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과 마케팅이 만났다 ‘신경마케팅의 大家’ 호이젤 박사
뇌 과학과 마케팅이 만났다 ‘신경마케팅의 大家’ 호이젤 박사
인간은 과연 극도로 합리적인가?
이 질문은 경제학과 경영학에 걸쳐 더없이 중요하다. 그 대답이 ‘예스’라면? 즉 ‘인간이 아인슈타인처럼 사고(思考)하고 IBM 컴퓨터처럼 기억하며, 간디처럼 의지력을 발휘한다면?’ 일은 간단하다.
그런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에게 선택을 맡기면 시장은 행복한 최적점을 찾아 균형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CEO들도 마케팅 전문가에게 비싼 연봉을 줄 필요가 없다. 싸고 품질 좋은 물건만 만들어 공급하면, 극도로 현명한 소비자들이 알아서 구매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아인슈타인+컴퓨터+간디’의 행동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경제학과 마케팅 연구는 심리학의 수혈(輸血)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최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도 애당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연구 흐름의 대표적 산물이 행동경제학(Beh avioral Economics)이다. 2002년에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Kahneman) 교수가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그 맹위를 떨쳤다.
▲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가 한 강연회에서 뇌 과학과 마케팅을 결합한 자신의‘신경마케팅’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카도 라이프치히 제공
행동경제학적 접근을 마케팅과 구매욕 분석에 중점을 두고 더 치열하게 발전시킨 것이 신경마케팅 이론이다(최정규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신경마케팅(Neuromarketing)이란 뇌 과학과 마케팅을 결합한 신종 학문으로, 소비자의 구매와 소비 행태를 뇌(腦) 과학과 신경심리학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세계 주요 기업들이 경제위기에 따른 극심한 판매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으면서, 마케팅 기법의 ‘대안(代案)’으로 주목받고 있는 최첨단 이론이기도 하다.
독일의 한스-게오르크 호이젤(Hans-Georg Hausel) 박사는 이 신경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대가이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은 거의 언제나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 내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소비자의 뇌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개념을 토대로 2004년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원제: Brain View)’라는 책을 발간, 마케팅 이론서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독일 뮌헨에 있는 사무실에서 호이젤 박사를 최근 만났다. 그는 기자가 “한국의 포털사이트 서평(書評) 코너에서 당신 책이 한국 독자들로부터 10점 만점에 9.46점이나 받았다”고 전해주자, “정말인가요?”하고 여러 번 되묻더니,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카도 라이프치히 제공
―당신이 책에서 지적했던 기존 마케팅 개념의 오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아주시겠습니까?
“첫번째로 폐기해야 할 개념은 소비자를 ‘이성적 존재’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제 연구에 따르면, 모든 소비자는 감정에 지배되는 존재입니다. 둘째, 모든 소비자를 성향이 같은 단일 개체로 보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매우 다양한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마케팅 리서치를 한다면서 소비자 마음속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있더군요.”
―뇌(腦)가 같은 양의 근육보다 22배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뇌는 되도록 에너지를 절약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사람의 두뇌 활동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글에서 호랑이와 맞닥뜨렸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과연 호랑이 가죽의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와 다른 특징들을 반영해서 ‘호랑이’라는 종합 판단을 내린 다음, 어떻게 대응할지 다시 판단을 할까요? 아닙니다. 실제 인간은 호랑이를 보는 즉시 뇌의 공포감 기제가 작동해 돌아서 도망가지요. 우리 뇌는 진화 과정에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자동 모드’로 저장합니다.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는 것이 유기체에 이익이 되니까요. 소비자들의 막연한 예감, 직관에 따른 구매 결정 등은 모두 뇌의 자동 모드와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브랜드(brand)가 고객의 뇌 사용을 줄여준다고 보시지요?
