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TV를 보다가 자막에 선종했다는 것을 얼핏 보았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음에도 김수환추기경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후에 뉴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카토릭신자도아니고 그 분과 연을 맺은 적도 없지만 뉴스로, 신문으로 접하는 그분의 인상이 너무 좋았고
나름 열혈 전사였고 나름 한족에 경도되기 싶상이었던 대학시절조차 균형잡힌 그분의 말씀은 공감을 자아내었었다.
뜻한 바를 한평생 걸어오신 그 분에게 이름없는 한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애도를 표한다…
“김수환추기경님 진심으로 당신을 추모합니다.”
인터넷에 나온 사진 중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진과 시를 통해 추모의 정을 남기고자 한다..
김수환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정호승-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 성당을 빠져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 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 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 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 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 주다가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 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으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