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중앙일보에 나온 남이섬이야기를 읽었다.
예전에 그 성공 사례에 대해 잠깐 들은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남이섬 사례를 정리해 보고 싶었다.
1. 유원지 문화의 쇠락과 함께 몰락의 위기가 오다
1960~90년대에는 <겨울나그네>, <맨발의청춘>, <바보들의행진> 등의 영화촬영과 강변가요제가 열렸던 남이섬은 행락객들이 즐겨 찾는 <유원지>로 인식되어 알려져 있었다.
야구 연습장, 사격장, 어린이 놀이기구, 동물원, 캬바레 등이 있어 행락객들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놀던 전형적인 유원지였다.
시설은 낡고 바가지 요금이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그러나 유원지 문화가 쇠락하고 IMF를 격으며 점차 경영 위기를 맞는다.
뚜렸한 회생 방법도 없었고 새로운 시도를 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대출도 어렵고 팔고 싶으나 사가는 사람이 없는
회생불가/대출불가/매각불가 상태였다.
또한 직원들은 회사의 회생에는 관심없고 퇴직금 걱정뿐 복지 부동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2.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한 회생의 길을 찾다.
그러다가 2001년 새로운 CEO로 취임한 강우현대표는 예술인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타개책을 찾았다.
'갖고 있는 게 불가능뿐이라면, 그거라도 팔아보자'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불가능을 파는데, 다 팔지는 않고 '불(不)'자만 팔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시작한 게 '불(不)장난'입니다. 불만, 불행, 불안, 불쾌, 불평, 부족, 부정…. '아니 불'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단어들에서 불자를 지우는 일을 시작했죠. 불자를 지우고 본래 뜻을 되살리는 일, 그게 바로 불장난입니다."
2.1. 3가지 생존 목표를 세우다.
2001년 9월 1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서 아래와 같이 3가지 생존 목표를 세웠다.
2.1.1. 유원지에서 관광지로
남이섬은 먹고 마시고 고성방가하고 싸우는 대표적인 유원지였다. 이런한 유원지 문화는 사람들의 눈쌀을 찌프리게하고 사람들이 다시는 찾지않게되므로 볼거리가 있는 관광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2.1.2. 소음에서 리듬으로
전형적인 유원지의 특성인 고성방가에서 벗어나 문화 contents를 채운다
2.1.3. 경치에서 운치로
아름다운 경치에서 더 나아가 스토리가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유원지 문화를 관광 문화로 바꾸자고 하였으나 전문인력과 자금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있는 대로 써 먹고 가진 것으로 승부하자" " 폐자원의 창조적 재활용" 등과 같은 역발상 아이디어들이 접목되기 시작했다.
강우현대표가 생각하는 관광이란 "볼관 빛광" 그대로 볼거리가 많고 사진찍을 꺼리가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사진이 잘 나오도록 전봇데를 없애고(전봇대가 있으면 사진이 망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유흥지 시절에 생긴 알록달록한 간판들을 없앤다.
2.2. 역발상의 볼거리를 만들자
사진 찍을 거리가 많아야하므로 색다른 접근을 시도하였다. 즉 계절을 거슬러 가능 것이다.
여름에는 군불을 피우고
겨울에는 여름을 주제로 "한겨울 여름축제"를 열었다.
또한 새해는 10월부터 시작해 미리미리 분위기를 띄우고 이름 봄까지 색스폰을 불었댔다. — 나름 분위기를 잡으려고 ㅎㅎ
그리고 모든 공간을 무대로 삼아 여러가지 이벤트를 사시사철 계속해 남이섬에는 항상 볼거리 찍을거리가 가즉하도록 했다.
한복쇼, 김치담그기 등등….
쓰레기는 쓸 애기로 쓰레기를 재활용해
돈이 없으므로 주변의 쓰레기를 활용하기로 하였다. '쓰레기'라는 말을 '쓸 애기'라는 말로 바꿔 부르고…
남이섬의 명물인 '이슬 정원'도 그런 과정에서 생겼다.
