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혁신 사례 – IT가 아니어도 혁신이 가능함을 보여준 레고 위기 극복기

Updated on 2020-06-09 by

레고 혁신에 대해서..요즘 여기 저기서 레고 사례를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아서 레고가 혁신을 통해서 위기를 극보했던 사례를 함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 아마존에코 또는 애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던 이 시점에 장난감(?) 회사인 레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진부하고 어쩌면 낡은 주제일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혁신은 어떤 특정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고 IT 회사들보다는 전통적인 사업이 훨신 더 많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많은 맘큼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레고의 사례는 전통적인 회사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프로세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상당히 오랜된 회사가 단기간내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간단히 살펴보는 레고 혁신의 역사

레고는 덴마크어인 ‘레그 고트(Leg Godt)’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레고는 ‘잘 놀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로 두 개, 세로 네 개의 요철을 가진 레고 기본형은 1949년 처음 시장에 선보였고, 1958년 레고를 ‘자동 결합 블록’으로 특허 출원했습니다.

레고 블록 두 개로 24개의 조합이 가능하고, 여섯 개면 조합이 무려 9억 1,500만 개로 늘어나며, 블록이 100개면 조합 수는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는 창의적인 놀이 기구라 할 수 있습니다.

레고는 1932년 덴마크의 한 작은 마을 목수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아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만든 목재 장난감에서 출발했습니다.

그가 운영하던 공방이 어려움을 격자 그는 사업 노선을 변경해 그 동안 짬짬히 만들어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이는 시장에서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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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Ole kirk Cchristiansen

창업 초기부터 ‘최고만이 최선’이라는 모토와 함께 품질에 대해서 만큼은 완벽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초창기 나무 장난감을 만들던 시절, 창업자 올레 키르크의 아들 고트프레드 키르크는 오리 인형에 니스를 세겹으로 바르지 않고 두겹으로 발라서 돈을 아꼈다고 아버지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히려 그런 아들을 엄청나게 혼냅니다. 아들은 다시 기차역으로 가서 모든 오리 인형을 회수해 와서 밤새 다시 제대로 칠해서 바로 잡았다는 일화는 레고의 고집스런 최고 품질을 잘 이야기해주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레고 2번째 시리즈.jpg
▲ 1930년대 레고의 wooden toys의 두번째 시리즈인 동물들… 여기에 일화감 숨쉬고 있는 오리 인형도 포함되어 있다.

레고 블록의 발명 – 장난감 산업에서 최고의 혁신이 되다.

이후 장난감 소재를 목재에서 플라스틱으로 확장하고자 1946년 한해 이익의 2배가 넘는 돈을 들여서 플라스틱 성형 기기를 구입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는 네덜란드 업계 최초로 나무를 다루는 목수 출신에게는 인생을 건 도박이었습니다.

플라스틱은 새로운 시도였지만 쉽지만을 않았습니다. 1949년 시제품이 발매되었지만 충분한 결합력을 확보하지 못해서 반품되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매출에의 기여를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업계 및 언론에서는 “플라스틱 장난감은 절대로 품질좋고 튼튼한 나무 장난감을 절대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않고 거의 10년동안 제대로된 레고 블록(LEGO Mursten)을 만들기 위해 분투합니다.

충분한 결합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수한 시도와 실험이 거듭되었습니다. 드디어 1958년 완전한 결합력을 갖춘 레고블록을 개발하고, 특허 출원을 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 레고 블럭을 통해서 한없이 확장할 수 있는 장난감, 아이들이 무엇이든 상상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장남감이 될 수 있었고 놀이를 통한 학습이라는 철학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업자 올레 키르크와 그의 아들 고트프레드가 대를 이어서 완성한 이 결합력이 있는 레고 블럭은 10년에 걸친 끈기있는 싸움끝에 쟁취한 성과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난관을 극복하고 요원한 목표를 달성한 흔치않은 사례이고, 장난감 업계에서의 아주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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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고하는 아이들, 2015년 레고 연간보고서에서 이미지를 빌려옴

레고, 제품이 아니라 시스템이 되다.

올레 크리크 크리스티안센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아들인 Godtfred Kirk Kristiansen(이하 고트프레드 키르크)에게 경영권이 이어졌습니다.

