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op
0.9 C
New York
수요일, 12월 25, 2024

Buy now

‘15초의 마술사’, 스타 CF 감독 5대 천왕’ 신동아| 2008-01-25 14:12

 


이효리.jpg


사람들은 말한다. 광고 때문에 신경질이 난다고, 절대로 광고 보고 물건 사지 않겠다고. 그런데 광고를 그토록 미워하고 기피하지만 신기하게도 결국은 그 광고가 가리키는 대로 착실하게 행동한다. 아주 유치하게 구성된 아이스바 광고들이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한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광고는 제품(또는 서비스)이 사회(또는 소비자)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미디엄(medium)이다. 최근 국내 광고계의 핵심 키워드는 ‘소비자 인사이트(insight)’이다. 인사이트란 사전적 의미로는 ‘통찰’ ‘간파’ ‘식견’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광고계에서 사용하는 주 의미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부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이제 광고는 더 이상 광고주의 일방통행적인 절규가 아니라 소비자의 처지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대신 해주며 그들의 충실한 친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광고의 여러 형태 중에서도 TV광고, 즉 우리가 CF(Commercial Film)라고 부르는 방송광고는 매체의 접근 용이성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든 않든 늘 그들의 관심을 끌며 더러는 폭발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국내 TV광고계의 감독 중 주류는 30대 중후반의 3세대 광고인들이다. 1세대가 1970~80년대에 활동한 강한영 윤석태 김영훈 이지송 이기태 이종운 등이라면, 2세대는 1990년대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김찬 김규환 지덕엽 김종원 등이다. 3세대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명천 차은택 박찬도 박준원 이승주 수요일 박성민 조원석 박성철 이지형 등이다. 이제 3세대 감독들이 한국광고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활약상이 돋보이는 박명천 박준원 수요일 차은택 이승주 5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과 크리에이티브를 살펴보자.

몰려다니면 죽는다! 박명천(갤럭시, TTL, 한미은행, 쏘나타, 하늘보리 등)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서태지의 출현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낳았다면 TV CF계에선 박명천 감독의 등장이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새로운 형식과 광고문법으로 지금도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크리에이티브 리더다.

007 시리즈 주인공으로 유명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한국 남성에게 ‘슈트를 입는 원칙’을 제안하던 갤럭시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특히 동영상과 스틸 사진을 적절히 섞어 전체적으로 절제된 영상미와 슈트를 입는 원칙에 대한 카피를 자막으로 처리한 방식은 그동안 다 똑같아 보이던 기성복 광고의 문법을 뒤집은 것이었다.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나폴리 피자’(드라마 ‘연애시대’ 삽입곡)의 톡톡 튀는 리듬은 중독성이 강해 젊은층까지 겨냥하고 있다. 고리타분한 직장인이 출근하며 매일 입어야만 하는 양복이 아니라 멋쟁이들이 잘 알고 잘 입어야 할 슈트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박 감독은 ‘몰려다니면 죽는다’는 자신의 신조에 충실해 한번 시도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홀연히 또 다른 문법을 찾아 떠난다. 1993년 ‘광고인’ 프로덕션의 조감독으로 입문한 그는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한 청바지 NIX 광고로 자신의 이름을 ‘주목할 신인’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NIX 광고 제작 당시 파리엔 계속 비가 내려 어쩔 수 없이 침침한 상태에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파리의 눅눅한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촬영본이 광고의 톤을 오히려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컴퓨터로 무려 24가지의 편집본을 혼자 만들어보고 나서야 광고를 ‘온에어’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NIX가 국산 청바지 시장에서 고급화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온전히 이 광고 덕분이다.

이후 그의 행보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7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의 파도는 광고계 전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광고 제작 물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어려운 살림에 힘겨워하는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재미난 광고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갤럭시.jpg

포스트모던에서 超리얼리즘까지

전원주라는 무명에 가깝던 ‘아줌마 탤런트’가 지붕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유학 간 딸에게 싼값에 전화하려 애쓰는 국제전화 002 데이콤 광고가 그 대표작. 모든 설정이 새롭고 낯설었다. 배우도, 그 배우가 뛰다 못해 텀블링을 하는 것도(그 뒤에선 생뚱맞게 캥거루가 깡충거린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는 만화영화 ‘짱가’ 주제곡이 흘러나오는 것, 자막 사용의 내리닫이(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자막 같은)도 낯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신기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유심히 보고 폭소를 터뜨렸으며 열광했다.