유원지다보니 엄청난양의 소주병이 쓰레기로 나온다. 그래서 3000여 개 빈 소주병을 이용해 정원을 만들고는 "참이슬"이란 소주 상표를 따 이슬정원이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이러한 소주병을 모아 팔면 공병으로 개당 40원을 받지만 소주병을 이용한 공예픔으로 만들어 팔면 훨씬 많은 이윤을 남길 수도 있고 남이섬에 가면 먼가가 있다는 이미지도 심을 수 있다.
아래는 이슬접시라 명명된 공예품..
또 쓰레기를 태운 재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었고, 가지치기한 나무들은 토막으로 잘라 건물 벽을 장식하는 데 썼다. 화장실 변기는 화분으로, 자투리 합판은 안내판으로 탈바꿈시켰다.
알루미늄캔을 압착해 만든 조형물..
남이섬에서는 이런식으로 쓰레게를 재활용해 조형물을 만들어 볼거리를 풍부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 식상해지면 팔고 다시 새로운 조형물로 대체한다고 한다.
▽ 남이섬 쓸애기_알류미늄캔 조형물
▽ 남이섬 화장실 내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기에도 바쁜데 뭐하러 안 되는 걸 구태여 생각하나요. 가진 게 폐품뿐이고 쓰레기뿐이라면 그걸 써먹을 궁리를 해야지. 돈이 없어서, 직원들이 일을 못해서 사업을 못하겠다고요? 돈이 없으면 벌어서 쓰고 직원들이 마음에 안 들면 가르치면 됩니다. 중요한 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상상력, 발상의 전환입니다. 불가능은 희망의 블루오션이에요."
2.3. 스토리를 만들자
초기 남이섬의 유일한 숙박시설은 낡아서 제대로된 난방도 되지 않았고 물이 새는 등 아주 문제가 많았다. 문제는 수리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남이섬은 달밤이 좋다. 별밤은 더 좋다. 하지만 새벽을 걷어 올리는 물안개를 마주하면 할 말을 잃게 된다"고 적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문의를 해왔다. 아침안개는 몇시에 피느냐? 남이섬에 들어가는 배의 첫시간은 언제냐?
결국 새벽을 걷어 올리는 물안개를 보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좀 불편함을 무릎쓰고 낡은 숙박시설의 고객이 되도록 했다.
▽ 남이섬 안내판
▽ 남이섬 아침 안개
그리고 남이섬은 달밤이 좋다. 별밤은 더 좋다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밤 10시가 되면 전깃불을 꺼버렸다.
달과 별을 실감나게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경치가 아닌 운치를 팜으로써 가치를 한단계 upgrade한것이다.
이러한 효과와 더불어 전기세도 아낄 수 있는 이중의 효과까지 있었다.
타조와 토끼 등 동물을 방목하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살아있는 볼거리가 생겼다. 그들을 위해 농약을 치지 않고 화초보다 잡초를 더 소중히 여겼다. 그러자 벌레가 많이 생겨났고, 곧이어 새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새들의 똥에는 야생화 씨앗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상상의 산물임은 물론인데, 백지 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온갖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웰빙(Well-being)보다 윌빙(Will-being)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남이섬 입구에 있는 인어공주상도 원래는 숲속을 지키는 여신상이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숲속에 발가벗은 여인상이 있을 이유가 없어서 강물에 던져버린다는 심정으로 강가로 옮겨왓다.
그런데 이 동상이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양에 따라서 모습이 달라지면서 바다를 그리워하는 인어공주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고 이는 아곳을 방문하는 사람에등레 묘한 신비감을 안겨주게 되었다.
▽ 남이섬 인어공주
2.4. 문화 contents를 만들자
예술가의 흔적을 소중히
남이섬을 방문한 예술가들의 낙서나 흔적들을 소중히 꾸며 또다른 contents로 발굴하였다.
남들이하면 그냥 낙서이나 예술가가하면 예술 작품이 된다.
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오 PD의 낙서도 잘 보존해 놓았다.
드라마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Contents화하다
겨울연가의 촬영지로서 남이섬은 일대 전환기르 맞이합니다.
외국인 특히 일본 관광객의 증가합니다.
▽ 남이섬 겨울연가 첫키스 장소
▽ 남이섬 겨울연가 연인상
2.5. 외국인의 날을 만들어 외국인을 끌어 모으다..
