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젖은 무소유길, 순천 송광사 배롱나무 출사기

1. 승보사찰 송광사, 그 이름의 무게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데서 시작됐다. 이 작은 절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부터다. 이후 이름을 수선사로 바꾸고 9년에 걸쳐 첫 중창을 이루면서, 지눌을 비롯해 혜심 등 무려 16국사를 배출한 도량으로 거듭났다. 그래서 송광사는 양산 통도사(불보사찰), 합천 해인사(법보사찰)와 함께 한국 삼보사찰의 한 축인 승보사찰로 불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은 훌륭한 스님들을 가장 많이 길러낸 절이라는 뜻이니, 이름값이 결코 가볍지 않다.

조선 후기에는 부휴계의 종찰로서 불서 간행과 강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1842년 큰불로 대웅전을 비롯한 거의 모든 건물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지금도 국보 5건, 보물 28건에 이르는 문화재를 품고 있어 전국 사찰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이 이곳 산내암자 불일암에서 17년을 머물며 《무소유》를 써 내려간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 무소유길 1.1km, 걷는 것으로 시작하는 참배
방문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법정 스님이 생전에 즐겨 걸으셨다는 ‘무소유길’을 따라 1.1km를 걸으면 송광사 경내에 닿는다.
차로 휙 지나칠 수도 있었을 거리를 굳이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이 길 자체가 이미 절 순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나무숲과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스님의 법문이 적힌 팻말이 드문드문 서 있어, 걷는 동안 자연스레 마음이 가라앉는다. 사진기를 메고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출사는 시작된 셈이다.





3. 아직은 절반, 송광사 배롱나무의 현재
송광사의 배롱나무는 경내도를 기준으로 지장전 왼편, 종무소 앞, 사천왕문 옆 이렇게 세 군데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만개한 나무도 있었지만, 아직 꽃 필 기미조차 없는 나무도 적지 않았다. 종무소에 들러 만개 시기를 여쭤보니, 스님께서는 “지금이 만개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시다가도 이내 7월 말에서 8월 초, 그러니까 8월 첫째나 둘째 주쯤이 절정일 것 같다고 짚어주셨다. 절에서 매일 나무를 지켜보는 분의 감으로도 아직은 여름의 절반 지점이라는 뜻이니, 배롱나무 출사를 벼르고 있다면 8월 초순을 목표로 일정을 잡는 편이 좋겠다.



4. 뒷동산에서 내려다본 절집과 배롱나무
송광사 배롱나무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자리는 뜻밖에도 경내가 아니라 송광사 뒤편 언덕이었다. 이곳에 올라 절 전체를 조망하다 보면, 겹겹이 늘어선 기와지붕 사이로 마당과 배롱나무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나온다. 그 각도를 찾아 마당과 배롱나무를 한 프레임에 담으면 절집의 고즈넉함과 여름꽃의 화사함이 동시에 살아난다.



욕심을 내자면 그 배롱나무 곁으로 스님들이 지나가는 순간까지 담고 싶었지만, 그런 장면은 기다린다고 쉽게 와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그 컷은 포기하고 내려왔다. 다만 스님 한분이 지나가는 것을 담을 수는 있었다.

5. 땀으로 쓰라린 눈, 그래도 걸었던 소나무 그늘길
그날은 정말이지 무지 더웠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안 눈으로 땀이 흘러들어 따끔거릴 정도였다. 송광사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갔던 길(무소유의 길) 대신 차도를 따라 내려왔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차도 주변으로 울창한 소나무가 늘어서 있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게 멀리서도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그늘 아래를 걷는 동안만큼은 더위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출사에서 좋은 사진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이런 사소한 선택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6. 인터넷으로 찾아본 송광사 촬영 포인트
이번 출사를 정리하며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을 참고해 송광사의 대표적인 촬영 포인트를 모아봤다.
- 삼청교와 우화각, 육감정 — 송광사 최고의 포토존 — 국가유산청이 꼽는 송광사 제일의 풍경은 삼청교(일명 능허교) 위에 세워진 우화각이 건너편 육감정과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1707년에 놓인 무지개 모양 돌다리 위로 팔작지붕 건물이 얹혀 있고, 그 물그림자까지 함께 담으면 송광사를 대표하는 한 장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 일주문에서 계곡을 따라 걷는 진입로 — 계곡물과 어우러진 숲길 자체가 사계절 내내 사진 포인트로 꼽힌다.
- 국사전과 하사당 일대 돌담길 — 국보로 지정된 국사전 주변의 고졸한 돌담과 기와지붕이 한국 전통 사찰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리다.
- 대웅보전과 삼층석탑이 있는 중심 마당 — 송광사의 상징적인 중심 공간으로, 넓은 마당과 웅장한 지붕선을 함께 담기 좋다.
- 무소유길의 대나무숲 — 법정 스님이 걷던 길목의 대숲은 초록빛이 짙어 사진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 불일암과 무소유길 — 조금 더 발품을 팔 여유가 있다면 송광사에서 산길로 30여 분 오르는 불일암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다. 법정 스님의 흔적이 남은 소박한 암자 풍경은 화려하진 않아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한다.


7. 서울에서 송광사로, 직행 고속버스라는 뜻밖의 발견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에서 송광사까지 곧장 이어지는 고속버스가 있다는 게 꽤 특이했다. 절 이름을 목적지로 삼은 노선이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송광사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 같았다. 송광사행은 오전 8시 40분과 오후 3시 10분경, 서울행은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경에 출발한다고 하니, 대중교통만으로도 큰 불편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하루 두 차례뿐인 노선이라 시간을 놓치면 낭패이니, 방문 전에 정확한 시간표와 운행 여부를 미리 확인해보는 걸 추천한다.
배롱나무는 아직 절반의 얼굴만 보여줬지만, 무소유길을 걸어 들어가고 뒷동산에 올라 절집을 내려다보고 다시 소나무 그늘로 내려오기까지, 그 하루의 동선 자체가 이미 하나의 완결된 출사였다. 8월 초, 배롱나무가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