“그렇습니다. 뇌에는 브랜드에 관한 2개의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첫째,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대할 때는 따로 생각할 필요 없이 ‘자동 모드’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입니다. 둘째,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감정에 관한 메커니즘입니다. 예를 들어, 새 상품을 봤을 땐 뇌의 학습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眼窩前頭皮質)이 활성화되지만, 폴크스바겐처럼 오래된 브랜드는 뇌의 깊숙한 부분, 즉 편도(扁桃)라는 뇌 부위에 저장됩니다.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려면 뇌의 깊숙한 부분인 감정 영역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그래픽 참조>
―여성과 남성의 뇌는 어떻게 다릅니까? 마케팅도 달라져야 하나요?
“남성과 여성의 뇌는 호르몬과 해부학적 측면에서 300여가지나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의 뇌는 더 많은 에스트로겐을 갖고 있고, 이는 상호 교감적 사고, 직관적 사고, 감정적 느낌을 증가시켜 더 감정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여성은 건강 제품이나 소설, 예술품 등 환상을 자극하는 상품에 잘 반응합니다.
반면 남성의 뇌는 테스토스테론의 지배를 더 많이 받으므로 지배적, 분석적인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스포츠, 포르셰(스포츠카), 컴퓨터와 같은 제품에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남성은 사각형 모양의 직선적이고 실용적인 형태를 선호하는 반면, 여성은 부드럽고 따뜻한 형태를 좋아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생수업체 푀스라우어는 용기를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바꾸는 것만으로 여성 고객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올렸습니다.”
그의 뇌(腦)는 그리 크지 않았다. 190㎝쯤 되는 장신에 머리가 작아 9등신은 돼 보였다. 그를 만난 곳은 뮌헨 중앙역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그의 회사의 1평 남짓한 회의실. 호이젤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기업에 신경마케팅 컨설팅을 해 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책에 실린 사진에서 본 근엄하고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그는 무척 친절하고 쾌활한 시골 아저씨 같았다. 질문에 답을 하다 적절한 영어 단어가 안 떠오를 땐,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밖으로 나가 직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뒤 다시 대답을 이어갔다.
그는 뇌와 관련된 전문 의학 용어를 설명할 땐, 기자가 못 알아들을까 염려해 칠판에 매직펜으로 직접 써가며 자상하게 설명했다. 기자와 만나기 5분 전 모 자동차 회사에 ‘미래의 자동차’와 관련한 컨설팅을 했다는 그에게는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차례 컨설팅을 위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가 끝나면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가 매달 선정하는 ‘독일의 현인(賢人)’에 뽑혀 강연 출장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 “인간의 모든 결정은 감정적―의식은 뒤에 합리화할 뿐”
―당신은 인간의 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감정이라고 하고, 뇌 속에 자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감정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것 아닌가요?
“(웃음) 1980년대 이후 뇌 연구가 괄목한 만한 성과를 내면서 인간의 결정은 모두 감정적이라는 점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 생활이나 기업 활동의 목적은 모두 감정과 깊이 관련돼 있습니다. 신경정보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눈은 초당 1000만비트, 귀는 100만비트, 후각은 10만비트의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데, 이 중 사람이 의식하는 정보는 0.0004%(40비트)에 불과합니다. 결국 상품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뇌 깊숙이 자리 잡은 감정의 영역이며, 의식은 구매 결정이 이뤄지고 난 뒤 그것을 합리화하는 기능만 합니다.”
―뇌 속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3가지 거대한 감정시스템, 즉 ‘빅3’가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 두뇌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감정시스템은 ‘균형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안전함을 추구하고, 위험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시스템은 ‘지배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경쟁자를 축출해 자신이 보다 우월한 존재로 부각되고 싶어하는 감정입니다. 회사 내에서 승진을 위해 경쟁하게 만들며 승리감과 섹스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스템은 ‘자극시스템’이라 불리는데 즐거움과 짜릿함,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행위와 관련된 것입니다.”
―투자자들이 돈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취하는 태도를 연구한 결과, 역시 3가지 거대한 감정시스템의 협력을 통해 모든 결정이 이뤄지며, 그 과정에서 ‘이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두뇌 속의 지배시스템은 돈과 권력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갖게 합니다. 또 자극시스템은 더 많은 스릴을 느끼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합니다. 즉 뇌의 지배시스템과 자극시스템이 서로 협력해 인간으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깁니다.”
