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출사기

Updated on 2024-11-06 by

오늘 일요일이지만 게으름을 이기고 알찬 출사 전투를 치루었길래 간단히 수종사 출사와 양평 용문사 은행나누 출사디를 간단히 메모해 본다..

오늘 날씨가 다른 날보다 춥다는 예보(이런 날에는 운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에 따라 급히 일어나 5시 30분 양평 수종사로 달렸다.

네비가 알려준 길로는 6시 30분 도착인데 고집을 피워 내가 아는 길(제2수도관외곽고속도로 이용)로 달렸더니 6시 50분에 도착… 일출시간 6시 45분이니 도착하니 이미 날은 밝았고,

오면서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길래 아마 팔당 운무는 당연할 것으로 보았는데 역시 팔당 한강변에는 운무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종사 주요 포토존마다 엄청난 인파의 사진사들이 차지하고서 팔당 운무를 담고 있었다.

다들 부지런하기도하고 정보에 밝기도 하여라.. 운무가 없는 날에는 텅텅 비던 곳이 이제는 사진사들로 꽉차 있다.

나도 삼각대를 장착하고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나도 이 행렬에 동참해 본다. 작년에 보았던 운무보다는 약하지만 팔당 한강의 운무는 점차 짚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9시이후까지 기다리면 한강 전체를 덮을 기세지만.. 그 시간까진 기다릴 수 있을 까 싶기는 하다. 참고로 나는 8시 즈음 철수했다. 다음 출사지가 기다리고 있다. ..

용문사에 대해(용문사 사찰소개에서 퍼온 내용)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 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 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 미소전(오백나한전), 산령각, 칠성각, 요사채, 일주문, 템플스테이 수련관,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부도비와 보물 제1790호 로 지정된 금동관음보살좌상,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 주차방법

용문사에 가기위해서는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한다.

주차 후 용문사 가는길을 따라 20분정도 걸어 올라야 한다.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은

  • 주차비 : 경차 1,000원, 소형/중형 3,000원, 대형버스 5,000원
  • 전기차 충전기 : 20기 정도의 완속 전기차 충전기가 있음
  • 무인 정산기를 이용하면 하이패스처럼 빠르게 출차 가능

8시 경 수종사을 떠나 9시 이전에 용문산 관광단디 주차장에 도착했다. 매우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에는 자리가 없다 헐…

다행히 전기차 충전 자리가 있어 충전삼아 주차한다. 그런데 이 충전업체는 회원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 대부분은 로밍이 되기 때문에 비싸드라도 다른 회원카드를 대면 인식하는데.. 아무튼 충전은 포기하고 주차만하는 것으로..

아 전기차 만세!!

용문사 추억

뭐 추억이라고 할 것도 없다. 예전 회사 다니던 시절 잠깐 만났던 대전 아가씨가 서울로 와서 용문사로 같이 여행을 한적이 있다.

아마도 버스를 타고 고생고생하면 다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용문사 그리고 은행나무만 생각이 난다.

그래서 사진에 관심을 가진이래 용문사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일 때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용문사로 가는 길

용문사로 오르는 길 단풍은 희미하다. 단풍이 생기를 잃었다는 느낌이 정확할 듯..단풍색을 한채 잎이 시든었기에 이런 느낌이 나는 듯

그래도 군데군데 생기있고, 강렬한 붉은색을 내는 단품나무가 있어 심심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셔텨를 누를 기회를 주었다.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는 공사중인 용문사 가는 길

용문사 가는 길은 보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보도와 차도 구분없이 무두 차도를 점령하고 올라가고 있다. 가끔 아주 가끔 자동차가 오는데 사람드링 많으니 너무 너무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다. 가끔 클락션을 울리기도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비켜주기도 한다.

아마 자동차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용문사 가는 길은 필히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는 것이 좋다고 느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사고 나기 딱 좋은 구조이다.

이미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는 공사는 용문사 가는 정체에 걸쳐 일정정도 진행되었기 때문에, 차도로 자유롭게 걷는 것은 올해로 마지막이 될 것 타다.

아마도 내년 단풍철에는 차도는 차에 양보하고 별도 보도, 즉 산책길을 이용해 오르게 될 것 같다.

용문사 은행나무

8시정도 철수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러갔다…

용문사 은행나무

  •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 : 약 1,100년 이상을 추정
  • 높이 42미터
  • 뿌리부분 둘레는 15.2미터
  • 우리나라 은행나무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주장이나 이 은행나무보다 더 오랜된 은행나무도 있다는 주장이 있어 다시 따져 봐야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 전설

이처럼 오랜된 은행나무이다보니 관련 여러 전설들이 존재한다.

의사대사 지팡이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이 있다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

신라의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소리를 낸다고..

그래서인지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용문사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어 나라의 재앙을 알렸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승하 시 용문사 은행나무 큰 가지중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정미의병 당시 일본군의 방화에도 타지 않았다고..

정미의병때 일본군이 용문사를 불질렀을 때 오직 이 용문사 은행나무만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불타지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의미로 ‘천왕목’이라고도 불린다.

절정이었던 용문사 은행나무 단풍

용문사 경내로 들어서 사천왕문을 나서자 마자 고개를 들어 왼쪽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 아래 높이 솟은 노아란 은행나무가 웅장하게 서 있다.

지금(24년 11월 3일)용문사 은행나무 단풍은 절정이라는 사실이 감동스럽게 다가온다..

작년 줄기만 앙상한 시절에 와서 실망하고 돌아섰던 기억을 추억하니 기분이 좋다.

용문사 경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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