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초록빛, 연천 임진강댑싸리공원 방문기
2026년 9월 11일, 구름 한 점 거의 없는 맑은 날씨에 이끌려 연천 임진강 댑싸리공원을 찾았다. 나들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접경지역의 버려진 땅에서 피어난 정원
임진강 댑싸리공원은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임진강을 끼고 있는 돌무지무덤 앞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군사분계선과 그리 멀지 않은 우리나라 최북단 접경지역으로, 원래는 잡초만 무성하던 버려진 공터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2021년 무렵부터 이 땅에 관상용 댑싸리를 심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고, 이후 약 3만㎡ 규모의 부지에 댑싸리 2만여 그루가 뿌리를 내렸다. 댑싸리(코키아) 외에도 황화 코스모스, 국화, 백일홍, 천일홍, 메리골드, 칸나, 일일초 등 다채로운 꽃들이 함께 식재돼 있어, 댑싸리가 물들기 전에도 눈이 심심하지 않은 곳이다. 입장은 무료이며, 노상 주차장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주차를 안내해준다고 하니 관리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이 느껴진다.

아직은 초록, 붉은 물결은 9월 말 이후에
댑싸리는 높이 150cm까지 자라는 식물로, 촘촘한 잔잎이 줄기를 따라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여름철에는 초록빛을 띠다가, 일교차가 커지는 늦여름부터 서서히 붉은색·분홍색·주황색으로 물들며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늘 눈으로 확인한 댑싸리는 아직 매우 파란 상태였다.

붉게 물든 댑싸리를 보려면 9월 말 이후는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곳 댑싸리는 보통 8월 말부터 조금씩 색이 오르기 시작해 9월 말에서 10월 중순 사이에 울긋불긋한 절정을 맞는다고 알려져 있으니, 오늘의 방문은 절정 전 ‘예열’ 단계를 미리 살펴본 셈이다.
절정의 댑싸리 공원 풍경(이미지 출처는 한국관광공사)

주인공은 오히려 백일홍
공원 이름은 ‘댑싸리공원’이지만, 정작 이 시점에는 댑싸리보다 백일홍이 훨씬 볼만했다. 알록달록 만개한 백일홍밭이 눈길을 사로잡아, 백일홍꽃밭 자체를 담기도 하고 아직 초록빛인 댑싸리와 백일홍을 한 프레임에 함께 담아보기도 했다. 공원 이름만 믿고 댑싸리만 기대하고 왔다면 아쉬웠을 텐데, 시기별로 주인공이 바뀌는 꽃밭이라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백일홍이 만개한 공원 길 풍경

백일홍꽃밭과 댑싸리 풍경


가장자리의 나 홀로 은행나무
공원 가장자리에는 나 홀로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주변에 다른 나무 없이 홀로 우뚝 선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 나무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담아보았다. 아직은 초록빛이지만, 가을이 깊어져 은행잎까지 노랗게 물들 때쯤 다시 찾는다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올 듯하다.


150년 뽕나무 보호수와 그 옆의 돌무지무덤
공원 안쪽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뽕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수령이 150년, 높이는 13m에 달한다고 하니,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뽕나무 보호수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굵은 둥치가 꽃밭의 화사함과는 또 다른 무게감을 전해주었다.


돌무지무덤(적석총)
이 뽕나무 보호수 바로 옆에는 돌무지무덤(적석총)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연천 삼곶리 돌무지무덤’으로, 경기도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된 유적이다.

임진강변의 모래언덕 위에 강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발굴 전에는 ‘방파제’ 혹은 ‘애기무덤’으로 불렸다고 한다. 출토 유물로 미루어 서기 2~3세기, 초기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강 유역에서 처음으로 발굴 조사된 돌무지무덤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의미가 깊다고 한다. 화려한 꽃밭 바로 옆에 이런 오래된 무덤 유적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하늘계단, 하얀 포토존
공원을 둘러보다 만난 ‘하늘계단’이라 불리는 하얀색 계단 포토존도 인상적이었다. 새하얀 계단이 하늘을 향해 이어지는 듯한 구조로, 꽃밭의 초록·분홍빛과 대비되는 순백의 색감이 사진 찍기에 특히 좋았다.

댑싸리와 하늘계단

버베나와 하늘계단 풍경

하늘계단과 백일홍


메밀꽃밭


안내도에서 발견한 홍도화조원과 물억새군락
공원 입구의 안내도를 살펴보니, 댑싸리밭과 꽃밭 외에도 ‘홍도화조원’과 ‘물억새군락’이라는 구역이 함께 표시돼 있었다.

홍도화조원은 붉은 복사꽃(홍도화) 나무가 심어진 구역이다. 인근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홍도화 나무 약 300그루를 새로 식재했다고 하니, 봄이면 이 일대가 붉은 꽃으로 물들 것으로 보인다.
가을 댑싸리로 유명한 공원이지만, 이 구역 덕분에 봄에도 찾아올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다만 오늘은 9월이라 꽃이 핀 모습은 볼 수 없었고, 안내도 상의 위치만 확인하고 지나쳤다.
물억새군락은 임진강변을 따라 자생하는 억새 군락지다. 억새는 보통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중순 이후 은빛 이삭을 피워내며 장관을 이루는데, 강바람에 억새 이삭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풍경은 붉게 물든 댑싸리와는 또 다른 가을 정취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아직 이삭이 여물기 전이라 초록빛에 가까웠지만, 억새의 절정 시기에 맞춰 다시 찾는다면 댑싸리·억새·홍도화까지 계절별로 완전히 다른 얼굴의 공원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마치며
댑싸리공원은 이름과 달리, 방문 시점에 따라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곳인 듯하다. 오늘은 붉은 댑싸리 대신 만개한 백일홍이, 그리고 나 홀로 은행나무와 150년 뽕나무 보호수, 그 옆의 오래된 돌무지무덤, 하늘계단 포토존까지 — 예상보다 훨씬 풍성한 볼거리를 만난 하루였다.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붉게 물든 댑싸리를 보러 다시 한번 찾아올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