레고 2세 고트프레드 키르크 레고랜드에서.jpg

고트프레드 키르크는 앞에서 설명한 레고블록을 아버지와 함게 발명했으며, 블록을 통합요소로 삼아 전반적인 놀이 시스템을 창출하였습니다.

그는 1954년 런던 장난감박람회를 둘러보다가 레고 놀이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타당한 시스템을 구성해 회사의 ‘놀이 원칙’이라 이름붙인 6가지 속성을 정리했습니다.

  1. 작지만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 크기
  2. 합당한 가격
  3. 단순하고 튼튼하며 풍부한 변화를 제공하는 제품
  4. 남자와 여자아이 그리고 전 연령대에 재미를 주는 제품
  5. 유통하기 용이한 형태
  6. (호환이 되는)

레고는 후방 호환성을 부여해 새로 제조한 블록도 1958년 초기에 나온 초기 블록과 호환해 결합할 수 있게 설계하였습니다. 따라 하나의 키트에서 나온 모양을 자동차, 신호등, 철길 등 다른 키트에서 나온 모형과 합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호환 덕분에 새로운 장난감이 출시될때마다 레고의 세계는 커지게 되었습니다.

1979년부터 본격적인 성장의 시대를 열다

1979년 3세인 Kjeld Kirk Kristiansen(올레 키르크의 손자, 이하 키엘 키르크)이 겨우 31세의 나이로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레고를 본격적인 성장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1932년 레고 창립 후 10억 덴마크 크로네(다시 환율로 1.8억달러)를 달성하는 데 1978년까지 46년이 걸렸지만 크리스티안센은 그 매출을 급격하게 증가시켜 10년동안 5배를 증가시켰습니다. 1979년부터 1993년까지를 본격적인 성장기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레고 3세 키르크, 올레 키르크의 손자 Kjeld Kirk Kristiansen02.jpg

레고를 그는 아래와 같이 크게 3가지를 혁신하였습니다.

  1. 레고그룹의 제품 라인을 세그룹으로 나누어 전문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 세그룹은 저연령 아동을 위해 큰 블록으로 구성되는 듀플로, 레고 시스템의 핵심인 기본 조립 세트로 구성되는 레고 조립장난감, 저연령층 소녀를 위해 새롭게 개발한 조립형 장신구 라인인 스칼라(Scala)같은 ‘ 다른 형태의 고급 놀이 소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결과 듀플로는 성자에 성장을 거듭해 브랜드의 위치로까지 격상되어 곰돌이 푸와 토이스토리 같은 다양한 캐릭터를 포함할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2. 놀이시스템이라는 전체 개념을 재정의하고 확장하였습니다.
    기존에는 세트와 세트간 통일성이 부족해서 같이 작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를 해소하기위해 시스템과 적절한 비례를 이루는 미니어처 모형들로 구성된 새로운 라인을 개발했고 이러한 미니 피구어 또는 미니피그는 레고에 역활 놀이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극적인 활력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믈럭에 이어 가장 중요한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3. 테마 세트라는 개념의 정립해 1978년 캐슬라인을 발매합니다.
    이 캐슬라인 레고십자군, 용조련사, 왕궁 기사가 등장하는 중세 세계로 확장되었고, 같은해 출시된 스페이스 라인은 미니 레고 우주비행사, 우주선등으로 구성되고 점차 200개가 넘는 세트를 갖추게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런 캐슬라인과 스페이스라인은 향후 레고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준 다른 테마를 위한 초석이 됩니다. 즉 파이럿 테마와 레고 스타워즈, 레고 해리포터들이 그것입니다.

위기의 시대

레고블럭으로 승승장구하던 레고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1993년까지 계속 상승세를 타왔는데 1994년부터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레고 위기의 배경은 레고블록의 특허가 풀리면서 비스한 제품이 저가에 난립하게된 점, 그리고 비디오 게임 등 대체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레고만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에 있었습니다.