이어 TTL 시리즈를 제작하며 성가를 드높인다. 이동통신의 선두주자로 노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SK 011은 타깃 세그멘테이션(구매층의 세분화)을 원했고, 젊은층에 어울릴 만한 새로운 브랜드 TTL을 론칭하면서 그에게 전폭적인 재량권을 주며 작품 제작을 맡겼다.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는 소녀. 나뭇가지를 움켜잡는 손가락, 손안에 잠깐 있다 사라지는 올챙이, 굴을 입안에 밀어 넣는 소녀, 그 소녀의 얼굴 위로 새겨지는 TTL 로고. 내러티브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미지 덩어리들이 그냥 느낌만을 강요하는, 국내 최초의 포스트모던 광고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녀 모델(임은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커졌는데, 당시 임은경의 모델 계약서에는 이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일절 인터뷰를 하거나 광고 내용을 암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었다고 한다. 국내 광고에선 보기 드문 ‘신비화 전략’이었다.

이 광고에 대한 광고계의 반응은 ‘어리둥절’ 바로 그것이었다. 제품과 표현에 그처럼 상관성이 없는데도 시장에서 제품이 움직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에 반대도 찬성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미지 시대의 표현 방법에 눈을 뜬 후속 광고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로테스크한 가면(박 감독의 독특한 취미 중 하나가 가면 모으기다)을 뒤집어 쓴 ‘한화의 마이크로 아이’, 파란 피가 흐른다는 ‘나우누리’ 등 설명하기 어려운 광고들이 TV 광고의 주류를 이루자, 그는 이번에도 몰려다니길 거부하고 슬그머니 빠져나와 한미은행의 초(超)리얼리즘 광고를 시도했다.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아파트 방에서 발톱을 툭툭 깎던 남편이 던지는 무심한 말. “우리는 한미은행이니까 걱정 없지?” 후속편의 주인공도 귀지를 파주는 아내와 남편, 근처에 능청스럽게 돌아다니는 고양이였다. 도대체 이것도 광고야?…하는 사이에 신생 한미은행의 브랜드 인지도는 무섭게 올라가 예탁고가 크게 늘어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중적 은유

광고에만 머무는 것이 지루했던지 박 감독은 몇 편의 뮤직 비디오로 외도를 한다. 이문세의 ‘솔로예찬’, 박지윤의 ‘성인식’, 서태지의 ‘로버트’ 등 장르의 경계를 마음대로 넘나들었다.

최근에는 서태지의 뮤직 비디오에 사용된 로보트들로 스카이 U220K폰 광고를 만들었다. 늘 그렇듯 내레이션이 극도로 절제된 가운데 “감싸안아줄 수 있다면 그건 스카이”라는 알쏭달쏭한 코멘트만 남긴다. 직선형이 아닌 부드러운 라인의 스카이 신형 휴대전화기가 서로를 포근하게 안아준다는, 형태와 감정의 이중적 은유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 목록만 해도 몇 페이지를 넘길 정도다. 특기할 점은 2002년 ‘생각만 해도 SM3’ 시리즈 이후 시도하지 않던 자동차 광고를 다시 제작한 것. 현대차 쏘나타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그중 영화 ‘친구’의 감독 곽경택과 주연 장동건을 모델로 한 ‘명차의 감동’ 편은 자동차 자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기존 자동차 광고의 패러다임을 뒤바꾸려는 시도로 눈길을 끌었다. ‘잘생겼네, 어떻게 세계가 반할 만하나?’라는 카피가 장동건과 쏘나타를 향해 이중적 의미로 던져지는 게 재미있다. 그동안 시청자는 자동차가 절벽길이나 바닷가를 달리는 것, 기어를 바꾸는 손과 운전자의 웃음 짓는 얼굴말고 다른 스타일로 접근하는 자동차 광고를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얼마 전 독특한 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웅진식품의 하늘보리 광고로, 배우 현빈이 아무 이유 없이 냅다 골목을 달리는 게 전부다. 구도나 카메라 워킹, 그리고 톤과 기법까지 ‘달리는 캐빈’이라 일컬어진 1997년 NIX 광고와 똑같은 구성이었다.

