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시장의 진출한 혼다의 우연한 혁신사례 2008/01/30 21:42 http://blog.naver.com/favedesign/20046675056에서 퍼온 자료입니다.. |
1959년까지 혼다는 오토바이 산업에서 일본의 선두기업이었으며 혼다의 50CC 소형엔진을 장착한 슈퍼컵은 일본 오토바이 시장의 절반이상을 장악했다. 혼다는 자국에서 오토바이 판매에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1960년대 4%를 미국에 수출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6년후 혼다는 미국 오토바이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는 기염을 토했다. 혼다는 어떻게 이런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는가?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1975년 심층적 연구사례 끝에 혼다의 탁월한 경영전략이 성공비결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에 따르면 혼다는 일본에서 인기있었던 소형 오토바이의 경쟁상품이 미국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혼다가 소형오토바이로 성공한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스크립트 싱크” 에 빠진 보스턴컨설팅 그룹이 혼다가 계획을 세웠다고 착각한 것이다.
사실 혼다가 미국 시장을 석권한것은 즉흥적인 방식으로 혁신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이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50cc슈퍼컵이 미국인의 체형에 맞지 않으며, 또 힘들게 노력해서 소량을 판매하더라도 대형 오토바이를
선호하는 미국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혼다가 소형오토바이 사업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두가지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이었다.
첫째. 당시 혼다가 개발한 대형 오토바이용 엔진이 심각한 기술 결함이 있었다.
일본보다 더 빠른속도와 먼거리를 달리는 미국운전자들을 예측하지 못해 혼다가 개발한 엔진은 무리가 갔고 이 문제를 해결할때 까지 판매를 중단하고 판매한 오토바이를 즉시 회수했다.
둘째. LA 근교에서 대형 오토바이를 판매하던 혼다의 경영진들이 개인적인 볼일을 볼때마다 슈퍼컵을 타고 다녔다.
이후 슈퍼컵을 판매하는 곳을 물어보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혼다의 경영진들은 대형오토바이가 재설계되어
출시를 기다리는 동안 일본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소형오토바이를 판매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까지 소형 오토바이를 마케팅하는데 투자하지 않았던 혼다의 CEO는 잠시 주저하다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판매를 허락했다. 이후 소형오토바이는 미국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고, 혼다는 4년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오토바이 가운데 두대중 한대꼴로 소형오토바이를 판매한 것이다.
혼다 효과
혼다효과’란, 기업의 성공이 일견 치밀한 전략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수나 오판후의 새로운 시도, 또는 적응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혼다효과’란 말은 1960년대 미국 오토바이시장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혼다의 성공요인과 관련하여 두가지 상반된 분석이 나오면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 오토바이는, 가죽점퍼를 입은 반항아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있었죠. 당시 미국제품인 Harley-Davidson, 영국의 Triumph 같은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1959년 혼다가 미국에 진출하면서 “혼다를 타면 좋은 사람들을 만납니다”(You Meet the Nicest People on a Honda)라는 친근한 광고문구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죠. 이어 혼다는 60년대 중반에 미국 소형 오토바이시장의 3분의 2를 석권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영국산 오토바이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49%에서 9%로 급락하자, 영국 정부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이에 대한 자문을 의뢰하게 됩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혼다의 성공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1950년대 일본국내 생산확대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60년대에 미국에 진출하여 소형 오토바이 시장에 포커스를 맞춰 공격적인 가격과 광고전략을 구사한 것이 성공요인이다’ 라고 말이죠. 이 보고서는 영국정부의 발표 후, 당시 경영학 사례연구의 단골메뉴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논리는1984년 California Management Review에 실린 논문에 의해 무참히 깨어지게 됩니다. 논문의 저자는 6명의 전직 혼다 임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혼다의 미국진출에는 치밀한 전략보다는 시행착오나 우연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진출 초기에 혼다는 중대형 오토바이에 치중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미국은 모든 것이 크고 고급스러웠던 것이죠. 하지만, 오일이 새는 등의 결함이 발견되어서 판매가 중단되고 말았다고 합니다.그런 와중에 우연히 직원들이 심부름용으로 LA시내에서 타고 다니던 Supercubs 라는 소형 오토바이가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형 오토바이는 일본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든 채로, 나머지 한손으로도 손쉽게 탈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인데요, 그 실용성이 바로 미국인들에게 어필한 것이죠.
