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감독 통역사, 샤론 최가 밝힌 통역 잘하는 방법

Updated on 2020-03-26 by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재기 발랄한 멋진 통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샤론 최가 영화 등 정보 사이트인 Variety에 “기생충”의 각종 영화 수상식에서 통역한 경험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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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이 기고문 내용 일부를 번역해 공유드립니다.

요즘 샤론 최는 봉준호감독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분이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하면 영어를 그렇게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그녀가 다녔던 외국어대나 강남 학원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도 하죠.

학원계의 이상한 아카데미 캠페인인지도 모르겠지만 샤론 최가 다녔던 영어 학원을 다니면 그녀만큼 영어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일부 부모들이 있나 봅니다.
그리고 그걸 부추기는 학원들도 있는 것 같구요.

그러나 샤론 최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녀가 봉준호감독을 그만큼 잘 통역할 수 있었던데는 그녀의 영화에 대한 사랑, 봉준호 영화로 대학 졸업 논문을 쓸 정도로 봉준호 감독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 영화에 대한 사랑이 훌륭한 통역의 기초가 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독하면서 지극히 감성적이기도하고 자신의 고객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려고 하는지가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지독한 전문가입니다. 그녀는 통역한다는 것의 한계와 의미를 오랜 고민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통역이란 단순히 말과 말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상을 옮겨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 이해서는 상대를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정말 영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봉준호감독을 비롯한 영화 선배들을 사랑합니다. 그녀는 영화에 대해서 엄청난 공부를 했고 봉준호감독 영화로 학부 논문을 쓸 정도로 봉준호감독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통역에 대한 통찰과 전문기적 지식 그리고 영화에 대한 사랑과 영화 감독에 대한 이해가 그토록 멋진 통역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가 통역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영어 교육기관이나 학원에서 잘 훈련받고 교육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하고, 정말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그리고 상대를 존경하고 정말 철저하게 연구했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최고의 통역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샤론 최가 공부했다는 강남 어느 학원이 각광을 받는 다는 것은 심금을 울리는 통역 본질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샤론 최의 기고문

오랜만에 처음으로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가라오케와 같이 떠들석하지는 않았지만, 6개의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한 역사적인 밤을 아쉽게 마치면서 눈물겨운 작별을 한 덕분에 아직 제눈은 퉁퉁 부어 있습니다.

그날 밤은 이미 잠 자기는 글렀기 때문에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무심코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이번 오스카상 수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어떤 우주적 승리를 거두는 어쩌면 해가 서쪽으로 뜨는 이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대신 전날 밤 내린 비가 남긴 잿빛 붓놀림 속으로 달이 희미하게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죠.

저희가 오스카 수상식장으로 가는 길에 하늘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다들 조용한 가운데 빗방울만이 세차게 버스에 부딕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좋은 징조였어요. 결국, “기생충”은 눈물을 펑펑 쏟을 수 있었던 영화(rain movie)가 되었습니다.

지난 6개월간 새로운 도시, 통역 마이크, 그리고 좋은 소식들로 정신 없이 보냈고, 그동안 전 제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꿀을 탄 레몬 차를 수없이 주문했던 것 같습니다.

한 무리의 관중으로부터 다음 관중으로 이동하면서 저는 이 특별한 영화를 보고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제가 주관했던 영화의 밤에 소개한 영화 감독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아주 부조리한 상황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주 비중이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할리우드의 중심부로 빨려들었습니다. 1월에, 저는 이 말도 안되는 놀이가 끝나면 몰려 올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해변가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과 칸에서의 감동

2019년 4월, 저는 봉준호감독으로부터 전화 면접을 하자는 급작스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미 한번 인터뷰를 놓쳤었어요. 파일럿 대본 작업을 위해 크런치 모드(crunch mode)로 날을 샌 덕분에요.

저는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모든 감정을 죽이고 “저는 가능하니 연락주세요.”란 답변만을 했었죠.

