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테마변경은 워드프레스 관리자 보드에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처리되어서 아주 쉽게 할 수 있지요.
그럼엗 불구하고 database에서 변경으루 거론한 이유는 이게 필요한 특수한 케이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테마와 이젯이나 다른 플러그인과의 충돌로 사이트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며칠전 저의 경우가 그 경우인데요. 테마의 CSS를 조금 건들였더니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더군요. 그래서 이를 되돌리려 CCS 코드를 원래로 돌리고 여러가지 작업을 했지만 이상하게 작동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삽질을 3~4시간 정도 한 후에야 정상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워드프레스가 상당히 안정적이긴하지만 테마와 플러그인간의 충돌은 많이 거론되는 내용이라 외국의 경우는 database에서 테마 변경에 대한 질문이 많이 올라오고 이있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이 방법을 확인했고 한국 유저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공유드립니다. (한글로 관련 내용을 찾았는데 마땅한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2. Database 중 wp_option으로 이동합니다.
Database에서 테마를 변경하려면 아주 기초적이긴하지만 phpMyAdmin을 사용할 줄 알고 SQL 문구를 실행할 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것이 아니므로 필요하다면 용기를 내서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Database를 변경시키는 것이므로 반드시 Database backup을 두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database로 들어갑니다.
C-panel을 쓰는 경우 C-panel에서 phpMyAdmin을 선택해 눌러 들어갑니다.
워드프로세스 Database중 테마변경과 관련 항목은 wp_options에 있으니 거기로 이동합니다..
3. Theme에 해당하는 항목을 찾습니다. – 'template'과 'stylesheet'
테마를 변경하려면 아래 세가지가 변경되어야 합니다.
template – 테마 이름은 style.css에서 정의되어 있습니다.
stylesheet – 테마가 들어있는 실제 폴더 이름입니다.
current_theme – 테마가 들어있는 실제 폴더 이름입니다.
그러면 wp_option에서 위 해당 항목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봅니다.
찾을 항목은 'template'과 'stylesheet' 등인데요. 이들이 어디에 있느냐를 찾는 것이지요.
쿼리 문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DB가 얼마 안되면 그냥 눈으로 찾아도 됩니다. 저의 경우는 41번째에 있어서 쉽게 빨리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가다를 할 필요는 없지요..
SELECT *
FROM wp_options
WHERE option_name = 'template'
OR option_name = 'stylesheet'
OR option_name = 'current_theme';
이 쿼리를 실행 모습니다.
twentyfourteen 테마가 기본 테마로 설정되어 있군요.
4. 테마(Theme)를 변경해 봅시다.
볌경하고 싶은 테마(Theme)가 colormag라고 합시다. 이 테마가 /wp-content/themes/colormag/ 에 위치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변경하는 쿼리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UPDATE wp_options SET option_value = 'colormag' WHERE option_name = 'template';
UPDATE wp_options SET option_value = 'colormag' WHERE option_name = 'stylesheet';
UPDATE wp_options SET option_value = 'colormag' WHERE option_name = 'current_theme';
쿼리를 실행하고 난 후의 모습니다.
확인하기 위해서 2번에서 실행한 쿼리를 다시 돌려볼까요..
이제는 인터넷으로 나가서 제댜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홈페이지가 제대로 작동하고 새로운 테마로 변경되어 있습니다.
5. 글을 마치며
Database에서 자료를 변경해야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하는 일이지만 위급한 상황, 이나 바쁜 상황에서는 DB를 변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아무리 DB를 일괄 변경해주는 것이 가장 빠를 때가 있기 때문이죠..
참고하시고 직업이 아닌 이상 홈페이지를 운영하며서 DB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컨텐츠를 얼마장 ㅅ비자에게 도움이되고 인사이트를 줄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요?
여름이면 흔히 볼수 있는 꽃, 나리꽃입니다. 단아하고 기품이 있지만 너무 흔히 볼 수 있어서대중적인 꽃이기도 합니다.
오늘 식구들과 남한산성 입구에 있는 광지원계곡을 다녀왔습니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다음이라 계곡물은 맑지는 않았지만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줄만 했습니다.
계곡 한 켠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한줄기 나리꽃을 보고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 꽃은 나리꽃중에서 참나리꽃으로 불리우는 7~8월 한국 여름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리꽃은 참나리꽃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나리꽃 구분하기
나리꽃도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구분해야하는지 많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래처럼 간략히 구분해 보았으니 참조하시길..
