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문명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전염병의 역사속에서 전염병을 막는 과정에서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기사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예일대학의 역사가 프랭크 스노우든 (Frank Snowden) 의 견해를 빌어 전염병이 어떻게 문명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기사를 냈습니다.
원래는 이 기사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시사를 준다고 해서 읽어보고 번역했는데요.
아쉽게도 저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망에 대한 직접적인 시사점을 얻기보다는 전염병 관련 역사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정도에 그친 것 같습니다.
인류가 전염병을 극복하면서 다양한 솔류션들을 고안해 내었고, 전염병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사회 체제나 문명을 만들어 왔듯이 이번 코로나 팬데믹도 이를 극복한 새로운 솔류션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울러 코로나 팬데믹 또는 코로나19 전망 등과관련해 아래 글들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FP] 세계 석학 12명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전망 – 중국 중심의 세계화 가능성
[MIT Tech Review] 코로나 판데믹으로 감시 시스템이 보편화 된 뉴 노멀이 온다
[FT] 유발 하라리 경고,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좌우할 2가지 선택
[WP] 새로운 코로나 경제, 일하는 방식과 삶의 방식에 대한 거대한 실험
[Atlantic] 코로나 팬데믹은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by 에드 용
[WSJ] 코로나 팬데믹 이해 – 어떻게 전염병은 문명을 바꾸는가?
한국 코로나19 전략을 멋지게 설명한 강경화장관의 BBC인터뷰 번역
코로나19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 4가지와 비지니스 기회, 중국 사례 기반
전염병이 문명을 바꾸는 방법
How Epidemics Change Civilizations
예일대학의 역사가 프랭크 스노우든 (Frank Snowden)은 14세기에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조치들이 미국 당국이 코로나19와 싸우는 것을 돕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를 팬데믹 관점에서 보려면, 1665년 대유행성 전염병이 런던을 강타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예일대학의 역사가 프랭크 스노우든(Frank Snowden)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역과 상업은 신속히 폐쇄되었고 “모든 경제 활동은 사라졌습니다.” 시 당국은 환자들을 격리하기 위해 병원을 세웠습니다.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당시 런던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약 10만명(오늘날로 따지면 거의 2백만명에 해당)의 런던 주민이 사망했습니다. 스노든씨는 일부 런던 주민들은 “템즈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들은 공포와(림프절에 염증이 생기면서)고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폐스트(bubonic plague)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점염병을 통제해야할 당국이 도망 가면서 사회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죽음의 수레(Death cart)”운전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받고 시체를 수집하고 유료로 모으고 때로는 생존자들의 재산을 약탈했습니다.
스노든(Snowden)은 2019년 10월 출간한 그의 저서 “사회의 전염병 : 흑사병(the Black Death)에서 현재까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 도시에서 전염병 창궐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 탈선’이 발생했습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흑사병(the Black Death)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감염성 질병과 그것들의 사회적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시의 적절해 보입니다.
나는 스카이페(Skype)로 올 73세인 스노든(Snowden)을 인터뷰했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에 있었고 그는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는 바티칸 기록 보관소에 조사하러 갔습니다.
중세 흑사병 대응 방안의 상당수가 현재에도 적용
14세기 중반 이탈리아는“흑사병으로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었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이곳 이탈리아는) 21세기에는 코로나19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과학은 벼룩 및 쥐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을 공중 보건 문제에서 (문제가 없는) 공백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잠재적인 에어로졸화된 생물 무기(biosolaized)로 전환이 여전히 우려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에 대한 도전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현대 서양의 모든 생물 의학 분야에서 잘 이해되지 않은 질병에 대한 무딘 대처 도구는 14세기에 처음 시도 된 방법들과 비슷합니다. 격리하십시오.
격리
수백만의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늦추기 위해 각자의 집에 격리되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방어로서의 격리는 베니스와 피렌체의 도시 국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페스트는 1347년 상선을 타고 이탈리아로 퍼졌습니다.
당시 (페스트에 대응하는) 가장 지배적 인 이론은 “공기가 중독되었다는 독기론(miasmatism)”입니다.
방문객들의 옷을 통해 공기가 중독되었고 사람들은 숨을 쉬거나 또는 모공을 통해 흡수할 때 병에 걸린다고는 주장입니다. “즉, 발산이 있고, 그것은 흙이나 또는 아픈 사람들의 몸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 후, 베네치아 해군은 항구에 도착한 선원들을 근처 섬에서 하선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섬에서 그들은 40일동안이나 머물렀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질병에 걸린 벼룩이 사라지고 병자가 사망하거나 회복될 때까지 시행되었습니다. 스노든(Snowden)은 지난 2월 초 중국 우한에서 돌아온 미국인들은 “검역 기간 동안 40일이 아닌 14일동안 군대 기지에 갖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미 르네상스 역사에서 여러가지 현대 건강 관리 측면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입니다.
전염병 의사 의상
또 다른 예는 의사가 착용하는 왁스 “전염병 의사 의상(plague costume)”입니다.
그것은 에볼라 치료하는 병원에서 볼 수있는 보호복인 현대 의료 복장이나 우주복과 비슷하지만 공명 약초기가 들어있는 긴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호흡하는 공기를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노든(Snowden)은 이러한 의상이 실제로 (의사를) 보호 역활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왁스는 이 병에 걸린 벼룩을 퇴치했기 때문입니다.
