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왕국 디즈니의 위기 극복 전략 – 과감한 M&A와 창의력 강화 프로그램

이 글은 2017-09-15에 최종 수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가장 유명한 컨텐츠 왕국인 디즈니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즈니 관련 수많은 주제가 있겠지만 여기에서 는 디즈니가 맞은 여러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컨테츠 왕국 디즈니의 위기 극복 전략 – 과감한 M&A와 창의력 강화 프로그램

1위기의 1980s – 브랜드의 진부화와 컨텐츠 경쟁력 하락

디즈니의 위기가 가시화 된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위기는 디즈니 창업주 '월트 디즈니'가 1966년 사망한 후부터 징후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즉 탁월한 능력과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디즈니를 이끌었던 '월트 디즈니' 사망 후 후계자들은 제대로 된 경영을 하지 못했습니다.

  • 1970년대 시도한 영화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고
  • 이에 따라 창의적인 영화대신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운영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는 창의적인 컨텐츠로 새로운 고객을 만들고, 새로운 이미지을 만들고, 새로운 수익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예전 '월트 디즈니'시절 만들었던 브랜드 유산을 야금 야금 갉아먹고, 브랜드력을 소진시키면서 점차 쇠락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반에 그 위기의 징후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 1979년 미국내 디즈니의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4%로 7개 대형 영화제작사 중 꼴찌로 전락했습니다.

  • 1980년 1억 3500만 달러의 이익이 1983년엔 9,300만 달러대로 하락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랜드 놀이공원 입장객 수는 4년중 3년은 입장객수가 감소해서 피크때 대비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 1983년 CBS가 디즈니 방송을 끊으면서 텔레비젼과 디즈니와의 연결 고리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디즈니는 텔레미변 방송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1954년부터 텔레비젼을 통해서 디즈니에 대한 꿈과 환상을 심어 왔었습니다. 이런 결과로 디즈니는 당시 인기를 끌던 '스타워즈'에 완전히 밀렸고 디즈니는 중년의 한물간 브랜드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 1983년 주식은 70%가까이 하락하면서 주식 시장에는 디즈니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점은 디즈니와 같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창의력이 업의 정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은 창의력을 등한시하고서는 아무리 다른 부분에 집중해 성과를 낸다고 하드라고 그 경쟁력의 원천이 창의력 즉 영화를 비롯한 컨텐츠 경쟁력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의 경쟁력도 상실한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디즈니랜드 입장객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영화 컨텐츠를 통해서 꿈과 희망을 계속 키우고 이를 디즈니랜드와 같은 놀이공원으로 소비자들을 이끌는 선순환이 되어야지 지속적인 컨텐츠 창출없이 과거의 열매만 다먹으면 근방 브랜드는 진부해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북미에서의 디즈니 박스오피스 점유율을 그래프로 그려보았습니다.
1979년부터 1985년까지 디즈니는 점유율 5%를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월트 디즈니 박스오피스 북미 점유율(1979~2015).jpg

▽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디즈니 주가 추이를 살펴보았습니다.
1983년에는 최고치 대비 70%가까이 하락하면서 그 위기감을 증폭시켰습니다.
그 이전에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주가의 변동이 크지 않았다는 점은 디즈니의 활동이 정체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까 싶습니다.

디즈니 추가 추이 1975 ~ 1985.jpg

2 위기의 극복 – 창의성 회복으로 컨텐츠 경쟁력을 강화 그리고 M&A를 통한 다각화

그러면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디즈니는 무엇을 했을까요?
먼저 수장을 바꾸어 위기를 타개할 CEO를 새로 모셔옵니다.

당시 디즈니의 위기가 가속화되자 디즈니는 1984년 당시 경쟁사였던 파라마운트 픽쳐스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가 새로운 CEO로 영입해 새로이 경영을 맞깁니다. ABC 방송과 파라마운트를 거친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위기에 처한 디즈니를 구원하기 위한 몇가지 전략을 수립합니다.

디즈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은 이전부터 계속되고 있었지만 새로운 CEO인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를 맞으면서 이러한 노력은 더욱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디즈니를 구한 소방수로 확실히 인지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1980s에 진행된 디즈니 위기 극복 전략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1. 비젼을 통한 중장기 계획의 수립
  2. 창의적인 인재가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조직을 만들다.
  3. 창의적인 조직 분위기를 만들다.
  4. 다양한 M&A를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의 강화
1. 비젼과 중장기 계획의 수립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새로 CEO가 되면서 맨처음 한 일은 5개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 것이었습니다.