또, 앞서 말씀드린 유명한 광고카피를 채택하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UCLA의 한 대학생이 과제로 만든 문구를 우연히 발견, 사내회의에서 갑론을박을 거쳐 채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혼다의 성공은, 이미 직원들에 대한 권한 위임, 전 직원의 ‘혼다 정체성’ 공유, 그리고 Waigaya라고 하는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 네이버 지식인 답변 인용
참고로 혼다의 미국 진출 전략을 정리한 글이 있어 아래에 소개해 봅니다.
혼다의 미국시장진출 과정과 현지화 전략
I. 혼다의 개요
혼다의 역사는 48년 혼다 소이찌로가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에서 혼다 기연공업(주)(자본금 100만엔 규모)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혼다의 역사는 한마디로 세계화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어 53년과 54년에 사이타마 공장과 하마마츠 공장을 각각 설립하여 오토바이를 생산하기 시작한지 불과 6년(59년)만에 일본 자동차 업계 최초로 미국 LA에 진출하였다. 이어 61년 서독 함부르크에 유럽 혼다사, 62년 벨기에에 혼다 베네룩스사, 64년 혼다 프랑스 S.A.사, 그리고 65년 혼다 U.K사를 영국 런던에 설립하는 등 세계화 전략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78년에는 혼다 아메리카사(Honda of Ameriac Manufacturing Inc.)를 설립하여 오토바이 생산 거점으로 가동하였으며, 82년부터 일본업체 중 최초로 미국 내 자동차(어코드) 현지 생산을 개시하였다.
이와 같은 혼다의 국제화 전략은 창업자인 혼다가 은퇴한 이후 당시 45세였던 가와시마가 사장으로 취임(73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최근(92년)에는 세계시장을 일본, 북미, 유럽, 기타 해외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서 시장성이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II. 혼다의 미국 시장 진출 배경과 과정
1. 혼다의 미국 진출 과정
58년 혼다는 전세계에 걸쳐 해외시장 진출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그런데 이 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미국으로의 진출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이미 일본 국내시장은 도요타 등 기존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국내시장에서 안정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혼다는 독특한 생존 전략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장 어려운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어느 시장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혼다 특유의 도전의식, 혼다 자체의 기술력 보유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미국 시장이 가장 큰 구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으로의 진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혼다는 59년 미국 시장에서 오토바이 판매를 목적으로 혼다 오브 아메리카(Honda of America)를 설립하였다. 이어 78년 3월 미국에 혼다 아메리카사(Honda of America Manufacturing, Inc.)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초 2륜차의 생산 거점으로 시작하였으나 4륜차 생산에 포석을 둔 혼다의 독특한 전략이었다. 82년 11월 일본업체로서는 가장 먼저 미국 현지 자동차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87년에는 미국 본사에 해당하는 혼다 노스 아메리카(Honda North America)를 설립 운영하였다.
이와 같이 혼다 아메리카사는 미국 현지에서 부품 조달, 제품 디자인 개발, 생산, 판매, 시장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 혼다와 홀로서기를 하고자 애를 썼다. 이것은 일본 혼다와 독립된 경영을 함으로써 현지시장에 적합한 경영을 신속히 하고, 현지 소비자들의 욕구를 최대한 빨리 찾아 이를 만족시켜줌으로써 미국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독특한 국제화 전략이었다.
