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농서원 은행나무 단풍을 보다

Updated on 2023-11-14 by

주말이 다가오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가을이 가는데 그냥 집에서 회사에서 시간을 죽게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금요일 휴가를 냈다.

금요일, 새벽 잠에서 깨었지만 몸은 피곤함을 느끼고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뒤척뒤척하다보니 8시가 넘었다.

이렇게 하루를 허비할 수는 없다. 이불을 박차고 샤워를 시작한다. 몸이 힘들어도 움직이면 적응하리라.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본다 며칠 전 올라온 도동서원 은행나무가 화려하다.

그렇게 화려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면 시간과 몸이 아깝지 않겠다-. 네비 목적지를 도농서원으로 입력한다.

거리는 거의 290km가 나온다. 도착시간 12시 58분.. 오전이 다가네..일찍 출발할걸하는 후회가 엄습해 온다.

도동서원은

도동서원(道東書院)은 조선 초기인 1568년 현풍 비슬산 기슭 쌍계동에 쌍계서원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리자, 1605년(선조 38년)에 지금 자리에 보로동서원(甫老洞書院)’으로 재건, 개명했다.

1607년 마침내 현 이름인 도동서원으로 사액받았다.

동국오헌 중 첫째인 한훤당 김광필을 배향하는 서원

도동(道東)이란 이름은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갔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황은 한훤당 김광필을 평가하면서 도(성리학)이 동쪽으로 왔다고 높이 평가하여 도동이란 단어가 김광필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한다는 곳으로, 소수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과 함께 5대서원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중종때부터 근 50년간의 논의를 거쳐 1610년(광해군 2년)에 문묘에 제향할 동국오현을 정했다고 한다.

이때 선정된 동국오현은 한훤당 김광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희재 이언적, 퇴계 이황 순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중 도농서원은 선정된 오현 중 첫번째에 오른 한훤당 김광필을 배향하는 서원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으뜸으로 평가받는 서원이 되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철폐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며, 병산서원 · 도산서원 · 옥산서원 · 소수서원과 더불어 5대 서원으로 꼽힌다.

이 도농서원은 서원 건축이 가져야 할 모든 건축적 규범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평가받는다.

2007년(?)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로 1(도동리 35)에 소재하고 있다.현풍읍에서 구지면사무소를 지나 낙동강을 오른편에 끼고 약 4㎞쯤 가면 닿는 곳이다.

도농서원 앞 길 건너에는 도농서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대부분 방문객들은 도농서원 앞길가에 주차하고 있었다. 나도 별도 주차장이 있는줄 모르고 길가에 주차했었다.

도농서원 은행나무

도농서원 앞에는 김광필의 외손자인 청구가 서원 건립을 기념하여 정구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늙은 가지를 잔뜩 드리우고 있다.

은행나무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 행단을 상징한다고 하는데,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볼만한 은행나무는 서원이나 유교와 관련된 장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서울 성균관 명륜당,
  • 경주 운곡서원
  • 밀양 금시당도 유교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이 곳 도농서원 은행나무는 무려 400년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있기때문에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높이 25m 둘레 8.7m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가을이면 노란 단풍을 실컷 볼수 있다.

도농서원 은행나무 첫인상

도농서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멀리 은행나무가 보이는 순간 노란 은행나무가 보이길래 아 여기 은행나무는 제대로 단풍이 졌나보다.

드디아 제대로 된 가을 은행나무 단풍을 볼 수 있구나하며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주차후 은행나무로 향하는데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은행나무 아래에는 엄청난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어느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에서 이곳으로 소풍을 왔나보다.

도동서원 앞에는 400년이상된 고목의 은행나무와 비교적 젊은 은행나무 두그루가 있는데 학생들을 피해 먼저 젊은 은행나무 주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젊은 은행나무 주변에는 아직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분들이 적어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없는 풍경을 담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래도 연인 혹은 여인네들이 꾸준히 찾아와 차례를 기다려 사진을 짝는다.

어느 여인네는 아주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은행나무 아래를 떠날 줄 모른다. 구도를 맞춘채 기다리면서 멋진 포즈를 취해줄때면 자연스레 원격 리모콘 버튼에 힘이 들어간다.

학생 무리는 20분정도 지나니 자연스럽게 버스틀타고 사라졌다. 사람이 적은 상태에서 고목의 은행나무 풍경을 담아본다.

나름 열심히 풍경을 담는 노 사진가의 열정이 문득 부러워진다. 그가 좋은 작품을 남기길 기원해 본다.

도농서원 안으로 올라가 보다

어느 정도 은행나무 사진을 담은 다음 언덕위에 있는 도농서원으로 올라가 본다.

뭐 서원이 다 그렇지 뭐하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둘러보는 어느 여인네들은 서원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잘 모르겠다.

첫번째로 만나는 정자가 수월루(水月樓)인데 이는 주자(朱子)의 시 구절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공손히 생각하니 천년을 이어온 성인의 마음은(恭惟千載心) 가을 달빛이 차가운 물에 비춤이로다(秋月照寒水)

이를 지나 환주문(喚主門)으로 오르는 계단 안쪽에서 은행나무 쪽을 바라보면 기가 막힌 풍경을 보여준다. 정자 사이로 보이는 도농서원 은행나무를 담아 본다.

마찬가지로 도농서원 강당 건물인 증정당 뒷편에서 앞편을 바라보면 마찬가지로 은행나무 단풍으로 가득찬 풍경이 보인다.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은 정면 5칸·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인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방 앞쪽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이 중정당에 ‘도동서원’ 편액이 두 개 걸려 있다. 앞쪽 처마에는 이황 글씨를 집자한 ‘도동서원’이, 마루 위 뒤쪽 벽면에는 당대 명필이자 경상도 도사(都事)였던 배대유가 1607년에 글씨를 쓴 사액편액 ‘도동서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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