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수국이 사는 섬 — 고흥 쑥섬 수국 여행기
강주 해바라가 축제를 보고 남해 고속도로르 달려 고흥 나로도 여객터미날로 향했다. 솔직히 참으로 먼 길이었다. 여객터미널은 바닷가에 있어서인지 바람이 강했다..
쑥섬 가는 길 ; 배로 3분, 다른 세상으로
나로도 여객선터미널에 서서 바다 건너를 바라보면, 섬 하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떠 있다. 배를 타고도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 승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선착장에 닿아버려서, 나도 모르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짧은 뱃길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발을 내딛는 순간 완전히 다른 공기가 나를 맞았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많다는 섬. 그리고 여름이면 온 섬이 수국빛으로 물든다는 섬. 그렇게 오래 벼르던 쑥섬에 마침내 발을 디뎠다.
쑥섬, 그 이름에 담긴 시간
섬의 정식 행정명칭은 애도(艾島)다. 쑥 애(艾) 자를 쓰는 이 이름은, 섬에서 자라는 쑥이 유난히 향긋하고 질이 좋았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쑥 덕분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 섬을 그냥 ‘쑥섬’이라 불러왔고, 지금도 정식 명칭보다 이 정겨운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섬 앞바다가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 보인다 하여 한때 봉호(蓬湖)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는 사실이다. 쑥섬 앞바다가 평온한 호수 같아 봉호라 불리기도 했으나, 쑥을 사랑한 주민들의 건의로 2010년에 공식 명칭이 애도로 바뀌었다.
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인조 때 박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뒤, 고씨와 명씨가 뒤이어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는 제법 번성한 마을이었다. 1970년대에는 70여 가구, 300여 명에 이르는 주민이 이 작은 섬에 모여 살았다고 하니, 지금의 고즈넉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활기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인구는 점점 줄어, 지금은 십여 가구, 30명 안팎의 주민만이 섬을 지키고 있다.
쑥섬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별명이 있다. 바로 ‘고양이섬’이다. 그 유래를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섬 안의 울창한 난대림은 오래전부터 산신제를 지내던 신성한 당숲이었는데, 제를 올리는 도중 개가 짖거나 닭이 울어서는 안 되었기에 이 섬에서는 개와 닭을 키우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반면 조용하고 쥐를 잘 잡는 고양이는 별다른 제약 없이 이 섬에서 자유롭게 번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개와 닭이 없는 섬에서 고양이만이 마을 주민들과 나란히 살아온 것이다. 지금도 섬 곳곳의 돌담 위에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앉아 있는데, 그 풍경 자체가 이 섬만의 독특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화려한 정원으로서의 쑥섬은 사실 그리 오래된 모습이 아니다. 한 부부가 14년에 걸쳐 꽃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꾼 결과로 지금의 해상정원이 완성되었으며, 섬 안은 꽃정원, 달정원, 태양정원, 수국정원 등 테마별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나무를 좋아해 하나둘 모으고 돌보던 남편의 손길에, 처음엔 못마땅해하던 아내마저 어느새 나무껍질을 살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섬의 아름다움이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님을 새삼 실감했다. 그렇게 가꿔진 300여 종의 꽃은 계절마다 자리를 바꿔가며 피고 지는데, 겨울엔 동백꽃이 터널을 이루고, 봄꽃이 그 바통을 이어받은 뒤, 곧이어 수국이 섬 전체를 화려하게 뒤덮는다.
이러한 노력은 여러 방식으로 결실을 맺었다. 2016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가고 싶은 섬 33’에 이름을 올렸고, 전남 1호 민간정원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2022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등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를 잡아갔다. 최근에는 유엔 관광청이 주관하는 ‘최우수 관광마을’ 대한민국 대표 후보로 선정되며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작은 섬 하나가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가꾸고, 마침내 세계적으로도 눈길을 받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쑥섬 탐방코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다
쑥섬은 크지 않은 섬이라 탐방로도 한 바퀴 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기본 탐방코스의 총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이며, 선착장에서 출발해 갈매기 카페, 난대원시림, 환희의 언덕, 몬당길을 지나 바다 위의 비밀 정원, 여자 산포 바위, 남자 산포 바위, 신선대, 성화등대, 동백길, 사람의 돌담길, 마을 정자를 거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거리는 3km 정도로, 걸음이 느린 사람이라도 여유 있게 돌아본다면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한 코스다.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섬에서 유일한 식당 겸 카페를 만난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본격적으로 숲길로 들어선다. 헐떡길이라 불리는 오르막을 지나면 400년 세월을 품은 난대원시림이 펼쳐지는데,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이 빽빽하게 뒤엉킨 이 숲은 육지의 여느 식물원과는 전혀 다른 밀도로 다가온다. 오랫동안 산신제를 지내며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숲이었기에, 지금도 그 안에 들어서면 뭔가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숲길을 지나 오르막이 끝나갈 즈음에는 환희의 언덕과 몬당길, 즉 야생화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마침내 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정원 지대에 닿는다. 별정원과 달정원, 태양정원, 그리고 수국정원이 차례로 나타나는데, 특히 초여름이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국정원이 압권이다. 연한 자주색에서 하늘색, 그리고 짙은 홍색까지, 같은 수국이라도 저마다 다른 빛깔로 피어나 섬 전체를 수채화처럼 물들인다.
정원 지대를 지나면 여자 산포 바위와 남자 산포 바위, 신선대 같은 기암괴석 지대가 이어진다. 수백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이 바위들은, 정성 들여 가꾼 정원과는 또 다른 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풍경과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한 섬 안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쑥섬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성화등대를 지나 동백길로 접어들면, 겨울이면 붉은 동백 터널을 이룬다는 그 길을 여름의 초록으로 걷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돌담길. 수백 년 전 바닷바람을 막고 생활공간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렸다는 이 돌담은, 화려한 꽃길들 사이에서 오히려 담담하게 섬의 오랜 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돌담길을 지나 마을 정자에서 잠시 앉아 쉬다 보면, 어느새 다시 선착장이 눈앞이다.