2. 혼다의 연도별 미국진출 과정
59. 아메리카 혼다 설립(LA지역)
78. 3. 혼다 아메리카사(Honda of AmericaManufacturing, inc,)설립(미국 오하이오주)
80. 1. 혼다 아메리카사 4륜차 생산 계획 발표
2. 혼다제품에 대한 미국 딜러의 신용거래 보조를 위해 Honda of America Finance Co. 설립
82. 9. 혼다 아메리카사 4륜차 공장 완성
11. 혼다 아메리카사 어코드 4도어 세단 생산개시
84. 3. 혼다 아메리카사 4륜차 공장 제 2생산라인 착공
9. 혼다 리서치 오브 아메리카사(Honda Research of America Co.) 설립
85.11. 어코드 3도어 햇치백 생산 개시
86. 4. 혼다 아메리카사 4륜차 공장 제 2생산라인 생산 완공
7. 이 라인을 통해 시빅 4도어 세단 생산 개시
87. 3. 북미 본사(현지 법인) 혼다 노스 아메리카(HNA) 설립
11. 혼다 아메리카사 제 1생산라인에서 어코드 2도어 쿠프 생산 개시
88. 3. 혼다 아메리카사 어코드 쿠프의 대일수출 개시
89. 8. 혼다 아메리카사 East Liberty 공장 생산가동(시빅 생산기지)
91. 혼다 아메리카사 생산 제품(어코드) 유럽수출 시작
92. East Liberty 및 캐나다 Alliston 공장에서 2도어 시빅 생산개시. 이로써 혼다 아메 리카사 연간 60만대 체제 및 현지 생산제품 18개국으로 수출
III. 혼다 아메리카사의 현지화전략
1. 생산체제
혼다 아메리카사의 생산체제는 Marysville 공장, East Libertyrhd장, 엔진 및 부품을 생산하는 Anna 공장 등 3개의 공장체제로 되어 있다.
1) 82년 완공된 Marysville 공장에는 2륜차 및 4륜차, 플라스틱 공장이 있는데, 이중 4륜 차 공장에는 2개의 라인이 있다. 제 1라인(84년 가동)은 3도어 어코드 및 4도어 시빅을 생산하고 있으며, 제 2라인(86년 가동)은 어코드 2도어 햇치백을 생산하고 있다. 85년 연간 145천대 생산되었으며, 현재 360천대 규모로 확장되었다.
2) 86년 완공된 Anna 공장은 엔진 및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서, 시빅 1.5용 및 이륜차 용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89년부터는 어코등용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3) 89년 혼다 아메리카사의 제 2공장으로 완성된 East Liberty 공장은 궁극적으로 Acura 계통(Integra, Prelude, Legend)의 승용차를 생산할 계획으로 설립되었으며, 92년 시빅 150천대를 처음으로 생산하였다.
4) 캐나다 Alliston 공장은 연간 4만대의 4도어 어코드 생산규모로 84년 출발하였다. 88년 8만대 규모(3도어 시빅 생산라인으로 변경), 94년 현재 10만대 규모로 확장되었다.
2. 판매체제
혼다 아메리카사에서 생산되는 어코드 및 시빅은 59년 6월에 설립된 아메리카 혼다 모터 사(America Honda Motor Co.)를 통해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혼다 아메리카사는 판매와 생산을 분리하고 있으나 혼다 아메리카사의 개발 담당 연구자들이 아메리카 혼다 모터사를 수시로 방문하여 영업점의 의견을 듣고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개발 담당 연구원들이 직접 보고 들은 시장의 동향을 기초로 제품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혼다 아메리카사는 소비자 만족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여 최고의 품질추구, 친절과 각종 서비스 제공, 사후적으로 애프터 서비스 및 클레임 처리를 신속 정확하게 하는 등 소비자들의 심리적 배려까지도 행하고 있다.
3. 연구개발체제
혼다 아메리카사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 위해 R&D도 현지화하였다. 즉, 84년 9월에 혼다 리서치 오브 아메리카사를 혼다 기술연구소가 100% 출자하여 캘리포니아와 오하이오주 2곳에 각각 설립하여 혼다 아메리카사의 R&D거점으로 삼고 있다.
