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한복판의 외로운 바위, 철원 고석정 다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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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한복판의 외로운 바위, 철원 고석정 다시 걷다

날이 좋은 오늘, 고석정을 다시 찾았다. 이전에 리버 포레스트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스쳐 지나가듯 봤던 그 풍경을,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걸어서 담아보기로 했다.

철원 고석정이란, 그 이름에 얽힌 이야기

고석정(孤石亭)이라는 이름은 한탄강 한복판에 외로이(孤) 솟은 바위(石) 옆에 세운 정자(亭)에서 왔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때 고석바위 맞은편에 2층 누각을 짓고 고석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하며, 이후 고려 충숙왕도 이곳을 찾아 노닐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지금은 정자와 바위뿐 아니라 주변 협곡 전체를 아울러 고석정이라 부른다.

철원 고석정 부근에서 활동했던 의적 임꺽정

이 정자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의 이야기다.

백정 출신인 임꺽정은 신분의 벽에 부딪혀 뜻을 펼치지 못하다, 관료와 토호들의 수탈에 맞서 도적떼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고석정 건너편 산에 돌로 성을 쌓고 은거하며, 함경도에서 조정으로 향하던 조공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관군에게 쫓길 때마다 포위망을 귀신같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 ‘꺽지’와 같다 하여 ‘임꺽지’로 불리다 임꺽정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지금도 강 한가운데 우뚝 선 고석바위에는 그가 몸을 숨겼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 있고, 건너편에는 당시 쌓았다는 석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도 고석정은 의미가 깊다. 고석바위는 철원 일대가 용암으로 뒤덮이기 훨씬 전인 약 1억 1천만 년 전(백악기 중기)에 형성된 화강암으로, 이후 현무암질 용암류에 뒤덮였다가 한탄강의 침식 작용으로 다시 지표에 드러난 것이다. 화려한 역사 이야기 이전에, 이 바위 자체가 철원 땅의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구예의 태봉국 수도가 되었던 철원평야 지역

그리고 이 한탄강 유역은 약 1,100년 전, 신라 말기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궁예는 처음 송악(지금의 개성)을 도읍으로 나라를 세웠다가, 905년 이곳 철원으로 천도해 궁궐을 짓고 국호를 태봉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 도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궁예가 미륵 신앙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918년 왕건이 그를 몰아내면서, 철원을 도읍으로 삼은 지 채 18년이 되지 않아 태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태봉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이 일대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은하수교 옆에 놓인 다리인 태봉대교의 이름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도성의 위치는 현재 DMZ 지역에 있어 현재 상채를 알수 없다고 한다.

세종강무정, 왕이 사냥하고 병사를 훈련시키던 자리

고석정 일대를 걷다 보면 ‘세종강무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만나게 된다.

세종강무정 모급

강무(講武)란 조선 시대 왕이 직접 참여해 사냥과 군사훈련을 겸했던 행사를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과 세종이 각각 21회, 총 97일에 걸쳐 철원 고석정 일대에서 강무를 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1424년(세종 6)에는 철원 고석정 벌에서 사냥을 마친 뒤 그 자리에서 술상과 풍악을 준비해 대군과 종친들이 함께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태종이 아들 세종과 함께 강무를 마치고 위로연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어, 이곳이 단순한 사냥터를 넘어 왕실의 중요한 행사 공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철원군은 이런 기록을 근거로 2019년부터 고석정 용암지대 위쪽에 있던 이름 없던 정자를 ‘세종강무정’이라 명명했다. 이곳에 서면 고석정의 협곡과 기암, 휘도는 강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역할도 겸하고 있어, 역사적 의미와 함께 사진 찍기에도 좋은 자리다.

세종강무정에서 바라본 한탄강 풍경

한탄강 둘레길 속의 고석정

고석정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명소가 아니라, 한탄강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 네트워크의 한 지점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순담계곡에서 드르니 매표소까지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잔도)’로, 총 연장 3.6km에 이르는 이 길은 수면에서 20~30m 높이의 절벽에 매달린 다리 형태의 길을 걸으며 주상절리 협곡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순담 매표소 근처에는 고석정 꽃밭이 자리하고 있어, 잔도길과 꽃밭 산책을 한 번에 엮는 방문객도 많다.