2.1. 꽃의 피는 방향에 따라 구분
하늘을 바라보는 ~ 하늘나리, 뻐꾹나리
옆을 바라보는 ~ 말나리
땅을 바라보는 ~ 땅나리, 참나리, 솔나리, 중나리
2.2. 이름이 들어가는 단어에 따라 구분
(하늘) 꽃이 하늘을 바라보는
( 땅 ) 꽃이 땅을 바라보는
( 중 ) 꽃이 옆을 바라보는
( 털 ) 줄기에 털이 있는
( 솔 ) 잎의 모양이 솔잎처럼 가는
( 섬 ) 섬지방에 자생하는
▽ 인터넷의 자료를 토대로 나리꽃 졸류를 간단히 테이블로 정리해 보았다. 나리꽃중에서는 솔나리가 가장 이뻐 보이고(분홍이라는 색감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땅나리가 이쁜 것 같습니다. 요즘에 많이 접하는 참나리는 생명력이 강한 아주 강인한 인상을 줍니다. 어디서든 자생할 수 있는 강인한 적응력
미국 광고 역사살 최고의 광고로 손꼽히는 1984년 매킨토시 런칭 슈퍼볼 광고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예전에 '미국 역사상 최고의 광고라는 1984 Apple’s Macintosh Commercial'라는 글을 포스팅했는데요. 여기에 내용을 추가할까 고민하다 추가되는 내용이 훨씬 더 많아 좀 더 체계적으로 내용을 보완하고 에피소드 등을 넣어 새롭게 포스팅 하기로 했습니다,)
이 광고는 1984년 슈퍼볼 시 단 한번 방영되었지만 IBM을 조지오웰의 Big brother로 묘사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하면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습니다. 슈퍼볼의 주인공이 당시 우승한 LA 레이커스가 아니라 애플 매킨토시인것같은 착각이 일었다고 하네요..
여기서도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를 아는 스티브 잡스의 영악함이 잘 드러난다는 생각입니다. (아래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동영상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매킨토시가 탄생한 간략한 시장 배경
간략한 배경은 이전에 작성한 포스팅 내용에 몇가지를 내용을 더해 IBM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 진입 및 이에 따른 Apple의 대응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습니다.
2.1. IBM의 Personal computer 시장 진입
애플2의 성공이후 IBM은 더 이상이 늦으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여 IBM은 시장 진입을 결심하는데 IBM 내부에서는 반대가 심해 신제품을 개발 시간을 1년밖에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Apple처럼 폐쇄적 platform을 구성할 여유가 없었던 IBM은 호환성을 가진 표준 규격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들고 시장에 이미있는 부품과 S/W등으로 사용하는 컴푸터를 만들었고 이러한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제품을 만들 수 있었고 단가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빠른 속도로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
2.2. Apple의 대응
Apple은 처음에는 IBM 개인용 컴퓨터에 대해서 새로운 기술이 하나도 없다고 비난했으며, 1981년 IBM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 진입을 환영한다고 광고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이 인쇄 광고 내용은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으며 애플이 하는 일은 개인 생산성을 높여 사회 자본을 높이는 일이므로 이러한 숭고한 일을 같이하게 됨을 환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광고를 통해서 애플이 거대기업인 IBM에 맞서는 경쟁자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1981년 초 애플의 인지도는 10%에 불과했지만 이해 연말에 가서는 인지율을 80%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IBM의 출시에도 불구하고 애플2의 판매는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IBM은 인내를 가지고 마케팅에 거금을 투여하자 반응이 조금식 나타나기 시작했고 IBM의 표준을 지킨 여러 회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달려들자 Apple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합ㄴ다.
이에 위협을 느낀 Apple은 새로운 신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서둘렀고 IBM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IBM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고성능 제품으로 positioning하기위해 완성되지도 않은 제품을 출시하는 실수를 하고 맙니다.
즉 긴급히 출시한 애플3는 엄청난 버그와 S/W적, H/W적 문제를 야기해 실패작이 되고 만 것이지요.
절치부심한 Apple은 텔레비젼이나 세탁기처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출발해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발전시키고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맥킨토시를 출시합니다.
3. 매킨토시 런칭 광고 소개
여기에서는 맥킨토시를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영상, 미국 광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광고로 일컬어지는 맥킨토시 런칭 슈퍼볼 광고 그리고 맥킨토시 광고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영상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3.1. 맥킨토시와 런칭 광고를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영상
아래는 1983년 10월 애플 연례 세일즈 컨퍼런스(Apple’s Annual Sales Conference in October1983)에서 맥킨토시의 의미와 런칭 광고를 소개하는 키노트 영상입니다.
스티브 잡스 특유의 명확하고 쉽게 이해되는 어조로 시장의 변화 과정과 새로운 맥킨토시 제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게 IBM과 PC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새로운 맥킨토시를 소개하고 이어서 역사에 길이 남을 광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당시 영상중에서 화질 좋은 영상은 없네요. 240p 또는 360p갸 대부분입니다.
▽ Apple Keynote-The "1984" Ad Introduction
아래는 keynote에서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1958년 IBM은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기업으로부터 제로그라피(Xerography)라 불리우는 신기술을 구입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2년후 제록스가 탄생했고 IBM은 스스로 기회를 놓친 것에 후회해야 했습니다.