더 이상 시도할 방법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완벽하게 같은 구성을 다시 시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배우가 바뀌고, 장소도 파리에서 지중해의 몰타로 바뀌었지만, 그는 소실점을 향해 달리는 질주의 느낌을 또 한번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표현은 더 성숙해진 게 사실이다. 그 작품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선 지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쇼.jpg

웃겨야 감동하고 감동해야 웃는다 박준원(KTF, SK텔레콤, LIG 손해보험 등)

“웃음이란 몸 전체가 즐거워지는 감동이며, 그 감동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영국 시인 그레빌(Fulke Greville)의 말이다. 웃음과 감동, 인간이 지닌 이 두 가지 감정은 상반된 듯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간의 감정에 커다란 임팩트를 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웃음과 감동의 두 요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가 박준원 감독이다. 그는 전부터 눈에 띄는 유머 광고들을 제작해왔다. TTL의 토마토 편, 오토바이 편 등에서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인 바 있는 그는 이후, 영화배우 신하균의 코믹 연기로 인기를 끈 맥도날드 버스 편(2002년 칸 국제광고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호랑이 편 등을 통해 2000년대 초반 유머 광고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 후로도 KTF의 Na요일, 애니콜의 가로본능 등으로 신선한 웃음을 줬다.

요즘은 KTF의 ‘쇼를 하라’ 시리즈에서 119센터 편, 육아 편 등을 제작하며 유머광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다시금 발휘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를 토대로 영상통화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코믹하게 표현한 광고들이다. 특히 119센터 편은 집에 코끼리가 있다는 아이의 신고를 장난전화로 생각한 119대원에게 영상통화로 진짜 코끼리를 보여준다는 참신한 소재와 코믹한 영상으로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육아 편에도 그만의 재치 있는 코믹 컬러가 짙게 배어 있다. 어린아이가 아픈 것처럼 연기를 한 덕분에 엄마가 일찍 퇴근한다는 설정으로 일하는 주부들을 비하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코믹한 구성으로 가족의 사랑을 전달한다는 긍정적 반응도 함께 끌어냈다.

박 감독은 ‘쇼를 하라’의 최신 CF ‘다 사랑하라’ 편도 만들었다.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키스하는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주목하게 만들고는 KTF가 전 국민 누구에게나 전화를 걸어도 30% 할인해준다는 놀라운(이게 과연 놀라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자막으로 던진다.

웃음과 상업적 메시지가 동시에

통신업계의 양대 산맥인 SK텔레콤과 KTF는 늘 치열한 광고대결을 벌여왔다. 영상통화가 개시되기 전인 올 상반기의 ‘예비전쟁’은 유머러스한 작품을 주로 선보인 KTF 광고와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내용을 담은 SK텔레콤 광고로 압축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 SK텔레콤 광고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는데, 박 감독이 많은 작품을 담당했다. 이처럼 그는 유머 광고 전문가인 동시에 감성광고 전문가이다.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에서 박 감독은 주소록을 없애주세요 편, 주소록 편, 왜 편을 제작했다. 주소록을 없애주세요 편은 “주소록을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친구의 번호쯤은 욀 수 있도록. 카메라를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은 두 눈에 담도록. 문자기능을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긴 연애편지를 쓰도록”이라는, 이동통신회사가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카피로 기술보다 사람을 향하는 마음(정확히 무슨 마음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을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성으로 보여줬다.

또한 “기술은 언제나 사람에게 지고 맙니다. 최고의 선물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카피도 감동적이지만, 밝고 따뜻한 배경음악 ‘Let it be’가 변주되는 가운데 흑백톤의 감상적인 화면(상당수는 스틸 사진으로 시청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더 부여한다)에 카피를 담은 그의 감각이 진한 울림을 가져다줬다.

이 외에도 그는 두산중공업의 ‘지구에 깨끗한 물을’, KT의 ‘IT 서포터즈 시리즈’ 등을 통해 감동을 주는 CF감독으로 위치를 굳혔다. 11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LIG 손해보험 광고는 코끼리, 사자, 펠리컨 등이 시내를 배회하며 소동을 벌이고 코끼리가 자동차를 깔고 앉아도 손해보험이 있기에 거뜬하다는 내용으로 사람들을 웃겼다.

