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선정, 미국 대통령선거 캠페인 광고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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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끝났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광고를 살펴보다 타임에서 선정한 10대 미국 대통령선거 캠페인 광고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타임 선정 Top 10 Campaign Ads

1. 1964 대통령 선거 광고 – Daisy Girl

정치 광고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광고

1964년 미 대통령선거에 민주당은 린든 B 존슨이, 공화당은 배리골드 워터가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는 쿠바 미사일 위기와 쿠바 봉쇄 사태로 인해 소련과의 핵전쟁 위기를 넘긴 직후였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소형 핵무기를 일반 폭격무기로 삼아야 한다”거나 “자유를 방어하는데 극단주의는 악덕이 아니다. 정의를 추구하는데 중용은 미덕이 아니다.”, “크렘린 궁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싶다.”등의 강경한 핵전쟁을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에 민주당측은 핵 사용을 긍정하는 배리 후보 측의 태도를 역이용하여 네거티브 광고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Daisy Girl’ 광고였다.

소녀가 숫자를 세면서 데이지 꽃잎을 따고 있다. 아홉을 세는 순간 10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소녀의 커다란 눈이 크로우즈업 되면서 핵폭탄이 폭발한다.

“These are the stakes! To make a world in which all of God’s children can live, or to go into the dark. We must either love each other, or we must die.”이것은 도박입니다! 세상을 신의 아이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어둠속으로 빠질 것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Vote for president Johnson on November 3. The stakes are too high for you to stay home.11월 3일, 존슨 대통령에게 투표하십시오. 집에 박혀있기에는 이 위험은 너무나 큽니다.

이 광고는 1964년 9월 7일 단 한번만 방영되었지만 너무 내용이 섬뜩해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사회에 회자되면서 CBS NBC ABC 등 공중파 방송 뉴스시간마다 언급하면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고 민주당 린든 B 존슨이 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린든 B 존슨은 61.1% 대 38.5%로 대승을 거두었다.

2. 2004년 Swift Boat Veterans ‘Any Questions’

2004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후보와 민주당은 매사추세츠 주의 상원의원인 존 케리가 후보로 지명되었다.

최종적으로는 28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부시가 당선되었다.

존 케리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여러 훈장을 받고 전쟁영웅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후 반전운동에 앞장섰다.

존 케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자 일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 일부가 모여 Swift Boat Veterans for Truth(‘진실을 위한 쾌속정 참전용사들’)이란 단체를 만들고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케리를 비판하는 동을 전개하였다.

존 케리는 이 단체에 대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Time은 이 광고가 존 케리의 패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The most influential ad of the 2004 campaign came not from the Republicans or Democrats but from a small political committee, the Swift Boat Veterans for Truth. The first Swift Boat ad aired in August 2004 and featured 13 people who claimed to have “served with John Kerry,” although only one of them actually did. The men questioned Kerry’s war record, honesty, and loyalty to his fellow servicemen. Subsequent ads and the political fallout pushed the Swift Boat campaign into mainstream news consciousness and now the term is used as slang when discussing smear campaigns. Although it’s hard to tell just how effective the ads were, one thing is for certain. Kerry lost.

이번에 소개하는 “Any Questions” 광고는 이 단체가 추진한 여러 광고 중 맨 처음 방영된 TV 광고이다.

2004년 8월 5일에 온에어된 이 광고는 13명의 참전용사들이 나와 존 케리와 함께 복무했다고 밝히며 그의 부정직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임을 주장한다.
(사실은 이 출연한 사람중에 한명만 존 케리의 부하였고 나머지는 ㄷ른 배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3. 1984년 It’s Morning in America

1984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인 레이건측의 광고로 역대 미 대선 광고 중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광고로 꼽힌다.

위에서 소개한 광고와 달리 상대를 공격하지않고 포지티브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이란 인질사건 등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고, 높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그리고 마이너스 경제성장으로 허덕이던 상황이었는데 레이건은 ‘강하고 부유한 미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는 당시 강한 미국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 기조하에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간섭을 최소화하여 시장과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생산을 촉진시켜 수요를 촉진하는 레이거노믹스를 시행해 경제를 안정시키고 미국의 국력을 크게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 시점에와서는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미국이 고통받고 있는 쌍둥이 적자의 원횽이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다.

아래는 Time의 설명이다.

The actual title of this 1984 Reagan commercial is “Prouder, Stronger, Better,” but the opening line — “It’s morning again in America” — inspired the ad’s better-known nickname. The message is simple, patriotic and inspirational. It’s hard to watch the video and not want to support its candidate; that’s probably why it’s been called one of the most effective campaign ads ever.

4. 1988년 공화당의 네가티브 광고 – Willie Horton

1988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조지 부시는 미주당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에 15%이상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반전하고자 적극적인 네가티그 커뮤니케이션을 실시한다.

