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신앙의 성지에서 만난 붉은 여름, 김제 금산사 배롱나무 방문기
1. 백제의 원찰에서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금산사의 유래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인 599년, 나라의 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로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엔 작은 규모였지만, 통일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 진표율사가 이곳에 주석하며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진표율사는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자신의 구도 체험을 그대로 가람에 옮겨 미륵전을 세우고 미륵장륙상을 조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금산사 미륵신앙의 뿌리다.
금산사 구내 지도.. 네이버 위성지도로 살펴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미륵전에는 개구리를 살려주는 진표율사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사냥 나온 소년 진표가 잡은 개구리를 물속에 묶어둔 채 잊고 사냥을 떠났다가, 한겨울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기억해내고 돌아가 여전히 살아 있는 개구리들을 발견하고 크게 참회하며 출가를 결심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고려 문종 33년(1079)에는 혜덕왕사 소현화상이 대사구와 봉천원구, 광교원구 등 무려 88당 711칸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금산사를 중창했고, 35부 353권의 불교 전적을 판각해 유통시키며 법상종의 종주 사찰로서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이곳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해 왕건에게 투항했다는, 한 나라의 흥망이 얽힌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뇌묵 처영대사가 천여 명의 의승군을 이끌고 왜군을 격퇴한 호국사찰의 역할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전각 대부분과 산내 40여 개 암자가 불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금산사의 골격은 1635년, 인조 13년에 수문대사가 15명의 화상과 함께 35년에 걸쳐 대적광전과 미륵전, 대장전 등을 복원하며 갖춰진 것이다. 1,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법맥을 이어온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자, 국보 1점과 보물 여러 점을 품은 문화유산의 보고다.
2. 견훤, 아들에게 갇힌 비운의 왕
금산사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유폐되었던 사건이다.
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는데, 이는 맏아들 신검을 비롯한 형제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935년 3월, 신검은 양검·용검 두 동생과 손잡고 기어이 반란을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과 그의 후궁 고비까지 함께 금산사에 가두어버렸다. 스스로 세운 나라에서, 자신이 왕위에 앉히려 했던 막내아들의 죽음과 함께 하루아침에 왕좌에서 끌어내려진 것이다. 왕위를 찬탈당하고 아들과 측근을 잃은 충격 속에, 견훤은 이 절 안에서 술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견훤은 석 달 만인 935년 6월, 금산사를 탈출해 나주로 향했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고려로 건너가 왕건에게 투항했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을 왕좌에서 몰아낸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적국이었던 고려에 무릎을 꿇은, 후삼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 중 하나였다.
왕건은 견훤을 극진히 예우해 ‘상부(尙父)’라는 칭호를 내렸고, 이듬해인 936년 일리천 전투를 거쳐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훗날 신검이 항복해오자 왕건은 견훤의 바람과 달리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이는 아들의 죽음을 바랐던 견훤에게 또 다른 배신감을 안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금도 금산사 경내에는 이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견훤성문’이라 불리는 개화문과 오래된 석성 일부가 이 사건을 증언하듯 자리하고 있어, 배롱나무의 화사함 뒤편으로 천 년 전 부자간의 권력 다툼과 한 왕조의 몰락이 스쳐 지나간 자리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3. 배롱나무 아래 낭만적으로, 제3주차장까지 차로 직행
금산사는 주차비 5,000원을 내면 경내에 있는 제3주차장까지 진입할 수 있다. 이번엔 그 제3주차장까지 들어가, 마침 자리하고 있던 배롱나무 아래에 차를 세웠는데, 그 순간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3주차장은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난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절 입구 통제소에서부터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워낙 더운 날이었던 터라 20분을 걷는 대신 5,000원의 주차비를 내고 끝까지 차로 달렸다. 무더위 속에서 이 선택은 탁월했다.
일주문: 어느 사찰이든 사찰이 시작되는 곳

금강문
입구 금강교를 지나 바로 나오는 금강문…

천왕문
금강문을 자나 나오는 천왕문…
금산사 3주차장은 바로 여기 천완문 주변 공터를 말한다. 특별한 주차 표시없이 적절한 곳에 주차하 수 있다.

보제루
광징히 넓은 건물이 하나 나오는데 보제루라고 한다

이 보제루는 대전광전쪽에서 바라보면 개산천사백주년기념관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이 글씨체가 낮에 익은데 맞다. 신영복선생(1941~2016)의 글씨라고 한다.

