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노을을 고대하며 올랐던 고성 신선대에서 멋진 울산바위 풍경을 보다
고성 화암사에서 신선대, 울산바위를 만나다
공사 중인 2주차장, 1주차장에서 시작한 산행
어제는 고성 화암사에서 출발해 신선대에 올라 울산바위를 보고 왔다.
화암사에는 주차장이 두 곳 있는데, 이번에는 2주차장이 공사 중이라 이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1주차장에만 주차가 가능했다. 주차요금은 시간제가 아니라, 입차 시 일괄 4,000원을 선불로 징수하는 방식이었다. 시간당 요금이 아니라 한 번 들어갈 때 무조건 4,000원을 먼저 결제해야 하는 선불제 시스템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두 주차장 중에는 2주차장이 화암사에서 더 가까운데, 이번엔 그곳을 쓸 수 없어 1주차장에 주차한 뒤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더뎌진 걸음
예전에는 2주차장에서 출발해 신선대까지 1시간이면 주파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올라서인지, 아니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인지 거의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화암사 일주문
1주차장을 나오면 바로 일주문을 만난다. 그 시간 롸암사를 방문 후 또는 신선대 등반 후 내려오는 많은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열반송과 오도송
고성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에서 절 입구까지 이르는 1~2km의 길은 역대 고승들의 깨달음이 담긴 ‘선시의 길’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길 양옆 자연석에 나옹, 휴정, 경허, 성철 등 고승들의 오도송과 열반송 20여 점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도송과 열반송의 의미
- 오도송(悟道頌): 수행자가 진리를 깨달은 순간 그 깊은 체험과 경지를 읊은 시입니다.
- 열반송(涅槃頌): 스님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제자나 세상 사람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과 유언의 시입니다. [1, 2, 3]
화암사 ‘선시의 길’ 배치 특징
- 올라가는 길 오른쪽: 진리를 깨달은 순간의 감동을 담은 오도송 위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 내려가는 길 오른쪽: 삶을 마무리하며 남긴 깊은 여운의 열반송 위주로 배치되어 걸으며 사색하기 좋습니다.


2주차장
조금 더 걸어 오르면 2주차장이 나온다. 공사중이다. 4시 9분이 지났다.

- 오후 4시 경, 1주차장 출발
- 4시 15분, 수암전 도착
- 4시 20분, 수바위 도착
- 5시 50분, 신선대 도착
- 6시 00분, 전망대 도착
수암전 도착
신선대로 오르는 길과 화암사로 가는길이 갈리는 곳이 수암전인데 이곳에는 식품과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곳처럼 보인다.

여기서는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다.


수바위
수암전에서 100미터 정도가면 수바위가 나온다.
신라 혜공왕 5년(769년), 진표율사가 화암사를 창건할 당시 이곳은 민가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찰의 스님들은 탁발(시주)을 하러 멀리까지 나가야만 했고, 늘 끼니를 걱정할 만큼 식량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신라 혜공왕 5년(769년), 진표율사가 화암사를 창건할 당시 이곳은 민가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찰의 스님들은 탁발(시주)을 하러 멀리까지 나가야만 했고, 늘 끼니를 걱정할 만큼 식량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 머물던 두 스님의 꿈에 동시에 백발노인이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스님들에게 인자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 2]
“사찰 근처에 있는 큰 바위에 가면 조그만 구멍이 하나 있을 것이다. 끼니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을 흔들거라.” [1, 2]
잠에서 깬 두 스님은 기이하게 여겨 아침 일찍 꿈속의 바위로 달려갔습니다. 과연 노인의 말대로 바위 한편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반신반의하며 지팡이를 구멍에 넣고 쿵, 쿵, 쿵 세 번을 흔들자, 신기하게도 구멍에서 딱 두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2인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두 스님은 더 이상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오직 불도와 수행에만 전념하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2]
그렇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다른 곳을 떠돌던 한 객승(떠돌이 스님)이 화암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 절 스님들이 탁발도 나가지 않으면서 식량 걱정 없이 지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결국 바위 구멍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속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객승은 문득 어리석고 뚱딴지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세 번 흔들어서 2인분이 나온다면, 서른 번, 삼백 번을 마구 흔들면 엄청나게 많은 쌀이 쏟아지겠구나! 그걸 모아서 혼자 많이 먹거나 팔아야겠다.”
욕심에 눈이 먼 객승은 혼자 바위로 올라가 구멍에 지팡이를 찔러 넣고 정신없이 마구 휘저으며 흔들어댔습니다. 하지만 쌀이 무더기로 쏟아지기는커녕, 갑자기 바위 구멍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위의 신령함이 부정(不淨)을 탄 것이었습니다. 객승은 크게 당황해 도망쳤으나, 그 뒤로 수바위에서는 더 이상 단 한 톨의 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

오르는 길 풍경






잠잠했던 바람, 그리고 캠핑객
신선대에서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비교적 평탄하게 걸을 수 있었다. 지난번(24년) 가을 방문 때는 강풍이 불어 신선대에 도착하고도 엄청난 강풍으로 전망대로 가는 길에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선 기억이 있다.

전망대로 가는 길의 헬기장에는 오늘도 한 명이 캠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전에 아침 시간대에 이곳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섯 명 넘는 인원이 캠핑을 하고 있었다. 아마 밤을 새우며 은하수 사진을 찍으려는 게 아닐까 싶다.
신선대 낙타바위
낙타의 혹처럼 두 개의 바위로 구성된 신선대 낙타바위.

구름에 가린 울산바위, 그리고 기다림
신선대에 도착하니 날은 흐리고 울산바위 위로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계속 주시하며 기다렸지만, 몸은 이미 피곤했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오늘 석양은 예쁘게 물들지 않을까 기대하며 7시까지 버텨봤지만, 더 이상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아 결국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에 만난 노을
그런데 내려오던 중 7시 20분경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멋진 노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상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도 보지 못했던 풍경을, 하산하는 길 위에서 뜻밖에 마주친 셈이다. 산이란 게 늘 그렇듯, 기다림의 순간과 만남의 순간이 어긋나기 마련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