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자 나이 50, 그 쓸쓸함에 대하여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회사형 인간’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의 50대 남성. 정년이 코 앞에 있지만 경제적으로 막상 해 놓은 것은 별로 없다. 부모와 자녀에 대해 책임감이 높아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식들 ‘눈치보기’ 급급하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많지 않고, 가족과 소통에도 서툴러 스트레스와 외로움에 한숨 짓는다.‘탈진상태’에 빠진 50대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58년 개띠’인 대기업 부장 김형석(가명)씨는 요즘 거의 우울증에 빠져 있다. 임원 승진에서 몇 년째 누락됐고, 자연히 후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가 된 지도 몇 년 된 것이다. 요즘과 같이 경기가 어려워지면 스트레스 강도가 더하다. 그는 “회사가 더 이상 나를 필요치 않는 것을 이미 확인했고 사표를 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아이들 학자금과 노부모 생각에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 홀로 된 어머니가 있고 그의 아들은 대학생이며, 딸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김 부장은 “억울한 마음도 많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중상위급 대학을 졸업, 입사한 이래 휴일도 잊은 채 열심히 일했다. 새벽빛을 보며 집에서 나와 자정이 다 되어야 퇴근하는 게 일상이던 탓에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그는 “내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자부심과 이렇게 일하다 보면 돈과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자신의 청춘을 다 받친 25년 직장생활이지만 그는 어느새 후배의 눈치를 봐야 하는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그는 요즘 최대한 회사에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보다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을 많이 하지만 선뜻 무엇을 할지 막막하다. 김 부장은 “앞으로 30년에 달할 우리 부부의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적어도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글귀다. 공자는 나이 쉰에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공자는 70세가 넘게 장수했지만 공자가 살았던 시대, 쉰이면 이미 노인에 해당할 나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서구의 인간 평균수명은 47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나이 쉰의 사람을 보고 노인이라고 했다가는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9.1세.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 100세가 될 날이 머지않았고, 건강관리만 잘하면 120세까지도 살 수 있다는 게 의학자들의 확신 어린 말이다. 당장 향후 10년 후에는 수명이 90세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나이 쉰은 평균적으로 이제 겨우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이다.
‘58년 개띠’는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의 중심에 있다. 흔히 “채이는 것이 58년 개띠”라고 하는 말은 인구 분포상 이 세대의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개띠세대가 성장함에 따라 사회는 요동치고 격변을 겪었다. 이들은 극심한 입시전쟁에서 고교 평준화라는 교육제도 변혁을 가져온 주인공이다. 또 이들이 ‘물밀듯이’ 대학에 진학한 70년대 말부터 대학 입학 제도가 출렁거렸다. 이 세대는 결국 1981년 ‘대학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라는 졸업정원제라는 대학제도를 낳았다.
두 번의 경제위기 직격탄 맞아
기러기아빠의 상당수는 50대다. 사진은 조기유학 이미지. <경향신문>
58년 개띠가 포함된 한국의 50대는 정치·사회적으로 6·3세대와 386세대 사이에 있으며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사이에도 놓인 전형적인 ‘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황상민 교수는 “이들은 자신을 특징지을 뚜렷한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불운한 세대”라며 “이들은 선배인 4·19세대와 6·3세대, 후배인 386세대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박탈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50대들은 70~80년대 초 경제호황과 맞물려 직장에서 산업의 역군으로, 가정에서 든든한 가장으로, 정치·사회적으로 넥타이부대로 1987년 넥타이 혁명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중간 간부가 되기 시작하며 맞은 IMF 외환위기 때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정리해고·명예퇴직의 파고를 맞아야 했다.
IMF 외환위기 시절,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던 52세 박영춘씨(가명)는 “우리 세대는 중동건설 특수 바람을 타고 사막의 먼지를 마시며 달러벌이에 앞장섰고, 건설뿐 아니라 자동차, 무역 등 모든 업종에 종사하며 주말도 반납한 채 밤낮으로 뛰었다”며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실직 대상이 돼 거리에 나앉게 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고 회고했다.