쑥섬을 방문하려면 나로도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도선료 왕복 2,000원과 탐방료 6,000원을 내고 표를 구매해야 하며, 이때 신분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말이나 수국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는 배편이 금세 매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급적 사전 예매를 해두는 편이 마음 편하다.
탐방코스 속 포토존
쑥섬은 걷는 걸음걸음마다 카메라를 꺼내게 만드는 곳이다. 코스를 따라가며 특히 눈여겨볼 만한 포토존을 꼽아본다.
선착장의 고양이 포토존 — 배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는 곳으로,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안내판과 커다란 갈매기 조형물이 서 있는 카페 건물이 첫 장면을 장식한다.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가볍게 인증샷을 남기기 좋다.

몬당길(수평선길) —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에서는 걷는 내내 오른편으로 탁 트인 바다와 수평선이 펼쳐진다. 길과 바다가 나란히 이어지는 구도로 담으면 섬의 탁 트인 개방감이 그대로 살아난다.
별정원(비밀 꽃정원) — 우주와 별, 달, 태양을 테마로 꾸며진 언덕 위 정원이다. 알록달록한 꽃장식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쪽빛 바다가 한 프레임에 들어와, 쑥섬을 대표하는 사진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나온다.


여자산포바위·남자산포바위·신선대 — 파도와 바람이 오랜 세월 빚어낸 기암괴석 지대다. 정성 들여 가꾼 꽃길과는 전혀 다른, 자연 그대로의 거친 질감이 매력적이라 흑백 사진으로 담아도 분위기가 산다.
성화등대 — 쑥섬에서 손꼽히는 일몰 명소다. 시간을 잘 맞춰 방문한다면, 등대와 붉게 물든 하늘, 그 아래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장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 돌담길 —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 골목이다. 돌담 사이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르면, 쑥섬만의 정겨운 풍경을 담을 수 있다.