4. 현지조달전략
혼다 아메리카사의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는 일본으로부터의 부품 조달이 대부분으로 현지 조달률은 50%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엔진 뿐만 아니라 주변기기 부품의 대부분을 현지 조달하기 시작하여 현지 조달률 비중이 88년에는 66%, 92년에는 75%에 도달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이후 80%이상의 현지조달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지 조달률의 향상은 86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Marysville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현지 부 품업체들로부터 부품조달률을 높이기 시작했다.
2) 86년부터 급격히 이루어진 엔화의 강세로 부품수입비용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혼다 아메리카사는 다음과 같은 4가지 방법으로 부품조달을 하였다.
1) 1차적으로 가능한 미국의 부품업체로부터 부품 조달
2) 미국부품업체와 혼다 아메리카사의 합작투자 혹은 기술제휴
3) 미국 빅 3와 직접적인 부품 조달 관계로 인해 현지 조달이 불가능할 경우 혼다 아메리 카사가 직접 부품회사를 설립운영
4) 이러한 모든 방법으로 조달이 불가능한 부품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부품 수입
5. 공장위치선정전략
가. 공장위치선정 프레임워크
혼다는 미국 시장 진출시 공장 위치를 미국 오하이오의 한 농촌지역으로 선정하였으며, 부품업체를 반경 100마일 이내로 배치하여 원활한 부품 공급을 유도했다. 오하이오주는 미국 주요 산업지역이며, New England에서 Illinois를 연결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 벨트(manufacturing Belt)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혼다의 부품업체들(미국 및 일본 부품업체)은 Kentucky주와 Tennessee주에 있는 도요타 및 닛산의 북미 공장과 연결된 고속 도로에 위치하였다.
미국에 진출한 일본업체 및 현지진출 부품업체들은 다음과 같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 혼다의 협력업체 – 오하이오주
2) 도요타의 협력업체 – 켄터키주
3) 닛산의 협력업체 – 테네시주
4) 다이아몬드 스타 협력업체 – 일리노이주
이와 같이 일본업체들은 서로 다른 주에서 제조업체와 부품업체망을 구성함으로써 Just-In-Time의 이행을 촉진하고 일본업체끼리 중복됨이 없이 현지 노동력을 충분히 이용하였다.
나. 내부공간 프레임워크
혼다 아메리카사의 부품업체들은 주로 Marysville의 서남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를 통해 혼다 아메리카사와 부품업체와의 거리는 최대 2시간(반경 100마일), 부품업체간의 최대 거리도 2시간 이내로 축소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이러한 전략은 혼다가 선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혼다의 적기 공급방식(Honda’s Just-in-Ti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내부공간 프레임워크를 통해 부품업체들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상호간의 동일한 관행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1) 현지 공장간의 적기 공급이 가능 : 반면에 혼다 아메리카사와 거리가 먼 몇몇 미국 부 품업체들은 조달기간(Lead Time)이 길고 납기일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아 혼다 아메리 카사는 최소안전재고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2) 품질통제 : 혼다 아메리카사는 처음부터 완벽한 품질을 강조했는데, 결함이 없는 부품 뿐만 아니라 정확한 양의 선적에서도 완벽을 추구했다. 특히, 혼다 아메리카사는 자주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품업체를 방문하여 재발을 방지하고자 노력하여 80년대 후 반까지 Marysville 공장의 부품 반환율이 0.07%를 기록하였다.
3) 부품가격 인하 : 혼다 아메리카사는 부품업체와 장기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부품업체로 하여금 ‘학습곡선’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여 장기적으로 부품의 결함을 줄이고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4) 공장간의 인적교류 : 부품업체간의 거리를 축소함으로써 특정 부품업체에 근무하던 종 업원이 다른 부품업체로 옮기더라도 이사를 별도로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이를 통 해 숙련된 관리자 및 종업원들의 영구정착 및 임시적 이동이 가능하여 품질상의 문제, 신제품 개발, 경영관리상의 문제점 해결 등에 있어 상호 협조가 가능하였다. 또한 혼다 아메리카사, 1차 부품업체, 2차 부품업체간의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사소한 문제까지도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었다.