며칠 후, 요청이 왔고, 곧 저는 가장 좋아하는 메모지와 펜을 가지고 제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일지 모를 전화 인터뷰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원문에서 그녀는 긴장해서 몇시간이 될지모를 전화 인터뷰 동안 오줌이 마려 화장실에 가야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바랬다고 적고 있습니다. – 역자 주)

이전까지 저는 이창동 감동의 대표적인 작품 “버닝”을 1주일 정도 통역해 본 경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화 면접 중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애매모호한 영화 참고 문헌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필경 다른 통역사가 이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옥자’에서 스티븐 연의 팔을 통해 “번역이란 신성한 것입니다.”라고 봉준호 감독은 이야기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칸 영화제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뛸듯이 기뻤습니다.공교롭게도, 저는 칸 영화제 기간 동에 방학을 이용해 프랑스 남부에서 지낼 계획이었거든요.

제가 한국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리에 비즈니스 복장에 배낭을 끌고 다녀야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짐을 휴대하고 탑승해야하는 항공편과 8인용 호스텔 방을 예약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칸에서 ‘기생충’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루미에르 대극장에서 저는 부인할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 조국의 영화가 수많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격하는 것 이었죠.

통역을 잘 할 수 있었던 이유

제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보낸 2년 동안 저는 미국인이기엔 너무 한국적이고, 한국인이기엔 너무 미국적인,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상한 혼혈인으로 변했습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영어 공부를 계속했지만, 대학 공부을 위해 LA로 돌아왔을 때 아주 평범한 “What’s up? (잘 지내?)”같은 질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과 제 자신의 절반만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통 한 영화가 담기엔 두가지 문화는 너무 벅찹니다. 하지만 여기 모든 장벽을 쉽게 뚫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저는 칸 영화제 단 이틀 동안만 영어 통역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틀을 넘기고 “기생충”이 수상할때까지 영화제 폐막식 행사장 무대 뒷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 이후 나머지는 모두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통역할 때 추억을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통역하는 그때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바쳐야 하며(It’s all about the moment that exists now),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각 단계의 기억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저는 불면증을 달래기 위해서, 동양과 서양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분절적인 단어를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제가 평생동안 봐왔던 영화들에 의존했습니다.

제 통역은 그(봉준호감독)의 배려로 쉽게 진행될 수 있었고, 제가 이미 영화 제작자이자 사상가로서의 그의 언어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에 대한 대학 논문을 썼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끊임없이 사기꾼 증후군(impostor syndrome)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며 자라온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의 말을 잘못 전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죠.
(사기꾼 증후군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애도 자신을 비하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심지적 장애를 말합니다, – 역자 주)

무대 공포증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대 뒤에서 10초간의 명상을 하는 것이었고, 그들이 보고 있는 그 사람이 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었어요.

제가 영화보다 더 좋아하는 매체는 없지만, 저는 계속해서 프랑스 기자가 스트레스 받은 동료들에게 외쳤다는 “이건 영화일 뿐이에요!”라는 말을 제 자신에게 되뇌이는 것 뿐입니다.

이번 여정에 저는 큰 헤택을 입었습니다.

저는 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짝을 이룬 코미디같은 듀오의 포효하는 웃음을, SAG 어워드에서 앙상블을 수상했을 때 “기생충” 출연진들에게 쏟아지던 열렬한 기립박수를,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 수상 무대에서 마틴 스콜세지에게 경의를 표할 때 관중석에 내리던 황금색 물결을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개인적인 영웅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스카 캠페인에서 배운 것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여행에서 제가 받은 진정한 선물은 매일 만나는 팀원 및 아티스트들과 개인적으로 대화하고 일대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몇년동안 이런 분들과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쩌면 시간이 더 걸릴겁니다.

칸과 텔루라이드를 거치면서 놀랄만큼 잘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저는 온갖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촬영지로 낙점했던 화장실이 아침부터 공사에 들어가 버렸을 때 저는 울음을 터뜨렸고, 처음으로 맡았던 보조 감독(AD)로서 긴급 촬영 장소 섭외를 요청해야만 했었죠.