4. 대적광전 앞 배롱나무, 세 전각을 한 프레임에 담다
금산사 곳곳에 배롱나무가 피어 있었지만,
금강문 옆 화장실 근방의 배롱나무

보제루옆, 범종각 근처 배롱나무


대적광전 앞 배롱나무
금산사 배롱나무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단연 대적광전 앞 왼쪽에 서 있는 배롱나무였다. 이 자리에서는 대적광전과 극락전, 그리고 대장전까지 세 전각을 배경으로 배롱나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대적광전과 배롱나무 풍경

극락전과 배롱나무



대장전과 배롱나무


일반적인 사찰이라면 본존을 모신 중심 법당을 ‘대웅전’이라 부르지만, 금산사에서는 이를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이유가 있는데, 금산사는 미륵전이 가장 크고 유명한 전각이라 미륵신앙의 사찰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근본 중당은 화엄경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대적광(大寂光)’이라는 이름은 큰 고요함(大寂)과 지혜의 큰 빛(光)을 지닌 부처, 곧 비로자나불의 성격에서 따온 것으로, 비로자나불이 석가모니와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 모든 부처의 본체이자 진리의 몸이라는 화엄사상을 담고 있다.
본래 이 건물은 ‘대웅대광명전’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 중건하면서 극락전과 약사전에 모시던 불상까지 한데 옮겨 5여래 6보살을 모두 봉안하고 이름을 대적광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86년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어 지금의 건물은 199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럼에도 화엄신앙과 아미타신앙, 약사신앙이 한자리에 모인 이 건물의 내력을 알고 나면, 배롱나무 너머로 보이는 처마선이 더 깊게 다가온다.
미륵전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 외관은 3층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트인 통층 법당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유일의 건축 형식을 지녔다.



5. 미륵전 뒤편 언덕과 적멸보궁 오르는 계단
미륵전 뒤편 적묵당 언덕 위에도 배롱나무꽃이 만발했다.

이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 외관은 3층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트인 통층 법당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유일의 건축 형식을 지녔다. 진표율사가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은 체험을 가람에 그대로 옮겨 세운 전각이니, 이 언덕에서 배롱나무 너머로 미륵전의 지붕선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감흥이 인다.

미륵전 뒤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도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적멸보궁에서 미륵전을 배경으로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다.

적별보궁에서 바라본 미륵전 풍경



여기서 말하는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즉 방등계단 앞에 세운 전각이다. ‘금강’이란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가장 단단한 것을 뜻하는데, 계율을 금강처럼 굳게 지킨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적멸보궁의 가장 큰 특징은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처의 진신사리 자체가 예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법당 안이 텅 비어 있는 대신 뒤편 계단을 향해 예를 올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배롱나무꽃이 그 계단을 붉게 물들이는 여름이면, 텅 빈 고요함과 만개한 화려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풍경이 완성된다.

6. 오층석탑과 배롱나무, 송대 언덕의 그림
적멸보궁 옆 언덕에는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송대(松臺)’라 불리는 높은 대지로, 보물 제25호로 지정된 이 탑은 화강암으로 소박하고 단정하게 쌓아 올린 고려시대 석탑이다. 한때는 후백제 견훤이 금산사를 창건하며 세운 탑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1971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중창기 기록을 통해 979년에 시작해 981년에 완성된 고려시대 탑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졌다.
탑 바로 뒤로는 종 모양의 사리장엄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자리하는데, 계단 앞에 석탑을 세워둔 이 배치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사리 신앙의 한 형식이라고 한다. 배롱나무와 오층석탑을 함께 담으면 멋진 그림이 나온다는 말 그대로, 천 년 세월을 견뎌온 화강암 탑과 여름 한 철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가 함께 프레임에 들어오는 순간, 오래된 것과 찰나의 것이 나란히 공존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방등계단


백제의 원찰에서 시작해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견훤의 유폐지에서 호국사찰로 이어져 온 금산사의 천 년 넘는 시간 위로, 이번 여름엔 배롱나무의 붉은 빛이 짧게 내려앉았다. 대적광전 앞에서, 미륵전 뒤 언덕에서, 적멸보궁 계단에서, 그리고 오층석탑 곁에서 만난 배롱나무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배경 삼아 피어 있었다. 오래된 절집과 짧게 피고 지는 꽃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 대비야말로, 금산사 여름 출사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