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이 피워낸 보랏빛, 동해 무릉별유천지 라벤더정원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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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이 피워낸 보랏빛, 동해 무릉별유천지 라벤더정원 여행기를 정리해 봅니다.

채석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풍경

강원도 동해로 향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이곳이 원래 채석장이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착해서 보니 그 말이 실감 났다. 무릉별유천지는 1968년부터 시작된 석회석 채광이 반세기 넘게 이어지던 무릉 3지구였다고 한다. 거대한 중장비가 쉴 새 없이 산을 깎아내던 그 자리에, 지금은 에메랄드빛 청옥호와 금곡호 두 개의 호수, 그리고 보랏빛 라벤더 정원이 들어서 있었다. 채굴이 끝난 자리에 물이 고여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이 두 호수는 석회 성분 때문에 은은한 에메랄드빛을 띠는데, 그 색이 라벤더의 보랏빛과 나란히 놓이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이질감 섞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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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무릉별유천지 라벤더정원 라벤더 풍

제1주차장과 제2주차장, 어디로 가야 할까

방문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주차장 문제였다.

확인해보니 무릉별유천지는 제1주차장(삼화로 380, 방문자센터 인근)과 제2주차장(이기로 97, 쇄석장 인근) 두 곳을 운영하고 있고, 두 곳 모두 일반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정식 주차장이었다. 다만 두 주차장의 성격이 조금 달랐다. 제1주차장은 규모가 더 넓은 대신 방문자센터에서 단지 안쪽까지 셔틀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구조였고, 제2주차장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쇄석장 건물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셔틀 없이 곧장 걸어서 라벤더정원과 호수 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입장권 역시 제1주차장의 방문자센터와 제2주차장의 쇄석장 매표소(1층) 양쪽 모두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 걷는 동선을 줄이고 싶다면 제2주차장 쪽이 확실히 더 유리했다. 내가 제2주차장이 더 가까워 보인다고 느낀 감각이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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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정령(Guardian of Mur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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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정령(Guardian of Mureung)

단지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이곳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장치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거인의 휴식’이라는 조형물이었다. 이 지역에서 50여 년간 쉴 틈 없이 석회석을 채굴하던 거인이 이제야 비로소 휴식의 시간을 맞이했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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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별유천지 라벤더 정원, 무릉정령(Guardian of Mureung)

채석장이라는 삭막한 산업 현장을, 오랜 세월 땅을 파헤치다 지쳐 잠든 거인의 이야기로 풀어낸 발상이 재미있었다. 근처에는 ‘무릉정령’이라는 또 다른 조형물도 있는데, 폐광이 자연으로 복원되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조형물 뒤편으로 여전히 채굴이 이어지는 실제 석회석 광산이 보이는 구도로 설계되어 있어서, 과거와 현재의 채석장을 한 시야 안에 담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시멘트를 만들던 쇄석장 건물 역시 헐어내지 않고 그대로 리모델링해 지금은 전망 카페로 쓰이고 있었는데,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과 외부 컨베이어벨트를 그대로 남겨둔 덕분에 이곳이 걸어온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평선까지는 아니어도, 이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규모

라벤더정원은 5,500평 규모에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조성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진으로 자주 접했던 프랑스 프로방스나 영국의 라벤더밭처럼 지평선 끝까지 보랏빛으로 가득 찬 광활함을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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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라벤더밭은 그 정도로 끝없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만한 규모와 밀도로 라벤더를 볼 수 있는 곳도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크기였다. 무엇보다 이 라벤더밭이 특별한 이유는 그 배경에 있었다. 밭 너머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호수와 깎아지른 석회석 절벽이, 다른 어떤 라벤더 명소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배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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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를 건너, 무릉별유천지 라벤더정원 위를 걷다

올해 새로 놓였다는 라벤더 출렁다리를 건너는 순간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랏빛 라벤더 물결이 발밑으로 펼쳐지는데, 걸을 때마다 다리가 살짝 출렁이는 느낌이 더해져 아찔하면서도 즐거웠다. 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라벤더정원 구간을 천천히 지나며, 눈높이에서 마주하는 라벤더의 향과 색을 실컷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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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별유천지 라벤더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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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서 만난 진짜 파노라마

라벤더정원을 다 지나 오프로드 루지 탑승장으로 오르는 언덕길에 접어들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을 만났다. 정원 안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이 단지 전체의 규모가, 언덕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한눈에 들어왔다. 발아래로 펼쳐진 라벤더밭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청옥호의 에메랄드빛 수면, 그리고 그 뒤를 둘러싼 석회석 절벽까지, 이 폐광이 품고 있는 풍경 전체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정원 안에서 마주하는 라벤더가 향과 색으로 감각을 채워준다면,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곳이 걸어온 시간과 규모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느낌이었다. 두 개의 호수와 보랏빛 밭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이 구간이야말로, 무릉별유천지를 가장 무릉별유천지답게 보여주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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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의 시간이 남긴 색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생각했다. 반세기 동안 산을 깎아내던 자리가 지금은 여름 한 철 가장 향기로운 보랏빛으로 물든다는 것. 지평선까지 닿는 광활함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새겨진 시간의 무게만큼은 다른 어떤 라벤더 명소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거인이 잠시 쉬어가는 이 자리에서, 나 역시 오래 걸어온 여름 한복판에 잠시 멈춰 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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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이었던 자리에서 피어난 라벤더 향기가, 오래도록 코끝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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