갈매기카페 2층 창가 — 카페 창문 너머로 마을 지붕과 바다가 함께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탐방을 마치고 잠시 앉아 창밖 풍경을 프레임 삼아 담아보는 것도 좋다.

쑥섬 수국정원, 그리고 사진 구도 제안
쑥섬의 수국은 별정원 인근 능선과 수국길을 따라 집중적으로 피어난다. 육지의 여느 수국 명소와 다른 점은, 그 배경이 다름 아닌 남해의 쪽빛 바다라는 것이다. 연한 자주색에서 하늘색, 짙은 홍색까지 한 무리 안에서도 다채로운 색이 섞여 피어나고, 그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은 육지의 정원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구도를 만들어낸다.

이 특징을 살릴 만한 몇 가지 구도를 제안해본다.
- 수국 너머 바다 담기: 수국 꽃송이를 화면 하단이나 한쪽에 배치하고, 그 너머로 바다와 수평선을 함께 담는 구도다. 꽃의 색감과 바다의 짙은 파랑이 대비를 이루며 쑥섬만의 정체성이 살아난다.




- 로우앵글로 하늘 담기: 몸을 낮춰 수국을 올려다보는 각도로 찍으면, 꽃송이 뒤로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색감이 한층 또렷해진다. 맑은 날 오전에 특히 효과적이다.

- 색상별로 그룹 짓기: 한 프레임 안에 보라, 하늘색, 분홍이 뒤섞인 수국 무리를 통째로 담기보다, 비슷한 색끼리 뭉쳐 핀 지점을 찾아 그 색 하나에 집중해서 담아보면 사진이 한결 정돈되어 보인다.

- 길과 함께 담기: 수국길 자체의 굽이진 선을 활용해, 길이 화면 안쪽으로 이어지도록 구도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사진 안쪽 깊숙이 이동하는 효과를 준다.


- 역광 활용하기: 오후 늦은 시간, 해를 등지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두고 찍으면 꽃잎 가장자리가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장면을 담을 수 있다. 노출을 살짝 낮춰 찍으면 빛망울이 과하게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고양이와 함께 담기: 운이 좋다면 수국 무리 사이를 지나가는 고양이를 만날 수도 있다. 꽃과 고양이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은 쑥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니 놓치지 말 것.


갈매기카페, 쑥섬에서 만나는 쉼표
쑥섬에는 카페가 여럿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탐방객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선착장 초입의 ‘갈매기카페’ 한 곳이다. 갈매기 모양을 본뜬 독특한 외관부터 눈길을 끄는 이곳은, 탐방을 시작하기 전과 끝낸 뒤 모두에게 요긴한 쉼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곳의 수제버거가 입소문이 자자한데, 특히 ‘귀촌한버거’라는 이름의 메뉴는 섬까지 와서 먹는 버거치고는 꽤 만족스러운 맛과 양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 맛도 준수한 편이라, 탐방을 마친 뒤 시원한 음료 한 잔과 함께 2층 창가에 앉아 마을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져볼 만하다. 쑥향이 은은하게 나는 쑥라떼도 이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이니, 시간이 된다면 함께 주문해보길 추천한다.

짧은 뱃길이 남긴 긴 여운
한 시간 반 남짓한 탐방을 마치고 다시 선착장에 앉아 배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이 작은 섬이 걸어온 시간을 생각했다. 산신제를 지내던 신성한 숲, 개와 닭 대신 고양이와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한 부부가 십수 년에 걸쳐 씨앗을 심고 가꾼 정원. 겹겹이 쌓인 그 시간들이 지금 이 여름, 수국 한 송이 한 송이로 피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배로 3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지만, 이 섬에서 보낸 한 시간 반은 육지의 몇 배는 되는 밀도로 남았다. 다음에 다시 이 섬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계절을 바꿔 겨울 동백이 터널을 이룬 풍경도 마주하고 싶다.
쑥의 섬이자 고양이의 섬,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오랜 정성이 꽃으로 피어난 섬. 쑥섬은 그렇게 짧은 뱃길 너머에 조용히 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