  1. 1958년 특허 출원한 레고블록에 대한 독점 특허가 만료되어 모든 기업은 레고 로고만 쓰지 않으면 레고 블록과 호환되는 플라스틱 블록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옥스포드브릭스(중국), 메가블록스(캐나다) 등 레고 로고만 없지 사실상 똑같은 블록들이 출시되었고 레고는 이런 저가 상품들과 경쟁하게되었습니다.
  2. 완전히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습니다.
    비디오게임이 보급되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1994년), 마이크로소프트 X박스(2001년) 등에 의해서 비디오게임이 확산되고 컴퓨터, 케이블 TV등이 보급되면서 아이들은 레고가 아니드라도 가지고 놀 장난감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3. 세번째 난관은 개규모 개발에 나서면서 제품 수를 크게 늘렸습니다.
    문제는 제품을 늘리면서 레고의 절제력이 사라지고 레고 고유의 특성이 사라진 점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신규 장남감수가 증가할 수럭 매출은 증가하지않고 대신에 이익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레고 매출 이익 신규 장난감 수 다시 그림.jpg
  4. 중산층 아동이 여유없이 꽉 짜여진 일상을 소화하므로 정해진 결말없이스스로 만들어가는 레고식 놀이를 즐길 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레고의 매출은 1993년에 매출이 7.2Billion DKK로 정점을 찍은 후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해서 1998년 처음으로 적자(0.2Billion DKK, 4800만달러, 약 543억) 전환했습니다.

그리하여 1998년 8670먕에 이르던 직원을 1999년에는 1000명을 해고할 지경에 이릅니다.

확장으로 통한 위기 극복 시도하다

지난 10년동안 널리 알려진 이론을 토대로 야심찬 성장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미개척 블루오션 지장을 찾아 항해했고, 파괴적 혁신을 기획했으며, 대중의 지혜를 얻으려 개발 절차를 개방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레고를 거의 침목시킬 뻔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레고는 사업 다각화를 위기 극복의 가장 좋은 대안으로 판단하고 사업 영역과 레고 제품군을 공격적으로 확대합니다.

1993년 실시한 벤치마킹조사에서 레고의 브랜드 가치가 세계적 기업 디즈니보다 우위라는 결과에 성공을 자신한 것입니다.

  1. 그리하여 아동복(1993년), 시계(1995년), 출판, 미디어 영화, 게임 산업(1990년대 중반)까지 진출했고
  2. 신제품을 확대해 연간 출시 신제품 수가 1996년 160종에서 1998년에는 347종으로 급증합니다.
    또한 딱 정해진 모양만 완성할 수 있는 특수 블록의 생산을 늘렸고 이로인해 레고 블록 숫자는 1997년 ~ 2004년 7년만에 6천개에서 1만4천개로 증가하게 됩니다.
  3. 또한 1968년 최초 개장해 데마크 빌룬 1개소만 운영하던 레고랜드를 3년 간격으로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 개방합니다. 1996년 영국 윈저, 1999년 미국 칼스배드, 2002년 독일 귄즈브르크에 잇달아 개장합니다.

확장은 매출 증가는 가져왔지만 수익이 악화되고 브랜드 로열티가 약화되다

단기적으로 매출이 상승했지만 2002년이후 매출은 급락했고 2003년가 2004년 각각 ▲1.7억달러, ▲3.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파산 위기에 처합니다. 그것은

  1. 문어발식 사업 다각화로 비용지출이 늘면서 손익구조가 악화되었고
  2. 신제품 증가는 제조, 물류, 재고 비용을 늘려 사업구조를 비효율적으로 만들었으며
  3. 또한 지나친 특수 블록의 증가는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레고만의 매력을 지워버렸고(다른 레고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레고의 정체성인 조립 블록의 이미지가 희미해지면서 주 타겟인 어린 남자아이들까지 외면하게 되고 판매는 더 안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레고(LEGO) 매출로 살펴본 역사.jpg

3. 혁신을 통한 위기의 극복

2003년, 2004년 레고가 극심한 적자의 늪에 빠지면서 파산 위기를 맞았고 바비인형 제조사인 마텔에 인수된다는 설이 돌기도 했습니다.

매각도 검토되었지만 결국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 경영인을 영입키로 합니다. 이에 따라 2004년 맥킨지 경영 컨설턴트 출신으로 34세였던 욀겐 비 크누스토르프를 새로운 CEO로 영입합니다.