전염병 예방 노력은 유럽인과 정부와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스노든(Snowden)은 “플로렌타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건강 위원회나 보건부라고 부르는 것의 조상인 건강 관리관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그들은 전염병 대책을 주도하고 조율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물리적인 봉쇄
전염병은 군사적 공격보다 더 손상을 입혔고, 그 격렬함속에서 종종 호전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가지 대응은“위생적 저지선(sanitary cordon)” 또는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도시 국가를 군인들과 둘러 싸 봉쇄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노든(Snowden)은“자신이 살고있는 도시를 상상해 보세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총검과 핼맷을 착용한 주 방위군에 의해 포위되고, 만약 도시를 나온다면 사살하겠다는 경고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세요.”
전염병 위험이 있는 시기에 유럽 도시에는 코르돈(Cordons)이 정기적으로 부과되어 테러와 폭력이 발생했습니다.
18세기에 오스트리아 군대는 “선폐스트(bubonic plague)가 발칸 반도에서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치 되었다”고 전염병을 옮길 수있는 여행자들의 이동을 막았습니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 1929-2008)는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면서 국경과 관료주의가 군사적 갈등 대응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스노든(Snowden)은 전염병에도 (전쟁과) 비슷한 영향을 미쳤으며“군사적 헌신, 행정, 재정 및 그 밖의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방역을 위한 해군 이외에도 광역 지역에 대한 관리를 위해 독점권 인 경찰력이 필요했습니다. 때때로 “감시병들이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 집 밖에 배치되었고, 아무도 출입을 혀용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는 세계화의 취약점을 건들이다
그러나 전염병이 마을과 도시 국가에서 수도로 이동한 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초 국가적 단위로 국가에서 국가로 급속히 이동하도 있습니다.
이는 회원국들이 자체적으로 대응하고있는 유럽 연합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EU 내 개방된 국경이 폐쇄되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의료용품 수출이 제한되었습니다.
베이징은 이미지 보호를 시도하고 미국인들은 의료 공급망에 대한 접근에 대해 걱정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화의 경제적, 정치적 취약점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고 스노든은 이야기 합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화의 질병”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빠른 항공 여행, 관광객의 이동, 난민, 모든 종류의 사업가, 모든 종류의 연동 네트워크에 의해 밀집되어 연결되어 있는 도시에서 가장 심각”합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사회적 역학(The social dynamics of a pandemic)은 누가 가장 영향을 받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콜레라는“사회적이고 계급적인 긴장과 혼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고 스노든은 이야기 합니다. 악성 위장 감염(A vicious gastrointestinal infection)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이있는 혼잡한 도시 주택가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나폴리를 생각해 볼 수도 있고 19세기 뉴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 공무원, 당국, 의사, 사제, 중산층, 부유층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고 이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콜레라 기원에 대한 음모론이 퍼졌고, 노동 계급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선폐스트(bubonic plague)가 영국 식민지 인 인도를 강타했습니다. 영국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염병 대책들을 총 동원해서 이에 대응했습니다.
“극단적인 권력과 권위를 엄격하게 행사한 것이지만, 식민지 정부가 원주민을 상대로 한 조치”라고 스노든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인도사람들은 이러한 조치를 전염병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으로 간주하고 저항했습니다. 영국은 이러한 저항이 현대 인도 민족주의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스노든 박사는 호흡기 바이러스는 사회적으로 누구인지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감염시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화에 기반한 코로나19는 엘리트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톰 행크스와 보리스 존슨 영국 수상에 이르기까지 자주 여행을 다니거나 여행자와 연락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감염되었습니다.
이는 세계화된 도시를 기반으로 한 민주당이 집중적인 대응을 요구함에 따라 미국에서 정치적 반응이 커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인) 자유주의적 전문가들은 또한 재택 근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공화당 유권자들은 코로나19 감염이 많은 밀집된 지역에 살 가능성이 적으며, 지금까지 극적인 대책에 대한 수용력이 떨어졌습니다.
콜레라를 막기 위한 파리 설계
전염병(Infectious disease)은 물리적 풍경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스노든은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가 파리를 재건할 때, 그의 목표중의 하나는 콜레라를 막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아이디어 중의 하나가 태양과 빛으로 ‘중독된 공기(miasma)’를 분산시킬 수있는 넓은 대로를 만드는 것 이었습니다. 또한 주택 건설, 건축 방법, 청결 표준에 대한 규제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만약 호흡기 바이러스가 서구 생활에서 지속적인 삶의 특징이된다면 나폴레옹 3세와 마찬가지로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대중 교통 및 구역 설정 변경도 시행 될 수 있습니다.
스노든은 호머의 ‘일리아드(Iliad)’에서 구약(the Old Testament)에 이르기까지 고대 문학에서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 벌을 받는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베네치아 교회는 회개를 보여주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스노든은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채찍질하며 “40일간의 회개, 자축, 기도의 행렬”에 나서게 될 14, 15세기의 플라젤란트(Flagellants)들을 강조합니다.
스노든은 전염병에서 살아남은 유럽인들은 “언제든지 경고없이 타격을 받을 수있다”는 생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므로 불멸의 영혼(immortal soul)에 집중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림에는 종종“모래가 떨어지는 모래 시계, 시들어가는 꽃”과 같은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코로나19 여파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극복될 것
코로나19는 훨씬 더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현대 세계의 복원력에 대한 믿음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스노든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모든 전염병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는 진정한 자신감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만성적이고 유전적인 질병은 남아 있겠지만 “감염, 전염병, 유행병은 과학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특히 1997년 조류독감 발생은 “더 많은 전염병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호흡기 감염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는 서구 세계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코로나 팬데믹은 그 여파로 어떤 정치적, 경제적 각인점을 남길지 말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스노든이 말하듯이,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들은 종종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증명과 메커니즘을 가진 끔찍한 전염병을 막았습니다.
오늘날 과학은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성은 또한 14세기 베네치아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