또 이들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최근의 경제 위기 때도 조직에서, 후배들에게도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 연령은 만 53세로 평균 근속연수는 20년8개월이다. 하기야 삼팔선(38세 정년), 사오정(45세 정년) 소리도 옛말인데 50세까지 버티며 월급을 받았다면 ‘만수무강’한 축에 속한 행복한 인생일지 모른다.
하지만 삼팔선·사오정은 경제적으로 제2의 도전을 해볼 여지가 있다. 다시 공부를 할 수도, 전혀 다른 분야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50대들은 그럴 용기도, 또 여건도 되지 못한다. 현업에 치여 사느라 미래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58년 개띠를 비롯한 한국의 50대 남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지금 하고 있는 경제활동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와 은퇴 후 삶이다.
실제 지난 2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50대 직장인 10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50대는 젊은층보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대비가 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46.4%)와 30대(43.4%) 10명 중 4명 이상이 현재 직장을 그만둔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40대는 35.0%, 50대 이상은 37.8%에 그친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한국의 50대 상당수는 자녀가 학업 중이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이여서 자신의 노후보다는 당장 자식들에게 필요한 돈을 마련하느라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는 세대이기도 하다. 청년실업이 증가하면서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에게 용돈까지 대줘야 하는 사람도 많다. 때문에 이들은 일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3월 현재 50대 남자의 고용률은 84.2%로 20대 남자의 고용률 56.2%보다 훨씬 높다. 이것은 정년에 임박한 50대들이 비정규직 자식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기막힌 처지에 내몰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러다 보니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가족에게 푸는 일도 적지 않다. 올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는 51세 김효석씨(가명)는 “집에 있다 보니 힘든 내 맘을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하는 것 같은 아내에게 짜증이 나고, 아이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섭섭함과 자괴감이 치밀어오른다”고 말했다.
“소외감과 불안감은 일종의 화병” 황상민 교수는 “이는 지금 한국의 50대 남자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며 “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를 위해 보내는 전형적인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왔고 늘 경쟁에 치여 살아왔기 때문에 가족을 포함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어 대화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이어 “그 같은 스트레스가 가족이나 약자 등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도 저서 <중년의 사회학>(살림)에서 “부부 관계, 자녀 관계, 직장에서 사회적 관계 등에 어려움을 느끼고 소외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한국의 중년 남성이 겪는 일종의 화병”이라며 “이들은 가정과 사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뜬 세대’”라고 말했다.
한국의 50대는 지금까지 밤낮을 잊고 가족과 회사를 위해 뛰어다녔지만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찬밥 대우를 받는다. 사진은 50대 남자의 처진 뒷모습. <경향신문>
또 대한민국에 사는 50대는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해 부모에 대한 봉양과 자녀 뒷바라지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식들에게 봉양받지 못하는 세대다. 2007년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이 전국 50대 8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향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묻는 질문에 13.6%만 ‘자녀’라고 답했고, ‘자녀에게 부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71.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게다가 50대 남자는 신체적으로도 ‘내리막길’이다. 쉰을 넘기면서 눈도 침침해지고 술 마신 다음날 해독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며 성기능도 저하한다. 여기저기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파도 아픈 것을 내색하지 못한다. 서울시 공무원인 54세 윤인구씨(가명)는 “늘 졸리고 피곤하다는 느낌에 절어 지내지만 아들이 결혼할 때 집 한 채라도 마련해주려면 일터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내 몸 돌볼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남성심리학>(리더스북)을 펴낸 인제대 스트레스연구소 소장인 우종민 박사(현 백병원 신경정신과 박사)는 “만약 건강에 이상 증세가 보일 경우 임원 승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년이 되면 회사에서 마련한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경쟁우선주의·성과우선주의 문화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경쟁 상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도 없다. 당연히 스트레스는 안으로만 쌓여간다. 우 박사는 “여자들은 동창회에 나가서 남편 흉도 보고 자식 자랑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만 50대 남자들은 동창회를 나가도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를 할까 생각하기 때문에 만나면 속이야기는 털어놓지 않고 괜한 정치 이야기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부부 5분만 같이 있으면 싸움”
주민등록인구 (통계청, 2008년 12월 기준)