5) R&D의 통합 : 현지에 진출한 일본의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중소업체였기 때문에 재정 적으로 R&D 능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혼다 아메리카사는 35~40개의 일본 현지 부품업체와 함께 어코드 모형의 디자인 및 개발에 공동 R&D 노력을 기하기도 하였다.
반면 혼다 아메리카사와 부품업체간의 거리가 짧음으로써 발생되는 문제점도 있었다. 즉, 현지 부품업체들은 혼다 아메리카사와 많은 부문에서 공유를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들이 혼다 아메리카사의 종업원들보다 적은 보수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혼다 아메리카사와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한 부품업체일수록 임금 격차는 심화되었다.
6. 인력고용전략
혼다 아메리카사 및 일본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현지인을 고용하였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부류에 속하는 일본인도 일부 고용되었다.
1) 자동차에 대해 경험이 많고 혼다 방식에 능통한 일본인
2) 북미지역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
혼다 아메리카사 고용전략상 가장 큰 관심은 일본 경영기법의 북미 이전이었다. 일본 근로자들의 사고방식은 노조는 불필요하고, 기업의 목표가 개인의 목표보다 상위에 있으며, 예측되지 않은 잔업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미 현지 근로자들은 일본인들을 로봇, 혹은 개미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혼다 아메리카사는 이런한 불안감 때문에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미국에 현지공장 부지선정에 고심하였으며, 공장설립을 오하이오주의 Marysville로 선택했다. Marysville의 주민들은 일본인의 사고방식과 흡사한 점이 많았으며, 이곳의 지역적 특징은 일본과 비스한 점이 많은 곳이었다.
혼다 아메리카사는 다음과 같은 4가지 고용 전략을 사용하였다.
1) 혼다 아메리카사와 현지 부품업체간의 임금 격차로 인한 부품업체의 종업원들의 이탈 을 막기 위해 혼다 아메리카사는 첫째, 부품업체에 한번 고용된 사람은 혼다 아메리카 사에서 절대 고용하지 않았다. 둘째, 혼다 아메리카사에 입사를 원한 사람들의 지원서를 장기간 유지하여 혼다 아메리카사 입사를 기다리지 못하여 부품업체에 고용된 사람이나 입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절대 고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정책은 일본식 장기 고용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기도 했으나 부근에 또다른 고용시장이 없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2) 현재는 공장을 폐쇄하여 생산기지를 멕시코로 이전한 대규모 미국 업체의 노동조합의 관리자를 고용함으로써 노동조합이 있었던 업체에서의 폐해를 막도록 유도하였다.
3) 대대적인 광고나 인터뷰를 통해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변호사에 의해 추천된 미국인 관리자를 고용하여 혼다 아메리카사의 연락책으로 이용하였으며, 이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정책을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 를 형성하였다.
4) 혼다 아메리카사는 참을성이 있고 자기제어를 할 수 있는 성실한 고등학교 졸업자를 선호하였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성실하기 때문에 결근율이 낮고, 이직률이 낮을 것이라 고 혼다 아메리카사가 판단했기 때문이었으며, 나이든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이것 은 나이든 사람들의 경우 은퇴 후 퇴직금 등 각종 비용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7. 교육훈련전략
혼다 아메리카사의 교육전략은 주로 다음과 같은 혼다인을 양성하기 위해 현지 고용인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실시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기술교육 훈련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혼다 아메리카사가 실시한 정신교육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장기가 근속 장려
2) 경쟁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업의 변화와 더불어 자신을 기꺼이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 \
3) 사고와 행동을 폭넓고 깊이있게 할 수 있는 인간상
그리고 혼다 아메리카사는 종업원들의 기술교육을 위해 88년 Marysville에 ADC(Associate Development Center)를 개관하여 운영하였다.