10년 후 1960년대 후반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외에 여러회사들이 미니 컴퓨터를 발명했습니다. IBM은 미니컴퓨터가 진지한 컴퓨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들의 사업에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IBM이 미니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DEC는 수억달러 짜리 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다시 10년이 지난 1977년 서부지역에서 시작 막 시작한 젊은 기업인 애플 컴퓨터는 애플 2를 소개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2가 소개됩니다. IBM은 이번에도 역시 진지한 컴퓨팅을 하기에는 너무 작다는 이유로 개인용 컴퓨터 사업을 무시하였습니다.
1980년대 초반입니다. 1981년 애플 2 컴퓨터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애플은 3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는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회사라는 것을 뜻합니다. 50개가 넘는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1981년 11월 IBM이 들어옵니다.
1983년 애플과 IBM은 약 10억달러 어치의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면서 업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됩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요 컴퓨터 업체들이 파산하였고 다른 기업들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1983년 전체 업계의 손실은 애플과 IBM의 수익을 합친것도 빛을 잃게 만듭니다.
1984년입니다. IBM이 전부를 원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애플은 IBM에 맞선 유일한 희망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IBM이 처음시장에 진출할때만 해도 판매 업자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IBM 미래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IBM에 두려움을 느끼고 애플을 바라보고 습니다. 그들의 미래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회사는 애플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1984년 미국 슈퍼볼 당시 한번만 방영되었으나 길이 길이 회자되고 있는 맥킨토시의 첫번째 광고 입니다.
이 1분짜리 광고는 광고 대행사인 Chiat\Day (now TBWA\Chiat\Day)가 원래 애플 II를 겨냥해 기획되었던 광고였으나 결국 맥킨토시용 광고가 됩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컨셉트 삼아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명장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고 광고를 만들었는데요. 이 당시 할당된 광고 예산이 70만불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이 출시 광고는 조지 오웬의 “1984”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끼를 든 여인이 경비병의 추격을 뒤로하고 도끼를 던져 스크린을 부셔버리고 소설속의 1984년과 지금의 1984년이 왜 다른지를 이야기하는 스토리의 광고로 IBM이라는 공룡 또는 빅브라더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IBM의 독점을 깨뜨리겠다는 Apple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킵니다.
멕킨토시 런칭 후 4개월동안 $2,495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7만여대가 팔려나갔고(이 당시 시장 상황으로 7만대가결코 적지않은 숫자라른 것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미국 마케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 런칭이 된 것입니다.
3.3. 맥킨토시 런칭 광고의 비하인드 씬
맥킨토시 광고 제작 과정을 담은 Behind the Scenes을 모은 영상입니다. 쉽게 볼 수 있는 영상은 아니라서 여기에서 소개해 봅니다.
▽ Apple's 1984 Commercial – Behind the Scenes
4. 매킨토시 프린트 광고 소개
맥킨토시 관련 프린트 광고 몇개를 소개해 봅니다.
▽ 맥킨토시를 소개합니다.
▽ 맥킨토시의 쉬운 사용을 강조하는 광고가 주류를 이루었는데요. 당신이 손가락만 까딱할 수 있으면 맥킨토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과장 광고긴합니다!!!
5. 맥킨토시 광고의 숨은 이야기
이 역사적인 광고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정리해 봅니다. 어는 프로젝트에서느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은데요. 이 맥킨토시 런칭 광고도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5.1. 잘못하면 방영조차 못한 운영에 처한 맥킨토시 런칭 광고
이렇게 엄청나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매킨토시 광고이지만 광고 방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 광고는 치아트 데이(Chiat Day)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란 슬로건과 함께 기본 컨셉트를 잡았고 1983년 10월 애플 연례 세일즈 컨퍼런스에 선을 보여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위의 내용 중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가여기에 해당되는 내용임)
하지만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를 비롯한 애플 이사진들은 이 광고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였습니다. 그래서 슈퍼볼에서 방영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슈퍼볼에 방영하려고 구매해 놓은 90초 광고 시간을 다시 팔고 방영하지 말라고 지시를 한거죠.
When the lights came back up after the spot played, the room on De Anza Boulevard was silent. Schlein was sitting with his head on the table. Markkula stared in amazement. Murray thought Markkula was overcome by the wonderful commercial until he broke the silence to ask, “Who wants to move to find a new agency?” Sculley recalls, “The others just looked at each other, dazed expressions on their faces…Most of them felt it was the worst commercial they had ever seen. Not a single outside board member liked it.”
The board hadn’t demanded the commercial be killed, nonetheless Sculley asked Chiat/Day to sell back the one and one half minutes of Super Bowl television time that they had purchased. The original plan was to play the full-length, 60-second 1984 spot to catch everyone’s attention, then hammer home the message during a subsequent commercial break with an additional airing of an edited 30-second version.