BC.jpg

사람들은 웃을 때 감동을 받고 감동받을 때 웃음을 짓는다.

위트와 만화적 상상력으로 승부 수요일(XPEED, 001, 한화금융그룹, 니콘카메라 등)

꽤 오랫동안 인기를 모은 CF가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스피~드’(XPEED). 친군지 알고 까까머리를 탁 쳤더니 스윽 돌아보는 얼굴은 무시무시한 조폭. 택시에서 내렸더니 옷의 실오라기가 술술 풀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 죽어라 달려야 한다는 의미로, 그만큼이나 빠른 100메가 광랜의 초고속 스피드 인터넷망을 이용하라는 광고였다. 오페라풍의 아리아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그 난처한 상황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

이를 연출한 수요일 감독은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콘셉트로 젊은층을 사로잡는다. 그의 아이디어와 화면 구성능력은 빼어나다. 그는 광고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서울예전 광고창작과를 졸업한 뒤 A비전 프로덕션에서 조감독, 레오버넷 대행사에서 PD로 활동했다. 2000년에 김규환 감독의 유레카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가 광고계에 알려진 계기는 TTL의 N극 편. 헝가리에서 촬영한 이 광고는 강력한 N극에 딸려가는 여자 모델의 판타지인데, 여자는 마지막에 “너는 N극이 있니?”라고 묻는다. 2004년에 제작한 TTL의 얼굴 작아지는 요가 동작 광고에서도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요가 동작을 취하는 여자를 그려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 광고는 각종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패러디됐고 배경 음악도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05년 아이리버로 대한민국 광고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리버 광고의 영향이 너무나 컸던 탓에 한동안 그에게 의뢰되는 제품들은 아이리버 광고와 유사한 그래픽과 타이포그라프(글꼴 디자인)에 역점을 둔 것이었다. 미대 출신이 아닌 그가 쟁쟁한 미대 출신 감독들을 제치고 그래픽 광고에 치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하나의 코드를 덧붙이는 작업을 병행했는데, 그게 바로 위트와 유머였다.

최근 롯데카드 광고를 보면 그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뿐 아니라 그 포인트를 사용해야 카드를 제대로 쓰는 것이라는 학습식 광고인데, 배철수 김수로에 이어 한창 상종가를 치고 있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떠들썩 멤버들을 기용, 한가인이라는 똑부러지는 여배우에게서 카드 포인트 사용법을 배우게 한다.

이 광고를 보면 그는 자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자막이 같은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마치 인물이 연기하듯 음악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인다. 거기에 덧붙는 위트의 코드는 그를 점점 풍부한 표현의 감독으로 만들고 있다.

‘상황 만들기’ 탁월

이승주 감독이 만든 KTF W영상통화요금 광고가 있다. 여자 모델이 애니콜 모델이던 가수 에릭과 비슷하게 생긴 모델에게 “너 001이지?” 묻고는 “아니”라는 대답을 듣자 매우 실망하며 옆에 있던 다른 남자에게 굴러가는 내용이다. 수요일 감독은 그 광고를 패러디해 조인성과 고릴라 시리즈를 만들었다. SK의 00700을 겨냥한 듯, 조인성이 싸이와 비슷한 외모의 모델에게 “너 001이지?” 하고 묻고는 “아니”라는 대답에 뒹굴뒹굴 굴러서 고릴라에게 돌아가는 광고인데 앞뒤 컨텍스트를 따져보면 참 재미있다(수요일 감독과 이승주 감독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조인성과 고릴라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은 리틀쥬의 서정완 감독이 제작했지만 이후 8편은 수요일 감독이 만들었다. 이제 완전히 ‘커플 광고’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스태프들을 출연시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의 재주 가운데 하나. 미국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싸이를 닮은 모델이 비자 문제로 발이 묶이자 촬영기사가 대타로 나섰다. 그런데 꽤 그럴듯해 보이더라는 것이다. 촬영기사가 앵글을 잡아놓고 본인이 들어가서 연기하는 기상천외한 상황에서 나온 광고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정보를 주는 광고였다. 그는 촬영기사뿐 아니라 광고주, 조감독, 대행사 직원, 카피라이터까지 종종 광고에 출연시켰다.

