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산층 콤플렉스 보이네

Updated on 2008-02-20 by

고급예술·와인·조기유학 열풍 속 들여다 보니…
문화적으로 앞서가고 싶은 경쟁심리가 속물근성으로 나타나
'가격 높아야 품위있다' 국내 와인은 일본보다 평균 6배 비싸
상류층 지향성 강해 고급호텔 선호… 결혼 통한 신분상승 욕구도 지나쳐

한국 중산층 콤플렉스 보이네 1

학력위조, 권력비리 등으로 지난해 온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신정아 사건은 많은 면에서 '한국사회의 욕망'을 드러내는 축소판이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언론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신정아 이슈'는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는 대화 메뉴다. 얼마 전 한 미술동호회에 갔을 때도 예외 없이 '신정아-변양균 게이트'가 화제로 떠올랐다.

"변양균 씨가 수천 만원짜리 귀금속을 선물했다는데, 얼마나 좋아했으면…" "도대체 어떤 매력이 그렇게 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비호세력으로 만들었을까?"

모임에 나온 회원들은 저마다 여전히 의혹으로 가득찬 신정아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한참 논의가 오고 가는 중에 중년의 한 남자회원이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우리나라의 성공한 중년 남성들은 일종의 예술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요. 대부분 성공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성공하고 나니까 예술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이제껏 예술이 뭔지도 모르고 소처럼 일만하며 살아온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되지요. 실제 신정아 씨와 친분이 있는 중년 남성들은 그와 만나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예술적으로 격상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황홀했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이 말을 듣고 보니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한 미술시장을 비롯해 우리사회에 불고 있는 유난스러운 아트열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아트열기 뿐인가. 와인, 조기유학 등 거의 히스테리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이상 열풍'의 저변에서 경제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온 중산층의 신분상승을 향한 욕망과 콤플렉스를 발견할 수 있다.

사회열풍으로 살펴보는 중산층 심리

와인

몇 년 전부터 외국에서 공수해온 유명 서양화가의 작품전에는 항상 수많은 관람인파가 몰려 들었다. 일명 '블록버스터 전시회'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술시장이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는 것과 맞물려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워진 결과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명화가의 미술품을 개인이 소장하는 것은 손꼽히는 재력가나 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전문직 종사자나 여유자금이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미술품을 사는 일이 흔해졌다.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미술열풍은 기업가에 아트마케팅의 확산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패션과 자동차 등 고급이미지의 제품뿐 아니라 서민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는 소주에도 아트마케팅을 접목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아트마케팅' 또는 '문화마케팅'은 기업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각광 받고 있다. 문화마케팅의 일환으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나 연주가의 내한공연과 같은 클래식음악회에 협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문화마케팅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인 품위를 높이고 싶어하는 중산층의 수요를 반영한다.

이름 있는 내한공연의 입장료는 VIP석의 경우 수 십만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서 문화예술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욕구가 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자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아트열풍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 측에서는 그럴만한 이유를 든다.

이들은 중산층이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기보다는 신분상승과 재태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비판한다. 실제 미술가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미술이 돈이 된다는 소리에 본인의 취향과 관계 없이 돈 될만한 투자상품으로 여기고 미술품을 구입해 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지적한다. 또, 경쟁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남보다 문화적으로 앞서가고 싶어하는 경쟁심리도 강하다고 꼬집는다.

이 같은 문화 경쟁심리에는 '문화자본'을 통해 차별화를 꿈꾸는 중산층의 욕구가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기술적 능력보다는 지배계급 문화와의 친밀성이, 그리고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훌륭한 취미를 가진 사실을 과시할 수 있는 기호나 표지를 마음껏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문화자본'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적 자본만으로는 구분 짓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문화자본으로 옮겨갔다는 것이 중산층의 아트열풍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쪽에서 내세우는 이유다. 그래서 이들에게 문화생활은 과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시와 신분 상승용 문화열풍은 와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언론매체에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와인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기업대표나 사회 유명인사 가운데는 와인애호가를 자청하고 나서는 이들도 많다. 와인애호가라고 하면 예술과 마찬가지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 가운데는 간부들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와인교육을 시키는 곳도 많다. 와인을 모르고서는 비즈니스가 안 된다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기업가에 부는 와인열풍은 뜨겁다.

비즈니스용 와인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와인문화가 급속히 확산됐다. 국내 와인시장 규모는 4,000억원대 안팎으로, 지난 몇 년간 매년 약 20%씩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결과다. 와인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와인 값 거품'이다.

우리 와인가격은 이웃나라 일본보다 평균 6배 정도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관세나 주세 등 각종 세금이 일본과 다른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와인 값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비싸도 잘 팔리기 때문에 혹은 비싼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것.

와인 종주국 사람들이나 와인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한결 같이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무조건 비싸면 좋은 와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시용이 아니고서야 비싼 와인이 더 잘 팔릴 이유가 없다.

와인을 둘러싼 허영심은 지나치게 어려운 와인 에티켓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와인 스캔들>의 저자 박찬일 씨는 "서양에서는 소믈리에, 와인감정사처럼 와인 인구의 0.001%나 될까 말까 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와인 지식이 한국에서는 마치 누구나 알아야 할 필수 교양으로 둔갑해 우리의 와인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며 왜곡된 와인문화를 비판한다.