이에 스티브 잡스와 함게 애플을 창업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강력히 반발합니다. 이사회에서 반대한다면 자비를 들여서라도 슈퍼볼에 방영을 하겠다고… 당시 60초짜리 슈퍼볼 광고를 하기위해 지불한 돈이 $800,000이라고 하네요. 그당시 워즈니악은 그정도의 돈이 있었던것일까요?
▽ 맥킨토시 런칭광고를 슈퍼볼에서 방영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스티브 워즈니악
이런 진통을 격지만 이미 구입해놓은 슈퍼볼광고 90초중 60초는 시가닝 너무 촉박해서 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1984년 1월 22일(미국 현지 시간) 애플 매킨토시의 탄생을 알리는 60초짜리 광고가 방영되게 된 것이죠. 이 광고는 당시 Nielsen 추산 46.4%라는 엄청난 시청율을 기록하면서 매킨토시를 사람들이 회자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 수치를 Nielsen에서 해석하기를 모든 가정의 50%의 남자와 30%의 여자가 봤다고 하는군요. 어마어마한 시청율이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광고가 미국에 센세이셔날한 반응을 일으키자 뉴스에서 며칠이나 애플이 1984 광고를 보도해주면서 엄청난 공짜 광고 효가가지 얻게 됩니다. 1984년 칸 광고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30여개의 상을 수상하는 등 인정을 받아 미국 역사상 최고의 광고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5.2. 누가 여전사 역활을 할것인가? 해머를 던질 수 있는 모델이 없었다…
이 광고 스크립트에서 핵심은 여전사가 달려나와 대형스크린을 향해서 해머를 던지는 것인데요. 이 무거운 해머를 들고 정확히 과녁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모델이 없었습니다.
당시 프로패셔널한 모델 및 배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했자만 적절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죠. 영국 하이드팍크에서 오디션이 진행될 시 해머가 날못 날아가 당시 하이드파크를 걷고 있었던 할머니를 거의 죽일뻔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모델중에 과거 원반 던지기 선수였던 모델을 수소문해 찾게 됩니다. 해머를 들고 어질거리지 않았기에 주인공으로 낙찰이 되죠. 바로 당시 모델이었던 Anya Major였습니다. Anya Major는 멋지게 해머를 던져 스크린을 부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일조하게 되죠..
5.3. 묻힌뻔한 광고 컨셉 아이디어를 잡스가 되 살리다.
1980년초반 애플의 광고 대행사는 레지스 맥케나에서 Chiat\Day (now TBWA\Chiat\Day) 바꾸게 됩니다. 당시 Chiat\Day는 개인을 빅브라더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소설 “1984”에 영감을 얻은 광고를 구상헤 애플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 광고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광고 컨셉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사장될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IBM의 추격에 어떻게 달아나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스티브 잡스는 기존과 다른 혁명적인 광고를 하고 싶어했는데 Chiat\Day의 제안은 스티브 잡스의 마음이 쏙 드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 기획안을 맥킨토시 광고에 활용하기로하고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를 설득해 광고 제작비 74만불을 지출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글라디에이터나 에일리언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이 광고를 맡아 제작하게 되죠..
여기서 사장될뻔한 아이디어를 자신의 비지니스와 연결해 대 성공을 거둔 스티브 잡스의 혜안이 빛나다고하면 지나친 평가일까요?
오늘 소개하는 광고는 삼성 아르헨티나에서 제작한 Samsung Safety Truck이라는 광고입니다.
이 광고는 그 공익성을 인정받아 ‘클리오 광고제’에서 금상(디지털, 옥외부분)을 수상했으며, 2015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Cyber부분 Gold를 수상했습니다.
광고의 배경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르헨티나에는 편도 1차선 도로가 정말 많은데 이 편도 도로에서 덩치가 큰 트럭들이 시야를 가리는 맞은 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추원을 시도하면서 수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삼성전자는 트럭 뒷면에 4개의 대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트럭 뒤에 따라오는 차들이 트럭 뒤편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방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안전하게 추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입니다.
현실 가능성을 떠나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을 첨단 기술을 통해서 없앰으로써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공익적 성격이 짙은 광고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6년 2월 광고가 아닌 실제의 ‘삼성 세이프티 트럭(Samsung Safety Truck)’을 공개하고 시범 운행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세이프티트럭은 볼보트럭에 삼성전자의 스마트 사이니지(Smart Signage) 기술을 적용했다고…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는 문자·이미지·영상 등 다양한 정보를 LCD, LED, PDP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기술이라고 합니다.
항상 어떻게하면 아름답게 담을까 고민은 하지만 항상 지나고나면 아쉬움이 큽니다. 꽃창포를 가지고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보려했는데 그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 꽃창포에 대해서
꽃창포는 붓꽃과로 학명은 꽃창포이고 외국명은 Iris ensata var. spontanea (Makino) Nakai (영) Japanese iris (이명) 참꽃창포, 화창포(花菖蒲),야화창포(野花菖蒲)로 불리죠.