이들은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내, 자식들과 대화나 공감 능력은 서툴다. 쉴틈없이 회사 일에 매진하느라 그동안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체내에 여성 호르몬이 점차 증가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서운한 감정을 갖는 일이 잦다. 누가 조금이라도 기분 상하는 말을 하기라도 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내가 누군데’ 하며 토라진다. ‘50대 부부가 5분만 같이 있으면 싸움이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서울의 한 대학에 재직 중인 53세 김모 교수는 “학교 연구실 대신 집에서 일을 해보려 했는데 결국 며칠 만에 다시 짐을 싸들고 학교로 나왔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투성이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아내에게 자꾸 잔소리를 쏟아내고 부모님께도 대드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심리학자는 “우스갯소리로 20대와 50대 남녀가 모텔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을 측정하면 50대 남자들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인터넷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하루 종일 모텔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20대와 달리 대화에 서툰 50대는 딱 한 가지 목적만 이루고 나오기 때문에 모텔에 머무는 시간이 극히 짧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민아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풍파를 겪으며 누구보다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이 의지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한국의 50대 남자는 기본적으로 대화하는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노는지, 직장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배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오직 술이다. 룸살롱, 폭탄주, 이런 게 익숙한 세대다. 하지만 술은 당장 힘겨움을 잠시 덜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건강만 더 해친다. 우종민 박사는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경쟁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너무 밟아 기름이 다 떨어진 탈진 상태”라며 “펌프에서 물을 솟게 하려면 세 바가지의 물, 즉 마중물을 부어야 하듯이, 50대 이후를 편안하게 보내려면 가족과 친구, 취미 이 세 가지 마중물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이민아 교수는 “한국의 대다수 50대 남자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장수나 마찬가지”라며 “패잔병이 아니라 때로는 부상하고, 때로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족을 위해 힘들게 살아온 가장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전장에서 돌아온 장수를 맞듯 따뜻하게 맞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커버스토리]인생 2막 ‘50대의 꿈’을 펼쳐라
기사입력 2009-04-30 14:22
새 도전으로 행복을 발견한 중년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을 바꾸는 것”
대기업 상무이사를 그만두고 자전거여행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차백성씨(왼쪽)와 광고회사 임원에서 요리사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오시환씨.
“인생 2막이요? 이제는 인생 3막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는걸요.” 49세이던 2000년 겨울 대우건설 상무 자리를 박차고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을 좇아 자전거여행가로 변신한 차백성(58)씨의 얼굴엔 활기가 넘친다. 그토록 고대한 세계여행의 꿈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사직한 직후 그가 첫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미국 서부해안 종주.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7000㎞를 질주했다. 이어 일본, 뉴질랜드, 하와이, 미국 중서부와 캐나다 록키산맥, 유럽 8개국 등 최근까지 세계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누볐다.
평소 즐긴 자전거·요리로 새인생 성공 청춘을 바친 직장을 그만두는 데 갈등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표를 쓴 시기가 가장 적당한 때라고 판단했다. 50대 어느 지점에서는 직장에서 밀려나는 게 냉혹한 사회의 현실인 탓에, 밀려나기 전에 준비해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다리 힘이 더 빠지기 전에 본격적으로 자전거 세계여행을 시작해야한다는 마음도 컸다. 차씨는 “마흔아홉에 사표를 낼 때만 해도, 앞으로 20년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50대부터 인생 후반전은 내가 하고 싶었던 자전거 세계여행을 하면서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며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면서 지금은 75세 이후 또 다른 인생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유명 인사가 됐다. 자전거여행가로 명성을 얻으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자전거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고 방송 출연과 강의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차씨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이라며 “요즘 내가 그 기쁨을 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쉰이 넘은 남자들에게 사회는 봉사활동 외에 다른 일을 선뜻 주지 않는다”며 “쉰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꾸릴지 생각하고 준비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나이 50부터는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쉰의 남자는 열 살 아이의 심정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며 “문제는 그간의 사회적 삶에 발목을 잡힐수록 인생 2막은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가족, 직장, 직업 등 그의 첫 번째 인생에서 자유로워야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대다수 50대 남자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50대를 위한 곡 ‘그래’가 포함된 홍서범의 새 앨범 ‘리턴 투 룩’.
