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진가들 (김영수편 – 광고사진가, 시골장을 보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찍은 꽁치.
화사한 햇살 아래 먼지 풀풀 나는 우리네 먹을거리의 미학을 보여주는 김영수
사진가 김영수(54·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아래 사진)의 작업실은 빛이 잘 드는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한쪽은 마치 유명한 요리사의 주방처럼 커다란 주방도구들이 가득하고 다른 쪽 벽에는 유럽풍 그릇들이 책처럼 정리되어 있다. 10년 동안 실력을 인정받은 음식사진가의 작업실답다. 그가 요리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0년 전 한국에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환란’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작업실에 부엌 만들고 서양식 접시 모아
그즈음 그는 미국에서 광고 사진 교육을 받고 돌아온 1세대답게 잘나가는 ‘제품 광고 사진가’였다. 반짝이는 구두와 질감이 살아 있는 옷 등, 광고사진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1980년대 한국에서 아름다운 광고 사진으로 소비문화를 촉진시키는 일을 맡았다. “당시 광고시장이 커지는 분위기였다. 대기업들이 광고회사를 너도나도 설립했다.”그의 세련된 사진이 한국의 광고 시장 발전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경북 군위군에서 찍은 강낭콩
그가 찍은 광고 사진은 잡지 크기의 초대형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3m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그 몇 십 배로 확대해서 대형 포스터로 광고 사진을 만들던 당시로서는 신선한 작업 방식이었다. “필름을 확대해서 프린트할 필요가 없었다. 필름 그대로 잡지에 실었다. 자연히 제품의 디테일이 곱게 살아났다”고 김씨는 말한다.
실물보다 멋지게 찍은 구두 사진은 심지어 소비자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사진을 보고 사러 가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국에서 배운 조명기술 역시 그의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80년대 한국의 광고사진계는 일본 사진의 조명 방식을 조악하게 복사하는 수준이었다. 아이엠에프 환란 이전 10년 동안 광고 논리에 충실하게 제품 사진을 찍었다.
전남 곡성군에서 찍은 밤.
97년, 아이엠에프 환란은 그에게도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소비와 광고시장이 줄어들면서 광고 사진도 설 자리가 좁아졌다. 그때 눈을 돌린 분야가 음식이었다. 평소 미식가였던 그는 개인적인 인연으로 음식 잡지 <쿠캔>에 실리는 사진을 총감독하게 되었다. 함께 일하던 스태프들을 요리학원에 등록시키고 수많은 요리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작업실에 부엌을 만들고 미국으로 달려가서 서양식 요리에 맞는 접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면 반드시 그 분야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꼼꼼한 성격이 훌륭한 음식 사진을 만들었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에서 찍은 풀빵
지난해 그는 또다른 시도를 했다. ‘김영수 사진전-장(場)을 보다’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연 것이다. 시골 5일장에서 인위적인 조명이 아니라 화사한 햇살 아래에서 먼지 풀풀 나는 우리네 먹을거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형제처럼 비늘 종이 위에 누워 있는 꽁치들, 수북이 쌓인 고추와 밤들, 밭에서 바로 뽑은 먼지 묻은 채소들. 장터의 소박한 먹을거리가 그의 세련된 손을 타고 새로운 빛깔로 세상에 등장했다.
“몇 년 전 한 식품회사 달력 사진을 식재료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좋은 촬영 대상을 찾으러 장터를 다녔다. 달력이 완성되고도 그곳에서 만난 것들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사진 작업이었다.
구두회사 ‘에스콰이아’의 광고사진
한가한 평일 장터에 그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면 재밋거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 당근도 사고, 농담하고, 농부의 얼굴도 찍어주었다. 자장면을 얻어먹기도 했다. 낮에 촬영이 끝나면 미식가답게 그 고장에 맛난 곳을 찾아 다녔다. 아침에는 신선한 공기를 벗 삼아 마라톤을 했다. 그런 생활을 3년동안 했다. 그 작업의 결과는 황사에 찌든 도시인의 눈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경기도미술관, 한국농촌경제연구소 등에서 작품 소장을 서둘렀다.
사진가 김영수가 사진을 맡은 요리책 ‘대사와 함께하는 만찬’(2000년 발간)에서
네덜란드 대사(왼쪽)와 미국대사(오른쪽)의 식탁
46살에 간암선고, 마라톤으로 이겨내
20년간 유명한 광고사진가로 산 그가 첫 번째로 연 개인전은 성공적이었다. “돈을 벌려고 찍은 것도 아니다. 광고주 없이 내가 의도한 대로 사진을 찍는 것이 행복했다.” 그가 장터에서 배운 것은 최고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더 귀한 장터 음식의 가치란다. 화려한 것들로 포장하지 않아도 맛을 보면 그 향긋함과 따스함이 느껴진단다.
광고사진가란 이름표만큼 그를 따라다니는 명패가 있다. 마라토너. 46살 때 간암 선고를 받고 간의 3분의 1을 잘라낸 그가 선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마라톤 하는 교수’로 각종 언론에 등장했다. 인생에서 위기는 곧 가르침이다. “엘리트 의식 중에 못된 것, 돈 잘 버는 것, 그런 것들만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다르다. 세상 모든 이들이 살아가는 이유와 가치가 있다.”
학생들에게 한없이 꼬장꼬장한 것으로 유명했던 그가 이제는 삶에 대해 조금은 넉넉해진 느낌이다. 장터 사진에서 느껴지는 미학은 아마도 자신의 삶의 변화가 고스란히 배어서일 것이다.
화사한 햇살 아래 먼지 풀풀 나는 우리네 먹을거리의 미학을 보여주는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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