2006년에 만든 하나금융그룹 광고도 빼놓을 수 없다. 멋진 휴양지 바닷가를 거니는 중년부부 뒤로 멀리 바닷물에 떠 있는 몇 명의 잠수부가 보인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수면 아래로 잠수해 회의를 한다. 물속에서 정장 차림을 한 게 재미있다. 이때 나오는 자막은 ‘하나금융그룹은 지금 작전회의 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름다운 노년 만들기 금융연합작전.’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코믹영화 ‘핑크 팬더’의 주제곡이 흐른다. 아직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유럽풍의 아이디어 전개였다.

 에니콜.jpg

수요일 감독의 강점 중 하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는 모델이 혼자 멋 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때때로 모델이 처한 상황은 비현실적이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서 요가를 하는 것도 모자라, 니콘카메라 meteorite(유성) 편에서는 동화적 느낌이 나는 세트를 만들어 천장을 뚫고 별을 떨어뜨린다. 공상과학영화, 만화책에서나 벌어질 법한 상황에서 제품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재치는 놀랄 만하다.

그래서 그의 광고는 독특하다. 단순히 재미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독특한 상황들을 통해 광고의 주인공인 제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천장을 뚫고 떨어진 별을 보는 순간, 광고 속 사람들은 니콘카메라의 필요성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테이블 위에서 고개를 숙여 얼굴을 작게 만드는 데 열중하는 장면과 ‘TTL 제공입니다’라는 카피를 통해 ‘역시 TTL’이라는 반응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이것이 그의 재능이다.

만화 속으로 빠져드는

수요일 감독의 광고 세계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말 풍선은 기본이고, 그가 쓰는 갖가지 기법들은 만화를 연상케 한다. BC카드 광고에서 보듯 김태희의 앙증맞고 과장스러운 표정과 거대한 아저씨의 얼굴에 눈물방울을 붙여놓은 것 등 만화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리고 폭격하다시피 펼쳐지는 자막처리 ‘똑똑한 김태희의 천재적 카드생활’이라. 오일뱅크 광고에서 맛있는 기름 때문에 전투기가 굉음을 울리며 빌딩들 사이로 날아오는 설정도 과장되고 억지스럽다. 하지만 그 광고들이 싫지 않은 것은 우리 어릴 적 상상 속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모델들에게 당황스러운 설정을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광고도 있다. 버스에 올라탄 이효리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효리는 슬로 모션으로 보이지 않는 활시위를 당기고, 남자는 단검을 던지려는 자세를 취한다. 이효리의 활에 맞은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느릿느릿 쓰러지고, 남자의 친구들이 느릿느릿 일어나 역시 느릿느릿 한바탕 난리법석을 떤다. 만화가 이명진의 동명(同名)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라그나로크 온라인 광고다.

몇 년 전 젊은이들 사이에 ‘액션놀이’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본 외화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가 되어 입으로 ‘뚜뚜뚜뚜’… 효과음을 내며 놀던 것처럼. 액션놀이를 보는 타인들은 ‘웬 시추에이션?’ 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당사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나중 탁구부’에서 허구한 날 사고치고 다니지만 전혀 기죽지 않는 마에노와 이자와처럼 수요일 감독이 만드는 광고의 주인공들은 황당한 상황을 만들지만 결코 기죽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광고를 보고 있으면 뜨끈한 방에 누워 ‘멋지다 마사루’나 ‘괴짜 가족’ 같은 만화책을 보며 낄낄대는 느낌이다. 안면 근육들을 모조리 이완시킨 채 작가의 세계에 완전히 동화되는 느낌, 어이없다가도 어느새 주인공에게 잔뜩 감정이입돼 있는 자신을 깨닫는 순간의 바로 그 느낌이다.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시청자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CF에서 임팩트를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른바 ‘빅 모델’을 쓸 수도 있고, 경험해보지 못한 비주얼 쇼크를 주는 방법도 있다. 수요일 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기법과 만화적 상상력으로 임팩트를 준다. 그래서 그의 광고는 재미가 넘친다.