꽃창포는 붓꽃과의 야생화로 햇볕이 많이 드는 습지에서 자라며 짧게 피었다가 빨리 지는 보라색의 예쁜 꽃으로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으로 우리나라에서 주로 자랍니다.
꽃창포 꽃말은 좋은 소식, 심부름, 우아한 마음입니다.
2. 꽃창포와 붓꽃 비교
많이들 꽃창포와 붓꽃을 혼동하는데 간략히 구분법을 정리해 봅니다.
꽃창포
꽃창포는 6~7월에 원줄기 또는 가지 끝에서 적자색으로 피는데 바깥 꽃잎이 3개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밑부분이 황색입니다. 안쪽 꽃잎 3개이며 바깥 꽃잎과 같은 색이고 서로 어긋나게 붙는다. 암술대는 곧게 서고 3개로 갈라집니다.
잎은 아래에서 서로 포개지며 두 줄로 달리는데 잎 가운데의 맥이 뚜렷하여 꽃이 없을 때는 이 맥을 보고 붓꽃과 구별합니다.
꽃창포의 종류에는 꽃창포, 흰꽃창포, 노랑꽃창포, 신꽃창포가 있다. 그 중에서 노랑꽃창포는 그 모양이 붓꽃에 가까워 혼돈하기가 쉽다고 합니다.
붓꽃
붓꽃은 꽃이 피기 전 봉오리를 맺은 모습이 글씨를 쓰는 붓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서양에서는 칼 모양을 닮은 잎 때문에 용감한 기사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랑스의 국화가 되었습니다. 라틴어 속 이름은 '아이리스(Iris)'인데, 아이리스는 무지개란 뜻이다. 이 꽃의 꽃말은 비 내린 뒤에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이라고.
꽃창포(좌)와 붓꽃(우)
3. 꽃창포의 아름다움
이번 호텔에서 담아본 꽃창포이다.
지난 여름 서울의숲에서 담아본 하얀꽃창포
햐얀꽃창초나 노란꽃창포는 꽃잎이 붓과과 비슷해 혼동하기 쉬우나 그냥 한얀꽃창포, 노란꽃창포로 알고 있으면 됩니다.
오래전에 사두었으나 제대로 읽지못했던 에드 캣멀의 '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을 이번 휴가중에 읽기 시작했다.
오랬동안 핸드폰과 PC의 그래픽에 익숙해져있어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가 이야기하듯 몰입하게하는 내용이라 조금씩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에드 캣멀(Ed Catmull)은 컴퓨터에니메이션 공학도로 시작해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겟다는 꿈을 쫓아 토이스토리로 그 꿈을 이루고 픽사와 디즈니의 경영으로 훌륭한 성과를 낸 탁월한 경영자로 성장했는데 그 원천은 조직의 일시적인 성공에 도취되지않고 영속 가능한 성장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랜 통찰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고민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전형적인 덕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길을 끄는 이야기 중심으로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1. 에드 캣멀(Ed Catmull)에 대해서
에드 캣멀(Ed Catmull)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공동 창업자이자 사장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자을 겸임하고 있다.
미 유타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원시절부터 여러가지 혁신적인 컴퓨터 그랴픽 기법을 개발하였다. 그의 꿈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이와 관련된 연구소등을 전전했다.
루카스필름의 컴퓨터사업부분인 그래픽스그룹의 부사장으로 활동했으며 루카스가 이혼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컴퓨터 사업부분을 매각하자 1986년 스티브 잡스, 존 래스터 등과 픽사를 공동 창업했다.
그의 지휘하에 픽사는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개봉해 크게 성공했고 픽사를 컴퓨터 애니메이션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시켰다. 2006년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되자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장을 겸임해오고 있다.