팀이 꾸려진지 3일 후 우리는 오스카 캠페인을 시작하기 위해 텔루리드행 항공편에 탑승했습니다.
(아카데미상은 몇몇 심사위원들의 심사로 상을 주는 것이 아니고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어디에 있을지 모를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영화를 홍보할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넷플리스는 이러한 오스카 캠페인에 몇천억을 썼다는 소문이 있고, ‘기생충’도 110억 이상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역주 주)

이러한 업계에 적응하게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I needed an oxygen tank to adjust to the jump in altitude and the industry ladder.)

제가 참여하게 된 멋진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진심어린 프로젝트를 완수하려고 노력하는 학교에서처럼, 이 와중에 저는 배울게 더 많다고 느낍니다. 저는 아직도 영화 제작자로서 목소리를 키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틀이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로서 봉준호감독을 눈여겨 보았을 때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는 LA의 Frank Lloyd Wright’s Hollyhock House에서 뉴욕 매거진(New York magazine)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봉준호감독의 직감적으로 공간을 읽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카메라, 공간 및 인물 캐릭터의 삼위 일체에 대한 마스터 클래스를 수강하는 것 같았습니다.

W 매거진에 사용 될 조여정의 커버 사진 촬영을 연출하는 봉감독을 보면서, 봉준호감독의 비젼을 공유하는 그의 방식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W magazine의 커버를 장식한 조여정

항상 유머와 재치가 묻어나는 그의 재빠른 판단 능력은 정말 배울게 많고,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위대한 아티스트들이 “기생충”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노력했고, 저는 그들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그 날의 경험을 어느 누구와도 기꺼이 공유하곤 했습니다.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통역은 나의 직업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삶 자체입니다. 저는 20년동안 내 자신의 통역사였습니다.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전문으로 하는 심리학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뇌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단일 언어에 대해 1만대의 단어를 알고 있다면,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각 어어별로 5,000여 단어 밖에 알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동안 저는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에 좌절했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영화의 비쥬얼 언어에 반한 이유입니다.

영화 제작이란 나이 내면을 외부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치지만, 반드시 원본과 똑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심리학자는 통역한다는 것은 뇌의 언어 영역 뿐만이 아니라 사고 유연성을 조절하는 영역을 포함한다고 덧붙였었습니다.

연습을 통해서 실력이 쌓이는 곳은 근육이죠. ‘기생충’이 알려준 것은 유연성입니다. 그것은 이해와 감정이입을 높여주었습니다. 감정이입은 영원히 ‘이방인’인 사람들 사이의 갭을 이어줍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외롭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오스카 시상식 시즌에대한 특집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죠. 이것은 아직도 다 끝나지 않은 깊은 개인적인 경험이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제 이야기에 녹여낼 것들입니다.

제가 요즘 쓰고 있는 작품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야기인데요. 봉준호감독이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의 진실한 언명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입니다.”처럼 저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입니다.

소셜 미디어 피드에서 저의 얼굴을 보는 것은 너무 기괴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비아그라 광고의 해시태그에 내 이름을 넣은 일련의 봇 트윗을 발견했을 때 이러한 것들이 그냥 지나가는 일시적인 명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엇죠.

심지어 나에게 뷰티 광고 제안도 있었다고 들엇었요. 아무튼 이러한 이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들을 전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요.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기생충’ 데이로 선포하고 기려준다고해도 별로 놀랄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다음 번에는 내 자신의 이야기로 저의 이름이 스팸 광고와 함깨 회자되었으면 합니다.(But I can’t wait for my minutes to end so that next time my name pops up with a spam ad, it’s with my own story.를 의역해 본 것 – 역자 주)

번역을 마치며

워래는 샤론 최의 영어 관련 내용이 나오는 중간본까지만 번역하고 나머지는 기약을 두지는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dobiho님이 댓글을 달아주신 덕분에 시간을 내서 나머지도 번역을 끝냈습니다. 아마추어가 번역한 것이니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이해를 해주시고 번역 관련 조언을 주시면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인데 대구, 경북분들 힘내시고 잘 이겨 내시길 빌고, 이 코로나 19 사태가 빨리 종식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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