겨울철에는 이와는 별개로 ‘한탄강 물윗길’이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직탕폭포에서 태봉대교, 은하수교(송대소), 마당바위, 승일교를 거쳐 고석바위(고석정)와 합수지,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부교 코스로, 강물 위를 직접 걸으며 협곡을 올려다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즉 고석정은 사계절 내내 여러 형태의 둘레길이 지나가는 한탄강 관광의 중심축인 셈이다.

오늘의 방문기

화요일 휴무, 그러나 길은 막지 않는 주차장 철원의 관광지 대부분이 그렇듯 고석정도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오늘도 고석정 주차장은 휴무였지만, 내려가는 길 자체를 막아놓지는 않았다. 다만 매표소가 운영을 하지 않다 보니 주차료도 받지 않았다. 뜻밖에 무료로 주차를 하게 된 셈이다.

300개가 넘는 가파른 계단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을 따라 내려갔다. 고석정 정자와 바위를 보기 위한 이 길은 가파른 계단으로만 300개가 넘게 이어져 있다. 길이 자체가 길지 않아 큰 부담은 없었지만,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화장실 근처 전망 포인트, 그리고 가장 좋은 자리는 결국 강변 계단을 내려가는 중간, 화장실 근처에서 고석정과 주변 풍경이 시원하게 트여 보이는 지점을 만났다. 여기서 먼저 사진을 몇 장 담았다. 다만 고석정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자리는 역시 한탄강변까지 완전히 내려가 강가에서 올려다보며 찍는 것이었다. 협곡의 스케일과 바위의 질감이 위쪽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물론 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나가 고석정을 담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앵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늘은 혼자였던 터라 통통배에 오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대신 고석정과 강, 그리고 강에 비친 반영까지 함께 담고 싶다면, 이전에 소개했던 리버 포레스트 카페의 데크길에서 망원렌즈로 당겨 찍는 방법도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오늘 담은 사진 중 한 장은 200mm로 당겨 찍은 것인데, 강 건너 고석정의 실루엣과 초록빛 수면이 차분하게 어우러진 그림이 나왔다.

카페에서 고석정 입구까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 이전 방문 때 소개했던 리버 포레스트 카페와 고석정 입구 사이의 거리는 실제로 재보니 약 200m 정도로, 생각했던 것보다 짧았다. 고석정 입구에서 세종강무정을 지나 걷다 보면 ‘카페 100m’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만날 수 있어,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오갈 수 있다.

꽃밭으로 이어지는 숨은 길 고석정 주차장에서 왼쪽, 그러니까 제2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가면 고석정 꽃밭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꽃밭에 도착하게 되는데, 위치상 아마도 고석정 꽃밭의 후문 역할을 하는 길로 보인다. 정문·후문 출입 동선에 더해, 고석정 관광지 쪽에서도 걸어서 꽃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셈이다.

아쉬웠던 순간 하나 고석정 주차장 앞에는 한탄리버스파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이 호텔 로비의 안내 데스크에 길을 물었는데, 응대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관광객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만큼, 조금 더 따뜻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 담아본 고석정 풍경

강가에서 담아본 고석정

강가 근처에서 담아본 한탄강

계단에서 담아본 고석정

리버 포레스트 카페 데크길에서 담라본 한탄강

마치며

오늘의 고석정은 지난번 카페에서 바라보던 풍경과는 또 달랐다. 계단을 내려가 직접 강가에 서니, 신라의 왕이 노닐고 조선의 의적이 몸을 숨겼다는 그 오랜 이야기가 눈앞의 바위와 물살 위로 겹쳐 보이는 듯했다. 화려한 꽃밭도 좋지만, 시간이 쌓아 올린 바위와 강,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역사 이야기를 함께 걷는 오늘 같은 산책도 철원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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