▽ 에드 캣멀(Ed Catmull), 스티브 잡스 빌딩 앞에서 Ed Catmull on front of steve jobs building
2. 기억해야 할 문구들
아이디어가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사업에 있어서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 에드 캣멀(Ed Catmull)은 단호히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아이디어는 사람에게 나온다. 사람이 없으면 아이디어도 없다. 따라서 사람이 아이디어보다 중요하다.(중략)
아이디어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이디어는 종종 수십 명이 관여하는 수만 가지 의사결정을 통해 형성된다. 한편의 영화에는 수만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중략)
사람들은 극장에서 나오면서 ”말하는 장난감들만 나오는 영화라니 신선한 아이디어군“하고 말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영화는 여러 아이디어의 집합체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구상하고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모든 제품이 마찬가지다.(중략)
다시말해 사람(직원들의 근무 습관,재능,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모든 창조적 사업의 핵심적인 성공 비결이다.(p116~117)
탁월한 팀의 중요성
좋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팀에게 맡기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반면 평범한 아이디어를 탁월한 팀에게 맡기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
이 교훈은 더 설명할 가치가 있다. 적합한 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선결조건이다. 재능 있는 인재들을 원한다고 말하기는 쉽고, 경영자들 또한 재능 있는 인재들을 원하지만, 정말로 핵심 관건은 이런 인재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영리한 사람들을 모아놓아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비효율적인 팀이 된다. 경영자가 직원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팀이 돌아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좋은 팀은 서로 보완해주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자명해 보이지만 내 경험상 경영자가 깨닫기 어려운) 원리가 있다. 업무에 적합한 인재들이 상성이 맞는 인재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 에픽사 회의 모습
[이미지원 – www.thepixarpodcast.com]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 낼 것인가
근본 원리는 언제나 같다. 좋은 인재를 육성하고 지원하면 그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
직원은 건전지처럼 쓰고 버리는 부품이 아니다. 기업을 오랬동안 유지하고 싶은 경영자라면 직원들이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직원들이 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직장 밖에서도 보람찬 생활을 영위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p119~120)
제작 공정을 개선해 더 빠르고 더 적은 비용으로 작품을 개선하는 것은 픽사 경영진이 지금도 계속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지만 , 이것인 목표일 수 는 없다.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기업이 작업 과정의 효율성과 일관성만 추구하다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못난이 어린아이)를 보호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기업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고 설령 나와도 기가되기 마련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그저 기업을 굴러가게 할 돈을 벌기위해 기존의 성공작을 모방하는 안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쉽다.(p194)
솔직함이 아이디어를 보석으로 만든다.
솔직함은 작품 제작 과정에 있어서 더 없이 중요한 요소다. 그 이유는? 픽사의 모든 영화는 초기 단계에서는 더럽게 형편없기 때문이다. 지나친 평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좀 더 부드럽게 얘기하면 픽사 영화들이 초기에 얼마나 질이 나쁜지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겸손하게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픽사 영화들은 처음에는 상태가 불량하다. “더럽게 형편없는 상태에서 괜찮은 상태로” 작품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모든 영화가 처음에는 형편없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 우리는 솔직한 피드백의 반복 과정, 즉 스토리가 매끄럽게 흘러가고 캐릭터가 영혼을 찾을 때까지 작업하고 또 작업하는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p136)
▽ 에드 캣멀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브레인 트러스트 모습
위기에 대처하는자세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해서 공포에 질리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드려야 한다.(p227)
전작보다 나은 속편이라는 찬사를 받은 토이스토리2의 제작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처음 디즈니는 영화관 상영용이 아닌 비디오 배급용으로 제작하고자 하였다. 픽사에서는 이왕 만드는 것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대충만드는 것은 픽사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디즈니를 설득해 극장 영화용을 제대로 만들기로 함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픽사의 전통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또 개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한 작업한 데이타베이스가 전부 지워지는 재앙이 발생한다. 즉 어느 직원이 실수로 2년동안 작업한 파일이 저장된 드라이브를 지우게 된다. 빨리 지우라는 명령어인 /bin/rm -r -f *을 입력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때는 백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살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주 다행히도 개런 서스먼이란 여직원이 출산함에 따라 집에서 작업하기 위해 1주일에 한번씩 회사 컴퓨터의 내용을 집 개인 컴퓨터에 자동 백업토록 프로르램 해둠으로써 고스란히 백업된 자료로 되살릴 수 있었다.
이날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사건의 여파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책임을 따지느라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데이터가 삭제된 뒤, 우리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작품 복구. 둘째, 백업 시스템 수리. 셋째, 직원들이 쉽게 파일을 삭제하지 못하게 하는 예방적 제한 조치 강구.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명령어를 잘못 입력한 직원을 찾아 처벌하는 것은 우리의 우선순위 목록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p230)
▽ 1985년 당시 픽사 경영진, 왼쪽부터 Lawrence Levy(CFO), Ed Catmull(CTO), Steve Jobs(CEO), John Lasseter(VP of Creative), Sarah McArthur(VP of Production)
3. 어떻게 스티브 잡스와 일했을까?
에드 캣멀(Ed Catmull)은 1986년 스티브잡스고 루카스로부터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사업부분을 인수하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요.
널리 알려졌듯이 스티브 잡스는 그 천재성 만큼이나 까다로운 사람이라서 같이 일하기 어렵운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죠.
에드 캣멀(Ed Catmull)은 이 까다로운 스티브 잡스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하겠다.
두뇌 회전이 나보다 훨씬 빠른 잡스는 내 주장에 곧장 반박했다. 그러면 일주일간 내 주장을 다듬은 후 다시 그를 찾아가 설득했다. 그래도 그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만, 나는 다음 세 가지 중 한 가지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잡스를 찾아갔다.
첫째, 그가 “오케이, 알겠네” 하고 말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 둘째, 내가 잡스에게 설득당하고 포기하는 것. 셋째, 논쟁이 결론에 이르지 못할 경우 잡스에게 허가받지 않고 내가 제안한 일을 그냥 시행하는 것.