영역 경계 허무는 전방위 크리에이터 차은택(SK텔레콤, 이자녹스, 2% 부족할 때, 애니모션 등)

차은택 감독은 CF로 주목을 받기 전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뮤직비디오는 춤과 노래로 구성하는 게 당연시됐다. 그런데 차 감독은 음악에 내레이션을 넣는 드라마타이징 기법을 사용했다. 유승준의 ‘찾길 바래’, 이정현의 ‘줄래’, 김장훈의 ‘난 남자다’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1999년 한국영상음반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뮤직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연출을 맡았고, 가수 백지영이 부른 ‘사랑 안 해’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광고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감성적인 것부터 남성적인 것까지 모든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작품을 만들어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내내 TV 화면을 붉게 물들인 SK텔레콤 ‘붉은 악마’ 시리즈는 온 국민을 월드컵 열기로 빠져들게 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이 광고는 아주 어렵게 촬영됐다. 잠실종합운동장에 400명에서 1200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를 동원해 밤을 새우며 촬영했다. 붉은 악마 티셔츠 빛깔이 제대로 빨갛게 나오게 하려면 다른 색이 섞일 수 있는 낮 시간엔 촬영할 수 없었기에 밤 10시부터 시작해 해뜨기 전인 새벽 6시까지 촬영을 끝내야 했다. ‘Be the Reds’라는 붉은 악마 슬로건처럼 화면 전체를 완벽하게 붉게 물들인 이 광고는 그의 ‘색’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준다.

초창기에 만든 작품들 중엔 재미있는 것이 많다. 2000년 1월 방송된 야후코리아의 DDR 편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인터넷으로 드럼을 구입해 신나게 연주하고, 할아버지는 현란한 문워크댄스를 춘다. 같은 해 11월 ‘이 박사’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B급 가수(폄하하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 불리기 원하는 명칭이었음)를 기용한 키움닷컴 광고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한국식 랩, 키치 코드의 복장과 표현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리바이스.jpg

그가 감각적인 감독으로 인정받은 것은 LG생활건강 이자녹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부터. 프랑스에서 현지 모델과 2년 정도 진행하던 이자녹스 화장품 광고를 새로 맡게 된 차 감독은 감각적인 레이아웃으로 주목받으며, 이후 공전의 히트작이라 할 만한 롯데 칠성음료 ‘2% 부족할 때’ 시리즈 제작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2% 부족할 때’ 시리즈에서 정우성이 낙엽을 던지며 “가, 가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남녀의 이별 장면을 상징하는 영상이 됐다. 또한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절규하는 장면도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패러디한 인상 깊은 연출이다.

그는 사전작업을 치밀하게 한다. 그에 의하면 영상은 인물과 배경으로 나뉘는데, 감독이 인물에게 어떤 색을 입히는가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고 한다. 그는 캐스팅이 확정되면 우선 인터넷을 통해 배우의 사진을 몇 십장이고 찾아내 분석하고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각(角)’을 미리 찾아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우의 개성과 아름다운 연출이 조화를 이뤄가게 된다. 배경은 누구보다 그 제품에 대해 잘 아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가장 많이 참고해 제품 콘셉트를 만든 후에 결정한다고 한다.

명장은 우연이나 감(感)만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다. ‘2% 부족할 때’ 시리즈의 뛰어난 영상미는 이런 준비과정에서 탄생했기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정우성, 장쯔이, 조인성, 전지현 편 등 어느 것 하나 보는 이의 가슴을 찌르지 않는 것이 없다.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배우들의 연기가 그처럼 관객의 가슴에 와 닿았던 영상은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음료 제품명으로는 다소 어색한 ‘2%부족할 때’라는 기묘한 브랜드를 단시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2005년 상반기에 젊은이들 사이엔 차은택 감독의 작품인 ‘애니모션’이 선풍을 일으켰다. 가수 이효리와 에릭의 뮤직비디오인 ‘애니모션(Anymotion)’은 공개 20일 만에 각종 인터넷 뮤직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 ‘애니모션’은 애니콜 홈페이지를 통해 조회 79만건, 다운로드 8만6000건을 기록했다.

