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그 건물 앞에서, 철원 노동당사 방문기
오늘은 철원 노동당사를 다녀왔다. 사진과 교과서로만 보던 건물을 실제로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노동당사, 그 연혁
노동당사는 1946년, 광복 직후 북한 정권 치하에서 지역 주민들의 강제 노역과 모금으로 지어진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다. 마을마다 쌀 200가마씩을 성금 명목으로 거둬들이고 인력과 장비까지 강제로 동원했는데, 특히 건물 내부 공사는 비밀 유지를 위해 노동당원 외에는 참여시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완공 이후에는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연천 일대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대남공작을 주도하는 거점으로 쓰이며 악명을 떨쳤다.
건축 양식 면에서는 옛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면 1층에는 원기둥 두 개를 세운 현관에 아치 장식을 더해 정면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구철원 일대가 완전히 폐허가 되는 와중에도 노동당사 건물은 살아남았고, 대신 벽면 곳곳에 포탄과 총탄 자국이 깊이 새겨졌다. 2002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로 보존되고 있다. 1994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도 종종 음악·영상 작업의 배경이 되며 대중에게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정면과 이면, 두 개의 얼굴
실제로 가서 보니 노동당사는 보는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정면의 단정한 균형
정면에서 마주하면 아치 장식을 두른 현관과 좌우 대칭의 구조가 비교적 단정하게 다가와, 별다른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노동당사 옆편
하지만 좌우로 돌아가거나 뒤편으로 가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월의 흔적이 낡은 벽면과 부스러진 마감재 위로 고스란히 드러났고, 실제로 건물 내부적으로는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노동당사 뒷면 풍경


노동당사는 벽체 미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등 노후화가 심해져,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밀 보수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이런 낡고 깎여 나간 모습, 이를테면 건물이 지금도 ‘복구 중’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포탄 자국 사이로 핀 들꽃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노동당사 오른편 2층 부분이었다. 전쟁의 흔적으로 남은 크고 작은 포탄 자국 사이로, 노란 들꽃이 피어 있었다. 총탄과 포탄이 할퀴고 간 자리에 계절 따라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이 꽤 이채롭게 느껴졌다. 파괴의 흔적과 생명력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모습이라, 이번 방문에서 가장 오래 눈에 담은 장면이었다.

노동당사, 어떻게 담을까
노동당사를 사진으로 남길 때는 건물 전체와 사람을 함께 프레임에 넣어 규모감을 살리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정면에서는 아치형 현관과 좌우 대칭 구조를 중심에 두고 찍으면 건물의 정면성이 잘 살아나고, 측면과 후면으로 돌아가면 벽면 가득한 총탄·포탄 자국과 노후화된 질감을 클로즈업으로 담기 좋다. 오늘처럼 포탄 자국 사이로 핀 들꽃이 있다면, 이를 전경에 두고 건물을 배경으로 살리는 것도 인상적인 그림이 된다.
또한 철원군은 최근 몇 해째 노동당사를 무대로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을 진행하며 해가 진 뒤 건물 전체에 빛과 영상을 입히는 야간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낮에 본 노동당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담을 수 있어,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야간 방문도 고려해볼 만하다.
마지막 장면, 군인들의 기념사진
방문을 마무리할 즈음, 일련의 군인들이 노동당사 앞으로 몰려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이 건물 앞에서, 지금 이 시대를 지키는 젊은 군인들이 단체로 사진을 남기는 장면은 꽤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그 어떤 설명보다도, 이 장소가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임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마치며
거창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방문은 아니었지만, 사진과 교과서로만 보던 곳을 직접 두 발로 딛고 서보니 그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정면의 단정함과 이면의 낡음, 파괴의 흔적과 그 위에 핀 들꽃, 그리고 오늘을 사는 군인들의 기념사진까지 — 노동당사는 여전히 여러 겹의 이야기를 품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