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강릉 여행 중 들럿던 강릉 선교장 방문기, 활래정과 선교장 돌레길이 아름다웟던 7월의 선교장을 보고온 방문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선교장(船橋莊)은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사대부(경주이씨)가 지은 한옥 고택으로 1967년 4월 20일 국가민속문화재 5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민가주택 중 최초로 지정된 것이다.
선교장의 정식 이름은 경주이씨 선교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원래 경포호 물이 들어오던 이 곳에 배다리(船橋 선교)를 놓아 건넌 데서 유래했다. 선교장 입구 큰 연못가에 세워진 활래정을 지나자 행랑채를 비롯한 30여 채의 건물이 층을 이루며 산자락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아래는 선교장 홈페이지에 나왔는 선교장의 역사입니다.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어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 했다는 명당터인 선교장은 300여년전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活來亭)이라 이름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만석꾼 곳간채에는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 이라고 지어진 이름 이지만 그 호수는 논이 되었고 대장원의 뒤 야산에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연꽃 그리고 멀리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하겠다. 2000년을 기해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선교장의 위치를 알기 위해 다음지도에서 이 근처 주요 포인트들을 찍어 보았습니다. 북쪽으로부터 경포해수욕장 – 경포호 – 더 내려와 선교장 – 그리고 오죽헌이 거의 일직선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다음에는 시간을 내서 오죽헌을 다녀와야겠습니다.
선교장 안내도
입구에 있는 강릉 선교장 안내문에 있는 선교장 안내도입니다. 지금은 다른 사진으오 바뀌었습니다
이 안내도를 따라 체계적으로 선교장을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바라본 선교장 전면 풍경입니다. 뒷산의 오래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있고 그 아래 기와집들이 정연하게 서있는 모습이 결코 범연치 않게 보입니다.
선교장 볼거리, 선교장 전체 풍광
선교장 전부가 모두 볼거리이지만 특히 아래 내용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볼만하다.
선교장 본채
선교장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 후기 또는 20세기 초반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을 알 수 있는 고택들을 볼 수 있다.
선교장 본채내 구조도를 가져와 왔다.
넓은 마당을 지나 선교장으로 들어가는 대문(?) 앞은 예전 사진에서는 붉은 배롱나무가 운치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베어지고 낮은 수목만 있다.
이 선교장 고택의 수많은 주택 건물 사이사이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장독대 등의 사진가의 관심을 불러오는 다양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대학시절(아니 입사 초기 시절인가 정확하지는 않음)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강릉여행을 한적이 있다. 그 때 선교정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선교장엘 왔는지 지금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일출을 보기위해 경포엘 왔다가 선교장까지 오지 않았나 막연히 추정해 본다.
아무튼 기억이 나는 것은 선교장을 둘러보다 장독대 부근에서 어느 사진사가 삼각대에 카메라릉 올려놓고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미 링을 사용해 원격 촬영하는듯했다. 마침 카메라는 나의 근처에 있기는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강풍이 불어와서 삼각대가 넘어지고 카메라 엔즈가 박살이 나는 것을 옆에서 멍하고 바라본적이 있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잡았어야했나 하는 후회도 있었지만 아무튼 아무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고 두고두고 나의 비겁(?)함을 후회하고는 했다.
이게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선교장 추억이다.
아무튼 선교장 본채로 들어가면 볼거리가 많으니 시간을 내서 살펴보면 좋겠다.
선교장의 볼거리는 선교장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넓은 잔디 마당을 너머 병풍처럼 자리하고 잇는 한옥들의 모습과 그 뒤의 소나무숲이 인상적이다.
선교장둘레길
선교장 볼거리는 이러한 한옥들이 가장 핵심적인 볼거리이지만 여러번 선교장을 방문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한옥 고택 뒷편으로 조성된 대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책길이다.
선교장을 중심으로 왼쪽 길은 청룡길이라고 부르고 오른쪽 길은 백호길이라고 부른다. 백호길은 왼편에 대나무가 우거진 대나무 숲이 있고 계속해서 오랜된 소나무들이 선교장을 지키고 있다. 그 뒷편에 선교장 사당이 있는 것 같다. 사당은 당연히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만약 선교장 고택을들을 둘러보고 바닷가 쪽으로 향하다 오른쪽으로 둘레길을 걷는다면 바로 500년이 넘엇다는 늙은 노송 보호수를 만날 수 있다.
선교장둘레길의 소나무는 수령응 괸장히 오래되었지만 얼핏보기에는 굉장히 정정해 보인다. 그래서더욱 더 멋잇다. 둘레길을 돌다보년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를 만날 수 있고 뼈대만 남은 고목을 만날 수도 있다.
24년 여름 선교장 방문 시 이 둘레길에서 외국 여성이 정취를 즐기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보기 좋았고 부럽기도 했다. 정취를즐긴다기보다는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사진 찍느라 이 아름다운 길을 제대로 향유하지는 못했는데..
청룡길이라 불리우는 길은 상당히 높이 올라 선교장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 경치를 보여준다. 앞서 설명한 백호길에서는 담장에 가려 선교장 건물이나 선교장 풍광이 잘 안보인다. 선교장을 시원하게 조망해보고 싶다면 청룡길을 걸어보는게 좋을 것 같다.
여름 연꽃과 배롱나무 꽃이 아름다운 활래정
다음으로 마음드는 곳은 입구길 왼쪽에 있는 연못과 정자인 활래정이다. 이 활래정은 1816년 건축된 것으로 활수래(活水來)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는 뜻의 정자이다.
연지(연꽃이 핀 연못)와 함께 못 가운데 만든 섬은 신선계를 상징하며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지나는 조선의 풍류가와 시인, 묵객들이 머물며 문화와 예술의 향을 피우던 곳이라고 한다.
여름이면 연꽃이 피고 이 연못 주변 곳곳에 배롱나무 곷이 피어 연꽃과 더불어 화사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활래정 정자 출입은 금지되어 있지만 문은 열어놓기 때문에 활래정 창문으로 보이는 연못의 풍경과 배롱나무 꽃이 이채롭다. 그래서 사진을 담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활래정 정자 출입은 금지되어 있지만 문은 열어놓기 때문에 활래정 창문으로 보이는 연못의 풍경과 배롱나무 꽃이 이채롭다. 그래서 사진을 담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연지당 뒷편 배롱나무
강릉에는 오래된 고목의 배롱나무가 많은 편인데 이곳 선교장에도 고목의 배롱나무를 볼 수 있다.
선교장 배롱나물하면 위에서 설명하 활래정 주변 배롱나무만 이야기되는데 선교장 왼쪽 끝트무리에 있는 연지당 뒷편에도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번 24년 여름 방문 시 이 배롱나무는 보지 못하고 왔다. 예전 방문시는 너무 이른 시기에 방문해서 배롱나무 꽃이 화사하지는 않았다. 매번 아쉬움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