―균형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작동이 잘 안 되고요?
“그렇죠. 투자 결정을 할 때 위험과 안전이 긴장 상태에 돌입하는데, 주가가 오르면 낙관적이 되어서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됩니다. 반면 주가가 떨어지면 균형시스템이 작동해 근심과 걱정을 하게 되지요. 따라서, 경제 호황과 불황이란 사이클은 지배·자극시스템과 균형시스템 사이를 순환하는 감정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간의 감정과 변덕이 모든 고통을 낳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의 본성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종교적 노력조차 감정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불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면서 인간의 존재 목적에 대해 많은 사유를 했지만, 궁극적으로 비관론자였습니다. 제 이론으로 보면, 그는 균형시스템 중 근심이나 불안과 관련이 있는 부정적인 감정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교는 부정적 감정을 해탈을 통해 극복하는 것으로, 심리학적으로 풀이하자면 고통을 극대화한 뒤 이를 초월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좌뇌=합리적, 우뇌=감정적’이라는 견해는 잘못
―최근 Weekly BIZ가 인터뷰한 다니엘 핑크, 리처드 왓슨 등 미래학자들은 감성·창의·종합의 능력을 맡는 우뇌(右腦)가 앞으로 좌뇌(左腦)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그 의견에 50%만 찬성합니다. 제가 보기엔 뇌의 모든 부분이 감성적입니다. 다만 좌뇌는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더 많이 있어 좀 더 낙관적인 반면, 우뇌는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많이 분포해 마음을 여리게 만들고 근심, 걱정을 만들어 냅니다. 좌뇌가 좀 더 분석적이고 우뇌가 좀 더 교감적이라는 점에서는 두 사람 의견에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양쪽 두뇌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감정과 이성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강력한 브랜드가 되려면 소비자에 대한 반복 노출을 통해 뇌 깊숙한 부분에 저장시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신생 기업은 많은 광고비를 지출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바로 그래서 뇌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이라도 인터넷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강력한 브랜드 구축이 가능합니다. 꼭 고전적인 TV 광고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강조하는 브랜드 전략에 가장 부합하는 모범 사례는 무엇인가요?
“가장 오래되고 고전적인 브랜드로는 코카콜라를 들 수 있겠고, 최근의 브랜드로는 구글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글의 경우 소비자와의 접촉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마케팅 개념으로 강조하는 ‘큐 매니지먼트(Cue management)’란 개념을 설명해 주시지요.
“큐 매니지먼트란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판매 전략을 말합니다. 소리와 냄새, 촉감 등 고객의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광고 표현의 기법이라고 볼 수 있죠.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을 들면서) 이 생수병 하나엔 병의 형태, 색상, 상표에 적용된 상징물, 생수의 발원지와 효용을 설명한 내용 등 수많은 신호가 담겨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생수를 구입할 때 이 신호들을 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뇌에는 생수 제품이 보내는 신호가 다 입력됩니다.
큐 매니지먼트가 의미하는 것은 이런 신호를 소비자의 뇌 깊숙한 부분으로 보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감정이 제품에 반응하도록 제품 디자인·형태·색상·메시지를 주도면밀하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가 핸들이나 버튼의 감촉에 신경을 쓴다든가(촉각), 화장지 회사가 제품에 향수를 살짝 뿌린다든가(후각), 맥주회사가 마개를 딸 때 나는 소리를 중시한다든가(청각) 하는 행위는 모두 큐 매니지먼트 영역에 속합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다중(多重) 감각 매니지먼트(multi sensoring management)’라고 부릅니다. 감각 체계에 이런 신호가 전달되면 소비자의 의식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뇌가 먼저 반응해 구매 결정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고객이 매장에서 방향을 결정할 때 68%가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는 내용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이나 일본의 좌측통행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인가요?