새로운 CEO가 된 크누스토르프는 레고의 잘못된 혁신 과정을 돌아본 뒤 레고 본질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그가 내세운 레고 본질은 블록을 조립하는 재미로 ‘블록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rick) 전략에 착수합니다.

레고하는 아이4.png

다각화 전략을 버리고 핵심인 블록에 집중하자

그 동안의 무리한 확장주의적 다각화 전략을 버리고 레고의 핵심사업인 ‘블록’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키엘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레고 회장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합니다.

“레고 브랜드에는 ‘블록 쌓기’라는 본질이 담겨야 한다. 새로운 놀이 패턴을 따르면서도 전통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2005년 적자가 지속되던 레고랜드의 지분의 70%를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그룹(미국)에 매각하였습니다.

이후 레고랜드는 전문기업인 멀린엔터테인머트(영국)이 맡아서 운영하게 됩니다.

둘째, 사업부 자체적으로 직접 추진하던 아동복, 시계, 출판, 미디어, 게임등은 라이센스 방식으로 전환하였습니다.

2005년 이후 비디오게임은 대부분 라이센스방식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후 이 비디오 게임 부분에서 빅히트 제품이 잇달아 발매되어 이 전략이 올바르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습니다. 2008년 ‘레고 배트맨’(판매량 1,000만 카피), 2012년 ‘레고 배트맨2’ 등이 그 것입니다.

조립을 기반으로 다양한 고객층을 공략하다

기존 고객층인 어린이 뿐만이 아니라 청소년, 성인 등 새로운 사용층을 공략하기 위한 제품을 전략적으로 출시합니다.

1999년 이전까지 레고는 한번도 라이센스를 고려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논란을 거친 끝에 1999년 ‘루카싈름’과 최초로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레고 스타워즈’를 출시했는데 이는 엄청난 대박을 터트립니다.

이후 적극적으로 라이센스 모델을 확대해서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등과도 계약을 토대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합니다. 이런한 제품은 소비자층을 어린이에서 청소년 및 어른들로 확장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레고 스타워즈 star-wars-rebels-lego-sets-resize.jpg

또 청소년을 타겟으로 출시한 ‘4주니어(2003년);, 성인이 주고객층인 ‘레고 아키텍처(2008년), 온 가족을 대상으로 출시한 ‘레고 게임스(2009년)등을 출시해 고객층을 확대하게 됩니다.

단순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다.

제품의 종류가 늘어나고 조달업체등이 늘어나면서 비효율이 증가하므로 이를 단순화하고 효율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레고의 확장 전랙에 따라 제품의 종류가 늘어나먄서 레고 블록의 종류는 2004년에는 14,200개까자 급격히 증가합니다. 또한 하나의 재품에만 사용된 후 폐기되는 특수 블럭도 급속히 증가합니다.

이러한 블록의 수 의 증가는 제조와 유통의 비용을 높이는 부작용이 나타나 단순화를 통한 효율성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제품군간의 호환성을 높이고 블록 종류를 단순화하기 위해 부속수를 절반인 7000개로 줄이고 표준 블록의 사용율을 70%까지 끌어 올립니다.

이렇게 잘 쓰이지 않는 블록을 없애고 단순화하자 이의 제조, 유통에 드는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레고 제품들끼리의 호환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또 거래업체와 거점을 통합해 공급망 전반을 효율화 하였습니다. 거래업체가 11,000여 업체에 달했는데 이를 2,200여 업체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제품 개발자가 신제품 제조에 사용할 소량의 재료를 개별적으로 업체에 주문하면서 가격이 비싸고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는데 이러한 원재료 발주 프로세스를 정비해 원재료 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물류센터도 덴마크, 독일 등 5개소에 흩어져있었는데 이를 체코 물류센터로 통합해 재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소비자 참여를 통한 제품 개발

레고 제품은 어린시절 가지고 놀다가 커버리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장난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레고가 레고 스타워즈(Lego Star Wars), 레고 마인드스톰(Lego Mindstorms) 등 나이가든 사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수많은 성인들이 다시 레고 놀이에 빠지고 이와 관련된 커뮤니티가 생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에는 북미에서 11개의 레고 사용자 그룹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추세는 전세게로 퍼져나가 2006년에는 전 세계에서 60개가 넘는 레고 사용자 그룹이 생겨났고 2012년에는 150개를 넘어섰고 10만명 이상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레고는 자사 제품 및 지적 재산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극도로 공개를 꺼리는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1998년 마인드스톰 해킹사건이후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게 됩니다.