이 세 가지 경우가 벌어지는 확률은 각각 비슷했는데, 세 번째 경우에도 잡스는 나를 문책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했지만 상대방의 열정을 존중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정도의 일이라면 잘못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p90)
오늘은 가볍게 이미지 크기 조절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갑자기 Image Resize program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번 호스팅 계정 용량을 최적화하면서 서버에 있는 이미지 사이즈를 한꺼번에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찾아보았던 Image Resize program에 대해서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이거하면서 엄청 삽질을 해서 다른 분들은 이런 삽질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리해 봅니다.
1. Image Resize program 검토 배경
현재 운영중인 happist.com은 2008년부터 시작해 거의 9년째 운영중입니다. 그 이전에는 worldbest.pe.kr이란 주소로 홈페이지를 운영했었지요. pe.kr이라고 개인용 도메인을 분양할시 worldbest라는 주소를 얻어 운영했으니 상당히 오랜도안 홈페이지를 운영해 온 듯 싶습니다.
오랬동안 운영해왔다고는 하나 호스팅사에 맡겨두고 가끔 글을 올려주는 정도로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최적화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DSLR 사진을 jpg로 변환해 그대로 올리기도 했고 핸드폰 사진을 그대로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미지 파일크기들을 살펴보니 그랬더라구요.
어느날 갑자기 계정 용량이 2GB가 넘더니 금새 4GB에 육박한 겁니다. 2015년까지 이용했던 호스팅사는 계정 용령을 무제한으로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용량 최적화에대해서는 신경을 쓰지는 않았고 아니 트래픽에 대한 고민을 많이했던듯 싶습니다. 그 고민의 방향은 어디가 저렴하면서도 트래픽을 많이 주는지를 생각했지 용량 자체를 줄이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겁니다.
이번 워드프레스로 이전하면서 사양이 빵빵한 곳으로 옮기려니 계정용량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면서 계정 용량을 최적화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2. 계정용량 최적화의 일환으로 image 용량 최적화
상당 기간동안 happist.com의 정체성을 사진 공유의 장으로 활용했었습니다. 사진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마케팅 관련 내용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얼치기 포토그래퍼로서 아래와 같은점을 중시했습니다.
고화질의 이미지를 고집했고
와이드한 사진을 시원스레 감상할 수 있도록 폭을 1280이상으로 설정하고
압축은 사진 quality에 배치되므로 압축은 최소화 한다
그러다보니 웹상에서는 불필요할정도로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올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4GB의 용량이 찬것입니다.
이런 불필요한 이미지들을 최적화하기로 했습니다.
2.1. 서버에 있는 이미지를 최적화 방법론
뭐 거창하게 방법론이란 단어를 썼지만 아주 간단합니다.
서버에 있는 이미지를 최적화하기는 XE에서의 이미지 축소 모듈이나 워드프레스에서 이미지 최적화 플러그인이 있지만 한계가 있어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XE에서 풀베개 등등 모듈이 있긴 한데 이들은 계정용량을 줄이는 것보다는 트랙픽을 줄이도록 섬네일을 만들고 원본 백업해 놓는 등 계정 용량 최적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워드프레스 플러그인도 트래픽 축소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워드프레스로 이전하고 있는 상태로 XE의 모듈을 사용할 수도 없고 워드프레스의 미디어 라이브러리에 등록된 것도 아니므로 기존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버의 이미지 파일을 백업받아 resize한 후 다시 서버에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무식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구요. 결과도 그렇습니다.
2.2. 이미지 변환 프로그램의 조건
아래는 XE에서 이미지 파일을 저장해 놓은 하이라키를 FTP 파일질라로 살펴본 것 입니다.
DB에서 이미지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위 구조 그대로 유지한채 resizing해서 서버에 다시 올려줘야 합니다.
복잡한 폴더 위치를 그대로 유지해야하고
파일 이름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며
파일 이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지 포맷을 유지한다는 것이죠
글에서 배치들이 정해져 있으므로 폭과 높이로 표현되는 이미지 크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서버에서 이미지를 down 받아보니 2.5GB 용량에 폴더만 2739개, 파일수는 17475개나 됩니다. 이를 일괄 resizing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를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2.3. 조건에 맞는 이미지변환 프로그램 – FotoSizer
구글에서 Batch Photo resizer로 검색하니 상당히 많은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오래된 프로그램들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없으므로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비교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많이 쓴 PhotoWorks, Photoscape는 물론 외국에서 많이 쓴다는 Faststone Photo Resizer등등을 설치해가면서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폴더별로 열고 저장할 수 있는지, 이미지 포맷을 유지할 수 있는지, 폭과 높이를 유지할 수 있느지 등등
아래는 이런 조건을 가지고 프로그램별로 검토해본 것입니다. 프로그램마다 장점이 뚜렸다고 일부 기능은 뛰어나지만 꼭 한두가지에서 걸리더군요
이런 비교를 통해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은 FotoSize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 FotoResizer, 디자인은 구리지만 다행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 Batch Picture Resizer, 무료버젼은 계속 구매하라는 메세지가 스팸성으로 뜨는 프로그램으로 절대로 선택해서너는 안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지 사이즈 그대로 유지 기능이 없다.