“(손을 가로저으며) 아닙니다.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좌뇌가 운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좌뇌는 또한 우리 신체의 오른쪽 부분을 관장하기 때문입니다(반대로 우뇌는 신체의 왼쪽 부분을 관장한다). 새로 매장을 열 때 이런 점을 감안해 고객의 동선을 설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국이나 일본 시스템이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비자의 99%가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면 뇌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보겠지만, 평균(50%)보다 18% 정도 더 높은 것은 ‘버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진열대를 꾸밀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
“우선 소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을 등장시켜 소비자의 뇌를 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책에서 방법의 하나로 가격표를 모두 빨간색으로 바꿔 뇌의 ‘사냥 모듈’을 자극하는 기법을 소개했다.) 우리의 뇌는 낯선 환경을 접했을 때 가설(假說)을 만들어내며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또 진열해야 할 아이템은 많은데 공간이 크지 않다면, 진열 상품을 단순화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두뇌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상품이 진열돼 있으면 복잡하다고 느끼면서 작업하기를 거부하니까요.”
■ 현대차 마케팅 전략은 신경마케팅 관점에서 훌륭
―당신 이론에 따르면, ‘모험가’나 ‘실행가’로 분류되는 사람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고소득자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구매 의욕을 자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실행가들이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부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행가들은 지위를 얻기를 원하며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비싼 제품, 포르쉐와 같은 고가의 고급차 등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고가의 럭셔리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성공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만이 이 고가 제품을 소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500가구만이 이 제품을 구매했다는 식의 판매 기법을 쓰면 틀림없이 통할 것입니다.”
―당신 이론을 기업의 소비자 공략이 아닌, 소비자의 대응 쪽으로도 활용할 수 있나요?
“저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목적으로도 책을 썼습니다. 저는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인 결정에 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강력한 브랜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해서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당신의 구매 결정에 브랜드의 영향을 받는가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제가 소비자에게 하고 싶은 충고는 당신이 늘 소비하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너무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론은 ‘상사에게 잘 보이는 법’ 등 처세술에 적용해도 될 것 같은데요? 직장인을 위해 조언을 좀 주시지요.
“우선 당신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실행가(권력욕과 지위욕이 강한 사람) 타입이라면 당신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독단적이다’라는 평을 들을 위험이 많습니다. 또 만약 당신이 ‘조화론자(감정시스템에서 결합과 보살핌 모드가 강한 사람)’라면 리더십과 지도력이 취약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만큼 이런 쪽의 이미지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포인트는 누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상사와 대화를 나눌 땐 추상적 표현을 삼가고, 웃음 띤 얼굴과 적절한 보디랭귀지를 구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만들어진 지 20만년밖에 안되지만, 보디랭귀지는 그보다 훨씬 역사가 길어 뇌에 각인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 문화에선 어떨지 모르지만, 서양에선 대화를 나눌 때 가벼운 신체 접촉(터치)이 가능한데, 가벼운 터치를 적절히 섞어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주는 방법도 좋을 것 같군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아시아에 호감을 갖고 있어 언젠가 한국도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현대자동차가 고객이 차량 구입 후 1년 내에 실직할 경우 구매 차량을 되사주는 마케팅으로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성공 사례를 당신의 마케팅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그 사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불안해하는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적합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의 마케팅 전략은 두 개의 감정시스템, 즉 균형시스템(보살핌)과 자극시스템(새로운 서비스)을 잘 조화시킨 것으로 보이네요.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반응을 보였는지 모르지만 이런 판매 전략은 신경마케팅 관점에서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험해봤더니…눈 가리고 콜라 시음하면 펩시가 이기는데 브랜드가 뇌 자극, 코카콜라가 잘 팔리더라
신경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한스-게오르크 호이젤(Hans-Georg Hausel) 박사는 본인 이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소개한다.
