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0일, 서산 부석사로 향했다. 목적은 하나, 수국이었다. SNS에서 흘러넘치는 부석사 수국 사진들을 보며 몇 주 전부터 벼르던 걸음이었다.
부석사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길을 나서기 전 찾아보니, ‘부석사(浮石寺)’라는 이름에는 애틋한 전설이 담겨 있었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을 때, 그가 머물던 집에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선묘는 의상을 흠모했지만, 수행에만 전념하던 의상은 뜻을 돌리지 않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 소식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졌고, 죽어서는 용이 되어 의상이 무사히 신라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바닷길을 지켰다는 이야기다.
이후 의상이 절터를 마련하려 하자 이를 방해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용이 된 선묘가 커다란 바위를 공중에 띄워 물리쳤고, 그 덕에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의 부석사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같은 이름과 창건 설화를 지닌 절이 경상북도 영주에도 있어 종종 헷갈리곤 하는데, 서산 부석사는 677년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를 세운 지 1년 뒤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절 뒤편 언덕에는 영주 부석사의 ‘부석’과 닮은 바위들이 남아 있어, 이 전설이 서산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설렘을 안고 도착했지만
부석사는 절 자체로도 조용하고 정갈한 곳이다. 도비산 자락에 자리 잡아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일품이고, 절 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수국이 심어져 있어 여름이면 꽃길이 된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카메라까지 챙겨 나섰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수국나무들은 무성했지만, 정작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 정도이거나, 그마저도 아직인 가지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몇 송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경내를 한 바퀴 둘러봤지만, 만개는커녕 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수국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미리 검색만 조금 더 해봤어도 좋았을 텐데, 사진 속 풍성한 수국만 보고 무작정 날짜를 정한 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사람 적은 절 마당을 여유롭게 걷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한 달 뒤, 다시 찾은 부석사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돌아온 지 꼭 한 달, 7월 20일에 다시 부석사를 찾았다. 이번엔 달랐다. 일주문을 지나기도 전부터 풍성하게 핀 수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지난번의 헛걸음이 이해가 됐다. 서산 부석사 수국은 확실히 7월 중순은 넘어야 제대로 만개하는 듯하다.
수국과 배롱나무꽃이 조화롭던 부석사 가는길



일주문 수국
사실 부석사 수국 구경은 일주문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흔히 알려진 부석사 수국의 대표 사진은 일주문 뒤편에 핀 수국과 일주문의 뒷모습을 함께 담은 구도다.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이다. 적절한 시점, 유사한 사진을 담아 대체할 예정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일주문 바로 뒤편의 수국은 그리 풍성하지 않았고, 그 앞에 주차하기도 다소 애매했다. 그래서 일주문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신 길옆에 풍성하게 피어 있는 수국을 앞에 두고 일주문을 담아보았다. 흔히 보던 구도는 아니었지만, 이것대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장이었다.


주차정보
주차는 취향과 체력에 따라 세 곳 중 고를 수 있다.
첫째는 일주문 100미터 전에 있는 대형 주차장으로, 30대 이상 세울 수 있고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여기 차를 대고 화장실을 들른 뒤 천천히 걸어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데, 앞서 말했듯 상당한 운동이 될 만큼 오르막이 길다.
둘째는 도비산 다원 아래쪽에 있는 열 대 남짓 규모의 공간으로, 여기 대면 조금만 걸어 올라가도 바로 도비산 다원과 금강문을 만날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셋째는 금강문 바로 앞 공터로, 대여섯 대 정도 세울 수 있다. 나는 평일이라 차량 통행이 적었던 덕에 이 금강문 앞까지 차로 올라가 세울 수 있었다.
금강문으로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이었는데, 길 좌우로 수국이 풍성하게 피어 있어 분위기가 아주 근사했다. 오가는 차도 적고 사람도 적어서 호젓하게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다. 나는 주차할 공간이 보일 때마다 멈춰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올랐다.



드디어 보이는 부석사


금강문과 주변 풍경



금강문을 지나 만나는 수국
금강문을 지나면 돌계단길이 이어지고, 길 양쪽으로 수국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흔히 떠올리는 풍성한 수국이 아니라 다소 수수한 느낌의 유럽수국이었다. 계단을 오르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비산 다원’ 풍경이 꽤나 낭만적으로 펼쳐졌다. 웹툰 원작 드라마 〈계룡선녀전〉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라는데, 통창 너머로 산사의 운치가 그대로 느껴지는 자리였다.

도비다원
금강문가기전 바로전에 도비다원이 있다.도비다원으로 가는 길과 금강문 사이리 활짝 핀 수국무리가 이채로웠다.
도비산 다원 옆에는 목재로 된 2층 테라스가 있는데, 이곳 테이블에 앉으면 부석사로 오르는 수국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커피 한잔 마시면 딱 좋을 자리였다. 나는 이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반려받은 실업급여 신청서를 재작성해 보내는 작업을 했다. 늘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덕분에, 용인 고용센터에서 서류 보완을 요청해왔을 때도 이렇게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하필 방문한 날,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는 아래쪽 나무 기둥을 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혹시 여기가 무너지는 거 아니야’ 하는 두려움이 슬쩍 스치기도 했다. 결국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인부가 테라스 위로 올라와 책상과 의자를 모두 치우고 본격적으로 작업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해 경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내로 이어지는 길
금강문을 지나 만나는 돌길을 오르면 비로소 부석사 경내로 들어선다.

경내 절벽 쪽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매달려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낸다. 조금 더 걸으면 다시 위로 오르는 돌계단길이 나오는데, 이 길 주변에도 수국이 듬성듬성 피어 있어 걸음마다 눈이 즐거웠다.






다녀와서
같은 곳을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찾은 셈인데, 그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혹시 부석사 수국을 보러 갈 계획이 있다면, 최소 7월 중순 이후로 일정을 잡을 것을 추천한다. 6월 말의 헛걸음과 7월의 풍성한 수국길, 두 얼굴의 부석사를 모두 본 여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