일정한 날을 특정국가의 날로 정해 섬 전체를 그 나라의 깃발과 음악과 문화로 채웠다.
그랬더니 대사가 찾아오고 그 나라 교민이 찾아오고 그리고나니 대사관이 후원하는 그 나라 공연이 열리고 점점 볼거리가 풍부해지더라…
이제 남이섬 관광객의 10%는 외국인라고 한다.
▽ 남이섬 외국인페스티벌 공지
2.6. 책나라 축제 – 책속에 빠져보자.
책나라축제를 열어 섬 전체가 책의 향기로 가득차도록 했다.
매년 70여국에서 이 책 축제에 참가한다,…
▽ 남이섬 책나라 축제
▽ 남이섬에 쌓여있는 책들
2.7. NGO와의연결 공익과 체험의 기회를 넓히다.
환경연합과 함께 남이섬 환경학교를 만들어 환경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 남이섬 환경학교2006 가을 체험 프로그램.
▽ 남이섬 환경학교
유니세프를 후원하다
▽ 남이섬 유니세프홀
2.8 그림 그리듯 청소를 하고 낙엽을 태워 운치를 더하다
남이섬의 청소도 운치를 생각합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남이섬의 청소하시는 분은 그 분 나름대로 예술을 만듭니다.
하트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듯이 청소를 합니다.
이 또한 남이섬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지요
가을이면 낙엽이 지는 남이섬은 아름답다..
그러나 절정의 경치는 얼마가지 못한다. 그리고 남이섬은 가을은 일찍 끝난다.
기대 만땅에 남이섬을 찾은 관광객은 이미 져버리고 황량한 모습을 보기 일쑤다.
그래서 서울과 비슷한 시기에 가을 분위기를 느끼라고 송파구에 요청해 송파구의 은행잎은 남이섬으로 가져와 활용했다.
송파구청은이 은행잎을 처리하는데 2000만원이 드는데 남이섬이 처리해주니 좋고 더우기 송파은행길이아 명명해주니 서로 이익이다.
▽ 남이섬 송파은행길
겨울이면 남이섬에 낙엽을 태웁니다..
넉엽을 태우면서 퍼저나가는 연기는 황량하고 보잘것없는 한겨울의 남이섬을 환상과 멋진 운치의 섬으로 변모시킴니다.
3. 나미나라 방문객은 꾸준히 증가하다
01년 2십7만명에 불과하던 남이섬은 3년이 지난 2004년에는 140만에 이르럿고 2008년에는 180만명에 이를정도로
빠르게 관광객이 증가하였다.
나미나라는 자연·자유를 팝니다.
아래글은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오늘 독립공화국 선포 3주년 축제 여는 강우현 남이섬 사장
향락시설 자리에 나무·꽃 심어…지난해 외국인 관광객만 20만
강우현 남이섬 사장이 낙엽을 태우고 있다. 그는 웃을 때 아이가 된다. 해맑고 천진한 웃음 때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이섬 대표인 강우현(56) 사장은 독립 공화국인 ‘나미나라’의 수반도 겸한다. MT 명소였던 유원지 남이섬을 휴양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뒤 3년 전 나미나라 공화국 독립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다음달 1일은 이 나라의 독립기념일이다. 남이섬은 국가(國歌)도 있고 자체 문자도 있다. 여권과 비자·화폐도 공화국 내에서 유통된다. 28일 여는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 준비에 정신 없는 그를, 반나절이나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독립을 선포한 후 무엇이 달라졌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라, 상상 속의 세상을 만들었다. 하나의 금기를 깼다고 생각한다.”
『피터 팬』의 ‘네버랜드’가 연상된다.
“우리에겐 ‘무법천지법’이란 헌법이 있다. 법이 없어도 되는 세상, 자유로운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아무 것에서도 간섭받지 않는 경지, 이게 자연이다. 우리가 파는 게 바로 이 자연이다.”
자연? 누구나 자연을 판다.
“솔직히 말하자. 한국의 자연환경이 세계적인 관광명소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생각’을 팔아야 한다. 한국은 무언가 각별하다는 생각, 남이섬에선 무언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생각, 이런 걸 나는 ‘안심’이라고 부른다. 어디를 갈까 궁리할 때 자연스레 남이섬이 떠오르는 것, 이게 안심관광이다.”