#사례1= 블라인드 테스트(눈을 가리고 시음해 더 좋은 상품을 고르게 하는 실험)에선 펩시가 이기는데, 실제 판매 현장에선 왜 코카가 압도할까? 2003년 코카콜라사는 실험 대상자들의 뇌 활동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이용해 그 비밀을 파헤쳤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실험 대상자들의 뇌 스캔 사진이 비슷했다. 즉 콜라의 맛만 보고는 양쪽 모두 동일한 뇌 영역(전두엽)이 활성화됐다. 하지만 콜라 상표를 보여주고 뇌 스캔을 하자 양쪽의 뇌 영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코카콜라를 마신 사람은 전두엽 외에 중뇌와 대뇌까지 활성화됐지만, 펩시를 마신 사람의 중뇌와 대뇌는 평온했다. 코카콜라는 단순한 맛 외에 브랜드 이미지라는 경쟁 요소를 갖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사례2= 갈증을 느끼는 실험 대상자를 상대로 음료수를 사는 데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50분의 1초 간격으로 화가 난 얼굴 사진을 보여준 반면, 다른 쪽엔 웃는 얼굴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노출 시간이 너무 짧아 아무도 얼굴 사진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1분 뒤 두 그룹의 답은 확연히 달랐다. 화가 난 얼굴을 본 그룹은 평균 10센트를, 웃는 얼굴을 본 그룹은 38센트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부정적 이미지의 사진은 스트레스를 준 반면, 웃는 사진은 즐거움을 줘 ‘기부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례3= 재료와 품질이 똑같은 화장지가 있다. 일부 화장지엔 사람의 후각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향기를 살짝 가미한 반면, 나머지는 그냥 그대로 둔 채 실험 대상자들로 하여금 화장지를 선택하게 했다. 놀랍게도 실험 대상자의 65%가 향수를 뿌린 화장지를 선택했다. 실험 대상자 중 두 화장지의 차이점을 인지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
결론= 이런 실험 결과들을 해석할 열쇠는 바로 뇌(腦)의 비밀에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래서 마케팅의 핵심은 뇌에서 시작해 뇌에서 끝난다는 분석이다.
끊임없이 오판하고 실수하는 ‘비합리적인 인간’…
그것을 파헤치면 마케팅·금융위기·경제학의 답이 보인다
행동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자율 주어지면 망가지는 인간 하지만 조금의 자극만으로도 지혜로운 선택으로 옮겨타 그 행동과 자극을 연구해 마케팅·캠페인 등에 활용
#1. 무인도에 표류하던 물리학자와 화학자, 경제학자 앞에 파도를 타고 캔 수프 하나가 떠밀려왔다. 물리학자는 “돌멩이로 쳐서 캔을 따자”고 했고, 화학자는 “불을 지펴서 가열하자”고 했다. 경제학자는? “음, 여기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假定)해봅시다….” 그날 밤 경제학자는 수프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을 자야 했다.
#2. 새 학기 첫날, 뜨거운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3편의 페이퍼를 제출받아 이번 학기 학점을 매긴다”고 말한다. 교실은 3곳. 학생들은 세 교실 모두 균질(均質)하다. 다만 마감 방식은 교실마다 다르게 내건다 (세 교실 모두 페이퍼를 일찍 낸다고 보너스 점수는 없다).
A교실(완전한 자율과 선택); “마감일이 따로 없다. 학기 마지막 날까지, 여러분 학생들이 자유롭고 지혜롭게 선택해서 제출하라.”
B교실(자율적 제한); “각자 마감일 서약서를 자율적으로 정해서 적어 내라. ‘1번 페이퍼는 ○주차에, 2번 페이퍼는 ○주차에, 3번 페이퍼는 ○주차에 낸다’고 써내면 된다. 물론 페이퍼 3개를 몽땅 몰아서 학기 마지막날에 제출하겠다고 서약서를 써내도 된다. 단 일단 서약한 마감일보다 늦게 내면 약간의 감점을 줄 수 있다.”
우선 인간은 먼 미래를 판단할 때와 가까운 미래를 판단할 때 그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중요한 비합리’를 저지른다는 게 행동경제학의 분석이다. 이 실험에서처럼 숙제 마감에 대해 자율성이 주어지면, 슬기롭고 합리적으로 최적점을 찾아 만족과 학점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경제학의 기대이다. 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가까운 미래의 ‘숙제 미루기’라는 작은 달콤함과 먼 미래의 ‘숙제 몰아치기’라는 큰 고통 및 감점을 제대로 비교하는 데 처참하게 실패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학생의 실패’는 한두번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이 늘 그렇듯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후회를 하고도 방학 숙제는 또 밀리고, 시험 공부는 또 벼락치기가 되니까….
