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나사는 사찰 자체로보다는 여름 계곡 물놀이 명소로 유명한 사나나사셰곡 물놀이로 유명한 곳이다. 막장마도 시작되엇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자되었길래 양평 사나사 계곡을 탐방겸 다녀왓다
우선 주인공인 양평 사나사를 먼저 살펴 보도록 하자
양평 사나사는 양평 용문산 서쪽에 위치
양평 사나사는(舍那寺)는 용문산 주봉인 백운봉(941.1m)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백운봉은 양평의 가장 높은 산인 용문산(1157m)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로 장군봉(1,055m), 함완봉(947m), 백운봉(941.1m)가 이어지는 봉우리의 하나이다.
배운봉 기슭아래 사나사가 자리하고 있고, 용문산 동쪽으로 이어지는 용문봉(971m) 기슭아래 그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가 있다.
일요일 아침 양평 사나사로 가느길이 왠지 많인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마전에 다녀온 양평 용문사와 지척에 있는 곳(용문산을 중심으로

양평 사나사 연혁
신라 경명왕 7년 (923) 대경대사가 세우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년 (923)에 고승인 대경 대사가 제자 용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 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하였다.
고려 공민왕 16년(1367), 와사 보우가 중건하다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고 왕사 보우가 140여 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 12월 24일 보우 스님이 용문산 소설암에서 입적하였는데, 이듬 해인 1383년에 문인 달심이 태고의 부도와 비를 사나사에 세웠다.
조선 선조 41년(1608)에 단월 한방손이 재건하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 한방손이 재건하였다. 영조 51년(1773)에 양평군 내 유지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를 조직하고 향답을 사찰에 시주하여 불광담을 마련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내에 비를 세웠다. 순종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 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그 2년 뒤인 1909년에 계헌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으며, 1937년에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하고 조사전 5칸을 지었다.
1956년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사찰을 재건하다
1950년에 일어난 6.25사변으로 인해 사찰이 전소된 것을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 방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다.
1993년에 주지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고 현 주지 화암 스님이 주석하면서 포교와 교육, 기도 도량으로 일신하였다. 경내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원증국사탑과 원증국사석종비가 있다.
양평 사나사 공영주차장
- 주소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19-18
- 주차면수 : 약 100여대
- 전기차 충전기 : 급속 2면
- 주차비 : 무료
- 사나사 입장료 : 무료

여름 사나사로 가는 길은 자동차 길은 공영주차장부터 막혀 있다. 물론 공용주차자부터 막는 것은 아니다.
사나사 공영주차장을 지나면 사나사계곡 나들이객을 유혹하는 식당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이들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자동차로 진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주차할 곳이 없다!! 그러니 공영주차장에 주차하자!!
시나사 공용주차장에는 사사나사관리사무소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 공용주차장을 관리하고 있는듯 하다. 워낙 이곳 사나사나 사나사계곡 방문객이 많기때문에 여기에 사나나 관리 사무소가 있고 상주 인력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정도이다.
이재명도지사의 흔적
이재명 경기도지사시절 계곡옆 식달들이 불법으로 점유했던 게곡을 정비해 계곡 불법 점유 시설들을 철거하고 계곡은 방문개들만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적이 있는데 이런 행정처리를 소개하는 표지들이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었다.


양평 사나사계곡 입구

첫번째 물놀이 포인트, 사나사다리 아래 계곡
시나사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시나사 가는 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있있는 다리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이 시나사 다리 아래편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위치는 패밀리가든 플랭카드가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면 있다.
예전에는 다리옆에 출덜다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말끔히 정비되어 깨끗하다.
벌써 시나사다리 아래 그늘에 자리를 잡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나사계곡 가는 길의 사나사다리 풍경

사나사다리윗쪽 계곡 풍경

두번째 물놀이 포인트, 누룽지펜션 가는길
조금 더 걸어오르면 누릉지펜션 이정표가 나오면 왼쪽으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길을 따라가면 작은 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 주변으로 물놀이 할 수 있는 포인트가 나온다.
다리위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세번째 물놀이 포인트, 차량진입 차단기가 있는 다리
조금 더 올라가면 다리가 하나 나오느데 이 다리앞에는 차량진입 차단기가 설치되엉 ㅣㅅ고 2~3면조도 지키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에게 확인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 6월에는 주말에만 자동차 통행을 막는다고 함
- 7월 ~ 9월까지는 평일과 주말 모두 자동차통행을 막는다고 함
- 9월이후는 모두 자동차 통행을 막지는 않는다고 함
이 차단기 있는 다리 주변으로 물놀이하기 나쁘지 않다.
아래 풍경을 보라.
차량진입 차단기

