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 보티첼리(Botticelli)
메디치 가문의 작품 소장고에서 출발한 우피치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바로 보티첼리이다.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던 보티첼리(Botticelli)는 그 예술 활동의 전반부를 메디치가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으며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성도 매우 뛰어나기에 우피치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내세우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는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소개하는 우피치 미술관 도록이나 우피치 미술관 공식 가이드의 표지가 보티첼리(Botticelli) 작품으로 채워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두각을 나타낸 보티첼리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1445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근처에서 염색공이엇던 마라아노 필리페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외 탄생과 성장과정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이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을 가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게 다 이름인줄 안다.
1464년 마사초의 제자였던 프라 필리포 리피의 제자가 되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470년 독립해 자신만의 공방을 세웠다고 한다.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오니산티 성당을 위해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리면서부터라고 한다.
여기서 성공을 거둔 후 그는 메디치 가문에 발탁을 받았고 이후 메디치가문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모네타(Simonetta)와의 만남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보티첼리는 결혼하기 위해 피렌체를 방문한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를 만나게 된다.
시모네타(Simonetta)는 제노바 명문가 출시으로 15세가 되자 피렌체 유력 가문인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하기위해 피렌체로 왔다.
그녀는 빼어난 미인으로 1475년 마상시합 축제에서 미의 여왕으로 뽑히는 등 피렌체 최고 미인으로 인정받았고, 피렌체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녀의 미모를 칭송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뽑내는 피렌체의 한 떨기 꽃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시모네타(Simonetta)는 예술과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피렌체 최고의 미인의 존중과 관심은 많은 예술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그러한 예술가중엔 보티첼리도 있엇다.
시모네타(Simonetta)는 당시 피렌체 예술가중의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보티첼리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녀는 보티첼리에게 ‘나는 당신의 비너스가 될 것이다.’라며 보티첼리의 재능과 작품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관심이 아마도 보티첼리가 시모네타(Simonetta)를 사모하는 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미인단명이라고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페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의 죽음은 피렌체 예술가 및 일반들의 슬픔을 자아 냈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천명의 피렌체 시민들이 참여해 장지까지 따라갔다고 한다. 한편 당시 일반적인 장례식 관습과 달리 그녀의 얼굴을 별도로 가리지 않았는데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티첼리 작품속에 되살아 난 시네모타
시네모타가 세상을 떠난 후 보티첼리는 그의 작품속에서 그녀를 애도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의 상당 수는 그녀를 애도하면서 그녀를 모델로 그린 헌정화라고 할 수 있다.
‘봄’에서 봄의 여신 플로라로 나타나다.
보티체리가 세상을 떠난 시모네타를 애도하며 그린 첫번째 작품이 바로 ‘Primavera(봄)’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봄의 정경을 그린 것으로 여기 나오는 클로리스와 플로라는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보티첼리는 여기서 봄의 여신 플로라를 그가 사모하는 시네모타를 모델로 그렸는데 여위고 홍조 띤 얼굴로 추정컨데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시모네타의 마지막 모습으로 보인다.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고대 로마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했닥 한다. 이를 모티브로 그림 중안의 거대한 조개 가운데 부문에 비너스가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서풍 제피로스는 바람을 불어 꽃이 춤을 추고 비너스가 타고 있는 조개는 해변가로 밀려간다.
오른쪽에선 시간의 여신 호라(Hora)가 비너스를 맞으며 풍부한 장식의 가운을 입혀주려고 한다.
앞서 ‘Primavera(봄)’에선 봄의 여신 ‘플로라’를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렸는데, 이 비너스의 탄생에선 시간의 여신 호라(Hora)의 모델이 시모네타로 보인다.
또한 여기의 비너스도 시모네타가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피렌체 최고 미인이었던 시모네타는 보티첼리 그림 곳곳에서 헌정되고 있나 보다.
이 그림은 시네모타가 사망한지 8년 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비너스를 시네모타를 모델로 그렸다면 8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그녀를 애도하고 그리워했다는 이야기이다.
비너스와 마르스(Venus and Mars)
전쟁의 신 마르스(Mars)가 비너스와 사랑에 빠졌다. 비너스의 부드러운 미소앞에서는 전쟁의 신도 무장해제당하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스 산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사티로스들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무기를 가지고 주변에서 놀고 있고, 마르스 귀에 고동을 불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이처럼 사랑에 빠진 비너스와 마르스를 그린 것은 이 작품이 결혼하는 메디치가의 신부를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에서 비너스는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렸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단 시모네타가 사망한지 7~8년이 흐린 시점이다.
팔라스와 켄타우로스(Pallas and the Centaur)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the Centaur)앞에 서있는 아데나의 미네르바 여신 팔라스(Pallas)
여기에서 표현되는 팔라스는 아테나 여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별칭이다. 팔라스 아테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전에 소개한 ‘봄(Primavera)’의 의상이 유사하다.
여기에 나오는 미네르바 여신 팔라스(Pallas)는 물론 보티첼리가 사모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를 모델로 했다.
시모네타 가까이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다.
보티첼리는 한 때 피렌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가였지만 말년에는 거의 잊혀진 존재로 전락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동안 벌어 놓았던 많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말년은 상당히 곤궁하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하고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듣고 이에 감명을 받아 그의 전 재산을 성당과 수도원에 기증하고 스스로 궁핍하게 생활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말년에 어렵게 살았으며 보티첼리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주었던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생활비를 지원하지않았다면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것”이라고 바사리는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1510년, 65세의 나이로 죽어가던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의 발끝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끝까지 시모네티를 사모했다.
결국 보티첼리는 그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곳이자 그가 사모하던 시모네타가 묻혀있는 아르노강가의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에 묻혔다.
결국 보티첼리는 죽어서야 그가 사모하던 시모네티 근방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작품과 더불어 그의 시모네티를 향한 사랑이야기 끊임없이 전해지고 회자되면서 그의 사랑은 영원함을 얻었다!!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이 어디인지 구글 지도에서 찾아 보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아르노강변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
아래는 아르노강에서 바라 본 살바토레 디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San Salvatore di Ognissanti) 픙경이다. 아르노강이 굽어보이는 성당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보티첼리는 천국에서 시모네티와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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