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이벌과 차별화 ‘바로 이 색이야’

Updated on 2009-07-31 by

아래 글은 위클리 경향 832호의 내용을 가져온 것입니다. 위클리 경향 832호는 2009년 7월 7일 발행되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색깔전쟁’… 경쟁업체 상징 컬러 피해 선택

‘컬러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전 세계적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컬러 마케팅은 말 그대로 ‘색깔을 이용한 마케팅’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시각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수많은 제품을 눈으로 훑는다고 가정할 때 가장 뚜렷한 인상을 주는 것은 색깔이라고 한다. 당연히 제품 선택과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데 색이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색깔이 주는 이미지와 상징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기업마다 자사의 로고나 상품의 색상에 신경을 쓴다. 자사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또는 생산물의 성격에 가장 적합한 색을 사용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종업계라면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가 선점한 색깔을 후발주자가 사용하기 껄끄럽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차별화가 어려운 탓이다.

100년 전부터 빨강색을 상징색으로 써온 코카콜라의 사례는 색깔에 대한 독점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예 색깔을 특허등록했기 때문이다. 1995년 미국 최고 재판소는 “코카콜라의 빨강과 같은 상품의 컬러도 등록상표로서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음트렌드컬러소재연구소 박귀동 연구소장은 “이후 미국의 다른 기업은 빨간색을 쓰더라도 코카콜라와 같은 명도와 채도의 빨간색은 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100대 기업의 CI(기업이미지통합)에 압도적으로 많은 색깔은 파랑이다. 박귀동 소장은 “파랑이 가진 이미지는 신용과 안정감, 젊음이기 때문에 신용을 강조하는 기업이나 선진국일수록 파란색을 상징색으로 쓰는 경향이 높다”고 풀이했다. 빨간색도 많다. 국내 40대 기업의 CI를 조사해도 24개가 파란색이고 13개는 빨간색이다. 파랑과 빨강은 서로 반대되는 느낌의 색이다. 그래서인지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이 파랑과 빨강을 나눠 쓰는 경우가 많다. 코카콜라의 빨강에 맞서 경쟁업체인 펩시가 파란색을 쓰는 식이다. 그렇다면 국내 라이벌 기업들은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저마다 어떤 색깔로 승부하고 있을까.

1. 파란색의 삼성·현대차와 빨간색의 LG·SK

▽ 하우젠 CF에서 김연아

하우젠 CF에서 김연아

삼성그룹 전체의 로고는 파란색이다. 파랑은 하늘, 바다, 차가움, 희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행복과 희망을 나타낸다. 침착하고 이지적인 냉정한 색이며 진리와 총명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후 한국인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색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강하고 신뢰감을 주는 신비스러운 색으로 사용돼왔다. 반면 비관적이고 우울한 기분을 암시하기도 한다. 삼성은 그룹 차원의 심볼부터 야구단, 축구단 등 스포츠뿐 아니라 홈페이지, 카탈로그 등 홍보물까지 일관되게 파란색을 사용한다. 또 계열사는 물론 피겨선수 김연아가 모델인 하우젠 광고 등 계열사 제품의 이미지도 파란색을 쓰는 경우가 상당수다.

I.R.I디자인연구소 김미리 선임연구원은 “계열사나 계열사의 제품이 삼성그룹의 파란색을 사용하는 것은 간접적이나마 삼성이라는 모(母) 브랜드의 힘을 마케팅에 업고 가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컬러리더십>을 저술한 신완선 성균관대 교수는 “삼성그룹의 컬러는 지식형 파란색”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삼성그룹의 파란색을 지식형이라고 한 것은 학습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무선사업, 서비스업 등 섬세한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삼성의 경쟁력은 그런 조직 컬러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포스코도 파란색을 그룹의 상징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과 동일한 파란색은 아니다.

SK그룹은 기업로고에 빨간색을 사용하다가 2005년 ‘행복 날개’라는 새 기업 로고를 개발했다. 새 기업 로고는 기존의 빨간색에 주황을 보조색으로 추가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SK그룹은 “SK의 로고는 글로벌 시장을 향해 진취적으로 비상하는 기업 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패기이미지의 빨강에 매력 이미지의 주황을 가미한 것은 SK의 고객 지향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빨간색은 강하고 격렬하며 매우 자극적인 색으로, 태양과 피, 불 등을 연상시킨다. 반항, 정열, 사랑을 표현하는 동시에 위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강렬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감각과 열정을 자극하며 자기 확신과 자신감을 더 강하게 전달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효과가 뛰어나 사람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주며 이를 급격하게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성질도 가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응원단의 ‘붉은악마’를 연상하면 빨간색의 역동성·주목성 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가 원산지인 ‘나렝’이라는 과일에서 따온 주황색(오렌지색)은 빨간색보다는 덜 자극적인 ‘유혹’의 색이다. 하지만 주목성이 뛰어나며 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이기도 하다. 열정, 밝음, 활기, 강렬함, 친근함, 건강, 신선함, 적극, 에너지, 욕망, 젊음, 청소부 등의 이미지와 함께 성(性), 경박함 등의 인상도 지니고 있다. ING생명 등 네덜란드 기업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SK계열사 역시 상징색으로 빨간색에 주황색을 가미한 모 브랜드를 따르고 있다.