굳이 공화국을 선포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좋은 예가 있다. 한국에서 대만 국기를 게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하고만 수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선 아니다. 독립국이니 전 세계 국기가 휘날리는 건 당연하다. 자기네 국기를 보고 대만 관광객이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는가.”
남이섬은 국내 여행레저 업계에서 새로운 신화를 썼다.
“대표이사로 취임했던 2001년엔 카바레 같은 향락시설이 즐비했다. 이들을 몰아내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이 과정에서 업자들과 송사도 많이 벌였다. 그 송사는 지난해 모두 끝났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재배치했다. 죽은 나무를 섬 복판에 옮겨다 거꾸로 세웠다. 뿌리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 앞에서 사람들은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는다. 가을이면 온갖 종류의 낙엽이 카펫처럼 섬에 깔린다. 이른 봄엔 그 낙엽을 태워 연기를 만든다. 요즘 남이섬은 낙엽이 타는 그윽한 풍경과 냄새를 판다.”(자연상태로 되돌려 놓은 후 남이섬 입장객은 2001년 27만 명이었던 것이 지난해 180만 명을 넘겼다. 이 중에서 20만 명이 외국인이다.)
실패는 없었나.
“한 번에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잘 안 되면 이렇게 해보고 또 안 되면 저렇게 해봤다. 그렇게 하다 나온 결과를 사람들은 성공이라고 말했다. ‘내 맘대로 다 했더니 네 맘에도 드는구나’ 이런 식이었다.”
남이섬의 성공은 ‘겨울연가’의 덕이 큰 것 아닌가.
“드라마가 방영된 게 2002년이다. 7년이 지난 요즘 일본인은 하루 100명씩 찾아온다. 중요한 건, 그들의 마음에 남이섬이 들어있다는 거다. 올해만 18만 명이 방문했는데 그중 4만 명이 외국인이다. 드라마 촬영지는 한국에 무수하다. 하나 남이섬만 그들의 마음에 들어있다는 게 다르다. 남이섬에 8번이나 들른 일본인도 있다.”
이젠 상상했던 남이섬의 모습을 갖춘 셈인가.
“아직 멀었다. 병 들어 누워있던 남이섬을 이제 막 일으켜 세웠다. 본격적인 사업은 지금부터다.”
또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건가.
“너무 많다. 나무에서 씨를 받아 섬에 심고 있다. 50년 뒤를 내다본 사업이다. 논도 만들 작정이다. 섬에서 생기는 폐수로 벼를 기를 것이다. 나라를 세웠으니 식량을 비축해야 할 것 아닌가? 내 업무는 외교 분야에 집중될 것이다. 4월 일본의 온천도시 도야마(富山)에 제1호 나미나라 대사관을 세운다.”
당신은 CEO인가 예술가인가.
“내 아들의 아버지다.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인이고. 나는 지금 남이섬을 디자인하고, 사람들의 상상을 디자인한다.”
강 사장은 작별 인사 대신 “남이섬이 어떤 모습이 되면 좋겠다고 기사를 쓰면 그렇게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 줄 적는다. 앞으로도 세상이 그어놓은 금을 넘어서는 남이섬이면 좋겠다.
손민호 기자
◆강우현=1953년 충북 단양 출생.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디자이너다. 칸 영화제 포스터를 만들었고, 디자인 쪽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그 시절 좌우를 바꿔 글씨를 쓰는 기행으로 유명했다. 2001년 남이섬에 입사한 첫 해 월급이 100원이란 사실이 알려져 또 유명해졌고, 남이섬이 한류 관광의 진원지가 되면서 다시 유명해졌다. 지난해엔 종신직원제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종신직원이 되면 80세 퇴임 뒤에도 매달 80만원씩 받는다. 현재 직원 180여 명 중 종신직원은 넷. 그의 개인 홈페이지(www.kwooz.net)엔 다음의 글귀가 있다. ‘나는 하찮은 것이 좋다. 시시한 것은 더욱 좋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 흘러가는 바람에 뒹구는 낙엽 조각 같은 것. … 시시함과 하찮음. 생각나라 입장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