, his opponent, George H. W. Bush, used that to his advantage. The “Revolving Door” ad never mentions Horton by name, but the connection was clear and the ad received considerable news coverage.

5. 2008 It’s 3:00 A.M. – Hillary and her ‘Red Phone’

2008년 민주당 재선 후보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광고다.

당시 미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오바마와 경합해 패배했다.

그러나 경선을 시작하기전부터 힐러리는 가장 유력한 호보였고 선거 당시가지도 가장 유력했으나 막판 오바마의 추격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다.

2016년 대선에서도 다 이겼다고 평가를 받았지만 막판 트럼프의 대추격을 허용해 1%이상 더 득표하고도 패배했다. 참 운도 없다고 평가할 수 밖에.

이 광고는 2008년 민주당 프라이머리 경선에서 연속적으로 패배하고 힐러리가 오바마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오바마의 최대 약점이라 이야기되는 국가 안보 공약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광고는 “Children”이란 타이틀을 붙였지만 역시 It’s 3:00 A.M이라고도 알려진 이 광고에서 이 셰계적 위기 상황, 새벽 3시에 걸려오는 비상 전화를 누가 받아서 이 국가를 이끌어주기를 원하는지를 묻고 있다.

자고 있는 아이, 계속 울리는 전화벨소리 닞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강조하는 나레이션은 오싹한 기분이 든다고 Time은 평가하고 있다.

이광고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In a don’t-push-the-red-button Cold War-esque maneuver, Hillary Clinton released this ad during the 2008 primary season, asking voters who they would want to lead the country during a world crisis. Sleeping children, a ringing telephone, the undertone of grave importance heard in the speaker’s voice, it’s all there — and frankly, kind of creepy.

6. 2008년 Mike Gravel – Rock

2008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전 아래스카 상원이었던 마이크 그라벨의 광고(?)

마이크 그라벨은 이는 광고는 아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광고로 활용은 되었다,

이 동영상(광고?)은 독특하다.

몇분동안 마이크 그라벨은 아무말없이 앞만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서서 조그마한 바위(?)를 주워 호수로 던지고는 유유히 걸어간다.

마이크 그라벨은 1%의 득표도 얻지 못했지만 이 광고는 그의 득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1981년이래 사무실도 열지 않았던 그에게 괜찮은 수치라고 Time은 이야기 하고 있다.

In this spot for his 2008 Presidential bid, former Alaskan Senator Mike Gravel stares into the camera for over a minute, then turns around silently, and tosses a rock into a lake. Gravel later said that this video wasn’t an ad but an artistic “metaphor of an ordinary citizen who acts in an unusual and extraordinary way.” Whatever it was, it got the job done. Although polls put Gravel with less than 1% of the vote, his strange videos (there’s another one called ‘Fire’ that lasts for 7 minutes and features Gravel collecting wood) got thousands of hits on YouTube and earned airtime on The Daily Show with Jon Stewart. Not bad for a guy who hadn’t held a political office since 1981.

아래는 마이크 그라벨이 그 동영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영상이다. 참고로 보시길.

7. 1968년 Hubert Humphrey – Laughter

1968년 민주당 휴버트 험프리 후보의 TV 광고이다.
매우 유명한 네가티브 광고의 하나이다. 이런 영상도 광고로 보앨 수 있다는 생각이 놀랍다.

1968년 미 민주당의 확고 부동한 선두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고나서 베트남전 반대 기치를 높이 든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이 선두두가 되었지만 과반 획득에 실패해 관례대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을 하게 된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지 한달 후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민주당 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휴버트 험프리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휴버트 험프리는 당시 부통령으로 경선에도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지도부의 지지로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민주당 후보가 된 휴버트 험프리는 공화당 후보인 닉슨과 대결하는 동안 내내 네가티브로 일관한 광고 캠페인을 지속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광고도 공화당 후보인 닉슨이 러닝메이트로 당시 역대 최연소 메릴랜드 주지사이던 스피로 애그뉴 (Spiro Agnew)를 지명한 것을 비웃는 내용으로 저런 애송이를 부통령 후보라니 가소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반면 공화단 후보인 닉슨은 자신의 약점인 공개 토론대신(1960년 닉슨은 존 에프 케네디와 토론에서 발려서 패배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TV 광고를 통한 자신으 비젼을 이야기하는 포지티브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사했다.

휴버트 험프리는 네가티브한 전략으로 일관한 끝에 1968년 미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지지수에는 0.42%로 뒤졌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301대 191로 대패하게 된다.