일반인들의 와인 동호회에 가보면 대부분의 회원이 전문가 수준의 와인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까다로운 다도(茶道)문화로 유명한 영국인들조차 우리나라 사람들의 와인 강박관념에는 못 미칠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 와인 애호가들을 보면 와인을 즐기기 보다 와인 때문에 혹사당하는 것 같다.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하고 왜 그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와인 에티켓에 집착하는 걸까.

박 씨의 지적대로 우리가 외국문화에 주눅이 들어 있지 않고서야 그리고 남보다 더 고상해 보이기 위한 '차별화' 수단이 아니고서야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을까. 와인열풍 속에 깃든 속물근성을 보면 중산층의 치열한 신분상승 열망이 보인다.

한국인들의 고급호텔 선호도 외국인의 눈에는 색다른 열풍현상으로 비춰졌다. <도시의 창, 고급호텔>에서 <아파트 공화국>으로도 잘 알려진 발레리 줄레조를 비롯한 프랑스의 지리학자들은 서울 도심의 특급호텔을 중산층의 사교장소로 지목했다.

저자는 먼저 외국과 달리 한국의 특급 호텔들이 총 매상의 61%를 내국인 고객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특이한 사실을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유럽 고급호텔에서는 식음료, 스포츠 클럽 등 각종 서비스가 현지 고객 유인책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강남의 인터콘티넨탈호텔 휘트니스 클럽 회원 1,600명 중에서 한국인이 아닌 경우는 단 20여명 뿐이라는 점을 들었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이용객은 주로 기업, 협회 등 전문가 집단과 도시 중산층으로, 이들이 유독 고급호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고급호텔 출입을 상류층 표식으로 여기는 성향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또, 연회비가 수 십만 원 호가하는 호텔회원카드를 소유하는 이유도 도시 중산층에게 고급호텔 회원카드는 사회적 명성의 기호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혼식이나 맞선장소 그리고 기업 신제품 발표회장으로 애용되는 특급호텔. 여기에도 우아하고 세련된 장소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싶어하는 한국중산층의 심리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자녀의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고, 조기유학에 가장 적극적인 것도 중산층이다. 가정파탄은 물론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한 '기러기 아빠'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많은 중산층 가정은 자녀의 해외 조기유학에 동참한다.

세계화가 신분상승의 결정적인 수단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마다 조기유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영어교육에 쏟아 붓는 사교육비도 천문학적이다.

경제력과 학벌, 직업, 외모 등을 참고로 회원의 등급을 매기고, 이를 토대로 ‘짝짓기’ 서비스를 해주는 결혼정보업체가 1,000억원대 규모로 성장하고, 온라인 중매사이트가 성황을 이루는 배경에는 결혼을 통해 '신데렐라' 또는 '온달'을 꿈꾸는 많은 선남선녀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1,000억 재산가의 데릴사위 공개모집에 전문직 남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이 같은 현실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결혼정보사업의 성업만큼 우리나라 중산층에 내재된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중산층은 노골적으로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이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혼인을 통해 ‘구별 짓기’ 욕구를 드러낸다.

포로 수용소에 갇힌 중산층

강준만 교수, 지나친 경쟁심리·조급증 꼬집어

파티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중산층의 열혈문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분상승을 향한 중산층의 조급함과 지나친 경쟁의식에서 빚어진 속박의 굴레가 보인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중산층을 '포로 수용소'에 비유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불안은 중산층의 본원적 속성이지만 한국 중산층의 불안은 유별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회문화적 동질성과 거주 밀집성으로 인해 이웃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단 한시도 살 수 없는 묘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입니다. 이웃과의 비교는 처절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필사적이지요. 삶의 만족감이 이웃과의 비교로 결정된다는 이른바 ‘이웃 효과’는 한국인 삶의 전 국면을 지배하고 있으며, 특히 상층지향성이 높은 동시에 하층으로의 전락을 두려워하는 중산층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 교수는 사회적 전염효과와 쏠림 현상이 자주 극단을 치닫는 이유를 이 같은 중산층의 경쟁과 불안심리에서 찾았다.

그는 또, 중산층 행태의 본질은 ‘키치’라고 했다. 키치란 19세기 말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로 생겨난 신흥 부르주아, 즉 중산층이 귀족의 예술적 취향을 흉내 낸 데서 비롯된 개념이다.

그는 급속도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이룩한 한국사회의 많은 부문이 서구의 원형을 흉내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키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상층지향적임과 동시에 서구의 문화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해외 명품, 골프 열풍, 해외여행 열풍을 넘어 와인 열풍과 고급예술(서양 현대미술, 서양 고전음악) 열풍 등이 두드러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중산층에서 유행하는 것은 스스로 즐기기보다 대부분 남과의 ‘구별 짓기’가 우선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강 교수는 이 같은 구별 짓기로 인해 중산층의 삶은 ‘포로 수용소’에 갇힌 것처럼 피폐해지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글의 출처 : 한국아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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