  • 1년에 12편의 영화와 1편의 만화영화를 만들어 컨텐츠를 강화

  • 디즈니의 고전과 비디오를 적극 활용, 기존에는 5년 주기로 극장에서 재개봉 한다는 기존의 전략을 폐기하고 고전 영화를 홈비디오로 출시 공격적으로 소비자를 공략

또한 1990년대에는 "디즈니 10년 대계, The Disney Decade"를 수립합니다. 여기에는 전세계에 새로운 테마파크를 세운다는 계획과 새로운 미디어에 적극적인 투자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디즈니 10년 대계, The Disney Decade"는 일부 실현되기도 하였고 일부는 사장되기도 하였습니다.

위 계획 중 성사된 것은 유로 디즈니(지금은 Disneyland Paris로 변경), 디즈니 MGM 스튜디오(지금은 Disney's Hollywood Studios로 변경),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쳐 파크(지금은 Disney California Adventure), 디즈니 MGM 스튜디오 파리(Walt Disney Studios Park로 개장 됨) 등이 있습니다.

2. 창의적인 조직과 창의적인 인재의 영입

앞서 중장기 계획에 따라 다양하고 많은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고 또 이런 인ㅐ들이 맘놓고 근무할 수 있는 창의적인 조직이 필요합니다.

디즈니는 영봉등 근무 조건을 개선해 창의적인 인제를 영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다양한 제도를 통해서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창의적인 인재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다

앞서 중장기 계획에 따라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합니다.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창의적인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경쟁력의 원천은 컨텐츠이고 이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유능한 창의적인 인재이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자산은 창의적인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즈니는 이런 창의적인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 기존 열악한 연봉 구조를 뜯어고쳐 능력에 따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변경해 유능한 인력들을 영입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했습니다. 디즈는 이런 변경된 연봉 구조를 토대로 높은 연봉을 내세워 유능하고 창의적인 인력을 스카웃할 수 있었습니다.

  • 스톡옵션제도와 성과에 따른 보너스제도를 도입해 사원들의 업무 의욕을 고취했습니다.

이러한 결과 디즈니는 할리우드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드릴 수 있었고 이후 연속해서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 컨텐츠 사업의 기초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디즈니 스튜디오를 이끌면서 많은 만화영화를 히트시킨 카젠버그(Katzenberg)가 이당시 영입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합니다.

창의적인 조직 분위기를 만들다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지위고하를 따지지않고 서로간의 비평이 가능한 조직이야말로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디즈니의 개방적인 문화를 위해 의사결정을 "신속한 하의상달식"으로 바꿨습니다.

  • 직원들의 제안에 대한 피드백을 강화해 조직원들의 의욕을 고취시켰습니다. "내 아이디어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하는 느낌을 직원들에게 주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네요.

  •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위해 ‘공쇼(Gong Show)'라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공쇼(Gong Show)'는 1970년대 유행한 미국의 TV 쇼 이름으로 아마추어들이 자유롭게 춤이나 노래 실력을 겨루는 무대였습니다.
    이에 착안해 디즈니는 모든 직원들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표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1년에 세번의 ‘공쇼(Gong Show)'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은 아이즈너회장등 경영진에게 자기 의견을 개진할 좋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실제 임시 직원과 비서들을 포함해 40명 이상의 직원이 매 회의에서 영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발표할 정도로 참여가 좋았다고 합니다.
    후에 디즈니를 대표하는 만화영화인 인어공주, 포카혼타스 등이 공쇼를 통해 제시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 CEO를 비롯한 모든 임직원이 직책에 상관없이 서로 이름만 부르도록 해 성이나 직책같은 공식적인 명칭은 사용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서로에게 보다 친근한 느낌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회사 분위기가 형성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족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 또한 임원의 직책 이름도 기존의 일반적인 명칭이 아니라 할리우드 분위기에 어울리게 바꿈으로써 기존의 관료적이고 공식적인 분위기를 일소하고자 한 것입니다. 기존의 "컨셉 개발 담당 부사장"은 "디즈니랜드 프로듀서"로 교체 등등