광고업계에서는 이 작품을 분석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마케팅(entertainment marketing)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대성공을 거둔 사례라고 평가했다. 광고는 이제 광고에만 머무르지 않고 음악, 뮤직비디오와 같은 엔터테인먼트와의 결합으로 윈-윈 전략 혹은 원소스 멀티유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애니- 시리즈’는 애니콜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단순한 휴대전화기를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 주역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은 그저 멋진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꾸밀 줄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골적으로 광고를 드러내서도 안 된다. 뮤직비디오 안에서 휴대전화가 사건의 발생이나 이야기의 단서로 중요한 요소마다 배치됨으로써 홍보효과까지 내야 한다는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다. 따라서 뮤직비디오와 광고, 이 둘 사이의 균형감각을 가진 차 감독이 연출한 ‘애니- 시리즈’는 광고와 엔터테인먼트와 문화를 엮어낸 새로운 영상 장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 목록을 보면 하나같이 큰 호응을 받거나 화제가 된 것들이다. 삼성화재 All life 광고를 보자. 지하철역에 서 있는 남자가 도착한 열차에 올라타려는데, 그 사람이 끈으로 붙잡고 있는 것은 도심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악어다. 깜짝 놀라는 주변 사람들. 이때 ‘당신의 남다른 취미, 주위사람들은 괜찮을까요? 취향을 바꿀 수 없다면 보험을 바꿔보세요’라는 자막이 나온다. 현대인의 다양한 생활상을 최대한 보장할 테니 이 보험을 고려해보라며 소비자 인사이트를 파고드는 광고다.

감각적인 영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광고로 리바이스 501 스테이투르를 들 수 있다. 축구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인 조재진이 광고에 출연한 것도 놀라운데, 그가 조각 같은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며 완벽한 감성적 연기를 했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메모 위에 씌어진 ‘10년 후의 조재진에게’에 이어 ‘축구하기 싫을 때마다 이 사진을 보면…훅 가버려, 뛰지 않으면 미치겠거든, 버리지 마라. 십년이든, 백년이든’이라는 조재진의 독백이 흐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STAY TRUE 리바이스 501’이라는 내레이션. 스포츠 스타가 성격묘사를 이토록 빼어나게 해낸 것은 눈길을 끌고도 남음이 있다.

세련된 영상미, 스펀지 같은 전달력 이승주(매직키패드폰, 리바이스 501, T 영상통화 완전정복 등)

“딱 걸렸을 때를 위한 MUST HAVE. 당황하면 끝장이다. 그냥 아는 오빠라고 둘러댄다. 매직 키패드로 관심을 돌린다.”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스카이의 매직 키패드 광고 카피다. 이 광고가 외국 광고처럼 느껴지는 것은 외국에서 촬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디어 발상이나 촬영, 조명, NTC(필름 촬영본을 디지털화하며 색 보정을 하는 작업) 등이 ‘SHOT’이나 ‘아카이브’ 같은 세계 광고 모음집에서 보던 것들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15초의 마술사’, 스타 CF 감독 5대 천왕’ 신동아| 2008-01-25 14:12 1

이국적인 색감과 공학적인 구도로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감각적인 영상, 짧으면서도 위트 넘치는 스토리는 이승주 감독의 광고에서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는 빅 모델을 강조하거나 상품을 노골적으로 고지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벗어나 기능 자체를 스토리화 함으로써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린다.

SKY 매직 키패드 편에는 이런 감수성이 한껏 드러나 있다. 국내 유명 연예인 대신 외국인 모델들을 기용,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던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딱 걸린 난감한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된 두 남자의 관심을 ‘매직 키패드’로 돌린다. 그러면 광고 스토리에 몰입한 소비자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매직 키패드 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여주인공의 심리표현 방법 또한 시청자가 광고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모델의 내레이션 없이 여자의 머리 위에 직접 써넣은 자막은 시드니의 밤거리에 더해져 감각적인 화면으로 펼쳐졌다. 삽입곡인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The end’도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SKY의 ‘슈팅스타’도 눈길을 끌었다. 이 광고 역시 적절한 배경음악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Jellybones’라는 경쾌하고 우주적(?)인 배경음악이 너무나도 엉뚱한 소녀의 무중력 걸음걸이를 재미나게 바꿔준다. 귀여운 춤에 가까운 소녀의 움직임을 재미난 광고로 바꾸는 오브제는 머리에 뒤집어쓴 어항 같은 우주 헬멧.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MUST HAVE. 나만의 우주선을 갖는다’라는 카피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 그녀가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서 갖는 휴대전화가 우주선처럼 유연한 형태의 슈팅스타라는 이야기다. 내레이션으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모든 장치와 배경음악을 동원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재치 넘치는 스토리