마인드스톰 해킹사건은 1998년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프로그램을 짜 맞춤형 로봇을 제작할 수 있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구성된 레고 마인드스톰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는데 출시 후 3주만에 레고팬들이 제어 프로그램을 해킹하여 기본 기능외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버젼을 인터넷에 공개한 사건을 말합니다.

레고는 해커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지 고민하다가 차라리 사용자들이 협력해 신제품 및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도록 장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레고 마인드스톰.jpg

이후 레고는 제품의 개발에 사용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왔으며 2005년부터는 팬들과 직접적인 방식으로 접촉하는 대사 프로그램(Ambassador Program)을 도입했습니다.

회사는 대사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를 얻을 수 있었으며 팬들은 협력을 통해서 레고의 비즈니스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레고가 10대와 성인용 제품 개발토록 장려하면서 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5년에 추진된 레고 팩토리 출시 프로젝트에서 사용자들은 설계 과정에 참여했고 그 결과 레고 팩토리 놀이공원(Lego Factory Amusement Park) 세트, 레고 팩토리 공항(Lego Factory Airport) 세트, 레고 팩토리 스카이라인(Lego Factory Skyline) 세트 등 3개의 모형 세트가 탄생했습니다.

▽ 아래는 Designed by LEGO Fans라는마크가 선명한 LEGO Factory Set

레고 팬들이 만든 Lego Factory Amusement Park.jpg

4. 비약적 성장으로 글로벌 1위를 넘보다

매출관점에서 살펴보면 2003년을 저점으로 2004년부터 연속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는 급속한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었던 세계 1위인 Mattel과 Hasbro와 자웅을 겨루는 수준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리하여 2013년엔 매출로 세계 2위인 Hasbro를 제치고 2위에 올랐으며 2015년 매출은 1위인 Mattel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Mattel을 누르고 글로벌 1위가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어쩌면 DKK의 환율변동이 없었으면 2015년에 1위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DKK 환율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USD 환산 매출은 생각보다 증가하지는 못한것으로 표현되고 말았습니다.)

어찌하든 2016년에는 어쩌면 정말 명실상부하게도 멋진 역전의 드라마를 조만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난감 업체별 매출 추이 비교.jpg

아래는 포천지에서 2015년 레고의 실적에 대해서 보도한 기사입니다.

여기에서는 매출이 전년비 25% 성장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DKK환율의 하락으로 USD로 환산시는 5%이하의 성장으로 나오긴 합니다. 현지 화폐기준으로는 25% 성장한게 맞습니디.

레고와 같은 오래되고 전통적인 기업에서 연간 25% 성장은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레고관련 Fortune artcle-vert.jpg

경쟁사를 압도하는 손익(Net Income)을 보여주다

아래는 주요 장난감업체별 손익(Net income)율을 비교해본 그래프입니다.

레고가 어려욺을 격던 2000년도 초반엔 시절에는 이익율이 -30%가 넘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만 윅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다시 성장하는 2006년부터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이익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출도 빠르게 성장고있지 이익율도 경쟁사를 압도하는 수준이니 곧 장난감 업계를 리딩하는 확고부동한 브랜드가 될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장난감 업체별 손익율 비교.jpg

영국 브랜드파이낸스가 2015년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로 선정하다

또한 브랜드관점에서 살펴보면 2015년 영국 ‘브랜드 파이낸스’가 선정한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familiarity, loyalty, promotion, staff satisfaction and corporate reputation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의하면 레고 무비의 성공이 이러한 평가를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In a tech-saturated world, parents approve of the back-to-basics creativity it encourages and have a lingering nostalgia for the brand long after their own childhoods.

The LEGO Movie perfectly captured this cross-generational appeal. It was a critical and commercial success, taking nearly $500m since its release a year ago. It has helped propel LEGO from a well-loved, strong brand to the World’s most powerful.

world's most powerful brand.png
world's most valuable brands.png

새롭게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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