이러한 창의적인 조직만들기의 결과 창의력에 근거한 작품들이 쏱아져 나왔고 디즈니가 전성기로 향하는 계기가 됩니다.
1989년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등 히트 작품이 잇따라 나오면서 1990년대를 디즈니의 르네상스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라이온킹은 디즈니의 수많은 에니메이션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1994년 개봉해 오로지 2D로만 만들었지만 3D를 능가하는 최고의 색채와 스케일 그리고 감동스러운 슷토리와 아름다운 음악까지 나무랄데없는 완성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디즈니 픽처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포스터.jpg

3. 적극적인 M&A를 통한 외부 수혈로 디즈니의 유산을 강화하다

디즈니는 2D 시대 '라이온킹'이후 이렇다할만한 히트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기술적으로 3D가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었고 이 부분으로는 이미 Pixar등 쟁쟁한 스튜디오들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부족한 부분들을 확실히 빨리 캐치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알고 있었습니다. 디즈니는 이미 완성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 협업을 통해서 또는 그런 회사를 인수 합병함으로써 극복해 가고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M&A(인수 합병)를 추진하다

3D부분에서 성장하고있는 Pixar와 협업하고 더 나아가 2006년 74억달러에 인수합니다. 이후 디즈니는 픽사와의 작업을 통해 100% 흥행 성공의 신화를 썻습니다.

2009년에는 마블을 40억달러에 인수해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영화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연속해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어 마찬가지로 디즈니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루카스필름을 41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시리즈인 ‘스타워즈’까지 디즈니 패밀리로 포함시킵니다. 루카스필름의 조지루카스가 은퇴를 고민하던 중 애플 이사회 이사이자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최고경영자인 회장 로버트 아이거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인수가 성사되었다고 합니다.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으로 인수 합병의 성과를 극대화하다

디즈니는 인수한 회사라고하드라도 상하관계가 아닌 독립된 스튜디오로 최대한 존증을 해주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두 회사의 절대 바뀌지 않는 원칙은 두 스튜디오가 절대 통합하거나, 상대방을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스튜디오의 문화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밥 아이거가 마블을 인수할때도 동일하게 적용했습니다. 마블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픽사가 그랬듯이, 디즈니 에니메이션 스튜디오가 그랬듯이, 그리고 아이거는 마블이 그들의 방식으로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갖기를 원하겠지만 그들의 원래 가진 문화를 침해할 수 는 없습니다." – 에드 캣멀 인터뷰 중 –

디즈니 히스토리 2005~202015 capture.jpg
[이 이미지는 The economist지에 게재된 것입니다.]

4. Target 다양화

네번째 요인은 Target의 다양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린이 중심의 에니메이션을 만드는 디즈니 스튜디오외 다양한 계층을 공략할 수 있도록 새로운 스튜디오를 만들거나 인수함으로써 디즈니 자체 컨텐츠를 풍부하게하고 새로운 타겟을 공략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략을 발굴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양한 계층을 공략하다 – 성인 공략을 위한 터치스톤 픽처스

그동안 디즈니는 에니메이션 특성상 어린이를 타겟으로 경영 활동을 해왔습니다. 에니메이션 영화나 디지니랜드등 Parks &$ Resorts 사업등은 대부분 어린이를 타겟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84년 2월 터치스톤 필름(Touchstone Films)이 세워집니다. 이 회사는 당시 CEO였던 론 밀러(Ron Miller)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터치스톤 필름(Touchstone Films)은 기존 디즈니의 target에서 벗어나 성인을 겨냥해 보다 성숙되고 중후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터치스톤 필름(Touchstone Films)의 첫번째 영화는 환타지 로맨틱 코메디 영화인 '스플래시(Splash)'였는데 1984년 개봉해 생각외로 성공을 거두어 68M$의 수입을 올리고 침체되어있던 디즈니에 커다란 활력소가 됩니다.
이후 1986년 터치스토 픽처스(Touchstone pictures)로 이름을 바꾸고 '죽은 시인의 사회'(1989), '프리티 우먼'(1990), '시스터 액트'(1993) 등의 영화를 연달아 성공시킵니다. 터치스톤 픽처스의 성공에 힘입어 디즈니 스튜디오 역시 활기를 되찾으며 '나니아 연대기', '내셔널 트레저', '캐리비언의 해적'과 같은 히트작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됩니다.

