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을 달려가 만난 옥천 용암사 운무대에서 만난 운해

-

새벽길을 달려가 만난 옥천 용암사 운무대에서 만난 운해

옥천 용암사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용암사 뒷산 운무대에서 본다는 운무와 일출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천 년을 이어온 절, 그리고 운무대라는 새로운 이름

용암사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해발 656m 장령산 서북쪽 기슭에 자리한 법주사의 말사다. 신라 진흥왕 13년(552년), 천축국(인도)에 다녀온 의신조사가 이곳의 산세에 감탄해 절을 지었다고 전해질 만큼 유서가 깊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가, 해방 후 대웅전과 요사채를 다시 지으며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절 이름은 부근에 있던 용 모양 바위에서 비롯됐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용바위를 부숴버렸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함께 전해진다.

이런 천년 고찰이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바로 절 뒤편 산길을 따라 조성된 ‘운무대’ 덕분이다.

옥천군이 사진작가들을 위해 산길을 정비하고 1전망대부터 3전망대까지 세 곳의 전망대를 만들었는데, “구름이 춤추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운무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새벽 운해와 일출은 미국 CNN Go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전국의 사진가들이 새벽마다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밤을 새워 달려간 새벽 3시 50분

일출 시각은 오전 6시 18분이었지만, 그전에 여명부터 담으려면 최소 오전 6시 전에는 도착해야 했다. 새벽에 제때 일어날 자신이 없어, 아예 뜬눈으로 밤을 새운 채 용인에서 새벽 3시 50분에 출발했다. 졸음이 몰려올 때마다 진한 커피믹스를 연달아 입에 털어 넣으며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렸다.

여명을보다

다행히 오전 6시 무렵 용암사에 도착했다. 운무대로 오르는 길에 돌아보니 멀리서부터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고, 그 빛을 받은 절이 은은하게 환해 보였다. 삼각대를 챙기지 못한 터라 ISO를 한껏 끌어올려 손으로 이 여명 풍경을 몇 장 담았다.

운무대에서 마주한 첫 풍경

운무대에 올라보니 이미 두 사람 정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만의 새벽인 줄 알았는데, 이 절경을 기다리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운무대에서 담아보는 여명

열차가 지나는 소리를 듣다

가만히 서 있는데 가끔 산 아래에서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내려다보니 철길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열차가 제법 자주 오가고 있었다. 고요한 산중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열차 소리가 묘한 리듬처럼 느껴졌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저 멀리 산 너머로는 운무가 가득 들어찬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용암사 바로 아래쪽으로는 안개가 짙게 깔리지 않았다. 용암사 자체가 워낙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안개에 잠기는 일이 흔치 않다고 하는데, 오늘도 그 말 그대로였다. 절 바로 아래보다는 저 멀리 능선 사이사이로 낮게 깔린 구름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세 개의 전망대, 나는 제1전망대로

운무대는 하나의 지점이 아니라 세 개의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다. 오르는 길 기준으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제3전망대이고, 여기서 계단을 약 200개쯤 더 오르면 오른쪽에 제1전망대, 왼쪽에 제2전망대가 차례로 나온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제1전망대로 향했다. 세 곳 중 시야가 가장 넓고 전망이 제일 좋다고 알려져 있어서였다.

내려오는 길에는 처음에 그냥 지나쳤던 제3전망대에 다시 들렀다. 이곳에서 담은 풍경에는 아침 햇살이 유독 아름답게 걸려 있었다. 전망대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와 빛을 품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마침내 떠오른 해, 그리고 물들지 않은 구름

일출 시각이 되자 저 멀리 산 위로 아침 해가 떠올랐다. 태양이 떠오른 방향이 하필 운해가 낮게 깔린 쪽은 아니어서, 만약 해가 그 운해 방향에서 솟아올랐다면 훨씬 더 극적인 장면이 됐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잠깐 스쳤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떠오른 하늘 위로 하얀 조적운(양떼구름)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이 구름들이 아침 해를 받아 붉게 물든다면 더없이 멋진 장면이 되었을 텐데, 한참을 기다려도 구름은 좀처럼 붉은 기운을 띠지 않았다. 결국 지금 눈앞의 담백한 빛깔 그대로를 사진에 담고 발길을 돌렸다.

제3전망대에서 담아보다

마애여래입상에서 만난 스님들의 아쉬움

운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는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랐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용암사 전체와 일출 풍경이 한 프레임에 멋지게 담겼다.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스님 두 분이 언덕으로 올라오시더니 아래편을 내려다보며 “요즘은 운무가 잘 끼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옆에서 듣다가 “제가 보기엔 오늘도 그나마 제일 멋진 것 같은데요” 하고 말씀드리니, 스님께서는 운무가 제대로 낀 날은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고 하셨다. 매일 이 풍경을 마주하는 분들의 눈에는, 오늘의 풍경도 아직 아쉬운 축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산신각에서 대웅전까지, 경내를 담다

마애여래입상에서 내려와 산신각 앞에서 정면을 한 번 살펴본 뒤, 대웅전 쪽으로 내려오며 천불전 옆모습과 대웅전 옆모습을 하나씩 카메라에 담았다. 계단 옆 언덕에 올라서면 대웅전 지붕과 눈높이가 가까워져 처마와 기와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는데, 이 각도를 광각으로 담아보니 지붕의 곡선이 시원하게 살아났다.

마지막으로 대웅전 앞에 서서 정면과, 그 위로 펼쳐진 일출 직후의 하늘을 함께 사진에 담았다. 새벽부터 이어진 여정의 마지막 장면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CNN이 선정한 한국의 절경

이렇게 직접 걸어보니, 용암사 운무대가 왜 미국 CNN Go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이름을 올렸는지 알 것 같았다. 낮게 깔린 운해와 그 위로 붉게 떠오르는 해, 그리고 천년 고찰의 고즈넉한 풍경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이니, 세계적인 매체가 주목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무를 보기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

오늘은 절 바로 아래까지 안개가 차오르지는 않았지만,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운무를 만날 확률을 높이는 조건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우선 계절로는 일교차가 큰 환절기, 특히 봄과 가을에 사진가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이어진다고 한다. 최근에는 2월 환절기가 운해 형성에 특히 좋은 시기로 꼽히기도 하는데,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며 기온 차가 커지는 시기에 물안개가 잘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날씨 조건으로는 맑으면서도 습도가 80% 이상으로 높은 날, 그리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무풍 상태가 핵심이다. 습도가 낮거나 바람이 강하면 안개가 형성되더라도 금방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전날 비가 내렸거나 강가에 물안개가 자주 끼는 시기를 노려보는 것이 유리하다. 옥천이 금강과 대청호를 끼고 있는 지형이라, 이 물줄기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새벽 기온 차를 타고 산 쪽으로 밀려오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봄가을 환절기 중에서도 비가 갠 다음 날 새벽, 바람 없이 맑은 날을 골라 찾아간다면 오늘보다 훨씬 짙은 운해를 만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다음에는 이 조건에 맞춰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마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커피믹스에 의지해 달려온 새벽길이었지만, 여명에 물든 절의 실루엣과 산 너머로 펼쳐진 운해, 세 개의 전망대가 보여준 저마다 다른 빛, 붉게 물들지 않은 양떼구름, 그리고 스님들과 나눈 짧은 대화와 경내를 돌며 담은 대웅전 처마까지 — 짧은 새벽 시간이 이렇게나 많은 장면으로 채워질 줄은 몰랐다. 절 바로 아래까지 안개가 차오르는 날의 모습은, 조건 좋은 날을 골라 다시 찾아가는 몫으로 남겨두어야겠다.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