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초엽에 설악산 방면으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름에는 별다른 휴가를 다녀오지 못해서 겸사겸사해 큰 부담이 없으면서도 가을 단풍의 한 자락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속초로 떠났다.
여행이 끝난 후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은 몇 여행지에 대해서 짬을 내어 간략히 정리해 본다. 그 두번째로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로는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왜 설악산인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설악산 기행에 대해 정리해 본다.
나머지 여행지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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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속초여행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낙산사 방문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낙산사 방향으로 여러번 여행을 다녀왔지만 이런 관광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낙산사 화재등으로 인해서 낙산사를 방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예전 처가 식구들과 속초 방문시 낙산사에 갈 기회가 있었으나 화재로 방문할 수 없어 낙산사 의상대 방문으로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2005년 화재로 소실된 낙산사
낙산사는 2005년 4월 4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 일대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 지방에서 자주 발행하는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으로 인해 근처 대부부을 태우고 낙산사까지 태워 버린다.
이 화재로 낙산사는 21채의 건물이 불타고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던 낙산사 동종도 소실되면서 보물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낙산 화재에 대한 기록을 남겨 후세에 교훈을 주고자 낙산사 산불재난 안전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 문화재 흔적을 전시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 문화재 중요성을 알려주는 역활을 하고 있다.
낙산사 산불재난 안전 체험장의 몇가지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우선 양양 낙산사 산불로 소실된 유뮬 잔해를 모아놓았다.
낙산사 화재 당신의 사진을 담아놓은 이화정 정자. 여기 정자에서 쉬면서 낙산사 화재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낙산사 복원
화재로 대부분 건물이 소실된 낙산사는 복원을 서둘러서 대부분의 건물을 복원하고 209년 10월 낙산사가 복원되었다는 회향식을 열었다.
아래는 문화재청이 공개한 복원된 낙사사의 오늘날 모습을 담은 항공사진이다. 화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2009년 10월 복원을 완료했다는 회향식 후 2010년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대통령은 낙산사를 찾아 복원을 축하하고 기념식수를 했다.
주차장에서 낙산사 입구, 홍예문으로 가는 길
이제 본격적으로 낙산사를 탐방해 보자. 낙산사로 가는 길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우리는 정문으로 통해 가능 길을 택했다.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낙산사로 가는 길은 자동차길과 도보길이 있는데 우리는 내부인이 아니무로 당근 보도길을 이용해 걸어서 낙산사 입구로 향했다.
낙산사 입구로 향하는 길에는 아름들이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지난다. 비록 전나무숲으로 우거진 우러정사 가는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운치있는 산길이다.
낙산사 입구 풍경
드디어 낙산사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낙산사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구매하고 약수터에서 잠깐 숨을 돌릴 수 있겠다.
낙산사 입장권을 구매하기전에 세심대 약수터에서 목을 축여보자. 이곳은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세심대라고 부른다.
낙산사 입구에 해당하는 홍예문 풍경, 주변에 높이 솟아오른 소나무와 더불어 너무 웅장하지도 않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은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낙산사 홍예문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5년 4얼 낙산사 화재 시 산불로 소실되었지만 2007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이 낙산사 홍예문은 세조 13년(1467년)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여 당시 강원도 26개 마을에서 각각 1개씩 석재를 모아 2단의 지석위에 13개씩 2열로 앃아 무지개 형상의 문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낙산사 경내 – 사천왕문에 이르는 길
낙산사 경내로 들어서면 현대적인 조경이 방문객을 맞는다. 천년 고찰에 어울리지않는 현재적인 조경은 당연히 낙산사 화재 후 복원과정에서 현재의 조경 컨셉이 어느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낙산사 복원 후 방문했고 고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의 기념식수가 주욱 이어진다. 이러한 기념식수는 어느정도 현대적인 조경 냄새를 보여주는 듯
낙산사 경내 – 사천왕문
홍예문을 지나 정면으로 계속 걷다 이정표 부분에서 윈쪽으로 약가 가파른 길을 걸ㄹ어 오르다 다시 외쪽 계단을 올라 걸어오르면 사천뫙문을 만날 수 있다.
이 낙산사 사천왕문은 1914년 중수되었고, 한국전쟁 및 2005년 낙산사 화재시도 피해를 입지않아 중수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사천왕문은 동서남북을 각각 관장하는 천왕으로 동쪽을 관장하는 동방 지국천완, 남쪽을 관장하는 장검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서쪽을 관장하는 용을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 북쪽을 관장하는 보탑과 창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천왕은 낙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어서 슬데없는 짓을 못하도록 막는 목적으로 당시로서는 최대하 무섭고 공포스럽게 그려졌으나 현대인에게 더이상 무서움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무섭기는 커녕 오히려 해학을 느끼지 않을까?
