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전쟁, 농심은 어떻게 라면시장을 장악했을까?

Updated on 2017-09-15 by

여기서 소개하는 사례는 ‘전쟁에서 경영전략을 배우다’라는 책에서 소개한 농심라면이 어떻게 삼양라면을 제치고 마켓 리더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그 책에서 사례의 내용 대부분을 가져왔으며 일부는 이해를 돕기위해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장점유율 그래프나 관련 이미지는 인터넷을 찾아 이해를 쉽게 편잡하였습니다.

이 사례에서 끊임없는 혁신제품만이 시장 우위를 지키고 어떤한 경영환경하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필수 요소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R&D 센터를 세우고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을 통해 혁신을 거듭했던 농심은 절대 강자인 삼양을 무너뜨리고 시장 리더가 되었지만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히고 과거 브랜드 유산에 기댄 삼양은 혁신 신제품으로 공략하온 농심과 저가격으로 공격하는후발주자들 사이에서 견디지 못하고 존재조차 희미한 업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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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신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한 농심..

1970년 롯데공업은 국내에선 닭고기보다는 소고기를 더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소고기라면을 출시 한다. 이에 삼양라면은 ‘쇠고기라면’을 출시해 맞불을 놓았다. 이 소고라면 덕분에 롯데공업의 시장점유율은 10%에서 22.7%로 뛰었고 매출역시 20억원에서 37억원으로 올라섰다.

소고기라면으로 탄력을 받은 롯데공업은 1975년 ‘형님먼저 아우먼저’로 유명한 농심라면을 출시해 인기를 끈다. 농심라면의 인기를 바탕으로 1978년 사명도 롯데공업에서 농심으로 바꾸고 삼양식품과 본격적으로 경쟁에 돌입한다.

이런 경쟁사의 약진에도 삼양라면은 꿈적하지 않고 신제품 개발에도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적을 얕본것이다. 이제는 농심이 아무리 필사의 노력을 해도 과반을 넘는 삼양의 압도적인 위치는 별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절치부심한 농심의 반격이 날카로워졌다. 그동안 만년 2위를 벗어나기 위한 농심의 노력 부단한 신제품 개발이 연구개발(R&D) 역량 축적으로 이어졌고 이 역량이 제품 경쟁력의 형태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2년 출시한 너구리가 대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너구리는 프로야구 원년에 전무후무한 다승의 기록을 세운 장명부 투수(삼미 슈퍼스타즈)의 별명이었는데 재일교포인 그가 생긴것도 수더분하고며 경기도 매우 영리하게 이끈데서 나온 별명이었다.
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고 여기에 ‘오동통통 너구리 한마리 몰고 가세요’라는 센스있는 광고 카피를 더해 거둔 성과였다.
본격적인 용기면인 ‘육개장 사발면’도 이무렵 출시되어 라면 시장의 근본 구조를 바꿀 조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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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83년 9월에는 안성탕면이 나왔는데 농심은 이 제품에 전통적인 탕맛을 라면으로 재현하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주일, 강부자 둥의 인기 광고 모델을 내세워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비자득은 이 안성탕면을 원조 삼양라면의 본격적인 대체품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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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 1984년 농심 최초의 짜장 라면인 짜파게티를 내놓있다. 이 제품도 ‘일요일엔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카피로 앞세우고 대대적인 광고 및 판촉에 나서 롱런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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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86년 10월 농심의 최고 히트작인 신라면이 출시되었다. 신라면은 맵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입맛을 겨냥한 것이었느데 강렬한 붉은색 포장에다 광고에서도 매울 ‘신’이라는 한자를 교육시키며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
‘깊은 맛과 매운 맛이 조화된 얼큰한 라면’이라는 컨셉을 가진 신라면은 상품기획 검토 당시 내부 시식행사에서 ‘너무 맵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어서 출시가 불투명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당시 신준호회장은 “오히려 매운 맛이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제품 출시를 강행했다고 한다. 신라면의 신은 신준호회장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신 회장은 신라면의 이름과 포장 디자인까지 챙기면서 신라면 출시를 독려했다고 한다. 신라면은 출시해 라면 역사에 한획을 그은 제품이 되었다. 2조원 라면시장에서 거의 5천억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그 자체로만 라면시장의 25%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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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안일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삼양.