차단기 다리 아래 계곡 풍경

차단기 다리위에서 바라본 계곡 풍경

네번째 물놀이포인트
네번째 물놀이 포인트는 특정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차단기 있는 다리에서 사나사 입구 일주문 전 다리까지 계곡이 이어지는데 계곡에 진입할 수 있다면 모두 물놀이가 가능해 보인다. 적절하게 쉴 수 있는 공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아래 차단기 다리부터 사나사까지 담아본 계곡 풍경이다.


다섯번째 물놀이 포인트
계속 오르다보면 왼편으로 양평의병전투자 표지판이나오고 이어 오른쪽에 화장실이 나오면 작은 다리하나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면 양평 사나사 일주분이 보인다.
이 다리 아래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 물놀히하기 괜찮다 이미 몇분이 물놀이하고 있다.


양평 사나사 일주문


여섯번째 물놀이 포인트
양평 사나사 근방을 보면 오른편 계곡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물론 여기는 사나사 경내이니 들어오면 고발한다는 플랭카드가 있기는 하다.
이길로 조금 들어가면 멋진 계곡ㅂ물을 만날수 있어 물놀이하기 좋아 보인다.
사진을 보자

양평 사나나
사나사 일주문을 지나 한참 오르면 사나나사 계곡 끝에 탁 트인 분지가 나타나고 이 분지사이에 조성된 사나사가나온다.
주차장을 지난 경사길을 오르면 이름을 알수없는 한옥건물이 나온다. 출입을 금하나도하지만 살짝 드러가서 사진을 찍고 나왓다.
사나사 종무소

사나사 불전함

양평 사나사 용천리 삼층석탑
용천리 삼층석탑은 높이 180㎝로, 대웅전 정면 마당 중앙에 있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작으나 옥개석과 기단부의 제작기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중기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21호로 지정되었다. 당산계불량비는 높이 210㎝, 높이 150㎝, 너비 65㎝, 두께 20㎝ 크기로, 마멸이 심하나 대체적인 내용은 살펴볼 수 있다. 당산계불량비는 지역민들이 계를 조직하여 절의 경제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석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십 축조물로 실제 사리가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곳으로 여겨진다.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기단위에 올린 덮개돌(갑석) 아래부분에 턱(갑석부연)을 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 강원지역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만들어진 석탑의 경우 덮개돌에 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1층 몸돌의 높이는 2층과 3층에 비해 높게 솟아 있다.
석탑 기단 아래의 받침은 윗면이 경사지고 형태가 덮개돌(갑석)과 비슷하여 기단 받침과 바닥돌 사이에 별도의 기단 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이세워진 위치가 원래의 위치였는지는 알수없다.

사나사 범종각


사나사 대웅보전

사나사 원중국사 석종비
석종비에 의하면, 강만령이 종을 제작하였으며 크게 대석·탑신·탑정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석은 탑신을 받치는 둘레에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탑신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탑정은 불꽃무늬가 있는 보주가 얹혀 있다. 비석의 글은 정도전(鄭道傳)이 지었으며 글씨는 재림사 주지 의문(誼聞)이 썼다. 석종비의 크기는 높이 167㎝, 너비 69.5㎝, 두께 10㎝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73호로 지정되었다.

양평 사나사 원중국사탑
양평 사나사 원증국사탑(楊平 舍那寺 圓證國師塔)은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이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사나사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인 태고화상 보우(1301∼1382)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국사는 13세에 회암사 광지선사에 의해 중이 되었고, 충목왕 2년(1346) 원나라에 가서 청공의 법을 이어 받았다. 충목왕 4년(1348) 귀국하여 소설암이라는 암자에서 수도를 하고 왕사·국사가 되었으며, 이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부도는 기단(基壇) 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돌종형태를 띠고 있다. 높직하고 네모진 기단 윗면에는 연꽃을 새겼고, 둥글고 길쭉한 탑신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다.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솟아 있다.
부도를 세운 시기는 가까이에 서 있는 탑비에 고려 우왕 9년(1383) 문인 달심이 이 부도와 탑비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양평 사나사 조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