Spiro Agnew was virtually unknown when Richard Nixon selected him to be his vice presidential running made in 1968. Agnew had only been governor of Maryland for two years and his opponents ridiculed his lack of experience. This Hubert Humphrey attack ad features nothing but uncontrollable laughter as Agnew’s name appears on screen. It’s simple, it’s shocking and it’s intimidating — who wants to vote for the inexperienced candidate everyone laughs at?

8. 1952년 아이제아워의 I Like Ike

1952년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의 아이제하워와 민주당의 스티븐슨이 경쟁하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고 스티븐슨은 일리노이주지사로 지성적이며 웅변가이면 정치가로 유명했다.

아이제하워의 광고 캠페인은 마케팅에서 USP이론을 주창한 Rosser Reeves로 대통령 선거사상 처음으로 TV 광고를 활용하고 아이크(Ike)로 널리 알려진 “I like like”슬로건을 내세룬 캠페인을 전개해 선거에서 대승을 이끌었다.

이 광고는 처음으로 TV에 방영된 첫번째 선거 캠페인광고로 기록되어 있다,

이빙 베르린이 작사하고 원드 디즈니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를 활용해 경쾌하고 호소력이 있다.

Time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Dwight Eisenhower was a lucky man. For the 1952 Presidential campaign, Irving Berlin wrote his campaign song and Walt Disney Studios made one of his television ads — which were the first campaign ads aired on TV. The minute-long spot is upbeat and cute and it features a cartoon elephant. What more could a candidate ask for?

The “I Like Ike” animated television commercial, produced by Roy Disney and Citizens for Eisenhower-Nixon.

9. 1972년 The McGovern Defense

1972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과 공화당 현직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경합하고 있었다.

사우스 다코다주 상원의원인이었던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은 닉슨에 맞서 반전 운동을 전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닉슨의 공화당은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대외정책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인식을 적극 활용해 맥거번을 급진좌익극단주의자로 몰아가는 네가티브 전략을 고수했다.

이런 닉슨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조지 맥거번은 선거에서 총투표율에서 23.2%차이로 대패했다,

아래 광고는 조지 맥거번의 국방비를 축소하려는 국방 공약에 대해 이는 미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네가티브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호응을 얻었고 닉스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아래는 Time의 설명

When South Dakota Senator George McGovern won the 1972 Democratic nomination on an antiwar platform, Richard Nixon used his calls for troop withdrawal and a reduction in defense spending against him. Attack ads are rarely lighthearted, but this one went with bark instead of bite. Don’t vote for McGovern, it warned, or he’ll steal your toys and cut your military in half.

10. 1960년 케네디 송 JOHN KENNEDY CHAMPAIGN SONG

1960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 후보로 존 에프 케네디가 공화당 후보로는 리차드 닉스 부통령이 지명되었다.

선거 초반 우세를 지키던 닉슨은 당시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지지를 확고히 받지 못하고 처음 실시된 TV 토론에서 케네디에 발리면서(사실 토론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더 잘했다고 평가했으며 TV로 본 사람들은 케네디가 더 낫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어쩌면 내용면에서 닉슨이 좋았는데 TV로 급속히 이행하는 시점에서 케네디의 비주얼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맞을 듯) 성거인단 득표에서 219표를 얻어 303표를 얻은 케네디에 대패한다. 물론 총득표수로 계산하면 49.55% vs 49.72%로 크게 밀리지는 않았다.

아래 광고(?) 케네디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케네디 캠페인송이다. Time은 이 송에 대해서 호소력있고 반복적이고 쏙쏙박히는 단어들로 시트콤 템마 송처럼 머리에 박혀 며칠동안 떠날지 않을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아래는 .livingroomcandidate.org에서 퍼온 설명이다.

In 1960, America was enjoying a period of relative prosperity. With the exception of the stirrings of the modern civil rights movement, domestic turbulence was low, and the primary foreign threat seemed to be the intensifying Cold War. Fidel Castro came to power in Cuba in 1959, and installed a Communist regime just ninety miles off the coast of Florida. In May 1960, an American U-2 spy plane was shot down inside the Soviet Union, further intensifying tensions between the superpowers. The Republican nominee, Vice President Richard Nixon, was enjoying a growing reputation for his foreign policy skills after his televised “kitchen debate” with Soviet Premier Nikita Khrushchev in 1959. The Democratic nominee, charismatic Massachusetts Senator John F. Kennedy, was attempting to become the first Catholic president and, at age 43, the youngest man ever elected to the office. Nixon argued that he had the maturity and experience to deal with the Communists, while Kennedy attempted to turn his youth into an advantage, proclaiming in his acceptance speech at the Democratic convention, “We stand today on the edge of a new frontier.”

1960 KENNEDY VS. NIX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