학생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란 무릇 그렇다. 최정규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인간이 합리성으로부터 일시적으로만 이탈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누적적이고 특정한 방향성을 갖고 이탈한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코어’인 인간 합리성은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다”고 진단했다. 인간의 지속적인 합리성 이탈은 ‘가까운 미래로의 몰입’ 이외에도 ‘손실에 대한 과도한 회피’, ‘소유품과 현상 유지에 대한 과잉 집착’, ‘첫인상에 따른 어이없는 오판’, ‘고정관념에 턱없이 휘둘리는 인상(印象)’ 등에서도 두루 나타난다.
그래서 댄 애리얼리 교수와 도모노 노리오 메이지대 교수는 “인간이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그 비합리성에 일정한 경향이 있어서 예측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비합리성도 이론적 분석의 대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가 빅 브라더처럼 간섭하고 독재하라는 걸까? 그건 아니다. 이 실험에서도 ‘스스로 제출 기한을 정해보는’ 약간의 자율적 제한을 통해 학점과 행복감이 늘어났듯이, 인간은 미세한 자극과 유도(誘導)만 주어지면 훨씬 더 지혜로운 선택으로 옮겨 탈 줄 안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믿음이다.
시카고 대학의 리처드 탈러(Thaler) 석좌교수는 이 통찰을 ‘넛지(nudge·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찌르기)’라는 멋진 단어를 통해 선명하게 표현해낸다. 리처드 탈러는 이를 또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라고 부른다. ‘넛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시장과 개인에 터잡은 자유주의를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고민의 발로(發露)다.
그렇다면 행동경제학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마케팅학은 가장 뜨겁게 행동경제학을 흡수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간은 지속적으로 고정관념에 턱없이 휘둘린다’는 행동경제학의 분석은 ‘강렬한 브랜드의 중요성’으로 변주(變奏)된다. 심지어 강렬한 브랜드가 뇌의 어느 부분을 활성화시키는가 하는 진단까지 내놓는다.
정책·캠페인 담당자들도 유익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유권자에게 단지 “내일 투표할 거냐”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실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 또 인간이 손실에 더 과민반응하는 속성도 ‘넛지’ 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 ‘당신이 에너지를 절약하면 연간 350달러를 벌 수 있다’는 캠페인을 ‘당신이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으면 연간 350달러를 잃게 된다’고 살짝 바꾸면, 그 내용은 사실상 똑같아도 효과는 커지는 것이다.
‘이혼 숙려(熟慮)제’도 이런 넛지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혼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인간은 충분히 숙고하게 마련이므로 한두달 더 생각한다고 판단이 바뀔 리 없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현실은 역시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음을, 그래서 ‘숙려제의 넛지’ 덕분에 흥분에 휘말린 속단을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개인들은 조금 기분 나쁠 수 있다. 스스로가 자부해온 만큼 현명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많다는 교훈을, 행동경제학은 굳이 곱씹으라고 충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신뿐 아니라 남들도 대체로 비합리적이라는 데서 오히려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본인의 소비욕을 강한 의지만으로 절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장기 보험에 가입해버리는 ‘사고’를 치는 식으로 본인의 행복 총량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다. 학생들이 페이퍼 마감 서약서를 적어내서 학기말의 몰아치기 고통을 줄였듯이….
행동경제학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글로벌 경제난과 함께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많은 경제 주체들의 비합리성이 얽히고 부풀어 오르면서 이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위기가 지난 후 정부의 역할과 개인의 영역 사이에 새로운 경계선을 긋는 과정에서 행동경제학은 중요한 분석틀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리 겔만(Gell-Mann)은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다.
“입자(粒子)들이 모두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물리학이 얼마나 어려워질까?”