LG그룹 역시 빨강을 상징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SK그룹과 채도와 명도가 다른 빨강이다. 신완선 교수는 “LG그룹은 한동안 사용한 ‘사랑해요 LG’라는 광고카피가 잘 어울리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2. 스카이블루의 대한항공과 색동의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의 상징색은 파란색 중에서도 스카이블루다. 심볼마크의 빨간색과 파란색은 태극 문양을 본뜬 것이지만 스카이블루를 항공기 동체와 승무원 유니폼, 시트에 활용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하늘 높이 비상하고자 하는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스카이블루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승무원 유니폼은 이탈리아 최고 디자이너인 지안 프랑코 페레가 디자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파란색은 하늘과 바다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영국 항공사 Bmi(전 브리티시 미들랜드)도 파란색을 주컬러로 사용하고 있다. 박귀동 소장은 “아이덴티티와 동체 디자인, 승무원들의 제목, 라운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한 블루 컬러는 브리티시 미들랜드가 Bmi로 이름을 바꾸면서 리뉴얼을 단행한지 15개월 만에 인지도를 75% 올리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흰색에 가까운 회색과 색동컬러를 접목하고 있다. 전체적인 동체의 배경색은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며 색동은 꼬리날개에 배치돼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선과 선의 만남, 색과 색의 만남으로 아시아나 항공만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창출하며 율동감과 에너지, 피어나는, 춤추는 등의 다양한 연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 진태옥씨가 디자인한 승무원 유니폼은 회색톤과 갈색을 기본으로 하여 색동의 줄무늬를 가미했다.

3. 정유사들의 4색4전(四色四戰)

정유업계의 색깔전(戰)도 눈길을 끈다.
에쓰-오일은 출범 직후 브랜드 파워가 약해 다소 고전했다.
하지만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2005년부터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해 성과를 거뒀다.
광고음악 ‘에쓰~오일, 에쓰~오일, 좋은 기름이니까’가 크게 히트하면서 회사의 브랜드 파워도 강해졌는데,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노래와 함께 등장하는 색깔이다.

김미리 선임연구원은 “배우 손예진이 모델로 등장한 초기 CF부터 에쓰-오일의 광고 프레임이 모두 노란색이었고 배우 차승원의 스카프, 개그맨 유재석의 넥타이도 그리고 요즘 새 모델로 나오는 배우 김남주의 카디건과 가방, 자동차도 노란색”이라며 “여기에 간간이 녹색을 가미함으로써 에쓰 오일을 상징하는 노랑 바탕에 녹색 글자를 소비자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유사 로고들

노란색은 황금, 해바라기, 병아리, 개나리, 봄 등을 연상케 한다.
과거 중국에서 노란색은 황제의 색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었다.

색깔 관련 서적인 <컬러마케팅>(영진닷컴)에서는 노란색을 가리켜 “밝고 빛나는 색으로 지능을 상징하는 반면, 귀여운 유아들의 색으로 느껴져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의존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또 노란색은 가장 밝은 색으로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교통 안전 표지판이나 각종 광고물의 색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인색한 사람을 ‘노랭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비겁하고 사악한 사람을 ‘옐로 독(Yellow dog)’, 선정적인 신문이나 잡지를 ‘옐로페이퍼(Yellow paper)’라 부르면서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하기도 한다.

정유사 중 색깔마케팅으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곳은 SK다. ‘빨간 모자 아가씨’로 대변됐을 만큼 강렬한 빨간색 마케팅으로 주목을 끌었다. 또한 이 같은 강렬한 마케팅은 SK(주)가 국내 대표 정유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오일뱅크는 파란색, GS칼텍스는 청록색으로 주유소를 장식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의 CF에는 항상 파란색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한 모델들이 등장한다.