당시 조지 부시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했기 대문에 이란 콘트라 사건 등 여러 가지 구설수와 실정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을 역전하고자 애트워터라는 공화당의 네거티브 선거전문가를 기용해 적극적인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이 유명한 Willie Horton이다.
Willie Horton는 마이클 듀카키스가 재임한 매사추세츠 주에서 수감중인 흑인 죄수가 주말 휴가 제도를 통해 사회에 나와서 ‘백인 여성’을 강간한 일화를 토대로 마이클 듀카키스가 시행한 주말 휴가 제도가 실패했다는 정치적 실패를 부각하고자한 광고였다.

이러한 일련의 네가티브 전략에 의해서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에의 열세를 극복하고 1988년 대선에서 승릴르 거둘 수 있었다.

Time의 설명을 보자

In 1986, a convicted felon named Willie Horton — who was serving a life sentence for murder — was released from a Massachusetts prison on a weekend furlough program, during which time he escaped and raped a woman. Then-governor Michael Dukakis had supported the prison furlough program, and when he ran for President in 1988, his opponent, George H. W. Bush, used that to his advantage. The “Revolving Door” ad never mentions Horton by name, but the connection was clear and the ad received considerable news coverage.

5. 2008 It’s 3:00 A.M. – Hillary and her ‘Red Phone’

2008년 민주당 재선 후보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광고다.

당시 미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오바마와 경합해 패배했다.

그러나 경선을 시작하기전부터 힐러리는 가장 유력한 호보였고 선거 당시가지도 가장 유력했으나 막판 오바마의 추격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다.

2016년 대선에서도 다 이겼다고 평가를 받았지만 막판 트럼프의 대추격을 허용해 1%이상 더 득표하고도 패배했다. 참 운도 없다고 평가할 수 밖에.

이 광고는 2008년 민주당 프라이머리 경선에서 연속적으로 패배하고 힐러리가 오바마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오바마의 최대 약점이라 이야기되는 국가 안보 공약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광고는 “Children”이란 타이틀을 붙였지만 역시 It’s 3:00 A.M이라고도 알려진 이 광고에서 이 셰계적 위기 상황, 새벽 3시에 걸려오는 비상 전화를 누가 받아서 이 국가를 이끌어주기를 원하는지를 묻고 있다.

자고 있는 아이, 계속 울리는 전화벨소리 닞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강조하는 나레이션은 오싹한 기분이 든다고 Time은 평가하고 있다.

이광고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In a don’t-push-the-red-button Cold War-esque maneuver, Hillary Clinton released this ad during the 2008 primary season, asking voters who they would want to lead the country during a world crisis. Sleeping children, a ringing telephone, the undertone of grave importance heard in the speaker’s voice, it’s all there — and frankly, kind of creepy.

6. 2008년 Mike Gravel – Rock

2008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전 아래스카 상원이었던 마이크 그라벨의 광고(?)

마이크 그라벨은 이는 광고는 아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광고로 활용은 되었다,

이 동영상(광고?)은 독특하다.

몇분동안 마이크 그라벨은 아무말없이 앞만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서서 조그마한 바위(?)를 주워 호수로 던지고는 유유히 걸어간다.

마이크 그라벨은 1%의 득표도 얻지 못했지만 이 광고는 그의 득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1981년이래 사무실도 열지 않았던 그에게 괜찮은 수치라고 Time은 이야기 하고 있다.

In this spot for his 2008 Presidential bid, former Alaskan Senator Mike Gravel stares into the camera for over a minute, then turns around silently, and tosses a rock into a lake. Gravel later said that this video wasn’t an ad but an artistic “metaphor of an ordinary citizen who acts in an unusual and extraordinary way.” Whatever it was, it got the job done. Although polls put Gravel with less than 1% of the vote, his strange videos (there’s another one called ‘Fire’ that lasts for 7 minutes and features Gravel collecting wood) got thousands of hits on YouTube and earned airtime on The Daily Show with Jon Stewart. Not bad for a guy who hadn’t held a political office since 1981.

아래는 마이크 그라벨이 그 동영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영상이다. 참고로 보시길.

7. 1968년 Hubert Humphrey – Laughter

1968년 민주당 휴버트 험프리 후보의 TV 광고이다.
매우 유명한 네가티브 광고의 하나이다. 이런 영상도 광고로 보앨 수 있다는 생각이 놀랍다.

1968년 미 민주당의 확고 부동한 선두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고나서 베트남전 반대 기치를 높이 든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이 선두두가 되었지만 과반 획득에 실패해 관례대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을 하게 된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지 한달 후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민주당 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휴버트 험프리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휴버트 험프리는 당시 부통령으로 경선에도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지도부의 지지로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민주당 후보가 된 휴버트 험프리는 공화당 후보인 닉슨과 대결하는 동안 내내 네가티브로 일관한 광고 캠페인을 지속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광고도 공화당 후보인 닉슨이 러닝메이트로 당시 역대 최연소 메릴랜드 주지사이던 스피로 애그뉴 (Spiro Agnew)를 지명한 것을 비웃는 내용으로 저런 애송이를 부통령 후보라니 가소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반면 공화단 후보인 닉슨은 자신의 약점인 공개 토론대신(1960년 닉슨은 존 에프 케네디와 토론에서 발려서 패배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TV 광고를 통한 자신으 비젼을 이야기하는 포지티브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사했다.