물리학의 ‘입자’가 바로 경제학에서는 ‘인간’이다. 그들은 ‘생각’을 한다. 그것도 저마다 다르고 자주 비합리적으로…. 그렇지 않아도 위기와 도전에 휩싸인 경제학 앞에는 더욱 힘든 여정(旅程)이 기다리고 있다.
C교실(완전한 간섭과 제한); “세 페이퍼의 마감일은 각각 4주차, 8주차, 12주차이다. 늦으면 감점한다. 여러분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세 교실의 평균 학점은 어떻게 나왔을까? 예상 외로 (혹은 예상대로) 선택의 여지가 가장 넓었던 A교실 점수는 최악이었다. ‘완전한 간섭’으로 선택의 여지가 가장 좁았던 C교실 점수가 최고였다. B교실 학점은 중간이었다.
학생들의 행복감 순서도 비슷했다. ‘완전한 간섭’을 당했건만, C교실 학생들은 숙제가 밀리지 않아 평화로웠다. 완전한 자율과 선택이 주어진 A교실 학생들은 막판에 몰아치기 숙제를 하느라 고생에 찌들었다. B교실은 자율적 제한 덕분에 중간이었다. 인간은 자율과 선택이 주어지면 바보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닐텐데….
위의 이야기 ‘#1’은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Samuelson)의 유명한 유머다. 원만한 이론 전개를 위해, 분석하기 까다로운 영역은 ‘일단 이렇다고 치고…’ 하는 식으로 ‘가정’하고 넘어가기 좋아하는 경제학의 특성을 꼬집은 것이다.
전통 경제학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가정(假定)은 바로 경제 주체인 인간에 관한 것이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는 이름하에 경제학은 ‘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이익을 위해 자신을 적절히 조절하고 단·장기적으로 두루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신(神)과 같은 인물’이라고 인간을 간주해왔다(‘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도모노 노리오 지음).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처럼 사고(思考)하고, IBM 컴퓨터처럼 뛰어나게 기억하며, 간디처럼 의지력을 발휘하는 존재’처럼 인간을 가정해온 것이다(‘넛지·Nudge’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지음).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듯이 결코 그렇지 않다. 경제학도 그것을 모른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과학이 때로 ‘진공(眞空) 속의 실험’을 통해 실제에 적용될 유익한 이론을 발전시키듯이, ‘진공 속의 인간’을 통해 현실에 활용할 경제학 이론을 진화시키려 했을 뿐이다. 경제학의 다른 가정들이 도전받는 와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의문 제기가 금기시됐던 성역(聖域)이 바로 ‘합리적 인간’의 전제(前提)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도 인간이 대세적, 총체적으로는 합리적일 것’이라고 본 기대와 전제가 균열하면서 발생했다. 인간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빈번하고, 더 현격하고, 더 일관적으로 합리성의 틀을 벗어난다는 목격과 분석이 쏟아진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합리성 이탈, 혹은 합리성 미흡을 체계적으로 연구해보자며 탄생한 접근이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Schumacher)는 이 상황을 “빼어난 구두 수선공이 되려면 이제 구두를 잘 만드는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며 발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비유했다. 여기서 ‘발’은 물론 인간을 뜻한다.
행동경제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뇌의 활동을 분석해 인간의 의사 결정을 이해하겠다는 연구 분야가 신경경제학이다. 호이젤(H�qusel) 박사의 신경마케팅은 이 신경경제학의 맥락에서 마케팅을 파고든 연구이다.
‘#2’ 스토리는 요사이 미국에서 각광받는 신예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Ariely) 듀크대 교수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실제로 행한 실험 내용이다. Weekly BIZ가 올해 1월 3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인터뷰했던 바로 그 학자다. 이 실험은 간단하지만, 행동경제학이 전하려는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실 이 실험 결과가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학창 시절을 거친 우리 모두가 알듯이, 자고로 학생이란 숙제를 미루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선택할 여지가 넓어질수록 인간은 더 높은 행복감과 성취를 일궈갈 것이라는 경제학의 굳은 믿음과는 확연히 어긋난다. 어떻게 된 걸까?