▽ 터치스톤 픽처스 작품들 좌로부터 스플래시, 죽은 시인의 사회, 프리티 우먼

터치스톤 픽처스 작품들 스플래시, 죽은 시인의 사회, 프리티 우먼.jpg

다양한 계층을 공략하다 – 독립영화 공략을 위한 미라맥스

디즈니는 1993년 독립영화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독립영화 스튜디오인 미라맥스를 6천만달러에 인수합니다.
미라맥스는 1979년 하비와 밥 웨인스타인 형제가 세운 스튜디오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영화들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독립영화에 대한 바람을 일으켰고, 이는 헐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해 독립영화부문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미라맥스의 영화에는 '시네마천국', '퐁네프의 연인들', '펄프픽션', '피아노', '시카고', '굳 윌 헌팅'과 같은 유명작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같은 아카데미 수상작이나 '스크림' 시리즈 같은 히트작이 있습니다.

디즈니와 미라맥스와의 관계는 항상 좋은 것은 아니어서 CEO였던 로보트 아이거와는 계속되는 불화를 일으켰고 결국 2010년에 6.6억달러에 콜로나 캐피탈에 매각합니다. 로보트 아이거는 "미라맥스의 그동안의 많은 업적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월드 디즈니 스튜디오는 앞으로 디즈니와 픽사, 마벨 등의 이름으로 대형 영화를 제작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독립영화보다는 기존의 대형 영화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 미라맥스의 영화들,
좌로부터 굳 윌 헌팅, 잉글리쉬 페이션트, 피아노
1990대부터 눈에 익은 영화가 너무 많아서 이 자료를 만드는 동안 매우 즐거웠습니다.
추억의 영화들이라고나 할까요

미라맥스 굳 윌 헌팅 피아노 잉글리쉬 페이션트.jpg

5. 사업다각화

다섯번째 요인은 사업다각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화 산업은 급속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 TV의 채널이 증가하고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기기들이 증가하면서 영화 관객과 영화 매출이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 게다가 케이블과 월정액을 내고 보는 서비스들의 증가를 포함해 영화 산업 참여자들의 증가에 따른 유통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고 있었습니다.

컨텐츠 소비 구조가 다양화지고 새로운 기회요인들이 나타나고 기존의 전략을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맟추어 당시 CEO였던 Miller때부터 전통적인 에니메이션 영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발굴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디즈니 M&A 역사상 신의 한수 – ABC 인수로 미디어 네트웍 사업을 일으키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중 가장인상적이고 후에 신의 한수라고 일컬지는 것이 1996년 디즈니의 ABC방송사의 인수입니다.
당시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디즈니의 비지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면서 미래는 영화관이 아니라 가정용 엔터테인먼트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에니메이션 영화들을 홈비디오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ABC 방송같은 새로운 미디어를 인수 합병하기 시작합니다.

이 인수는 많은 면에서 관심을 증폭시켰는데요.

  • 먼저 1백90억달러라는 인수가격입니다. 이는 사상 두번째 규모의 인수 합병이라고 하네요. 최대 규모는 콜버그 크라비스가 RJR나비스코를 2백50억달러에 인수한 것이라고…

  • 이 엄청난 거래는 단 10일간의 협상긑에 이루어 졌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인수합병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는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회장과 ABC의 대주주인 워렌 버핏의 개인적인 영향력이 인수합병을 원활하게 했다고 합니다.

  • 디즈니와 ABC 방송간의 시너지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있었습니다.
    디즈니는 엄청난 컨텐츠를 가지고 있었고 ABC방송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방송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디즈니의 컨텐츠를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시너지가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영화, 케이블TV,방송, 전화라는4개 분야를 장악해 급변하는 미디어 세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입니다.

ABC 역사 수정.jpg

이러한 ABC 인수를 토대로 Media networks라는 business segment를 만들고 관련 M&A를 지속합니다.
그리고 2년 후 인 1998년 ABC가 80% 지분을 갖고 있었던 스포츠채널 ESPN 역시 인수하게 됩니다.
ESPN은 미국 스포츠 전용 케이블채널로 미식축구(NFL), 프로야구(MLB), NBA, 대학농구, 대학미식축구[2] 등등 미국 스포츠 인기 종목의 굵직굵직한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고 각종 비인기 종목도 충실하게 중계해 주고 있어 스포츠 팬들에게 유용한 채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많은 스포츠 광팬을 양산해기에 주부의 적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ESPN은 아래처럼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어 디즈니에게있어서는 복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ESPN의 기업가치는 500억 달러에 이르며(2014년 포브스 보도)
  • 유료 가입자 수 9290만면 (월평균 6.6달러 지불, 2015년 7월 기준)
  • 디즈니 영업이익의 25% 담당

다만 케이블 TV 산업 자체가 내리막을 걷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ESPN에게도 중기적으로 위기의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ESPN의 회원이 1억가구를 돌파 후 바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이런 위기를 보여주는 지표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ESPN이 이런 환경적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 ESPN 가입가구 수,
2011년 1억가구를 돌파 후 감소하기 시작해 지금은 9천 3백만 가구로 약 7백만 가구가 감소했습니다.