휴버트 험프리는 네가티브한 전략으로 일관한 끝에 1968년 미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지지수에는 0.42%로 뒤졌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301대 191로 대패하게 된다.

Spiro Agnew was virtually unknown when Richard Nixon selected him to be his vice presidential running made in 1968. Agnew had only been governor of Maryland for two years and his opponents ridiculed his lack of experience. This Hubert Humphrey attack ad features nothing but uncontrollable laughter as Agnew’s name appears on screen. It’s simple, it’s shocking and it’s intimidating — who wants to vote for the inexperienced candidate everyone laughs at?

8. 1952년 아이제아워의 I Like Ike

1952년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의 아이제하워와 민주당의 스티븐슨이 경쟁하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고 스티븐슨은 일리노이주지사로 지성적이며 웅변가이면 정치가로 유명했다.

아이제하워의 광고 캠페인은 마케팅에서 USP이론을 주창한 Rosser Reeves로 대통령 선거사상 처음으로 TV 광고를 활용하고 아이크(Ike)로 널리 알려진 “I like like”슬로건을 내세룬 캠페인을 전개해 선거에서 대승을 이끌었다.

이 광고는 처음으로 TV에 방영된 첫번째 선거 캠페인광고로 기록되어 있다,

이빙 베르린이 작사하고 원드 디즈니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를 활용해 경쾌하고 호소력이 있다.

Time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Dwight Eisenhower was a lucky man. For the 1952 Presidential campaign, Irving Berlin wrote his campaign song and Walt Disney Studios made one of his television ads — which were the first campaign ads aired on TV. The minute-long spot is upbeat and cute and it features a cartoon elephant. What more could a candidate ask for?

The “I Like Ike” animated television commercial, produced by Roy Disney and Citizens for Eisenhower-Nixon.

9. 1972년 The McGovern Defense

1972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과 공화당 현직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경합하고 있었다.

사우스 다코다주 상원의원인이었던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은 닉슨에 맞서 반전 운동을 전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닉슨의 공화당은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대외정책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인식을 적극 활용해 맥거번을 급진좌익극단주의자로 몰아가는 네가티브 전략을 고수했다.

이런 닉슨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조지 맥거번은 선거에서 총투표율에서 23.2%차이로 대패했다,

아래 광고는 조지 맥거번의 국방비를 축소하려는 국방 공약에 대해 이는 미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네가티브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호응을 얻었고 닉스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아래는 Time의 설명

When South Dakota Senator George McGovern won the 1972 Democratic nomination on an antiwar platform, Richard Nixon used his calls for troop withdrawal and a reduction in defense spending against him. Attack ads are rarely lighthearted, but this one went with bark instead of bite. Don’t vote for McGovern, it warned, or he’ll steal your toys and cut your military in half.

10. 1960년 케네디 송 JOHN KENNEDY CHAMPAIGN SONG

1960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 후보로 존 에프 케네디가 공화당 후보로는 리차드 닉스 부통령이 지명되었다.

선거 초반 우세를 지키던 닉슨은 당시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지지를 확고히 받지 못하고 처음 실시된 TV 토론에서 케네디에 발리면서(사실 토론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더 잘했다고 평가했으며 TV로 본 사람들은 케네디가 더 낫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어쩌면 내용면에서 닉슨이 좋았는데 TV로 급속히 이행하는 시점에서 케네디의 비주얼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맞을 듯) 성거인단 득표에서 219표를 얻어 303표를 얻은 케네디에 대패한다. 물론 총득표수로 계산하면 49.55% vs 49.72%로 크게 밀리지는 않았다.

아래 광고(?) 케네디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케네디 캠페인송이다. Time은 이 송에 대해서 호소력있고 반복적이고 쏙쏙박히는 단어들로 시트콤 템마 송처럼 머리에 박혀 며칠동안 떠날지 않을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아래는 .livingroomcandidate.org에서 퍼온 설명이다.

In 1960, America was enjoying a period of relative prosperity. With the exception of the stirrings of the modern civil rights movement, domestic turbulence was low, and the primary foreign threat seemed to be the intensifying Cold War. Fidel Castro came to power in Cuba in 1959, and installed a Communist regime just ninety miles off the coast of Florida. In May 1960, an American U-2 spy plane was shot down inside the Soviet Union, further intensifying tensions between the superpowers. The Republican nominee, Vice President Richard Nixon, was enjoying a growing reputation for his foreign policy skills after his televised “kitchen debate” with Soviet Premier Nikita Khrushchev in 1959. The Democratic nominee, charismatic Massachusetts Senator John F. Kennedy, was attempting to become the first Catholic president and, at age 43, the youngest man ever elected to the office. Nixon argued that he had the maturity and experience to deal with the Communists, while Kennedy attempted to turn his youth into an advantage, proclaiming in his acceptance speech at the Democratic convention, “We stand today on the edge of a new frontier.”

1960 KENNEDY VS. NIX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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