그러나 이 시기에 삼양의 대응은 미지근했다. 사업 초기 공격적인 가격정책과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통해 성장한 회사답지않게 원조 삼양라면의 건재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농심의 신제품에 대항해 신제품을 몇개 내놓긴 했으나 그동안 제품 개발을 등한시한 탓인지 제품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이마저도 효과적인 광고 미케팅 전략과 접목시키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이 시기 항상 농심이 어떤 제품을 내놓으면 삼양이 맞불을 놓는 미투 제품을 가까스로 뒤따라 내놓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는 삼양이 농심에게 조금씩 시장점유울을 잠식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시기 삼양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일들이 벌어졌다. 1980년 중반 신규업체들이 라면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1983년에 야쿠르트에 이어서 1985년에는 청보식품이 새로 라면시장에 진입했다. 이들 후발업체는 시장 교두보 확보를 위해 저가정책으로 밀고 나갔고 이것이 삼양의 시장점유율을 더욱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농심은 다양하고 차별화된 제품군으로 후발업체들과의 가격전쟁을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었으나 기존 방식의 라면에 주력해온 삼양으로로서는 이 압박이 크게 작용할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1985년 농심은 라면 시장점유율 40.4퍼센트를 기록하며 39.6퍼센트에 그친 삼양식품을 추월하며 업계 1위 업체가 되었다. 야쿠루르 12.8퍼센트 청보 7.2퍼센트등 후발업체도 나름 공고한 입지를 확보하면서 삼양의 입지를 더욱 좁혔다.

그 다음해에는 전술한대로 신라면을 출시하면서 농심은 완벽란 1위업체로 올라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게다가 같은 해 빙그레가 라면시장에 진입하면서 삼양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역활을 했다.

1988년 드디어 농심은 사리곰탕면이라는 신제품을 내놓은것과 함께 시장점유율 50퍼센트를 넘어서는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한때 라면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삼양을 완벽하게 2위로 밀어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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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수세에 몰린 삼양에게 비수를 꽂는 사견이 터졌다. 1989년 ‘우지파동’이 그것이다. 검찰이 삼양이 공업용 우지를 수입해 라면제조에 사용했다고 기소한 것이다. 거의 10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무죄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삼양은 이사건으로 인해 심한 기업 이미지 손상을 입어 매출이 곧두박질치는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불매운동 등으로 서울 도봉동 공장도 한때 폐쇄되기도 했었다. 삼양의 시장점유율은 10퍼센트 중반으로 밀려버려 한때 농심이 만년 2위로 서러워했던 위치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삼양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외환위기의 와중인 1998년에 채권단과 화의에 들어가 파산의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다. 놈심이 그 이후에도 부동의 1위를 유지해온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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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이래 라면업계에서 절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던 삼양이 만년 2위이던 농심에게 역전을 허용한 근본적인 이유는 승자의 안도감과 안이함일 것이다. 1970년대까지 20년 이상 유지해오던 부단한 신제품 개발로 안간힘을 쓰던 2위업체의 추격 노력을 과소평가하면서 거의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신제품 출시의 경우에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여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단순히 2위 농심의 신제품 출시 후 맞불을 놓는 제품 출시를 했을 뿐이다. 추월을 당하기까지는 아마도 주력제품인 삼양라면의 과거 성공이 너무 커서 이 회사 경영진들이 이에 안주하려는 마음가짐에 사로잡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0년대 중반이후 시장에서 큰 히트를 친 삼양의 신제품을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방증된다. 만양 삼양의 경영진들이 농심의 도전을 심각하게 여기고 연구개발 노력을 배가하여 시장을 흔들는 제품을 계속 내어놓았다면 이후 농심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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