ESPN 유료 회원수.jpg

디즈니의 가가 사업부 소개 및 미디어 네트워크사업부의 성장

디즈니는 사업부(Business segments)는 2000년까지 5개로 운영하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4개 사업부로 운영 후 2008년에 Interactive사업부문을 추가해 2015년까지 5개 사업부문으로 운영해왔습니다, 2006년에는 Comsumer products 부문과 Interactive사업부문을 합쳐 4개 부문으로 나누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 가장 규모가 큰 사업부는 ABC를 중심으로 TV 방송 등의 사업을 하는 미디어 네트워크
  • 두번째로 규모가 큰 디즈니랜드와 리조트 사업을 총괄하는 파크 앤 리조트
  • 디즈니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들의 집합체인 스튜디오 엔터테인먼트
  • 인터넷 비지니스 및 캐릭터 라이센싱 사업과 게임 사업을 수행하는 컨슈머 프로덕트&인터랙티브

디즈니 사업부분 구성 Disney Business Segments resize.jpg

결과, Media networks사업부는 디즈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부이며, 디즈니 매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업부이며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부로 성장하였습니다.

2015년 기준 Media networks사업부는 21B$ 매출을 올려 디즈니 매출의 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디즈니 사업군별 1991~2015 매출 추이 라인그래프,
1994년부터 시작된 Media networks사업부는 1996년부터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1998년부터 가장 큰 사업부가 되었습니다.

디즈니 사업군별 1991~2015 매출 추이 라인그래프.jpg

디즈니 캐릭터 사업 추진으로 시너지 경영 추진하다.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는 미키마우스로 상징되는 디즈니의 브랜드 파워를 살리기 위해 캐릭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디즈니라는 브랜드 위력을 캐릭터 사업과 연결시켜 전세계 550여곳에 캐릭터 매장을 열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러한 캐릭터사업의 성공과 여기서 얻어지는 지명도는 다시 비디오 판매증가와 테마파크의 이벤트로 이어지는 "시너지 경영"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네요.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가 후에 "디즈니 10년 대계, The Disney Decade"에 따라 추진한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의 디즈니랜드도 이런 시너지 경영의 토대위에 가능했다는 평가입니다.

▽ 디즈니 프린세스 라인 (Disney Princess Line)

디즈니 프린세스 라인 Disney-Princess-Line.jpg

3 성과를 살펴보자

디즈니의 매출은 위기가 가시화되는 1980년대 초 1B$에 불과했지만 '88년에는 3억달러에 육박했으며,
'94년에는 10B$를 돌파했고 2004년에는 31B$를 기록 30B$를 돌파했고 2015년에는 50B$를 초과할 정도로 빠른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손익도 2007년부터는 20% 손익율을 유지하고 있으면 최근에는 손익율이 28%까지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디즈니 매출 및 손익 추이(1983~2015).jpg

아울러 회사의 미래전망에 방점을 두고 평가되는 주가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반 1$ 수준에 는 살주가도 1$ 수준에서 크게 상승하여 한때 40$에 육박하는 주가를 기록할정도로 상승하였습니다.

디즈니 주가 추이 resize01.jpg

▽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마이클 아이즈너 (Michael Eisner)
타임 1988 4월 23일자

타임 1988 4월 23일자 마이클 아이즈너 Michael Eisner.jpg
4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Brand Strength)로 선정된 디즈니

2016년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는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Brand Strength)로 디즈니를 선정하였습니다. 2015에는 레고가 가장 영향력있는 브랜드로 선정되었는데 2016년엔 디즈니가 선정된 것입니다.

디즈니가 1위로 선정된 이유는 2015년 말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의 영향도 큰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브랜드 파이넨스에서 분석한것을 보니 디즈니의 브랜드에는 abc, ESPN, 월트 디즈니, 픽사, 루카스필름, 스타워즈, 디즈니 크루즈 라인, 터치스톤 픽쳐스,마벨 등등 엄청난 브랜드의 가치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2016 Brand strengt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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