리바이스 501 광고인 ‘엔지니어드 진 다크 앤 슬림’에서도 그의 세련되면서도 위트 있는 표현력은 빛난다. ‘매직 키패드’와 마찬가지로 신선하고 세련된 느낌의 외국 무명 모델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 감독은 두 모델을 연인 사이로 설정하고, 연인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깜찍한 애정행각을 재현한다. 인형 선물, 어깨동무,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감싸는 일 모두를 손이 아닌 발로 표현한 것이다. 독특하기 그지없다.

허벅지가 꽉 조이는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었음에도, 모델들의 긴 다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가 연인에게 발로 인형을 선물하고, 연인의 어깨에 발로 어깨동무를 하고, 심지어 발로 연인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듯 감싼다. 너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모델들의 표정과 다리를 이용한 액션의 매칭은 ‘Free to Move’라는 슬로건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제품의 포인트가 꽂히게 만든다.

요즘 TV에 거의 융단폭격을 하듯 나오는 광고가 있다. 한때 광고시장을 한 손에 거머쥔 것처럼 보이던 KTF의 ‘쇼를 하라’에 대적해 만든 SK텔레콤 ‘T영상통화 완전정복 시리즈’다. 완전정복 ‘T끼리 T내는 T Plan’까지 더해져 언뜻 보면 거의 같은 광고들이 하루 종일 방송을 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껏 방송된 것만도 ‘화면조정 편’ ‘특수효과 편’ ‘위기대처 편’ ‘유형학습 편’ ‘매너모드 편’ ‘추석필살기 편’ 외 4, 5개가 더 있는데 앞서 언급한 것들은 이승주 감독의 작품이다.

이 시리즈 중 이승주 감독의 작품을 살펴 보면 그의 장점인 깔끔한 화면 구성과 색조로 시리즈 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전체적인 포맷과 틀을 맞추기 위해(2005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수상한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 시리즈 포맷과 유사하다) 첫 장면을 동일 장면으로 구성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백색의 투명한 톤을 유지했다.

특히 큰 인기를 모았던 위기대처법 편과 화면조정법 편을 보면 갑자기 잠을 깨서 영상통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두 눈과 입 주변, 머리까지 연속 동작으로 체크해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세면 뒤 맨얼굴일 땐 용이 불을 뿜듯 카메라에 입김을 불어 최대한 화면을 뽀얗게 만들고 통화에 임한다. 과연 영상통화를 본격적으로 하면 저런 상황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동조의식과 함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호기심도 생긴다.

이승주 감독은 몸을 사용해 표현하는 인물연출에 뛰어나다. 유형학습 편에서 얼굴이 작아 보이기 위해 팔을 쭉쭉 늘인다든지, 매너모드 편에서 야구감독 수신호로 통화하기 등 사람들이 보고 바로 수긍할 만한 표현을 능청스럽게 표현해낸다. 그의 히트작들은 돌아보면 항상 눈에 띄는 큰 동작의 몸 액션이 많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제품 특징 강조 뛰어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독창적인 감각으로 이국적인 분위기와 재치 넘치는 스토리를 가지고 소비자의 이목을 끈다. 제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고유 판매 제안(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즉 제품의 주된 특징 한 가지를 강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그가 만든 CF의 제목, 혹은 스토리가 소비자 사이에선 그대로 제품 이름으로 인식되곤 한다.

제품의 USP를 세련되게 표현하면서도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기법은 다른 감독들과 그를 차별화하는 그만의 USP이다. 빅 모델을 쓰지 않는 것은 그의 이런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 빅 모델을 쓰면 소비자의 관심은 스타에게 맞춰지므로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제품의 메시지는 스르르 놓쳐버리기 쉽다. 그의 광고를 보고 있으면 광고가 왜 문화이고 예술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강두필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 dpkang@handong.edu

spot_img

Latest articles

Related articles

spot_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