처음 각인된 숫자가 엉뚱한 일에도 영향 똑같은 질문을 표현만 달리해도 휘둘려
행동경제학이 보여주는 ‘놀라운 비합리’의 사례들
국내에 소개된 대표적 행동경제학 저서로는 ‘넛지(Nudge· 리처드 탈러)’,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댄 애리얼리)’, ‘행동경제학(도모노 노리오)’을 들 수 있다.
‘넛지’와 ‘상식 밖의 경제학’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격찬을 받았다. 2007년 국내에 출간된 ‘행동경제학’은 이 분야의 국내 첫 입문서이다. 이 세 권의 책에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인상적 실험과 관찰 사례가 넘쳐난다.
▲ (왼쪽부터)호이젤의‘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리처드 탈러의‘넛지’ 댄 애리얼리의‘상식 밖의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의‘행동경제학’ #사례 1 똘똘한 대학생들을 와인 경매장에 불러 두 가지를 해보라고 실험을 해봤다. “첫째, 당신의 주민번호 끝 두 자리를 일단 종이에 적어라. 끝자리가 23이면 23달러 식으로…. 그리고 그 가격에 이 와인을 살 것인지 아닌지 종이에 적어내라. 둘째, 당신이 이 와인에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 가격을 적어봐라.”
두 질문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더구나 첫번째 질문의 주민번호 끝 두 자리는 이 학생의 개성·능력·감성과는 아무 상관 관계가 없는, 그야말로 무작위 숫자일 뿐이다.
하지만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주민번호 끝 두 자리가 ’80~99’인 학생들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써낸 가격의 평균은 56달러인 반면, 끝 두 자리가 ‘1~20’인 학생들이 써낸 가격의 평균은 16달러에 불과했다.
도대체 왜? 첫번째 질문한 주민번호 끝 두 자리가 뇌에 각인되는 바람에, 독립된 두번째 질문에 답을 할 때도 앵커(anchor)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새끼 거위가 태어난 직후 처음 눈에 들어온 동물을 (그것이 인간이라도) 따라다니듯이 말이다. 일단 처음 머리에 들어온 숫자가, 피할 수 없는 기준이 될 정도로 사람의 뇌와 심리는 불완전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든, 경험이 풍부하고 똑똑한 판사들마저도 늘 검사의 구형량에 선고 형량이 휘둘리게 마련이다.
#사례 2 “린다는 31세의 싱글 여성으로, 매우 총명하고 솔직하며 철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학생 시절 인종차별과 사회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핵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뭘 할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여러 보기 중 ‘은행원’과 ‘여성 인권에 적극 참여하는 은행원’이 있을 때, 사람들은 후자를 훨씬 더 많이 고른다. 명백한 논리적 오류다. 당연히 후자보다는 전자(그냥 ‘은행원’)가 더 넓은 개념이므로, 확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게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의 자동적으로 끌리고 마는 인간의 비합리적 기제 때문이다.
#사례 3 이런 질문을 사람들에게 해봤다. “정책 J를 고르면 ‘실업률 10%, 물가상승률 12%’, 정책 K를 고르면 ‘실업률 5%, 물가상승률 17%’가 된다. 어느 정책이 좋은가?”
응답률을 조사해 보니 J가 36%, K가 64%로 나왔다.
그런데 질문을 살짝 바꿔봤다. “정책 J를 고르면 ‘고용률 90%, 물가상승률 12%’, 정책 K를 고르면 ‘고용률 95%, 물가상승률 17%’가 된다. 어느 정책이 좋은가?” 이번엔 응답률이 J 54%, K 46%가 나왔다.
두 질문은 표현만 다를 뿐 완전히 똑같은 내용이지만, 응답률 순위는 반대로 바뀌었다. ‘질문1’에서는 실업률이 10%→5%로 격감하는 것처럼 보이니, 정책 K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질문2’에서는 고용률이 95%→90%로 큰 변화가 없어 보이니, 물가가 덜 오르는 정책 J가 상대적으로 돋보인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프레임에 따라 휘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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