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시간 위로 핀 여름, 서울 덕수궁 배롱나무 방문기
1. 월산대군의 사가에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덕수궁의 유래
서울 한복판, 시청 앞에 자리한 덕수궁은 원래 궁궐로 지어진 곳이 아니었다. 조선 초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 있던 자리였는데,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자 선조가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으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광해군 때 ‘경운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오랫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이 공간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 건 1897년,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다. 고종은 이곳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때부터 중화전을 비롯해 정관헌, 돈덕전, 함녕전, 석조전 등 굵직한 전각들이 잇따라 세워졌다.
흥미로운 점은 궁궐 안에 서양식 건물들이 나란히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세우려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전통 한옥과 서양식 석조 건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궁궐 풍경으로 남은 셈이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의 여파로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하면서 궁호도 함께 바뀌었다. 태황제가 된 고종이 계속 이곳에 머물게 되자, 그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궁의 이름을 ‘덕수궁’이라 고쳐 부른 것이 지금 이름의 유래다. 고종은 19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로 함녕전에 머물렀는데, 정작 심혈을 기울여 지은 서양식 석조전에서는 황제로서 단 하루도 지내보지 못했다. 완공되기도 전에 퇴위를 당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서양식 건축물 속에 남겨진 이 공백이, 덕수궁이라는 공간을 더욱 애잔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2. 입장료 1,000원, 광명문을 지나 함녕전과 정관헌으로
덕수궁 입장료는 1,000원이다. 궁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등 별도 시설의 관람료는 이와 무관하게 따로 내야 한다.
광명문
매표소를 지나 먼저 광명문을 거쳐 들어섰다. 광명천은 원래 함녕전의 정문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겨 다니다가 최근 복원 과정을 거쳐 제자리를 찾았다.

고종이 죽을때까지 기거했던 함녕전
이 문을 지나면 고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로 기거했던 침전, 함녕전이 나온다. 1897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1904년 온돌 수리 공사 도중 화재가 나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 대부분이 함께 불타는 아픔을 겪은 자리이기도 하다.


정관헌
함녕전을 지나 정관헌 앞을 지났다. ‘고요히 내려다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이 건물은 동양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뒤섞인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고종이 이곳에서 커피와 다과를 즐기며 외국 사절을 맞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대한제국이라는 낯선 근대국가의 풍경이 가장 인상적으로 압축된 공간이라 할 만하다.

정관헌으로 오르는 계단

3. 중화문과 중화전, 궁궐의 격을 보여주는 정전
이어서 중화문과 중화전을 살펴봤다.
중화문

중화전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창덕궁의 인정전을 본떠 원래는 중층으로 지어졌던 격 높은 건물이다. 단층인 창경궁의 명정전이나 경희궁의 숭정전과는 격이 다른 위상을 지녔던 셈이다.


실은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할 당시만 해도 중화전은 미처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는 석조전을 먼저 지을 계획이었는데, 서양식 기초 공사가 예상보다 오래 걸리면서 국가의 정전이 시급히 필요해지자 고종의 지시로 중화전이 먼저 세워졌다고 한다. 근대화의 상징인 석조전보다, 전통 방식의 정전이 급하게 앞서 지어졌다는 사실이 이 시기 대한제국이 처했던 다급한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4. 석조전 앞 배롱나무, 근대의 얼굴 위에 핀 여름꽃
석조전

중화전을 지나 석조전 앞에 이르니 배롱나무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1900년에 착공해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야 완공된 이 서양식 석조 건물은 황실의 생활공간이자 정치 공간으로 계획된 곳이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고종은 이곳을 황제로서 사용해보지 못했다. 광복 이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쓰이다가, 2014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서양 고전주의 양식의 육중한 석조 기둥과 그 앞에 붉게 피어난 배롱나무의 조합은, 전통과 근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좌초된 한 나라의 꿈이 겹쳐 보이는 풍경이었다.

5. 석조전 계단을 올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준명당 쪽으로
석조전 계단을 올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방향과 준명당 방향을 차례로 살펴봤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앞서 언급했듯 한때 석조전 자리에 있던 미술관 기능을 이어받은 곳으로, 근대 건축물 안에서 근현대 미술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는 그 계단에 올라 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석조전의 반듯한 서양식 정원과 그 너머로 겹쳐 보이는 전통 전각들의 지붕선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오는, 덕수궁이 아니고서는 만나기 힘든 구도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계단에서


6. 대한문, 그리고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덕수궁
덕수궁을 나와 정문인 대한문 풍경을 담았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인화문이었지만, 1906년 대한문으로 정문이 바뀌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통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열려, 궁 밖에서도 옛 궁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동전망대
정동 전망대 가는길

정동전망대에서 보는 덕수궁
마지막으로 정동전망대에 올라 덕수궁 전체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정동전망대에서 보이는 덕수궁은 정혹히 방향이 일치하지는 않아 사선으로 보인다.
대한문 왼쪽 정동길 초입, 서울특별시청 서소문청사 1동 13층에 자리한 이곳은 입장료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심 전망 명소다. 창가를 따라 조성된 관람 공간에서는 덕수궁의 중화전과 석조전은 물론, 중명전과 정동제일교회, 옛 러시아공사관 터까지 정동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통 한옥 지붕과 현대식 고층 건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방금 걸어 나온 궁궐이 도심 한가운데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난다.


서울 시청이 보이는 풍경

다만 평일은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로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월산대군의 사가에서 시작해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그리고 지금은 도심 속 시민들의 산책로로 남은 덕수궁. 광명문에서 함녕전과 정관헌을 지나 중화전, 석조전을 거쳐 대한문을 나서고 정동전망대에서 다시 그 전체를 내려다보기까지, 이 짧은 동선 안에 근대 한 세기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위로 짧게 피고 지는 배롱나무꽃이 여름 한 철의 붉은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