8. 임금전략
혼다 아메리카사는 다음과 같은 2가지 방법으로 임금인상을 하였다.
첫째, 모든 종업원들에게 정기적인 임금인상을 하였다. 특히, 처음 입사한 종업원들에게는 18개월동안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여섯 번의 기본급을 인상하여 그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였다. 또한 6개월을 주기로 정기적인 임금 인상을 하여 혼다 아메리카사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은 미국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에 비해 기본급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둘째, 회사의 규칙(특히, 출근율에 의해 결정됨)을 잘 지킨 종업원들에게 인센티브차원에서 보너스를 지급하였다.(매년말 정규 급여의 5%) 특히, 혼다 아메리카사는 출근율에 대해 매월 집계하여 보너스를 지급하였다. 예를 들어 종업원이 1일 무단 결근시 매월말 정기 급여에서 150달러를 제외하였고, 출근율이 100%인 경우에는 일정 비율의 보너스를 지급하였다.(87년에는 2.8%, 91년에는 6%를 받음) 결국 혼다의 급여체계는 ‘기본급+금전적 보상’이었다.
9. 노사전략
혼다 아메리카사의 종업원들은 고용인(Employees), 종업원(Workers)이라는 용어대신 동료(Associates)라는 용어로 불리워졌다. 혼다 아메리카사는 종업원들이 동일한 혜택을 공유하고, 동일한 음식, 동일한 복장, 동일한 휴가 등 동일한 지원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종업원들의 고충은 고용인이 어떠한 부서 및 위치에 있든지 상관없이 직접 관리자들과 상의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80년대 초부터 미국 빅 3의 생산 종업원을 대표하는 미국 자동차노조(UAW:United Automobiles Workers)는 혼다 자동차 종업원들의 지지를 얻고자 애를 썼다. 이에 대해 혼다 아메리카사의 경영진은 종업원들이 UAW를 지지하지 못하도록 고심을 하였다. UAW는 85년 Marysville에서 사무실을 열고 노조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는데, 86년 노조 캠페인은 실패로 돌아갔다.
혼다 아메리카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노조 활동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1) UAW가 지지자들을 얻기 시작하자마자 혼다는 UAW에 가입하지 않은 새로운 근로자 를 고용하여 UAW의 근로자 비율을 계속 감소시켰다.
2) 생산시설을 계속 확장하여 UAW에 가입한 사람을 계속 이동 근무시킴으로써 UAW의 확산을 방지하였다.
3) 미국 빅 3에 있는 UAW의 근로자들을 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 UAW의 가입을 의미없 도록 만들었다.
4) 고충처리, 불만족 요인을 상시 체크하여 개선을 시키고자 노력하였다.
5) 노동관계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관리팀을 만들어 혼다 아메리카사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 및 해결 방안에 대한 대처를 하였다.
이러한 혼다 아메리카사의 노력은 UAW에 대한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면에 UAW는 혼다 아메리카사의 이러한 노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이로써 UAW가 혼다 아메리카사에서 대대적인 노조결성을 하고자 했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와 같은 임금전략 및 노사전략을 통해 혼다는 종업원들의 평생 직장이 될 수 있는 암묵적인 약속과 지원을 하였으며, 그대신 종업원들은 규칙적인 출근과 소비자들의 만족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의무를 지도록 유도하였다.
10. 일본인 및 미국인에 대한 관리전략
혼다 아메리카사의 일본인 스텝은 주로 제조 기술, 생산조직에 대한 통제를 하였고, 미국인 스텝은 전반적인 공장 관리, 생산근로자들의 1차적 관리를 주로 하였다. 그런데 미국 관리자들은 일본 관리자들의 폐쇄성에 많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그들의 불만은 중요한 회의시 일본인 관리자들은 일본어로만 회의를 진행하고, 일본 관리자들만 모여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미국 관리자들은 일본인들의 직업관(직업=삶)에 회의를 느껴 혼다 아메리카사를 이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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