지금 낙산사를 지키는 것은 사천왕이 아니라 낙산 경내에 수없이 설치된 CCTV와 경보 장치들이다.
낙산사 경내 – 빈일루(賓日樓)
사천왕문을 지나면 빈일루(賓日樓) 를 만날 수 있다. 이 빈일루(賓日樓)는 2층 목조건물로 계단을 제외하고 총 8칸 규모의 건물이다.
빈일루(賓日樓)는 동해 일출을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으로 2005년 낙산사 화재 당시 소실되어 김홍도의 ‘낙산사도’ 등을 참조하여 2009년 다시 세웠다.
김홍도의 ‘낙산사도’ 를 보니 예전이 낙산사는 매우 소박하고 전혀 위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난 이번에 방문한 낙산사는 점점 더 규모를 키우고 점점 더 위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다시 세울 시 2005년 낙산사 화재 당시 화마를 견딘 느티나무를 이용했다고 한다.
낙산사 경내 – 범종루
사천왕문을 지나 정면으로 바라보면 빈일루(賓日樓)가 보이고 왼쪽 방면으로는 범종루가 있다.
원래 이 범종루에는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여 예종의 명으로 주조된 동종이 달려 있던 곳이다. 이 동종은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는 범종루를완전 전소시키고 동종도 용해시켜 버렸다. 결국 2006년 10월 완전히 용해된 동종을 복원해 범종루에 걸었지만 다시 보물로 지정되지는 못했다.
낙산사 경내 – 응향각(凝香閣)
빈일루를 지나면 응향각(凝香閣)을 만날 수 있다. 응향각(凝香閣)은 낙산사의 유명한 원릉보전으로 가는 중간 문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를 지나면 낙산사 관련 업무를 보는 종무소와 설선당이 나온다.
낙산사 경내 – 대성문(大聖門)
응향각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대성문(大聖門)을 만날 수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나온다. 즉 대성문(大聖門)은 원통보전(圓通寶殿)의 출입문격이라 할 수 있다.
낙산사 경내 – 원통보전(圓通寶殿)과 7층석탑
대성문을 지나면 바로 7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7층석탑 너머로 원통보전(圓通寶殿)을 볼 수 있는데 이 둘은 방해하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우리고 있다.
이 낙산사 7층석탑은 보물 제 4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난 낙산사 화재 당시에도 살아 남았다.
이 7층석탑은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처음 지을때는 3층이었으나 1467년에 7층으로 증축하였고, 이렇게 증축하면서 낙산사의 보인물인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원통보전은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 건립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때 전해받은 여의주, 수정염주는 앞에서 설명한대로 7층석탑으로 증축 시 봉인했다고 전해진다.
원통보전에는 보물 제1362호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2005년 낙산사 화재 시 소실되었다가 2007년 11월 복원했다고 한다.
원통문과 꿈이 이루어지는 길
원통보전을 감상하고 다시 해수관음상을 보기위해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걸어 보자.
해수관음상을 보러가는 길은 원통문을 지나 아담하게 가꾸어진 흑길을 걷으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길이다.
먼저 만나는원 통문(圓通門)이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Path of making a dream come true, 以願入想之路) 답게 원통문을 지나면 사람들이 소원을 빈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해수관음상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지나면 웅장한 규모의 해수관음상이 나온다. 이 해수관음상은 1970년대에 세워진 높이 15m, 둘레 3m의 거대한 불상 조각으로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 당시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낙산사는 의상대와 홍련암도 유명하다. 그렇지만 이번 영행에서는 시간 관계상 거기까지는 둘러보지는 못했다. 다음에 오게되면 아침 일출을 의상대에서 맞이해 봐야 겠다.
불끄럽지만 처음으로 낙산사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다른 고찰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깊이와 감흥은 확실히 덜했다. 잘 정리되고 현대적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어청난 규모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낙산사 경내를 전부 관람하고 낙산사를 나가기 전 홍예문에서 담장 사이로 우거진 구절초 보았다. 너무잘 정리된 낙산사에서 모처럼 자연스러움 그 무엇을 만난 듯 반가웠다.
이곳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뭔가의 깊이를 보여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