광고회사 이사로 근무하다가 마흔여덟 살에 사표를 쓰고 요리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오시환(55)씨는 “시간이 없어 인생 2막을 준비할 짬이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마음가짐이 안 돼 있을 뿐, 정말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직장에만 매어 사는 사람은 인생의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찾아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취미생활도 병행하라”고 주문했다. 만약 좋아하는 것이 없거나 골프라고 답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게 오씨의 생각이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들어간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오시환씨는 코래드, M.A.P.S, 거손 등을 거치며 20년간 광고인으로 살았다. 나이 40을 넘기면서 인생 2막을 고민했다. 맛있는 것을 먹은 날은 반드시 집에 와서 같은 음식을 만들 정도로 평소 취미가 요리였던 그는 언젠가 요리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마흔여덟이 된 해에 사표를 썼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무작정 가게 먼저 차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기초 단계인데 많은 사람이 그걸 모른 채 음식점을 냈다가 퇴직금을 다 날린다”며 “나는 요리를 밑바닥부터 배우기 위해 돈 100만 원 들고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갔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의 일식당과 뉴욕의 한식당에서 꼬박 3년간 주방보조로 일했다. 2003년 겨울 귀국해 호프집에서 주방장으로 6개월간 근무한 후 바다요리전문점 ‘해장금’을 열었다. 지금도 직접 새벽장을 봐 음식을 만들어내는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금 그의 옆에는 그의 전철을 밟아 10년 동안 일한 기자직을 그만두고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바닥부터 요리사 수업을 하고 온 허강우(43)씨도 있다. 오씨는 “취미생활을 하더라도 준프로 수준이 될 만큼 열심히 하라”며 “그렇게 하면 설령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는 게 전혀 두렵지 않다”고 단언했다.
인제대 스트레스연구소 소장인 우종민 박사도 취미생활을 가족, 친구와 함께 인생을 살면서 꼭 갖춰야 할 요소로 들었다. 우 박사는 “이 세 가지를 다 겸비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인생을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사생활도 더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하기 때문에 조직에도 더 오래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짜증과 스트레스에 짓눌려 허구한날 찌푸리는 사람보다 밝고 환한 얼굴로 일과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인간관계나 업무성과 면에서 아무래도 더 이롭기 때문이다.
인생에 꼭 필요한 ‘가족·친구·취미’ 직업적 특성상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중앙일간지 기자로 26년간 잔뼈가 굵은 윤명훈(55·가명)씨의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기쁨도 취미생활이다. 그의 취미는 나무를 다듬어 물건을 만드는 목공. 주중에는 짬을 내기 힘들어 주로 쉬는 토요일을 이용한다. 아파트에 살고 있어 따로 작업할 공간이 많지 않은 그는 베란다를 자신의 작업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윤씨는 “나무에 대패질을 하고 못을 박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내가 만들고자 하는 물건을 손수 완성시킬 때 쾌감은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다”며 “우리 집에는 그동안 내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크고 작은 물건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퇴직하면 자신이 만든 목공 작품들로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50대에 새로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인생은 딱 한 번뿐”이라는 것과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철저히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58년 개띠인 가수 홍서범씨는 최근 이 땅의 50대를 위한 노래 ‘그래’를 발표했다. ‘어느날 우연히 뒤돌아 보니 어느덧 내 나이 반을 넘기고 아쉬운 날들이 너무도 많아. 오- 그래 많은 걸 잊고 살았어. 이제는 날 위해 일어서야 해. 남겨진 날들도 너무도 많아. 나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아. 오- 그래 나에겐 꿈이 있어(중략)’라는 가사다. 홍서범씨는 “어느 날 문득 정신없이 살아온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됐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 경제적 압박 등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을 우리 세대에 남은 인생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곡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도 후반전에 역전하는 일이 많듯 인생도 후반전 역전이 가능하다”며 “단, 축구에서 작전타임과 휴식시간을 잘 활용해야 후반전에서 잘 뛰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다스린다면 50대가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기곡으로 ‘만 쉰’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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