4. 연두색의 LG텔레콤·주황 포인트로 들어간 검정색의 쇼(SHOW)

5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SKT는 SK와 동일하게 빨강과 주황을 상징색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KT의 쇼(SHOW)와 LGT는 각각 검정색과 연두색이라는 새로운 컬러마케팅을 시도했다.

텔레콤.jpg

이동통신업체 2위로 지금은 KT에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KTF는 ‘해브 어 굿 타임(즐기세요라는 뜻)’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주황색으로 매장과 광고를 했지만 고전했다.
그러다가 브랜드명이 쇼(SHOW)로 바뀌면서 주황색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파격적으로 메인색을 검정색으로 바꾸는 모험을 시도했는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시장점유율도 점차 상승세를 탔다.

흥미로운 점은 검정색은 죽음, 밤, 어두움, 절망, 억제, 압박 등 주로 부정적 묘사에 쓰이는 색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의류의 색으로는 가장 인기가 있다.
주로 젊은층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현대적이면서 도시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또 제품에 적용된 검정색은 기능성과 대담함, 견고함, 통일감을 표현한다.

박귀동 연구소장은 “검정색은 전통적으로 고급의 이미지를 주는데 SHOW의 블랙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검정색의 이런 이미지가 이동통신 소비자들에게 어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LGT는 모(母) 브랜드인 LG의 빨간색 심볼마크와 달리, ‘폰 앤 펀(Phone & fun)’이라는 슬로건 아래 연두색으로 매장을 꾸미고 있다. 성장과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5. 녹색의 네이버·7색(色)의 다음

네이버와 다음

현재 국내 포털 1위 자리에 있는 네이버는 녹색이다. 네이버의 화면은 녹색과 흰색 바탕으로 꾸며져 있으며 그 위에 검정색 등 가독성이 좋은 색으로 글씨를 얹어놓고 있다.

녹색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숲, 잔디, 풋과일 등이다.
평화와 중립,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며 눈에 가장 편안함을 주는 색이기도 하다.
실제 네이버를 인터넷 시작화면으로 지정해놓은 누리꾼 중에는 네이버의 녹색이 눈과 뇌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네이버는 ‘항해하다’는 뜻의 영어 네비게이트와 ‘~하는 사람’이란 뜻의 영어 접미사 er이 만나 탄생한 이름으로 ‘정보가 가득한 인터넷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네이버측은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녹색과 고딕계열의 대문자를 사용한 로고는 누리꾼을 위한 친근하고 믿을 수 있는 안내자가 되고자 하는 네이버의 서비스 철학을 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네이버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음은 여러 가지 색을 로고와 각각의 섹션에 사용하고 있다.

다음은 순수 우리말로 ‘어떤 차례의 뒤’라는 의미와 한문으로 다양한(多) 소리(音)의 뜻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소리라는 후자의 의미를 반영해서일까. 다음의 로고는 노란색(D), 주황색(a), 연두색(u), 하늘색(m)의 네 글자가 서로 맞물려 모두 7가지 색깔로 이루어져 있으며 카페, 메일, 동영상 등 각각의 섹션에 서로 다른 여러 색깔을 활용하고 있다.

김미리 선임연구원은 “정돈된 이미지의 네이버에 비해 여러 가지 색상을 활용하는 다음의 화면은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6. 교통사고 확률 높은 자동차 색은 파랑

자동차.jpg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가장 많은 자동차 색깔과 가장 안전한 자동차 색깔은? <색깔의 수수께기>(비채)에 따르면 정답은 전자의 경우 파란색, 후자의 경우 노란색이다.

파란색 자동차는 사고 날 확률이 높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실제로 있다.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청색, 감색, 녹색 등 파란색 계열의 자동차가 검정, 하양, 노랑, 빨강 차에 비해 훨씬 높은 사고율을 기록한 것이다.

이유는 파란색이 실제보다 멀게 보이는 색이기 때문이다. 가령 같은 차종의 빨강과 파랑 두 대의 차가 앞에서 나란히 달려올 경우 파란색 차가 빨간색 차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란색 차는 거리 감각을 느끼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파란색은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색상 중 인기가 높다고 한다. 때문에 파란색의 자동차를 소유한 운전자라면 파란색이 지닌 이런 특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운전해야 할 것이다.

노란색 자동차가 가장 안전한 이유는 망막에 들어온 상태 그대로 핀트가 맞아서 거리감도 정확하기 때문이다. 또 색깔 가운데 가장 확장을 크게 느끼는 색이기도 하다. 인식이 쉬워 유치원생의 통학 차량과 모자, 가방, 비 오는 날에 입는 비옷은 물론 대형 덤프트럭에도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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