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도은] 불황엔 가장 먼저 아끼고 싶은 게 문화생활비다. 박물관·미술관 입장료 몇 천원도 왠지 망설여져 ‘집에서 TV나 보지’ 싶다. 하지만 알고 보면 도시엔 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많다. 건물 안팎에 전시된 조각·그림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우뚝 선 건물 자체가 ‘명작’이기도 하다. 기업마다 회사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고객의 감성에 호소하는 ‘아트 마케팅’을 펼치는 덕이다. 이젠 거리를 걷다가, 쇼핑 틈틈이 일상 속에서 문화생활을 누려 보자. 발걸음을 내딛고 시선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준비는 충분하다.
이도은 기자<DANGDOL@JOONGANG.CO.KR>
MCM 주차타워│거대한 판화
서울 청담동 명품 거리에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생겼다. 14.5m 높이의 건물 전체가 노랑·빨강 등으로 칠해진 마룻바닥 같다. 콘크리트 회색 건물이 즐비한 이 동네에선 단연 눈에 띈다. 정체는 새로 지은 MCM 플래그십 매장의 주차타워. 최근 영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리처드 우즈의 작품이다. 판화로 작업한 합판을 이어 붙여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독창적인 작업 형태. 의류 브랜드 폴 스미스의 뉴욕 소호 매장 벽, 국내에서 열린 전시회 ‘아이러니&제스처’에서는 아예 바닥 전체를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건물 외벽에까지 도전한 셈이다. 지난해 8월부터 합판 하나하나를 영국에서 공수해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런데 왜 사무실도 아닌 주차타워가 작품의 대상이 됐을까. 이에 대해 김성주 MCM 회장은 “어둡고 무거운 공간에 원색의 생동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우리 회사가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갖는다는 기업 정신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위치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맞은편.
호텔 프리마│’달항아리’ 옆 앤디 워홀
고려청자와 더불어 우리 도자기 중 최고로 인정받는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이곳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빼앗겼던 것을 2007년 이상준 대표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아 화제가 됐던 작품. 1층에 따로 마련된 박물관에서 다른 환수 문화재 30여 점과 함께 상설 전시하고 있다. 호텔에 가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1층 로비·연회장에는 20세기 화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꽃’도 걸려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시간이 있다면 3층 뷔페 식당까지 올라가도 좋다. 18세기 독일 자기로 유럽 부호들의 소장품이었던 마이센이 전시돼 있어 층을 오가며 동·서양의 자기 문화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다. 여자 사우나, 피트니스센터 등에 걸린 국내외 작품 역시 모두 눈여겨볼 명작들이다.
위치 서울 청담동 52의3, 7호선 청담역 13번 출구에서 영동대교 방면으로 걸어서 10분.
금호아시아나 본관│세계 최대 디지털 캔버스
일반 미술관이 문을 닫는 저녁이 돼야 비로소 진가가 드러낸다. 작품은 건물 뒤로 가야 볼 수 있다. 벽면에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 6만9000개를 붙여 디지털 캔버스로 만들었다. 높이 92m, 폭 23m의 크기로 세계 최대 규모다. 단청 색깔 알파벳으로 꾸민 ‘플립 S.E.O.U.L’, 부채 패턴 위를 종이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종이 비행기’ 등 26개 그래픽 영상이 매일 밤 5시간씩, 매주 5개씩 번갈아 나타난다. 디자인과 콘텐트 제작을 맡은 홍익대 디자인학부 이정교 교수는 “이 고층 빌딩은 무한의 디지털 상상공간이자 미래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시민들의 아름다운 문화 공간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신문로의 남쪽 방향인 남산 3호터널, 덕수궁, 시청 쪽에서 가장 잘 보인다.
위치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신세계백화점 본점│옥상 위 괴상한 거미
쇼핑하다 다리가 아플 때, 시계·창문 없는 매장이 답답해질 때 옥상으로 직행하라. 본관 6층의 ‘트리니티 가든’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느끼며 조각상들을 둘러볼 수 있는 ‘야외 갤러리’다. 작품은 다섯 개밖에 안 되지만 모두 20세기 모더니즘 거장들의 손길로 탄생한 수작들이다.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인 호안 미로의 ‘인물’,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건축가의 손수건’을 비롯해 헨리 무어(영국)의 ‘와상’, 루이스 브루조아(미국)의 ‘거미’, 알렉산더 칼더(미국)의 ‘작은 숲’ 등이 전시돼 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12층 갤러리까지 들러볼 것. 팝아트의 거장인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의 전시회가 4월 14일까지 열린다.
위치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4호선 회현역에서 지하로 연결.
흥국생명│강익중의 벽화
건물 앞에 설치된 ‘망치질 하는 사람(해머링 맨)’은 이제 웬만한 사람은 알 만한 명물.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으로 오른팔이 움직이며 손에 든 망치를 내리친다. 원래 1분17초 간격이던 망치질이 지난해부터는 1분으로 짧아졌다. 거대한 조각품 하나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면서 시민들에게 동작의 완결성을 더 쉽게 보여주자는 의도다. 더불어 위치까지 인도 쪽으로 4.8m 진출하게 됐다. 기왕 발걸음을 했다면 건물 로비도 지나치지 말 것. 세계적 조형미술 작가인 프리 일겐의 ‘당신의 긴 여정(Your Long Journey)’이 있기 때문이다. 직경 40m, 높이 4.5m 크기로 천장을 꽉 채울 만큼 커서 실내에 설치되는 작품들 중엔 국내 최대다. 이 외에도 로비에는 재미작가 강익중의 초대형 벽화, 로메로 브리토의 조각 등 개성 있는 작품 1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위치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포스코 센터│TV가 주렁주렁
건물 앞에서 기이한 철골물을 봤다면 추상 작가 프랭크 스텔라의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임을 알아챌 것. 예술이 아닌 흉물이라는 여론에 한때 퇴출 위기까지 몰렸지만 이제는 엄연한 이곳의 상징물이다. 30여t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을 이어 붙인 작품으로 초현대식 건물과 고철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1층 로비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제목은 ‘TV 깔대기’ ‘TV 나무’. 천장이 닿을 듯한 대형 철제물에 TV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양새다. 260여 대의 모니터에서 내뿜는 각양각색의 영상은 현란하면서 아름답다.
위치 서울 대치동, 2호선 선릉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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