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과 백일홍 — 가실성당 배롱나무 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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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목적 출사를 마치고,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칠곡 왜관으로 향하던 아침, 마음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백 년 세월을 견딘 붉은 벽돌 성당과, 백일 동안 붉게 피어 있다 하여 이름 붙은 배롱나무 — 두 개의 붉음이 만나는 자리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가실성당 배롱나무 출사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성당 앞에 서다

가실성당은 1923년에 지어진,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신고딕 양식의 로마네스크풍 건물은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했다. 한국전쟁 때 남과 북 양측의 야전병원으로 쓰이며 오히려 파괴를 피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니, 이 붉은 벽돌 하나하나가 그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을 통과해 살아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 매미 소리와 함께 후끈한 여름 공기가 밀려왔다.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뭉게구름이 낮게 깔린 새파란 하늘 위로 뾰족한 종탑과 그 끝의 작은 십자가가 선명하게 솟아 있었다. 정면으로 돌아가 마주한 성당은 계단 몇 개를 오르면 닿는 소박한 정문과 반원형 창, 대칭을 이룬 붉은 벽돌 파사드가 인상적이었다. 백 년이 지난 건물치고는 놀랍도록 꼿꼿한 자세였다.

백일 동안 붉은 꽃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피어 있다는 뜻이다. 짧지 않은 그 백 일 동안, 이 나무는 자신을 다 태우듯 붉게 핀다. 성당 좌우로 늘어선 배롱나무들은 마침 절정이었다. 진분홍, 자홍빛 꽃송이가 초록 잎 사이사이로 촘촘히 맺혀 종탑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어느 각도에서 보면 성당이 꽃 속에 파묻힌 것 같기도 했고, 또 다른 각도에서는 붉은 벽돌탑이 꽃숲을 뚫고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낮은 자세로 배롱나무 가지 사이를 올려다보며 종탑을 프레임 안에 담았다. 카메라를 아래에서 위로 향하니 꽃가지가 전경을 가득 채우고, 그 틈새로 파란 하늘과 뾰족한 첨탑이 드러났다. 성당의 오래된 벽돌빛과 배롱나무의 진분홍빛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오래 지속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백 년을 버틴 건물과, 백 일을 버티는 꽃. 둘 다 짧지 않은 시간을 자기 방식대로 견디고 있었다.

꽃밭 너머로 보이는 성당

성당 한쪽에는 백일홍 말고도 색색의 백일초(지니아)가 심긴 작은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노랑, 주황, 분홍, 자주색 꽃들이 빼곡히 앞을 채우고, 그 너머 언덕 위로 성당이 조그맣게 올라앉아 있는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낮은 자세로 꽃밭에 시선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꽃밭과 성당 사이, 다듬어진 초록 나무들 틈으로 하얀 성모상의 실루엣이 살짝 비쳤다. 꽃과 사람의 기도가 같은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대나무 숲, 그리고 조용한 산책

성당 뒤편에는 대나무가 늘어선 ‘숲속의 십자가 길’이 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대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남는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다 성모상 동굴 기도처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냥 서 있고 싶은 순간이었다.

셔터를 내려놓으며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으러 왔지만, 결국 남는 건 사진 몇 장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던 순간의 공기였다는 것. 백 년을 버텨온 성당과 백 일을 버텨내는 꽃 앞에서, 나는 그저 아주 짧은 한순간을 빌려 서 있다 왔을 뿐이다.

다음에는 이른 아침 빛이 벽돌에 스며들 때 다시 와보고 싶다. 그때는 좀 더 오래, 셔터 없이도 머물러 보고 싶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보니, 같은 성당인데도 매번 다른 얼굴이었다. 꽃 속에 파묻힌 첨탑, 정면으로 마주한 단단한 파사드, 꽃밭 너머 아득히 서 있는 실루엣까지 — 그날 하루 동안 가실성당은 여러 번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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