▽ FastStone Photo Resizer, FastStone Photo viewer는 한때 널리 사용되던 이미지 뷰어인데 Resizer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이 또한 이미지 포맷 유지가 안되어 탈락
▽ IrfanView, IrfanView도 한때 널리 사용되던 이미지 뷰어인데 이 또한 이미지 포맷 유지가 안되어 탈락
3. 결과 및 맺는말
FotoResizer를 사용해서 이미지를 최적화한 결과 초기 2.54GB이 이미지크기가 0.99GB로 대폭 줄었습니다. 거의 61%나 감소했으니 상당히 성공한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덕분에 당분간 계정 용량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PhotoWorks, Photoscape는 하나 하나의 개별 이미지를 최적화 시 유리한 프로그램이며 서버에 보관중인 이미지 파일의 최적화처럼 특수 목적의 이미지 변환은 을 한다면 FotoSize을 사용하라고 권해주고 싶습니다.
이번 휴가를 망상해수욕장으로 다녀왔습니다. 망상해수욕장은 완만한 깊이의 해변이 길게 4km 정도 늘어져 있고 특히 망상오토캠핑리조트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망상오토켐핑리조트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 선택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저의 가족은 망상오토캥핑장에는 당첨되지못하고 바다가에 있는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이라는 곳에 묵었습니다. 호텔이름이 좀 그렇죠. 좋은것은 다 가져다 부르려고하다보니 영문과 한글이 고전적인 의미와 현대적인 의미가 섞인 이상한 이름이 된것 같아요. 호텔 담당자가 보면 뭐라하겠네요.
암튼 이 호텔에 묵으면서 호텔앞 바닷가, 호텔내 수영장, 근처 묵호항, 묵호등대, 논골당길 등을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 이야기를 몇차례 나누어 공유하려고하며 그 첫번째로 묵호등대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묵호등대가 처음인 이유는 사진이 가장 먼저 정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넘 단순한 이유..
1. 동해 묵호등대에 대해서
동해 묵호등대는 묵호 해변가의 가장 높은 곳(그리해봤자 해발 67m)에 위치해 1963년에 처음 불을 밝혔습니다.
이 묵호등대 주변을 2007년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지금은 관광객이 끊이지않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등대 앞마당에 소공원을 조성하고 등대를 개방하면서 소공원과 등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절경이 그 이름을 만들도록 한것이지요. 여기에 묵호항에서 묵호등대로로 올라가는 논골담길에 벽화를 통해서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그리고 출렁다리가 드라마로 뜨면서 상승 작용한 것이지요.
여기 묵호등대에서는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 드라마 '찬란한 유산' 등으릐 쵤영지로 유명합니다.
2. 묵호등대 전경
묵호등대 앞 소공원에서 바라본 묵호등대 전경입니다. 파란 하늘이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날이 흐린 관계로..
▽ 참조이미지로 코레일에서 가져온 묵호등대 전경, 역시 파란하늘 그리고 구름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등대 모습
3. 묵호등대에 올라가 보자.
첫날 저녁무렵 묵호등대에 도착했는데 그 시각엔 이미 등대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이틀 후 다시 찾아갔지요.
등대1층은 바잣가답게 해초와 물고기 그리고 바다 느김이 나도록 초록계열로 꾸며져 있습니다.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위에서 담아본 모습입니다. 원형의 계단이 근사합니다. 생각보다는 높지않아서 큰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계단 중간중간 밖을 볼 수 있는 둥근 창이 있습니다. 열수는 없으므로 창문이 아닌 창!! 그 창으로 바라본 등대앞 소공원과 바다의 모습이 멋있어 보입니다.
묵호 등대위에서 바다를 조망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등대위에서 바라본 등대소공원과 바다 풍경입니다.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아래는 묵호등대소공원, 까페, 바다..
4. 묵호등대 소공원
묵호등대 앞부분에 조그마한 소공원을 꾸며놓았습니다. 묵호등대에서 촬영한 '미원도 다시한번', '파랑주의보' 등등을 모티브로 사진등을 감상할 수 있으며, 여러 조형물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석양무렵 바닷가의 석양과 소공원의 조형물을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묵로등대소공원엔 묵호등대를 배경으로 촬영된 많은 영화 및 드라마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영화 파랑주의보 관련 내용입니다.
5. 묵호등대에 오르는 계산에 소개된 전국의 등대들
묵호등대에 오르다보면 전국의 등대를 소개하는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간략히 공유해봅니다. 전국적으로 아는 등대가 몇개나 있는지 함 봐볼까요?
6. 문어도서관
묵호등대 근처에 문어도서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단순한 우리 은결이는 더이사 에 오르다보면 전국의 등대를 소개하는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간략히 공유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